어제 뭐 먹었어?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만화를 읽으며
 [만화책 즐겨읽기 6] 요시나가 후미, 《어제 뭐 먹었어? (1∼3)》



 글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을 긋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을 그을 수 없습니다. 글책을 읽으며 빈자리에 느낌글을 몇 줄 끄적인 다음 앞이나 뒤쪽 흰 종이에 쪽수를 적어 놓습니다. 나중에 다시 펼칠 때에 이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살필 수 있도록.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느낌을 적바림할 빈자리가 없습니다. 책 앞이나 뒤 하얀 종이에 쪽수를 적은 다음, 이 옆에다가 느낌을 적바림합니다.

 만화책 《어제 뭐 먹었어?》를 이태 만에 다시 펼칩니다. 2008년에 1권이 나온 《어제 뭐 먹었어?》를 곧바로 사서 읽은 다음 2권이나 3권은 더 사지 않고 책시렁에 얌전히 모셔 두었습니다. 이태 앞서 이 만화를 본 다음 뒤엣권을 더 사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더 안 사기도 했으나, 이 만화책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고이 묵혔습니다.

 새롭게 읽는 만화는 늘 새롭습니다. 예전에 열 번을 읽었든 백 번을 읽었든 언제나 새롭습니다. 줄거리를 떠올리며 ‘이제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지?’ 하고 어림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예전에 읽을 때에는 놓친 그림이나 구석을 곰곰이 헤아리기만 합니다. 노상 새로 읽는 책으로 자리하는 만화입니다. 글책을 읽을 때이든 사진책을 읽을 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뭐 먹었어?》 1권을 다시 읽으며 ‘느낌이 와닿는 대목’에서 한동안 눈길을 멎은 다음 책 앞쪽 흰 종이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책을 다시 읽고 덮기까지 모두 네 차례 눈길이 멎고, 네 차례 눈길이 멎은 쪽수를 헤아리니 이태 앞서 이 책을 읽으며 눈길이 멎을 때하고 똑같습니다.


.. ‘흠, 저녁 준비는 정말 대단해. 일을 깔끔히 마무리지었을 때나 느끼는 보람을 하루에 한 번은 맛볼 수 있으니. 이 뿌듯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는지.’ ..  (13쪽)


 첫째, 《어제 뭐 먹었어?》는 밥하기를 즐기는 아름다운 마음을 살뜰히 그립니다. 밥하기는 숱한 살림일 가운데 하나이며 몹시 커다란 살림일입니다. 옷도 때 맞춰 잘 빨아야 하고 이부자리도 느긋해야 하는데, 끼니때에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밥하기를 살뜰히 그리며 아름다운 살림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뭅니다. ‘요리와 맛’을 다루는 작품만 쏟아지는 오늘날이거든요.

 그런데 《어제 뭐 먹었어?》에 나오는 밥하기란 ‘요리와 맛’이 아닌 ‘여느 살림꾼 삶자락’이기는 하나,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값이 더 싼 먹을거리’를 ‘마트’에서 삽니다. ‘마트에 들어오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공산품 먹을거리’에 어떤 성분이 깃들었으며, 어떤 화학 양념과 물질이 스몄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널리 잘 퍼진 생활협동조합 물건은 한 차례조차 안 씁니다.

 만화를 보는 분들이 눈여겨보는지 모릅니다만, 다카하시 신 님이 그린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만화 주인공 아가씨는 먹을거리를 살 때에 언제나 ‘생협 목록’을 들여다봅니다. 딱 한 번인가 두 번, 이 그림이 나오는데, 다카하시 신 님이 남달리 생각하여 ‘생협에서 먹을거리 장만하기’를 그렸다 할 수 있으나, 일본에서는 조금 생각있게 사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한테까지 ‘공산품 아닌 생협 물건’을 써야 하는 줄 퍽 널리 퍼져 있다 할 만합니다.

 생협 물건이 마트 물건과 견주어 ‘아주 비싼’ 값이 아닐 뿐더러, 생협 물건이 더 값쌀 때가 있기도 합니다. 아니, 더 값싸다 해야 옳겠지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쓴 능금 한 알을 1500원에 파는데, 굵고 소담스러운 능금 한 알 또한 1500원을 웃돌기 일쑤입니다. 생협 소시지하고 마트 좋은 소시지, 생협 세겹살과 마트 좋은 세겹살 값은 그닥 안 벌어집니다.


