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이해 利害


 이해로 따지기 전에 → 돈으로 따지기 앞서 / 길미로 따지기보다

 이해가 우선인 인간이다 → 셈속이 먼저인 놈이다

 그들의 이해에 좌우되었다 → 그들 밥벌이에 흔들렸다


  ‘이해(利害)’는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값·돈·길미·깃·날찍’이나 ‘돈값·어림값·돈셈·돈어림’으로 손봅니다. ‘벌이·돈벌이·밥벌이·밥그릇’이나 ‘쏠쏠하다·남는장사·남기다·좋다’로 손볼 만합니다. ‘견주다·따지다·어림·헤아리다·생각·재다’나 ‘셈·셈속·셈판·끼리끼리’로 손보아도 되고요. ㅍㄹㄴ



이번 전쟁의 실질적인 동기가 강대국의 이해였다 하더라도

→ 이 싸움이 정작 힘센나라 길미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 힘나라가 더 많이 돈을 챙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 힘센나라가 밥그릇을 지킬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후》(타리크 알리 외/국제연대정책 정보센터 옮김, 이후, 2000) 15쪽


첫째는 분단국가 중심의 국가주의적 이해가 민족주의적 이해인 것처럼 혼동된 점이며

→ 첫째는 조각나라에서 나라먼저를 외쳐야 겨레한테도 좋은 듯 헷갈렸으며

→ 첫째는 갈린터에서 나라를 앞장세워야 겨레한테도 이바지한다고 잘못 알았으며

《한국민족운동사론》(강만길, 서해문집, 2008) 34쪽


우리 땅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이해가 맞아야 하는데

→ 우리 땅을 둘러싼 힘센나라 길미가 맞아야 하는데

→ 우리 땅을 둘러싼 꼭두나라 밥그릇이 맞아야 하는데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강만길, 창비, 2016) 84쪽


이해타산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함부로 뿌려 땅을 혹사하고 오염시키고

→ 돈셈으로 죽음거름과 풀죽임물을 함부로 뿌려 땅을 괴롭히고 더럽히고

→ 돈만 밝혀 죽음거름와 죽임물을 함부로 뿌려 땅을 괴롭히고 더럽히고

《글쓰기, 이 좋은 공부》(이오덕, 양철북, 2017) 41쪽


지금 토쿠가와 님과 마을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일치하고 있습니다

→ 이제 토쿠가와 님과 마을사람은 밥그릇이 같습니다

→ 이제 토쿠가와 님과 마을사람은 길미가 똑같습니다

《노부나가의 셰프 15》(니시무라 미츠루·카지카와 타쿠로/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 20쪽


이해타산을 앞세운

→ 돈을 앞세운

→ 돈셈을 앞세운

→ 돈벌이를 앞세운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오카 에리/황국영 옮김, 자기만의방, 2020) 102쪽


온몸에 체화된 습관이요 신앙이다. 진영 논리라고도 부르는 이분법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해득실 차원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 온몸에 길든 믿음이다. 무리짓기라고도 하는 갈라치기는 저희 쪽 길미로만 온누리를 보고 따진다

→ 온몸에 들러붙은 믿음이다. 숨은담이라고도 하는 금긋기는 저희가 좋으냐 나쁘냐로만 보고 잰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0)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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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말/사자성어] 신사유람단



 과거에 파견한 신사유람단은 → 지난날 보낸 마실두레는  예전에 보낸 찾는꽃은

 신사유람단은 비밀리에 출발했다 → 마실꽃은 조용히 떠났다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 [역사] 조선 고종 18년(1881)에 새로운 문물제도의 시찰을 위하여 일본에 파견한 시찰단. 시찰단은 전문 위원인 열두 명의 조사(朝士)와 그 수행원을 합쳐 모두 6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 조사시찰단



  지난날 쓰던 한자말씨인 ‘신사유람단’입니다. 오늘날에는 ‘마실지기·마실꽃’이나 ‘마실두레·마실모둠’으로 옮길 만합니다. ‘찾는이·찾는사람’이나 ‘찾는눈·찾는꽃’이라 해도 되어요. ㅍㄹㄴ



