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94 : 읽고 싶은 책

 자전거책에 글 하나 쓰신 어느 분이 책을 서로 바꾸어 읽자고 연락해 옵니다. 제가 쓴 책을 보내고, 그분 글이 담긴 책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이 다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살면서 자전거를 만나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자전거를 좋아한다’거나 ‘자전거를 즐겁게 탄다’는 대목에서는 한동아리입습니다. 다만,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다고 느끼기에, 책을 펼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글을 쓴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 있지만, 모두 ‘서울이라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도시에서 흙이나 자연하고는 동떨어진 일손’을 붙잡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이기에 더 빠르게 달리는 예쁘거나 잘 빠진 자전거한테 눈길을 두는지 모르지만, 좀 나이든 분들이 지난날 짐자전거와 얽힌 옛생각을 늘어놓듯 오늘날 사람으로서 오늘날 사랑받는 자전거와 얽힌 ‘추억’에 갇혀 있습니다.

 오랜만에 《블랙 잭》(데즈카 오사무)이라는 만화책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 또한 저 나름대로 제 ‘추억’에 사로잡히면서 책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고 새기고 받아들인다 할 텐데, 저부터 좀더 옳거나 바르거나 아름다운 책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제 옛생각에 사로잡힌 채 제자리걸음을 하듯 고인 물과 같이 책을 만나지 않느냐 싶습니다.

 받은 책을 덮고, 잠자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일거리 때문에 읽어야 해서 책상맡에 쌓아 놓은 책을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당신들 스스로 하고픈 일이나 꿈꾸던 일이 아니라, 코앞에 닥친 먹고사는 일 때문에 버겁고 빠듯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을 못 읽는다고 하는데, 책과 함께 살아간다는 저부터 제가 느끼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으로는 다가서지 못하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제 좁은 우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좋아하며 즐기는 일을 찾고, 훌륭하면서 올곧은 책을 손에 쥐는 삶이란, 어떻게 보면 꿈같은 노릇이거나 이루지 못할 하늘나라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식구들 먹여살리고 내 앞가림을 하고 내 얼굴값과 이름값을 지키자면, 정작 내 넋과 얼을 알뜰히 추스를 겨를이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읽고 싶은 책’에서는 멀어지고 ‘읽기 싫어도 읽을밖에 없는 책’을 읽도록 길들여 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며칠 앞서 《적과 흑》 1950년대 옮김판을 오랜만에 들추었습니다. 스탕달 님 이 옛 작품을 읽고 싶어서, 헌책방에서 퍽 묵은 옮김판을 찾아내어 갖추었는데, 아직 첫 쪽조차 못 넘깁니다. 다른 숱한 책에 치여 자꾸 뒤로 밀립니다. 북녘에서 옮겨낸 적이 있는 ‘아리요시 사와코’ 소설 또한 장만하기는 했어도 못 넘기고 있으며, 김석범 님 소설 하나 또한 어렵사리 얻어 놓았으나 못 펼치고 있습니다. 혼자 살 때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읽고, 집에서 보리술 홀짝이면서도 읽은 책들이지만,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에는 어떠한 책조차 뒤적이기 힘듭니다. 따지고 보면, 책이란 이야기요 삶이라, 다른 이 얘기나 삶을 엿보지 말고 내 삶을 들여다보고 읽어도 넉넉하니까 책이 없어도 되는지 모르는데, 식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워도 되는데, 얌전히 꽂힌 책을 떠올릴 때면 눈물이 흐릅니다. (4342.7.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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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5 : 읽고 나서 다시 읽는 책

 지난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 올 유월부터 두 번째 살림집으로 삼으며 지내고 있는 인천 중구 내동 골목집 2층 씻는방에서는 창밖으로 복숭아나무가 가까이 보입니다. 창문 밖으로 손을 뻗으면 나날이 익어 가는 푸른 열매를 쥘 수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열매가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알맞게 다 익은 다음 제가 슬그머니 따서 먹어도 괜찮을까 헤아려 봅니다. 동네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쪼아먹게 두어야 할까 싶기도 한데, 손 닿는 대로 마꾸 따지 않고, 꼭 한두 알만 따먹으면 괜찮지 않으랴 생각해 봅니다.

 지난 밤부터 새벽과 아침에 걸쳐 제대로 잠들지 못하며 찡찡대던 아기가 낮나절부터 새근새근 잠들어 주었기에 모처럼 마루에 나앉아 부채질을 하며 책을 펼칩니다. 지난달부터 조금씩 읽다가 지난주에 다 읽은 책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훑습니다. 나라안에서 한비야 님이 세계여행과 세계빈민구호 일을 하면서 이름값이 높다면, 이 책을 쓴 ‘소노 아야코’ 님은 일찍이 1950년대부터 비정부기구 일을 하면서 온누리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에 힘을 보태면서 이름값이 높습니다. 저는 예전에 《계로록》이라는 책을 읽으며 ‘소노 아야코’라는 이름을 알았는데, 나중에 다른 책을 더 읽다 보니, 숱한 소설을 쓰는 가운데 가난한 나라 돕기를 오랫동안 해 왔음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참에 나온 책은 이제까지 쓴 책하고 사뭇 다르게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하고 스스로 묻는데, “숲은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으로 넘쳐나고 사람은 반딧불이의 빛을 헤치면서 걸어간다고 했다. 나는 그처럼 청정한 공기를 아프리카의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사람의 폐와 장은 물론 자동차 엔진에도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깨끗하고 강렬한 생기로 가득 찬 공기였다. 공업의 발전과 반딧불이의 서식은 양립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나는 카메룬과 방글라데시에서 알았다(78쪽).”는 이야기처럼, 당신은 ‘온누리 돈과 물질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하려’고 가난한 사람 돕는 일을 스스로 맡아서 해 왔다고 밝힙니다. 당신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나아가는 마지막 자리는 ‘반딧불이가 일본에서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데에 있고, 이렇게 이루어지자면 미국뿐 아니라 일본도 한국도 유럽도 인도도 한결같이 무기를 녹여 낫과 쟁기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덮고 능금 한 알을 먹습니다. 어제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능금을 한 봉지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가 손님한테 먹을거리를 차려 주어야 할 판에 거꾸로 얻어먹습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능금을 먹는데, 한 알을 그냥 먹을 때에는 깡지까지 먹기 힘듭니다. 그러나, 칼로 반을 쪼개어 먹을 때에는 씨앗까지 오독오독 깨물어 깡지 하나 안 남기고 다 먹습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예전부터 늘 이렇습니다.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는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오숙희,1991)를 다시금 펼쳐 보려고 하는데, 잘 자던 아기가 어느새 깨어나 방긋 웃더니 엄마와 아빠 있는 데로 아장아장 걸어옵니다. “나는 어머니들에게 말하고 싶다. 딸로 하여금 같은 여성으로서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생각해 보시라고(74쪽).”라는 대목까지 훑고는 책을 덮고 아기를 덥석 안습니다. (4342.8.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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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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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숲’에서 농사지으며 만화그리는 아가씨
 [살가운 만화 49]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1권



