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안아보았나요
조안 말루프 지음, 주혜명 옮김 / 아르고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21 ― 아기를 꼬옥 안아 보았나요
 :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 책이름 :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 글 : 조안 말루프
- 옮긴이 : 주혜명
- 펴낸곳 : 아르고스 (2005.11.7.)
- 책값 : 9800원



 (1) 아기를 꼬옥 안아 보았나요


 요 며칠 사이,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일하러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자리에 앉고 있습니다. 굳이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나 저한테까지 자리가 나기 일쑤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가 있어도 안 앉아서 제가 앉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빈자리에 앉은 다음 ‘왜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안 앉으려 했는지’를 깨닫습니다. 제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이 다리를 쩍 벌리거나 화장품 냄새를 너무 짙게 내거나 엉덩이가 팔꿈치로 밀거나 하면서 고달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견디다 못해 슬쩍 눈을 찌푸려 보기도 하지만 못 본 척입니다. 이럴 바에는 그냥 서서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제가 앉던 자리가 비며 제 앞서 서 있던 이가 앉곤 하는데, 이분들은 좁거나 말거나 끝까지 잘 앉아서 가시고, 또 이내 잠들며 곯아떨어집니다. 저로서는 딱히 내 자리를 내어준다는 생각이 있지도 않습니다만, 제 앞에서 빈자리 얻는 분들 가운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건넨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아침저녁 미어터지는 때에 아기나 어린이를 데리고 타는 분이 드물게 있습니다. 어이하여 이런 때에 이 전철을 타시나 싶어 안쓰러운데, 이분들은 틀림없이 이분들 다른 일이 있어서 이때에 꼭 타야 했겠지요. 이때 제가 자리에 앉아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드리겠지만, 아기나 어린이를 데리고 타는 어머니나 어버이를 마주칠 때에는 으레 서 있곤 합니다. 아이들이며 어버이며 답답하고 힘들겠구나 싶어 걱정이 되지만, ‘자리에 앉은 다른 분’들 가운데 힘들지 않은 분이 없을 테니, 아기를 안고 있든 다리 아파 괴로워하는 어린이 손을 붙잡고 참으라고 말하고 있든 마음써 주는 모습을 보기는 더없이 힘듭니다. 도시 문명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이만큼도 안 되나 싶어 속이 쓰립니다.

 하기는. 찻길 건널목에서 푸른불을 기다리고 있을 때, 푸른불이 들어와도 버젓이 가로지르는 자동차나 버스가 퍽 많으니까요. 건널목 가운데쯤을 지나고 있어도 부웅 지나가는 차가 꽤 되니까요.

 그렇지만, 자가용을 살금살금 모는 이 또한 많고, 골목에서 아이들을 널리 헤아리면서 아주 천천히 달리는 이 또한 많습니다. 빵빵거리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이 또한 많으며, 멈춤줄에 잘 멈추며 건널목이 빨간불로 바뀌어도 곧바로 달리지 않고 더 기다려 주는 이 또한 많습니다. 이웃을 헤아리지 못하는 매무새일 때에는 두 다리로 걸으나 전철과 버스를 타나 자가용을 몰거나 자전거를 끌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볼썽사납습니다. 이웃을 헤아리는 매무새일 때에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반갑고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숨쉴 틈 얼마 없이 미어터지는 지옥철에서도 공짜신문을 쫙 펼치면서 옆사람이나 앞사람 머리통이나 얼굴이 신문으로 긁히도록 하는 사람들한테 치이며 광화문 한글학회로 온 오늘 아침, 등판과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면서 하루일을 엽니다. ‘그 사람들은 당신 아기이든 아는 사람 아기이든 안아 본 적이 있을까?’ ‘그 사람들은 당신 어린아이가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여 옴쭉달싹 못하고 있을 때 그예 밀어붙이기만 할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은 너덧 살짜리 아이는 서서 가도록 하고 당신들은 오래오래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을까? 아버지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그 사람들은 당신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고 무엇을 사랑하며 왜 사랑하고 있을까?’

 한참 셈틀에 눈을 박고 일하자니 눈이 아픕니다. 화면을 끄고 뒷간으로 가서 오줌을 누고 낯을 씻은 다음 창밖을 내다봅니다. 바람이 퍽 거세게 부는 오늘은 서울하늘조차 꽤 파랗습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에 하얀구름 조금조금 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늘 파랗고 구름 하얀 날은 골목마실 하면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느 사무실이든 건물 안쪽에 깃들어 있고, 어느 사무실이든 한낮 햇살 따갑고 눈부시게 들어오는 때에도 형광등 불빛을 환하게 켜 놓고 있습니다. 낮밥 때가 되어 이때만이라도 불을 꺼 놓고 도시락을 먹으려고 하니, “사람이 있는데 왜 불을 끄고 있어?” 하면서 다시 불을 켜고는 낮밥 먹는다며 밖으로 나가십니다. 다른 일꾼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슬며시 다시 불을 끕니다. 다문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만이라도 한낮에는 창문으로 햇살을 받으면서 책을 읽거나 쉬거나 단잠을 자거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 가을을 이 가을답게 느끼고 이 파란하늘을 이 파란하늘로 느끼며 이 거센 바람을 거센 바람으로 제 살결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싶습니다.
 







 (2)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읽기


 지난 9월 22일부터 읽고 있던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라고 하는 199쪽짜리 책을 다 읽습니다. 하루면, 아니 몇 시간이면, 아니 인천에서 서울로 가거나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는 전철길이면 큰 어려움 없이 다 읽을 만한 부피인 작은 책인데, 금세 읽어치우자니 몹시 아쉬워서 읽고 쉬고 읽다가 멎으면서 10월 19일 아침에 끝을 봅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나 읽던 지지난주, 책 한귀퉁이에 몇 마디 생각부스러기를 끄적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읽어치울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놀랍도록 반갑고 기쁘며 좋은 책을 하루아침에 써냈을는지 모르는데, 이러하다 하여도 우리는 이이가 온삶에 걸쳐 배우고 삭이고 가르치고 나눈 끝에 어느 하루 온힘을 모아 책 하나를 써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웬만한 거의 모든 책은 몇 해에 걸쳐 조금씩 꾸준히 쓰는 가운데 한 권으로 모두어집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여러 해, 또는 여러 열 해에 걸쳐 피와 땀이며 사랑과 믿음이며 깃든 책을 하루아침에 읽어치울 수 있겠습니까. 하루 동안만 반가움과 기쁨을 맛보기에는 참으로 아쉽고 아깝고 슬프지 않습니까. 여러 해, 또는 여러 열 해에 걸쳐 아주 조금씩, 차근차근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으며 내 마음을 채우고 덥히고 북돋워야지 싶습니다.”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환경학을 가르친다는 글쓴이 조안 말루프 님은 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책에 갇히거나 연구실에 매인 지식으로는 다루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내 이웃과 우리 터전인 자연을 꾸밈없이 들여다보는 매무새로 생물학을 가르치고, 사람과 자연이 도시나 시골에서 슬기롭게 어울리는 길을 일러 주는 환경학을 가르치겠구나 싶습니다.

