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님 책 가운데 내 책꽂이에 꽂힌 책을 살펴본다. 《장길산》이나 《모랫말 아이들》이나 《무기의 그늘》이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들이 보이지만, 이런 책은 일찌감치 끈으로 묶어 구석진 자리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지 오래. 내 책꽂이에 아직도 남아 있는 황석영 님 책은 오직 하나, 1985년에 형성사에서 펴낸 《객지에서 고향으로》.

 묵은 책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어 오랜만에 펼쳐든다. 내가 이 책 《객지에서 고향으로》를 만난 때는 1998년이니 열한 해가 지났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던 그무렵에도 황석영 님을 놓고 여러 말이 많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과 함께 《객지에서 고향으로》는 우리들한테 이야기 한 자락 살며시 건네는 책이라고 느끼며 곰곰이 새겨 읽었다.


.. 구공탄은 연탄공장의 기계가 찍어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깊숙한 땅속에서 캐어져 나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처럼 단순한 사실을 연탄집게로 집어올릴 적에 단 한 번이라도 되새겨 본 사람들은 드물 것이리라. 마치 하늘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도회지의 바쁜 월급장이의 깨달음처럼, 이 뒤늦은 고마움은 어딘가 슬프기까지 한 것이다 ..  (31쪽/1973년)


 나로서는 열한 해 만에 펼치는 책. 그러나 열한 해 앞서 이 책은 판이 끊어져 있었다. 1985년에 처음 나온 책이었으니 1990년대가 저물녘에는 판이 끊어질 만도 하지. 그런데 황석영 님 다른 책은 수없이 다시 찍고 거듭 찍고 새로 나오고 하는 가운데, 오직 이 녀석 《객지에서 고향으로》는 되살아나지 못했다. 왜일까? 왜 이 책은 되살리지 않았을까? 너무 옛날 옛적 이야기라서? 이제는 황석영 님 생각하고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아서? 스스로 내버리는 책이라서? 이제는 다르게 살아가는 황석영 님 삶이요 문학이며 생각이요 넋이라서?


.. 확실한 것은 그들이 파괴된 환경 속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인가의 희생에 의해서 우리가 많이 누리는 게 있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돌려주어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자각하고, 그것을 획득하고, 보편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집단적인 위기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야말로 진정한 근대화이며, 사회적 진보였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73쪽/1973년)


 빛바랜 갱지로 된 책장을 만지작거린다. 빛바랜 옛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야말로 예스런 이야기일는지 모른다. ‘오늘’을 살아가려는 황석영 님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이야기일는지 모른다. ‘지난날’을 살았다는 황석영 님을 내세우는 이야기는 되고, 훈장처럼 가슴에 달아 놓는 이야기는 될 터이나,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이웃하고 소담스레 나눌 이야기는 못 될는지 모른다.

 어쩌면, 황석영 님은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당신 둘레 ‘가난한 이웃’을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구경하기는 했어도, 당신 몸을 내맡겨 당신 둘레 가난한 이웃하고 ‘함께 살아가기’는 안 하지 않았을까. 낮은자리 이웃하고 손을 마주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거나 뜨겁게 얼싸안거나 뒹굴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어느 만큼 떨어진 자리에서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면서 글만 쓰고 있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이 너머로는 손뼘 하나만큼도 넘어갈 뜻이 없지 않았을까.

 독재에 무너지고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나쁜법에 옥죄이며 제도권교육에 목졸리는 가운데 사회 푸대접과 따돌림에 앓고 있던 사람들하고는 아주 ‘다른 곳’에서 살아가던 황석영 님은 아니었을까. 돈에 밟히고 이름값에 눌리며 힘에 밀려난 사람들하고는 사뭇 ‘다른 나라’에서 지내던 황석영 님은 아니었을까.


.. 힘센 아이가 그네를 독차지하면 저 혼자 실컷 타도록 버려 두고, 그네에서 벗어나서 다른 놀이를 창조해 내자. 그 아이의 힘을 통해 이익을 보려 하지 말자. 제일 힘없는 꼬마를 잊지 말자. 그와 언제나 같이 있자. 그러는 가운데 구슬과 고리는 보배로 변할 것이다 ..  (99쪽/1983년)


 말이란,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모음이 아니다. 글이란, 손으로 끄적이는 기호모음이 아니다. 내 삶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말이요, 내 삶에서 샘솟는 외침이 글이다. 돈을 바라면서 할 수 없는 말이요, 이름을 바라면서 쓸 수 없는 글이다. 힘을 얻자고 할 수 없는 말이며, 한자리 차지하자면서 쓸 수 없는 글이다.

 사랑이 스미도록 하는 말이다. 믿음이 깃들도록 하는 글이다.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말이다. 믿음으로 껴안는 글이다. 나한테 있는 모든 힘을 바쳐 사랑스러운 손길을 내미는 말이고, 내가 낼 수 있는 젖먹던 힘을 용을 쓰듯 짜내어 나누는 믿음직한 몸짓이다.


.. [황석영] 어떤 형태로든 민중을 신비화하는 것에는 저도 반대합니다. 제가 해남에서 경험한 것이지만, 농민들이 어떤 때는 더 영악하고 현실에 순응적입니다.
[황지우] 우리가 병든 만큼 민중도 병들어 있어요.
[황석영] 그렇지만 민중은 운동의 힘줄입니다.
[황지우] 힘의 저장소로서의 민중에 대한 신뢰를 저도 갖고 있읍니다. 그러나 운동에는 지식인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는 것도 아울러 생각해야 합니다. 《장길산》에서의 김기와 같은 예외적 존재도 있지만, 대체로 선생님의 지식인에 대한 태도는 불신이라기보다는 혐오에 가깝더군요.
[황석영] 제가 지식인을 혐오한다구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저도 지식인의 한 종자인데요. 다만 그들의 기회주의적 포즈가 싫었읍니다 ..  (188쪽)



 그런데 1985년에서 스물네 해를 훌쩍 지난 2009년에 다다른 황석영 님은 우리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시인 황지우 앞에서 “그들의 기회주의적 포즈가 싫었읍니다” 하고 힘주어 말하던 그 황석영 님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글을 쓰고 있는가. 황석영 님 옆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웃으로 있는가. 황석영 님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동무로 있는가. 황석영 님 눈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웃으로 보이는가. 황석영 님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동무로 보이는가.

 《객지에서 고향으로》를 다시 펼쳐 읽는 동안, 소설쓰는 황석영 님은 틀림없이 예나 이제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느낀다. 어김없이 예나 이제나 똑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이 우리한테 건네는 말마디와 글줄은 똑같지 않다고 느껴진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탓일까. 내가 책을 제대로 못 읽은 탓일까. 책에 담긴 이야기가 거짓말이었을까. 책이란 세월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슬어 버리는가. 흘러간 책에 담은 이야기는 쓰레기통에 내던져야 하는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이어오면서 우리한테 ‘참된 목숨 하나 고맙게 받으며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거룩한 사람 길’을 찾고 느낄 책이란 이 세상에 없는가.

 한숨 한 번 쉬고 물 한 잔 마시면서 《객지에서 고향으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인다. 둘레에서 적잖이 내다 버리기도 하고 불사르기도 한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차마 내다 버리지도 못하겠고 불사르지도 못하겠다. 오히려 더 꽁꽁 붙잡아 두고 간직해야 하지 않느냐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책을 내다 버리거나 불사를 때마다 이런 분들은 더더욱 말바꾸기를 하고 거짓말을 하며 핑계를 둘러댈 테니까. 뜬소리와 뜬생각과 뜬몸짓으로 우리 눈을 홀리고 귀를 어지럽힐 테니까.

 나는 《월간 조선》 1980년대치와 조갑제 님 책과 이문열 님 책, 그리고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책 옆에 황석영 님 책을 나란히 꽂아야겠다. (4342.5.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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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이라고 하는 소설쓰는 분이 ‘변절’을 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내 보기로는 황석영 님은 ‘변절’을 하지 않았다. ‘변절(變節)’을 말하려 한다면, 이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살필 노릇이다.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꾼”다고 하는 ‘변절’인데, 황석영 님한테 ‘절개나 지조’는 무엇이었을까. 황석영 님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자리나 마음밭은 무엇이었을까. 황석영 님은 어떤 매무새로 문학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우리한테 들려주려고 했을까.

