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문학동네 동시집 35
곽해룡 지음, 강태연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9.

노래책시렁 499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곽해룡 글

 강태연 그림

 문학동네

 2015.4.21.



  남다르거나 다르거나 놀랍거나 믿기지 않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글감을 찾아야 하는 노래(동시·시)가 아닙니다. 남과 다르다 싶은 줄거리를 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다. 놀랍다고 여길 줄거리를 애써 뽑아내거나 캐내야 하지 않습니다. 아기나 아이를 구경하는 자리에서 먼발치로 쓸 적에는 뜬금없거나 삶하고 등지게 마련입니다. 모든 노래는 스스로 ‘살림하는 하루’를 그릴 노릇입니다. 모든 글은 손수 ‘살림짓는 오늘’을 담을 노릇입니다.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는 지난날 ‘동심천사주의’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말만들기’와 ‘주제주의’라는 글버릇을 보여줍니다. 그저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하는 길을 그리면 될 텐데요? 왜 자꾸 말만들기를 하면서 ‘좋은 소제·주제’에 얽매여야 하는가요? 언뜻 보면 ‘어린이 삶’을 짚는 듯하지만, ‘어린이 삶’이 아닌 ‘어린이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좋은 소제·주제’를 맴도는구나 싶습니다. 신 한 짝을 놓고서 귀염구경을 하는 글은, 이제 좀 끝낼 노릇입니다. 얼린고기이든 달걀이든, 손수 밥차림을 하면서 아이가 몸소 밥살림을 익혀 가는 얼거리를 들여다볼 노릇입니다. 쥐어짜려고 하지 말아요. 창피했던 일이건 슬펐던 일이건 기뻤던 일이건 웃던 일이건, 그저 그대로 차근차근 적으면 저절로 삶노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 쪼끄만 신발 한 짝 / 유모차 타고 가던 / 아기 발에서 벗겨졌겠지 // 아기는 / 으앙, 울음 터뜨렸겠지 // ― 우리 아가 쉬했니? (신발 한 짝/16쪽)


입을 아, 벌린 채 꽁꽁 얼어 있다 / 바다에서 건져져 파닥이다가 / 산 채로 꽁꽁 얼어 버렸을 동태 / 바다 냄새도 얼어 버리고 /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엉엉 울었을 울음마저도 / 꽁꽁 얼어 버렸다 // 지금이라도 물에 놓아주면 동태는 / 비릿한 바다 냄새 물씬 풍기며 / 몸을 뒤척이고 / 배 위로 건져졌던 기억으로 돌아가 / 울다 만 울음 /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다 (동태/48쪽)


지금은 / 특특란, 특왕란, 왕왕란을 판다 // 할머니 어렸을 적엔 / 계란이 /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계란 가게/58쪽)


죽음을 앞둔 부자가 / 평생 모은 돈을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 기부했다고 합니다 // 개학이 다가오자 / 하느님께 낼 / 밀린 방학 숙제를 / 한꺼번에 했나 봅니다 (방학 숙제/62쪽)


매미채를 들고 살금살금 / 집을 나서려다 들켜서 // “공부 안 하고 어디 나가!” / 엄마가 내 오른쪽 귀를 잡아당겨서 (줄다리기/74쪽)


+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곽해룡, 문학동네, 2015)


달아나는 것이 귀찮아 코끼리는 몸뚱이를 키웠다

→ 달아나기가 귀찮은 코끼리는 몸뚱이를 키웠다

38쪽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코끼리는 종일 풀을 뜯어야 한다

→ 코끼리는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살리려면 내내 풀을 뜯어야 한다

→ 코끼리는 내도록 풀을 뜯어야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살린다

38쪽


낙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 않았다

→ 곱등말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아이는 안 업어 주었다

→ 모래말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아이는 못 업어 주었다

39쪽


배 위로 건져졌던 기억으로 돌아가 울다 만 울음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다

→ 배로 건져올린 옛일로 돌아가 울다 만 나를 엉엉 울어버릴 듯하다

→ 배에 낚인 지난일로 돌아가 울다 만 삶을 다시 울어버릴 듯싶다 

48쪽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 동무하고 마지막말을 나누니

→ 동무랑 헤어짐말을 나누니

55쪽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 저마다 바라는 바로 가는

→ 다들 바라는 길로 가는

55쪽


할머니 어렸을 적엔 계란이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 할머니 어릴적엔 달걀이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58쪽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했다고 합니다

→ 가난한 사람한테 써 달라고 내놓았다고 합니다

→ 가난한 사람한테 쓰라면서 바쳤다고 합니다

62쪽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성의 부름 네버랜드 클래식 49
잭 런던 지음, 필립 R. 굿윈.찰스 리빙스턴 불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숲노래 숲책 / 환경책 읽기 2025.6.9.