- 책이름 : 리틀 포레스트 (1)
- 글ㆍ그림 : 이가라시 다이스케
- 옮긴이 : 김희정
- 펴낸곳 : 세미콜론 (2008.10.13.)
- 책값 : 8000원



 (1) 도시 삶터에서 자연이란 어디에?


 꼭 지난주부터 동네 골목길에서 ‘빨간고추 말리기’를 봅니다. 처음에는 어느 한 동네 골목길에서만 ‘고추 말리기’를 하는가 생각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휘휘 이웃 동네를 다니다 보니, 온 골목동네가 고추를 말리려고 부산합니다. 꼭 지난주에는 한두 집 드문드문이었고, 어제오늘은 제법 늘었는데 마침 엊저녁부터 빗줄기가 뿌리는 바람에 오늘은 길가에 고추를 널어 놓은 집이 퍽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빗줄기가 뿌리더라도 비닐을 쳐서 고추는 길가에 그대로 두는 집이 제법 있습니다.

 이렇게 고추 말리는 철이 다가오면, 골목마다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고 굵은 나무토막을 먼저 길가에 척척 깔아 놓습니다. ‘이 자리에는 고추를 널어야 하니까 차 대지 마쇼!’ 하고 밝히는 뜻인데, 여느 때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차를 대놓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차를 대놓을 수 없으니 못마땅해 하거나 짜증이 나겠구나 싶습니다. 고추를 말려 놓는 집에서 모는 자동차라면 다른 데에 대놓을 테지만, 다른 집에서 대놓던 차라면 고추를 내놓는 집은 ‘이제 며칠 동안이나마 우리 집 앞에 멋대로 차를 못 대놓겠지’ 하고 싱긋 웃을 테고, 제 집 앞이 아니면서 아랑곳않고 차를 대놓던 집에서는 ‘뭐야, 이건?’ 하며 이맛살을 찌푸릴 테지요.


.. 다시 수유의 계절이 되었다. 많은 열매가 떨어져서 썩어간다. 떨어진 건 모두 쓸모가 없을까? 잼이나 만들어 보자 … “뱀밥은 역시 잡초야. 쇠뜨기가 무성해지면 베어도 베어도 없어지지 않고 말야. 뿌리는 잘아서 뽑아내기도 힘들고.” “뭐, 그건 그렇지만, 뱀밥이 자라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온 건 인간이잖아. 숲을 개방해서 말야. 옛날에, 죠몬시대에 말야, 뱀밥이 자라는 곳은 얼마 안 돼서 잡초가 아니라 귀중한 산채였을지도 모르지. 봄을 알리는 중대한 산의 은혜로. 분명히 태고적 인간은 뱀밥을 소중하게 여겼는지도 몰라.” ..  (8∼9, 74∼75쪽)
 



 고추를 말리는 철에는 골목동네마다 길바닥이 빨갛게 물들지만, 아파트도 곳곳이 빨갛게 물듭니다. 예전부터 고추를 말려서 쓰던 할매가 함께 살아가는 집에서는 아파트로 삶터를 옮겼어도 어김없이 ‘어디라도 빈 자리를 찾아내어’ 고추를 널어 놓습니다. 지난날에는 아파트 꽃밭에 장독을 심기까지 했고, 오늘날에는 그나마 고추 널기라도 한다고 할까요.

 제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면, 제가 일곱 살 무렵부터 열일곱 살까지 살던 5층짜리 아파트에서는 ‘자가용 있는 집’이 드물어서, 아파트 주차장은 거의 모두 ‘고추 말리는 터’가 되었고, 여느 길바닥에도 고추를 촘촘히 깔아 놓아, 차는 고작 한 대만 외길로 다닐 만큼만 남겨 두곤 했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 옥상은 집집마다 자리를 잡아 놓고는 가득가득 고추를 널어 놓곤 했는데, 헬리콥터라도 타고 내려다보았다면 그야말로 남다르고 빛고운 모습이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옹진군 장봉섬 옹암분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분교 사택 옥상이며 학교 운동장이며 온통 고추를 널어 놓던 일이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따로 안 살았지만, 어머니가 으레 고추를 널어 말린 다음 집에서 손수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이웃집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어느 집이든 ‘고추장은 마땅히 사다 먹지 않고 집에서 빚어 먹는다’는 흐름이었습니다.


.. 푹 삶아진 잼은 투명감이 없는 탁하고 진한 핑크색. ‘타는 게 무서워서 너무 많이 젓다 보면 잼이 탁해진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망설이다가 너무 많이 저었나.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 쉬우니까.’ “지금, 이게 내 마음의 색깔인가?” … 벼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벼 수확도 비가 내리는 추운 날 짬을 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분주하게 일했다. ‘올해의 찹쌀농사의 성과가 지금……’ ..  (11, 42쪽)


 날씨는 한여름에 접어들어 푹푹 찝니다. 흙을 밟을 수는 없어도 골목집들은 어김없이 스티로폼 꽃그릇을 키우거나 ‘철거되어 빈 집터에 있던 돌을 치우고’ 동네텃밭을 일구어 조그맣게 농사를 짓곤 합니다. 작디작은 땅뙈기마다 오이며 가지며 박이며 쑥갓이며 마늘이며 파며 배추며 상추며 고추며 도라지며 깨며 심는데, 꽤 느즈막하게 오이와 호박을 심어, 이제서야 꽃을 피우는 집이 있습니다. 어쩌면, 꽤 느즈막하게 심었다기보다, 일찍 심어 일찍 한 번 거둔 다음 두 번째로 심어 새로 거두려고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비가 살짝 흩뿌리다가 개다가 하는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숭의4동과 도화1동 둘레를 죽 돌아보는데, 도원역과 제물포역 사잇길 건너편 안쪽인 숭의4동에 있는 꽤 많은 골목집에서 포도넝쿨을 키우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새 짙은 빛깔로 익어 가는 포도송이가 있고, 아직 덜 익은 포도송이가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는 신흥동1가 긴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포도넝쿨을 보았는데, 이곳도 머잖아 바다를 닮은 쪽빛으로 송이송이 알알이 영글겠구나 싶습니다. 슬쩍 한 알 따먹을까 하다가 사진만 여러 장 찍고 돌아섭니다.


