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1. 참새를 옮기다



  아침길을 나서며 논둑길을 달린다. 한참 땀을 빼는데 길바닥에 참새 한 마리가 곱게 누웠다. 새벽에 쇳덩이가 치었을까? 그나마 밟히지는 않았다. 가만히 든다. 아주 가볍다. 이 작은새는 늘 마을에 깃들면서 내내 벌레잡이를 한다. 참새가 날기에 논밭이 푸르고, 참새가 노래하기에 밤낮이 흐르는 길을 알아본다.


  적잖은 새는 치이거나 부딪혀서 죽는다. 죽음물을 탄 모이를 쪼다가 죽기도 한다. 논밭에 뿌려대는 죽음물에 곧장 목숨을 빼앗기기도 한다. 우리는 참새 한 마리가 죽어도 안 쳐다보거나 아예 모른다. 참새 두셋이나 열스물이 죽어도, 참새 온(100)이나 즈믄(1000)이 죽어도 까맣게 모른다.


  들과 마을에서 참새가 죽고, 들숲에서 참나무가 죽고, 온누리에서 참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다. 참하거나 착하지 않은, 그러니까 ‘척하는’ 무리가 힘을 뻗는 듯 보인다. 겉보기로는 참빛은 거짓빛에 가리거나 눌린 듯하다. 그러나 드센 거짓빛일수록 후줄근하다. 허울스런 거짓일수록 껍데기만 단단하고 반들거린다.


  겉글이란 거짓글이고, 껍데기책이란 거짓책이다. 점잖게 빼입기에 점잖지 않다. 차분하고 참하게 살림을 짓는 사랑일 적에 비로소 차분하고 참하다. 참새를 잊고 등지는 나라에서는 글쓴이도 글읽는이도 나란하게 스스로 가둔다.


  작은새를 눈여겨보는 마음이기에 작은이(소수자)가 누구인지 알아본다. 작은이란 누구보다도 ‘어린이’이다. 어린이 이야기를 짚거나 다룰 적에 비로소 작은길을 밝힌다. 우리 스스로 ‘어린이’라고 하는 작은씨를 등지기에, 바로 남이 아닌 내가 나를 괴롭히고 누르면서 이웃과 동무를 함께 잊고 말기에, 작은새도 작은이도 못 보고 못 느끼는 굴레를 뒤집어쓴다.


  이제 봄제비는 거의 다 새끼제비를 돌보아서 날갯짓을 시킨다. 함께 파란하늘을 가르는 제비떼가 있으니, 이 나라는 아직 앞길이 조금은 밝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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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빨간콩 그림책 8
김미희 지음 / 빨간콩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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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7.11.

그림책시렁 1600


《엄마》

 김미희

 빨간콩

 2020.11.30.



  엄마랑 아빠가 나란히 있기에 아이가 태어납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있다면 아이가 안 태어납니다. 다만 적잖은 아빠는 아이를 오롯이 엄마한테 맡기고서 휙 사라지거나 망탕 노닥거립니다. 아기를 몸에 열 달 동안 품고서 천천히 돌보는 삶이 아니기에 아이돌봄을 나몰라라 하는 아빠일 수 있어요. 아이는 찬찬히 철들어 스스로 살림을 짓는 날까지 어버이 둘이 함께 돌볼 노릇입니다. 《엄마》는 두 엄마가 있는 어린날을 보내다가 어느새 “나도 엄마로구나” 하는 자리에 홀로선 그림님이 선보인 사랑씨앗 이야기입니다. ‘낳은엄마’하고 ‘기른엄마’ 사이에 아빠는 그림자조차 없습니다. “나(그림님)를 낳은 아빠”는 어린날 “울엄마(아빠네 엄마)가 나(아빠)를 버렸다”는 앙금을 안은 채 내내 헛돌았다지요. 그런데 어느 풀씨와 나무씨도 엄마나무한테서 ‘버림받을’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르게 제금을 나며 살게 마련입니다. 엄마한테서 사랑받지 못했다면, 이제 스스로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로 살면 돼요. 아빠한테서 사랑받지 못했으면, 이제 스스로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를 만나서 조촐히 보금자리를 일구면 넉넉합니다. 사랑은 남이 베풀지 않아요. 모든 사랑은 우리 스스로 빚는 빛입니다. 빗물 같은 빛줄기를 보려고 눈을 뜹니다.


ㅍㄹㄴ


+


《엄마》(김미희, 빨간콩, 2020)


엄마는 뭐든 자기 맘대로다

→ 엄마는 뭐든 엄마 맘대로다

→ 엄마는 뭐든 맘대로다

2쪽


나는 엄마랑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 나는 엄마랑 아주 다르게 생겼다

4쪽


하루 중 내가 하는 말은 이게 전부다

→ 하룻내 내가 하는 말은 이렇다

→ 나는 하루 동안 이 말만 한다

9쪽


옷 만드는 일을 하시는 엄마의 대답은 언제나 하나다

→ 옷짓는 일을 하시는 엄마는 언제나 한 마디만 한다

→ 옷을 짓는 엄마는 언제나 똑같이 말한다

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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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902 : 누군가의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누구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이웃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붉은빛이 여전합니까》(손택수, 창비, 2020) 12쪽


눈이나 눈망울을 들여다볼 적에는 “어느 사람” 눈이나 눈망울을 봅니다. “어느 사람”을 ‘누’나 ‘누구’라는 낱말로 나타냅니다. “누군가의 눈망울”에서 ‘누군가의’는 잘못 적은 일본말씨입니다. ‘누구’라고만 적으면 되고, ‘누군가의’를 통째로 덜 수 있고, ‘이웃’이라 적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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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904 : 도시 게 것 같


도시를 떠나는 게 예전부터 꿈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 예전부터 서울을 떠나는 꿈이 있었더라고요

→ 예전부터 큰고장을 떠나려는 꿈을 키웠더라고요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4》(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4) 40쪽


‘것’에다가 ‘것 같다’를 섞으면 글결이 어긋납니다. 예전부터 서울을 떠나는 꿈이 있는 줄 미처 몰랐을 수 있어요. 예전부터 큰고장을 떠나려는 꿈을 키운 마음을 이제 알아볼 수 있어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대로 쓰고, 차분히 헤아리면서 차분히 씁니다. ㅍㄹㄴ


도시(都市) :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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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905 : 확실 자기주장 저는 단지 필요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분이, 저는 이 단지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저는 똑똑히 목소리를 내는 분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저는 제대로 외치는 분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4》(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4) 121쪽


임자말을 사이에 넣으면 얄궂습니다. 임자말은 앞으로 빼고서 줄거리를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똑똑히 목소리를 내어야 어떻게 나아갈는지 알아들어요. 제대로 외치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이 삶터를 다시금 돌아봅니다. 이곳에 있을 숨결과 마음과 몸짓을 살펴봅니다. ㅍㄹㄴ


확실하다(確實-) : 틀림없이 그러하다

자기주장(自己主張) :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일

단지(團地) : 주택, 공장, 작물 재배지 따위가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

필요(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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