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책읽기 2


 송명규 님이 쓴 산문책 《후투티를 기다리며》(따님,2010)를 읽다가 126쪽에서 멈춘다. “가방을 팽개치고 허겁지겁 차 속에서 쌍안경을 꺼내들었다. 렌즈 한켠에 달걀처럼 생긴 검은 물체가 아른가렸다. 떨리는 두 손을 진정시키며 가까스로 초점을 맞췄다. ……. 부엉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지에 걸린 채 햇빛을 반사하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까만 비닐봉지였다. 나는 무엇에 얻어맞은 듯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사는 시대를 착각했다. 나는 현대인이다. 그리고 현대는 미루나무에 부엉이 대신 비닐봉지가 앉아 있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다.”라는 대목을 두 번 세 번 네 번 거듭 되읽는다. 고개를 그리 끄덕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 이 땅 모습이다. 틀림없이 우리 삶자락 이야기이다.

 오늘 이대 앞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코를 찌르고 살을 후벼파는 냄새가 잔뜩 나서 도무지 숨을 쉴 수 없다. 바깥은 그지없이 하늘 파랗고 구름 하얀데,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니 온통 불빛이요, 눈이 어두워지고 만다. 새삼스레 이 도시 서울을 생각한다. 우리는 왜 땅밑으로 내려가야 하는가. 왜 이 땅밑 기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가. 우리한테 얼마나 넓은 땅이 있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앞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넓게 나다니며 사람을 사귀거나 다른 마을 구경을 해야 하는가.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와 삶터를 조촐히 사랑하며 아낄 수는 없는가. 지하철을 타며 책을 읽으면 ‘시간 살리기’라 여겨 왔는데, 굳이 지하철까지 타야 하거나 책까지 챙겨 읽어야 하느냐 싶다.

 맑은 햇살을 받아들이며 빨래를 해서 널고, 이 햇살을 아이와 옆지기랑 느끼며 산길을 천천히 오르내릴 때에 한결 기쁘며 뿌듯하겠구나. 얼굴과 손발이 푸석해지고 목이 마르다. 오늘이 한글날이라고 한다. (4343.10.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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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레와 글쓰기

 걸레를 손으로 빨아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훔치면, 내가 얼마만 한 방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좋을까를 알 수 있다. 연필을 손으로 깎아 조그마한 쪽종이 하나, 이를테면 껌종이라든지 부동산에서 골목마다 붙이는 전세방 알림종이를 길에서 주워 여기에 몇 줄 글월을 적바림해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글을 써서 나누어야 좋을까를 헤아릴 수 있다. 내가 땀흘려 일하여 번 돈을, 그러니까 텃밭농사를 지어 배추 몇 포기나 무 몇 뿌리를 저잣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를 얻어 길장사를 해서 번 돈을 손에 쥐고 다리품을 팔아 책방마실을 하는 가운데 책 하나를 장만해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 내 삶을 일구어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을 수 있다. (4343.10.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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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걷는 골목


 내 눈에만 어여삐 보일 수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언제나 어여쁘기 때문에 동네 골목 마실을 꾸준하게 오래오래 이어가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다른 사람은 지저분하게 바라보거나 아무것 아니라고 얕잡아 보더라도 내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골목길 삶자락은 가없이 아름다우니까 내가 느낀 이 아름다움을 글과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한다.

 내 마음에만 알차게 보일 수 있으나, 내가 읽기에는 노상 알차기 때문에 판이 끊어진 책이건 나라밖 책이건 거의 안 알려진 채 조용히 묻힌 책이건 기쁘게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쓴다. 다른 사람은 뭐 그런 책을 굳이 읽느냐고 묻는다. 잘 팔리거나 널리 사랑받는 책도 많은데 애써 뻘밭에 묻힌 책을 캐려 할 까닭이 있느냐고 말한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는 책도 좋아할 만하지만, 누구보다 내 가슴에 아로새길 수 있으면서 내 눈과 마음과 손으로 고이 껴안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싶다. (4343.10.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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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9 : 내 삶만큼 읽는 책


 어린이책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던 지난날, 제가 몸담은 일터가 아주 휼륭한 책을 몹시 훌륭한 매무새로 일군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무렵 해마다 장만하여 읽는 책이 천 권이 넘고, 따로 장만하지 않으며 읽는 책 또한 꽤 많았습니다만, 한 해 동안 읽는 책이 제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알 수 있는 책은 온누리에 쏟아져나온 책 숫자에 대면 매우 보잘것없습니다.