 황석영 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믿는 분이었다면, 마땅히 황석영 님 글이든 책이든 작품이든 무엇이든 살피면서 이분 매무새와 넋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이분 매무새와 넋을 고이 살펴 왔다면, 황석영 님은 ‘변절’이 아닌 ‘당신 삶결’ 그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황석영 님이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한다 하여 슬퍼하지 않는다. 안타깝다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늙은’ 황석영 님은 ‘어린’ 황석영이나 ‘젊은’ 황석영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일는지 모른다. 스스로 ‘가난한’ 마음자리를 잃고 ‘돈많고 이름높고 힘있는’ 마음자리로 갈아탔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갈아타는 사람들은 당신들이 어리거나 젊을 때에도 ‘돈-이름-힘’에 어느 만큼 눈독을 들이고 있지 않았겠는가. 이들이 처음부터 ‘돈-이름-힘’에 매이지 않으면서 홀가분한 넋과 얼로 자유와 사랑과 평화와 평등과 통일을 외쳤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갈아타기를 했다기보다는, ‘가난한’ 마음밭을 조용히 일구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고 해야 옳지 싶다. ‘가난한’ 마음밭이 얼마나 내 삶과 이웃 삶을 너그럽고 즐겁게 북돋우는지를 깨닫지 못했다고 해야 맞지 싶다. ‘가난한’ 마음밭으로 살아가는 당신 삶은 당신한테뿐 아니라 우리 모두한테 기쁨과 보람을 나누는 일음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알맞지 싶다.

 내남없이 ‘세상에 둘도 없는 구라쟁이(이야기꾼)’라고 하는 황석영 님인 줄 안다. 당신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무엇인가를 할 때에 우리 나라를 아름다이 일으키거나 추스르거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아무렴. 이렇게 손잡는 일이란 잘못이 아니다. 손을 잡건 발을 잡건 옳게 일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누구하고 손을 잡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손을 잡느냐이며, 손을 잡고 무엇을 어떤 모습으로 하느냐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맞잡은 다음 ‘이명박 뜻대로’ 한다면, 또는 ‘황석영 이름값-돈값-힘값을 더 높이려는 뜻대로’ 한다면, 황석영이라고 하는 분은 아주 ‘개밥’일 뿐일 테지. 저 스스로 제 삶에 임자가 못 되고 ‘손님’이 되어 버린 불쌍한 떠돌이일 테지. 입은 살았되 몸뚱이가 오롯이 살아 있지 못한 한낱 ‘돼지꿈’일 테지. (4342.5.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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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Pong Pong 3 - 완결
오자와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착한 사람, 착한 만화, 착한 웃음과 눈물
 [살가운 만화 47] 오자와 마리, 《PONG PONG》



- 책이름 : PONG PONG (1∼3)
- 글ㆍ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서수진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8.9.15.∼2009.4.15.)
- 책값 : 한 권에 4200원씩



 (1) 착한 만화 즐기기


 만화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밤이 새는 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만화가 비슷하거나 겹치면 여러 날 지치지 않고 이야기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그런데 둘레에 만화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여도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분은 생각 밖으로 그리 안 많고, 순정만화를 좋아한다고 하여도 제가 즐기는 순정만화와 그분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가 어느 만큼 벌어지기도 합니다.

 나라안 만화로는 김진, 원수연, 박연, 황미나, 김혜린, 강경옥 들을 즐겨 보았습니다. 나라밖이라기보다 일본 만화로는 오사무 야마모토, 준코 카루베, 니노미야 토모코, 미츠하시 치카코, 오자와 마리 들을 즐겨 보고요. 이 가운데 미츠하시 치카코 님 작품은 나라안에 제대로 옮겨지지 않아 거의 헌책방에서 일본판으로 만나 책장을 넘기는데, 일본글을 읽을 줄 몰라도 그림결로도 따뜻함과 수수함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글은 그 나라 글을 따로 익히거나 번역책을 읽어야 하지만, 사진과 그림과 만화는 그 나라 글을 모르고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함께하면서 즐길 수 있다고 할까요.


..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하고, 완전 데이트하기 딱 좋네. 이런 날, 이런 냄새 나는 사내놈들 틈바구니에서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하필 하고 많은 학교 중에 이런 남학교에 왔나 몰라. 이런 산속에선 땡땡이쳐 봐야 할 일이라곤 나물 캐기밖에 없을 텐데.’ ..  (1권 10쪽)


 다만, 순정만화를 그리며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분들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즐기지는 않습니다. 저한테는 저대로 좋아하는 만화가 있기 때문인데, 어떻게 보면 딱히 ‘순정’만화를 즐긴다기보다, ‘착한’ 만화를 즐겼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란마 1/2》이나 《도레미하우스》 같은 만화를 보면서도 이야기가 퍽 착하다고 느끼면서 좋아했는데(어찌 이 만화들이 ‘착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만화란 누구나 저 보고픈 대로 보고 느끼고픈 대로 느끼기 나름이라는 말씀을 올립니다), 저로서는 착하지 않은 만화에는 그리 눈길이 끌리지 않습니다.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 같은 작품은 퍽 눈여겨볼 만하다고 느끼면서 즐겨 보기는 했지만, 좀 뾰족뾰족하다고 해야 할까, 어지럽다고 해야 할까,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얼마나 뒤틀렸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니 그 느낌 그대로 만화를 그릴밖에 없었을 텐데, 한 번 덮고 난 뒤로는 다시 들추지 않습니다. 《따끈따끈 베이커리》는 얼핏 느끼기에는 착할 듯 보였지만, 정작 권수를 더해 가면서 짓궂고 억지스러운 대목이 많아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와 견준다면 《딸기 100%》가 한결 나았다고 보는데, 야자와 아이 만화 가운데 《NANA》가 퍽 많이 사랑받고 있지만, 저한테는 《NANA》나 《파라다이스 키스》보다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천사가 아니야》가 훨씬 사랑스럽고 즐거웠습니다. 






.. “미안해. 오오시마. 내가 가서 설명할게. 단장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지금 바로.” “아냐, 됐어.” “그치만, 그동안 팀을 꾸리고 열심히 애쓴 건 넌데.” “우리 모두지. 모두가 같이 노력한 거잖아.” ‘아아. 바로 이 미소야.’ ..  (1권 41쪽)


 생채기를 남기는 줄거리를 다루기 때문에 ‘착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두 갈래만이 아니기 때문이요, 세상을 둘로 가른다 할 때에도 ‘까망과 하양’으로만 가를 수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흥미 님이 그린 《디스》나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 집》은 ‘그림감을 무엇으로 잡든 그림결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서 따스함과 수수함은 사뭇 달라짐을 보여줍니다. 송채성 님이 그린 《취중진담》도 그렇습니다. 《쉘 위 댄스?》나 《미스터 레인보우》도 그렇고요. 가난, 아픔, 외로움, 성 정체성, 푸대접, …… 세상을 가르는 수많은 잣대를 만화로 다루든 사진으로 다루든 글로 다루든, 우리가 받아들여 삭여내기 나름입니다.

 그예 뾰족뾰족하게 마주할 수 있으나, 거울처럼 튕겨낼 수 있습니다. 그지없이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으며, 스스럼없이 껴안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척 흘려보낼 수 있는 가운데, 깨닫지 못하며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맨발의 겐》처럼 아주 투박하면서도 거칠게 ‘전쟁과 평화’를 담아낼 수 있지만, 《머나먼 갑자원》이나 《도토리의 집》처럼 참으로 부드러우면서 살가이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느끼도록 할 수 있어요.


.. “후유코 누나는 했어요?” “어?” “노력요. 토고 선배한테 왜 좋아한다고 말 안 해요.” “그야, 예쁜 앨 좋아하니까. 그리고 약해져 있을 때를 이용하는 건 솔직히 안 내켜. 대학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그건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억지로 고백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서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포기하고. 그런 건, 무지 꼴사나워요.” ..  (1권 71∼72쪽)


 《게임방 소녀와 어머니》 같은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우리 깜냥껏 재미난 틀을 마련한다면 몹시 애틋하면서 맑은 웃음을 티없는 눈물과 함께 선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린이가 3권으로 너무 짧게 끝내 버린 대목이 아쉽지만, 한국 만화밭으로는 3권까지 그린 대목이야말로 놀랍다 할 수 있어요. 권수가 늘어날수록 재미가 떨어져 이제는 더 안 보지만, 《알바고양이 유키뽕》 같은 일본 만화는 참 놀라웠습니다. 나라안에도 《납골당 모녀》를 그린 강현준 님이 《cat》을 그렸는데,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꽤 많으면서도 이렇게 재미와 웃음이 톡톡 묻어나게끔 살뜰히 그리는 만화쟁이는 너무 없습니다. 바라보는 눈이 굳었다고 할까요, 느끼는 가슴이 닫혔다고 할까요.

 그렇다 하여 ‘착한’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바라보는 눈이 말랑말랑하고, 느끼는 가슴이 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하게 그릴 줄만 알고 알맹이가 없는 만화도 많으니까요. 그린이 스스로 우리한테 할 말이 있는 가운데 착하게 엮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흐뭇하면서 즐거운 만화, 두 번 세 번 거듭 들여다보며 즐기는 만화가 된다고 봅니다.