.. 하츠미는 밀가루에 물을 넣고 귓불 정도로 말랑하게 반죽해서 2시간 이상 재워 둔다. 그것을 손으로 잡고 얇게 늘려서 찢어 국물에 넣고 끓인다. 충분히 재워 두지 않으면 쫀득하지가 않다. 그래서 눈을 치우기 전에 만들어 놨다가, 눈을 다 치우고 배가 고파졌을 때 먹는 게 제일 맛있다 … 서리 맞은 시금치는 감칠맛이 확 늘어나서 더 맛있다 ..  (25, 158쪽)


 이제 우리 집 아기는 아장걸음을 곧잘 걸어, 신을 신기면 혼자서 신나게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걷습니다. 비알이 진 길에서는 자꾸 넘어지지만 판판한 골목에서는 웃는 입을 헤 벌린 채 나비춤을 추듯 걷습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면 마주 걸어오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웃음으로 인사하면서 길을 내어줍니다. 몸소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지내온 분들이기 때문일까요.

 며칠 앞서 아기가 첫발을 내딛고 나서, 옆지기는 푸념을 했습니다. “아기가 첫발을 떼었는데, 첫발을 뗀 길이 아스팔트야!”

 옆지기가 말하기 앞서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 아스팔트입니다. 또는 시멘트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아무리 싱그럽고 아리따운 골목길마실을 즐길 수 있다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도시라서 흙길이 아닌 시멘트길이거나 아스팔트길입니다. 아기는 제 첫발을 뗀 기쁨을 ‘제대로 된 땅’이 아닌 ‘껍데기 씌운 땅’을 밟으면서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런 아스팔트 길맛을 땅맛인 듯 잘못 알게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흙땅이 아닌 시멘트땅과 아스팔트땅을 밟습니다. 시골에서도 논밭일을 할 때를 빼고는 으레 시멘트땅을 밟기 마련입니다. 온나라 거의 모든 시골길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덮여 있으니까요. 옛날 같은 고샅길이란 없다시피 하고, 아련한 논두렁길 또한 없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 저녁식사도 준비되어 있고, 집에서는 피곤하다고 말해도 되겠죠. 빨래가 쌓여 있으면 잔소리도 하고 말예요. 하지만 난 아무리 피곤해도 전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돈을 버는 것도 집안일도 분담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 여기서 돈을 벌고 있는 동안 집안일은 손도 못 대요. 한 가지씩밖에 못하죠. 눈을 치우고 있을 때, 장작 패는 게 끝나는 일은 절대 없어요. 난 혼자니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가족에게 시키는 주제에 바쁜 척 대단한 척하지 마요. 난 뭐든 혼자서 다하니까. 가족에게 어리광 부리는 당신들이 내 고통을 알 리가 없지. 일을 분담해서 해 줄 가족이 없는 게 얼마나 ……, 난, 엄마에게 정말, 가족, 이었을까 ..  (62∼63쪽)


 엊저녁 옆지기가 푸념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한 가운데, 낮나절에 홀로 자전거를 몰며 골목마실을 하며 밤나무를 보고 모과나무를 보고 호두나무를 보고 대추나무를 보며 감나무에다가 포도나무 들을 실컷 보았습니다. 제 사진기에는 이 온갖 열매나무들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하나같이 ‘골목집 담벼락 안쪽 마당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길가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길가엔 흙이 없으니까요. 숭의3동과 송림2동에는 꽤 큰 고무다라이통에서 자라는 대추나무가 있기도 한데, 이런 데에 대추나무를 심어서 가꾸니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서글픕니다.

 나무는 마땅히 너른 흙을 제 어머니밭으로 삼아 뿌리를 내려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 나무 한 그루만이 아니라 동무나무도 옆에서 자라고, 엄마나무나 아빠나무도 둘레에서 함께 자라야 할 테니까요. 키가 15미터쯤 넘는 버드나무가 고작 너비 0.5미터도 안 되는 흙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키가 20미터를 훌쩍 넘는 은행나무 또한 고작 0.5미터쯤 될까 말까 한 ‘살짝 구멍난’ 아스팔트길 가운데에서 줄기를 올리고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말라죽지 않을 만큼 흙을 얻고, 겨우 숨을 틔울 만큼 땅을 얻은 셈이라고 할까요. 모조리 사람들한테 제자리를 빼앗기고 가까스로 고만큼 살아남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골목길이나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들 삶하고, 우리네 여느 사람들 삶은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살뜰히 간직하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듯이, 사람이 사람다움을 알뜰히 추스르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들은 틀림없이 온갖 물질문명을 누리거나 즐기고는 있는데, 날마다 어마어마한 먹을거리에 둘러싸인 채 배고픔이나 배곯음을 잊거나 모르는 채 살아가고는 있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들 누구나 ‘목숨붙이’임을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자연을 잊으면 사람 또한 잊고, 자연을 잃으면 사람 또한 잃는다고 느낍니다. 자연을 버리는 터전에서는 사람 또한 버리고, 자연을 내치는 삶터에서는 사람 또한 버린다고 느낍니다. 국민소득이니 경제발전지수니, 또 무슨무슨 국제행사이니 빌딩 높이이니 아파트 평수이니 연봉이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이니 하는 말마디와 숫자놀음은 어디에나 흘러넘치는데, 정작 사람들 목소리와 숨결과 살내음과 땀방울과 손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2) ‘작은숲’에서 농사짓는 아가씨가 그린 만화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를 봅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제 2권까지 옮겨진 작품입니다. 그린이는 일본 어느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도시로 나와 만화를 그리다가 마음에 생채기를 받고는 ‘내빼듯이’ 고향인 시골마을로 돌아와서 혼자 숨어 지내듯이 농사짓고 살면서 다시 만화를 그리는 아가씨입니다. 우리 말로 옮기자면 “작은 숲”이 될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는 책이름 그대로, 그린이 스스로 ‘작은’ 사람이요, 그린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시골 또한 ‘작은’ 땅이요, 이곳에서 웅크리듯 묻혀 지내는 당신 삶 또한 ‘작은’ 살림이며, 지구라고 하는 커다란 자연과 견주면 아주 ‘작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살아갑니다.


