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행 엑서더스 - 그들은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가?
테사 모리스-스즈키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일본은 역사를 함께 일구어 왔다
 [잠깐 읽기 43] 테사 모리스-스즈키, 《북한행 엑서더스》



- 책이름 : 북한행 엑서더스
- 글 : 테사 모리스-스즈키
- 옮긴이 : 한철호
- 펴낸곳 : 책과함께 (2008.12.15.)
- 책값 : 18000원



 (1) 일본땅 한겨레붙이 삶과 책과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이 북녘으로 배를 타고 옮겨갔습니다. 재일조선인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다음부터 일본땅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로, 일제강점기 때에 징용으로 끌려왔거나 한국땅에서 먹고살 길이 없어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한 다음 고향나라로 돌아간 이들이 많지만, 고향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많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도 있습니다. 잃었던 나라를 찾았다 할지라도 먹고살 길마저 함께 찾을 수 있지 않았을 뿐더러, 해방을 맞이하면서 남녘과 북녘으로 쪼개어졌고 이내 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그예 눌러앉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눌러앉은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에도 온갖 푸대접과 따돌림과 업신여김에 고달파야 했고,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난 다음에도 ‘천황을 모시는 신민’이 아닌 ‘해방된 나라 사람’이 되었어도 ‘일본 정부가 보듬어 주고 싶지 않은 외국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며 조선말 배우기도 힘들었습니다.


.. 한반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냉전이 끝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냉전은 한반도에서는 살아남았으며, 21세기 소위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기괴하고 무서운 긴장의 집합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 점령군 병사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일본에 도착했을 때,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인에 대한 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병사는 더욱 적었다. 점령군은 조선인을 ‘해방 국민’으로 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 장명수의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취지는 단순하고도 극단적인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귀국운동은 인도주의의 기수인 일본적십자사가 인종차별주의적인 일본 권력기구를 대신해서 실행한 ‘민족 정화’ 행위였다. 나의 입장과 장명수의 주장은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본적십자사 간부의 행동에 대한 장명수의 가설은 내가 제네바에서 본 정보와 몇 가지 부합되는 것 같다 …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는 단순 명쾌했다. 제국이 사라진 지금, 조선과 대만의 전 식민지 신민은 일본 국민으로 남아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30∼31, 43∼44, 56, 97쪽)


 재일조선인 삶을 다룬 책은 곧잘 나왔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도 있고, 재일조선인 스스로 쓴 책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책들은 하나같이 잘 안 팔리고 안 읽히면서 잊혀집니다. 우리한테 쓰라린 발자취이기에 돌아보고 싶지 않은지 모릅니다만, 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난날이라 하여도 어김없는 우리 발자취요 삶이며 사람입니다. 예나 이제나 ‘한겨레붙이’로서 따스한 품에 안겨 본 적이 없는 우리 이웃이요 동무요 한식구입니다. 많이 팔리고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기보다, 우리 스스로 한겨레붙이라고 느끼거나 생각한다면 마땅히 찾아서 삭이고 헤아리고 보듬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한겨레붙이를 따돌렸습니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뒷돈을 챙길 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사람들 아픔을 달래고 생채기를 보듬는 데에 그 돈이나마 쓰지 않았고, 일본에 남고 러시아에 남고 중국에 남고 중앙아시아에 남은 한겨레붙이를 널리 품어 안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가 아닌 한 나라를 사랑하고 싶던 재일조선인은 남녘은 남녘대로 씁쓸하게 바라보고 북녘은 북녘대로 쓸쓸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몇 만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이 1959년부터 ‘북녘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 1952년 4월 28일자로 재일조선인은 공영 주택 입주권을 포함해 주요 사회 복지를 향유할 권리를 잃었다. 전후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의 복지 제도가 발달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배제 규정은 더욱 강화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해졌다 … 안보조약 개정을 이루어낸 기시 내각은 국민연금제도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외국인은 배제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때부터 고도성장기로 돌입했다. 그때까지 존재했던 식민지의 ‘망령’은 안보조약 개정에 의해 일소되고,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새로운 복지제도도 만들어졌다. 도시 내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의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 재개발이 진행된 것도 이 시기였다 ..  (100, 323쪽)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ㆍ일본 이야기》(2005)라는 만화책을 보면, 남녘사람들이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엇갈린 눈길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얼마나 마음앓이를 하는가를 살며시 부드럽게 다루어 줍니다.

 《재일조선인의 가슴속》(2003)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매한가지로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따돌려 왔고 얼마나 가슴앓이가 컸는가를 날카롭게 낱낱이 다루어 줍니다.

 《해협》(2003)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서 학문을 파고드는 한 사람이 얼마나 거칠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했으며, 이 거칠고 고단한 길은 당신한테뿐 아니라 당신 아이들한테까지 길디길게 이어지는가를 곰곰이 되새기도록 해 줍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2007) 같은 청소년책을 보면, 배울 수 없던 사람과 밑바닥에서 헤매야 한 사람은 무엇을 겪고 보고 듣고 돌아보아야 했는지를 눈물겹게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일본사람 카지무라 히데키 님은 《재일조선인운동》(1994) 같은 책을 쓰며(썼다기보다 강연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적었습니다만), 일본 사회에서 일본 지식인 스스로 ‘재일조선인’을 너무 모르거나 등돌리고 있음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오다 나라찌라는 일본 목사는 일제 강점기 때에 맨몸으로 한국땅으로 건너와 하느님 목소리를 나누려 하면서, 일본에서 신학을 배울 때에는 조금도 알지 못했던 ‘식민지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삭이며 깨달았고, 해방이 된 뒤에도 죽는 날까지 한국땅에서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당신이라도 뉘우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지게꾼》(1980)이라는 책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 북한이 대량 귀국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은 결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기적으로 따져 본 결과였다. 김일성 정권이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것,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룬다는 장대한 꿈, 일본ㆍ한국ㆍ미국의 삼자 관계에 훼방을 놓고픈 욕구, 그리고 전 세계적 차원의 무대에서 프로파간다의 승리에 대한 동경, 그러한 모든 것에서 귀국이 득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의 이승만 정권은 귀국사업을 방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한 이유는, 이 정권 자체가 정치범을 부당하게 다루고 있었고, 재일조선인의 남쪽 귀국을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재일조선인을 일본과의 외교적 침체 상태를 타개할 협상의 재료로 이용하는 쪽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  (308∼309쪽)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재일 한국인 지문 거부 운동》(1987)이라는 책하고 《지문날인 거부자가 재판하는 일본》(1990)이라는 책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 가지 책은 처음 나왔을 때에도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을 뿐더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판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도 헌책방에서 그리 손길을 타지 못하는 한편 두루 읽히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책은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펴내지 않았습니다. ‘돈이 될 만하지 않아’ 안 냈는지, ‘처음부터 재일조선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 안 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받는 창피와 업신여김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보려는 한국 지식인 사회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옳다고 느낍니다.

 그나마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2005) 같은 책은 우리 말로 나온 적이 있으나, 1995년에 《조선인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올 때에는 다른 재일조선인 이야기책하고 마찬가지로 금세 파묻히고 사라졌습니다.

 강재언 님이 쓴 《한국근대사》(1990)라든지 《근대한국 사상사 연구》(1983)라든지 《조선의 서학사》(1995)라든지 《한국의 개화사상》(1989)이라든지 《한국근대 사회와 사상》(1989)이라든지 《한국 근대사 연구》(1986)라든지 《일제하 40년사》(1984) 같은 책이 수두룩하게 옮겨진 일은 퍽 놀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 역사와 문학에 눈길을 두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가운데 ‘강재언’ 같은 이름을, ‘이진희’ 같은 이름을, ‘강덕상’ 같은 이름을, ‘김달수’ 같은 이름을, ‘김석범’ 같은 이름을 찬찬히 훑거나 꿰거나 살피기라도 한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지는 않을 테고 드물지는 않을 테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 아니랴 싶습니다.

 《김석범 ‘화산도’ 읽기》(2001) 같은 책이 우리 말로 옮겨지기는 했어도, 정작 《화산도》라고 하는 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김석범 님 다른 작품 《까마귀의 죽음》(1988)이 한 번 옮겨진 적이 있으나, 거의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은 채 먼지처럼 사라지기만 했습니다.


.. 21세기의 북한 난민은 1950∼1960년대의 귀국자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차원의 정치라는 체스판에서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큰 전략에 필요하면 사용되고 필요성이 없어지면 언제든 잊혀진다.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들의 작지만 각기 다른 인간적인 필요성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 정부에게 이들은 배신자이자 반역자다. 투옥시키고 때에 따라서는 고문을 가하거나 처형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들은 밀입국한 불법 노동자로, 김정일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인도해 주어야만 한다. 한편 미국의 정치적인 입장은 이들 전부를 일괄적으로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정치 망명자로 규정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권 정책은 난민을 잠재적으로 유익한 ‘체제 변혁’분자로 보고 국경을 넘는 대규모 탈출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공포의 위험성에 노출시키는 행위다. 또한 중국 국경에서는 위기에 처한 난민들 속에서 영혼을 구할 가능성을 엿본 많은 기독교 단체가 열의와 금전을 퍼붓고 있다 ..  (397∼398쪽)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재일조선인 삶에 등돌리는 사람들만은 아닙니다. 남녘땅 이웃 삶에도 등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재일조선인 이야기책에 등돌리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남녘땅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책에도 등돌리고 있어요.

 내 이웃 삶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는가요? 내 동무들 삶자락이 어떠한가를 가슴 깊이 헤아려 보려고 하는가요? 내가 발디딘 동네에서는 어떠한 일이 얼마나 어찌어찌 벌어지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는 하는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하고 가까운 이웃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러한 몸짓이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도 똑같이 이어간다고 느낍니다.


 (2) 《북한행 엑서더스》라고 하는 책


 《북한행 엑서더스》라고 하는 책을 읽습니다. 다른 수많은 ‘일제강점기 역사’와 ‘재일조선인 역사’를 다룬 책들이 으레 ‘일본사람 손으로 나오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재일조선인이 북녘으로 배 타고 간 일을 다루는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쓰는 일은 하나도 얄딱구리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남녘나라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학자 숫자도 몇 없지만, 머나먼 옛날이 아닌 ‘아직 얼마 안 된 요즈음 우리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학자 숫자도 그리 안 많다고 느낍니다.


.. 일본 측은 재일조선인의 대부분이 징용노동자로서 일본에 강제 연행되었다는 ‘일반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에 특히 열성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7월 11일, 이 문제에 관해 특별한 신문 보도자료를 내놓았고, 그 사본을 당연히 제네바에도 보냈다. 이 발표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종결시 일본에 있던 200만 명의 조선인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징용된 노동자는 ‘작은 비율’에 지나지 않았고, “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도 표준 임금이 지불되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종전시에 귀국했다 … 재일조선인 역시 본질적으로 ‘메구미’ 양과 다를 바 없을 텐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  (299, 413쪽)


 책을 넘기면서 마음 한 자리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이 쓴 책이라 하여 나쁠 까닭이 없고, 일본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료를 만질 수 있다 할 수 있으며, 한결 차분하게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더욱이, 마음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일본 지식인은 우리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꽤 많습니다.


.. 으르렁거리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발코니에 나가 보니, 눈 아래에는 아주 먼 청록색의 언덕까지 도시가 뻗어 있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탓일 것이다. 평양의 공기는 이제까지 방문한 어느 나라 수도보다 맑았다. 평양 하면 곧 생각나는 버드나무가 양쪽 강가에 늘어서 있고, 깊은 청록색 물이 천천히 도시 중심부를 뚫고 흐른다 ..  (258쪽)


 그런데 2008년 12월에 나온 책을 2009년 7월이 되어서야 다 읽고 덮습니다. 틀림없이 제 눈길을 끄는 책이요, 1959년에 일본과 북녘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를 좀더 깊이 알도록 도와줄 만한 책이라고 느꼈습니다만, 어인 까닭인지 책장이 잘 안 넘어갑니다.