나라님께서 친히 외국의 신문물을 배워 오라 보냈던 신사유람단의 작태를

→ 나라님이 몸소 바깥 새바람을 배워 오라 보냈던 마실지기가 하는 짓을

→ 나라님이 나서서 이웃 새살림을 배워 오라 보냈던 마실꽃 꼴을

→ 나라님이 기꺼이 이웃 새길을 배워 오라 보냈던 마실두레 꼬락서니를

《키친 7》(조주희, 마녀의책장, 2012)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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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말/사자성어] 삼강오륜



 삼강오륜이 사회 규범화되어 있었다 → 석고리닷고리가 널리 퍼졌다

 폐쇄적인 삼강오륜의 사고에 매몰되다 → 딱딱하게 세틀닷길에 갇히다

 삼강오륜을 강조하지만 → 살림길을 외치지만 / 삶넋을 내세우지만


삼강오륜(三綱五倫) :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



  세 가지 틀을 세우면서 다섯 고리를 밝힌다면, 말 그대로 ‘세틀닷길·세고리닷고리’나 ‘석틀닷길·석고리닷고리’라 할 만합니다. 수수하게 ‘사람길·사람몫’이라 할 수 있고요. ‘살림길·살림넋’이나 ‘삶길·삶넋’이라 해도 어울려요. ㅍㄹㄴ



그밖에, 아주 달콤한 게임 천국 미네르바가 있다 / 삼강오륜 돼지바도 있지만

→ 그밖에, 아주 달콤한 놀이나라 슬기꽃이 있다 / 석틀닷길 돼지막대도 있지만

→ 그밖에, 아주 달콤한 놀이누리 어진숲이 있다 / 세틀닷길 돼지개비도 있지만

《동네 한 바퀴》(하재일, 솔, 2016) 17쪽


유교의 가르침 중에 삼강오륜이 있거든요

→ 옛 가르침에 세고리닷고리가 있거든요

→ 옛날 가르침에 세틀닷길이 있거든요

《선생님, 건축이 뭐예요?》(서윤영·김규정, 철수와영희, 2020) 86쪽


삼강오륜은 자유도, 평등도, 사랑도, 우정도, 정의도 아닙니다

→ 세틀닷길은 날개도, 나란도, 사랑도, 띠앗도, 바름도 아닙니다

《우정이란 무엇인가》(박홍규, 들녘, 2025)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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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말/사자성어] 수렵본능



 수렵본능이 뛰어난 개이다 → 뛰어나게 사냥하는 개이다

 수렵본능이 발동한 모양이다 → 덮치고 싶었나 보다 / 잡아채고 싶은 듯하다


수렵본능 : x

수렵(狩獵) : 총이나 활 또는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로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는 일 = 사냥

본능(本能) : 1. [생명] 어떤 생물 조직체가 선천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동작이나 운동. 아기가 젖을 빤다든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행동 따위이다 2. [심리] 어떤 생물체가 태어난 후에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



  한글로 적는 ‘수렵본능’은 ‘狩獵本能(しゅりょうほんのう)’이라는 일본말을 고스란히 딴 얼개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말로는 ‘사냥·사냥하다’로 옮기면 됩니다. ‘덮치다·낚다·낚아채다’나 ‘잡다·잡아채다’로 옮겨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수렵본능에 충실한

→ 사냥을 잘하는

→ 바로 덮치는

→ 잘 낚아채는

→ 휙 잡아채는

《토리빵 8》(토리노 난코/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5)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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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9일 일요일 10시에 〈책과 아이들〉에서 펴는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 ㅁ 말과 마음’ 자리에서 나눌 밑글입니다. ‘말·마음’이라는 낱말이 태어난 뿌리를 짚으면서 ‘다읽음’ 이야기를 곁들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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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9. ‘다 읽었다(완독)’는 덫



