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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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양이를 사랑하며 만화를 그리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3] 이와오카 히사에, 《고양이 동네》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가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 또한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가. 그저 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는가.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고 있으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을까.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며 만화로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권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우산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피며 그림이나 만화로 담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고양이 동네》를 펼칩니다. 1994년부터 즐겨찾는 만화가게 한켠에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잔뜩 쌓여 있는데, 이 가운데 이 녀석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왜 이다지도 고양이 만화가 쏟아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달지라도 이렇게 지나치게 고양이 만화에만 쏠리는 모습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고양이 만화이기에 으레 몇 권쯤 더 이어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 《고양이 동네》는 꼭 1권으로 끝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낱권책 하나 부피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2권이 없으니 아쉽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2권이 없기에 오래도록 더 뭉클함이 남을 수 있구나.’ 하고 함께 느낍니다. 애써 새 줄거리를 짜 넣어 2권까지 그리지 않더라도 1권 하나로 얼마든지 그린이가 하고픈 얘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새로운 줄거리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늘어질 수 있어요.


-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 (60쪽)


 두 달쯤 앞서 《고양이 동네》를 읽었습니다. 다 읽은 다음 책상맡에 그대로 두었더니 엊그제 옆지기가 읽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만화책이 보여 다시 꺼내어 주루룩 넘깁니다. 주루룩 넘기다가 내키는 자리에 멈추어 이 자리부터 천천히 새롭게 읽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좋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한 번 다 읽은 책은 두 번째 다시 읽을 때부터 마음껏 마음 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 (23쪽)


 앞에서 차근차근 읽던 맨 처음에는 이 만화 《고양이 동네》가 그예 고양이 만화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부터 앞으로 되넘기며 읽다 보니, 책이름만 “고양이 동네”일 뿐, 어쩌면 그린이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엄마 동네”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 삶과 모습과 말이 나오지만, 가장 자주 가장 속깊이 나오는 말은 바로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한테서 나옵니다.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식구와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만화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동네를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에 머물며 동네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 또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자들은 집에 머물며 애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함께 동네를 들여다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동네를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여자한테 주어집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장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동네를 함께 바라봅니다.

 
-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작품을 보면 늘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내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사랑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믿음일 수 있을 테지요.

 만화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잘 담아 주어 좋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좋습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 주어 좋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7.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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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1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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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만화를 만나고 싶어
 [만화책 즐겨읽기 2]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1∼5)》


 일본 만화는 일본사람 삶과 문화를 담습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한국 만화는 한국사람 삶과 문화를 담을 테지요. 그러면 일본 만화가 담는 일본사람 삶과 문화란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 만화가 담는 한국사람 삶과 문화는 또 어떠한 모습인가요.

 한국 만화를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잦습니다. 만화를 그린 분이 답답해서라기보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살아가야 하는 터전이 더없이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제도권 울타리에 갇힌 학교요,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할 때에도 제도권 테두리에 막힌 사회입니다. 하나도 홀가분하지 않은 한국 배움터이고 삶터입니다. 조금도 너그럽지 않은 한국 배움마당이요 삶마당입니다. 이런 가운데 나오는 한국 만화란 홀가분함이나 슬기로움이나 생각날개하고는 동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삶터부터 홀가분하지 못하도록 얽어매고 슬기로움을 뽐내지 못하도록 짓누르며 생각날개를 활짝 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스스럼없이 즐거울 삶일 때라야 스스럼없이 내 하루를 즐기는 만화를 그립니다. 거리낌없이 나누는 삶일 때라야 거리낌없이 사랑을 나누는 만화를 그립니다. 좋은 만화 하나라 한다면 그린이부터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일굴 때에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만화 하나라 한다면 만화쟁이부터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넋으로 아낄 때에 샘솟습니다.

