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40 레임덕 파행 절름발이

― 말이 아직 말이 아닌 굴레



  ㄱ


  지난 2024년 10월 1일에 《푸른배달말집》(한실 엮음, 안그라픽스 펴냄)이 나왔습니다. 여섯 해에 걸쳐 흘린 땀방울을 그러모은 낱말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여태 나온 다른 낱말책은 그저 낱말만 더 많이 실으면 된다고 여기는 얼거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쓸 일이 없거나 아예 안 쓰는 중국말과 일본말과 영어와 독일말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 사람이름과 마을이름까지 뜬금없이 잔뜩 실었어요.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낱말책을 보면, 노르웨이사람, 오스트리아사람, 헝가리사람, 터키사람 …… 이름도 줄줄이 실었습니다.


  낱말책이란, 낱말을 모은 꾸러미입니다. 우리가 듣거나 마주할 만한 낱말을 차곡차곡 담기에 낱말책이라 하되, 아무 낱말이나 다 싣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낱말책은 ‘낱말책’일 뿐, ‘이름책(인명사전)’이 아니기에 사람이름이건 마을이름이건 굳이 실을 까닭이 없습니다. 낱말책은 ‘풀책(식물도감)’이 아니라서 풀이름을 굳이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만, 낱말책은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이나 벌레이름을 이따금 담아낼 만합니다. 어느 풀이나 나무나 벌레를 둘러싼 삶·살림·사랑·숲을 익히는 길에 이바지한다고 여기면 넉넉히 담습니다. 또한 ‘나비·나무·벌레’ 같은 낱말이 어떤 뿌리요 결인지 차분히 짚으면서 다룰 줄 알아야 하지요.


  《푸른배달말집》이라는 꾸러미가 나오는 길에 여러모로 거들기도 했고, ‘푸른배달말집’이란 이름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 꾸러미에 실린 적잖은 ‘새말’은 제가 지난 서른 몇 해에 걸쳐서 지은 낱말이기도 합니다.


쉼숲 : 쉬기 좋게 꾸민 숲. 또는 쉬기 좋은 저절숲 ← 휴양림


  다만 여러모로 아쉽기도 합니다. 저는 ‘쉼숲·쉬는숲’이라는 낱말을 짓기는 했습니다만, 낱말뜻을 허술하게 붙이고 싶지 않아요. 저라면 ‘쉼숲’을 “쉼숲 (쉬다 + -ㅁ + 숲) : 몸과 마음을 느긋하거나 가만히 두면서 넉넉히 푸른숨을 맞아들이며 달래거나 풀어내는 숲. 마을에 조그맣게 꾸릴 수 있고, 아름드리로 우거진 숲을 품을 수 있다. (= 쉬는숲. ← 휴양림, 수목원)”처럼 다룹니다.


  낱말을 새로 지을 적에는, 어느 낱말 하나를 훌륭하게 삼거나 아끼자는 뜻이 아닙니다. 낱말을 하나 새로 지으면서, 이 새말을 바탕으로 온갖 새말이 태어나는 밑동을 알리는 셈입니다.


  제가 ‘쉼숲·쉬는숲’이라는 새말을 지을 적에는, ‘쉼몫·쉼삯(← 실업급여, 주휴수당)’이라는 낱말이 나란히 있으며, ‘쉼이레·쉬는이레(← 주말)’ 같은 낱말이 나란히 있어요. ‘쉼칸(← 화장실, 변소, 해우소, 측간)’이라든지 ‘쉼땅(← 휴경지, 휴한지, 정원, 휴양지, 공원, 아지트, 비밀공간, 은거지, 은신처, 밀실, 게토, 대피소, 피난소, 도피처)’에다가 ‘쉼고을·쉼고장·쉼마을(← 휴양지, 휴가지)’하고 ‘쉼날·쉬는날(← 휴일, 휴무일, 휴식일, 휴업일, 휴양일, 휴관일, 공휴일, 정기휴일, 안식일, 피정, 주말, 바캉스, 일요일, 주일)’ 같은 낱말도 나란합니다.