 이 책에 처음 붙은 이름은 “Teaching the Trees, Lessons from the Forest”라고 합니다. 이 이름을 우리 말로 옮기며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로 고쳐썼는데, “나무를 가르치고, 숲한테서 배우기”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나무를 꼬옥 안아 보는 데에서 뗀다고 합니다. 나무를 온몸으로 껴안아 보지 않고서는 나무를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으며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무를 온 가슴으로 느껴 보아야 비로소 나무를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지없이 마땅한 소리입니다. 나무란 사람과 같은 목숨인데, 나무를 안아 보지 않고 어찌 나무를 말할 수 있을까요. 나무란 사람과 마찬가지로 온 우주가 깃든 목숨인데, 나무를 안아 보려고 다가서지 않으며 나무를 배운다든지 다룬다든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나무를 나무 그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무를 껴안는 일도 드뭅니다. 나무라는 낱말은 다 알고 있겠지만 나무라는 삶과 목숨은 제대로 모릅니다.

 이와 비슷하게 책을 살포시 껴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를, 흙길을, 물과 바람을, 어린이를, 할매 할배를, 무지개를, 비와 구름을, 산과 들을, 논과 뻘을, 바다와 시내를, 골짜기와 들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쉬우나마, 또 모자라나마 이 같은 작은 책이라도 한 권쯤 읽으면서 우리 생각과 마음과 넋과 얼을 새롭게 추스르거나 다독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우리들 걸어갈 앞길에 좋은 마음벗을 사귀고 좋은 마음스승을 모실 수 있으면 반가우리라 생각합니다.
 







 (3) 슬쩍 들여다보기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들춥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으로 한 줄 두 줄 스며든 대목을 차근차근 되짚으면서, 이 알맹이를 섣부른 지식조각이 아닌 마음밥으로 잘 받아먹자고 다짐합니다. 밑줄을 긋거나 별을 그린 몇 대목을 옮겨적어 봅니다. (4342.10.19.달.ㅎㄲㅅㄱ)


[15쪽] 숲에서는 특별한 향기가 난다고 늘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날은 숲에 들어가기도 전에 숲 향기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자연림이 사라지기 전, 그러니까 나무와 이끼, 새와 곤충이 함께 호흡을 섞던 그 먼 과거에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땅에서도 이런 향기가 나지 않았을까?

[16쪽] 우리는 숲을 잃고도 우리가 진정 잃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30쪽]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요즘 아이들은 사람이 아닌 어떤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것이 보호해야 되는 대상이라면 불편해 하는 마음은 더 커지는 것 같다. 내가 학생들에게 나무는 지키고 보호해 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을 하면 학생들은 금방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몸을 비튼다. 그러나 나는 그들 모두가 깊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자 애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살아숨쉬는 이 세상을 소중히 여기듯이, 그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33쪽] 짚신벌레, 뱀, 나무에게서 누가 경이로움, 경외감, 존경 따위를 느낀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이들도 경이로운 존재이며,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44∼45쪽] 나는 양버즘나무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아홉 마리의 곤충들을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아마 내가 모르는 곤충들이 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양버즘나무 한 그루를 벨 예정이라면 어쩌면 그 나무 위에서 자신의 꿈을 찾게 될 아이 하나와 최소한 다섯 종의 곤충들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내 친구에게 이런 사실을 설명해 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무는 환경을 이루는 한 요소가 아니라, 나무 자체가 환경이구나.”

[55쪽] 사람들은 곰을 먼저 죽이고, 그리고 나서 너도밤나무 숲을 죽인다. 친구와 내가 다시 숲을 찾았을 때 나무는 대부분 벌목을 당한 후였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벌목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말할 수 없는 고요함 때문에 숲은 더 슬퍼 보였다. 막 잘려나간 나무 밑동은 수액으로 젖어 있었고 남아 있는 나무들은 무력하게 잘려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잘린 나무들이 집이나 가구를 만들 목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짓이겨져서 버려지거나 태워 없어진다. 그나마 가장 나은 건 나무 판지를 만들기 위한 펄프로 가공되는 경우다. 이 숲의 주인은 이렇게 나무를 통째로 내어줘도 아주 적은 돈을 받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무를 베냐고? 그것은 너도밤나무가 가치 있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은 자본주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40년이 지나도 이 너도밤나무들은 지금보다 더 자랄 뿐, 여전히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다.

[61쪽] 그 순간 우린 우리의 잘못을 깨달았다. 죽은 나무는 하늘다람쥐가 가장 좋아하는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이후에도 나는 하늘다람쥐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죽은 나무를 베어버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우리에게 아무 쓸모없는 죽은 나무들조차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지내는 것이다.

[69쪽] 더 슬픈 것은 이곳이 이 근처에 남은 마지막 활엽수림이라는 사실이다. 이곳에 있던 나무들이 베어지던 날 이곳에 살던 새들과 동물들은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숲 주위에 이들이 거처를 옮길 만한 곳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73쪽] 하지만 산림 관리원이 당신에게 말해 주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도룡뇽과 도마뱀, 그리고 소나무좀을 유용한 양식으로 보는 새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건강한 숲에 사는 소나무좀은 절대 소나무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76쪽] 딱따구리가 둥지를 만드는 데에는 보통 1년에서 6년이 걸린다 … 놀랍게도 이들이 주로 먹는 먹이는 바퀴벌레였다. 우리는 바퀴벌레를 먹어 주는 이 새를 사랑해야 한다.

[78∼79쪽] 다만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우리가 나무를 단지 자원으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 “이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늙고 아름다운 나무는 없어.” 그렇다. 노목들은 죽음이 얼마 안 남았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나무들이다 … 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만 살고 있는 도시에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숲이라고 부르는 곳에는 어린 나무와 젊은 나무만 있을 뿐이다.

[91∼92쪽] 바구미의 일생이 경이로운 이유는 누군가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 곤충들의 행동을 쫓아서 그것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성충바구미가 나오는 것을 보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 참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112쪽] 내가 꽃밭에 아카시아 나무를 두기를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 자연은 그것을 두기로 결정했고, 자연의 선택이 가장 옳다는 걸 안다. 나는 나무와 싸우기를 멈추고 그냥 물러서서 두고보았다. 그냥 내버려두자 나무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이제는 15미터가량이 되어서 정원의 한 구석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나무는 이제 나의 쉼터다.

[127쪽] 종이를 값싸게 얻기 위해 숲을 아름답게 수놓는 붉은꽃산딸나무 꽃을 포기할 것인가?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129쪽] 나는 내 손 안에 있는 종이가 나무뿐만 아니라 딱정벌레와 아름답게 지저귀던 새들과 벌레를 잡아먹던 박쥐 같은 다른 생명들이 사라진 대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 작은 도시에 단지 나 하나라는 사실이 몹시도 슬프고 외로웠다.

[140쪽]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과 노후를 대비하는 데에는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정작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숲과 산호초와 강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일에는 무신경하다.

[159쪽] 공원 조성 책임자는 자연과 생태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숲길을 걸어 본 적이 별로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그곳의 나무들을 판 돈으로 공원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숲이 지금 그대로 보존되길 바라는 나로선 그들의 결정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 나는 사람들이 나처럼, 울창한 숲길을 걸으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160쪽] 드디어 어느 날 경고도 없이 벌목 기계가 나타났다. 물론 그것은 합법적인 일이었다.