 한국땅에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숫자를 헤아린다면, 돈벌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살피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내 삶을 곱게 일구어 곱게 그리는 고운 만화 하나 내놓을 수 있습니다. 만화잡지에서 안 실어 주든, 만화책 전문 출판사에서 안 내어 주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화쟁이 스스로 즐겁게 그리며 두고두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만화를 실어 주는 자리가 없다면 밥벌이가 안 될 테고, 만화를 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야기 한 자락을 오래오래 잇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고, 좋은 읽는이 한 사람 있어야 만화를 그리는 기운을 얻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모두를 바랄 수 없어요. 다섯 해 배를 곯든 열 해 쪼들리며 살아가든 나부터 좋아하며 즐기는 만화를 사랑하여 그리는 흐름을 지키면 됩니다. 가난하다고 그림을 더 잘 그리지는 않고, 살림이 가멸다고 만화를 한결 부드러이 그리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그림 한 장 만화 한 칸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 그림이나 만화를 들여다보는 사람하고 마음을 맞춥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다스리는 일을 먼저 할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맑으며 밝게 다독이는 일을 노상 이어야 할 노릇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똑같습니다. 애써 쓴 글을 실어 줄 자리가 있다면 참 좋겠지요. 힘써 찍은 사진을 보여줄 자리가 있다면 아주 기쁘겠지요. 그런데 제아무리 잘 쓴 훌륭한 글이라 할지라도 선뜻 실어 주거나 책으로 엮어 주는 일은 드뭅니다. 그지없이 잘 찍은 거룩한 사진이라 하더라도 냉큼 사진잔치를 마련해 주거나 책으로 묶어 주는 일은 거의 없어요.

 굳이 배곯이 길을 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러 밥굶는 길을 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배를 곯아도 좋고, 다른 밥벌이 일을 해도 좋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든 맨 먼저 할 일이란 글을 하든 사진을 하든 만화를 하든, ‘쟁이 한 사람’이 되어 살아갈 마음바탕을 닦고 삶바탕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요. 이 다음에 ‘작품’입니다.

 일본 만화 《서점 숲의 아카리》를 읽습니다. 4권째 나오고서야 비로소 이 만화가 우리 말로 옮겨지는 줄 깨닫습니다. 이제 한창 자라나는 아이와 복닥이는 삶을 꾸리자니 만화가게 마실이 퍽 버겁니다. 여느 책방 마실 또한 꽤 힘듭니다. 오래도록 제때 찾아가지 못합니다. 제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만화책이 4권까지 나올 무렵에야 겨우 한 번 찾아가는군요.

 책을 펼칩니다. 제가 썩 안 좋아하는 그림결입니다. 그러나 내가 안 좋아하든 좋아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그림결이 다르고, 저마다 좋아하는 그림결이 다르니까요. 군데군데 좀 어설픈 그림결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책을 말하는’ 만화라는 대목이 반갑고, ‘책방을 다루는’ 만화라는 대목이 더욱 고맙습니다. “아카리 씨도 본점으로 온 지 반년이 됐군요. 슬슬 주문 같은 것도 해 보는 게 어때요? 주의할 점은, 본인이 좋아하는 책과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은 다르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책이 팔리면 물론 기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경우는 드물어요(1권 123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쩌면, 《서점 숲의 아카리》에서 다루는 ‘책’들은 만화쟁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일 수 있지만, 썩 안 좋아하는 책일 수 있으며, 잘 모르는 책일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서점 숲의 아카리》 같은 만화를 보면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 책마을 모습을 톺아볼 수 있다고 느끼지만, 다른 분들은 그냥저냥 재미로 읽는다거나 심심풀이로 보는 만화일 수 있어요.

 2권으로 접어듭니다. 2권에서는 낱권 하나 통째로 ‘작은 책방’ 이야기를 다룹니다. 만화책 주인공은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 일꾼이라 여길 만한데, 이 ‘큰 책방’ 일꾼이 동네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동네사람하고 어깨동무해 오던 ‘작은 책방’을 사귀면서 책이라는 읽을거리란 어떠한가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1947년에 상가로 출발했으니 올해로 꼭 60년이 되나? 이 서점은 상가의 일부입니다. 대형서점은 전국의 고객을 대상으로 코너를 꾸미지요. 하지만 우리는, 반경 500m 안에서 걸어서 찾아와 주는 고객을 소중히 여기며 서점을 꾸려 왔어요(2권 18쪽).” 같은 이야기를 작은 책방 할배한테서 들으며 ‘책방에서 일하는 매무새’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옷깃을 여민다고 할까요.