  ‘쉬다’라는 쉬운 낱말 하나를 어떻게 살려쓰면서 생각을 밝힐 만한가 하고 들려주는 꾸러미이기에 알뜰살뜰 누릴 낱말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낱말책이란, 낱말을 모으는 구실이 첫째에, 낱말을 누구나 스스로 엮고 짓고 펼쳐서 생각을 담는 길을 밝히고 알려주는 구실이 둘째입니다. 여기에, 낱말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길을 수수께끼를 풀듯 이야기로 들려주는 구실이 셋째입니다. 이러면서, 낱말 하나를 둘러싼 기나긴 삶과 살림과 사랑과 숲을 모든 아이어른이 어질면서 환하게 돌아보도록 속삭이는 구실이 넷째입니다.


쉬다 1 : 먹거리가 싱싱함을 잃어 맛이 시큼하게 되다

쉬다 2 : 목소리가 거칠고 흐리다

쉬다 3 : 고단함을 풀거나 몸을 고요히 하다


  《푸른배달말집》은 ‘쉬다 1·2·3’을 단출히 다룹니다. 그러나 이 쉬운 세 가지 ‘쉬다’라는 낱말을 너무 단출히 다루었다고 느껴요. 이런 얼거리는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다른 낱말책도 좀 비슷합니다. 우리가 늘 쓰거나 자주 쓰거나 으레 쓰는 낱말일수록 오히려 너무 가볍거나 짧게 다루고서 지나가고 말더군요.


  저라면 ‘쉬다’라는 낱말을 이렇게 다룹니다. “쉬다 ㄱ : 1. 일이며 놀이를 내려놓고서 몸을 가만히 두거나 있다. 바쁘거나 서두르거나 어렵게 하지 않으면서 알맞게 가려고 몸에서 힘을 빼고서 가만히 두거나 있다. 어렵지도 힘들지도 지치지도 않으려고 숨을 느긋이 마시면서 찬찬히 돌보면서 하거나 있다. 2. 더 움직이지 않거나, 더 일을 하지 않다. 몸짓이나 일을 멈추거나 그치다. 3. 몸에서 힘을 모두 빼고서 잠이 들다. 4. 어느 곳에 나가지 않다. 꾸준히 드나들거나 나가는 곳에 안 나가다. 5. 어느 일을 하거나 어느 길을 가다가, 살짝·한동안·조금·몇날 그대로 있다. 6. 어느 일을 하다가, 퍽 오래 하지 않거나, 아예 그만하다.”에다가, “쉬다 ㄴ : 제때에 먹지 않고서 그대로 두는 바람에 빛과 숨을 잃다. 맛이 가다. 싱그럽고 싱싱하게 살던 빛과 숨결이 사라지다. 시들시들하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바뀌다. 맛이 시거나 시큼하다.”에다가 “쉬다 ㄷ : 목을 너무 많이 쓰거나, 목을 따뜻하거나 느긋이 돌보지 않았기에, 목소리를 부드럽거나 또렷하게 낼 수 없다. 목으로 내는 말소리가 맛이 가다. 거칠거나 꺼끌꺼끌하거나 쇳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바뀌다.”에다가 “쉬다 ㄹ : 숨·바람을 마시고서 내보내다.”처럼 다루어야 제대로 낱말책 구실이라고 느낍니다.


  저처럼 낱말책을 여미고 엮고 쓰고 추스르자면, 열 해는커녕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내도 낱말책을 선뜻 내놓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땅한 일인데, 어느 나라에서도 낱말책을 뚝딱 내놓지 않았습니다.