 글쓴이 ‘테사 모리스-스즈키’ 님이 학술논문이 아닌 가벼운 수필처럼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간 탓은 아니요, 역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1959년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를 차근차근 헤아리며 그때 그 길을 곰곰이 밟아 나가는 흐름은 더없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흐려집니다. 일본과 북녘과 미국과 남녘 정부가 저마다 어떤 셈속과 꿍꿍이로 ‘일제 강점기 때에 고달팠던 사람들 아픔’을 더 고달프게 하고 아프게 했는가를 밝히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흐려집니다. 기득권을 움켜쥔 이들이 벌이는 머리싸움과 힘싸움 때문에 누구 새우등이 터지고 있는지 하는 이야기가 흐려지고, 이러한 역사를 밝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흐려지며, 이와 같은 발자취는 지난 한때로 그치지 않고 있음을 사람들이 안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가 흐려집니다.


.. (국제적십자위원회 파리 대표) 윌리엄 미셸은 상당히 놀라면서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드디어 분명해졌다고 적어 놓았다. 1. 일본에서 조선인 문제에는 전체적으로 봐서 인도적 배려는 없다. 2. 일본 정부는 생활이 곤궁하며 공산주의적인 데가 있는 조선인 수만 명을 배제함으로써, 안전 보장 문제와 (현재 빈궁한 조선인에게 거액의 돈이 지출되고 있다는 이유로) 예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 3. 이노우에 씨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필요하다면 북한에 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를 부채질해서라도 귀국사업을 실시할 결의를 갖고 있다 ..  (178쪽)


 책을 다 읽고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다 보니 178쪽에 나온 이야기가 이 책에서 글쓴이가 하고픈 말마디, 아니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 북송은 왜 이루어졌는가’를 밝히는 말마디 모두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래, 이 말마디를 1쪽부터 447쪽까지 되풀이 말하거나 거듭 되뇌었구나 싶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똑같이 꾸리고 있는 역사 한 자락을, 일본은 일본 정부 나름대로 제 배속만 차리려 한다는 정책이지만, 한국 또한 한국 정부 나름대로 제 배속만 채우려 한다는 정책일 뿐임을, 조금은 지루하게 살짝살짝 에돌며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어요. (4342.7.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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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혁명
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 / 예지(Wisdom)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책표지는 엉뚱한 녀석이 뜨네? -_-;;;;;) 

 



 직지심경을 ‘혁명’으로 삼지 않았으니 대한뉴스 따위가
 [잠깐 읽기 42] 존 맨, 《구텐베르크 혁명》



- 책이름 : 구텐베르크 혁명
- 글 : 존 맨
- 옮긴이 : 남경태
- 펴낸곳 : 예지 (2003.2.5.)
- 책값 : 14500원


 (1) 우리한테는 어떤 책이 있는가


 헌책방을 다니면서 놀랄 때가 더러 있습니다. 1970∼80년대에 나온 책인데, 그때 그 책에 붙은 값이 그때 여느 노동자 여러 달 일삯이 될 만큼 비싼 녀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툼한 사전이라면 그럴 수 있다지만, 그리 두툼하지 않으며 사전 아닌 학술책임에도 대단히 높은 값을 붙인 책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책은 요즈음에도 있습니다. 그만큼 값어치가 있고 뜻이 있다 하여 5만 원이니 7만 원이니 10만 원이니 15만 원이니 37만 원이니 하고 책값이 붙는데, 스무 해쯤 앞서인가 어느 분은 150만 원짜리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새롭게 놀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손바닥책을 보면서 놀라는데, 자그마치 1000쪽이 넘는 손바닥책을 펴내는데, 무게도 가볍고 펼쳐 읽기에도 좋으며, 알맹이도 야무졌습니다. 글씨는 작지만 읽으면서 눈이 아프지 않았고, 게다가 이 1000쪽이 넘는 손바닥책은 ‘사진 문고’였습니다.


.. 그 전까지 성서는 수도사들이 양피지에 필사하고 온갖 화려한 장식을 붙여 만드는 상당한 고급품이었다. 게다가 양피지의 재료값과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제작 공정을 감안하면 양피지본 성서는 일반인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사치재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위클리프와 후스가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친들 제대로 먹혀들기 어려웠다. 최소한 서민들의 가정마다 성서가 비치되어 있어야 성서로 돌아가든 말든 할 게 아닌가? 따라서 민중은 여전히 교회가 해석하는(또는 곡해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쇄술로 인해 성서가 대량으로, 값싸게 출판된 것은 종교개혁의 필수적인 배경이었던 것이다 ..  (8쪽/옮긴이 말)


 범우사에서 ‘범우문고’를 1000원이나 2000원에 판 때는 그리 오래된 옛날이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지식인마다 ‘삼중당문고’를 보며 자랐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삼중당문고가 아니었어도 뜻깊고 알차며 값싸고 야물딱진 손바닥책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얼마 앞서 빈센트 반 고흐 편지를 추려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박스,2009)가 새롭게 나왔는데, 800쪽짜리 26000원인 이 책을 보면서 지난날 정음사에서 ‘정음문고’로 낸 작고 가벼운 손바닥책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1970년대 정음문고에는 반 고흐 편지가 더 많이 실리지 않았습니다만, 1970년대 사람들은 이 작고 야무진 책을 단돈 몇 백 원으로 장만할 수 있었고, 나라안 헌책방에서도 2000년이 될 무렵까지 500원이나 1000원이면 ‘반 고흐를 만나고 새길 수 있었’습니다.

 《창가의 토토》 같은 책은 요즈음 새책 한 권 값이 8800원이니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펴낸 일본에서는 겉을 딱딱하고 두꺼운 판으로 댄 양장본도 있으나 훨씬 작고 조촐한 판으로 된 값싼 손바닥책을 함께 펴냈습니다. 일본에서는 웬만한 책들은 ‘작고 조촐하고 알차고 값싼’ 판으로 엮어내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책은 으레 두꺼운 판을 대어 ‘접히거나 구겨지거나 찢어지지 않게끔’ 해 주고 있는데,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꼭 ‘두꺼운 판 대기’만을 하지 않습니다. ‘두꺼운 판이 아닌 여느 두꺼운 종이(여느 도화지보다 조금 두꺼운)를 쓴’ 가볍고 값싼 책도 곧잘 펴냅니다.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라는 그림책은 처음에 이렇게 ‘두꺼운 종이 하나로만 살짝 댄 판’으로 나왔다고 떠오릅니다.


.. 1400년경에는 현대적 개념의 과학적, 역사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었다. 문헌의 양이 사막의 꽃처럼 드물었을 뿐더러 설사 있다 해도 평생 동안 찾아다녀야 겨우 하나 건질까 말까 한 정도였기 대문이다. 유일하게 참된 진리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교회는 마치 빅 브러더처럼 (문헌을 다루는) 필경사와 (구술을 다루는) 사제, 그리고 둘 다에 관련된 예술가를 이용하여 매체를 통제했다. 교회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부유해졌으나, 부와 특권에 부수되게 마련인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  (61쪽)


 ‘공정여행 가이드북’이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456쪽에 이르는 무지개빛 사진 가득 담긴 이 책은 16000원이 붙습니다.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천권의책,2009)도 읽고 있습니다. 339쪽에 이르고 판은 조금 작고 글도 얼마 안 실려 있으나 책값은 15000원이 붙습니다.

 책값이 싸다고 착하거나 좋은 책이 아닙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나쁜 책이거나 못된 책이 아닙니다. 다만, 책 하나 만들면서 어떤 종이를 어떻게 쓰고, 글은 빈자리를 얼마나 두면서 엮어내어 보여주려 하느냐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종이 무게에 따라 종이값이 달라지고, 종이값이 달라지면 으레 책값이 달라집니다. 빛깔있는 사진을 넣으면 인쇄값이 높아집니다만, 부수를 적게 하면 인쇄단가가 높은 셈이라 책값을 낮게 매기기 어렵습니다. 1000권을 찍을 때하고 1만 권을 찍을 때하고 인쇄단가가 사뭇 다르기에, 책 하나에 붙는 값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책이 가볍고 예쁘장하며 값까지 싸다고 하여도, 속에 담은 알맹이가 여물지 못했으면 눈길이나 손길이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겉꾸밈이 훌륭하다 하여도, 훌륭히 꾸민 겉싸개가 안고 있는 알맹이가 흐물흐물하거나 곪아터져 있다면, ‘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한낱 ‘종이뭉치’입니다.

 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찍혀 나오더라도 신문 노릇을 하지 않을 때에는 신문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학생들 앞에 서더라도 교사 노릇을 하지 않을 때에는 교사라 하기 어렵습니다. 책이 책 노릇을 할 때라야 비로소 책 값어치가 있습니다. 책으로서 값어치가 있을 때에는 조금 비싸더라도 즐겁게 장만할 수 있으며, 값어치가 있으면서 눅은 값이라 하면 한결 고맙게 마련할 수 있는 대목이 다릅니다.


.. 아르보가스트 수도원 근처에서 구텐베르크는 무슨 일을 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돈을 벌고 싶었고, 그것도 많이 벌고 싶었다 … 하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최종 생산물, 즉 책이 있어야 한다. 그만한 경비와 노력을 기울이고 채무까지 떠안은 판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그는 베스트셀러가 필요했고, 그것도 가능한 한 여러 권이 있어야 했다. 아직 성서는 상업적 가능성이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교회와 성직자들을 감안하여 성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다 …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교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통해 권위와 더불어 막대한 수입도 올렸다. 성서를 널리 보급해야 한다는 생각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 품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특히 구텐베르크의 기본 시장이 되어 줄 학생과 교사들-은 성서가 없었으며, 필사본이든 인쇄본이든 성서를 구입할 만한 재정적 여유도 없었다 ..  (90, 194∼195쪽)


 그러면 우리 나라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요. 우리 나라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책마다 어떤 알맹이를 넣어 꾸미고 있을까요. 책을 만들고 팔아 번 돈은 책 만들기에 얼마나 다시 돌아가도록 얼거리를 짜 놓고 있는가요. 흔한 말로, 책 팔아 번 돈으로 땅 사고 빌딩 사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 팔아 거둔 돈으로 음료수 만들고 정수기와 비데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 팔아 번 돈으로 교재 만들어 더 커다란 돈을 긁어모으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을 쓰는 사람들 땀방울, 책을 엮는 사람들 품, 책을 사읽는 사람들 주머니와 겨를을 온통 빼앗거나 내동댕이치는 쪽으로 흐르는 오늘날 우리 책문화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 1450년까지도 면죄부는 교회가 기금을 모집하는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  (209쪽)


 무엇보다도,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교과서 아닌 책’을 들여다볼 틈을 내주지 않는 매무새와 흐름이 걱정스럽습니다.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과 키우는 어른이 당신 아이들한테 스스로 ‘교과서 아닌 책’을 읽도록 책을 베풀거나 말미를 마련해 줄 생각은 아예 없지 않느냐 싶어 근심스럽습니다. 가까스로 입시지옥에서 벗어났어도 ‘책다운 책’을 알아가도록 아이들을 풀어놓지 않고서 ‘새로운 돈벌이 굴레’에 허덕이도록 내몰면서 바보처럼 살도록 밀어내지는 않느냐 싶어 가슴이 저밉니다.


 (2) 직지심경은 ‘혁명’이 못 되었으나 구텐베르크는 ‘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고 하는 《직지심경(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책이 우리 나라에서 1377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우리네 옛 역사가 얼마나 거룩하고 대단했는가를 들면서 《직지심경》이며 온갖 ‘옛 활자본’을 이야기하고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서양에서는 《직지심경》을 그리 대단하게 높이거나 받들지 않는 듯 보입니다. 햇수로 치면 《직지심경》이 훨씬 앞서는 금속활자본이라 할 만하지만, ‘맨 처음’이라는 대목을 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벤베르크가 했던 성경 찍기는 서양에서 ‘종교개혁’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뜯어고치기’를 이룬 발판이 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 나온 《직지심경》은 여느 사람들 삶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채 ‘조용히’ 이루어졌거든요.