 책을 살짝 덮고 우리네 오늘 모습을 헤아립니다. 우리네 오늘 모습을 헤아려 보면, 큰 책방 일꾼이나 사장님은 작은 책방 일꾼이나 사장님을 살피지 않습니다. 작은 책방이 작은 동네에서 작은 크기로 오래도록 책삶을 이어오는 흐름을 살피지 않습니다. 작은 책방이 동네방네 한두 군데씩은 꼭 있던 지난날 책삶을 살피지 않습니다. 큰 책방은 큰 책방답게 더 많은 매출과 더 많은 이익을 살핍니다. 큰 책방은 온나라 곳곳에 새끼가게를 열 생각에 빠져 있지, 온나라 곳곳에 깃든 자그마한 책방들이 온나라 곳곳에서 그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노릇을 했으며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3권째에 이르니 어린이책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래, 어린이책을 다루어야 비로소 책을 다루는 이야기가 될 테지. 어린이책을 옳게 말하지 못한다면 책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못하는 셈이지. 그린이 이소야 유키 님은 책방 일꾼들 목소리를 빌어, “오야마 씨, 그림책은 다른 매장과 다르게 오래된 것일수록 잘 팔리잖아요. 소설은 하드커버가 나오고 문고판이 나오고 장정이 바뀌는 등,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지만, 그림책은 옛날 그대로예요(3권 35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이책 가운데 그림책은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는 ‘어린 애들이나 읽는’ 책쯤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그러나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덴마크이든 이탈리아이든 중국이든, 어린이책 가운데 그림책만큼은 겉그림이나 알맹이나 짜임새 어느 하나 건드리지 않습니다. 처음 내놓은 그대로 아이들 앞에 선보입니다. 겉그림이든 속그림이든 매만지지 않습니다. 속종이는 새로 꾸며 볼 수 있겠지요. 겉그림 한켠에 무슨무슨 말을 붙이거나 겉그림 뒤쪽에 무슨무슨 추천글을 더 적어 넣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림책처럼 ‘첫 모습 그대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고스란히 똑같이 만들어’ 나누는 책이란 없습니다.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는 책과 책방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마, 책이랑 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라면 지겹다거나 따분하다고 느낄 사람이 적잖이 있으리라 봅니다. 책을 좀 읽었다는 분들은 ‘뭐야, 뻔히 다 아는 얘기이잖아.’ 하며 흔하거나 너절한 책으로 여길 수 있겠지요.

 틀림없이 책과 책방을 다루는 《서점 숲의 아카리》인데, 무대와 줄거리가 책이랑 책방이지, 책 하나로 얽히고 설키는 사람 이야기가 한복판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믿음과 사랑이 이 만화에서 한가운데를 차지합니다. 책이란 무엇이고 책방이란 어떤 곳인가를 밝히는 학술책이 아니라, 책 하나를 아끼는 사람 삶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책사랑과 책방사랑을 외치는 광고지가 아니라, 책을 품에 안은 책방이 어떻게 따스하며 넉넉한가를 느낀 그대로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앞으로 몇 권까지 나올는지 궁금합니다. 짧게 끝맺는다면 참 아쉬울 텐데, 적어도 10권쯤은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린이 힘이 닿는다면 20권이나 30권쯤은 그린 다음 마무리를 지으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한국땅에서 한국 삶터를 돌아보며 한국책을 살피는 마음결로 한국사람 사랑과 믿음을 고이 담는 한국 만화 한 가지 태어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1∼5)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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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9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0-10-09 11:32   좋아요 0 | URL
다음에 만화가게에 들르면 <너에게 닿기를>을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 ^^
 

 

 아이와 글쓰기


 아이랑 함께 돌아다니자면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거나 생각에 젖는다거나 수첩에 무언가 적바림할 겨를을 낼 수 없다. 아이를 노상 바라보며 손을 잡아야 하니까. 나는 오늘 모처럼 홀로 홀가분하게 골목마실을 다닐 수 있다. 틀림없이 퍽 먼길을 오래도록 신나게 걸어다닐 수 있겠지. 오늘은 이대로 하루를 즐기자. 저녁에는 일산으로 가서 아이랑 옆지기랑 장모님이며 식구들이랑 오붓하게 지내자.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가운데 씻기고 입히며 치우던 손을 사진찍고 글쓰고 책읽는 데에 쓰자. (4343.10.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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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사계절 1318 문고 3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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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문학이 있는 삶자리
 : 박상률,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책이름 :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글쓴이 : 박상률
- 펴낸곳 : 사계절 (2006.4.15.)
- 책값 : 8500원