..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 많이 벌기야 하겠지. 하지만 죽도록 일에만 매달려야 할 테니 시급으로 치면 편의점 알바비 정도일걸. 난 적당히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거야.” ..  (15쪽)


 둘째, 《어제 뭐 먹었어?》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뜰히 그립니다. 만화를 옮긴 분은 “적당히 벌면서”라 적었습니다만, 한자말 ‘적당’을 넣은 이 대목은 자칫 잘못 읽힐까 걱정스럽습니다. 이 대목은 “난 알맞게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쯤으로 옮겨야 했을 텐데요. 잘못 읽으면 “적당히 벌면서”는 “대충 벌면서”처럼 되고 맙니다.

 그나저나,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돈만 왕창 번들 무슨 보람과 재미와 기쁨이 있겠습니까. 《어제 뭐 먹었어?》를 보면 주인공이 동성애를 하건 말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건 머리방에서 일하건 남다르지 않습니다. 막일을 하건 교사로 일하건, 대통령으로 일하건 시장으로 일하건 다를 구석이 없어요. 저마다 내 꿈을 알맞게 키우며 내 삶을 알맞게 누릴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 “사장님은 손님들한테 자기 부인이랑 자식들 얘기 한다구. 왜 난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 입 닫고 살아야 하는데……?” ..  (57쪽)


 셋째, 《어제 뭐 먹었어?》는 수수하게 살아가는 재미와 멋을 수수하게 그립니다. 자랑이 아니요 떠벌임도 아니지만 감출 일이라거나 숨길 일 또한 아닌 삶입니다. 돈이 제법 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며 감출 일이 아닙니다. 돈이 하나도 없다 해서 숨길 일이 아니나 떠벌일 일 또한 아니에요. 그저 똑같이 사랑스러운 우리 삶입니다. 그예 한결같이 고운 내 삶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내 살붙이입니다. 우리가 아끼는 우리 벗님이자 이웃입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를 걱정하면서 옆지기가 아픈 몸으로도 늘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몸이 튼튼한 옆지기라면 몸이 튼튼해서 좋다는(몸이 여리다면 몸이 여려서 여린 대로 좋다는) 얘기를 오순도순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사랑이 가서 닿는 삶이고, 네 사랑이 와서 닿는 삶이에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이랍니다.


..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두렴. 어머니는 네가 게이나 범죄자여도 네 전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말야!” ‘……. 어머니한텐 내가 범죄자하고 동격이로군.’ ..  (156∼157쪽)
 

 넷째, 《어제 뭐 먹었어?》는 꾸밈없이 어우러지는 빛깔을 그립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꾸밈없이 어우러지면 됩니다. 꾸밀 때에는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꾸미니까요. 꾸미기에 숨겨지니까요. 꾸미기에 허울을 뒤집어쓰고 마니까요.

 이렇게 네 가지로 알차면서 재미난 작품 《어제 뭐 먹었어?》라고 느낍니다. 그림결은 깔끔하고 줄거리나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아요. 어느 구석이든 허술하지 않습니다. 참 잘 그린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널리 사랑할 만하고 두루 사랑받을 만합니다.

 다만, 저는 이 만화책은 1권 하나로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1권 하나를 보았어도 즐겁다고 여깁니다. (4343.10.24.해.ㅎㄲㅅㄱ)


― 어제 뭐 먹었어? (1∼3)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노미영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08∼2010/5000원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쌀을 씻는 마음


 갓 한 밥이 가장 맛있습니다. 그러나 손수 지은 밥이면 식은밥 또한 맛있습니다. 아이 엄마가 해 준 밥도 맛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딸아이가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밥도 맛있으리라 여깁니다. 딸아이가 맨 처음 손수 쌀을 씻고 밥물을 맞추어 냄비에 불을 붙여 끓인 다음 그릇에 소담스레 담아 차려 줄 밥이란 얼마나 맛있을까요. 밥술을 뜨기 앞서 눈물을 흘리며 웃으리라 생각합니다.