.. 그런데 왜 동양에서는 그 인쇄술이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 왜 동양에서는 인쇄술을 바탕으로 ‘출판사’들이 곳곳에 세워지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민간 부문이 발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관에서 독점하던 동양 역사의 특유한 성격 때문이다. 지배층의 관점에서, 서적이란 일반 백성이 보는 게 아니었다. 그랬기에 동양에서는 인쇄술이 개발되었어도 ‘장서용’ 역사서나 몇 부 찍어서 서고(사고)에 보관하는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지식은 생산의 측면에 못지않게 보급의 측면이 중요하다.지식의 대중화는 지식의 재생산과 업그레이드를 가능케 할 뿐더러, 지식을 독점하고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차단함으로써 권력을 누리는 지식 권력체가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  (10쪽/옮긴이 말)


 교과서에 몇 줄로 짤막하게 ‘종교개혁’을 했다는 사람으로 나와 있는 ‘루터’라는 사람은, “교황은 면죄부 판매상들의 탐욕과 부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성 베드로 대성당이 신도들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355쪽)” 같은 말을 책으로 찍어서 사람들한테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루터가 이런 말을 했는지, 또 다른 어떤 말을 했는지 잘 모릅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세계사 교과서로는 이러한 이야기를 알 수 없었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찾아낸 ‘루터 평전’이 두어 가지 있는데, 이런 책을 읽었을 때 비로소 이와 같은 대목을 헤아릴 수 있었으나, 학교 교과서 교육으로는 오직 한 마디 ‘종교개혁’이라는 말마디만 듣고 배웠을 뿐입니다.


.. 인쇄는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확산시켰다. 예전에는 지배자들이 추종자들에게 말하거나, 법률가들이 법정에서 말하면 그들의 말은 문자 기록으로 남았다. 학자의 저작이나 성현의 가르침과는 달리 민간의 문학 작품이 글로 남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거기에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피콜로미니의 《두 연인의 이야기》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어디서나 라틴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설득력 있게 말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느 누구-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첵에서가 아니면) 그런 적이 없었다. 이제 새로운 양식이 발명되었다 … 인쇄술이 남긴 중요한 결과들 중 한 가지는 인간의 행위와 지식의 거의 모든 측면을 범주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  (339, 341쪽)


 우리 나라는 인터넷이 집집마다 들어서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셈틀 한 대쯤 없는 집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텔레비전 안 키우는 집이란 몹시 드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온나라 사람이 낱낱이 꿰고 있지는 않으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날마다 떠도는 소식과 정보로 우리 머리와 눈과 귀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소식과 정보를 듣고 얻을 문은 있되, 우리 스스로 온갖 소식과 정보를 일구어 나눌 자리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며칠 앞서 정부에서는 ‘극장판 대한뉴스’를 되살려 내었습니다. 극장에서 틀어 주는 대한뉴스란 지난날 독재정권이 일삼던 ‘땡전뉴스’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사람들한테 세금을 거두어들여 허튼 짓을 하면서 이 허튼 짓이 허튼 짓이 아닌 듯 보이도록 하려는 몸짓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제국주의자들이 천황한테 예의를 지키라 했고, 해방 뒤 독재정권이 나라님 앞에 예의를 지키라 했듯(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대한뉴스나 땡전뉴스는 이러한 소식과 정보를 내보이면서 ‘이런 이야기도 있으니 한번 들어 보라’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참이니까, 다른 데에 귀기울이지 말고 고스란히 믿고 따르기만 하라’는 억누름입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우리 넋과 얼과 말과 몸짓을 옭죄는 이 나라는, 대한뉴스라고 하는 허수아비 시늉을 선보이면서 우리네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준다고 할까요. 자유롭고 너른 생각과 뜻을 나누려는 ‘개혁’을 꿈꾸며 책을 찍고 인쇄술을 발돋움시킨 한국이 아니었던 지난날 발자국처럼, 오늘날에 와서도 자유롭고 너른 생각과 뜻을 북돋우고 이끌어 내려고는 꿈꾸지 못하는 어줍잖고 어리숙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할까요.


.. 틴들의 《신약성서》는 최대한 가격을 낮게 책정했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노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필사본 성서의 가격이 30파운드 이상이었을 때-당시 노동자의 연가 수입은 겨우 2파운드였다-, 틴들의 《신약성서》는 소매 가격이 4실링(20펜스)이었고, 때로는 더 낮았다 … 당시 가톨릭에서 신교로 향하는 고통스럽고 피비린내나는 이행을 겪고 있었던 잉글랜드에서 틴들은 결과적으로 큰 기여를 한 셈이었다. 그가 영어의 봇물을 터뜨린 덕분에 수십 년 뒤에는 셰익스피어와 흠정영역성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틴들은 일상어를 사용해서 성서를 번역했다는 점에서 잉글랜드의 루터였다. 그는 “소박한 모국어로 된 성서를 눈앞에 놓아 주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회의하는 어느 성직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나는 쟁기를 가는 소년을 가르쳐, 당신보다 성서에 관해 더 많이 알도록 만든 적도 있었소!” ..  (376, 378쪽)


 대한뉴스 이야기를 한 마디 보태 본다면, ㅈ일보 어느 기자는 “아직도 우리는 대한뉴스를 보면서 웃어줄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대한뉴스가 자신의 사상을 지배하게 될까봐 그래서 두려운 것은 아닐까? 그렇게도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건가?”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묻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대한뉴스를 옳게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뉴스란, ‘극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즐겁게 볼 권리를 빼앗’습니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느니 마느니에 앞서 우리들한테 ‘보여주어도 되느냐?’ 하고 묻지 않았으며, 보여준다고 할 때에도 어떤 이야기를 누가 엮고 짜서 보여주려고 하는가를 묻지 않았고, 열린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똑똑히 듣거나 살피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버젓이 이루어지는 ‘허울좋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하고 매한가지인 대한뉴스이고 국가보안법입니다. 자율로 이루어지지 않는 자율학습처럼, 대한민국 이야기라 할 수 없는 대한뉴스입니다. 보충을 하려고 하는 보충수업이 아니듯, 국가를 보안한다는 뜻이 아닌 국가보안법입니다. 예나 이제나 수없이 많은 일들이 ‘나라사랑(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여집니다. 날마다 숱한 일들이 ‘공익’이라는 이름을 걸고 펼쳐집니다.

 《구텐베르크 혁명》을 쓴 존 맨 님은 책을 마무리할 즈음, “금지된다는 것은 일종의 추천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흠을 잡기는 쉽다. 검열관은 원래 세계 어디서나 욕설과 조롱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38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나라 정부나 군대에서 아직까지 ‘불온도서-금지도서 목록’을 만들어 내놓는 일과 마찬가지로, 1400년대까지 서양 교회에서는 ‘불온하니 금지할 책이 이렇게 있다’고 알리곤 했고, 그 뒤로도 끝없이 알리고 있습니다.


.. 군주와 의회는 더 이상 글을 아는 사람에게 자신들의 통치 행위를 숨길 수 없었고, 자신들이나 후손들의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  (344쪽)


 굳이 ㅈ일보 기자 말이 아니더라도 ‘대한뉴스를 수없이 틀어대어도 정부가 잘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잘하는 줄 깨닫고, 잘못하고 있으면 잘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웃으면서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ㅈㅈㄷ이라고 하는 신문들을 얼마든지 ‘웃으면서 너그러이 펼쳐들’ 수 있고, 경품권을 기쁘게 받아들면서 집에서 신문 한 부 받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이런 일은 ‘옳은’ 일인가요? 이런 일은 ‘바른’ 삶인가요? 대한뉴스를 보면서 웃어 주자고 하는 ㅈ일보 기자님은 ‘ㅈㅈㄷ이라는 신문을 꾸짖고 나무라는 사람들 목소리’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이거나 하하 웃으면서 보아넘기고 있으신지요?

 ㅈㅈㄷ이든 다른 신문이든, 또 인터넷이든 방송이든, 옳은 일은 옳게 해야 하고, 옳지 못한 일은 옳지 못한 일이었음을 느끼도록 꾸짖음을 듣고는 차근차근 고쳐 나가야 합니다. 《구텐베르크 혁명》이라는 책에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통치 행위를 숨길 수 없”으니까요.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더 바보로 가는 길로 내몰고, 너른 터를 빼앗으며, 비정규직으로 몰아세우지만, 이렇게 내몰리고 빼앗기고 몰아세워진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바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박물관 유적이 되어 유리진열대 안에 놓이거나, 역사책에 적혀 시험문제 풀이로 외워야 하는 ‘직지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삶을 옳고 바른 쪽으로 고쳐 나가도록 돕는 ‘책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고 사랑을 쏟고 싶고 믿음을 함께하고 싶어할 테니까요. (4342.6.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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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봉기하다 : 영화 감독 김기영 - 오마주아 총서 003
이효인 지음 / 하늘아래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나라안에 ‘드문’ 영화감독과 영화책이긴 한데
 [잠깐 읽기 41] 이효인,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


- 책이름 :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
- 글 : 이효인
- 펴낸곳 : 하늘아래 (2002.10.1.)
- 책값 : 1만 원


 (1) 영화와 삶


 아기와 함께 살기 앞서도 극장마실은 거의 못했다고 떠오릅니다. 딱히 극장까지 찾아가서 볼 만한 영화가 있었는가 싶기도 했고, 먹고살기에 바빠서가 아니라 동네 문화 지키는 일에 힘을 쏟느라 극장마실은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독립다큐영화인 〈어느 날 그 길에서〉(황윤 감독)를 마지막으로 극장마실은 해 보지 못했지 싶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저 사람들은 극장 한 번 안 가느냐?’ 할 텐데, 우리 사는 동네에 극장은 꼭 하나만 살아남은 가운데 이곳에 걸리는 영화는 온통 ‘흥행’과 ‘값싼 시간 죽이기’ 느낌이 짙기 때문에 굳이 극장마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뭉클뭉클 움직이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를 꾸준히 내거는 극장이 가까이 있었다면 열 일을 젖히지는 못했을 터라도 한두 일은 젖히고 극장마실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김기영)는 스스로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예술적 성취를 이룬 행복한 감독이었고, 영화 시장에서도 결코 운 나쁜 감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전무후무한 독창성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길을 한국 영화사에 열어 놓았다 … 그는 ‘한국 영화다운’ 감독이었지만,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한국 영화를 벗어던진 감독이기도 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1960년대 한국 영화계는, 얼치기 장사치들이 도박하는 심정으로, 또 여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재미로 돈 보따리를 싸들고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영화 기자재나 시설에 투자하는 제작자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일확척금을 노리는 투기꾼들로, “예술 같은 소리하네” 하며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대중의 속류 취미에 영합하는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  (12∼13, 35쪽)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기 때문이라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아기를 함께 보고 있기에 함께 극장마실을 못한다 할지라도, 한 사람씩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올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하자면 몹시 힘이 들기는 들지만, 극장마실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극장에 아기를 데리고 찾아가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시설을 바라기란 꿈 같은 노릇이라 할는지 모르는데, 이 나라에 애 키우는 어버이가 한둘이 아님을 헤아린다면, 이렇게 바랄 수 있어야 하고, 또 바라야 하며, 또한 시설을 갖추어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여, 바퀴걸상을 타고도 극장을 드나들 수 있게끔 시설을 갖추어야 할 테고, 나무다리 짚고도 어려움 없이 극장을 찾아갈 수 있게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철역에만 ‘장애인 화장실 자리’를 마련할 일이 아니라, 극장에도 마련해야 하고 큰 건물뿐 아니라 작은 건물에도 바퀴걸상을 끌고 들어갈 만한 뒷간을 마련해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영화란 ‘있는’ 사람만 즐기는 문화나 예술이 아닐 테니까요. 책이란 ‘있는’ 사람만 즐기는 문화나 예술이 아닌 한편, ‘배운’ 사람만 누리거나 맛보는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누구나 누리거나 맛볼 문화나 예술이며, 언제 어디서라도 함께할 만한 문화나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좀더 나아간다면, 팔다리가 없는 사람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터전이 닦여 있어야 할 테며, 영화찍기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드나들 대학교 문턱이 활짝 열려야 합니다. 스크린쿼터제를 말하기 앞서, 우리가 영화를 영화답게 즐기면서 받아들일 터전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시골이나 도시 변두리에도 극장 하나 들어서기를 바라기 앞서, 영화를 우리 삶으로 느낄 만한 터전이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 그런 와중에 김기영이 〈이어도〉를 생각해 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주류였던 속류 리얼리즘 영화의 외풍 속에서 한국의 무속적 주술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을 참담할 정도로 끝까지 밀고 간 것이다. 또 곁들인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는 그때 이미 생태계 문제까지 거론했다. 김기영이 ‘김기영’일 수 있는 것은 (당대의 역사적 문맥을 벗어난) 완벽성보다는 (당대의 미학적 문맥을 향하여) 먼저 미끄러지면서 속류 리얼리즘이라는 억압적 주류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  (81쪽)


 영화만이 아닙니다. 또, 책만이 아닙니다. 춤과 노래도 매한가지입니다. 연극과 공연도 한동아리입니다. 모든 문화와 온갖 예술은 우리 삶에 밑바탕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자락을 함께 이루는 이웃들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동네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이면서 너른 공연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즐길 수 있는 책 하나이면서, 먼 뒷날 우리 뒷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책 하나여야 합니다. 우리 겨레가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춤과 노래이면서, 이웃 겨레가 손잡고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춤과 노래여야 합니다. 돈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이나 공연이 아니라, 돈이 없이도 넉넉히 즐기고 돈이 있으면 있는 만큼 푸지게 잔치판을 벌이는 연극과 공연이어야 합니다.