 (1) 배추값


 한 해 두 해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아니, 굳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누리에서 시끌벅쩍 떠드는 이야기가 늘어납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느는 한편, 이웃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늘어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는 동안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거나 인터넷을 뒤적일 일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돌아볼 겨를이란 없고, 산골자락 바깥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굳이 눈길을 둘 틈을 마련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옆지기 식구들 살아가는 일산집에 모처럼 마실을 가서 함께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 텔레비전은 스물네 시간 내내 쉴 겨를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베풉니다. 그야말로 스물네 시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합니다. 옆에 앉은 사람하고 말을 섞을 일이 없고, 밥술을 뜨면서 이 밥술에 얹힌 밥이나 반찬을 마련하고자 어머님이 얼마나 애쓰고 품을 들였는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저 화면에 눈이 꽂힐 뿐입니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개혁이든 수구이든 무어이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갖가지 지식과 정보가 넘실넘실합니다.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재미나게 이야기하자면 연속극이나 영화나 운동경기 이야기를 들어 빗댈 노릇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이 ‘배추값이 비싸면 양배추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대목을 꼬투리 잡으며 겨우 ‘푸성귀 값이 올랐음’을 들먹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농사짓는 사람한테는 ‘껑충 오른 푸성귀 값에 걸맞게 땅을 부치며 땀을 흘린 보람을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푸성귀 값이 쌌을 때이든 비쌀 때이든 농사꾼 살림살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값이 쌀 때에는 싼 대로 등허리가 휘고, 값이 오를 때에는 오르는 대로 힘겹습니다. 왜냐하면 푸성귀 값이 오를 때에는 어디에서나 농사가 엉망이 되었을 때이니 값이 제아무리 올랐다 한들 얼마나 내다 팔 수 있겠습니까. 값이 쌀 때이든 비쌀 때이든 노상 ‘샛장수’ 노릇을 하는 농협이나 할인매장에서만 돈을 법니다.

 배추값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배추 한 포기에 5000원은 조금도 비싸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배추씨를 심어 길러 보면 배추 한 포기 값으로 얼마를 쳐야 하는가를 어렵잖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가 소담스레 자라기까지 며칠이 걸리고, 이동안 얼마만 한 땅에 배추를 심으며 물과 거름은 어떻게 주고 벌레는 언제 잡으며 김은 어느 만큼 매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심은 배추씨가 모두 싹이 트는지를 헤아려야 하고, 농사짓는 동안 들인 품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애호박 하나에 1800원도 하고 2500원도 하며 3000원도 합니다. 얼마 앞서까지는 애호박 셋에 1000원도 했습니다. 참 오르락내리락입니다. 그런데 2000년에는 애호박 값이 얼마였나요. 1990년과 1980년에는 또 애호박 값이 얼마였지요. 배추는 2000년에 얼마였고 1990년과 1980년에 얼마였을까요. 1980년과 1990년과 2000년에 버스삯은 얼마에서 얼마로 올랐고, 여느 일터 일꾼 일삯은 이동안 어느 만큼 올랐는지요. 기름값은 얼마에서 얼마가 되었고, 자동차 한 대 값은 얼마에서 얼마나 되었습니까. 전세집이든 달삯집이든 얼마를 치러야 네 식구 살림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요. 지난 스무 해에 걸쳐 쌀값은 어떠한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파 한 묶음 값, 무 한 뿌리 값, 양파 한 알 값이란 지난 스무 해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 너는 난리통에 변을 당했다. 난리통, 난리통이었다. 8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거대한 도시가 열흘 간이나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고, 전쟁도 아닌데 군인들이 완전무장한 장갑차를 앞세워 사람들을 총으로 쏘고 칼로 쑤시고 곤봉으로 내리쳤다면 분명 난리통은 난리통이었다 … 그것도 햇살 좋고 바람 좋고 하늘 빛깔까지 고운 5월에 ..  (52∼53쪽)


 초등학교를 다니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건, 오늘날 한국땅에서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농사일을 어느 만큼 거든다거나 헤아리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 어버이가 농사를 짓더라도 농사일에 눈길이나 마음길을 쏟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몹시 드뭅니다. 농사일을 못 거든다 하여도 농사를 해서 얻는 곡식과 푸성귀 값이 얼마쯤 하는가를 살피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교과서와 제도권교육과 인터넷과 방송과 대학입시 들로 쏟아부으니까요. 아이들 스스로 제 넋을 차릴 수 없게끔 머리속을 갖가지 지식과 정보로 꽉꽉 채워 넣으니까요. 숱한 지식과 정보에 가로막혀 내 삶과 내 이웃 삶과 내 동무 삶을 돌아볼 줄 모르니까요.