숲책 읽기 239


《야성의 부름》

 잭 런던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015.8.30.



  “The Call of the Wild”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할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말은 우리말일 뿐, 일본말이나 영어가 아닙니다. 일본말씨나 옮김말씨가 아닌, 우리말씨로 헤아릴 노릇입니다. 잭 런던 님이 1903년에 남긴 글은 ‘집개’가 들숲살이를 거치면서 ‘늑대’가 들숲에서 살듯 들숲으로 떠나는 줄거리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들숲이 부른다”나 “숲이 부른다”처럼 옮겨야 어울리지 않을까요. 단출히 ‘들숲소리’나 ‘숲소리’나 ‘숲노래’로 옮길 수 있습니다.


  바람이 안 부는 날이란 없습니다. 바람은 아주 잔잔하다 싶도록 부는 날이 있더라도 늘 흐르고 감돌며 퍼집니다. 바람이며 물은 고이면 그만 갇혀서 괴로운 나머지 곪듯 썩습니다. 흐르기에 살리는 바람과 물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피도 언제나 흘러요. 우리 몸에서 피돌기가 멎으면 우리 숨도 나란히 멎습니다.


  바람이 간질이는 하루입니다. 바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지는 하루입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깨어나고, 바람을 느끼며 잠듭니다. 이 바람이 있기에 나하고 너는 서로 다르되 하나인 넋으로 이 별에서 어울립니다. 이 바람을 잊기에 나는 나부터 잊으면서 너를 못 보고, 너도 너 스스로 잊기에 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들숲소리(야성의 부름)》를 오랜만에 되읽는데, 사람들이 개를 때리고 괴롭히면서 돈에 얽매이는 줄거리가 대단히 깁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개를 때리고 괴롭히지는 않습니다만, 예나 이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괴롭히고 때리는 무리는 고스란하고, 사람 곁에 있는 뭇짐승과 뭇새와 뭇벌레를 괴롭히고 죽이는 무리가 숱합니다.


  전남 고흥군 읍내에는 즈믄나무(천년수)가 있습니다만, 내내 이 나무를 괴롭히고 들볶더니, 2025년 5월에는 아주 가지치기까지 해댑니다. 멀쩡한 즈믄나무를 이대로 살피고 보듬는 손길이 아니라, 보기 흉하게 괴롭히는 막칼질입니다. 시골인 고흥뿐 아니라 서울과 큰고장도 비슷해요. 온나라 길나무는 해마다 젓가락으로 바뀌기 일쑤예요. 줄기만 올리는 나무가 아니라, 가지를 뻗는 나무인데, 가지가 좀 난다 싶으면 죄다 쳐낸다면, 나무가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나무만 괴롭히면서 죽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올해에도 똑같이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힌 채 앓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수렁에 내몰면서 손전화를 휙휙 던져 줘요. 아이들은 수렁에서 헤매며 손전화에 코를 박습니다. 죽음수렁으로 내몰렸어도 손전화를 들여다보면서 키들키들하더군요. 이러면서 혀끝에 갖은 막말을 얹으며 떠들어요. 다만, 혼자 있을 적에는 막말을 못 얹고, 또래가 여럿 어울릴 적에만 큰소리로 막말을 뇌까립니다.


  나무는 왜 ‘나무’인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하고 너는 왜 ‘나·너’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왜 ‘사람’이고, 사랑은 왜 ‘사랑’인지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무가 왜 나무인지 생각조차 않으니, 나비와 벌과 풀과 꽃이 왜 ‘나비·벌·풀·꽃’이라는 이름인지 생각하지 못 하거나 않습니다. 스스로 우리 이름과 말을 생각하는 빛을 잊으니, 왜 ‘삶’인지 생각하지 못 하거나 않아요. 개 한 마리는 사나운 채찍질에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들숲소리를 따라서 사람터를 의젓하게 떠났습니다. 채찍질이 없는 숲에서, 죽임짓이 없는 들에서, 따돌림과 무리질이 없는 들숲에서, 이제 스스로 하루를 그리고 짓는 길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슨 소리를 듣는 하루인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우리는 늘 무슨 소리에 휩싸인 터전인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랑을 하면서 살림을 짓는 소리와 말과 마음이 흐르는 집에서 살아가는지, 아니면 사람됨과 사랑빛과 살림길과 생각소리와 말씨앗과 마음밭을 모두 팽개치거나 등돌린 채 쳇바퀴에 스스로 갇힌 굴레는 아닌지 짚어 볼 노릇입니다.