  ㄴ


  낱말책은 모름지기 나라에서 이바지돈을 대어야 비로소 제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두 해나 대여섯 해나 열스물 해나 쉰 해로는 어림도 없거든요. 무엇보다도 밑말(기본어휘)부터 제대로 다루어야, 이 밑말을 바탕으로 모든 다른 말을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나랏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쉼숲’을 비롯해서 ‘쉼날·쉼몫·쉼칸·쉼이레’라든지 ‘쉼뜰·쉼뜨락·쉼밭’ 같은 낱말로 뻗으려면 먼저 ‘쉬다’가 어떤 결이면서 뜻인지 차곡차곡 풀고 맺을 노릇입니다.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 낱말책을 여미려고 200해나 500해를 쓴 까닭을 살펴야 합니다. 200해나 500해를 쓰고도 꾸준히 가다듬고 손보고 추스르지요.


  우리가 어떤 글(문학활동)을 쓰든, 글이란 말을 담아낸 무늬인 터라, 말부터 말답게 다루지 않는다면, 글꽃이 피지 않습니다. 말이 있기에 글이 있는 만큼, 글살림을 북돋우려면 말살림을 제대로 가꿀 일입니다. 낱말책이란, 우리 나름대로 먼먼 옛날부터 일구고 가꾸면서 나눈 열매를 그러모은 꾸러미여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낱말’이 아닌 ‘1000∼2000’ 즈음을 담은 작은꾸러미를 선보여요. 이러고서 ‘3000∼5000’ 즈음을 담은, 조금은 도톰한 꾸러미를 선보이지요. 이런 잔걸음으로 꾸준히 나아갈 적에 밑말부터 든든한 낱말책이 자리잡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1000낱말 작은꾸러미”라든지 “500낱말 더 작은꾸러미”부터 길을 나서지 않는 바람에 아무래도 뒤엉키고 뒤죽박죽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도 요즈음은 작은꾸러미가 제법 나오는데, 제법 나오더라도 섣불리 나오곤 합니다. 말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안 살피거나 못 헤아린 채 쏟아지는 작은꾸러미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ㄷ


  서울(도시)은 시골이 있어야 살림을 잇습니다. 서울에는 논밭이나 숲을 안 두게 마련이라서, 더구나 서울에는 냇물이나 샘물이 맑게 흐르지 않아서, 서울사람은 모든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와 살림거리를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얻어야 하는 얼개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서울은 모두(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모인 곳이라 여기되, 막상 우리 밥옷집을 이루는 밑살림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들숲바다도 없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바로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비롯했습니다.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태어난 말을 가꾸고 가다듬고 갈고닦으면서 ‘글’이 깨어났고, 이 ‘글’이란 ‘말을 이루는 시골과 들숲바다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품게 마련입니다.


  글을 글답게 쓰려면 말을 말답게 익힐 노릇인데, 말을 말답게 익히려면 먼저 시골과 들숲바다를 시골과 들숲바다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서 배울 노릇입니다. 이를테면, ‘바람’과 ‘해’와 ‘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글을 쓴다면, 바람도 해도 비도 엉성하거나 엉터리로 얹게 마련이에요. “햇살이 따뜻하다”라든지 “햇빛이 따갑다”는 틀린 말씨입니다. 햇살은 화살과 같아서 “햇살이 따갑다”라 해야 맞고, 햇빛은 빛깔을 펴는 바탕이라서 “햇빛이 밝다(맑다·환하다)”라 해야 맞고, “햇볕이 따뜻하다”라 해야 맞습니다.


  글만 쳐다볼 적에는 이런 작은살림조차 잘못 쓰면서 잘못 쓰는 줄 못 깨닫고 못 배웁니다.


  ㄹ


  우리는 ‘무늬만 글’을 쓰거나 ‘무늬만 말’을 하는 셈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늬만 삶’이거나 ‘무늬만 살림’인 터이니, ‘빛나는 글’이나 ‘눈부신 말’이나 ‘즐거운 삶’이나 ‘사랑스러운 살림’을 영 모른다고 할 만합니다.