 수학능력시험 문제로 안 나오는 과목은 아예 안 배워도 괜찮다고 여기도록 이끄는 교육 행정입니다. 정치권력은 정치권력대로 아이들을 더 바보가 되도록 닦달하고, 머리통만 굵은 멍청이가 되도록 내몹니다. 스스로 진보라 밝히든 보수라 밝히든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아가도록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밥하기 한 번 시키는 어버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 스스로 마땅히 개도록 가르치거나 몸소 보여주는 어버이란 만나기 어려우며, 아이들이 먹는 온갖 먹을거리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고 손질하여 밥상에 오르는지를 들려주는 어버이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배추 한 포기는 값이 얼마여야 알맞을까?’를 생각하도록 이끌지 못하면서, 아이들 또한 바보스러운 어른과 마찬가지로 ‘배추값이 너무 비싸!’ 하고 생각하도록 내몰고 맙니다.


 (2) 사람값


 볼일을 보러 읍내로 자전거나 시골버스를 타고 찾아가 보면, 읍내 중고등학교 아이들 치마가 참 짧습니다. 인천에 살던 때에는 인천 아이들 치마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도록 하며 그리 짧지 않고, 서울 아이들은 살짝 나폴거리며 짧았는데 시골 아이들 치마는 서울 아이들보다 훨씬 짧습니다. 인천이나 서울이나 시골 사내아이 바지나 웃도리는 제 눈으로는 퍽 우스꽝스럽습니다. 키 훤칠하고 얼굴 갸름하며 뚱뚱한 몸집 거의 없이 좀 마르다 싶은 아이들한테 걸맞을 옷을 제대로 입은 아이들을 만나기 참 힘듭니다.

 똑같이 맞춰서 입히는 학교옷이기에 다 다른 아이들 몸에 알맞도록 입히는 옷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제 몸이 어떠한가를 옳게 헤아리지 못하며, 제 몸에 알맞을 옷을 옳게 가누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은 푸름이들이 얼굴차림하고 옷차림에 눈길을 많이 둘밖에 없는데에도 이렇습니다. 학교옷이란 하나같이 칙칙한 빛깔에 우중충한 느낌이요, 한껏 푸르게 피어날 넋을 고우며 맑게 어루만지지 못합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이와 같기 때문일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생각하고 힘껏 뛰놀며 재주껏 꿈을 키우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이들을 ‘제복과 머리길이 굴레’에 가두어 놓고는 이 굴레에서 부처님 손바닥 손오공처럼만 바둥거리도록 붙잡기 때문인지요.


.. 가서 보니 학생이 가르쳐 준 곳은 대학 본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에게 야간대학, 아니 이부대학 건물을 물었다. 젊은이는 월산댁을 한 번 훑어보더니 이부대학이 어디 있는지 일러 주었다. 월산댁은 젊은이가 훑어보는 게 마땅찮았지만 내색을 하진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옷은 매끄롬하게 차려입었음시롱, 젊은것이 버르장머리는 디럽게 없네잉. 뭐 잠 물어 보면 보드랍게 갈쳐 주면 안 되는 것이여?’ ..  (83쪽)


 중학교는 왜 중학교이고 고등학교는 왜 고등학교인지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갈라 놓는 까닭을 알 길이 없습니다. 교과서를 엮으며 학교에 몸담으며 교과서를 가르치는 어른은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과 사귀거나 어울리는지 궁금합니다. 바깥에는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는데,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시멘트 교실에 왜 아이들을 잔뜩 몰아넣고는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대놓고 책상에 엎어져 자도록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볕 좋은 날 골목마실을 하면서 언제나 느낍니다. 이 좋은 볕을 듬뿍 받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우는 동네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볕이 좋든 말든 동네 푸름이들은 후미진 골목을 찾아 담배 피우기에 바쁩니다. 아이들로서는 후미진 골목일 테지만,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골목 할매와 할배가 어여삐 꽃그릇 마련하거나 텃밭을 일구며 푸른빛이 살아숨쉬도록 마련한 쉼터입니다. 아이들은 꽃을 보면서 꽃이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예쁘다거나 남다르게 생겼다거나 이름이 궁금하다거나 느끼지 않습니다. 꽃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꽃이 몇 송이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깨닫지 않습니다.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 태우는 푸름이들 얘기를 했습니다만, 푸름이들만 이와 같지 않습니다. 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틀림없이 어른들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따릅니다. 어김없이 어른들 몸짓 그대로 푸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은 한길에서 담배 뻑뻑 피우며 걷다가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립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담배 빡빡 피우며 구시렁거리다가 할매 할배가 아리땁게 가꾼 꽃그릇이나 텃밭에 아무렇지 않게 꽁초를 버립니다.