ㅍㄹㄴ


#TheCalloftheWild (1903년) #JackLondon

필립 R.굿윈·찰스 리빙스턴 불 그림


단지 경험으로 배워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도 했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길들여진 습성이 벅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48쪽)


벅은 냉혹했다. 자비는 따뜻한 땅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벅은 최후의 돌격을 위해 태세를 갖추었다. (78쪽)


뭔가를 보거나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데도, 벅은 어쩐지 땅이 달라졌다는 것을, 땅 곳곳에 낯선 것들이 생겨나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183쪽)


사람은 화살이나 창이나 몽둥이가 없으면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벅은 사람이 손에 활이나 창이나 몽둥이를 들고 있지 않는 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188쪽)


+


《야성의 부름》(잭 런던/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015)


해안 지방에 사는 모든 개들에게 고난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 바닷가에 사는 모든 개한테 가시밭길이 닥치려 한다

→ 바닷마을에 사는 모든 개는 곧 가싯길을 맞을 듯하다

→ 바닷마을 모든 개는 이윽고 바람서리를 맞을 듯하다

9쪽


단지 경험으로 배워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도 했다

→ 그저 겪으며 배울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잠자던 넋도 되살아난다

→ 그저 부딪히며 배울 뿐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린 숨결도 살아난다

48쪽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길들여진 습성이 벅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 벅은 숱한 고개를 거치며 길든 버릇이 떨어진다

→ 벅은 긴긴 길을 거치며 길들었지만 바뀐다

48쪽


신중한 것은 벅의 특징이었다

→ 벅은 꼼꼼하다

→ 벅은 빈틈이 없다

→ 벅은 차분하다

53쪽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 빙글빙글 걸으며 노려본다

→ 빙글빙글 돌며 틈을 노린다

→ 동그라미를 그리며 틈을 본다

74쪽


자비는 따뜻한 땅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 사랑은 따뜻한 땅에서나 하는 말이다

→ 따뜻한 땅에서나 너그러울 뿐이다

→ 따뜻한 땅에서나 따사로울 뿐이다

78쪽


사람들의 관심은 또 다른 우상들에게로 쏠렸다

→ 사람들은 곧 다른 꽃별을 쳐다본다

→ 사람들은 이내 다른 님을 떠받든다

89쪽


서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였기에

→ 서로 마음을 깊이 나누었기에

→ 서로 마음으로 느끼는 사이였기에

139쪽


잡아먹는 쪽보다 인내심이 약하기 마련이다

→ 잡아먹는 쪽보다 덜 끈질기게 마련이다

→ 잡아먹는 쪽보다 못 버티게 마련이다

1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6.8. 허덕허덕 무릎셈틀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지난 2024년 7월 21일에 무릎셈틀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태 앞서 2022년 12월에는 자리셈틀(데스크탑)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리셈틀이 숨을 거둘 적에는 휘청였고, 무릎셈틀이 숨을 거둘 적에는 새로 장만할 살림돈이 없어서 헌것을 겨우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헌것으로 장만한 무릎셈틀은 내내 말썽이었습니다. 전남 광주에 있는 셈틀집에서는 “잘 쓸 만한 좋은 것”을 판다고 말씀하셨지만, 무게는 가볍되 영 쓸 만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렇더라도 내가 이 아이를 살뜰히 돌보면서 즐겁게 짊어지고 다니면 바뀌리라 여겼는데, 집에서 쓰는 여느 살림과는 다르게 좀처럼 살아나지 못 합니다. 고흥에서 인천까지 들고 와서 저녁에 길손집에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자꾸 멎습니다. 닷판째 끄고 켜기를 되풀이하다가 그만둡니다. 마침 길손집에 자리셈틀이 있기에, 이 자리셈틀을 켜서 씁니다.