 《빈곤자매 이야기》라든지 《빈민의 식탁》 같은 작품이 이런 얼거리에 걸맞는 ‘착한’ 만화입니다. 《여자의 식탁》도 돋보이는 착한 만화이며, 같은 이름으로 된 책이 많은데, 이와시게 타카시 님 《흐르는 강물처럼》도 눈여겨볼 작품입니다. 《내 마음속의 자전거》 또한 따뜻함과 넉넉함과 살가운 들을 듬뿍 담으며 우리한테 ‘야무진 알맹이에 책장 넘기는 재미’를 한껏 북돋우는 작품입니다. 자전거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내 마음속의 자전거》와 함께 《스피드 도둑》도 좋아하지만, 저는 《스피드 도둑》은 그리 내키지 않아요. 지나치게 ‘싸움을 붙이’고, ‘서로를 너무 미워한’다는 느낌이 짙으며, ‘더 세고 튼튼하고 커야’지 좋은 듯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 ‘역시, 오타쿠틱해. 그래도 좋아. 그냥 좋아. 이유 없이 좋아.’ ..  (1권 83쪽)


 애장판으로 다시 나와도 널리 사랑받는 《아기와 나》 같은 작품 또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착한’ 만화입니다. 《최종병기그녀》를 그린 다카하시 신 님 작품 《좋은 사람》은 책이름부터 ‘착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라고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할 말’과 ‘보여줄 이야기’가 뻔히 드러났어도 기쁘게 읽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님 《야와라》도 얼핏설핏 느끼기로는 ‘착한’ 쪽으로 흐를 듯했지만, 이 또한 《스피드 도둑》처럼 ‘더 크고 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플루토》를 볼 때에도 기쁨이나 반가움보다다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낍니다(틀림없이 《플루토》를 아주 좋아할 분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또한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잘 그리지도 못했다고 느낍니다). ‘아톰’에서 밑생각을 따오는 대목이야 그린이 자유입니다만, 테즈카 오사무 만화에서 ‘아톰’은 그냥 그런 ‘로봇’이 아니에요. 테즈카 오사무 만화에서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주인공에 어떤 마음과 넋이 담겼는가를 읽어내어야만, 또 느껴야만, 또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아톰을 따왔다’고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붓다》며 《불새》며 《뱀파이어》며 《노만》이며 《미크로이드 S》며 《아야코》며 《넘버 7》이며 《블랙잭》이며,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에 남달리 스민 사랑과 믿음을 읽어내지 않고서 섣불리 ‘아톰’을 불러오는 일은, 우라사와 나오키 님은 당신 이름만으로도 사랑을 두루 받고 있지만, 스스로 어줍잖은 이름값을 좀더 높이려는 얕은 손길이라고 느낄 뿐입니다.


.. “상대팀 치어리더는 우리와 달리 전부 여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대. 우리 팀이 이기지 못하는 건 아마 그것뿐일 거야! 하지만 여장을 하면 틀림없이 그것도 문제없어! 적어도 관객을 웃기는 건 우릴 테니까!” ..  (1권 116쪽)


 《아기공룡 둘리》뿐 아니라 《아리아리 동동》이라든지 《일곱 개의 숟가락》이라든지 《소금자 블루스》라든지 《볼라볼라》라든지 《꼬마 인디언 레미요》라든지 《쩔그렁쩔그렁 요요》라든지 《미스터 점보》라든지 《오달자의 봄》이라든지 《자투리반의 덧니들》이라든지 《홍실이》라든지 《1남3녀 막순이》라든지 《날자 고도리》 같은 작품에 한결같이 흐르는 구수한 사랑과 뜨거운 눈물이란, 내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을 느끼고 네 가슴속에 살아숨쉬는 하느님을 만나는 반가움입니다. 이러한 반가움이 없이 그리는 만화라면 겉보기로는 착해 보이는 만화이지만, 속살은 하나도 착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백성민 님 만화를 날카롭고 무섭다고도 하던데, 《장산곶매》와 《삐리》와 《장길산》과 《백범일지》 들에 흐르는 붓질은 더없이 반갑고 기쁜 봄비와 같습니다. 《노을》이나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한 ‘한국현대문학 단편선’ 같은 오세영 님 만화는 얼마나 따뜻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착한’ 만화였던가요.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잡아채는 손길만이 아니라,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골고루 따스하게 보듬는 손길이기 때문에 이 같은 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 이희재 님이 《간판스타》와 《제비전》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그리던 손길도 이렇게 따뜻했고, 이상무 님이 그린 《포장마차》도 이와 같이 부드러웠습니다.


.. “남자를 좋아해?” “아니. 그건 아냐. 그래서 밤새 고민했는데, 아마 너니까 좋아하는 걸 거야. 넌?” ..  (1권 192쪽)


 이런저런 까닭 때문에, 저로서는 요즈음 한국 만화를 그리 즐기지 못합니다. 그나마 《내 어머니 이야기》 같은 작품이 나오고, 《옥상에서 보는 풍경》 같은 작품도 나오며, 《꽃》과 《노근리 이야기》 같은 작품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말 한 마디 넣지 않아도 가없는 사랑과 기쁨을 ‘착하게’ 그려낸 에리히 오저 님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지, 아니 한국땅에 걸맞게 그려낼 누군가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아즈망가 대왕》이나 《요츠바랑!》처럼 꾸밈없이 우리 삶자락을 담아낼 만화를 아끼고 붙잡을 붓질은 언제쯤 이 나라에서 다시 꽃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길창덕 님처럼 단출한 붓질로, 윤승운 님처럼 시냇물 같은 붓질로, 또 김동화 님처럼 꽃잎사귀 같은 붓질로 착한 마음을 나누고파 하는 만화는 언제쯤 우리 삶터에서 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2) ‘오자와 마리’가 바라보는 삶터


 착한 만화를 떠올리며 더듬다 보니 새삼 송채성 님 만화가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둘레에 아는 분들한테 가끔 송채성 님 작품을 선물해 주곤 하는데, 모두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고 “순정만화잖아?” 하면서 “난 순정만화 안 보는 줄 알면서 왜 이런 책을 읽으라 해?” 하면서 싫어했지만, 막상 만화를 다 보고 나서는 “이런 순정만화도 있구나.” 하면서 “다른 작품 더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송채성 님은 이승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3월에 저승사람이 되었습니다. 벌써 다섯 해가 지났으니 세월 참 빠르구나 싶은데, 착한 만화를 떠올릴 때마다, 또 《퐁퐁(PONG PONG)》 같은 만화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송채성 님 만화가 그립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송채성 님이 더 오래오래 살면서 당신 만화밭을 일구었다면, 당신 깜냥껏 《취중진담》을 그리고 《쉘 위 댄스?》처럼 두고두고 명작이라 할 만한 작품을 또 하나 낳을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일본에서 오자와 마리 님이 《퐁퐁》을 그린다면, 한국에서 송채성 님이 ‘뭐뭐’를 그린다고 나란히 놓을 수 있었을 테고요.


.. “아, 새가 오네요?” “예. 전에 여기서 가게를 했던 사람이 매일 쌀이랑 빵부스러기를 창가에 올려놨던 모양이에요. 참새랑 개똥지빠귀가 지금도 잊지 않고 찾아오죠. 그래서 저도 예전 주인처럼 빵부스러기를 주고 있어요.” “멋지네요. 잘 먹었습니다. 커피, 정말 맛있었어요.” “또 오세요.” ‘엄마의 뜻밖의 일면을 알게 됐다. 재즈바에 있는 자그만 창문.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에 있는 창문이라 낮에도 어두침침하고 별 의미 없는 창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미는 있었구나. 엄마도 남몰래 작은 정원같이 안정되고 조용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거야.’ ..  (2권 28∼30쪽)


 만화 《퐁퐁》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성 정체성은 여자’인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이런 이야기는 꽤 많다 할 수 있는데, 《방랑소년》도 같은 그림감을 다룹니다. 아쉽다면, 《방랑소년》은 권수를 거듭할수록 어영부영 실마리가 흐려지면서 재미가 떨어집니다.

 아직 우리 세상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좀더 오래도록 길게 펼쳐지지 못하나 싶곤 합니다. 막힌 세상에서는 막히지 않은 꿈을 꾸기도 하지만, 막힌 틀에 매인 채 뾰족뾰족이로 에돌고 마는 사람이 꽤 많거든요. 고달픈 삶이기에 으레 고달픔을 얼굴 가득 담아낸 채 살잖아요. 고달픈 삶이기에 더더욱 홀가분함과 기쁨을 온몸 가득 펼치면서 살지 못하고 말입니다.


.. “오늘 시간 더 있어요?” “있어. 뭐 하고 싶은데?” “저기.” “말로 해. 눈앞에 있으니까.” “그, 그럼, 거, 걸으면서 얘기하기.” “나야 좋지만, 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냐?” “예?” “얼굴이 빨개.” “아, 아픈 건 아니에요. 그건 아마, 아마.” “라면을 먹었기 때문에?” “예? 아아, 아뇨, 그게 아니라. 그건 제가 선배를 좋아히기 때문이에요.” ..  (2권 77∼80쪽)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퐁퐁》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낱권으로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주인공 ‘라이조’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듯, 한 계단 두 계단 마음이 자라납니다.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을 또렷하게 깨닫고, 차근차근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다짐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채 살아갈는지, 내 꿈을 접은 채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는지, 겉과 속을 하나로 모둔 채 살아갈는지, 세상 이끌림이 아니라 내 꿈대로 살아갈는지 찾아나섭니다.