 도무지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를 마주하면서 걱정이 쌓이고 근심이 늡니다. 밥을 얼마나 잘 못하면 아이가 이토록 밥을 안 먹는가 싶어 끌탕입니다. 아이 아빠 입맛에만 맞추어 밥을 하는 탓인지, 아이 아빠 눈높이에서만 밥을 할 뿐이거나 다른 반찬을 제대로 못 차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저런 숱한 까닭이 모여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식구가 조그마한 논이라도 손수 모를 내고 심어 피를 뽑고 돌보면서 가을걷이를 한 다음, 낟알을 몸소 훑고 끼니때마다 애써 빻아 쌀알을 얻으면, 이 쌀알을 까부르고 씻어서 밥을 한다면 달라질까요. 아이가 이 모든 흐름을 제 몸뚱아리로 겪거나 치른다면 바뀔까요.

 새벽 서너 시 무렵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집식구 고이 잠든 녘에 비로소 글을 씁니다. 새벽 서너 시에서 두어 시간이 지난 예닐곱 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부엌으로 가서 조용히 쌀을 그릇에 내어 씻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씻은 다음 물을 받습니다. 아이가 깰 무렵까지 불립니다. 아이가 일찍 깨면 기다리고 늦게 깨면 느즈막이 일어나는 때에 맞추어 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밥냄비에 불을 넣으면 오늘 아침에 먹을 반찬을 마련합니다. 국을 하나 끓입니다. 부디 잘 먹어 주기를 바라면서, 모쪼록 아이 엄마도 무언가 몸으로 받아들여 새롭게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비손하면서, 나 또한 오늘 하루 더 힘차게 살아 보자 다짐하면서 부엌에서 칼질을 합니다.

 쌀을 조용히 다 씻고 불구멍에 얹습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다시금 비손을 합니다. 새근새근 잠든 가운데 잠꼬대를 하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가 신나게 잘 놀다가 잠든 이듬날에는 잠꼬대 소리에 웃음이 묻어 있습니다. 아이가 꾸지람 잔뜩 듣고 울먹이며 잠든 이듬날에는 잠꼬대 소리에 눈물이 어려 있습니다. 아이가 이듬날 첫머리부터 개운한 마음으로 깨어나 살아가는지 찌뿌둥한 마음으로 부시시 지내야 하는지는 오로지 어버이한테 달립니다. 아무리 아이가 말썽을 피우더라도 삭일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아이가 놀잇감이며 살림살이며 엉망진창 늘어놓고 안 치우더라도 부드러이 타이르며 함께 치울 줄 알아야 합니다. 아직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임을 헤아리면서, 어버이 스스로 내 살붙이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흐름을 마련해야 합니다. 내가 어버이라면 더 힘써야지요. 내가 아빠이거나 엄마라면 내가 선 자리에 걸맞는 튼튼하며 씩씩한 사람으로 살아내도록 마음을 쏟아야지요.

 마음을 쏟아 글 한 줄을 쓰고, 마음을 바쳐 책 한 권을 읽으며, 마음을 기울여 사람을 사귑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를 마주하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더없이 맑고 밝은 넋을 건사할 수 있게끔 참다이 마음을 들여야 합니다. 이론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삶으로 하는 말입니다. 새벽에 홀로 조용히 일어나 쌀을 씻든, 아이가 깨어나 개구진 짓도 하고 말썽도 피우고 어리광도 부리고 칭얼거리도 할 때이든 싱긋 웃으며 내 살붙이를 사랑하는 몸가짐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덧 동이 틉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동트는 새벽을 보고 까만 밤하늘 달과 별을 올려다볼 수 있으니 기쁩니다. 오늘 동트는 새벽 하늘에는 구름 몇 점 수묵그림 붓질처럼 슥슥 그려져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아이한테 ‘하늘’과 ‘구름’이라는 낱말을 일찍부터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하루하루입니다. (4343.10.2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을 읽는 마음


 하루하루 고단합니다. 괴롭다고까지 느낍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내어 새로운 하루하루 맞이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단할 줄 알았으면 이렇게 살아가려 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루하루 고단하기 때문에 괴로우면서 고맙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밤마다 새벽마다 몇 차례 깨어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도, 속으로 ‘힘들다, 힘들구나, 힘드네.’ 하고 노래하면서도, 참 이 고달픈 나날을 잇습니다. 왜냐하면 이토록 고단하여 지치는 나날을 보내며 늘 어머니가 떠오르거든요. 예전에는 머리로 뭉뚱그리는 어머니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몸으로, 아니 뼈로 사무치는 어머니 생각입니다.