[173∼174쪽] 나는 남성을 혐오하는 사람도 아니고, 남성이 우리의 모든 환경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폭력적인 사람들은 지구와 나무들에 대해서도 폭력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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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로 간다 -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컷 만화인생
이홍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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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와 ‘비아냥’ 사이에서 오락가락 시사만평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8] 이홍우, 《나대로 간다》



 〈동아일보〉에서 “국장급 편집위원”으로 있던 만화쟁이가 한 분 있습니다. 이분은 1980년 11월 12일부터 2007년 12월 26일까지 ‘나대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스물일곱 해에 걸쳐 8568번이나 네 칸 만화를 그려 왔습니다. 몇 해를 더 그렸으면 서른 해를 채우고 1만 번째 만화까지 빛을 보면서, 김성환 님 ‘고바우 영감’에 못지않는 시사만화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9000번째 만화를 코앞에 두고 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며 2008년 1월, ‘한나라당 부산 진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당신한테는 안타깝게도 공천심사에서 떨어집니다. 그러고 나서 상명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 1988년 KBS TV에서 방영된 〈광주는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5ㆍ18 민주화운동을 말하지 못할 때 〈전남일보〉 시사만화 ‘미나리 여사’에서만 광주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렸다”고 소개하며 방송 화면에 광주 상황을 그린 만화를 한동안 비춰 준 적이 있다. 〈전남일보〉 시절 5ㆍ18 민주화운동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나는 보도가 통제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라도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당시 ‘미나리 여사’를 그릴 때마다 고민도 많이 했다 … 기분 좋게 시작한 ‘나대로 선생’과 노 대통령(노무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졌다. 시사만화가가 항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풍자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무척이나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종종 있다. 최근 들어 시사만화의 풍자에 가장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노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 한때 권력의 칼날을 맘껏 휘두르던 그(1985년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가 “정부(노무현 정부)를 더 비판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권력의 패러독스를 느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 손 안의 권력과 남의 손에 든 권력은 다른 모양이다 …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 게 좁은 대한민국 사회다. 그러다 보면 철천지 원수가 아닌 이상 어느 자리에서든 얼굴 볼 일이 없겠는가. 그런데 노 정권(노무현) 사람들은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는 밥 한 그릇도 같이 먹지 않는 유별난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제는 만나자고 해도 내가 안 만날 것 같다. 나도 이제 느즈막히 코드나 찾아볼까? ..  (64, 113, 146, 160쪽)


 흔히 ‘조중동’으로 일컫는 신문에서 스물일곱 해에 걸쳐 만화를 그린 분 이름은 이홍우입니다. 신문에 만화를 그린 분으로는 드물게 낱권책을 여럿 펴냈습니다. 1979년에 《미스 앵두》, 1987년에 《오리발》, 1995년에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 1996년에 《재롱이 만화일기》를 내놓았습니다. 이홍우 님은 만화이름 그대로 “나대로 간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2004년부터 신문읽기를 끊었기에,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이분 만화며 다른 분 만화이며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잘 모릅니다. 2004년 겨울에 〈한겨레〉 ‘미주알’을 그리던 김을호 님이 붓을 꺾은 뒤로는 〈한겨레〉마저 볼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만, 둘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지난날 ‘나대로 선생’이며 ‘왈순 아지매’며 ‘야로씨’며가 어떤 눈높이에서 어떤 목소리로 우리 삶과 사람을 읽어내어 그림으로 담아냈는가를 돌아볼 때에는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시사만화는 틀림없이 ‘세상일’을 다루는 만화입니다. 어느 만화가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신문에 싣는 시사만화는 더더욱 ‘풍자’를 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도록 그립니다. 한자말 ‘풍자(諷刺)’ 뜻을 살피면, “(1)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2)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인데, 말풀이가 처음부터 이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풍자’는 세상 잘잘못을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까밝히면서 속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도록 하는 말마디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비웃다’ 말풀이는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몸짓을 터무니없거나 어처구니없다고 여겨 얕잡거나 업신여기다”이거든요. 우리가 풍자를 한다고 할 때에는 맞은편을 얕잡거나 업신여기는 매무새가 아니라, 잘잘못을 밝히면서도 슬쩍슬쩍 눙치거나 꾸지라다가도 따뜻하게 감싸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거든요.


.. 매일 검열과의 싸움이었다. 어떤 날은 만화를 하루에 일곱 번 그린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검열을 뚫고 할 말은 해야 했다 … (이회창 총재가 묻기를) “매일 매일 시사만화를 그려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시사만화 소재를 어떻게 찾으십니까?” 평이한 질문이었으나 다들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일순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내가 농담 삼아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 그(이회창 총재)를 미리 만나 봤더라면 실제로 둥근 안경을 세모로 그리면서까지 날카로운 캐리커처로 묘사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인 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를 많이 본 정치인이다 ..  (75, 116∼117쪽)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엊저녁과 다시 일을 하러 서울로 길을 나서는 오늘 아침에 이홍우 님 다섯 번째 책 《나대로 간다》를 읽습니다. 앞서 나온 《미스 앵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해 읽지 못했으나 《오리발》과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는 일찌감치 읽었습니다. 이 만화 두 가지를 읽을 때에는 나라안 10대 중앙일간지를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기사와 만평을 샅샅이 견주어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무렵에 ‘나대로 선생’을 들여다보던 저는, ‘이분이 스스로는 풍자를 하는 시사만화를 그린다고 말씀하실는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풍자가 아닌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 총질로 사람들 가슴에 구멍을 뚫는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있기에, 이홍우 님으로서는 보수 쪽에 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보수이든 수구이든 오른쪽이든, 또 진보이든 개혁이든 왼쪽이든, 지켜야 할 대목은 지켜야 합니다. 사람된 매무새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갈고닦아야 할 길은 갈고닦아야 합니다. 섬겨야 할 어른은 섬기고, 받들어야 할 넋은 받들며, 고개숙여야 할 곳에서는 고개숙여야 합니다.

 꼭 ‘조중동’이라고 묶는 세 신문사라서가 아니라, 세 신문사에 글을 쓰고 사진을 담고 그림을 그려 넣는 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우리 삶자리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며 붙잡아야 할 길은 어디에 있다고 헤아리시는지 궁금하며, 우리 삶자락을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마음밭을 어떻게 일구어야 기쁘고 반갑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검열을 뚫고 할 말’은 무엇이었으며, 검열을 없애려고 보여준 움직임은 무엇이었고, 검열에 스러지는 이웃과 동무를 어느 만큼 느끼는 삶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하고 1980년대 〈동아일보〉랑 1990∼2000년대 〈동아일보〉는 서로 얼마나 닮거나 다를까요. 만화쟁이 이홍우 님이 스물일곱 해라는 기나긴 동안 〈동아일보〉에서 보여주고 들려준 ‘나대로 선생’ 말마디와 생각마디는 우리 이웃과 터전을 어느 만큼 비추거나 담아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공천심사부터 떨어졌기에 더 할 말이 없고 아쉬움도 클 텐데, 공천에 붙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면, 당신이 걷는 길은 지난날과 또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까요.