 그러면서 부딪힙니다. 맨땅에 머리를 박듯, 달걀이 아닌 맨주먹으로 바위를 치듯 박고 넘어지고 까지고 긁힙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딪히면서, 다치면서, 아파하면서 ‘어린이’에서 ‘푸름이’를 거쳐 ‘어른’ 한 사람이 돼요.

 나를 속이지 않으며,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길을 찾습니다. 나를 믿으면서 남을 믿는 마음이 무엇인가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도록 하면서 내 삶터에서 나 스스로 아름답고 내 이웃과 함께 모두가 아름다울 자리가 어떠한가를 배웁니다.


.. “난 이렇게 미키랑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게 좋았어.”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손을 잡으면 항상 꼬옥 마주 잡아 왔었지?” “응, 이런 식으로.” “그래 맞아. 나도 그게 좋았어.” “그건 내가, 어릴 때부터, 항상 길의 가장자리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기분이었기 때문일 거야. 미키랑 있으면 길 가운데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래서 이 손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건 역시 날 속이는 짓이었어. 마음 한구석에선,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미안해.” “하지만, 너한테 마음이 설렜던 거나, 네 덕분에 실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거, 그리고 널 좋아했던 건, 결코, 거짓이 아니었어.” “응, 알아.” ..  (2권 155∼157쪽)


 《퐁퐁》 3권 마지막을 보면, 주인공 ‘라이조’보다 훨씬 늦게 제 삶과 모습을 느끼고 찾은 ‘토고’ 선배가 속으로 한 마디를 읊습니다. “다시 한 번 너를 만나 다행이었다.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라고.

 착한 만화 《퐁퐁》은 바로, 그린이 오자와 마리 님이 읽는이 우리 모두한테 마음을 건네고파 내놓은 작품입니다. 그린이가 건네고픈 마음이 사랑이었을는지는, 또는 믿음이었을는지는, 또는 다른 마음이었을는지는, 읽는이인 우리 스스로 헤아리고 곱씹고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3)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며


 저는 만화책을 볼 때면, 되도록 잠자리에서 홀로 조용히 보고자 합니다. 또는, 하루일을 마치고 보리술 한 병을 구멍가게에서 사다 마실 때 혼자서 고즈넉하게 보고자 합니다.

 웃음이 터져나올 때 누구 눈치를 안 보고 거리낌없이 웃고 싶거든요. 울음이 솟아날 때 누구 눈치 아랑곳 않고 스스럼없이 울고 싶거든요.


.. “그래서, 답은 나왔어요?” “아니.” “선배는, 뭐든 흑백으로 나눠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군요?” “맞아. 옛날부터 그랬어. 답이 안 나오면 잠을 못 자는 편이었지.” “그럼 역시, 제 존재 자체가 선배한테는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전 평생 회색이었으니까.” ..  (3권 18∼19쪽)


 실컷 웃게 하고 마음껏 울게 하는 만화는 책상맡에 한 해쯤 올려놓고는 하는데, 이렇게 올려놓으며 날마다 겉그림을 바라보고 때로는 선 채로 한 번 다시 넘기고 나서는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앞으로 어떤 새 작품을 내놓을지 기다려지면서 한숨이 나오고, 앞으로 이분을 비롯해 다른 분들이 다른 새 작품을 내놓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이 나옵니다.


.. “탈의실에 유니폼 준비해 놨을 거야.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올까? 남성용이든 여성용이든 입고 싶은 걸로 입어.” “예. 예?” “고등학교 때 치어리더복 입었었지? 신문에서 봤어.” “아, 그건 그냥 연출로.” “이쪽이야. 이게 여자 거고, 그 옆이 남자 거.” “농담 아니었어요?” “참고로 이건(내가 입은 옷은) 남자 거. 여자 걸 입을 때도 있지만, 거의 이걸 입어. 난 트랜스젠더거든.” “…….” “점장님은 개인을 존중해 주시지.” “여긴, 회색이라도 괜찮군요.” “회색?” “세상은 흑과 백만 인정해 주는 줄 알았어요.” “기왕 중간색을 지칭할 거면 흑과 백 사이보단 홍과 백 사이가 예쁘지 않겠어?” “홍과 백?” “장밋빛깔. 바로 그 입술색 말야.” ..  (3권 28∼30쪽)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면서 지난날 느낀 벅참과 설렘을 새삼스레 받아들이는 일은 즐겁습니다. 아마 언제까지나 이 마음이 고이 이어갈 수 있다면 참말 기쁠 테지요.

 그런데 오늘 하루 제 마음에 스며든 좋은 ‘착한’ 만화 하나는 갑작스레 뚝 하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그린이는 그동안 숱하게 습작을 했습니다. 다른 작품도 꾸준히 그리는 가운데 비로소 ‘즐겁고 반갑고 기쁘고 좋은 착한’ 만화 하나가 제 품에 안깁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를 그린 카루베 준코 님이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그린 다음, 《푸른 하늘 클리닉》을 그려내듯, 그리고 또다른 작품을 빚어내려고 애쓰고 있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니코니코 일기》를 그린 오자와 마리 님은 《퐁퐁》을 마무리지으며 《민들레 솜털》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을 다시금 끝내면 또다른 작품으로 우리한테 살그머니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고인 물이 아니니까요. 어느 누구든 흐르는 강물 같은 사람이요, 흐르는 사랑을 널리 나누어 주면서 새로운 사랑을 새삼스레 가슴에 담으면서 기다리니까요.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 《퐁퐁》을 더 오래오래 책상맡에 놓으며 거듭거듭 즐길 수 있습니다만, 또다른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책꽂이에 보기 좋게 꽂아 놓은 다음, 저부터 스스로 새로운 만화길을 찾도록 기지개를 켜야겠습니다. (4342.5.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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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을 걷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2
김담 지음 / 텍스트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위인전’ 아닌 ‘살아온 이야기’ 한 자락
 [잠깐 읽기 33] 김담, 《그늘 속을 걷다》



- 책이름 : 그늘 속을 걷다
- 글 : 김담
- 펴낸곳 : 텍스트 (2009.3.30.)
- 책값 : 9000원



 (1) 그늘 자리에서 살아온 길


 ‘책이야기를 하는 잡지’ 〈텍스트〉가 있습니다. 띄엄띄엄 나오고 있으나 아무런 사람줄과 학교줄과 돈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책이야기만 꾸밈없이 수수하게’ 펼치는 작은 매체입니다. 이 잡지를 정기구독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알쏭달쏭했는데, 이태쯤 지나고 나서 이야기를 들으니, 일터에 도둑이 들어 정기구독자 주소가 든 셈틀을 훔쳐 가는 바람에 보내 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출판사에까지 들어가는 도둑이라면 먹고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사람이었을까 궁금한데, 그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훔칠 만한 물건은 아무래도 셈틀이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출판사로서도 그 셈틀이야말로 둘도 없는 재산입니다. 셈틀이 비싸고 값싸고를 떠나, 출판사 한 곳을 꾸리며 이루어 온 모든 자료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4월 초에 전학했을 때 내가 받은 반 번호가 67번이었지만 그 뒤로도 쉬지 않고 전학생들이 들어왔다. 전학을 오는 반 동무들의 고향도 경향 각지였으나 무슨 이유로 전학을 왔는지는 다들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월요일 애국조회라도 할라치면 사람멀미가 났다. 지루한 조회가 끝나고 각자 자기 반으로 향하는 행렬은 처음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지경으로 길디길었고 운동장에는 온통 흙먼지가 보얗게 일어났다 ..  (13∼14쪽)


 ‘책이야기를 하는 잡지’ 〈텍스트〉에서 올 3월에 낱권책 세 권을 한꺼번에 펴냈습니다. 곧 두 번째로 세 권을 더 펴낸다 하고, 앞으로도 세 권씩 꾸준하게 펴낸다 합니다. 이참에 나온 세 권과 다음참에 나올 세 권, 또 앞으로 꾸준히 세 권씩 나올 낱권책은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쪽수로 치면 200쪽 안팎이고 책값은 모두 9000원입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판크기는 아니지만, 단출하게 들고 다닐 만큼 가볍고 수수하게 엮는 손바닥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권은 《신호등 건너기 게임》(신민영 글)이라는 이름이 붙고, 2권은 《그늘 속을 걷다》(김담 글)라는 이름이 붙으며, 3권은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한윤형 글)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 가운데 둘째 책을 골라서 읽습니다.