 어머니하고 깊이 이야기를 주고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하고 두루 이야기를 나누어 본 일 또한 없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 아들하고 느긋하게 이야기꽃을 피워 보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예순 나이를 넘었고 어머니는 어느새 예순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예순을 맞이하여 예순잔치를 치러 주어야 하는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조차 까맣게 잊으며 아이랑 부대끼는 하루하루를 마감하던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어머니 나이 서른여섯’에 ‘어머니 나이 서른’에 ‘어머니 나이 스물다섯’에 어떤 마음 어떤 삶이었을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낳아 기른 어머니인, 나한테는 할머니인 분이 서른여섯이고 서른이고 스물다섯이었을 적에는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아마 1920년대였을까요. 아버지 쪽 할머니 얼굴은 알지만 어머니 쪽 할머니 얼굴은 모릅니다. 뵌 일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쪽 어머인 내 할머니 1920년대 무렵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무렵 할머니들이 넉넉한 살림이었든 가난한 살림이었든 어떻게 지내며 꽃답고 푸른 날을 보내셨을는지 궁금합니다.

 나한테 할머니인 분을 낳아 기른 어머니라면 1800년대 삶이겠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할머니들, 그러니까 그때로서는 여느 어머니요 여느 색시인 분들 삶을 헤아리며 내 오늘 삶을 돌아봅니다. 나로서는 힘들다 여기지만 참말 나는 내 삶이 힘들다 여길 만한지 알쏭달쏭합니다. 참으로 나는 내 삶을 힘들다고 생각할 만큼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슬픈지 깨달아야 합니다.

 엊저녁 책 하나 몇 줄이나마 읽으려다가 그만둡니다. 도무지 힘에 겨워 책을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사 놓고 못 읽으며 책상맡에 쌓아 둔 책들이 상자로 몇이나 됩니다. 흔히 ‘아기다리고기다리’라 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천야일야》(동서문화사) 1960년대 번역책을 드디어 지난 9월에 장만했습니다. 책꽂이를 꾸민다든지 나중에 비싼값에 되팔려는 속셈으로 산 책이 아닙니다. 저는 장사할 마음으로 옛책을 사 모으지 않습니다. 옛책이든 새책이든 읽으려고 살 뿐입니다. 《천야일야(千夜一夜)》 또한 요즈음 번역(1992년 범우사 판)으로 읽어 보았는데(고등학생 때), 1960년대에 갓 옮겨진 책에는 어떠한 말씨와 말느낌으로 되어 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파 애타게 찾았어요. 그러나 1960년대 ‘첫 완역’이라 할 《천야일야》인 탓에 한 질을 모두 갖추자면 꽤 큰 목돈을 들여야 합니다. 가난한 글쟁이 살림돈으로는 도무지 장만하기 힘들겠다고 느끼며 두 손을 들며 지냈는데, 뜻밖에 몹시 싸게 파는 헌책방이 있어, 이곳 일꾼이 부르던 2만 원에 2만 원을 더 얹어서 장만했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한 권에 2만 원씩 팔기도 하지만, 속싸개 종이까지 아주 정갈하게 남아 있을 때에 2만 원이고, 속싸개가 없고 첫판이 아니면 1만 원이나 밑으로 파니까, 나로서는 적어도 한 권에 5천 원씩은 쳐야 내 마음이 받아들여 주니 여덟 권을 이만 원에 가져갈 수는 없고 4만 원은 치러야겠습니다.’ 하는 말씀을 건네며 사들였어요. 그러나 이 고맙고 애틋한 《천야일야》는 아직 건드리지조차 못하고 쌓여 있습니다.