.. 1972년 6월 19일에 실린 그(윤영옥, ‘까투리 여사’)의 만화가 정부 권장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과잉생산과 판매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풍자했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을 비판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결국 그는 펜을 놓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의 만화 ‘까투리 여사’ 역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른바 “서울신문 필화 사건”으로 한동안 지방신문 등에 만화를 그리던 윤 화백은 국립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아 한국시사만화계의 소중한 자료인 《한국시사만화사》를 펴내기도 했다 ..  (217쪽)


 1986년 3월 24일치에 그린 ‘나대로 선생’ 때문에 하루 동안 끌려가 몇 대 얻어맞고 나왔다는 이야기(78∼79쪽)는 있지만,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움켜쥔 전두환 정권 첫무렵에 어떤 그림과 이야기로 그 어둡던 나날을 그려내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라 낮은자리 사람들이 눌리다 눌리다 못해 들고 일어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흔들리던 무렵부터 조금씩 ‘전두환 비판’을 그리기는 했다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단단하던 무렵에는 ‘나대로 선생’이 얼마나 ‘나대로’라고 하는 길을 걸었는지는 239쪽짜리 책에 한 줄조차 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난날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이회창 씨 앞에서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하며 읊던 말마디처럼, 지난 열 해에 걸쳐 집권여당만 신나게 ‘조지는’ 만화를 그리면서, 당신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음을 이 책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 겉장에 굵직하게 찍혀 있는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칸 만화 인생”이라는 말마디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경제 포기 대통령 노무현 조지기’만 가득 담긴 책에, 이홍우 님 만화쟁이 삶과 발자국이란 무엇이었는지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노무현 옛 대통령이 잘못한 일은 어김없이 있었고, 안타깝다고 여길 일 또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 《나대로 간다》는 ‘아무개 조지기’를 하겠다는 책은 아니지 않았던가요? 어릴 때부터 온삶을 ‘만화에 미쳐’서, 부산에서 중학생이던 때에 공납금 두 달치를 몰래 모아서 집을 뛰쳐나온 까까머리가 만화쟁이가 되려고 바득바득 땅을 기면서 애쓰던 삶과 꿈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 아니었는가요? 좁다란 골방에서 아내와 힘겹게 살아내던 일이며, 열세 해 만에 어렵사리 아이를 얻은 기쁨이며, 만화 외길에 큰뜻을 품은 김성환 님 같은 어르신들 ‘세상에 잘 안 알려진 아름다운 이야기’며를 담아내고자 했던 책이 아니었는지요?


.. (‘사자에 상’을 그린) 하세가와 여사의 만화는 가정의 일상성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통합하는 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만화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233쪽)


 책 끝에 나라 안팎 시사만화(또는 신문만화)를 그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일본사람 하세가와 마치코 님 만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가를 몇 쪽에 걸쳐서 들려줍니다. 아직 이분 만화가 한국말로 옮겨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헌책방에서 이분 만화책을 몇 권 사들여 틈틈이 꺼내어 다시 읽곤 합니다. 글은 못 읽어도 그림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를 헤아릴 수 있고, 그림만 보아도 눈물겹고 웃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홍우 님도 이야기하지만, “가정의 일상성”으로 “일본 사회를 통합”한 만화 ‘사자에 상’이요,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으로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도록 해 줍니다.

 자, 그러면 이홍우 님 ‘나대로 선생’은 어떤 만화로 자리매김을 할까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은 우리 만화와 문화와 삶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저 ‘스물일곱 해 동안 팔천 번 넘게 그린 기록이 남는’ 이름 하나 아로새길는지요? 이 만화마다 어떠한 깊은 이야기나 뜻이나 생각이 간직되어 있었다는 눈물이나 웃음을 새겨 줄 수 있는지요? 참말 이홍우 님 당신은 당신 네 칸 만화가 ‘풍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한 번도 ‘비아냥’이나 ‘비웃음’이나 ‘비꼬기’나 ‘비틀기’ 언저리에서 맴돌았다고는 느끼지 않으십니까? (4342.10.15.나무.ㅎㄲㅅㄱ)


 ┌ 《나대로 간다》(동아일보사,2007)
 ├ 이홍우 씀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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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도서관 (양장) - 아시아에서의 일본 근대 도서관사
加藤一夫 외 지음, 최석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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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재는 왜 이리 따분해야 하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6]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



 엊저녁 고된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동인천 가는 빠른전철을 코앞에서 놓친 다음 한참을 기다리고 섰습니다. 십 몇 분이 지나 빠른전철이 다시 들어옵니다. 굳이 앉아서 갈 생각은 없었지만, 맨 앞줄에 섰으니 ‘오늘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철문이 열릴 무렵 갑자기 옆에서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새치기를 하며 밀고 들어오더니 잽싸게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습니다. 그런데 비스듬하게 앉습니다. ‘이 아줌마 뭐하는 짓이래?’ 조금 뒤 손짓으로 누군가를 부릅니다. 함께 타는 동무 아주머니인데 옆자리를 당신이 맡아 차지하려고 이처럼 비스듬히 앉아서 다른 사람이 못 앉도록 한 셈이었습니다.

 두 아주머니는 새치기를 했기에 자리에 앉습니다. 제대로 줄을 섰다면 서야 할 분들입니다. 나란히 앉은 두 아주머니는 저를 잠깐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호호호!” 하고 웃습니다.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 대단하신 분들이네. 아주머니들 나이를 보건대 틀림없이 아이 한둘쯤은 있음직한데 아이들 앞에서도 이렇게 살아가시나?’

 하루 지나고, 오늘 아침에 인천에서 서울로 길을 나설 때에도 어제와 같은 꼴을 겪습니다.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졸립고 힘드시면 이렇게 새치기로 하루하루를 보내실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이한테 자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아 하는 이 가녀린 마음을, 이웃이고 무어고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가벼운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알쏭달쏭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을 펼쳐 읽습니다. 아주머니이든 아저씨이든 아가씨이든 젊은 사내이든 꼬맹이이든 할매이든 할배이든, 날마다 숱하게 겪는 새치기를 하는 이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바보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치기를 않고 얌전한 사람도 많으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착하고 얌전한 마음이 자꾸자꾸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마음은 곧고 바른 쪽으로 가 있어도, 고달프고 지친 몸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본서는 일본의 점령 지역에서 일본인의 손으로 설치한 도서관의 발자취를 추적한 것이다.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는가? 그 이유는 시대에 따라 강조하는 측면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식민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그 지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과학 기술 등의 정보 자료를 수집하여 정부나 군대가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식민지의 일본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학교교육을 보완하거나 식민정책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셋째,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소위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 전쟁의 발단과 원인이라는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청일전쟁과 10년 후의 노일전쟁도 무엇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는지 현재의 일본인은 잊은 지 오래다. 동시에 명치정부에 의한 조선 침략의 목적을 위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일과 노일이라는 이름이 그 본성을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  (14, 184∼185쪽)