 책끝에는 ‘릴레이 인터뷰’가 퍽 길게 실립니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를 쓰는 젊은 글쓴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2권 《그늘 속을 걷다》에는, 1권을 낸 신민영 님이 2권을 낸 김담 님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실립니다. 이 자리에서 김담 님은 “이제는 돈이 먼저가 되는 거죠. 아이를 위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던 게 전도돼 버린 현상들이 생기잖아요. 돈을 버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돈이 신이 된 거죠. 아이를 위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 건데, 돈을 벌다 보니까 피곤해져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요 … 옛날에는 사람이 돈을 썼는데, 지금은 돈이 사람을 쓰죠.(19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늘 속을 걸었다는 김담 님 이야기에다가, 요즈음 사람들 살림살이를 짚은 한 마디를 곱씹으면서, 어쩌면 앞으로도 이 굴레는 걷히지 않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를 생각해서 버는 돈이 아니요, 나를 생각해서 버는 돈이 아니며, 식구와 동무를 생각하며 버는 돈이 아닌 오늘날 삶이 그예 굳어 버리면서, 우리 마음과 넋과 살림새마저 딱딱하고 메마르게 굳어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시골에서는 할머니가 참빗으로 아침마다 물을 묻혀 착착 머리카락을 빗겨 손질해 주었으나 도시로 이주한 뒤로는 그런 알뜰한 손길을 기대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끼니마저 직접 챙기고, 때로는 밥까지 지어야 했다 ..  (25쪽)


 김담 님 말마디는 이어집니다. “도시에서는 공부를 안 하고 건들거리면서 놀아도 일단 보고 듣는 게 있고 즐길 만한 문화가 있죠. 하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집에 와서 하는 거라곤 기껏 게임밖에 없어요.(197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도시’라고 했지만, 낱말을 ‘서울이나 부산’쯤으로 고쳐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서울’이나 ‘서울처럼 큰 도시’나 ‘서울과 부산 같은 도시’라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틀림없이 ‘작은 도시’에도 즐길거리나 놀이거리가 있기는 있습니다. 작은 극장이 있는 읍이나 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읍이나 군은 도심지라는 곳이 아주 짧아 몇 분 거닐면 끝입니다.

 제가 태어나 사는 인천을 떠올려 봅니다. 서울사람은 인천에 오면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으며 ‘즐길 놀이가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저야 골목마실을 하고 책방마실을 하지만, 인천에 남아 있는 책방 숫자는 새책방과 헌책방을 통틀어 열 몇 곳밖에 안 됩니다. 아예 없는 동조차 있습니다. 연수동이나 관교동이나 송도 같은 데에는 오로지 아파트뿐이요, 뭔가 사람이 갈 만하다 싶게 만든 자리에는 오로지 술집이 그득차 있습니다. 가느니 술집이요 하느니 술마시기입니다. 이름이 도시일 뿐이라 사람이 더 많아 술집 또한 좀더 많이 있을 뿐이라고 할까요. 공연문화든 출판문화든, 공연예술이든 출판예술이든 하나도 없다 하여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역 문화재단이 있고, 지역문화 활동가가 있으며, 저 또한 지역문화를 한몫 맡는다는 소리를 듣지만, 언제나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너나 없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곳에 어떤 ‘지역’과 ‘문화’가 있겠느냐고. 새벽바람으로 일하러 서울로 빠져나가, 밤바람으로 잠만 자러 인천으로 돌아오는 판에, 이곳에 무슨 삶이 깃들겠느냐고.


.. 내가 다닌 여자중학교는 여자고등학교와 같은 재단 소속으로 교문을 함께 썼으며 중교 선도부 학생들이 교문 좌우로 벌리고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감시, 적발하고 벌까지 내렸다. 아침 조회시간이면 무슨무슨 일을 하지 말라고 시작하여 종례 시간 또한 무슨무슨 일을 하지 말라고 끝냈으나 우리들은 교문만 벗어나면 그런 주의사항 같은 것은 까맣게 잊었다 … 고등학교 교복은 일본과 자매결연 맺은 일본 학교의 교복과 같았다. 청소시간이면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반드시 써야 했으며 금지사항이며 주의사항을 외려 들면 숨이 가빴다. 소지품 검사 또한 예고 없이 불쑥 시행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책가방 속을 홀라당 털어 열어 보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시되었다. 소지품가방 속에 바늘쌈지, 손거울 등은 필수품이었다. 몸을 지켜야 한다는 순결주의의 강조는 순혈주의와 내통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현모양처의 여성상이 자리잡아 갔다 … 학교도 병영과 다를 바 없었으며 학급의 반장은 곧 담임선생님을 대리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평등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일러 준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  (34∼36, 41∼42, 72쪽)


 김담 님은 거듭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시골을 떠나와 성남에서 적응하는 데 힘들었어요. 일단 마당이 없잖아요. 골목이 쭉 있고, 거기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아유, 숨이 안 막히나요?(204쪽)”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옆지기는 우리 아이를 걱정해서라도 우리가 새로 얻어 살 집에는 ‘작더라도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넓고 시설이 괜찮다 하여도 빌라 같은 데는 우리 삶하고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옆지기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살림에 맞는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이 빌라 저 빌라에 들어가 보는데, 그곳에서 알뜰살뜰 살림 잘 꾸리는 분들이 많기는 하나, 하나같이 너무 어둡고 어수선했습니다. 3층이나 4층쯤 되면 햇살이 살짝 비추지만, 1층이나 2층은 한낮에도 집에서 불을 켜야 합니다. 인천은 그나마 반지하 집은 거의 없다 할 만하기는 한데, 반지하가 아님에도 한낮에 불을 켜야 한다면 사람이 사람다이 살기 어려운 데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이 없으니 그런 데에서라도 살아야지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없으니 더더욱 사람다움을 찾거나 느끼면서 살 작은 방 한 칸을 얻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햇볕 한 줌과 바람 한 점을 먹으면서 살 방 한 칸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한완상 교수가 쓴 《민중과 지식인》을 통해 처음 민중이라는 낱말을 접했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으로서 민중이라면 부모를 비롯하여 나 또한 민중일 테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낱말이었다. 계급과 계급의식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 직업란에 건설현장에서 날품을 파는 아버지의 직업을 ‘건설업’이라고 기재했던 기억은 또렷했다 … 선배들은 철학책을 권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출간한 책들은 내 깜냥으로는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몇 번 읽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  (77, 82쪽)


 김담 님은 당신 책 《그늘 속을 걷다》 머리말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세월이 바뀐 이제는 일상다반사였던 이런 일들이 일회성 이벤트 행사로 진행되거나 아니면 무슨무슨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희번드르르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과거는 다시 돌아갈 수 없거나 추억할 수 있을 때 과거일 테지만 그러한 까닭에 각색되거나 조작되는 경우 또한 없지 않을 것이었다. 우파들이 과거를 악용, 남용하는 것과 같이……(6쪽)”

 제 삶을 돌이켜봅니다. 저는 ‘추억’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억에 잠길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곁에는 아홉 달짜리 갓난쟁이 아기가 있고, 둘레에는 어미 잃은 눈도 못 뜨는 새끼 고양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지역 막개발 반대 집회’에 나가야 하기에 부랴부랴 짐을 꾸려 일산에서 인천까지 새벽밥 먹고 날아가야 하며, 저녁에는 책 팔러 서울마실을 해야 합니다.

 저한테 ‘추억’이라 한다면, 하루하루 잊지 않고 땀흘려 보내는 ‘삶’입니다. 술자리에서 떠들거나 무슨무슨 잔치판에서 떠벌이는 놀음놀이가 아니라, ‘늘 새롭게 맞이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김담 님이 쓴 《그늘 속을 걷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김담이라는 한 사람이 가슴에 품고 있는 추억’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김담이라는 한 사람이 온몸으로 부대낀 역사’라고 느낍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학자나 지식인은 ‘마을 토박이라 하는 할매 할배’를 찾아서 옛이야기를 듣고 엮고 짜고 하면서 ‘옛날엔 그랬었지’ 하는 추억을 끝없이 만들고 있는데, 정작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내 동무요 이웃이요 후배요 선배요 아재요 아지매요 누나요 동생이요 언니요 오빠요 하는 사람하고는 만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 역사’를 바로 이 자리에서 여미지 않습니다. 꼭 세월이 흘러 자료 찾기도 어렵고 사람들마다 잊어버리기도 한 나중에서야 ‘역사 찾기’라는 이름으로 ‘추억 곱씹기’만을 되풀이합니다. 생각해 보면, 학자나 지식인은 그 옛날에도 ‘그 옛날에 현실(바로 오늘 일)이었던 때에 등을 돌리거나 못 본 체하며 책상물림’으로만 지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발을 디뎌야 할 자리에서 발을 안 디디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손을 뻗어야 할 자리에서 손을 안 뻗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핑계를 대지요. ‘나도 한마음이기는 했으나 먹고살기 바빠 어깨동무하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뒤늦게 옛이야기를 추억거리 삼아 찾아들으면서 말하지요. ‘이런 이야기는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되기에 나라나 학교에 기금을 신청해서 책으로 남겨야 한다’고.


.. 반공글짓기, 반공그림대회. 자나 깨나 반공을 몸으로 실현했다. 때로는 남한에서 북쪽으로 보내는 삐라가 역풍을 받고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오래된 금강소나무 우듬지에 내려앉는 일도 있었다 ..  (39쪽)


 저는 ‘학자’라는 이름과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무섭습니다. 아니, 무섭다기보다 소름이 돋습니다. 문화니 역사니 체험이니 추억이니 하면서 ‘예전에는 불량식품이요 나쁜 짓’으로 깎아내리고 다그쳤던 뽑기라든지 달고나라든지 딱지라든지 아폴로라든지를 되살리는 움직임들을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든 ‘그리운’ 추억이 되고 ‘애틋한’ 역사처럼 뇌까리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등골이 오싹합니다.