  적잖은 분들이 “다 읽었다”고 말한다. 한자말로 하자면 ‘완독’일 텐데, 책읽기에 ‘다읽음(완독)’이란 없다. 아예 있을 수 없다. 책읽기를 놓고 본다면, 때와 철과 해에 따라서 “다 다르게 읽기”만 있다. 다섯 살에 읽은 그림책은 “다섯 살 다읽음”인가? 아니다. 여섯 살에 새롭게 읽고, 일곱 살에 새삼스레 읽고, 여덟 살에 새록새록 읽는다. 열 살에 눈을 반짝이며 읽고, 열다섯 살에 다시 깨우치면서 읽으며, 스무 살에 남다르게 밝히는 눈망울로 읽는다. 또한 서른 살과 마흔 살에 읽는 그림책이 다르다. 쉰 살과 예순 살을 지나면서 손에 쥘 적에는 또 다르며, 일흔 살과 여든 살에 읽을 적에도 다르게 마련이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훑기”를 놓고서 ‘다읽음(완독)’으로 여겨 버릇하는데, 이런 책버릇은 매우 고약하다. 고작 슥 애벌로 훑고서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겨우 맛보기를 했을 뿐이다. 첫여름이 저물면서 한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 대추꽃이 핀다. 대추꽃은 ‘늦잠꽃’인데, 2025년에 대추꽃을 보았다면 2025년에 보았을 뿐이다. 2020년에 본 대추꽃하고 2025년에 마주하는 대추꽃은 다르며, 몸과 마음과 눈과 숨결에 다르게 흐르며 스민다. 2030년과 2050년에 새삼스레 만날 대추꽃은 그때에 맞게 우리한테 새록새록 울릴 테지.


  우리는 ‘다읽음(완독)’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읽기’를 할 수 있다. 나는 보임꽃(영화)을 놓고서 “이제 다섯벌쯤 보았습니다.”라든지 “이제 쉰벌쯤 보았습니다.”처럼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온벌(100번) 넘게 보았으니 보임꽃글(영화평)을 쓸 수 있겠어요.” 하고 말한다. 나는 책글(서평)을 쓸 적에도 ‘애벌읽기’만 마친 뒤에 쓰는 일이 없다. 아무리 적어도 석벌이나 닷벌쯤은 되읽고 나서야 쓸 수 있는 책글이다.


  노래책(시집)을 사읽다 보면 책끝에 책글(서평·문학비평)이 붙는데, 여태 읽은 ‘노래책 책글’ 가운데 노래를 닷벌이나 열벌쯤 되읽고서 쓴 책글은 아예 없다고 느낀다. 다들 애벌이나 두벌쯤 훑고서 얼른 마쳤다고 느낀다. 글빗(평론)을 하는 분부터 스스로 열벌이나 스무벌쯤 곱씹을 만한 노래가 아니라면 섣불리 책글을 안 써야 마땅하다고 본다. 닷벌을 겨우 읽을 만한 노래라면 따갑고 까칠하게 나무라는 글빗을 펼 노릇이다.


  아이곁에 서서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를 헤아려 보자. 아기한테 하루만 젖을 잘 물리면 끝나지 않는다. 아기가 젖을 떼는 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젖을 물려야 하고, 젖을 떼면 이제부터 젖떼기밥으로 넘어가고, 젖떼기밥을 거쳐서 ‘그냥밥’으로 나아가고, 바야흐로 ‘소꿉’을 지나고 ‘살림’으로 넘어온다.


  날마다 숱한 책이 쏟아지되, 적잖은 책은 ‘애벌훑기’ 비슷하게 ‘애벌쓰기’로 끝난 채 태어난다고 느낀다. 몇 해쯤 해본 일을 글로 풀어내어도 나쁘지는 않지만, 더 차분히 더 느긋이 더 즐겁게 더 두고두고 삭이고 풀고 품은 손길로 가다듬으면서 이야기를 여미어 내놓아야 아름답지 않을까? 작은책 한 자락부터 오롯이 사랑으로 추스르면서 이웃하고 기쁘게 나누려는 이야기씨앗을 심을 노릇이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 스스로 ‘다읽음(완독)’이라는 덫에 갇히는 매무새로 자꾸자꾸 다른 새책을 덥석덥석 베어물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애벌훑기’를 못 내려놓을 뿐 아니라 ‘애벌쓰기’에 사로잡힌 책이 쏟아진다고 느낀다. 큰보람(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애벌쓰기에 갇힌 글과 책이 수두룩하다. ‘100’을 안 채우더라도 ‘온벌읽기·온벌쓰기’를 헤아릴 때라고 본다. 온눈으로, 온빛으로, 온사랑으로, 온마음으로, 온몸으로, 온별로, 온해로, 온철로, 온날로, 온누리로, 온꿈으로, 오롯하면서 옹글게 여미는 열매 하나를 나누기에 비로소 ‘책’이라는 이름에 걸맞다고 본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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