  새삼스레 겪어 보아야 할 노릇이기에 “안 멀쩡한 무릎셈틀”을 속아서 샀다고 할 만합니다. 살림돈이 빠듯하다는 핑계를 앞세우면서 목돈을 못 모은 탓을 남한테 돌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땅거미가 지고서 한밤으로 나아가지만, 멧새가 들려주는 노랫가락이 없는 큰고장 한복판에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천뿐 아니라 부산과 서울과 광주와 대구와 대전에서도 밤에는 밤새가 베푸는 노래를 못 듣습니다. 두멧시골 우리집에서는 하루 내내 멧새노래를 들을 뿐 아니라, 깊새벽과 이른새벽과 이른아침과 아침과 한낮과 낮과 늦은낮과 이른저녁과 어스름과 저녁과 앞밤과 한밤에 따라서 늘 다르게 울려퍼지는 새소리를 맞아들입니다. 하루 내내 늘 다르게 새소리를 듣다가, 아무런 새소리가 없다고 할 만한 큰고장으로 나오면 “참말로 징하구마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새 한 마리조차 제대로 못 깃드는 터전이라면, 어른도 아이도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요?


  경기 성남시에서는 비둘기한테 먹이를 주는 사람한테 값을 톡톡히 매기겠다고 하는군요. 성남시뿐 아니라 적잖은 곳에서는 비둘기이건 작은새이건 큰새이건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뿐 아니라 푸른별 온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겨울이건 가을이건 봄이건 여름이건, 새하고 삶터를 나누어서 누렸고, 먹이도 으레 나누었어요. 우리는 어쩌다가 새 한 마리하고 삶터와 먹이를 못 나누는 갑갑하고 속좁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는지 안쓰럽습니다.


  새가 날기에 나무가 푸릅니다. 새가 사라지면 나무는 메말라 죽습니다. 새가 노래하기에 풀꽃이 싱그럽습니다. 새가 사라지면 풀꽃도 메말라 죽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거름이며 뭘 주더라도 새가 사라지면 풀꽃나무를 못 살립니다. 더구나 새가 사라지면 ‘비닐집’은 어찌저찌 돌리더라도 해바람비로 일구는 모든 논밭은 죽어버리게 마련입니다.


  무릎셈틀 하나 멀쩡하게 새로 장만하지 못 하며 가난한 주제에 새를 걱정하고 푸른별을 근심하고 서울과 큰고장을 딱하게 여긴다니, 여러모로 바보스럽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여태 바보스레 살아왔으니, 바라보는 눈도 글을 여미는 손끝도 늘 바보스러울 테지요.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2


“입에 재갈을 물린다”고 한다. 요사이는 이런 옛말을 쓰는 분이 줄었고, ‘입틀막’처럼 새로 여민 말씨를 쓰는 분이 많다. ‘재갈질’ 같은 말씨를 모르더라도, 문득 떠오르거나 느끼는 대로 짓는 말씨에 우리 삶이 흐른다. ‘밥한그릇’을 나누려는 마음이라면 섣불리 ‘입틀막’을 안 하리라. ‘소걸음’으로 둘레를 살필 뿐 아니라 들꽃을 눈여겨보는 눈길이라면, 이제부터 새롭게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길을 일구리라 본다.



밥한그릇

‘밥공기’나 ‘공깃밥’은 매우 어정쩡하다. 그러나 이렁저렁 그냥 쓰는 우리나라이다. 사람들이 널리 쓰면 이대로 받아들일 만하되, 알맞게 쓰거나 새롭게 살리는 길을 함께 짚고서 알릴 수 있으면, 우리 스스로 말빛을 마음빛으로 담으면서 생각을 북돋울 만하다. 이미 ‘그릇’이라는 낱말 하나로 다 가리킨다. 살림살이를 넓히면서 ‘물그릇’이며 ‘꽃그릇’이며 ‘돈그릇’이며 ‘마음그릇’이며 쓰임새가 늘기에 새말을 지을 만하므로, ‘밥그릇’을 따로 쓴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집에서 손수 밥을 짓고 차려서 누렸다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밖에서 손쉽게 사다먹을 수 있는 얼거리에 마을이다. 따로 어떤 밥을 시키기보다는 그날그날 차리는 대로 받아서 한끼를 누린다면, 이때에는 ‘밥그릇’이라는 낱말을 요조모모 헤아려서 ‘밥한그릇’이나 ‘한그릇밥’처럼 쓸 만하다. 단출히 ‘그릇밥’이라 해도 어울린다.