.. 보름달이 뜬 밤. 대낮처럼 밝다 …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상점 같은 건 없어서 간단한 물건을 사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중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농협의 작은 슈퍼나 상점이 몇 채.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 정도 걸릴지……. 겨울에는 눈 때문에 걸어가야 합니다. 천천히 도보로 가면 1시간 반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 마을의 대형슈퍼로 가는 모양입니다. 내가 거기에 가려면 한나절이 걸립니다 ..  (50, 13쪽)


 그린이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작은 숲”에서 살면서 ‘어릴 적 어머니가 당신한테 해 주던 밥’을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시골살이에서 ‘먹는 이야기’밖에 없으랴 싶을 만큼 ‘어머니 손맛과 입맛’을 곱씹습니다. 다른 이야기라든지 다른 삶이라든지 다른 삶자락도 있을 텐데, 무엇보다도 ‘손수 키우고 손수 거두며 손수 빚는 밥’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그린이가 따로 ‘먹는 일을 좋아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다가는, 어릴 적 엄마한테 안겨서 젖을 물던 느낌을 잊지 않는 어른이 적잖이 있음을 떠올려 보면, ‘이제는 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데에 ‘어머니 손맛과 입맛’을 되새기는 일만큼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일도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차근차근 그린이 지난 삶을 되짚고 톺아보는 동안, 그린이가 도시살이에서 받은 생채기를 하나둘 씻을 수 있을 테며, 생채기를 하나둘 씻는 가운데 ‘내빼서 숨어든 시골’이 아닌 ‘좋아서 다시 찾아온 고향’ 이야기로 새로 태어날 수 있겠지요.


.. 나한테 ‘우스터소스’는 집에서 만드는 소스였다. 그래서 학생 때 가게에서 팔고 있는 ‘우스터소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었다 … 씻고 잘라서 볶다가 간을 하고 그릇에 담는다. 순서는 엄마랑 똑같은 게 분명한데, 씹는 감촉이 다르다. 뜯는 시기를 놓쳐서 너무 많이 자란 푸성귀라도 엄마가 볶으면 맛있었다. 내가 볶으면 ..  (18, 155∼156쪽)


 이제 곧 2권을 넘길 차례인데, 우리한테도 《리틀 포레스트》처럼 제 삶과 삶터를 단단하고도 따뜻하게 붙잡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만화로 엮어내는 만화쟁이가 하나둘 태어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느낍니다. 벌써 스무 해쯤 앞서부터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만화를 그리는 박연 님은 《들꽃 이야기》와 《엄마의 밥상》을 그려내기도 했는데, 농사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 탓인지, 아니면 농사일이 훨씬 재미있어서 만화그리기는 조금 멀리하는 탓인지, 더 많은 작품이 못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만화쟁이를 돌아보면, 하나같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 삶만을 만화로 담아냅니다. 하기는. 어느 누구라도 제가 살아가는 곳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가운데 담아낼 테니까요. 더구나, 이런 만화를 보고 저런 만화를 펼치는 저 또한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부터 스스로 시골살림을 꾸리지 않으면서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 살내음 나는 만화’를 바란다면 꿈 같은 노릇입니다.

 다만, 꼭 농사짓는 만화쟁이가 농사짓는 시골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어 내놓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도시살림 꾸리는 만화쟁이 스스로 ‘머리만 굴려 어설피 지어낸 이야기로 그려내는’ 만화를 뛰어넘으면서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사람과 동네를 받아들이고 느낀 이야기를 펼쳐내는’ 만화로 거듭날 수 있으면 더없이 반갑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참되게 살고, 스스로 즐겁게 살며,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가운데, 이와 같은 우리 삶을 만화이든 사진이든 글이든 알차게 꽃피울 수 있으면 둘도 없이 훌륭하면서 싱그럽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아로새겨지리라 믿습니다. (4342.8.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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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만화가 우리에겐 음란하고 폭력적이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서정적인 만화를 그리시는 분도 계시네요.
 
만화 공화국 일본여행기 -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일본컬처트래블
박인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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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만화쟁이가 일본을 사랑하는 까닭은
 [잠깐 읽기 50] 박인하,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책이름 :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글 : 박인하
- 펴낸곳 : 랜덤하우스 (2009.7.10.)
- 책값 : 13800원



 (1) 일본책과 한국책


 헌책방에서 만난 책마을 어르신들은 퍽 예전부터 으레 “자네, 일본 간다에 가 보았나? 일본 간다에 가 보면 책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거야.”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일본 나들이를 할 만한 비행기삯이나 방삯이 없습니다. “네, 나중에 돈이 되면 가 볼게요. 그리고 굳이 일본까지 가 보지 않아도 우리 나라에서도 책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틀림없이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책 문화가 크게 발돋움했고, 일본 헌책방 문화 또한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훌륭합니다. 이러저러한 모습은 몸소 겪으면서도 알 수 있겠지만, 굳이 몸소 겪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제 깜냥껏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리라 생각하면서 조용히 나라안 헌책방 마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여름에 일본 나들이를 한 번 했습니다. 그무렵 몸담고 있던 출판사에서 ‘자료를 사서 들고 올 짐꾼’으로 저를 곁다리 삼아 일본에 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넉 밤을 지내고 돌아오는데, 그 넉 밤 동안 ‘일본 간다에 가 보지 않고 헌책방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던 책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살갗으로 느꼈습니다. 간다 헌책방거리를 여러 날 돌아보면서 ‘책을 보는 눈’ 또한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 일본에 처음 도착해서 느낀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거리가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과 닮아서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방문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본 도시의 거리는 한국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다. 특유의 작은 이층집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거리와 골목, 외관이 잘 정돈된 상가, 아케이드 지붕 아래 늘어선 건물들, 길게 형성된 지하상가까지 일본의 가장 일상적인 풍경들은 사실 우리에게 낯선 모습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에 도착하면 이 일본적인 거리 풍경을 보고 ‘낯익다’고 느낀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일본의 거리와 집을 끊임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  (38쪽)