 2000년 6월 10일 낮, 서울 홍대 앞에 자리한 헌책방 〈온고당〉에서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平凡社,1974)라는 사진책 하나를 만납니다. 일본 사진쟁이 ‘竹田津 實’ 님이 내놓은 책으로, 이분 책은 이맘때까지 아직 나라안에 한 권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 비로소 이분이 글을 쓴 그림책 하나가 옮겨지고, 2007년부터 이분 사진책이 하나둘 옮겨집니다. 바로 ‘다케타쓰 미노루’ 님입니다. 제가 일하던 출판사 자료실에도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라는 사진책 하나 꽂혀 있었습니다. 이곳은 자연 그림책을 많이 냈는데, ‘한국에는 없는 여우’를 그리자니 어쩔 수 없이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일본 들짐승 여우를 담은 사진책을 들여다볼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한국땅에 없는 들짐승은 여우만이 아닙니다. 늑대도 없고 범도 없습니다. 곰도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러한 들짐승들 자취와 모습과 삶을 그림책으로 그려내자면 동물원에 가거나 일본사람이 찍은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새책방과 헌책방을 꾸준히 돌아다니며 나라 안팎 온갖 책을 바지런히 살피면서 하나둘 깨닫습니다. 나라안 적잖은 창작그림책에 실린 들짐승 모습은 나라밖 적잖은 사진책에 실린 모습을 들여다보며 베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제아무리 돈 많다는 출판사에서 큰돈을 들여 그림쟁이 한 분한테 힘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들짐승 모습 하나’를 잡아채어 그리도록 아프리카로 보내 주어 몇 달쯤 묵도록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범이나 사자가 아니더라도 다람쥐나 토끼를 그릴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 가두어 놓고 지켜보는 짐승이 아니라, 들판과 산자락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들풀과 산열매를 먹고 자라는 짐승을 오래도록 가까이하는 가운데 ‘한국 자연 터전 들짐승 모습’을 살가이 담아내도록 이끄는 출판사가 한 군데나마 있을까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돈을 대지 못한다면 그림쟁이 스스로 돈과 품과 긴 나날을 땀흘리고 바칠 분이 몇이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나 스스로 살아가는 만큼 쓰고 그리며 찍습니다. 내 삶만큼 글을 씁니다. 내 삶을 넘어서는 만큼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내 삶 테두리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책 만드는 일꾼 매무새도 매한가지입니다. 책 하나 마주하여 읽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만큼 쓰고 내 삶만큼 엮으며 내 삶만큼 읽습니다. 한결 아름다운 넋을 돌보며 사랑하고자 할 때에는 나날이 조금씩 거듭나는 빛깔과 내음과 소리가 글월 한 자락에 담깁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아름다이 거듭나는 만큼 알맹이와 속살을 한껏 깊고 넓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글 쓰기’나 ‘좋은 책 읽기’를 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삶 일구기’에 마음과 몸을 쏟습니다. (4343.10.7.나무.ㅎㄲㅅㄱ)
 

(일본 사진책을 베껴서 내놓은 그림책 이야기는 좀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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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고양이를 사랑하며 만화를 그리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3] 이와오카 히사에, 《고양이 동네》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가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 또한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가. 그저 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는가.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고 있으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을까.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며 만화로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권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우산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피며 그림이나 만화로 담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고양이 동네》를 펼칩니다. 1994년부터 즐겨찾는 만화가게 한켠에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잔뜩 쌓여 있는데, 이 가운데 이 녀석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왜 이다지도 고양이 만화가 쏟아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달지라도 이렇게 지나치게 고양이 만화에만 쏠리는 모습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고양이 만화이기에 으레 몇 권쯤 더 이어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 《고양이 동네》는 꼭 1권으로 끝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낱권책 하나 부피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2권이 없으니 아쉽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2권이 없기에 오래도록 더 뭉클함이 남을 수 있구나.’ 하고 함께 느낍니다. 애써 새 줄거리를 짜 넣어 2권까지 그리지 않더라도 1권 하나로 얼마든지 그린이가 하고픈 얘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새로운 줄거리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늘어질 수 있어요.


-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 (60쪽)


 두 달쯤 앞서 《고양이 동네》를 읽었습니다. 다 읽은 다음 책상맡에 그대로 두었더니 엊그제 옆지기가 읽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만화책이 보여 다시 꺼내어 주루룩 넘깁니다. 주루룩 넘기다가 내키는 자리에 멈추어 이 자리부터 천천히 새롭게 읽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좋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한 번 다 읽은 책은 두 번째 다시 읽을 때부터 마음껏 마음 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 (23쪽)


 앞에서 차근차근 읽던 맨 처음에는 이 만화 《고양이 동네》가 그예 고양이 만화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부터 앞으로 되넘기며 읽다 보니, 책이름만 “고양이 동네”일 뿐, 어쩌면 그린이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엄마 동네”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 삶과 모습과 말이 나오지만, 가장 자주 가장 속깊이 나오는 말은 바로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한테서 나옵니다.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식구와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만화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동네를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에 머물며 동네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 또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자들은 집에 머물며 애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함께 동네를 들여다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동네를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여자한테 주어집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장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동네를 함께 바라봅니다.

 
-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작품을 보면 늘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내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사랑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믿음일 수 있을 테지요.

 만화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잘 담아 주어 좋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좋습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 주어 좋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7.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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