  ‘레임덕·파행·절름발이’라는 낱말 셋을 들어 보겠습니다. 굳이 어떤 뿌리인지 안 밝히고서 한글로만 먼저 적어 보았습니다. ‘lame duck·跛行·절름발이’입니다. 영어와 한자말과 우리말입니다. 셋은 그냥 ‘같은말(동의어)’입니다. 다만, 나라와 겨레마다 다르게 말을 할 뿐이기에, 어느 쪽이 옳거나 바른 낱말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말 ‘절름발이’라는 낱말을 쓰면 마치 따돌림말(차별어)로 삼기 일쑤인데, 한자말 ‘파행’이나 영어 ‘레임덕’은 따돌림말로 안 삼더군요. 우리는 왜 우리말을 따돌리려고 하는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모든 낱말은 그저 우리 삶 한켠을 담을 뿐입니다. ‘절름발이’라는 수수한 낱말은 ‘따돌림말’일 수 없어요. ‘따돌림말’이란 ‘비국민·비장애·비폭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옆나라 일본은 그들 나라부터 억누르고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면서 ‘비국민’이라는 뜬금없는 따돌림말을 지었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을 따르지 않으면 “넌 우리나라 사람이 아냐!” 하면서 따돌리려는 뜻을 담은 ‘비국민’이고, 이 말이 불거지면서 갖가지 ‘비(非)-’붙이 따돌림말이 생겼습니다. ‘비(非)-’를 붙일 적에는, 너는 왜 우리 무리에 안 끼느냐고 나무라고 윽박지르고 짓밟던 군국주의 군홧발을 그대로 담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뜻은 좋더라도 ‘비장애·비폭력’ 같은 말을 섣불리 쓸 수 없습니다. 어깨동무로 나아가려는 길이라면, 이쪽이건 저쪽이건 담을 허무는 길이어야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말이 아직 말이 아닌 굴레입니다. 말답게 말을 하거나, 글답게 글을 쓰기보다는, 겉모습에 얽매이고 치레를 지나치게 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르게 마련이라, 치마를 두르건 바지를 꿰건 그저 ‘옷’입니다. 요즈음은 “자리에 맞게 입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데, “자리에 맞지 않다”고 여기거나 나무라는 말씨가 바로 ‘비국민’이라고 을러대면서 괴롭히던 군국주의 일본 모습 그대로인 줄 알아볼 오늘날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구두를 신고서 모내기를 하건, 한겨울에 깡동바지 차림으로 걸어다니건, 스스로 즐기는 차림새일 뿐입니다. 이러한 겉모습이 아닌, “삶을 담은 마음을 옮긴 말을 그린 글”을 찬찬히 짚고 생각을 기울이는 길을 생각해 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ㅁ


  또다른 세 낱말을 들겠습니다. ‘트라우마(trauma)·상처(傷處)·흉’입니다. 영어와 한자말과 우리말입니다. 요새 ‘흉’이란 우리말을 쓰는 분을 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잊히는 낱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어 ‘트라우마’이든 한자말 ‘상처’이든, 그저 우리 마음에 생긴 ‘흉·흉터’나 ‘멍·멍울’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마음흉’이나 ‘속흉’처럼 새말을 여미어서 새롭게 나타내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그저 수수하게 ‘흉·흉터’나 ‘멍·멍울’이라 하는 결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씻고 털 자리라고 여긴다면 수수한 말씨가 낫습니다. 좀처럼 마음이며 속내를 사랑하기 어렵다는 이웃한테는 ‘마음흉·속흉’처럼 따로 ‘마음-’이며 ‘속-’을 붙이는 말씨가 어울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더 헤아린다면, 우리 마음과 속에 깃든 멍과 흉을 달래는 일이라면 “트라우마 치유센터”처럼 엉성한 영어를 “마음멍 씻음터”처럼 풀기보다는 “마음쉼터”나 “포근터”처럼 아주 단출히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느껴요. 마음을 달래고 다스리고 씻을 적에는 굳이 ‘멍·흉’ 같은 낱말을 일터나 일에 더 붙여야 하지 않거든요.