 그나마 어제부터 《초원의 집》 1권을 읽습니다. 올 2010년 3월 23일에 아홉 권 한 질을 마련했으면서 10월이 될 때까지 1권 한 쪽조차 못 넘기며 살았습니다. 다른 읽을거리가 많다는 소리는 핑계이고, 인천에서 꾸리던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려고 책을 싸느니 집을 알아보느니 뭐를 하느니 하는 소리 또한 핑계입니다. 바쁘고 힘들더라도 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바쁘고 힘들더라도 읽어야 할 아름다운 책은 읽어야 합니다. 바쁘고 힘들더라도 사랑스러운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아야 할 노릇입니다.

 모든 책은 밥입니다. 모든 글은 삶입니다. 모든 일은 눈물입니다. 모든 삶은 꽃입니다. 지난겨울에 고마운 벗님한테서 《도둑고양이 연구》라는 그림책 하나 선물로 받았습니다. 2008년에 나왔는데 벌써 판이 끊어진 이 그림책을 기쁘게 선물받은 저는 《PONG PONG》이라는 세 권짜리 만화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만화책 《PONG PONG》은 지지난주까지 열 질쯤 사서 선물했습니다. 나 스스로 읽으며 아주 좋았던 작품인데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터라, 언제나 아주 기꺼이 이 만화책 세 권 한 질을 한꺼번에 사서 선물하곤 합니다. 이 만화책을 내놓은 출판사가 판을 끊지 않는다면 저는 앞으로도 한 질을 통째로 장만하여 선물하는 일을 이을 테고, 앞으로 열 해쯤 이 만화책이 살아남는다면 아마 백 질쯤 더 사서 선물하는 책으로 제 가슴에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새 만화책은 다 비닐로 싸여 있어 속을 다시 들여다볼 수는 없는데, 만화책 《PONG PONG》을 새로 살 때면 늘 이 만화에 깃든 그림을 하나하나 되돌이킵니다. 어느 대목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무슨 이야기에는 어떤 삶이 깃들었으며, 어떤 삶에는 뭔 눈물이나 웃음이 서렸는지 생각합니다. 책값을 치르고 비닐봉지 한 장 얻어 살포시 담아 가슴에 살짝 안아 본 다음 고마운 분한테 “자, 선물이에요. 즐겁게 읽어 주셔요.” 하고 내어 드릴 때에는 내 가슴에 잠자고 있던 작달만한 씨앗 하나 한들한들 옮겨 간다고 느낍니다.

 글을 읽습니다. 날마다 아이랑 치르는 고단한 삶에서 어머니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고 곱씹는 글을 읽습니다. 책을 손에 쥘 기운마저 없어 그예 폭삭 자빠져 잠들어 버리는 밤나절 내가 이날까지 걸어온 길은 무언가 하고 되새기는 글을 읽습니다. 새벽에 아이 오줌 기저귀를 갈아 대야에 담가 놓고 이듬날 빨래할 생각을 하며 깨어나 글 몇 줄 끄적이면서 오늘 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이며, 살짝이나마 아빠 가난한 마음을 일깨울 좋은 글책에 담겨 있을 알맹이란 무엇인가 기다리는 글을 읽습니다. (4343.10.2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다 보면 끝이 없다. 아이가 놀아 달라는 대로 놀아 주어도 끝이 없다. 아, 아이들은 모두 이러한데 우리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물건 나르는 수레에 올라타 보더니 자꾸자꾸 태워 달라고 하던 딸아이. 너, 엄마랑 아빠가 늙어 쭈그렁이가 되면 이렇게 돌아다녀 주어야 해.

- 2010.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찻길이 두 갈래로 나 있으며 하루에 수백 차례 오가던 나날 이곳이 이렇게 텃밭으로 바뀔 줄 알리라 생각하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덧 하루에 한 대만 지나가는 기찻길로 바뀐 요즈음, 이 자리에 공무원들이 해마다 '자갈 세례' 를 퍼부어 봄이 되면 아름다운 텃밭이 그예 자갈밭이 되더라도 동네사람은 다시금 텃밭을 일구는 슬프면서 어여쁜 모습을 늘 되새기는 가운데 사진 한 장을 담았다. 이 사진을 예술가랑 공무원은 썩 좋아하지 않더라. 사진학과 교수나 사진 전문가도 안 좋아하더군.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내 살붙이랑 내 동무들이랑, 누구보다 이 동네 이웃들이 좋아해 주면 나로서는 참 기쁘다.

- 2010.9.3. 인천 남구 숭의1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