 마땅한 노릇이지 않습니까? 달고나를 추억하는 이들은 ‘평화의 댐 성금 모으기’를 추억할 수 있습니다. 뽑기를 축제로 되살리는 이들은 ‘반공글짓기 대회’를 축제로 되살릴 수 있습니다. “아빠 어렸을 때에”니 “엄마 어렸을 적에”니 하면서, 군사독재정권이 우리를 억누르던 모습들을 즐거운 옛일이라도 되는 듯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고스란히 이어온 군사독재정권 찌꺼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마치 ‘다시 누리고 싶은 일’이라도 되는 듯이. 꼭 ‘다시 그때처럼 우리 사회가 거꾸로 가야 옳다’는 듯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같은 입시지옥 또한 오래지 않아 ‘추억 스케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헌법으로 누리도록 해 놓은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몽둥이로 두들겨패며 깔아뭉개는 짓거리 또한 머잖아 ‘추억 만들기’처럼 다룰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2) 그늘 자리 다음을 기다리며


 어설픈 위인전이나 어줍잖은 추억 읊기가 아닌, ‘살아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갈무리한 《그늘 속을 걷다》를 읽습니다. 그늘 속을 걷는다는 일이란 어두운 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짙고, 글쓴이 김담 님 발자취는 어두움을 헤맨 하루하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늘이란 응달지기만 한 자리는 아닙니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는 시원한 가림막이기도 합니다. 지치고 고단한 몸을 쉬게 하는 보금자리 노릇을 합니다. 물기를 남겨 주고 새힘을 북돋우는 샘터와 같습니다. 세상 어느 샘가도 그늘 자리에 있지, 볕바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 누구나 서울대, 연고대를 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기에, 담장 옆 학교 전문대생들이 공부와는 다른 특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무언가 모자라는 이들로 폄훼하기 일쑤였던 어린 우리들은, 그런 그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경찰들과 맞서는 일을 가당찮다고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놀랐다. 무엇 때문에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던 탓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일일연속극과 오락프로그램을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녹화방송 되는 권투와 레슬링을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또한 일요극장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는 미국의 서부영화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우리 나라 배우들 이름은 몰랐어도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들의 이름은 또렷이 기억했다 ..  (43쪽)


 김담 님은 당신이 걸어야 했던 지난 삶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내가 걸을 수밖에 없던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을 걸어야 했기에 당신 ‘스스로 걷고 싶은 밝음’이 무엇이었는지를 환하게 깨닫습니다. 어두운 길을 걸으며 어두움에만 사로잡히는 사람이 있지만, 어두운 길을 걷기 때문에 밝음을 꿈꾸거나 찾는 사람이 있으니, 김담 님으로서는 ‘내 어둠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가’를 찾아내어 뽑아 버리는, 또는 좋은 길벗으로 여기며 살가이 다스리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식당 종업원에게 하대를 하고 반말을 하는 것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람이 귀하면 그 사람을 지탱해 주는 음식물도 소중하고 귀한 것 아닐까 … (고향에서 어르신들이) 화이트칼라로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듯 보이는데, 왜 다시 내려왔느냐고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되물었다 … 비육우를 대량으로 기르면서 우사(소우리)의 소들은 싱싱한 풀 대신 항생제 범벅인 사료로 연명했으며 사철을 콘크리트로 된 우사 안에서 떠나지 못했다. 돈사(돼지우리)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주변의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이었다. 가축에서 대량 소비재로 바뀐 까닭이었다 ..  (114, 139, 165쪽)


 다만 한 가지, 김담 님은 소설쓰기를 하기 때문인지 ‘소설책에만 나올 법한 낱말과 말투’를 제법 많이 쓰고 있습니다. 문학이란 그 문학을 하는 나라나 겨레가 어떠한 말로 삶을 가꾸고 생각을 가다듬는가를 보여주는 열매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문학에 담는 말은 ‘우리들 말’이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에 묻히는 말이라거나 옥편에 잠자고 있는 말은 아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민중과 지식인》이라는 책을 읽을 때 ‘민중’이라는 낱말을 낯설다고 느꼈던 분이 ‘면목처량’ 같은 말을 쓴다면, ‘면목처량’은 ‘민중’이라 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소설문학’다운 말로 느낄 수 있을까요. ‘몰풍스럽다’는 누가 알아들을 소리이며, ‘자심했다’는 어느 시골사람이 알아차릴 말이겠습니까.

 ‘사람들 말’이 아닌 ‘우리들 말’입니다. ‘사람들 말’을 쓰는 문학이 아니라 ‘우리들 말’을 찾을 문학입니다.

 잘못 쓰는 말이라거나 엉터리로 쓰는 말이라거나 겉멋에 휩쓸린 ‘사람들 말’이 아닌, 어깨동무하는 삶이라거나 사랑과 믿음을 담는 말이라거나 넋하고 얼을 보듬는 ‘우리들 말’로 문학을 일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책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안내서였다. 책과 함께 있으면 지루한 줄을 몰랐다. 교과서는 잊고 챙기지 않는 경우가 있어도 시집을 비롯한 여타의 책들은 상비약처럼 챙겨서 다녔다. 약속한 상대가 약속시간에 늦어도 그다지 화를 내지 않았다. 손에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외딴 시골에 조용히 살고 있으니 인맥, 지연, 학맥, 그런 것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친목회, 동창회 안 나갈 수 있으니 세상 편했다 ..  (69∼70, 153쪽)


 그렇지만 아직 “그늘 속을 걷”고 있는 김담 님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꾸준히 지켜보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김담 님 스스로 걷는 ‘그늘길’에 우리들을 불러올는지, 아니면 김담 님이 그늘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을는지, 또는 그늘길이 그늘길 아닌 자리가 되도록 할는지, 어쩌면 우리들이 미처 못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늘길을 누구나 살가이 깨닫고 받아들이게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웃음 어린 목소리로 부를는지는 모르는 노릇이니까요. (4342.5.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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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04 - ‘1급 장애인’ 아닌 ‘문학사랑이’  장영희 님 떠난 길
 :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책이름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글 : 장영희
- 펴낸곳 : 샘터 (2005.3.15.)
- 책값 : 12000원



 (1) ‘장애인’ 아닌 ‘한 사람’이 죽은 길


 지난 5월 9일,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 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영희 교수라 하면 먼저 ‘장왕록 박사 딸’이라는 이름에다가 ‘1급 장애인’이라는 이름이 달라붙곤 합니다. 틀림없이 장왕록 박사 딸이 맞고, 1급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끈과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껴안으려 한다면, 아무개 딸이건 몸이 어떠하건 우리한테는 ‘장영희 한 사람’만 보거나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 아직 우리 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ㆍ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장왕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 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가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  (38쪽)


 장영희 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뜻밖에 듣고는, 몇 해 앞서 읽고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아 놓고 있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가는 전철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죽 읽습니다. 이 책은 2005년에 나왔고(이무렵 300쪽 조금 넘는 책이 12000원이면 꽤 비쌌습니다), 책에 실린 글은 2001년 8월부터 세 해에 걸쳐 〈조선일보〉에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이름으로 이어썼다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 머리말은 늘 맨 마지막에 들여다보는 터라, 다시금 책을 읽어내고 머리말을 훑다가 깜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조선일보〉에 이어썼던 글이구나.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분 장영희 님 글을 다른 매체에서, 이를테면 ‘사회에서 힘여린 사람한테 등돌리지 않고자 애쓴다’ 하는 매체에서 기꺼이 받아안을 수 없었을까요. ‘사회에서 돈없는 이가 푸대접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매체에서 넉넉히 껴안을 수 없었을까요. ‘사회에 따돌림과 괴롭힘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입시지옥과 갖은 갈등이 평화로이 풀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매체에서 살포시 손을 내밀 수 없었을까요.