  ‘국어(國語)’는 ‘나라말’이 아니라 ‘일본말’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못 느끼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왜 ‘초등학교’로 바꾸었는지 모르는 분도 숱하더군요. 총칼을 앞세운 군국주의 일본 우두머리가 여러 나라를 짓뭉개면서 쓰던 ‘국민·국가·국어’입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국민’ 하나는 ‘국민학교’ 이름에서 겨우 벗겼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국민’이라는 일본말은 버젓이 곳곳에 쓰이고, ‘국어’하고 ‘국가’도 못 털어냅니다.


  낱말책은 낱말을 담는 꾸러미이되, 그냥그냥 낱말만 담을 수 없습니다. 낱말을 어질게 다루는 길을 들려줄 몫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낱말을 어른스레 돌보면서 슬기롭게 밝히는 길을 찾아서 나란히 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낱말책이 든든하게 태어나는 나라일 적에, 그 나라는 글(문학)도 빛납니다. 영어 낱말책이나 프랑스 낱말책이나 독일 낱말책이나 네덜란드 낱말책이나 스웨덴 낱말책을 보면 참으로 대단합니다. 일본 낱말책도 엄청나다 싶도록 대단합니다. 우리 낱말책은 아직 굼벵이조차 아닙니다. 우리 글꽃 가운데 하나가 2024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만, 우리나라 낱말책이 얼마나 후줄그레한 민낯인지 좀 돌아봐야지 싶습니다.


  더 좋은 낱말을 많이 외워서 써야 글이 빛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손길을 고스란히 담은 말을 옮길 줄 알기에 글이 빛납니다. 두툼하지 않더라도 알뜰살뜰 살림하는 손으로 여민 ‘아줌마스러운 낱말책’과 ‘아저씨스러운 낱말책’과 ‘할머니스러운 낱말책’과 ‘할아버지스러운 낱말책’이 두런두런 태어나는 터전을 함께 보듬고 지필 수 있기를 꿈꿉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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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9.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글·프레데릭 백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아이들, 2002.7.23.



멧새소리가 없는 아침을 인천에서 맞이한다. 어제 장만한 책을 간밤과 새벽에 읽는다. 아침글을 조금 여미고서 일찍 길손집을 나선다. 어제 못 들른 〈모갈1호〉에 찾아가는데, 아침에 다른 일이 있으셔서 늦게 여시는 듯하다. 배다리에서 서성이다가 〈아벨서점〉 작은지기님하고 길에서 마주친다. 꾸벅 절을 하고서 〈아벨〉에 깃든다. 내가 읽을 책보다 작은아이한테 읽히면서 들려줄 책을 한가득 살핀다. 바야흐로 나보다 두 아이한테 맞추는 책을 눈여겨본다. 뭐,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책을 살피고 읽으면서 보금자리를 돌볼 테지. 쇳길(전철)로 서울로 건너가며 갈아탈 적에 안 놓치려고 눈을 부릅뜨고서 책을 읽는다. 드디어 14:40 고흥버스를 타고 나서야 온몸힘을 빼고서 까무룩 잠든다. 정안쉼터에 닿을 즈음 개운하게 일어나서 다시 책을 읽는다. 마지막으로 고흥읍에서 19:20 시골버스를 타고서 옆마을에 내려 논두렁을 걷는다. 두 아이가 마중을 온다. 함께 짐을 나누어 논둑길을 거닌다. 잘 익은 보리밭을 본다. 달빛이 비추는 논을 바라본다. 논둑길을 슬렁슬렁 걸어서 우리집으로 돌아온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생각해 본다. 꽤 오래 읽히는 그림책이다. 이 책을 읽고서 서울을 떠난 분은 몇쯤 될까? 이 책을 읽은 뒤에 나무를 심은 아이어른은 얼마나 있을까? 이 책을 알든 모르든, 이 나라 곳곳을 나무숲으로 일굴 때라야 함께 노래하는 살림꽃을 피울 수 있다.