 계급이 아니니까요. 신분이 아니니까요. 내려다보기가 아니니까요. 올려다보기 또한 아니니까요.

 하늘나라에서 베풀어 주는 선물이 아닌, 바로 이 땅에서 우리 손으로 일구어 영글도록 하는 문화로서 영화입니다. 바깥나라에서 보내어 주는 선물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땀흘리며 이루고 맺도록 하는 예술로서 영화입니다.


.. 산만하게, 마치 모래를 흩뿌리는 것처럼 김기영은 ‘…다’로 끝나는 각양각색의 삼류 잠언들을 영화 곳곳에 심어 놓는다. 그에게는 사랑도 없고, 믿음도 없으며, 오로지 관객들을 ‘놀래킬 영화’만이 중요했는지 모른다 … 단순히 ‘비참한 현실을 봉합’만 한 것이 아니라, ‘하녀들’을 실컷 욕보이다가 우리들의 세상을 ‘욕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기영의 ‘하녀들’은 세상에 ‘능욕 당하면서도’ 세상을, 아니 우리들을 ‘능욕한’ 것이었다 ..  (95, 126쪽)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터를 우리 손으로 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만남터를 우리 손으로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쉼터를 우리 손으로 짓뭉개고 있습니다. 우리 살림터를 우리 땀방울로 허물고 있어요.

 여럿이 어울릴 너른 터를 버리고 자가용 세워 놓는 터로 바꾸어 놓습니다. 옹기종기 어울리면서 살아갈 마을을 없애고 높다란 아파트로 부동산 노릇을 하도록 고쳐 놓습니다. 조그마한 골목길까지 자가용으로 밀고들어오며, 학교 운동장을 줄이고 교사들 자가용 세울 자리를 마련해 놓습니다. 운동기구나 놀이시설이 변변하게 없었어도 너른 운동장에서 갖가지 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은 하나둘 사라졌는데, 노는 아이들만 사라지지 않고 ‘서로 어울려 노는 어른들’ 또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으레 ‘골목길에 아이가 사라지고 시골에 아이가 사라진다’고만 말하지만, 아이들이 사라지기 앞서 ‘어른이 먼저 사라’졌습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이름값과 더 많은 권력을 바라보면서 시멘트와 쇠붙이로 이루어진 사무실에 틀어박혀 버렸고, 이웃이 사촌이 되고 옆집 사람과 서로 동무를 맺던 흐름을 깨 버렸습니다. 깨어진 틈바구니에서 아이들이 끼어들 자리란 없었고, 아이들은 놀이터도 운동장도 골목길도 고샅길도 빼앗긴 가운데 방구석으로 움츠러들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내어주는 옷이며 밥이며 집이며 교육제도며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할지라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는 사랑이며 믿음이며 따스함이며 넉넉함이며 송두리째 스러져 버렸어요.

 이리하여, 오늘날은 책은 책대로 넘치지만, 껍데기 책이 훨씬 많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은 지난날처럼 온갖 가위질에 쩔쩔매는 영화가 거의 없다지만, 알맹이 영화는 외려 나오기 힘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삶이 망가진 자리에는 책 또한 망가지니까요. 삶이 망가진 자리에서 영화 또한 망가지고 마니까요.


 (2)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라는 이야기책


 영화이야기를 즐겨쓰는 이효인 님이 2002년에 펴낸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를 읽습니다. 벌써 일곱 해나 흘렀고, 이 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김기영 님은 저승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화뿐 아니라 모든 문화와 예술이 뒤처져 있는데다가 제대로 자료를 간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노릇이지만 김기영이라고 하는 영화감독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갈무리하기로는 이효인 님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고, 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낱권책 하나로 영화감독 한 사람을 다루는 일로는.


.. 그는 이런 자신의 가족들의 관계와 이력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인텔리 집안 출신이며 예술적 재능을 지닌 혈족의 일원이라는 점이 김기영 자신에게는 평생 동안 남들과 구분 짓는 선민 의식의 뿌리였다. 그의 영화가 거의 언제나 대중들의 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가끔 ‘너희들은 몰랐지?’라는 발언을 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 김수용과 유현목 (감독)은 대체로 예술 엘리트주의의 입장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서민의 고통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엘리트들의 연민으로 보이거나 그 묘사 방식에서도 엘리트적이다. 신상옥은 대중의 고통 따위는 영화적 소재에 불과할 뿐 진정한 문제제기나 해결책의 모색과는 전혀 거리가 먼, 보다 더 고압적인 엘리트의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이만희는 비교적 김기영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만희는 통속적이기는 하되 통속  그 자체에 묻혀 버린 영화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 김기영 역시 통속적인 흥행성을 대단히 추구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감성은 대단히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영화의 매혹에 대해 아마도 성 묘사가 노골적이며 많았기 때문이며,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손님이 안 드니까 장르로 관객과 씨름한 데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  (23, 44쪽)


 저는 김기영 님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김ㆍ기ㆍ영’이라는 이름 석 자 또한 낯섭니다. 영화를 잘 몰라서도 그러할 테지만,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던 고등학생 때까지(1993년까지) 텔레비전에서 ‘김기영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잠깐 스쳐 보았을는지 모릅니다. 보고도 모를 수 있고, 보고도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널리 이름난 몇몇 영화감독이 아니고서는 여느 사람한테까지 두루 알려지지 못할 테니 어쩔 수 없다 말하고 넘어가도 되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과 ‘개성’이란 좀처럼 스며들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양성이든 개성이든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삶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권력이, 제도권교육이, 월급쟁이 회사원 얼거리가,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 얼거리를 넘어 바로 우리들 삶부터.


.. 특히 박정희 군사 정권의 집권 연장을 위한 강압적 통치는 한국 영화를 말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선 박 정권은 비현실적인 영화사 등록제를 시행하여 일정한 시설과 장비 그리고 인력을 갖추지 않은 영화사는 영화 제작조차 못하게 했다 … 이런 행정적인 규제보다 더 불리한 조건은 박 정권의 정치적 검열이었다. 가혹한 검열에 의해 많은 영화들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거나 미미한 신체 노출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 빌미가 되어 ‘반공’과 ‘도덕’이라는 잣대로 가위질을 당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 어두운 면이란, 가난한 동네가 배경이 된다던가, 길거리에 연탄재가 나와 있다거나, 방안에 요강이 있다거나 하는 따위의, 실제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들이었다 … 당시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정부 기관의 검열을 거친 뒤 허가가 나야만 제작에 착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뒤에도 제작자는 제작자대로 검열을 했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촬영장, 편집실, 시사실 등 모든 과정은 검열의 과정이었다 … 결과적으로 한국의 명망 있는 감독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밖에 없었다. ‘반공 영화’, ‘새마을 영화’, ‘이순신 장군 영화’같이 국책에 부응하는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그 하나였고, 무색무취하되 말초적인 흥행 감각만을 좇아 만드는 방법이 두 번째 방법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외화 수입 쿼터를 따낼 수 있는 ‘우수 영화’ 선정을 노리는 방법이 세 번째 방법이었다 … 그(김기영)는 영화 인생을 유지하고 빚을 갚기 위해 사십대와 오십대를 보냈고, 억압적인 정치 환경과 이율배반적인 검열을 빠져나가기 위해 뒤틀린 표현을 하느라 오십대와 육십대를 흘려보냈다 ..  (47∼49, 67쪽)


 영화감독 김기영 님은 ‘빚 갚기’와 ‘뒤틀린 골짜기에서 허덕이기’를 하면서, 당신 영화문화와 영화예술을 빛내도록 할 나날을 허투루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이제 와 돌이켜볼 때에 ‘김기영한테는 김기영 빛깔이 있다’는 영화를 빚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영화며 책이며 연극이며 춤이며 온갖 문화와 예술을 짓밟는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면, 김기영 영화는 어떠한 쪽으로 흘렀을까요. 그때에는 한결 아름답고 훌륭하며 거룩한 길을 걸었을까요. 그때에도 오늘 우리한테 남겨진 영화와 마찬가지인 길을 걸었을까요. 그때에는 영화에는 아예 눈길 한 번 안 보내고 의사라는 길을 걸었을까요. 그때에는 더더욱 상업주의 영화로 깊이 파고들었을까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영화를 찍는 분들은 어떤 매무새로 영화를 만나고 있는가요. 오늘날 영화 감독들께서도 ‘빚 갚기’에 허덕이고 있으신가요. ‘뒤틀린 골짜기에서 허덕이기’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으신가요. 애써 만들었어도 걸어 놓을 극장을 얻지 못해 고달프신가요. 돈이 되는 영화를 빚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으신가요. 돈에 앞서 사람마음을 건드릴 영화에 온 넋과 얼을 바치고 있으신가요.


.. 그는 모든 허례나 허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왜 영화 속에 비정상적인 체위가 나오느냐?”고 묻자 그는 “난 변태니까”라는 말로 그냥 받아넘길 정도였다. 그에게는 실질, 실속, 실익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영화에는 상업적 코드가 대단히 많이 들어 있다. 그가 “어린이 같은 사람”이라는 견해를 수용한다면, 김기영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예술 영화를 추구하는 감독으로 인식되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는 예술가다 ..  (152쪽)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를 덮습니다. 나라안에 드문 영화감독 김기영이었던 만큼, 이 책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 또한 나라안에 드문 ‘영화를 말하는 책’입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영화 이야기를 다루어 주었고, 여느 사람은 건드리기 힘든 영화 자료를 곳곳에 잘 자리잡아 놓으면서 ‘글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즐겁게’ 넘겨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펼치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무언가 자꾸 까끌까끌하게 입안에 남습니다. 애써 책 하나로 ‘나라안에 드물었던’ 영화감독 한 사람 삶과 생각을 다루려 했는데, 이렇게밖에는 못하나 싶은 까끌까끌함입니다. 아직은 ‘책 하나로 영화감독 김기영을 속속들이 밝혀 말하기 어려웁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좀더 차분하게 발자취를 밟아 볼 수 없었나 싶어 아쉽습니다. ‘남다른 영화감독한테 바치는 꽃다발’로 엮은 책인지, ‘남달랐지만 아쉬운 영화감독을 바라보며 오늘날 영화감독은 거듭나기를 바라는 채찍질’로 엮은 책인지, ‘나는 김기영을 좀 아는데, 김기영은 이렇더라구’ 하는 수다떨기를 하려고 엮은 책인지 갈피를 잡기 힘듭니다.

 그리 길지 않은 책임에도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된 대목이 있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집어넣은 대목이 자주 보입니다. 이를테면 “그 특정 장르에 어울리는 도상圖像icon이 필요할 때마다”처럼 글을 쓴 대목입니다. ‘도상圖像icon’이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모쪼록, 그동안 일곱 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그사이 김기영 감독과 얽힌 새로운 자료가 더 나왔을는지 모르고, 여러 증언과 이야기와 필름이 나왔을는지 모릅니다. 글쓴이 스스로도 좀더 글매무새를 다독이는 세월이 되었을는지 모르고요.