 아이들 서넛쯤일 때에는 골목마실을 하는 저를 슬금슬금 곁눈질을 하며 다른 데로 내뺍니다. 대여섯쯤이거나 예닐곱을 넘으면 버젓이 드러내고 담배공장을 차립니다. 끼리끼리 놀 뿐 아니라 힘여린 이를 무리지어 괴롭히는 어른들 슬픈 얼굴을 아이들 몸가짐에서 낱낱이 느낍니다. 이 아이들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머리길이를 짧게 다그치고 물을 못 들이도록 하며 수염은 하얗게 밀도록 닦달하면서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담배를 못 피우게 꽁꽁 옥죄어 놓는들, 기껏 열여덟이나 열아홉까지입니다. 열아홉이 되고 스물이 되면 그야말로 깽판이며 막놀이판입니다. ‘공부 좀 했다’는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고, ‘공부를 조금 더 했다’는 아이들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간다는데, 대학생들 술담배 사랑놀이 하며 노는 짓과 이름있다는 대학교 앞 술집거리 엉망진창 꼬락서니를 보면 이 나라 제도권 교육이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해대는지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을 사람답게 가르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사람다운 길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아이들한테 사람답고 아름다운 삶을 깨닫도록 안 하는 안타까운 곳을 가리켜 배움터라 할 수는 없다고 늘 느낍니다.


 (3) 아이들한테 역사를 보여주는 문학


 어린이문학을 하는 박상률 님이 쓴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을 읽습니다. 어른문학에서는 곧잘 다루지만 어린이문학에서는 좀처럼 못 다루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낸 책입니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1980년 5월 광주를 들려주는데, 피가 튀거나 곤봉이 춤추는 이야기는 하나도 깃들지 않으나 눈에 그리듯 이와 같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제법 읽거나 아는 어른으로서 ‘눈에 그리듯 떠올릴’ 뿐입니다.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모르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아로새길 수 있을는지요. 책을 덮으며 《달맞이 언덕에 뜨는 달》(정해천 씀,일과놀이 펴냄,1994)이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아직 《달맞이 언덕에 뜨는 달》처럼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풀어낸 고운 책을 찾기란 어렵지만, 1980년 5월 광주뿐 아니라 숱한 다른 이 나라 삶자락 이야기를 이 책만큼 알뜰히 다룬 책 또한 찾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또한 옳게 풀어내지 못하며, 1970년 11월 청계천 이야기도 참다이 풀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2002년 미선이와 효순이 이야기를 살뜰히 풀어내지 못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나라밖에서 나라밖 역사를 알뜰살뜰 풀어낸 이야기책은 신나게 옮기기는 하는데, 나라안에서 나라안 역사를 한 올 두 올 다잡거나 다스리는 이야기책은 열 해에 한 권조차 못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 “근데 대통령은 할아버지가 다 되어 가지고도 배우고 가수고 맘에 드는 여자 있으면 불러다가 같이 술 마시고 데리고 놀아도 되는 거야? 우리 같은 젊은 청춘들은 여학생하고 어울려 극장에도 못 가게 하면서?” “히! 그런다고 네가 여학생하고 극장 안 갔냐? 몰래 할 건 다 했으면서 뭘 그래.” ..  (97쪽)


 어린이하고든 푸름이하고든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비롯해 이 나라 여느 자리 여느 삶터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기란 퍽 어렵습니다. 고속철도 여승무원 이야기라든지 천성산과 낙동강 지율 스님 이야기를 오늘날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얼마나 오붓이 나눌 수 있는가요. 골목동네를 허물며 아파트만 올려대면서 ‘가난하다지만 가난하다 여기지 않고 알뜰살뜰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오늘날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얼마나 살가이 주고받을 수 있는지요.