 제 돈으로 제 깜냥껏 즐기는 나들이가 아니었던 탓에, 제가 가고픈 대로 다닐 수 없었지만, 넉 밤 가운데 꼭 두 시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말미를 얻었고, 이 두 시간 동안 저는 ‘더 많은 헌책방’을 다니는 데에 쓰기보다는 ‘일본 여느 살림집이 있는 골목 안쪽은 어떠한 모습일까’가 궁금해서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을 부지런히 쏘다녔습니다. 나리타공항에서 내려 도쿄로 들어가는 전철길에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여느 살림집 모습이 살갑다고 느껴 ‘일만 아니라면 예쁜 마을에서 내려 한참 동안 그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쿄 도심지에서 어느 만큼 벗어난 여느 살림집 있는 골목을 거닐 때에도 ‘일본에서는 이런 골목을 잘 간수하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도쿄에서 책꾸러미를 이고 지고 끌고 하며 다시 전철을 타고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길에서도, 창밖을 내다보며 ‘일본이라는 나라 여느 삶자리가 이러하다면, 한국보다는 차라리 일본에서 살면 훨씬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여느 삶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 이처럼 사람들 여느 시골마을을 깨끗하게 간수할 수 있으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퍽 괜찮다 못해 훌륭한 나라가 아닌가 하고 느꼈습니다. 일본도 틀림없이 재개발을 하기는 하겠지만 우리 나라처럼 마구 밀어붙이지는 않겠구나 싶었고, 한 집에서 쉰 해 백 해 이백 해를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없는 한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 일본에는 걷기 좋은 거리가 널려 있고, 그 거리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일본은 숲의 나라다. 그래서 숲은 일본을 잘 표현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이 숲의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한 대표적인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8년 작품 〈이웃집의 토토로〉는 ‘숲’의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  (42, 131쪽)


 흔히 일본을 두고 ‘역사가 짧은 나라’라 하고, 우리 나라를 놓고 ‘역사가 긴 나라’라 합니다. 그러면, 일본은 어느 대목에서 역사가 짧고, 우리는 어느 대목에서 역사가 길까요. 역사가 짧은 일본이 제 나라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삶터를 보듬는 매무새하고, 역사가 길다는 한국이 제 땅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삶터를 보듬는 매무새는 어떠할까요? 일본은 ‘역사가 짧은’ 모습 그대로 어설프고 어줍잖게 살고 있습니까? 한국은 ‘역사가 긴’ 모습 그대로 훌륭하고 거룩하게 살고 있습니까?

 일본 나들이를 하고 난 다음 헌책방에서 다시 만난 책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말씀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일본은 저희들 짧고 모자란 역사라 할지라도 하나하나 알뜰히 모시고 사랑하고 가꾸면서 살아왔기에, 그 흐름이 한 세대 두 세대 꾸준히 거치면서 나날이 발돋움할 수 있었고, 한국은 스스로 역사가 길다는 생각에만 빠진 채 제대로 우리 삶과 문화를 돌보지 않고 우쭐거리기만 하느라고 제 모습도 못 보고 다른 이 모습도 못 본다”고.

 어르신들 말씀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어르신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와 문화 어느 구석에도 제대로 갈무리된 자료나 책이 몹시 드뭅니다.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애써 갈무리하는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거의 없습니다. 부천에 만화박물관이라 할 만한 곳이 하나 열렸지만 그뿐입니다. 이 나라에 손꼽히는 만화쟁이가 한둘이 아닌데, 만화박물관이 고작 하나로 되겠습니까. 소설박물관이나 시박물관이나 동화박물관이나 사진박물관도 매한가지입니다. 기차박물관 전철박물관 버스박물관 전화박물관 골목길박물관 아파트박물관 논밭박물관 고기잡이박물관 광산박물관 동굴박물관 오름박물관 들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으며, 우람한 건물로 짓는 박물관이 아닌 온나라 곳곳에 조촐하게 가꾸는 ‘지역박물관’이 서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박물관이나 전시관 하면 크고 좋은 것을 떠올리는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은 작고 특성화된 박물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  (119쪽)


 그러고 보면, 독립기념관이라는 우람한 건물은 있되,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 옛집이 제대로 간수된 일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과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당신 삶을 고이 일구어 온 사람들 삶터를 고이 간직하거나 아끼는 일 또한 거의 못 봅니다. 굳이 관광지나 관광자원으로 삼는 개발이나 공원이나 박물관 따위가 아닌,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쉬고 머리를 가다듬고 몸을 갈고닦으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가운데 어우러지는 마을쉼터를 마련하고, 마을 문화를 보듬을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되어서 더 값이 있거나 오래되었으니 얼른 헐어 버릴 뭔가가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온 흐름이 무엇이고 오래도록 지킬 수 있던 손길은 또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눈길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한테 하나도 없는 대목은 이런 눈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지난날에도 우리한테 하나도 없던 대목은 이와 같은 눈길과 손길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앞날에도 이러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은 좀처럼 퍼지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제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낡은 거리가 구라요시의 매력이다. 일본인들도 이 거리를 보러 구라요시를 찾는다 … 만화 속 주인공처럼 과거의 한때로 돌아간 듯한 아키가와라 마을은 기차역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 쇠락한 마을을 만화와 결합해 추억의 장소로 다시 포장했고, 관광객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을 중앙에는 마을 전체를 안내하는 안내판과 아직도 사용중인 주물로 만든 우체통이 놓여 있다. 에도 시대 커다란 창고였던 집들은 전통 인형을 팔거나 잡화를 팔고 있고, 카페나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  (312, 315쪽)


 책은 그 나라 삶터 그대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프랑스책이든 영국책이든 미국책이든 일본책이든 훌륭하다고 하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수수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동네 터전이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둘레에서 늘 보고 부대끼며 배우는 모든 모습들이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 훌륭함과 아름다움을 곱다시 받아먹으면서 뒷날 훌륭한 책 하나 빚어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 창작책이 드물고 온통 번역책투성이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자리를 ‘훌륭한 수수함’이나 ‘아름다운 수수함’을 내치거나 내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서양바라기로 흐르는 가운데 서양집을 짓고 서양옷을 입으며 서양밥을 먹습니다. 서양노래를 즐기고 서양말로 생각을 펼치고 서양학교로 가서 배우고 돌아옵니다. 이런 우리들한테서 창작책이 나오기는 힘들 뿐더러, 숱한 창작책들마저 ‘나라밖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머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펼쳐내지 못합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도 아니며, ‘우리 것이 나쁜 것이여’도 아닙니다. 우리 것은 우리 삶일 뿐입니다. 우리 삶이 고스란히 우리 책으로 묶일 뿐입니다. 우리 삶은 고스란히 우리 만화가 되고 우리 노래가 되며 우리 영화가 되다가 우리 연극이 될 뿐입니다. 