 부디 이 책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가 그저 ‘나라안에 드물었던 영화감독’을 다루는 ‘나라안에 드문 책’쯤으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영화에 온삶을 바친 영화감독 발자취와 삶자락이 좀더 깊고 너르게 드러나는 이야기꽃을 피워내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지식’을 얻자고 들여다보지 않는 만큼, 영화감독과 영화작품을 다루는 자리에서도 ‘지식’이 아닌 ‘감동’이 있는, 그러니까 영화감독 ‘삶’이 물씬 묻어내는 이야기꽃을 펼쳐내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2.6.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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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책을 읽는다 - 심리학자가 읽어 주는 판타지 문학
가와이 하야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12 ― 생각씨앗 자라는 판타지 문학이란 무엇인가
 : 가와이 하야오, 《판타지 책을 읽는다》



- 책이름 : 판타지 책을 읽는다
- 글 : 가와이 하야오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비룡소 (2006.5.4.)
- 책값 : 13000원



 (1) 사람들이 생각하는 힘이란


 자전거를 함께 타는 벗이자 인터넷신문 기자인 ㄱ아저씨가 제 책을 소개하는 글을 하나 써 주었습니다. 바쁜 가운데 이런 글을 써 주니 고맙다고 느끼고 있는데, 오늘 낮 ㄱ방송국(라디오)에서 전화가 옵니다. 저녁에 전화로 ‘생방송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방송작가는 “아직 선생님 책은 읽지 않았는데요……” 하고 말합니다. 아마 오늘이나 어제 인터넷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오늘 저녁에 모실 손님이 없어 애먹고 있었는데 마침 잘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책 하나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정작 그 책을 읽지 않고도 어떻게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 사회 ‘상상력’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힘이 있지 않을까 하고 느낍니다.


.. 병 때문에 오랫동안 쉬어야 할 때, 환자는 자신이 손해를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 안타깝게도 병을 앓는 봉인들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 병은 마리안느의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병은 인간의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 … 타인의 눈을 의식할 때 우리의 정체성은 ‘나의’ 것에서 ‘모두’의 것이 되고 복제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 죽은 자의 눈앞에서라면 우리는 잔걱정을 하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훨씬 깊은 곳에서, 또는 훨씬 높은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 어머니를 잃는 것은 어린이의 성장에 큰 타격을 주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평범한 사람은 지닐 수 없는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리라 ..  (33, 35, 138∼139, 283쪽)


 어제 경기도 파주로 자전거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5월부터 다음 7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 하는 ‘야외 실습 교육’으로 하는 특별강좌를 맡았고, 저는 이 자전거 수업을 할 때면(한 시 반부터 세 시 반까지 합니다), 집부터 자전거를 타고 파주로 갑니다. 그러나 새벽 두어 시부터 깨어나 하루치 글을 미리 쓰고 아기 죽과 어른 두 사람 먹을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뭐를 하고 챙기다 보면 금세 열 시가 가까워지는 바람에, 구로까지는 전철을 타고 자전거로 달린다든지, 그냥 대화역까지 전철을 타고 간 다음 자전거를 타고 파주로 들어가든지 합니다. 어제는 구로부터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자전거도 찻길에서는 똑같은 ‘차’입니다. 법으로는 그렇습니다. 자전거 또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끝쪽 찻길 하나를 차지하며 달릴 ‘권리’가 있습니다. 법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찻길 하나는커녕 갓길 이십 센티미터나 내어주고자 마음을 쓰는 자동차는 그리 안 많습니다. 버스는 더욱 짓궂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전거를 지켜 주는 법을 자동차 모는 사람이 안 지킨다 하여 어느 누가 붙잡거나 딱지 붙이거나 벌금 매기는 일이란 없습니다. 민증에 빨간줄 그어지는 일 또한 없습니다. 너무 짓궂은 짓을 하느라 자전거 탄 사람이 삿대질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삿대질을 해 본들 미안해 하는 얼굴빛을 하는 자동차꾼은 아직 없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멀리 에돌아 다닙니다. 예전에는 ‘저 사람한테도 동무와 식구와 이웃이 있을 텐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동무나 식구나 이웃이었어도 이렇게 몰았을까?’ 하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는데, 아무래도 이런저런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볼 만한 값어치 하나 없는 분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 소중한 것은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 요나탄의 용기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힘 속에서 나온다. 요나탄은 인간의 운명을 존중하는 한 아무리 악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연장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 ‘쓸쓸함’이라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필요한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38, 101, 148쪽)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수업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 보았습니다. “친구들 가운데 집에 자가용 없는 사람 있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친구들 가운데 집에 자가용 두 대 있는 사람은?” 하니까 거의 모두 손을 듭니다. 친구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따로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아이들을 집부터 대안학교까지 데려다 주자면 차에 태워야 할 터이나, 집부터 당신 일터까지도 언제나 자가용을 몬다는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친구들이 하는 말도 그렇습니다.

 열세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인 이 아이들이 운전면허를 딸 나이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쯤 되면 으레 운전면허를 따려 할 테며, 운전면허를 딴 다음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차를 물려받게 될 테고, 그러면 한 집에 자가용이 석 대가 되겠지요. 웬만큼 있는 분들은 한 집에 자가용 서너 대쯤은 아무렇지 않게 굴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 나라이니까요.

 하루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처럼 한 집에 자가용 두어 대, 또는 서너 대를 굴리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 하고. 기름 한 방울 안 나면서 이렇게 자가용을 많이 몰아대고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가 또 있을까 하고.

 자가용을 굴리면서 기름 걱정을 해 보기나 할는지 궁금합니다. 기름 걱정 없이 돈만 부지런히 벌어대는 사람들이 당신 이웃이 겪는 아픔과 고단함을 어느 만큼 헤아릴 가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물건’에 생명은 없지만 영혼은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을까? … 토티는 마음의 교류를 통해 아이들과 관계를 맺어 간다. 그에 비해 마치페인은 화려한 겉모습이나 옷이나 아름다움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다. 물론 둘 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마치페인이 아름다워지고 아이들이 소중히 다룰수록 마치페인은 점점 더 놀이를 싫어하고 오히려 박물관의 장식품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사람도 훌륭해지고 남들로부터 중요한 존재로 대접받기 시작하면, 남들과 접촉하기 싫어하여 일종의 ‘박물관’(때로는 ‘원로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  (48, 71∼72쪽)


 아기를 낳기 앞서부터 옆지기하고 곧잘 찾아가는 신포시장 야채치킨집에는 할아버지 술손이 많이 찾아듭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낄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이곳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술손이 퍽 살갑다고 느낍니다. 할아버지 술손은 거의 날마다 출근하듯 이곳을 찾아오시는데, 가볍게 꼭 알맞게만 술잔을 기울이고는 집으로 돌아가시고, 옆지기가 아기를 배었을 때에는 피우던 담배를 하나같이 끄고, 정 피우고 싶으면 밖으로 나가 피우시곤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직 손님이 들지 않던 때라 우리들은 느긋하게 앉아서 ‘우리 때문에 담배 안 태운다는 걱정을 안 해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있는데, 삼십 분이 되지 않아 한 분 두 분 찾아드셨고, 슬슬 찾아드는 손님들은 언제나처럼 “아기가 있는데 담배 태우면 안 되지” 하고 말씀하며 아기 앞에서 그 나이에 재롱을 떨어 줍니다. 저번에는 “괜찮아요. (아기가 여기에 있는) 덕분에 우리도 담배 끊고 있는 거지. 이런 기회에 담배 안 피워도 되니 좋아요.” 하면서 웃으셨는데, 조금 뒤 보니 밖에 나가서 피우시더군요.

 그렇지만, 이렇게 마음써 주는 할아버지가 있는 가운데, ‘동네사람들 으레 찾는 닭집’에 아이들하고 찾아온 손님이 바로 당신들 옆에 있는데에도 뻐끔뻐끔 담배 연기 내뿜는 젊은이나 늙은이가 있으며, 아기를 안거나 업고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바로 곁에서 담배 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뿜는 양복쟁이들이 있습니다.


.. 부모와 자식, 보수와 혁신 사이에는 항상 대립이 존재한다.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다. 자칫하면 어느 쪽이 이기느냐로 변질되어 둘 다 파멸하고 만다 … 아버지는 여태껏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의 고통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조금만 늦었어도 바니가 미칠 지경에 이르고, 가족들은 바니를 정신병원으로 보냈을지 모른다 ..  (196, 227쪽)


 보리술을 사러 가끔 동네 ‘마트’에 가곤 합니다. 마트에 간다 한들 보리술 한 병이나 두 병을 살 뿐이고, 천 원짜리 재활용비누를 사야 할 때에나 가는데, 이렇게 사들고 셈을 치를 때 보면, 꼭 끼어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있습니다. 길어야 1분이 되지 않는 틈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치기를 하는 분들은 혼자일 때도 있으나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새치기를 해서 당신이 아끼는 시간이 몇 초인가?’를 속으로 세어 보니 20초쯤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새치기는 동네 마트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탈 때에는 언제나 이루어집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으레 일어납니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대학교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지식 사회에서 일하는지, 또는 공직 사회에서 일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틀림없습니다. 모두들 ‘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대목. 그리고 모두 다는 아니지만 웬만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한(또는 둘이나 서넛이나 여럿)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에 있다는 대목.


 (2)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이따가 저녁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ㄱ방송국 작가가 쪽지 하나를 보내 옵니다. 모두 일곱 가지 물음을 적었는데, “언제부터 자전거만 고집하게 됐나요?” 하는 물음과 “자전거뿐 아니라 일상 생활도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말이나 “신발도 고무신을 신으신다구요?” 같은 물음이 껄쩍지근합니다. 같은 물음이라 하여도 “언제부터 자전거를 즐겨타고 있나요?”라든지 “요즈음 사람들처럼 돈벌이에 미친 채 살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라든지 “운동신이 아닌 고무신을 신으면 자전거 탈 때에 발이 아프지 않나요?”처럼 물어 보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좀더 깊이 헤아리려는 눈길이요 가슴이었다면 다른 이야기를 물어 보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아직 자전거를 못 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좋아하게 될까요?”라든지, “남들뿐 아니라 저 스스로도 입으로는 지구자원이 어떠하느니 걱정하는 소리를 하지만, 정작 자가용을 못 버리고 텔레비전 안 버리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든지, “농사짓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구두나 운동화를 안 신고 고무신을 신거나 맨발인데, 우리들은 땅을 잃거나 잊으며 신발이며 옷이며 살림살이며 모두 소비문명으로만 치닫고 있구나 싶은데, 이런 가운데 도시에서 즐겁고 옳게 사는 길이란 있을까요?”라든지 하면서.


..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은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에밀리와 샬럿은 인형의 집을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두 소녀의 의지일까 아니면 인형들의 바람 때문일까? … 쉽게 남을 웃기는 방법을 거부했을 때 자기가 만들어 낸 존재의 개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앞에서 인형과 작중 인물의 유사성을 이야기했지만, 문학작품 속의 작중 인물도 단순히 독자의 흥미에 얽매이기를 거부했을 때 비로소 개성이 발휘되는 법이다 ..  (63, 112쪽)


 저는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즐겨타기 앞서 즐겨 걸어다니는 사람입니다. 예닐곱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걷고, 인천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인천으로 걸은 적이 있으며,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늘 걸어다녀야 합니다. 아기를 안고 다니자면 또 걸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니 자가용을 안 굴리지 않느냐 물으실 분이 있을 텐데,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환경책 내는 출판사를 돕는 데에 쓰거나 조그마한 환경모임 살림에 보태도록 돕는 데에 쓸 테니, 돈이 있어도 자가용을 굴릴 겨를이 없습니다.

 제가 동네에서 만나는 이웃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느 때에 걷기를 즐기는 분들이 자전거를 즐깁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은 즐겨 걷습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즐기는 분들은 걷지를 않습니다. 걷지를 않으니 자전거를 안 즐깁니다. 어쩌다가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며 ‘뱃살 뺀다’고 할 뿐인데, 이렇게 ‘운동한’ 다음에는 어김없이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거나 튀김닭에 맥주를 걸치시더군요.