 지옥철을 타고다닌 지 열 몇 해째가 되는 오늘날까지 돌아본다면, 한손에 책을 쥐고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해서 더 착하거나 훨씬 얌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덜 바빠맞거나 덜 촐랑댄다고 느낍니다.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 말이 없는, 밀치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앞사람 등판이나 머리에 손전화나 신문을 턱 걸치고 게임을 즐기거나 주식시세표를 읽는, 땅위에 있는 전철역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책을 손에 쥐어 보는 사람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부터 새벽과 밤으로 고단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찾아가기 힘든 판인데, 여느 날은커녕 토요일과 일요일에라도 도서관 마실을 갈 겨를이 있을까 하고. 아니,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고단함 가득 쌓인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찾아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바다에 풍덩 빠지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더욱이, 담배 한 개비와 바깥밥 한 그릇과 술 한 잔과 노래 한 가락과 차 한 잔으로 고단함을 달래거나 잊어야지, 책을 읽으며 마음밥을 채우며 좀더 넉넉하고 너그럽고 따사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마음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 조선에서의 도서관정책은 식민정책이지만 도서관은 설치하지 않으며 기존 도서관은 폐쇄한다는 것에 오랫동안 중점을 두고 있었다 … 그렇다면 왜 일본은 조선에 도서관을 설립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일까? 도서관을 세우는 대신 무엇을 한 것일까? … 합병 직후(1910년) 초대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에 의해 ‘애국장서회진’이라는 분서가 단행되었다. 그 수는 수십만 책이라고도 전해지며, 헌병과 경찰이 조선인학교, 서점, 개인주택을 습격하여 압수하여 소각한 것이다. 내용이 민족적이라는 이유로 처분되었으며, 주로 역사서, 고전, 위인전, 지리서, 초ㆍ중등학교 교과서가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근대적 인쇄에 의한 대량 출판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그 후 조선의 문화 발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 러시아의 남하를 억제하면서 만주를 취하려는 일본으로서는 동쪽으로부터의 침략 루트인 조선반도는 단순한 발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하여 조선에 대해서는 토지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일본의 일부로 삼아버리는 ‘황민화’라는 식민정책을 세우게 되었다. 언어를 위시하여 일상 생활양식과 관습, 종교, 역사관, 기타 일본과 상이한 모든 것이 말살 대상이 되어 일본풍으로 바꾸도록 강제되었다. 언론 출판 활동과 도서관 활동도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 (세월이 흘러 1921년이 되어)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도서관이 없음으로 인하여 우민화정책마저도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조선총독부도서관을 설립하여 체면을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  (181, 38, 188, 201쪽)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느긋하게 책을 읽기 어려운 우리 나라입니다. 이 나라 초등학생은 그냥 초등학생이 아닌 줄을 누구나 알고 있겠지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 책하고는 아예 담을 쌓아야 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중고등학교를 거친 분이라든지,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닌다든지 한다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지요. 그런데, 대학생이 된다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회로 나온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습니다. 나라밖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책을 더 잘 찾아서 읽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된다고 책을 찾아서 읽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너무도 마땅한 소리인지 모르지만, 연속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아리땁고 멋진 짝짝꿍들이 책방에서 말없이 마음밥을 냠냠짭짭하면서 사랑을 키우거나 북돋우는 모습을 보기란 더없이 힘듭니다. 연속극이나 영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부터 그렇습니다. 책방마실을 할 겨를이 없고, 둘레에서 “야, 우리 책방마실 좀 다녀오자!” 하고 손목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없어요. “야, 우리 ○○도서관에서 만나자. 일이 있어 늦으면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야, 우리 ○○헌책방에서 만나자. 술 한잔 하기 앞서 서로한테 책 하나씩 사 주기로 하자.”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야, 오늘 아무개 생일인제 책방에 가서 좋은 책 몇 권 사 주자.” 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일본사람을 깎아내리며 일컫던 ‘경제동물’이라는 말마디를 우리한테 붙여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돈벌레’라고 이름을 살짝 고쳐서. ‘돈만 아는 바보’라고 살을 붙여서. ‘돈 없이는 살지 못하는 멍텅구리’라고 낱낱이 밝혀서.


.. 북해도는 아이누의 자유로운 대지였지만 이 선주민족을 어떻게 ‘일본인’화할 것인지가 과제였다. 이를 위하여 근대교육이 중요시되었고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을 그 속에 놓았다. 아이누 사람들은 정책난민 상태에 놓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수민족으로서의 생활환경과 문화가 해체되었다 … 철저한 동화정책으로 아이누 사회는 해체된다. 근대 북해도는 그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 (대만에서는) 선주민족의 반란을 억제하고 인심을 모아 일반 대중을 사회 교화의 대상으로 하기 위한 사회교육 행정이 이때(1919년)부터 강화되게 되었다 ..  (63, 88쪽)


 대학교재로 쓰는구나 싶은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391쪽짜리 책이요 책값은 3만 원입니다. 카도 카즈오, 카와타 이코이, 토조 후미노리라고 하는 일본사람 셋이 함께 쓴 책입니다.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 나라는 일본한테 식민지로 눌려살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겪어야 한 생채기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93쪽을 보면, 1928년에 일본 내무국장이 “도서관을 통하여 내지의 문화를 주입시킴과 동시에 국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실립니다. 196쪽을 보면, 일본 문부성이 “(1) 고등교육은 정신적 욕구, 특히 자유에 대한 희구를 높이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좀더 높은 교육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형편을 나쁘게 하는 일이다. (2) 조선인을 일본인보다 열등하다고 보고 싶다. (3) 조선인의 교육을 위해서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 (4) 조선인이 최하층 일본인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놓았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문헌정보학(지식정보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이 교재로 이 책을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옮긴이 최석두 교수는 일본사람 이름을 ‘암창구시’나 ‘대구보리통’이니 ‘목호효윤’이니 ‘이등박문’이니 ‘구미방무’라고 적습니다. ‘문무대보’니 ‘전중불이마’니 ‘문부이사관’이니 하고 적으며 옆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 이름을 밝혀 놓는데, 2000년대 한국땅 지식사회에서 일본사람 이름을 이렇게 읽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학과도 아닌 문헌정보학과에서 이렇게 사람이름을 가리켜도 되는지 궁금하고, 이런 번역투와 엮음새는 이 나라 대학생한테 어떤 지식을 나누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라고 하는 책은 “아시아에서의 일본 근대 도서관사”라고 밝혀 놓았으나, ‘근대 도서관’이 어떤 몫을 맡았고 어떻게 꾸려졌으며 어떤 책을 갖추어 어떤 일에 이바지했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첫머리에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며,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소위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고 밝히는데, 이 말마디를 넘어서는 생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학문하는 대학생하고 대학교수한테는 어떠할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도서관을 꾸리는 사람한테든지 식민지 역사를 파헤치거나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한테든지 도서관 발자취를 좇고픈 사람한테든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든지, 이 책이 어느 만큼 보탬이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교재는 이렇게 따분하게 엮어도 되는 책인지 모르겠고, 이렇게 써낸 일본사람 책을 우리가 굳이 옮겨내야 했을까 하는 궁금함을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일제강점기 한국 도서관 발자취”를 그러모은 자료가 거의 없지 않느냐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렇구나. 이만한 책조차 우리한테 없구나.’ 하며 고개를 떨굽니다. (4342.10.6.불.ㅎㄲㅅㄱ)


┌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한울 펴냄,2009)
├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 씀 / 최석두 옮김
└ 책값 :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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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칸타빌레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7
윤진성 지음 / 텍스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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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고 작은 책에 담긴 한 사람 삶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5] 윤진성, 《다시, 칸타빌레》