 다시금 생각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랑 푸름이하고만 못 나눌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여느 어른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교장선생님들은, 구청장님들은, 시의원님들은, 산부인과 의사님이나 국정 변호사님들은 …… 우리 둘레 낮은 자리 낮은 사람들 삶을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서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마주하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기자님들은, 작가님들은, 학자님들은, 교수님들은, 시민단체 활동가님들은 …… 얼마나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들하고 손을 맞잡으며 울고 웃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하나만을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터전이 한결 아름다울 때라야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또한 한결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한국땅 사람들 삶이 한껏 아름다이 거듭날 때라야 1980년 5월 광주를 비롯하여 이 땅 아픔과 생채기와 눈물과 얼룩을 살포시 담아낼 빛나는 문학이 태어납니다.

 문학은 대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을 뿐더러 어떤 글쟁이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문학은 바로 우리 삶터에서 여느 어버이들이 여느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으며,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아이가 여느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4343.10.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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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사랑의 꿈’


 지난 사흘에 걸쳐 바깥마실을 했다. 애 아빠는 서울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인천에 가서 다섯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며 다리가 퉁퉁 부은 채 곧바로 일산으로 넘어가 옆지기 살붙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일산 비닐집에서 이틀을 묵고 오늘 아침 열 시 반에 길을 나서 낮 네 시 무렵에 겨우 충주 산골마을 집으로 돌아온다. 이래저래 여섯 시간이 걸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고속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삼십 분이 넘도록 안 오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시간표를 잘못 보았다. 충주 시내 쪽 버스 시간을 봤어야 했는데 음성 읍내 쪽 버스 시간을 보고 말았다. 그예 길에서 삼십 분 동안 아이를 안고 있던 셈.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 타고 삯 만 원을 치러 산골집으로 들어오다. 팔과 다리 힘이 다 풀려 후들후들 떨며 아이를 방바닥에 드러눕히는데, 방바닥에 드러눕히니 비로소 깨어난다. 조금 더 자 주면 안 되련? 참 힘들어 죽겠구나. 아이는 고단하면서 또 일어나서 놀려 하고, 애 아빠는 그만 뻗어 버리고 만다. 뻗어 버렸으나 아이가 어리광에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히유. 잠들지 못하는 잠결에 아이가 배고파 하는구나 싶어 어기적 일어나 생협에서 사 온 우리밀라면 한 봉을 끓인다. 옆지기는 국물을 먹겠다고 하니, 감자 두 알과 애호박 조금과 무 조금에다가 버섯 세 송이하고 곤약 몇 조각을 썰어 넣는다. 버섯은 맨 나중에 넣는다. 새우젓과 액상물로 간을 맞추고 라면양념은 1/4을 넣는다. 생협 라면이더라도 양념은 살짝만 넣고 싶다. 건더기가 훨씬 많은 라면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한 다음 이듬날 먹을 쌀과 콩을 씻어 불려놓는다. 아이는 아무래도 잠들 듯하지 않아 애 아빠는 더 버티며 일손이라도 붙잡으려 한다. 인천마실을 하며 찍은 골목 사진 364장을 셈틀로 옮기며 raw파일을 jpeg파일로 바꾼다. 364장 모두 안 흔들리며 빛이 제대로 맞았다면 그지없이 좋았을 테지만, 몸은 몸대로 힘들고 날씨는 날씨대로 궂은 탓에 입맛을 다시는 사진이 자꾸 보인다. 가로로 한 번 찍고 세로로 다시 찍은 사진은 겨우 한 장을 살릴 수 있다. 몇 달 사이에 텅 비고 만 도화2동 142번지 안쪽 골목 사진 가운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 담벼락에 돌로 시멘트를 벗겨 글자를 남긴 “사랑의 꿈” 사진이 살짝 흔들렸다. 맞은편 벽에 몸을 기대어 찍었는데 흔들리다니. 이 사진을 찍을 때에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흔들리니 슬프다. 다시 가서 찍어야 하잖은가. 그러나 내 사진은 딱 한 번 찾아가서 찍는 사진이 아니다. 다만, 이 골목집들이 다음번에 찾아갈 때에 허물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모르겠다. 누가 “사랑의 집”이라는 글월을 새겼을는지 모를 노릇인데, 텅텅 비고 마는 동네에 해 놓는 낙서란 으레 짓궂거나 얄궂기 마련인데, 이 글월이라면 이 골목에서 살던 사람이 그예 다른 집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발자국이 아닐까 싶다. 작고 좁다 하는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살았던 사람은 으레 느낄 테지만, 퍽 많은 식구가 올망졸망 복닥이는 집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틀림없이 “사랑어린 집”이요 “사랑스런 집”이며 “사랑하는 집”이다. (4343.10.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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