.. 나는 스위스 취리히에 갔다가 어린이책 전문서점에 들러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가게 점원이 당장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표지에 《레욘예타 형제》라고 씌어 있었다. 순간 ‘아니, 이런 책도 있었나?’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원제임을 떠올리고 이 책은 이미 일본에 번역되어 있어서 읽어 보았다고 말했다. 점원은 “그래요? 역시 좋은 책은 어디서나 즐겨 읽히죠.” 하며 아주 기뻐했다 … 머리로 생각한 ‘꾸며 낸 이야기’는 진정한 의미의 판타지가 될 수 없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혼과 관련된 ‘현실 이야기’는 판타지와 한없이 가까운 것이 아닐까 ..  (81, 255쪽)


 우리 살림에 자가용을 굴릴 겨를은 없지만, 굳이 억지를 써서 굴리려고 한다면 굴릴 수야 있습니다. 그런데 자가용을 굴리면 우리한테 무엇이 좋을는지는 아직 하나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사들이는 책을 다리 허리 등짝 팔 안 아프도록 나를 수 있어서? 아기 데리고 먼 나들이를 하기에 힘이 안 들어서?

 우리 식구는 빨래하는 기계를 안 쓰고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만, 기계를 쓸 줄 모르기도 하지만(저 혼자) 쓸 줄 알아도 맡기고 싶지 않아요. 내 땀과 내 품과 내 시간과 내 사랑을 담아서 빨래를 하고 싶습니다. 내 모두를 바친 빨래하기로 말끔하게 빨아 놓은 옷을 우리 식구가 함께 입고 싶습니다.

 팔이 떨어지건 등짝이 떨어지건 허리가 휘건, 내 마음에 담을 책이기 때문에 내 가방이 실밥이 터지도록 장만해서 용을 쓰며 집으로 나릅니다. 요즈음은 아기를 가슴에 안고 가방을 등에 메고 나릅니다.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 온몸은 땀으로 젖습니다. 그래도, 아빠 가슴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칠 때 보람은, 맨몸으로 자전거 타고 휘휘 온 동네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난 다음 느끼는 보람하고는 견줄 수 없습니다.


.. 이 책의 9장에 따르면 이 중학교 학생들은 ‘누구나 청바지밖에 입지 않았다.’ 게다가 ‘엉덩이에 걸쳐 입는 나팔바지에 닳아서 빛바랜’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또 ‘그해에 남들과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 원피스를 입고 교회에 가면 된다. 그것도 다림질한 원피스를.’ 획일화된 제복도 없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는 문화 속에서 복제 인간이 만들어진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다 …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논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양쪽이 얼마나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  (133, 146쪽)


 제가 고무신을 처음 신은 때는 2003년 겨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사람은 누구나 고무신을 신으니, 저도 고무신을 신은 셈인데, 그무렵은 충주 산골자락에서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면서 지냈습니다. 이오덕 님 글과 책은 산더미 같아서 이 원고뭉치와 책덩이를 갈무리하느라 바쁘니 농사일을 거든 적은 얼마 없지만, 시골에서 일하며 지낼 때에 어느 누구도 저한테 “고무신을 신네?” 하고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운동신이나 가죽신 차림으로 논이나 밭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책방마실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면 모두들 한결같이 “고무신이네? 게다가 깜장고무신? 요새도 깜장고무신을 파나?” 하면서 눈이 휘둥그래집니다. 학교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중고딩 아이들은 “저 봐, 고무신이야? 깜장고무신!” 하면서 키득거립니다.

 오일장이든 칠일장이든, 시골 저잣거리에서는 모두 고무신을 팝니다. 농사짓는 시골 읍이나 면에 있는 신집에서도 고무신을 팝니다. 도시에서도, 제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화수시장 신집에서도 고무신을 팝니다.

 값싸고 질긴 고무신이 좋으면 고무신을 신습니다. 조금 비싸도 여러 해 오래 신는 샌들이 좋으면 샌들을 신습니다. 십만 원을 주고 열 해를 신는다는 가죽신이라면 이런 가죽신을 신어도 될 테지요. 다만, 저는 삼천 원(시골에서는)이나 오천 원(도시에서는)을 치르고 한 해에 한 켤레씩 신는 고무신이 돈을 가장 적게 들이는 신발이라고 느끼며, 제 발바닥도 땅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느낍니다.


.. 할머니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옛길의 장점에 비해 현대의 도로는 얼마나 밋밋하고 멋이 없는가? 현대인은 빨리 목적을 이루려는 일에만 사로잡혀 과정을 음미하는 일을 잊고 있다. 그러나 옛길을 걷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 할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옛집과 가게들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 마르틴 할머니의 ‘고향’은 황폐해져 있었다. 그러나 파스칼레는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에 한 소녀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  (270∼273쪽)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책까지 다로 쓰고 읽고 배워야 할 만큼 ‘자연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사는 길’을 잃거나 버렸습니다. 자연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사는 길이란, 오늘날 우리들 거의 모두가 잃거나 잊은 일이지만, 조금만 거슬러 생각하면 우리 어버이 또래에, 또 어버이를 낳아 기른 어버이 또래에는 모두 ‘그와 같이’ 살면서 아무도 ‘생태적으로 사는’이라 하지 않았어요. 더 쓰거나 덜 쓰거나가 아닌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며 지냈습니다. 나한테 더 있으니 남한테 더 덜어 줍니다. 나한테 더 없으니 남한테 더 얻습니다. 있을 때 나누고 없을 때 받습니다.

 딱히 ‘느림’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천천히’를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따로 ‘적게’를 들먹이거나 ‘가난하게’를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마음과 생각과 매무새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돌아보면서 ‘나한테는 돈과 집과 땅과 물건이 얼마나 있으면 될까’를 짚어 나가면 됩니다.

 예배당에 바지런히 나간다고 믿음이 꼭 깊은 사람이 아니듯, 예배당에 안 나간다고 믿음이 꼭 없는 사람이 아니듯, 사회나 모임에 돈을 많이 바친다고 꼭 나눔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듯, 사회나 모임에 돈 한푼 바치지 못한다고 꼭 나눔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듯, 우리는 우리 길을 알차게 다스리면서 지킬 슬기를 얻으며 스스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3) 《판타지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읽는 가슴


 심리치료사이기도 하고, 일본 문화청 장관이기도 했던 ‘가와이 하야오’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에 세상을 떠난 이이는 1928년에 태어났으니 여든 해라는 삶을 꾸려 나간 셈인데, 나라안에 이분 책이 꽤나 많이 옮겨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심리학과 철학을 다룬 책이 옮겨졌고, 한 해 두 해 갈수록 심리학책보다는 ‘어린이문학을 말하는 책’이 옮겨졌는데, 지난 2008년 9월에는 《울보 하야오》라는 책을 펴내며 당신이 보낸 어린 나날을 수수하게 들려주면서 따스한 아름다움을 베풀어 줍니다.

 뭐랄까요, ‘심리치료는 이렇게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가와이 하야오 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책을 읽는다》며 《그림책의 힘》이며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며 《어린이 책을 읽는다》며 한결같이 심리치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굳이 심리치료를 한다는 책이라기보다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로 꾸미거나 덧보태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도록 한달까요. 《어린이 책을 읽는다》나 《판타지 책을 읽는다》나 매한가지인데, ‘이런저런 책을 읽어야 좋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저런 책을 읽다 보니 내 눈이 트였고 내 마음이 열렸으며 내 생각이 깨쳤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나라 지식인들은 ‘수준이 낮다’며 건드리지 않는 ‘애들 책이나 읽으’면서 비평을 하는 ‘한갓진 놀음놀이’나 할 뿐이라 여길는지 모르나, 가와이 하야오 님은, 다른 어느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문학보다도 ‘어린이책’에서 빛을 보고 느끼고 껴안습니다. 이 빛을 남김없이 받아먹으며, 냠냠짭짭 즐겁게 받아먹은 다음, 기쁘게 이야기 한 자락을 남깁니다.


.. 이것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뭔가 ‘유익한 것’, 특히 ‘건강에 유익한 것’이 발견되면 그것이 전체로 퍼져 클론을 제조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남과 똑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유지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과연 진정하게 유지되는 것일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인 나 자신이 과연 그런 것에 만족해도 좋을까? … 현대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바쁘게 움직일 ‘시간’은 있어도, 영혼에 관심을 보일 ‘여유’는 없다 … 충분한 ‘보호’를 뱓는 존재는 영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법이다 ..  (144, 165, 235쪽)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기에, 어린이책을 어린이한테만 읽히는 사람은 아주 잘못된 일을 하는 셈일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 좋은 마음밥을 내팽개치는 셈입니다. 어린이책을 어른이 찬찬히 훑고 살피면서 아이한테 ‘가려서 건네지 않는다’면,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부모나 교사) 크게 잘못하는 셈입니다. 다만,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아이 스스로 읽을 책은 스스로 골라야 하는데, 어버이나 교사 된 사람이 먼저 마음이 뭉클하다고 느낀 책을 보여주면서 건넬 수 있습니다.

 《판타지 책을 읽는다》는 어린이책 가운데 ‘판타지를 다룬 책’이면서 여러모로 손꼽히는 책을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이 책을 쓴 사람이 얼마나 깊은 마음과 생각을 담았는지 들려줍니다. 이 마음과 생각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기쁘게 스며드는 마음과 생각으로 다시 태어나는가를 곰곰이 짚고, 이러한 마음과 생각을 아이들만 받아먹게 하기보다는 우리 어른부터 받아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이 세상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어른들의 눈에는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사실 어린이나 노인은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이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 옛날에는 인간보다 훨씬 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과학의 힘에 밀려나서 잊혀지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이 아닐까? … 교사나 부모 같은 어른들이 어린이를 시험 점수만으로 평가한다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어린이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O와 X의 수만 헤아리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물감의 하늘색과 진짜 하늘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177, 201, 342쪽)


 그러면 ‘판타지 책’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이 판타지라 할 만할까요. 글쓴이 가와이 하야오 님도 책에 밝히지만, 한자말로 해서 ‘상상’이나 ‘공상’이나 ‘환상’이 판타지가 아닙니다. 생각을 넓히고 넓힌다 하여 판타지라 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을 다룬다’고 판타지문학이라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고양이가 하늘을 날든 사람이 하늘을 날든 판타지문학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꿈나라를 헤매든 옛날이나 앞날로 날아가서 지낸다고 판타지문학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꿈’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이 있기 때문에 꾸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바라게 됩니다. 현실이 없는 판타지란 없습니다. 현실을 떠난 판타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현실 때문에 판타지를 빚어내고, 현실이 있기에 판타지를 문학으로 일구며 나눕니다.

 생각날개라 하면 어울릴까 모르겠고, 생각바다라 하면 어울릴까 모르겠습니다. 생각나무나 생각숲, 생각꽃, 생각하늘, 생각나라, 생각구름, …… 또는 꿈날개, 꿈바다, 꿈나무, 꿈숲, 꿈꽃, 꿈하늘, 꿈나라, 꿈구름, ……을 떠올려 봅니다. 터무니없는 일을 바라는 내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바라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여는 내 삶인 판타지를 떠올려 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누구나 내 삶에 환한 등불이 될 판타지 씨앗을 하나쯤은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못 느껴서 그렇고, 우리가 제대로 안 알아채서 그러하며, 우리가 스스로 안 돌보기에 그렇습니다만, 우리 마음과 몸에 깃든 판타지는 튼튼히 자라날 밑땅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들 삶은 몹시 돈에 매이고 이름값에 얽히고 권력에 끄달리기 때문입니다. 판타지란, 그러니까 참된 판타지란 나 스스로 홀가분해지는 삶을 깨닫도록 하는 이슬떨이입니다. 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아름다움을 찾고 느끼고 누리고 나누자고 하는 길동무입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이 가르쳐 줄 수 없다. 제자 스스로 체험을 통해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 ‘○○장관’이나 ‘○○부장’ 또는 ‘○○교수’ 등은 물론 모두 가짜 이름이다. 그것들은 머지않아 덧없이 사라진다 … 그러나 오랫동안 가짜 이름이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진짜 이름으로 보내는 인생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 생각해 보면, 결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남녀의 진정한 결합이다. 그 점을 잊고 결혼만 하면 ‘완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말썽이 끊이지 않고, 결국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  (287, 318, 328쪽)


 가와이 하야오 님은 당신이 태어나 살았던 일본에서 슬기롭고 빛나는 판타지 씨앗이 자라나기를 꿈꾸었고, 고운 선물을 하나 남기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와이 하야오 님이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는 싱그럽고 애틋한 씨앗 하나 남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과 우리 아이들한테 고운 씨앗 하나 남기려는 분보다는 큰 돈벌이를 남기려는 분이 많은데, 모쪼록 이러한 책 하나라도 곁에 두면서, 참맛을 알아보고 참멋을 갈고닦을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랴 싶습니다. 판타지 문학은 사랑이며 믿음이며 나눔입니다. (4342.6.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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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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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13 ― 오늘날 정부와 권력자는 폭력덩어리일 뿐이다
 : 레프 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


- 책이름 : 국가는 폭력이다
- 글 : 레프 톨스토이
- 옮긴이 : 조윤정
- 펴낸곳 : 달팽이 (2008.7.25.)
- 책값 : 12000원


 (1) 머리 아프도록 읽는 책 하나


 이제는 사라진 잡지 가운데 《샘이 깊은 물》이 있습니다. 이 잡지를 이끌어 나간 ‘설호정’이라는 분은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이 인물의 대답〉이라는 꼭지를 꾸렸고, 이 꼭지에서 설호정 편집장은 당신이 만나본 사람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한 구석을 꼬치꼬치 파고들면서 깊이있는 이야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설호정 편집장한테 꼬치꼬치 대꾸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힘겹고 고단하고 짜증스러울 수 있을는지 모르나, ‘설호정이라는 사람까지도 뭔가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 대목이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에 환히 밝혀질 때까지 파고들어 캐낸다’는 흐름이었습니다.