#TheManWhoPlantedTrees #JeanGiono #FredericBack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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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8.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1》

 코다마 하츠미 글·그림/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2.28.



새벽 다섯 시 언저리에 택시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나가려는데 큰아이가 일어났다. 고맙게 배웅을 받고서 움직인다. 고흥읍에서 첫 순천버스를 기다린다. 술에 전 아재가 버스나루 바닥에 드러누웠다. 순천에서는 07:30 서울버스를 탄다. 시골 사이를 잇는 시골버스는 없다시피 하지만, 서울 가는 버스는 어디서나 미어터진다. 북적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바로 쇳길(전철)로 갈아타서 인천으로 건너간다. 모처럼 송현2동 골목을 살살 에돌면서 배다리책거리로 간다. 〈삼성서림〉에 들른다. 밭게나마 책마실을 하고서 〈마을사진관 다행〉으로 옮긴다. ‘배다리책거리 흥망성쇠’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어떤 책집이 있었고, 내가 책벌레로서 1980해무렵부터 2020해무렵 사이에 마흔 해를 마주한 책집마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잘(흥성)’은 옛일이라고 치기보다는, 아직 ‘잘’이 온 적이 없다고 여길 노릇이라고 본다. 이름값을 내려놓고서 그저 책을 책으로 품는 길을 이제 처음으로 열 때라고 본다. ‘한철 참고서 장사’로 책집지기가 집을 장만할 수 있던 지난날을 ‘전성기’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느낀다. 아직 온나라 온책집에 빛날(전성기)이 온 적이 없다고 여긴다.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1》를 읽고서 두걸음도 읽었다. 내내 스스로 억누르면서 시달리고 들볶이던 아가씨가 “이제 이렇게 살 까닭은 없어! 차라리 죽자!” 하고 마음을 먹는 날부터 삶을 바꾸는 줄거리이다. “싸울 값어치가 있다”는 말마디란 “싸울 값어치가 없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싸울 값어치가 없는 이 나라라면 뭘 해야 할까? 바로 하나이다. “싸울 값어치가 없는 나라”이지만, “살아갈 까닭이 있는 나”이다. ‘나라’가 아닌 ‘나’를 바라보면 된다. 여태 ‘나’를 안 쳐다보면서 ‘나라’하고 ‘남’만 바라보느라, 여태껏 ‘나’를 죽이고 억누를 뿐 아니라, “좁쌀보다 작은 ‘나’는 아무 값어치가 없구나!” 하고 스스로 깎아내리고 갉아먹는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나라·남’이 아닌 ‘나’를 바라볼 적에, 나부터 나대로 사랑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바라보기에, 이때에 비로서 ‘너’를 느끼고 알아보면서 만난다. ‘너’랑 ‘남’은 다르다. 나하고 동떨어진 저 차디찬 굴레인 ‘나라’하고 마찬가지인 놈이라서 ‘남’이다. 이와 달리, ‘너’란 ‘나’랑 다르면서 같은 사랑이라는 하늘빛이다. 너를 알아보려면 내가 나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너랑 만나려면 내가 나부터 속빛으로 만나야 한다.


#この世は戰う價値がある

#こだまはつみ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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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1. 찢어진 고무신



  바닥이 닳아서 물이 새지만 그냥 꿰었다. 아침에 고무신을 헹구는데 옆이 찢어졌다. 그래도 걸을 수 있다. 곧 사상나루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딱히 걱정할 일이 없다. 올해 들어 꽤나 바지런히 걷고 두바퀴를 달렸지 싶다. 내가 꿰는 고무신은 으레 열한 달쯤 가는데, 올해에는 조금 일찍 갈아야 하네.