 새벽 한 시 반에 잠에서 깨었지만, 이때 일어나서 밀린 글을 쓰고 기저귀 빨래를 하면 한 번 잠들어야 하고, 그러다가는 아침에 못 일어날 듯해서 다시 잠듭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밀린 글을 씁니다. 그러나 글은 두 꼭지 겨우 다듬다가 그치고, 이따가 한글학회에 일을 나가서 해야 할 일을 붙잡습니다. 글을 쓸 만큼 마음이 느긋하거나 풀어지지 못했으며, 곧 집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바쁩니다. 뭣도 하고 뭣도 챙기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여섯 시 반쯤까지 학회 일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이런, 아까 머리를 감았어야 다 마르는데.’ 오늘은 머리를 안 감기로 하고 빨래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어제 아기하고 옆지기가 씻고 남은 물로 기저귀 여덟 장을 빨고 한 장은 삶는 빨래를 담는 통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제부터 담가 놓고 못 빨고 있던 포대기도 빱니다. 포대기는 물이 떨어지니 씻는방 빨래줄에 널어 놓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마루로 나오니 아침 일곱 시 이십이 분입니다. 빨래하는 데에 오십 분쯤 걸렸습니다. ‘늦었구나.’ 서두르다가 또 뭔가 놓치고 갈까 싶어 느긋하게 마음을 추스르며 가방을 꾸리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두 사람한테는 먼발치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말리려고 어젯밤에 펼쳐 놓은 우산을 접어서 문간에 들여놓습니다. 대동문구상가 앞까지 달려갑니다. 이곳부터는 걷습니다. 그냥 달려도 되지만, 고등학생 아이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올라가는 이 길을 거슬러 달리기보다는 여느 걸음으로 마주 걸으며 아이들 차림새를 눈여겨봅니다. 지난해에 일민미술관에서 ‘청소년’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진찍기 일을 맡은 뒤로 청소년 아이들하고 스칠 때에는 잠깐 스칠지라도 곰곰이 살피거나 눈여겨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전철역으로 들어서니 오늘은 ‘차 없는 날 행사’를 한다며 전철삯을 안 받는답니다. 처음에는 표 끊는 데에 다 종이로 뒤집어씌워 놓았기에 망가져서 이러나 하고 놀랐는데, 무슨 알림판이라도 세워 놓든지 알려주는 일꾼(또는 공익)이라도 나와 있든지 해야지, 이렇게 하면 어떡합니까. 부랴부랴 전철 타는 곳으로 올라갑니다. 용산 가는 빠른전철이 문을 닫고 막 떠납니다. ‘이런, 된장. 표 끊는 자리에 저거 없었으면 곧바로 올라와서 탔을 텐데. 1500원 아껴 준다며 차를 놓치게 했네.’

 서울처럼 전철이 자주 있지 않은 인천이니, 앞으로 칠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서울은 출퇴근 때에는 전철이 바로바로 있지만 인천은 안 그렇습니다. 그나마 출퇴근 때이니 칠 분만 기다리지, 출퇴근 때를 넘기면 십오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씁쓸하게 서 있는데 김밥 파는 아주머니가 보입니다. ‘도시락도 못 싸고 나왔는데 김밥을 사라는 뜻인가?’ 마음을 느긋하게 먹자고 다짐합니다.

 코앞에서 전철을 놓쳤으니, 칠 분 뒤에 들어오는 전철은 자리를 얻어서 앉습니다. ‘뭐, 이렇게 자리를 얻어도 나쁘지는 않군. 그러나 일터에는 조금 늦겠네.’ 인천에서 서울 가는 지옥철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어마어마하게 손님들이 들어차고 저마다 밀리고 밀고 밟히고 밟으며 이런저런 끅끅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자리에 앉았으나 사람들은 서로 밀고 밀리며 제 무릎 위까지 앞사람 몸뚱이가 포개질랑 말랑입니다. 서 있어도 책을 읽기 어렵지만 앉아 있어도 책을 읽기 어렵습니다. 그저 눈 딱 감고 잠들기만 해야 합니다.

 몸은 고단하고 잠은 모자랍니다. 그러나 겨우 몸을 살짝 비틀며 책장을 펼치고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악을 씁니다. 그야말로 악과 깡으로 ‘지옥철 책읽기’를 이어갑니다.

 역곡을 지나 구로를 거쳐 신도림에 닿으니 비로소 숨통을 틉니다. 어제는 신도림역에서 전철이 망가져 이십 분 가까이 오징어떡이 된 채로 멈추어 있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다른 말썽이 없습니다. 늘 이렇게 말썽이 없어야 하지만, 출퇴근길에 곧잘 전철이 망가져서 점검하고 고친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말썽이 없는 날은 한숨을 돌리며 ‘오늘은 잘 지나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 내 기억에 H를 처음 본 것은 그날이었으나 나중에 듣고 보니 그는 나를 입학식이 있기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봤다고 했다. 1박 2일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은 나에게 무척 지루한 것이었다. 모두들 술에 취해 못 일어나고 있는 이른 아침에 혼자 공터로 나가 그네를 탔는데, 그네 타는 나를 멀리서 지켜봤다고 했다 ..  (8쪽)
 


(아기가 아빠도 제대로 못 보고 고생이 많다! -_-;;;; 옆에서 엄마가 참 힘들구나!)


 지난주까지는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서 서대문역에서 내렸습니다. 어제부터는 용산역까지 가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립니다. 아무래도 신길역 기나긴 길을 걷기보다는 용산역에서 구름다리 건너 시청역부터 걷는 길이 제 몸이나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산부터 시청까지는 거리는 짧은데 사람들 붐비기는 여의도를 지나는 5호선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냐?’ 싶고, 제법 널널하기에 퍽 느긋하게 책을 펼칩니다. 지난 7월 29일에 처음 손에 쥔 《다시, 칸타빌레》라고 하는 책을 서울역을 지날 무렵 다 읽고 덮습니다. 야금야금 맛보듯 읽다가 갑작스레 서울로 일하러 나오면서 한동안 못 읽고 있었는데, 오늘 비로소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래, 오늘도 한 권 아침에 다 읽었나? 아침저녁으로 고달프지만, 그런 가운데 아침저녁으로 책을 한 권씩 읽어치울(?) 수 있어서 기쁘지?’

 사람들이 붐벼 몸뚱이로는 기지개를 못 켜고 마음으로만 기지개를 켭니다. 시청역에서 내리니 다시금 숱한 사람들이 우루루 몰리고, 밖으로 나와도 사람물결은 출렁입니다.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고 면세점 옆으로 지나다가 안쪽으로 틉니다. 늘 그늘 자리로만 걸었는데, 오늘은 볕을 쬐는 뒷길로 걷습니다. 뒷길에는 사람이 뜸하고 조용합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이런 뒷길이 다 있네?’ 그러나 담배 태우는 사람이 하나 지나가자 확 담배 냄새가 끼치며 재채기가 납니다. ‘제기랄 양복쟁이들! 담배 먹고 얼른 하늘나라로 떠나 주시지!’ 다시 큰길로 나오니 건널목 불이 바뀌어 뜀박질로 건넙니다. 1층에 앉아 있는 지킴이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계단을 타고 5층으로 올라갑니다. 9시 3분. 3분 늦었습니다. 가방을 내리고 물병에 물을 뜨고 낯과 손을 씻은 다음 자리에 앉습니다. 오늘도 눈 아프고 머리 지끈거리는 일을 엽니다.