 1992년 9월치 《샘이 깊은 물》에서는 〈이 인물의 대답〉 꼭지에서 《녹색평론》을 펴내는 김종철 교수와 만나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종철 교수는 설호정 편집장이 꼬치꼬치 묻는 말에 벌컥 성을 내며 소리를 높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설호정 편집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더 가시돋힌 말을 묻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잡지 《샘이 깊은 물》을 읽는 사람들로서는 ‘1992년에 막 새로 나온 환경잡지 《녹색평론》은 뭐를 하려는 책인가?’ 하는 궁금함을 많이 풀 수 있습니다.

 물음을 받는 분으로서는 괴롭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괴로운 물음을 받아야 서로서로 발돋움합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는 내 모자람과 어리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슬그머니 넘어갔거나 대충 흘려보낸 어설픔과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김종철 교수가 너무 뜬구름잡듯 ‘철학적ㆍ추상적 이론’만 늘어놓고 있다 보니 설호정 편집장은 “사실 무슨 이념을 펼치는 데는 정권을 장악하는 게 최선 아닙니까?” 하고 한 마디를 쏘아붙입니다. 그러며 “지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미국 식의 소비 문화가 지속될 터인데 개인 몇 만 명이 책을 통해서건 명상이나 직관을 통해서건 각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 하고 덧붙입니다. 이때 김종철 교수는 성남을 참지 못하고, “그거는 그야말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세뇌된 논리입니다. 저는 종교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이지만 예컨대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변했습니까?” 하고 대꾸하는데, 설호정 편집장은 거침없이 “장기적으로는 그런 소수가 인류를 의미있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는 있기도 하겠지만, 이런 식의 개발 일변도로는 세계는 백 년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하고 따지고, 다시금 “모든 사람이 부처 될 만한 싹수를 가졌다고 해서 부처가 된다는 법도 없고, 또 되더라도 아주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 것 같고, 그때가 되기 전에 세상은 이미 든 망조 때문에 망해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하고 못을 박습니다.

 이에 김종철 교수는 “그건 오만한 얘기예요. 우리가 당장 부처입니다. 또 지금 지구가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 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을 안 한다든지 그건 불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하고 말을 잇지만 그리 가슴에 와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 김종철 교수가 하는 이야기는, 일찌감치 설호장 편집장이 몸을 담았던 ‘전두환이 없앤 잡지’인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해 왔던 일인 한편, 지금 편집장으로 몸담은 《샘이 깊은 물》에서도 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당신이 몸소 겪어 왔을 뿐 아니라 헤쳐나가고 있는 일을, ‘설호정 당신 눈과 머리’가 아닌 ‘환경잡지라는 빛깔있는 목소리로 한길을 걸어가려는 다른 사람 눈과 머리’가 무엇인가를 듣고 싶어 이렇게 물었지만, 김종철 교수는 이때까지 제대로 당신 생각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 오늘날 정부와 지배 계급은 정의 아니면 권리 비슷한 것에조차 기초해 있지 않고, 오로지 발달된 과학의 도움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조직에 의존하고 있다 ..  (21쪽)


 올해는 2009년입니다. 1992년부터 열일곱 해가 흘렀습니다. 2009년 오늘날 《녹색평론》은 ‘대구 변두리’를 떠나 ‘서울 한복판’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어느덧 열일곱 해가 지난 이야기인데, 열일곱 해 사이, 서울 한복판에서 환경잡지를 펴내는 《녹색평론》 김종철 교수 생각과 삶은 어떻게 거듭났을까 궁금합니다. 오늘에 와서 지난날 물음에 대꾸를 해야 한다면 어떤 말씀을 펼치실까 궁금합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저와 같은 패배주의자들한테 들려주실 수 있는 얘기이기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탐독하기 시작한 뒤로 구체적으로 훨씬 더 패배주의자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속되게 말해 고민만 늘었다는 말이지요.” 하고 말합니다. 김종철 교수는 “자꾸 사람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건 제가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데요?” 하고 묻습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그런데 이런 책이 진실로 성공하려면 저 같은 사람이 실천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책에 제시되는 문제들을 끊어버릴 힘이 제겐 없습니다.” 하고 한 마디 받아칩니다.

 두 어른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아주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더구나 열일곱 해 만에 다시 읽는 저는 피식 웃습니다. 쓴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옵니다. 그러면서 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제가 읊는 말마디가 나 스스로 내 삶을 고쳐 나가는 말마디인가를 돌아보게 되며, 내 말마디를 듣는 이웃이 당신 스스로 당신 삶을 고쳐 나가는 말마디로 받아들일까를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 노동자에게 땅이 없고 게다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양식을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권리조차 없다면, 그것은 그가 그런 상황을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들(지주들)이 노동 계급한테서 땅과 그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 비정상적인 사물의 질서는 군대에 의해 지탱된다 … 모든 정부와 통치 계급은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제도는 결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마련된 게 아니며,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며 오로지 정부와 통치 계급에게 봉사한다 … 군비와 전쟁을 위해 사람들에게서 징수한 세금은 군대가 보호한다고 하는 노동 생산물의 대부분을 앗아간다. 또 전 남성 인구가 평소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노동의 가능성 자체가 상실된다. 언제라도 발발할 수 있는 전쟁의 위험 때문에 사회적 삶의 개선은 헛되고 무익한 것이 되고 만다 … 정부는 외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군대는 주로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하기 위해 필요하고, 군대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 병역 의무를 져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한다 ..  (35∼40, 44쪽)


 퍽 긴 꼭지로 마련한 〈이 인물의 대답〉이 막바지에 이를 때, 설호정 편집장은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말 한 마디를 묻습니다. “《녹색평론》의 이념을 선생님은 삶에서 어느 정도 실천하세요?” “대부분 못하죠. 그러니까 《녹색평론》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실천하시는지.” “가급적이면 외식 안 하려고 하고.” “보신주의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보신주의 나쁠 거 없어요. 나한테 좋은 게 지구한테도 좋은 거예요. 또 고기 안 먹고. 제 생활은 간단하게 단순하게 살고. 여행을 잘 안 하고. 거의 안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집하고 여기하고 학교하고밖에 왔다갔다 안 하고. 또 식구한테 빨래 자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빨래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아파트로부터 나와야 하는 일입니다.” “선생님 가족들이 공감하세요?” “내년이면 애들이 다 우리를 벗어납니다. 대학을 가니까.” “서울로 간단 말이죠?”

 김종철 교수는 2009년에는 ‘아파트를 벗어나셨’는지, 그리고 당신 잡지에 실은 이야기 가운데 ‘거의 하나도 실천을 못했다는 대목 가운데 어느 대목을 실천하고 있으’신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어딘가 뒤끝이 많이 남는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왜 스스로 못하는 일을 ‘마치 스스로 하고 있는 듯 느껴지도록’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책을 내고 해야 할는지요. 왜 우리 스스로 즐겨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닌, 머리로만 굴리는 일을 해야 할는지요.

 저는 아파트가 싫고 텔레비전이 싫어 부모님 집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부모님께서 저한테 당신 아파트(이제는 전원주택이 되었습니다)를 물려주실는지 안 물려주실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저로서는 부모 재산을 물려받을 마음이 없습니다. 옆지기 또한 내가 내 부모한테, 또 옆지기는 옆지기 부모한테 재산을 물려받을 까닭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책이 제대로 못 읽히는 나라에서 책을 제대로 느끼도록 돕는 일을 하는 도서관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일부러 인천에 남아 있지만(인천이 우리 나라에서 책을 가장 안 읽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자연이 아닌 기계와 시멘트와 석유로 온통 가득한 터전에서는 우리 스스로 숨이 막힙니다. 이리하여 텔레비전은 마땅한 노릇이고, 세탁기나 냉장고나 이런저런 가전제품을 처음부터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에 알맞게 씻고 빨래를 합니다. 굳이 맛난 바깥밥을 찾아 먹으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에는 옳고 바르게 애쓰는 집을 찾아서 즐겁게 먹습니다.

 환경운동이란, ‘환경운동’이라는 이름이 붙기 앞서에도 언제나 있어 왔던 일이니까요. 지식 있는 분들이 환경운동을 외치고 환경모임을 열고 환경책을 펴내기 앞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연 삶터와 사람 삶터를 고루 사랑하는 매무새를 고이 지켜 오셨으니까요.


.. 왜 이런 죄수 같은 일을 하냐고 내가 묻자 그들은 “그럼 뭘 한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왜 36시간을 쉴 새 없이 일하는 겁니까? 작업을 교대제로 할 수는 없나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하지만 왜 그저 시키는 대로 하냐 이겁니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보나 마나 ‘싫으면 그만둬.’라고 할 거라구요. 작업에 한 시간이라도 늦으면 당신에게 허가증을 집어던지며 나가라고 하죠.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은 된다구요.” … 노예 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차 주인조차도 자기 말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은 비싸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시켜 값비싼 동물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은 비경제적인 일이리라 … 실상 우리들, 즉 부자들, 자유주의자들, 인도주의자들, 사람의 고통뿐만 아니라 동물의 고통에도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노동으로 덕을 보고 있으며, 게다가 더욱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즉 그런 노동으로 더 큰 덕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완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 않은가 … 우리 주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대개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 관한 한, 그들의 노동 생산물로 우리가 편의와 쾌락을 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다 ..  (105, 108, 111∼112쪽)


 옆지기는 저와 혼인하기 앞서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고 있었으나 지난해에 끊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1992년) 책방에 서서 《녹색평론》을 읽었지만, ‘쉽게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을 어렵고 딱딱하고 긴 글로 적는 일’은 그리 안 달갑다고 느꼈습니다.

 참다운 “푸른 이야기”라 한다면, 지식 있는 사람만 새겨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지식 없는 누구나 기꺼이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푸른 이야기”라 한다면, 나부터 오늘까지 꾸준히 이어온 내 삶을 글로 담아낼 노릇이요, 아직까지 못하던 일이라면 오늘부터 신나게 펼쳐 나가려 하는 몸짓을 실어낼 노릇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입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란 없습니다. 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남녀평등을 이루려는 운동이든 장애인 권리를 지키려는 운동이든, 입이 아닌 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환경운동은 더더욱 밑바탕이 되면서 커다란 운동인데, 환경운동이라 할 때에는 다른 어느 운동보다도 나 스스로 내 삶이 되어 가면서 말하는 운동이어야 하고, 나부터 먼저 즐겁게 한몸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내 이웃과 식구와 동무한테 스스럼없이 말하고 함께하도록 어깨동무하거나 손을 맞잡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정부는 사람들을 어린아이의 의식 수준에서 붙잡아 두기 위해 노력했다. 칭얼대는 아이에게는 돌봐 줄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 당신들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어 우리를 파탄에 몰아넣는다. 세금으로 함대를 유지하고 무장을 강화하고 전략적 철도를 건설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의 야망과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 토지 재산을 보호하고, 그 결과로 지가가 상승하는 일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좁은 공간 안에 와글와글 모여 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직 세계에 넘쳐나는 자유로운 땅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 싸움에서 유리한 자는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정부의 폭력에 참여한 사람이 된다 ..  (157, 159쪽)


 책을 읽는 손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가슴이 어둡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눈에서 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러하나 책을 내 삶에서 떨굴 수 없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많이 보이지만 《녹색평론》을 내치지 못하는 한편, 《뿌리 깊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조용히 사라져 버린 잡지 《샘이 깊은 물》을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하나하나 찾아내어 차곡차곡 갖추어 놓고 틈틈이 다시 꺼내어 읽으며 내 오늘날을 돌아봅니다.