 (2)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어떤 책일까


 만화평론을 하고 대학교에서 만화창작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박인하 님 새로운 책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를 읽습니다. 박인하 님은 당신 일터인 대학교에서 ‘안식연구년’을 맞이하여 일본으로 식구들이 다 함께 건너가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느긋하게 연구와 창작을 즐기면서 당신 스스로 배우고 느낀 이야기를 뽑아낸 첫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여기 등장하는 풍경들도 일본적인데,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일본 작가들은 만화에 나오는 공간을 현실에서 가장 적절한 공간을 찾아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  (41쪽)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책이름 그대로 ‘만화가 넘치는 나라’인 ‘일본을 여행하고 다닌 이야기’를 담습니다. 더욱이 만화를 퍽 좋아하고 만화이야기를 즐겨서 쓰는 분이 부대낀 삶자락을 담습니다.

 그런데, 책을 처음 펼치고 덮을 때까지, 이 책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로 박인하 님이 우리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지를 좀처럼 알아채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난 일본에 와서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았다’고 하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아니면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에 다 나와 있는 ‘일본 지역 정보’를 알뜰히 그러모아서 보여주고 싶으신지, 또는 ‘한국사람들한테 두루 익숙하다기보다 박인하 님 당신한테 익숙하거나 살갑다 느낀 일본 만화가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가를 몸소 느껴 보려고 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어 보고 싶으신지 알쏭달쏭합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으며 그것도 있을 텐데, 글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어수선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적어도, 책이름 그대로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쯤 이름을 붙이려 했다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구태여 이 책을 들추어보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를 어설프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틀거리에서는 벗어났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박인하 님 취향이 아닌 만화라 할지라도 ‘만화공화국 일본’ 모습을 보여준다 할 만한 작품이 무엇이며 이러한 작품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한국에 꽤 많이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해서 소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2권이나 3권이 나올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 권으로 ‘일본만화와 일본 문화와 일본 삶터’를 다루려 했다면 이번 책 같은 맛보기 짜임새로는 모자라며, 한 권으로 끝내려 한 책이었다 하면 너무 가볍고 어지럽습니다. 그리고, 겉훑기로 그치고 맙니다. 아무개 작품으로 무엇이 있고 줄거리는 어찌어찌 하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이 책에서 다루어 주지 않아도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라면 으레 알고 있을 법하지 않겠습니까. 또, 만화 줄거리와 만화쟁이 작품 소개에 그렇게 자리를 많이 내주면서, 정작 그 만화쟁이 삶과 생각과 자취, 또 그 만화쟁이가 터를 내린 고향 삶터 ‘여느 사람 삶자락과 목소리와 숨결’ 이야기가 어떠한가를 살피는 데에는 너무도 적은 자리만 들이고 말았구나 싶습니다.


.. 아무튼 일본의 역사만화에는 일본의 역사가 있다. 그것도 대단히 매력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  (67쪽)


 만화평론을 하는 분이 내놓는 일본여행기라 한다면, 대학교수로서 만화창작에 뜻을 둔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 제자들 앞에서 내놓을 ‘일본만화는 어떤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하는 강의록이라 한다면, ‘일본땅을 밟지 않고 한국땅에 옮겨진 일본번역만화를 한국땅에서 읽으면서도 다 알 수 있고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애써 일본땅을 안식연구년 월급을 받으면서 지내는 가운데’ 쓰신다면, 시간이며 품이며 돈이며, 더욱이 종이며 책이며 아까운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차라리 더 가볍게 나아가든지, 좀더 무게를 다잡고 엮어내든지, 아니면 깊이 파고들면서 살펴보든지, 또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쟁이를 추려서 한결 너르고 샅샅이 돌아보든지 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 미즈키 시게루는 돗토리 출신 만화가로, 〈게게게의 기타로〉라는 요괴만화를 그려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적 작가다. 그런데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이 문을 열고 나자, 낡고 쇠락한 상점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돗토리는 돗토리 출신 만화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명탐정 코난〉의 인기 작가 아오야마 고쇼의 박물관과 〈아버지〉, 〈열네 살〉의 작가주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 작품의 배경 등을 관광 상품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  (300쪽)


 새삼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를 읽는 동안, 일본 만화쟁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덧붙여, 한국 만화쟁이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기 힘들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흐름은 달라지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신나게 붓끝을 놀리는 만화쟁이는 꾸준하게 일본을 사랑하겠구나 싶고(군국주의로 치닫거나 생태환경 이야기에 등돌리는 일본 정부를 때때로 나무라기도 하면서), 한국에서 태어나 고달프게 붓끝을 휘두르는 만화쟁이는 꾸준하게 한국을 서글퍼하거나 안타까이 여기겠구나 싶습니다.

 하기는, 만화쟁이만 그러하겠습니까. 글쟁이는 어떻고 사진쟁이는 어떻습니까. 책쟁이는 어떻고 연극쟁이는 어떻겠습니까. 농사꾼은, 노동자는, 애 엄마와 애 아빠는 어떠하겠습니까. (4342.8.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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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다바타 세이이치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고장나서 버린’ 자전거일까, ‘버려서 망가진’ 자전거인가
 [그림책이 좋다 70] 다바타 세이이치,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 책이름 :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 글ㆍ그림 : 다바타 세이이치
- 옮긴이 : 엄혜숙
- 펴낸곳 : 우리교육 (2009.4.1.)
- 책값 : 1만 원


 (1) ‘자전거 삶’이 되기까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골목마실을 하면서 ‘버려진 자전거’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잘 안 타는 채로 오래 묶여 있는 자전거’는 드문드문 보는데, 이런 자전거들은 어느 만큼 비눈바람을 맞고 있다가도 누군가 데려가서 헌 쇠붙이로 다시 쓰거나 헌 자전거로 손질해서 다시 쓰곤 합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안 버린다’라기보다는 ‘버릴 자전거가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제 고향 인천이라 하여도 아파트가 많이 몰린 데에는 어김없이 ‘버려진 자전거’가 곳곳에 묶여 있거나 나뒹굴고 있습니다. 전철역 앞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이제는 한국땅에서 상식처럼 되었는데, 전철역이든 기차역이든 버스역이든 학교나 관공서이든 ‘자전거 주차장’이라고 삼은 곳은 ‘자전거를 대어 두는 곳’이 아닌 ‘안 타거나 못 쓰게 된 자전거를 버리는 곳’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자전거 주차장’ 간수를 허술하게 할 뿐 아니라, 비눈바람을 맞지 않게끔 지붕을 씌워 놓지 않기 일쑤요, 지붕을 씌워 놓았어도 비눈바람이 으레 들이칩니다.