  짊어지고서 걷고 다시 걷고, 짐을 내리고서 숨돌리고 책을 읽고, 이러다가 글을 쓰고 생각에 잠긴다. 서울은 북적인다고 하지. 책잔치를 돈벌이로 삼아서 벼슬을 꿰차는 무리가 있어도, 이들을 감싸는 작은벼슬과 붓잡이(기자 + 작가)가 수두룩하다. 먼나라 책잔치에 찾아가는 숱한 붓잡이는 누가 댄 돈으로 날개를 타고다녔을까?


  불을 쥐려는 붓은 머잖아 재가 된다. 풀을 푸근히 품으려는 붓일 적에 비로소 포근한 품으로 빛난다. 불붓이 아닌 풀붓으로 하루를 그리는 이웃을 헤아려 본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손사래(보이콧)한다는 듬직한 붓은 아예 안 보이다시피 하는데, 우리 속모습이지 싶다. 몇날 반짝 책장사를 하면 목돈이 쏟아져들어오니, 판을 벌이는 무리도, 이 판에 나란히 어울리는 사람들도, 목돈벌이를 손사래치기 어려울 만하다.


  그래도 목돈벌이가 아닌 글쓰기와 글읽기를 그려 본다. 큰벌이나 작은벌이가 아닌, 느긋이 함께 일구면서 차분히 같이 가꾸면서 즐겁게 나란히 바꾸는 길을 돌아본다. 모든 숲은 처음에 작은 씨앗 한 톨이었으니까. 모든 숲은 온갖 나무가 어울리고 갖은 풀꽃이 물결치니까. 나는 오늘 새로 작은씨를 심어서 새숲을 이루자고 생각한다. 너도 함께 새삼스레 작은씨를 심으면서 파란별에 푸른숲을 생각해 보겠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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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창비시선 440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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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2.

노래책시렁 477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창비

 2020.2.20.



  이 하루를 밝히는 즐거운 삶과 이야기를 어린이 곁에서 새봄빛으로 누리다 보니 새여름빛으로 접어듭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짓고 이야기를 빚습니다. 남이 짓거나 빚은 삶과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도 있되, 스스로 서는 하루가 있지 않다면 쳇바퀴이거나 굴레이게 마련입니다. ‘남이 보아주는 눈길’을 받아먹고 살 적에는 그만 ‘보여주는 남’이 없으면 헤매거나 지치거나 막혀요. 남이 잘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차려입거나 꾸미면 ‘나대로·나답게·나로서’를 잊는데, 이때에는 나뿐 아니라 너(이웃)도 ‘나(너)’를 잊으면서 ‘남(사회·정부)’한테 매달리기를 바라더군요. 우리가 스스로 ‘나’를 찾고 품고 짓고 돌보기에 우리 곁에 있는 ‘너’도 나란히 스스로 삶을 짓고 이야기를 빚는 길을 열고 폅니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를 읽는 내내 ‘남한테 잘 보이려는’ 몸짓과 ‘남이 잘 보아주기 바라는’ 눈짓을 느낍니다. 남이 조금이라도 ‘내 글(문학)’을 안 나쁘게 보아주기 바라면서 꾸미고 보태는 얼거리입니다. 그러나 남한테 선보이려고 쓰는 글(문학)이라면 알맹이도 씨눈도 없더군요. 언제나 속(참다운 나)을 들여다보면서 드러내려는 글(문학)일 적에는 창피하거나 부끄러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펴면서 빛나고요. 껍데기를 들씌우는 글만 넘치는 나라에서, 이제는 껍데기를 벗어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13쪽)


먼산 쪽으로 고개를 빼고 있으면 / 내 안에서 더 분명해지는 소리 / 오고 있다 누군가 누군가가 되어 /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 강을 건너오고 있다 휑한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가만히 맥박처럼 짚어보는 누군가/43쪽)


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 봄날이 다 지나갔다 / 아파트 한채를 장만하고 차 한대를 갖고 / 여행상품을 검색하는 동안 (행복에 대한 저항시/66쪽)