.. 운명은 인간의 것이지만 생명은 신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고, 그 무슨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의 꿈, 소망, 사랑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125쪽)


 저로서는 쉰일곱 해를 살다 떠난 장영희 님하고 만날 일이란 없었습니다. 나라밖 문학에 그리 눈길을 안 두고 있기도 했기에, 장왕록 님이 펄 벅 문학을 숱하게 우리 말로 옮겼다는 대목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헌책방을 찾으러 신촌 둘레를 자전거를 타고 돌거나 두 다리로 골골샅샅 누빌 때 서강대 옆도 곧잘 스쳐 지나가곤 했고, 서강대 앞에 잠깐 문을 열었다가 그야말로 금세 문을 닫은 헌책방마실을 더러 하곤 했지만, 이 울타리 안쪽에 목발을 짚고 강의를 하는 장영희 교수라는 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연세대 건너편에 있는 헌책방 〈정은서점〉 아저씨가 가끔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이분 따님 가운데 한 분도 장애인이었고,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나 대학 입시를 치를 때에나 대학에 다니는 동안까지도 몹시 힘들었기에), 마음은 모르나 몸은 멀쩡하다 싶은 사람들 둘레에 몸 어느 곳이 다치거나 아파 못 쓰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얼핏설핏 느끼곤 했습니다. 바퀴걸상을 타고 헌책방마실을 하던 사람을 꼭 두 번 만났습니다(열여덟 해 헌책방마실을 통틀어). 팔이나 다리 어느 한 군데라도 아프면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자전거모임에서도 몸 아픈 이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통계로는 ‘한 나라 10%는 신체장애인’이라 해서, 우리 나라로 치면 오백만 가까운 숫자가 신체장애인일 텐데, 길거리를 누비는 사람 가운데 신체장애인을 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걸쳐 신체장애인하고 함께 배운 적이란 없고, 이웃 학교에서도 못 보았습니다. 어쩌면 ‘취학면제’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처음부터 교육권이나 평등권을 누려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화교 선거권’을 준 일도 고작 한 해가 된 듯 싶습니다. 그나마 화교 아닌 ‘외국사람이라고 하는 한국사람’한테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이웃 일본이 한겨레붙이한테 선거권을 안 주는 일하고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요. 재일‘조선인’이든 재일‘한국인’이든, 일본에서 ‘코리아’ 국적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선거권을 비롯해 기초권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라밖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 일이요, 우리 어버이 또래 일이며, 우리 삶하고 곧바로 이어진 이와 같은 일에 우리들 눈길이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옳고 바르게 누리면서 어깨동무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이 책(펄 벅, 《자라지 않는 아이》)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나의 어머니이다. 기동력 없는 딸이 발붙일 한 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운명에 반항’하여 싸운 나의 어머니. 장애는 곧 죄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마음속으로 피를 철철 흘려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딸을 지킨 나의 어머니. 무엇보다 이 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것은 부모님과 내게 너무나 힘겹고 고달픈 싸움이었다.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던 나의 어머니.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학교들을 찾아가 제발 응시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사정하며 다니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문간을 서성이던 나의 어머니. 조금만 도와주면 나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제발 한몫 끼어 달라고 애원해도 자꾸만 벼랑 끝으로 밀쳐내는 이 세상에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업도 그 위대한 이름, ‘어머니’에 비할까 ..  (131쪽)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영문과 교수로 영문학을 가르치는 장영희 님 삶에 박힌 ‘좋은 문학’이 당신 삶에 어떻게 ‘좋은 마음밥’이 되었는가를 돌아보는 책입니다. 펄 벅 문학을 다루는 글에서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은 1951년에 발표한 《자라지 않는 아이》이다(1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펄 퍽 문학 가운데 이 책처럼 안 읽힌 책이 또 있을까 싶은데, 《자라지 않는 아이》는 2003년에 새로운 판으로 옮겨지기 앞서 두어 차례 옮겨졌고, 샘터사에서 우리 말로 옮긴 판이 이제까지 나온 옮김판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습니다. 저는 이보다 앞서 나온 낡은 판으로 읽으며 ‘펄 벅 문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낳아 기른 아이가 ‘자라지 않는 아이’여서 장애인 삶을 온몸으로 부대끼게 되고 이렇게 부대끼면서 숨기거나 꺼리지 않고 고이 사랑으로 껴안으면서 뭇사람한테 참다운 어머니길이요 사람길이 무엇인가를 밝힌 대목도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당신은 장애를 안은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어도 언제나 얼마든지 어깨동무할 만한 마음밭이 있었다고 느낍니다. 마음밭이 없으면 아무리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설 생각을 못할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다시 일어서더라도 슬기로움과 튼튼함을 갖추지 못합니다.


.. 신체장애는 단지 의학적 케이스일 뿐, 악이든 선이든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한 인간 치유의 역할을 가진 문학이 한 집단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 없는 재주로 무리해서 수필집을 낸 적이 있다. 가끔 방송이나 신문에서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1급 장애 여교수의 인간 승리, 그녀의 치열한 삶’ 등등으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책을 소개하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문인 220명에 의해 설날에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내 책이 뽑혔다고 했다. 시간에 맞춰 TV를 보니 마침 사회자가 내 책을 들고 소개하고 있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의 단 한 번》은 자서전적 에세이집입니다. 요새 암투병 중이라 투병 중 느낀 바를 적은 책입니다.” 옆에 있던 여자 사회자가 때 맞춰 “쯧쯧” 혀를 찼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 책은 이미 4년 전, 내가 암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때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코미디언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저자 장영희 씨는 1급 신체장애인이라네요.” 순간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숙이며 죽은 사람에 대해 묵념하듯이 눈을 내리깔고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책에 대한 소개는 그게 다였다. ‘자서전적’ 에세이니 불가피하게 나의 신체장애에 관한 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도는 ‘장애인 장영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형태의 삶의 장애를 갖고 있는 ‘인간 장영희’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암만 생각해도 내 삶이 별로 ‘치열한’ 것 같지 않다. 아니, 내 삶이 치열하고 감동스럽다면 난 이제껏 치열하고 감동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226∼227쪽)


 전철은 어느새 대화역에 닿습니다. 다 읽은 책은 앞가방에 넣습니다. 사람들이 자동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는 돌계단을 하나나 둘씩 밟으며 밖으로 나옵니다. 장애인 권리를 생각해 준다는 말은 많아 새로 생기는 전철역에는 으레 승강기가 놓이고 점글판이 붙고 오돌토돌 새긴 돌을 바닥에 깔아 놓곤 합니다. 그나마 전철역 둘레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버스역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으로서 시내버스를 타기란 꿈조차 꿀 수 없는 노릇입니다. 목발을 짚든 바퀴걸상을 끌든 이때에도 시내버스는 탈 수 없으며, 광역버스 또한 탈 수 없습니다(고작 몇 대에만 탈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어떻겠습니까. 시골버스는 어떠하고, 마을버스는 어떠할까요. 학원버스는 어딘가 나은 대목이 있을까요. 학교버스나 유치원버스는 어떻습니까.

 승강기나 자동계단 같은 시설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을 생각해서 마련한 시설임을 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비장애인은 마땅히 돌계단으로 다닐 뿐이요,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 승강기와 자동계단을 타도록 마련해 놓았음을 깨닫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어버이 된 분들은 아이들한테 이런 대목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교사 된 분들은 학교에서 얼마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2) 글 하나에 담으려 했던 사랑


 세상 떠난 한 사람이 죽은 일을 앞두고 여러 매체에서 ‘궂긴 소식’을 실어 줍니다. 모두들 ‘장애인 장영희’한테만 눈길을 맞추고, ‘한 사람 장영희’한테는 눈길을 맞추지 않습니다. 아니, 눈길을 맞출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눈길은 장영희 님한테만 맞춰지는 매무새가 아닙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았고, 앞으로도 그리 달라질 듯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오로지 돈만 바라보도록 맞춰져 있으며, 사회로 나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며 더 높은 이름을 날리며 더 큰 힘을 누리는 사람’이 되도록 ‘네 동무를 미워하라, 밟고 타 올라서 너 혼자 1등이 되어라’ 하고 내모는 제도권입시교육이기 때문입니다.


..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은 언제나 이별의 슬픔과 기다림의 갈증을 견뎌내야 하는 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필연적 고통은 그녀로 하여금 시인으로 새로 태어나고, 시의 세계에서 삶의 궁극적인 비상구를 찾게 했다 … 무정한 모정에 대한 비난이 혹독하지만, 아마도 두고 가는 자식들도 결국은 자신처럼 ‘안’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 죽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를 밀치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까지 안고 뛰어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에 자식들을 두고 가기가 너무나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작품 중에서 유독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낯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73, 108쪽)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새삼 놀랐습니다만, 장영희 님 글을 실었다는 〈조선일보〉는 장영희 님 글을 받으며 어떤 느낌 어떤 생각이었을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신문 〈조선일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이 더욱 단단해지도록 하는 데로 모아져 있지 않습니까. 사랑보다 돈을, 믿음보다 이름을, 나눔보다 힘(권력)을 높이 추켜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장영희 님이 그런 신문에 그런 글을 실은 모습은 엇박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금 곰곰이 헤아리면 그리 엇박자는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 하나요 살가운 사람 하나라 한다면, 돈바라기 사람이든 사랑바라기 사람이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일찍 철이 들었든 나이먹어도 철이 안 들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뜨거운 가슴은 누구한테나 깃들어 있습니다. 제힘으로 알아채지 못하는 너른 넋은 누구한테나 잠들어 있습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장영희 님은 ‘몇몇 깨인 사람한테만 사랑을 말하려는 목소리’이기보다, ‘깨인 사람이고 깨이지 않은 사람이고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사랑을 말하려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책을 거듭 읽으면서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깨인 사람이고 깨이지 않은 사람’이고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 그때부터 마아너는 딱딱하고 차가운 금화 대신에 딸 에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며 자기를 버렸던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절을 베풀기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도 마아너를 따뜻하게 대한다. 그는 에피를 통해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준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이 세상에 선이 존재함을 새롭게 배운다 …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지만, 이 소설에서 강조되는 점은 돈에 집착했을 때 고립되고 의미 없는 삶을 살던 마아너가 그 돈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발견한다는 아이러니이다 … 거울에는 자기만 보인다. 금ㆍ은으로 사방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거울 속 사람들처럼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돌보며 감옥인 줄 모르는 채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  (135∼136쪽)