 곰곰이 살피면, ‘자전거 주차장’에만 지붕이 제대로 없는 우리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버스역에도 지붕이 없기 마련이요, 지붕이 있어도 비를 제대로 못 가리기 마련입니다. 멋스럽게 꾸며 놓는 버스역 지붕은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비눈바람을 그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도록 마련한 버스역 지붕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모자란 탓인지, 생각을 안 하는 탓인지, 정책이 없는 탓인지, 정책이 엇나간 탓인지, 건설업자가 대충 짓는 탓인지, 건설업자가 함부로 짓는 탓인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엉터리 ‘자전거 주차장’과 ‘버스역 지붕’이 판을 쳐도 우리들 스스로 아무 말이 없습니다. 만들어 주니 고마운 노릇이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이건 자전거 날쌘돌이입니다. 삐걱삐걱 괴상한 소리를 내던 날샌돌이는 결국 이런 곳에 버려졌습니다. “너무해! 난 쓰레기가 아니란 말이야. 제대로 손보면, 아직 힘차게 달릴 수 있다고!” ..  (2∼3쪽)


 지난주에 서울로 마실을 오며 대방동을 지나갈 무렵입니다. 지하도 들머리에 서 있는 자전거 한 대를 보았습니다. 몸통을 까맣게 바른 자전거인데, 얼핏 보기로도 버려진 자전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뒷바퀴에는 바람이 빠져 있고 안장은 사라졌습니다. 신문을 받아보면 신문사 지국에서 거저로 주는 자전거가 아닐까 싶은데, 예전 임자가 자전거 몸통을 까만 스프레이로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 자전거는 왜 여기에 멀뚱멀뚱 서 있을까요. 뒷바퀴에 자물쇠를 채워 놓은 모습으로 보건대, 틀림없이 자전거 임자가 있을 텐데.

 누군가 이 자전거를 몰래 훔치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이곳에 오래도록 묶여 있던 탓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장난 삼아 바퀴에 구멍을 내고 안장을 빼갔을까요.

 자전거 임자가 자전거를 사랑해 주지 않아 오래도록 내버려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 자전거한테는 어김없는 임자가 있으니, 안장이든 다른 부속이든 훔쳐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임자 있는 자전거 부속’을 몰래 빼내고 훔칩니다.

 저도 예전에 길가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조금 오래 볼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중요한 부속을 누군가 빼내는 바람에 자전거를 못 타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부속 빠진 자전거를 자전거가게로 끌고 가서 고쳤습니다. 그 부속은 그 자전거한테만 쓰는 부속이라 그 자전거를 다루는 대리점에서만 고칠 수 있는데, 그 부속을 빼낸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당신한테도 저와 똑같은 자전거가 있기에 그 부속을 빼냈는지, 재미 삼아서 슬쩍했는지, 아니면 자전거 타는 사람을 못마땅해 하기에 일부로 놀려 주려고 했는지 더없이 궁금했습니다.


..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 하나 도와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아아, 나는 이제 틀렸어. 이런 채로 부슬부슬 녹이 슬어 죽고 말 거야!” 날쌘돌이는 엉엉 울고 말았어요 ..  (8쪽)
 





 우리는 자전거를 참으로 쉽게 얻고 쉽게 버립니다. 자전거를 쉽게 거저로 나누어 주고,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다 버립니다.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하느라 이삼십만 원을 썼다면, 또는 이삼백만 원을 들였다면, 섣불리 길가 아무 데에나 자전거를 버리는 일이 있겠습니까. 또는, 짐자전거를 장만하여 일터에서 짐을 나르는 분들이라면 당신들 자전거를 가볍게 내다 버리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자전거를 어디에 쓰려고 생각하면서 장만한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 타고다니겠다고 생각하면서 마련한다면, 자전거를 함부로 버리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내 쓰임새에 알맞게 자전거를 장만하려 한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멋져 보이는(뽀대나는) 자전거를 큰돈 들여 장만할 까닭이 없습니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자전거를 타든, 가끔 먼 나들이 나가는 자전거를 타든 하려 한다면, 괜히 더 값나가는 자전거를 목돈 들여 마련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타는 자전거를 나중에 내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이라면, 또는 내 둘레 이웃한테 넘겨주거나 내 가까운 동무나 살붙이한테 이어주려는 마음이라면, 아무 자전거나 쉬 사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틈틈이 손질하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가운데, 언제나 ‘자전거 삶’을 즐겁게 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겐지 할아버지는 정말로 자전거를 잘 고쳤어요. 이제는 날쌘돌이도 다시 태어난 것처럼 쌩쌩해졌습니다. “자아, 날쌘돌이야. 너, 아프리카에 가지 않을래?” “아프리카요?” “그래, 아프리카는 우리 인간들의 고향이란다. 그 아프리카가 이제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고 불끈 힘내고 있어. 희망 가득한 일이지. 여러 가지로 도움이 필요해. 난 너에게 그런 도움을 부탁하고 싶구나.” “나라도 괜찮아요?” ..  (18∼19쪽)


 봄부터 여름까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석 달에 걸쳐 ‘자전거 정비’ 수업을 함께하면서 여러모로 자전거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바라보는 눈길을 새삼스레 느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 어느 누구도 자전거를 처음 장만하던 날부터 자전거 수업을 하는 그때까지 ‘자전거 닦아 주기를 한 번조차 한 적이 없다’는 대목에서 놀랐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아이 어버이 되는 분들이 아이들한테 ‘얘야, 네 자전거는 네가 스스로 틈틈이 닦아 주고 만져 주고 기름 쳐 주고 해야지’ 하고 가르쳐 주지 못한 탓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 어버이 되는 분들한테 어버이가 되는 분들 또한 ‘자전거 손질하기’를 물려주지 못한 탓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자전거 손질을 일러 주지 못한 탓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내 옷을 빨고, 내 손으로 내 옷을 기우며, 내 손으로 우리 집 걸레를 빨아 우리 집 방바닥을 닦고 하는 버릇을 일찍부터 들여 놓았으면 ‘자전거 닦고 손질하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기 마련입니다. 자동차도 틈나는 대로 닦아 주면서, 아니 자동차는 꽤나 자주 닦아 주면서 자전거를 안 닦아 준다면 어딘가 얄궂지 않겠습니까. 무언가 뒤바뀌지 않겠습니까.