 (2) 몸이 아프도록 돌보는 목숨 하나


 옆지기는 엊그제부터 아기 ‘오줌 가리기’를 시키려고 애씁니다. 열 달을 넘어간 아기가 이제부터 차근차근 오줌 누기를 가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아직 변기에 앉아 쉬를 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이웃 분들 말씀으로는 ‘바지를 벗기고 있으면’ 얼마쯤 방바닥 닦느라 애먹겠지만 이내 쉬를 가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아기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 준다면, 아기 기저귀 빨래에서 한 시름을 놓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기 기저귀에서 한 시름 놓인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다른 빨래가 새 시름으로 다가오리라 느낍니다. 아기 옷가지가 부피가 커질 테며 신발도 있을 테니까요.


.. 애국심을 조장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다 …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며, 자기 마음의 평정,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며 적들의 침략과 학살로부터 자기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당시의 개념이다 … 애국심과 그 결과(전쟁)는 신문사에 엄청난 수입을 안겨다 주고, 다른 많은 업계도 이로부터 이득을 챙긴다. 작가나 교사, 교수 등 직업이 안전한 사람일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애국심을 찬양한다. 왕과 황제는 더 큰 명성을 얻을수록 애국심에 더 깊이 빠져든다. 지배 계층은 군대, 돈, 학교, 교회, 언론을 손안에 쥐고 있다. 그들은 학교 역사 수업에서 그들 민족이 최상의 민족이며 언제나 옳다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이식한다 ..  (51, 57, 59쪽)


 아기 먹일 죽을 날마다 새로 끓이고, 아빠 엄마 먹을 밥 또한 날마다 새로 끓입니다. 빨래하는 데에도 한짐이요, 밥하는 데에도 한짐입니다. 그렇다고 아기가 밥을 낼름낼름 받아먹어 주느냐?

 저로서는 제 어릴 적을 떠올리지 못하지만, 저 또한 우리 아기처럼 우리 어머니를 고달프게 했을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보나 마나 제가 아기였을 때에도 어머니를 몹시 고달프게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웃집에서는 ‘뭘 그리 힘들게 아이를 키우느냐’고 하지만, 우리 어버이나 이웃 어르신이나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어려움과 고단함 없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아이 키우는 고단함이 있으니 아이 키우는 보람이 있지 않느냐 싶어요.


.. 공장 일꾼, 나아가 일반적인 도시 노동자들이 감수하는 비참한 환경은 오랜 노동 시간과 적은 보수가 아니라, 자연과 접촉하는 정상적인 환경을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기고,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강제적이고 단조로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 세상의 모든 현자와 시인들은 인간 행복의 이상을 언제나 농촌 생활의 조건 안에서 찾고 있다. 또 생활 습관이 왜곡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경우, 무엇보다 농업 노동을 선호하고 있으며, 공장 일이 언제나 유해하고 단조로운 반면 농업은 건강하고 다양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농업은 자유롭고 농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하거나 쉴 수 있는 반면, 공장 일은 공장이 노동자들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기계 작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장 일은 부차적인 반면, 농사일은 일차적이다. 농업이 없으면, 공장은 존재할 수 없다 ..  (119, 122쪽)


 아침마다 똥을 누는 아기를 씻기고, 틈틈이 아기를 안고 바깥마실을 다니며 바람을 쐴 때면 팔이며 허리며 등짝이며 쑤시고 저립니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다 보면, 우리처럼 아기를 안고 있는 동네이웃을 곧잘 만납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마음으로는 ‘저쪽 집에서도 우리와 똑같거나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이 됩니다. 마음으로 ‘힘들겠지만 힘내셔요’ 하는 인사를 보냅니다.

 아기 아빠는 바깥일 때문에 가끔 아기 엄마랑 아기만 집에 두고 서울마실을 하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면 ‘이렇게 돌아다니는 일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가?’ 하고 새삼 느낍니다. 몸이 아파 오래도록 몸져눕던 사람이 비로소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숲길을 걸을 때 짜릿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듯, 아기한테서 잠깐 풀려난(?) 때에 이토록 신나고 즐거운 바깥마실이 다 있었다고 느끼면서, 집에 홀로 남아 아기랑 씨름하는 옆지기한테 미안해집니다. 그러다가 ‘나 혼자만 이렇게 신나게 다녀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다음부터는 나 혼자 볼일을 보지 말고 온 식구가 다 함께 움직이자고 마음먹습니다. 칠월까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정비를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때에는 늘 함께하자고 다짐합니다.


.. 사치품은 내버려야 한다. 폭력과 자본, 발명이 불필요한 물품의 생산에 치우쳐 있는 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 필수품의 경우 누구도 일정 정도 이상은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치품의 경우는 한도 끝도 없다. 수천 톤의 금으로 집을 장식할 수 있으며,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공원으로 조성할 수도 있다 ..  (185, 196쪽)


 이렁저렁 따지면, 혼자 살 때에 얼마나 크고 너르게 홀가분함을 누리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 꾸리는 일이란, 얼마나 넉넉히 시간을 쓰며 내 삶을 가꾸는 셈인지 모릅니다. 혼인을 하면 저마다 제 시간을 빼앗긴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때를 생각하면 우스울 뿐입니다.

 이러한 이음고리를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적잖은 예술가와 글쟁이들은 ‘혼인 않고 아이 안 낳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힘들고 고되니까, 힘듦과 고됨에 당신들 예술과 슬기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홀로 조용히 당신들 삶을 즐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래, 참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아이 낳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 삶이든, 제 시간이든, 제 겨를이든 하나도 없으니까요. 제 삶이며 시간이며 품이며 땀이며 온통 아이한테 쏟아붓고 바쳐야 하니까요. 제 살을 깎아 주고 발라 주고 모조리 내놓아 주어야 하니까요.


..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떤 구실에서든, 심지어 가장 흔한 처벌의 구실에서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 과거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주로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있는 고급 직종 종사자와 이들이 이끄는 도시 노동자들이었다. 반면, 다가오는 혁명의 참여자들은 주로 농촌의 대중들이 될 것이다 … 오늘날 사람들은 별개의 자유, 즉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이런저런 형태의 선거의 자유, 결사의 자유, 노동의 자유,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자유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이(지금의 러시아 혁명가들처럼) 자유에 관해 매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자유는 어떤 사람에게 그의 바람과 이익을 무시하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  (234, 257, 270쪽)


 아이와 함께 살면서 집살림이 버겁다고 느끼지만, 버거운 만큼 새로운 길을 엿봅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한결 단출하고 홀가분하게 살림을 꾸렸을 텐데, 이렇게 살림을 꾸렸다면 우리 두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며 지나칠 숱한 일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헤아리게 됩니다. 아이 키우는 고단함만큼 둘레사람들 고단함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우리가 미처 모를 또다른 숱한 고단함은 무엇일까를 살피게 됩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책 펼칠 겨를이 몹시 줄어든 만큼 아무 책이나 허투루 읽으며 나한테 애틋한 말미를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하는 가운데, 글 한 줄을 쓰면서도 더 마음을 쏟도록 해 줍니다. 동무나 이웃이 저를 볼 때면 “얼굴에 살이 쏙 빠졌네요.” 하고 말을 거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아이 키우는 사람은 다 그렇잖아요. 그래도, 힘드니까 그만큼 보람이 있어요.”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3) 톨스토이 님이 남긴 《국가는 폭력이다》


 사람들한테 ‘문호(文豪)’ 아닌 ‘대문호’ 소리를 듣는 톨스토이 님 이름을 모르는 분은 얼마 없으리라 봅니다. 톨스토이 님 작품을 찬찬히 읽어 보지는 못했어도 이분 이름은 익히 알 테며, 러시아 사람들 여느 이야기를 그러모아 엮은 옛이야기 또한 온누리 사람들한테 두루 퍼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 같은 작품은 무척 짧은 글이요 쉬운 글이면서도 어린이부터 어른 모두한테까지 ‘내 삶에서 내가 깊이 돌아보고 사랑할 대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1930년대부터 우리 말로 옮겨지며 읽힌 이야기인데, 설익은 가르침이나 어설픈 밀어붙이기가 아닌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다이 가꿀 길을 보여줍니다.


..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폭력과 살인을 일삼을 것이다.” 왜 그렇단 말인가? 폭력의 결과로 생겨난 조직이,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조직이, 이제는 아무 필요도 없어진 그런 조직이 사라진다고 해서 왜 사람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하고 서로를 죽인단 말인가? ..  (75쪽)


 톨스토이 님 산문모음 《국가는 폭력이다》를 읽습니다. 산문모음 《국가는 폭력이다》는 무척 억세고 굳은 목소리로 오로지 한 가지 말마디를 외칩니다. “한 나라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한테 주먹다짐만 하고 있다.”고. “사람들한테는 정부가 아닌 자치만 있어야 하며, 모든 전쟁은 정부가 일으킬 뿐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려고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고. “정부는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한테 나라 지키기에 몸바치도록 이끌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애국심이란 다름아닌 권력자 밥그릇 지키기요, 권력자 밥그릇을 크게 키우려고 우리 뼈와 살을 온통 발라 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국가는 폭력이다》는 “나라와 정부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는 말마디가 얼마나 그릇되고 잘못되고 엉터리인가를 낱낱이 밝히는 책입니다.

 《국가는 폭력이다》를 읽는 동안 조지 오웰 님 산문모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조지 오웰 님 스스로 파리와 런던 밑바닥에서 가난뱅이나 떨꺼둥이로 지내면서 ‘프랑스와 영국이 나라 안팎으로 내세우는 거짓된 이름과 껍데기’가 무엇인지를 밝힌 책으로, 톨스토이 님과 조지 오웰 님이 살았던 곳이 다르고, 느낀 바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는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가꾸는 길에서 자꾸자꾸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 손으로 가시울타리를 쳐 놓고 이 안에 우리 스스로 갇혀 있다고.


.. 우리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참여는 희생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지위뿐만 아니라 형제ㆍ동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를 원한다면, 익숙해 있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동안 누리고 있던 유리한 지위를 포기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격심한 투쟁에 대비해야 한다 … 사람들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새로운 형태의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과 타인의 품성을 바꾸고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  (88, 174, 220쪽)


 그러면, 이 나라는 이 정부는 왜 폭력덩어리가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왜 나라와 정부가 폭력덩어리가 되도록 손을 놓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나라와 정부가 폭력덩어리가 되도록 이끄는 한편 떡고물을 얻어먹고 있지는 않는가요. 얄딱구리한 나라얼개를 뜯어고치는 데에 마음쏟기보다는, 고시에 붙어 죽는 날까지 쇠밥그릇 떵떵거리면서 살아가기만을 바라지는 않는가요.

 스스로 아름답게 꾸릴 내 삶을 찾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돈만 있으면 그만인 내 삶이 되도록 굴러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힘쓰지 않는 가운데, 이웃이고 동무이고 식구이고 밟고 타올라가며 내 밥그릇 두둑히 챙기면 좋다고 여기는 삶이 되도록 망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 다른 모든 수단은 환상이다 ..  (223쪽)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아름다이 말을 하고, 아름다이 일을 합니다. 스스로 아름답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보기로는 예쁘장한 말을 할는지 몰라도 속알맹이까지 예쁘지 않을 뿐더러, 겉보기로만 훌륭해 보이는 일을 할 뿐, 조금도 안 훌륭한 일을 합니다. 내가 나를 돕지 않고서는 내가 발디딘 이 나라를 도울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내가 몸담은 이 마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살찌우지 않고서는 내 이웃과 동무와 식구가 오순도순 살가운 보금자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나부터 ‘폭력덩어리’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숱한 폭력덩어리가 하나둘 뭉치면서 ‘나라와 정부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폭력덩어리’가 망나니처럼 나대고 짓찧고 까불며 법석을 떱니다. (4342.6.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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