.. 그 너구리 인형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직도 나와 함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구리 인형에 대한 기억보다 그 인형을 사 줄 때 자랑스럽고 뿌듯해 하던 아빠가 더 생각난다. 아빠는 백화점에서 인형을 사 줄 수 있는 처지가 된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  (49쪽)


 낮밥 먹을 무렵에 마음을 쉬고 몸을 다스립니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텅 빈 일터에서 신문도 슬쩍 들춥니다. 정운찬 님 소식을 신문사마다 어떻게 기사로 다루는지 넘겨보다가 아침에 챙겨 온 책을 살짝 펼쳐 봅니다. 이달까지는 마무리지어 넘겨야 하는 책 원고를 살핍니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한다며 나와 있지만, 옆지기는 아기한테 꼭 붙들려 일이고 놀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할 테니 얼마나 갑갑할까?’ 작은 학회나 일터에서는 ‘아이 돌보는 방’을 따로 마련할 수 없다지만, 아이가 어버이 있는 일터에 함께 나와서 어울리거나 쉴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어른이든, 집하고 식구가 가까운 곳에 있는 일터를 나가거나 일터에서 ‘일터와 가까운 데에 있는 집’을 얻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참, 꿈 같은 꿈이나 꾸고 있군.’


.. 천천히 걸으며 물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나뭇가지나 이파리들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내 걸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 비닐하우스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어떤 음악도 필요없었다. 노동이 주는 침묵과 비가 주는 음악으로 충만한 하루였다 …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노래를 들으니 내가 절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  (97, 166, 170쪽)


 아침에 다 읽은 《다시, 칸타빌레》를 다시 들춥니다. 글쓴이 동무가 제주섬에서 귤농사를 짓고 있는데, 제주섬 동무네 어머님이 글쓴이한테 복을 빌어 주며 “조만간 큰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며, 글쓴이는 “혹시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이 아주 잘 팔리는 건 아닐까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171쪽)”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칸타빌레》는 영 안 팔리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글쓴이 스스로도 생각했겠지만, 곧바로 이렇게 말을 돌립니다. “나는 초 사진을 보고 마음이 든든했다. 큰돈이 들어온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누군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 때문에 넓고 평평한 곳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171쪽).”

 연극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는 윤진성 님은 이 책 《다시, 칸타빌레》에서 연극과 같지만 연극하고 다른 당신 삶이 어떠했는가를 조곤조곤 풀어 놓았습니다. 웃음도 풀어 놓고 눈물도 풀어 놓았습니다. 기쁨도 풀어 놓고 슬픔도 풀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품은 꿈을 풀어 놓았고, 당신이 접은 꿈을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새로 품거나 끝까지 껴안을 꿈을 들려줍니다.


.. “머뭇거린다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윤진성이라는 사람이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윤진성이 맡은 배역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신경 쓰죠.” ..  (192∼193쪽)


 《다시, 칸타빌레》는 ‘책이야기만 하는 잡지’ 〈텍스트〉를 펴내는 ‘텍스트’ 출판사에서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라는 이름을 붙이며 펴낸 일곱째 책입니다. 이 책에 앞서 《신호등 건너기 게임》(신민영), 《그늘 속을 걷다》(김담),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한윤형), 《멜로드라마 파이터》(김남훈), 《출발, 3%》(김종철), 《붕어빵과 개구멍》(서영교)까지 여섯 권이 나왔습니다. 다음달쯤 ‘기선, 배만호, 김민하, 황승미’ 네 분 이야기가 잇달아 나오지 않으랴 싶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스물∼마흔 사이) 삶과 생각과 말을 돌아보는 책묶음으로, 앞으로 100권이나 200권, 또는 300권이나 400권까지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더 젊거나 어린’ 사람들한테, ‘젊은 또는 늙어 가는 사람’으로서 ‘남들과 똑같이 안 살’고 ‘내 깜냥껏 내 길을 내 마음’에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껍데기 노란 자그마한 책입니다. 원고지로 치면 700쪽쯤? 책 쪽수는 200쪽 남짓? 책값은 9000원 안팎(아직까지는 9000원이지만 종이값이 오르면 오를 수 있겠지요)?

 우리 세상에 크게 이름이 나 있지 않은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책이라, 한비야 님 책처럼 잘 팔릴 리 없고, 공지영 님 책처럼 수많은 기자들이 소개해 줄 리 없으며, 전여옥 님 책처럼 숱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리 없습니다. 다만, 때때로 술동무가 되어 주는 이야기벗이 되어 주는 책이며, 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반가운 옛동무 같은 책이요, 나 스스로 조용히 좋아하면서 품에 꼬옥 안을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은 꼭 많은 사람이 사서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4342.9.22.불.ㅎㄲㅅㄱ)


 ┌ 《다시 칸타빌레》(윤진성 씀,텍스트 펴냄/2009)
 └ 책값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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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는 알라딘에서 안 파는가 보다. 정기구독만 받는가?)


 ‘비장애인’은 ‘장애인’ 이야기책을 참 안 읽는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4] 장애ㆍ비장애 아우르는 잡지 《함께 웃는 날》



 지난 토요일에 인천에서 서울 군자역까지 전철을 타고 갑니다. 서울사람한테 군자역은 가까운 동네일는지 아닐는지 모르겠는데,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은 까마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길을 날마다 전철로 오가며 일터나 학교에 몸담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날마다 지옥철에 시달리고, 언제나 고단함에 절고 저는 삶이라 할 텐데, 체력이 대단하든 견디는 힘이 대단하든 놀라운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을 타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몸이 안 좋은 옆지기가 자연건강회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입니다. 생채식을 하려 했지만 남편이 갑작스레 서울로 일을 나가면서 아무것도 못하느라 힘에 겨운 옆지기는, 익히 책으로 읽고 스스로 알아보고 해 왔기에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풀이되지만, 그래도 한번 가서 들으면 다르다고 여깁니다.

 맞는 말이지요. 지식으로 갖출 때하고 몸으로 받아들일 때는 다르니까요. 또한, 같은 길을 걷는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요.

 전철이 부평을 지날 무렵 길손이 부쩍 늡니다. 토요일 아침이지만 일하러 가는 분이 퍽 많은 듯합니다. 이런 아침에 전철을 타고픈 마음이 없으나 아홉 시까지 맞춰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저는 주말이나마 지옥철에 안 시달리고 싶어 더없이 괴롭지만, 이만한 괴로움이란 참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아기가 고달플 테지요. 이틀째 똥을 못 누는 아기한테는 집에서 느긋하게 쉬거나 놀지 못하게 하는 엄마 아빠가 싫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녀석은 ‘오랜만에(?) 전철을 타서’ 재미있는지 소리치고 웃고 뜁니다. 참 용하구나 싶고, 아기라서 다른가 싶습니다. 아기는 스스로 많이 졸립고 힘들어도 둘레에 사람들이 있으면 같이 놀자며 눈자위가 벌개져 있어도 안 자려고 버팁니다.

 이렇게 아기를 어르고 같이 놀고 토닥이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옆으로 붙어 앉으면 한 사람 앉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여기는 아기 자리입니다.” 하고 조용히 말씀드립니다. 아기가 몸피가 작다지만, 틀림없이 아기 하나와 아기 엄마하고 아빠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으니까요.