+


《붉은빛이 여전합니까》(손택수, 창비, 2020)


찬을 줄이니 평소의 음식 가짓수에 한둘만 더해도 그날 하루는 내가 나의 칙사다

→ 곁밥을 줄이니 여느 곁밥에 한둘만 더해도 그날 하루는 내가 나를 모신다

9쪽


석류나무와 한 삼년 동거를 한 적이 있습니다

→ 붉구슬나무와 한 세 해 함께산 적이 있습니다

10쪽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누구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이웃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12쪽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 무슨 끈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보고 싶지만

→ 무슨 사이로 날 찾아왔나 살펴보고 싶지만

13쪽


먼 데를 잃고 더 쓸쓸해져버린 사람

→ 먼 데를 잃고서 더 쓸쓸한 사람

17쪽


걸음걸이 조신스럽게 물받이통을 비운다

→ 걸음걸이 살피며 물받이통을 비운다

→ 걸음걸이 삼가며 물받이통을 비운다

→ 걸음걸이 곱게 물받이통을 비운다

20쪽


한옥에서는 풍경도 빌려 쓰는 거라네요. 차경(借景)

→ 흙집에서는 빛도 빌려쓴다네요. 빈빛

→ 옛집에서는 터도 빌린다네요. 빌림터

24쪽


젓가락을 태연하게 받는 어안(漁眼)처럼

→ 젓가락을 그냥 받는 물고기눈처럼

→ 젓가락을 가만히 받는 헤엄눈처럼

→ 젓가락을 사뿐히 받는 둥근눈처럼

28쪽


싸락눈 받아먹는 계곡 속처럼 헛헛한 속도 얼마쯤은 환해진 것 같은데

→ 싸락눈 받아먹는 골짜기처럼 헛헛한 속도 얼마쯤은 환한 듯한데

34쪽


열등생인 내가 학급 대표가 된 날이었다

→ 덜떨어진 내가 모둠지기가 된 날이다

→ 못난 내가 모둠지기가 된 날이다

36쪽


오고 있다 누군가 누군가가 되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강을 건너오고 있다

→ 온다 누가 누구가 되어 누구를 기다리는 누가 냇물을 건너온다

→ 온다 누가 아무개가 되어 누구를 기다리는 아무개가 내를 건너온다

→ 온다 누가 네가 되어 너를 기다리는 누가 물줄기를 건너온다

43쪽


수목한계선 부근까지 내려오다 멈칫

→ 나무금 언저리까지 오다 멈칫

→ 나무끝줄 옆까지 오다 멈칫

46쪽


그대가 찾는 백경이 나의 백지이기도 함을 수심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를 나의 종이도 품고 있음을

→ 그대가 찾는 흰고래가 흰종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허허바다를 종이도 품는 줄

→ 그대가 찾는 하얀고래가 하얀종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난바다를 종이도 품는데

48쪽


오늘도 신세한탄을 하는 여자

→ 오늘도 넋두리를 하는 순이

→ 오늘도 우는 그사람

56쪽


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 꽃돈을 세고 뒷삶을 그리고 새로 나온 밑길을 좇아다니다가

66쪽


섬은 묵음이다 침묵이 있어야 섬이 된다

→ 섬은 고요하다 말이 없어야 섬이 된다

→ 섬은 조용하다 가만 있어야 섬이 된다

78쪽


풀이 사관이다 사초(史草)이니까 역사의 주인은 풀이라는 뜻이다

→ 풀이 붓님이다 해적이는 우리가 쓰니 임자는 풀이라는 뜻이다

→ 풀이 글님이다 발자국은 우리가 적으니 지기는 풀이라는 뜻이다

104쪽


나의 수더분한 선임이었던 정문의 수위 아저씨들은 야경주독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 수더분한 언니이던 나들목 지기 아저씨들은 밤낮없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 수더분한 맏님이던 들머리 지킴이 아저씨들은 낮밤없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1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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