 ㅈㅈㄷ이라는 신문들만 골프 이야기입네 외국여행 이야기입네 비싼 자동차 이야기입네 떠들지 않습니다. ㅎㄱ이라는 신문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서민’은 옛날 ‘백성’과 달라, 큰차 몰고 나라밖으로 골프를 즐기러 떠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는지 모릅니다만, 주식투자이든 펀드투자이든 돈 놓고 돈 먹는 일거리는 오늘날 ‘부자’뿐 아니라 오늘날 ‘서민’도 함께 즐기는 일인지 모릅니다만, 정규직 노동자만 갖은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라 하여 타워팰리스를 꿈꾸지 말란 법 없습니다만, 딱히 더 나은 신문이나 방송이란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신문도 ‘한 달 벌이 50만 원으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 눈높이’에서 찾아 읽을 만한 이야기거리를 기사로 다루지 못하고 있거든요. ‘쉬는 날 없이 한 달 빽빽하게 열 시간 남짓 일하여도 백만 원 받기 어려운 형편’인 가운데 지친 몸으로 펼쳐들어 읽을 만한 이야기거리를 다루는 신문이란 글쎄, 하나도 없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다루는 기사뿐만이 아닙니다. 기사로 쓰는 말과 글도 그렇습니다. ‘여느 노동자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읽을 만한 높낮이로 글을 다스릴 줄 아는’ 지식인이나 기자가 이 나라에 몇이나 있는지요. 다루는 기사도 기사이지만, 기사에 담는 말과 글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가를 헤아리면서 늘 힘쓰는 분들은 몇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는지요.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인지, 한국사람 아닌 이들이 읊는 섞임말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눈만 뜨면 떠드는 ‘세계화’는 실상 자존심도 오기도 없는 ‘강국화’일 뿐, 힘없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짐승, 버러지만큼도 취급하지 않는 것이 진정 ‘세계화’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부모 형제들도 바로 지금 우리가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때 간호사로 광부로 낯선 나라에 가서 고된 노동을 하고 고향에 부친 달러는 겨우 우리가 인간과 짐승도 구별 못하는 ‘부자’가 되는 데 일조했을 뿐인가 보다 …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맞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는 사람만이 절망이기도 하다 ..  (277, 279쪽)


 장영희 님이 서양문학이 아닌 한국문학을 했다고 하여도, 또 한국문학으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펼쳐냈다고 하여도, 당신이 부대끼고 곰삭이며 차근차근 나누려 했던 이야기는 매한가지였으리라 느낍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하고 노래할 수 없는 이 땅에서 끝없이 걸려 넘어져야만 하는 삶을 꾸리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고 느끼고 담아내는 목소리는 한결같았으리라 느낍니다. 우리는 ‘달러(돈)’ 아닌 사랑을 보아야 하고, ‘달러’에 매인 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스스로한테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한테도 ‘달러’만 보여주고 가르치고 물려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풀어냈으리라 봅니다. ‘사람만이 절망이다’고 느끼는 가운데에도, 이 절망을 딛고 설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한편, 절망을 딛고 선다기보다 절망은 또 절망대로 고운 벗님이니 고마이 껴안으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려는 목소리를 펼쳐냈으리라 봅니다.


.. 어른들의 닫힌 마음으로 아이들의 열린 마음까지 꽁꽁 걸어 잠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결국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 끝에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을 지켜 주는 것은 피비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아이러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 가까이에서 공부할 수 없으니 학교에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이 세상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누구나 조금씩의 모자람, 불편함을 갖고 있어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이고,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키는 진정한 파수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  (184∼185쪽)


 장영희 님이 아직 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때 방학을 맞이해 한국땅으로 돌아와 동생하고 ‘명품을 많이 판다는 패션가를 지날 일’이 있었고, 이때 동생이 옷 구경을 하러 들어간 가게에서 당신은 못 들어가고(계단 턱이 너무 높아) 문밖에 서서 기다리니, 가게 임자가 나와서 당신을 거지로 여기고는 어서 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아마, 장영희 님으로서는 이런 일을 겪으며 또다시 ‘걸려 넘어지기’를 하는 가운데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라는 영국 시인 문학과 삶을 찬찬히 읽어낼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저는 목발까지 짚지는 않으나 헐렁한 차림새에 고무신을 끌고 자전거를 슬슬 몹니다. 늘 큰 가방에 책을 가득 채우고 다니니 언제나 온몸에서는 땀내가 풍기기까지 합니다. 몇 해 앞서 ㄱ이라는 국립기관에서 한 해 동안 ‘우리 말 이야기 강사’로 일한 적 있는데, 그때 ㄱ이라는 국립기관 건물 지킴이들은 ‘잡상인 출입금지’를 내세워 눈을 부라리고 막말을 하며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그 국립기관에서 강사로 일하는 사람인 줄 알고는 갑자기 거수경례를 하더니 높임말로 바뀌더군요. ‘여느’ 강사처럼 까만 양복을 빼입고, 까만 차를 몰며 다녔다면 어느 누구도 저를 가리켜 ‘잡상인’이라든지 ‘노숙자’라든지 ‘미친놈’이라며 삿대질을 안 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늘 겪는 동안, 제가 이런 제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지 않았다면 세상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다만, 이런 일을 겪고 저런 일을 치르면서도 제 어리숙한 마음밭은 좀처럼 자라나지 못하지만.
 





 (3) 문학으로 꾸려 온 삶


 몸이 아픈 가운데에도 글쓰기와 문학즐기기를 멈추지 않은 장영희 님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가면서 책 하나를 더 우리한테 남깁니다. 며칠 앞서 나온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마지막 남긴 선물로, 이제까지는 ‘몸이 살아온 기적’이라면, 앞으로는 ‘마음이 살아갈 기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시와 사랑의 강’. 아인슈타인이 시인인지 물리학자인지 모를 정도의 문학적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아침에 눈만 뜨면 세상이 달라지고 아인슈타인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 세 가지 이상,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도 점차 힘을 잃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로봇같이 움직이고, 시와 사랑의 강은 자꾸 말라만 간다 … 나는 새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별로 ‘특별’하지 않은 가장 보통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특별하게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대박이 터지거나, 대단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기괴한 일이 없고, 별로 특별할 것도, 잘난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서로 함께 조금씩 부족함을 채워 주며 사는 세상 ..  (89,141쪽)


 생각해 보면, 살아온 기적이든 살아갈 기적이든 조금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쬘 수 있으면 살아 있음이요 기적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더는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죽어 감이요 또한 기적입니다. 내 몸은 다른 목숨붙이를 받아들이며 숨을 이었고, 내 몸이 숨을 멎으면 흙으로 가면서 다른 목숨붙이가 살아갈 거름이 됩니다. 내가 사는 동안 나한테 스며든 목숨들이 바친 몸뚱이가 기적과 같으며, 내가 죽은 다음 내 몸뚱이가 새로운 밥이 되어 다른 목숨한테 옮아 감이 또 기적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몸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새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어 몸이 움직이는 우리들인 가운데, 새 마음을 먹으며 새 넋을 일깨우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이 세상을, 이 나라를, 아니 가족조차 변화시키려는 야심이 없이 아버지는 늘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즐기는’ 학자의 외길 인생을 기쁘게 살다 가셨다 …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104, 316∼317쪽)


 틀림없이 장영희 님은 수많은 마음자리를 고이 얻으면서 마음삶을 이었습니다. 당신 몸뚱이 때문에 ‘걸려 넘어진’ 온갖 일이 있었다는데, 당신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진’ 일도 숱하게 많았으리라 느낍니다. 그렇지만 몸 때문에 걸려 넘어진 온갖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몸삶을 이었듯,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진 숱한 일을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면서 마음삶을 이었습니다.

 이 마음삶은 언제나 수필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되었으며, 한 벌 두 벌 선보인 옷을 모두어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든지 《축복》이라든지 《생일》이라든지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든지 하는 이름으로 고이 묶어내어 나누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세상을 떠난 장영희 님 목소리는 더 들을 수 없고, 앞으로 또다른 장영희 님 선물이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겠지만, 숱한 마음밥이 장영희 님한테 스며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피어났듯, 우리는 우리대로 장영희 님이 나누어 준 마음밥을 달게 받아먹으며 우리 깜냥껏 새로운 마음밥을 일구어 우리 이웃한테 나누어 줄 삶을 이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 누운 자리가 고즈넉하고 따뜻하기를 빕니다. (4342.5.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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