.. “날쌘돌이야, 먼 곳까지 잘 왔구나! 아산티 사아나(정말 고마워)!” 마을의 아이들과 모샤 아주머니가 크게 기뻐하며 마중을 나왔어요. 모샤 아주머니는 마을 보건소의 산파예요. 이렇게 해서 날쌘돌이는 모샤 아주머니를 태우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  (36쪽)


 자전거는 두 다리보다 빠릅니다.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빠릅니다. 그런데 도심지에서는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그리 안 빠를 뿐더러 더 느리기도 합니다. 자동차는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큰짐을 자주 날라야 하지 않는다면 자전거로 나르는 짐으로도 넉넉합니다. 때로는 자동차와 자전거 없이 가방을 메거나 수레를 끌면서 짐을 날라도 됩니다.

 자전거를 알맞고 올바르게 탈 수 있는 삶이 되자면, 먼저 내 두 다리와 내 두 손과 내 몸뚱이를 알맞고 올바르게 가누거나 부릴 줄 아는 삶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두 다리로 내 삶터를 느끼고 내 이웃 삶터를 헤아리는 가운데, 내 두 손을 펼쳐 내 온몸으로 내 이웃을 껴안고 내 동무와 식구를 껴안으며 내 삶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뭇목숨붙이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풀벌레이든 푸나무이든, 또는 풀꽃이든, 가만히 들여다보고 넌지시 손을 내밀며 따스히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가운데 비로소 ‘자전거 삶’이 열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씽씽이도 자전거요 날쌘돌이도 자전거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까닭은 씽씽 내달리거나 날쌔가 휘몰아치는 데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즐거웁자고 타는 자전거요, 바람맛과 다리맛과 땀맛과 길맛, 여기에 사람 사는 삶터를 두루 돌아보고 부둥켜안는 사랑맛을 함께 느끼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번역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를 찬찬히 넘겨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고물자전거가 아닌 ‘날쌘돌이’였지만, 이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아무 데나 내다 버리면서 고물자전거가 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옆지기하고도 보고,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돌려읽으면서 생각을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이 자전거는 처음에는 어느 한 군데가 망가졌을 텐데, 자전거 임자인 아이는 틀림없이 ‘고장난 데를 안 고치고 그냥’ 탔을 테며, 이렇게 타는 동안 다른 곳도 하나둘 고장이 나면서 더는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무 아쉬움 없이 내다 버렸으리라 봅니다.

 이웃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인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가볍게 얻은 물건을 가볍게 다루다가 버리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동무들을 따돌리고 이웃을 따돌리는 모양새도 똑같습니다.


.. “모샤 아주머니 큰일났어요! 아기를 낳으려는데 위험해요! 지금 빨리 와서 도와주세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아주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떠내려가서 자동차는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할게! 날쌘돌이야, 힘내렴!” 모샤 아주머니는 날쌘돌이를 짊어지고 강을 건넜습니다 ..  (42쪽)


 그렇지만 《고물자전거 날쌘돌이》에서 날쌘돌이는 길고양이들을 만나 새 길을 찾게 됩니다. 길고양이들은 저희하고 생각을 나눌 줄 아는 동네 꼬마 유끼짱한테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네며 ‘버려진 날쌘돌이’를 살려 달라고 하고, 유끼짱은 낡고 망가진 날쌘돌이를 스스럼없이 자전거가게까지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 자전거가게 할배는 기꺼이 날쌘돌이를 손질해 주며, 그런 다음 아프리카로 ‘원조품 자전거’가 되도록 다리를 놓아 줍니다.


.. 그날 밤, 날쌘돌이는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츠이마와 모샤 아주머니, 마을 모든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머리속에 뱅글뱅글 맴돌았습니다. “대단하구나! 이렇게 기쁜 일이 있다니, 나는 생각지도 못했어!” ..  (52쪽)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함부로 타는 아이들한테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는 좋은 책동무가 되며 길동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이 그림책을 펼치면서 ‘여느 때 나는 내 자전거나 이웃 자전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돌아보아 주고, 이렇게 돌아본 마음으로 당신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를 곱씹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느낍니다.

 그예 수수하게 펼쳐지는 그림책이요, 딱히 도드라지는 사건사고가 없는 그림책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밋밋하다 할 수 있고, 그림책 겉장에 나오는 ‘유끼짱’이라는 아이가 끝에 다시 나오는 대목을 잇는 얼거리는 퍽 허술하다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책임을 헤아린다면, 책끝이나 책머리에 ‘자전거가 버려지는 일’과 ‘자전거를 되살리는 일’과 ‘낡은 자전거를 손질해서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로 보내는 이야기 들을 짤막하게나마 붙여 준다면,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한테 한결 도움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늘 일어나거나 부대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림책이 아주 드문 모습을 돌아본다면,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는 퍽 싱그럽고 괜찮은 이야기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이 그림책에 담긴 줄거리는 우리 둘레에 대단히 자주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웬만한 사람들은 으레 겪음직하거나 보았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네 그림책 작가나 글책 작가는 거의 못 그려내고 못 써냅니다. 보아도 못 느끼고, 겪어도 못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렇게나마 번역 그림책을 낼밖에 없을 텐데, 나라밖 ‘좋은 생활그림책’을 옮겨내는 마음씀과 눈썰미를 조금 더 가다듬거나 모두면서 우리 땅 우리 사람 이야기로 꾸미는 새로운 생활그림책을 빚어낼 수 있으면 한결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342.8.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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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4 11:56   좋아요 0 | URL
글쎄요.자물쇠가 채워진것으로 봐서는 그냥 거기 나둔 자전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