 제가 앉은 자리라도 내어 드리고 싶지만, 아기하고 이렇게 움직일 때에는 저도 되도록 자리에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엄마는 한 자리만 차지하고 앉으면 젖을 물리기 몹시 힘듭’니다. 두 자리를 차지하면서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로 반쯤 양반다리를 하며 아기를 받치고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매무새로 십 분 남짓 있어야 하니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엄마는 누구나 다리가 저리기 마련이고, 이때 옆에서 아기 아빠가 ‘다리 저린 애 엄마’를 거들거나 아빠 허벅지에 아기 머리를 올려놓으면서 다리풀기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주머님께서 다리쉼을 하고프신 마음은 알지만, 어른은 조금 서서 가더라도 갓난아기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요,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한테 좀더 마음을 쏟을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분들 가운데에는 “거, 애는 엄마가 무릎에 앉히고 있으면 되지, 왜 두 자리나 차지하고 있어?” 하면서 불뚝 성을 내는 분이 많습니다. 이런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우리 세 식구는 ‘노약자영유아보호자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이 길게 붙은 자리에 앉지 않으나, 사람들은 앉는 자리에 ‘영유아’뿐 아니라 ‘보호자가 동반해서 앉아’ 있으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줄을 까맣게 잊습니다. 당신 스스로 갓난아기를 돌보지 않으니까 모르고, 아주머니와 할머니 들은 지난달 당신이 갓난아기를 돌보며 얼마나 고되고 벅차 했는지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 (장애아이) 누리가 시켜 준 특별수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족들일 것이다. 나나 남편 모두 누리를 키우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평범한 아이인 나래를 대하는 것도 한결 느긋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처음엔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부모 노릇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어느 한쪽이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리를 키워 보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태어난 나래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낄 일도 별로 없었을 거고, 누리보다 훨씬 복잡한 욕망과 감정이 있고, 그래서 더 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  (6권 8∼9쪽)


 자연건강회 강의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를 넘길 때까지 이어집니다. 아기는 그럭저럭 견디면서 엄마젖 물고 두 번 잠들어 줍니다. 낮에는 한 번 똥을 푸지게 누기도 합니다. 강의를 듣는 틈틈이 오줌기저귀와 바지를 빨아서 걸상에 걸치고 말립니다. 종이기저귀를 쓴다면 이렇게 번거롭지 않겠지만, 조금 번거롭더라도 종이기저귀를 쓰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기는. 하루일을 마치고 축 늘어진 몸으로 다시금 지옥철에 시달리며 인천으로 돌아와서 하루 내 밀린 빨래를 하고 있으면 ‘오늘 저녁 새로 쌀과 곡식 씻어서 불려 놓는 일’이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가운데, 마룻바닥과 방바닥은 또 언제 닦고, 내 글쓰기는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뜻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하여도 이렇게 몸이 지쳐 버리면 내 마음 또한 지쳐서 뒤틀려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도 새삼 느끼는데, 비오는 날 전철길은 맑은 날 전철길과 견주어 몇 곱으로 고달픕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오징어떡처럼 밀리고 깔릴 때에는 옆사람 우산이 내 옷이나 몸에 착 붙으며 ‘비를 안 맞았어도 몸은 빗물에 젖어’들고 맙니다. 그렇다고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사람이 바닥에 우산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짐칸에 올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당신 자리만 넓히면 그만이라는 아저씨가 한 사람 옆에 서는 바람에 훨씬 고달픕니다. 그 옆으로 서며 제 가방을 미는 아가씨는 당신 자리가 퍽 널찍하지만 당신 자리를 조금 줄이며 옆에 찡긴 사람한테 마음을 써 주지 못합니다. 제 오른쪽에 선 아가씨 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서로서로 너무 힘들고 고달픈 나머지 당신 몸 하나만 돌볼 뿐이요, 당신들이 고달프고 짜증나 하듯 옆사람 누구나 고달프고 짜증나게 느끼는가는 깨닫지 못합니다.


.. 지금 한창 기대를 안고 열심히 치료나 학습을 하고 있는 후배 엄마들이 듣고서 섭섭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소통 능력이나 사회성은 청년이 되어서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꼭 세상 잣대에 맞게 고쳐야 하나, 그냥 그대로 받아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의 문제보다는 그걸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는 내 아이를 가르쳤지, 치료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를 아픈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아이의 개성으로 보자. 아이의 부족한 면만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자. 어떻게 하면 아이를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아이를 보자 ..  (6권 27, 36쪽)


 왼쪽 오른쪽 앞뒤로 밀리고 찡기는 가운데 책 하나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찡기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책을 펼쳐 앞사람 입김을 막을 수 있으며, 겨우겨우 한 줄 두 줄 읽는 가운데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하나라도 더 깨달은 사람이 좀더 이웃한테 마음을 쓰자’는 아닙니다. ‘한 줄이라도 더 읽은 놈이 더욱더 이웃 아픔을 느껴 보자’ 또한 아닙니다. 그저 이 고단함을 잊고 싶습니다. 책에 빨려드는 내 마음은, 바로 이곳에서 몸뚱이가 아프고 괴로운 내가 마치 어디에도 없는 듯 느끼고 싶습니다.

 마침 오늘은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를 집어들었습니다. 6호부터 정기구독료를 새로 내야 하는데 깜빡 잊고 아직 안 보내고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고맙게도 6호를 먼저 보내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얼른 한 해치 책값을 부쳐야겠습니다.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는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민들레》라는 잡지에서 함께 엮고 있습니다. 《함께 웃는 날》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잡지를 정기구독할 때에도 느꼈지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같은 모임이 있기는 있어도,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는 아주 드물고, 이런 매체에서 소식지나 책을 펴냈을 때에 제대로 알아보면서 장만하고 읽고 삭이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 대단히 드뭅니다.

 우리 나라에서 어느 ‘힘없고 권리 앗긴 사람들’ 목소리가 낮을 뿐 아니라 막대접과 푸대접이 아니겠느냐마는,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와 책’은 그야말로 아무런 대접을 못 받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스스로도, 장애 있는 사람 스스로도, 장애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와 책’은 들여다보지 않기 일쑤입니다. ‘내 일’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모르쇠입니다. 나 스스로 다치거나 망가지거나 내 식구나 동무가 다치거나 망가지지 않는다면 장애인 이야기이든 권리이든 삶이든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따로 장애가 없다지만, 비장애인한테 계단이나 거님길 턱이나 건널목이나 지하도나 숱한 교통시설과 문화시설이 ‘우리 누구나 얼마나 쓰기 좋도록 마련되어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으세요?” “별로 걱정 안 해요. 설사 상대가 저를 무시하는 일이 보이더라도, 저도 같이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리면 되니까요. 비장애인도 잘 보면 어떤 종류의 장애든 조금씩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절 무시하면 저도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리죠.” ..  (6권 70쪽)


 《다르게 보는 아이들》 같은 책이나 《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 같은 책은, 몸소 장애가 있거나 식구 가운데 장애 있는 사람만 읽을 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장애인이 1/10이라고 하지만, 한두 다리 거치면 내 이웃이나 동무나 피붙이 가운데 장애인이 없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내 이웃이나 동무나 피붙이를 좀더 살뜰히 들여다보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담아내는 책을 우리 스스로 참 안 찾고 안 읽습니다. 아이들한테 학습지 안 사 주는 어버이 없고,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문제집 안 읽히는 교사는 없으나, 아이들한테 삶다운 삶을 보여주는 어버이는 꽤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책다운 책을 읽히려는 교사 또한 더없이 드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책다운 책하고 동떨어진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삶다운 삶을 저버리는 쪽으로 뻗어나갑니다. 우리는 우리 두 다리로 우리가 사랑할 터전을 밟고 일구고 가꾸는 길로 걸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4342.9.21.달.ㅎㄲㅅㄱ)


 ┌ 함께 웃는 날 : ‘민들레’ 엮고 펴냄
 └ 한 해 구독 : 24000원 (http://mindle.org), 02-322-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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