밥한그릇 (밥 + 한 + 그릇) : 한 사람이 먹을 그릇으로 차린 밥. 한끼로 먹을 만큼 차린 밥. 때로는 그릇에 담은 밥을 세는 말씨로도 쓴다. (= 그릇밥·한그릇밥. ← 공기空器, 공깃밥空器-, 백반白飯, 가정식家庭食, 가정식 백반, 가정요리)



입틀막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소리가 조금이라도 새면 안 되기에, 입을 아주 힘주어서 막을 때가 있다. 그런데 누구도 아뭇소리를 못 내도록 가로막거나 틀어막거나 억누르거나 짓누르기도 한다. 그저 숨기는 몸짓이라면 ‘입막음’이요, 마치 재갈을 물리면서 고삐를 채우는 수렁이라고 한다면 “입을 틀어막다”이다. 차갑게 얼어붙는 나라나 마을이나 집이라면 ‘입틀막’이다. 사랑을 잊은 채 힘으로 누르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주먹으로 괴롭히는 굴레가 멈추지 않기에 새말이 하나 또아리를 튼다.


입틀막 (입 + 틀다 + 막다) : 입을 틀어막다.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지 못 하도록 입에 물리는 것. 터져나오는 마음·소리·눈물을 참거나 막으려고 하는 몸짓. 사람들이 마음껏 말을 하지 못 하도록 힘으로 막거나 누르는 자리·나라·힘을 가리키기도 한다. 몇몇 우두머리와 힘꾼이 온통 휘어잡거나 거머쥐거나 짓밟는 차디찬 자리·나라도 가리킨다. (= 입을 틀어막다. ← 마함馬銜, 함륵銜勒, 방성구防聲具, 부자유, 통제, 언론통제, 봉쇄, 비밀, 대외비, 기밀유지, 기밀엄수, 비노출, 속박, 주박じゅばく·呪縛, 억압, 억제, 감옥監獄, 수갑手匣, 수감收監, 옥獄, 옥고獄苦, 옥살이獄-, 징역懲役, 교도소, 유치장留置場, 유배, 유폐, 유형流刑, 적소謫所, 형무소, 노비奴婢, 노예, 동토, 구속, 질곡桎梏, 규제, 구금拘禁, 금고禁錮, 영어囹圄, 종속從屬, 속국屬國, 부자유, 제한, 제약制約, 제재制裁, 식민, 식민지, 강점强占, 혹독, 강압, 계엄戒嚴, 신분제, 계급제, 양반제兩班制, 긴장, 제국주의, 군국주의, 군사주의)



소걸음

소는 서둘러 걷지 않는다. 사람이 채찍을 휘두르고 고삐를 잡아끌기에 겅중겅중 달리듯 걷는다. 멀리 가든 가까이 가든 차근차근 내딛는 소를 헤아리면서 ‘소걸음’이라는 낱말이 태어났다. 오늘날에는 소하고 살아가면서 논밭을 일구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소가 어찌 걷는지 볼 일이 사라진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 곁에서 오래오래 한집안을 이루던 소를 떠올릴 사람이 아직 남지 않았을까. 소걸음을 그리고, 즈믄길을 살피고, 느긋이 살림을 짓는 눈빛을 그린다.


소걸음 (소 + 걷다 + -ㄹ -음) : 소처럼 나아가는 걸음. 서두르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길·몸짓·일·마음·걸음. (= 소즈믄길·천천길·천천걸음·천천히·찬찬길·찬찬걸음·찬찬히·즈믄길·느긋길·느긋걸음·느긋이. ← 완행, 완행노선, 완보緩步, 우보牛步, 우보천리牛步千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1. 까맣다



  “까맣게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얗게 안다”고도 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얗게 모른다”를 비슷하게 씁니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처럼 쓰니, 이때에는 하나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까맣게 모른다고 할 적에는 온통 까만 빛깔이라 이 빛이나 저 빛을 가릴 수 없는 나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까맣게 모르다 = 이도 저도 가릴 수 없이 밤빛이 되면서 헤아리기 어렵다”는 소리요, “하얗게 모르다 = 몽땅 사라져서 아무것도 없는 나머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기에 “까맣게 모여든다”고 합니다. 참으로 많은 ‘까망’입니다. 밤하늘을 채우는 별인데, 별을 누리는 밤이란, 어둠이란, 고요하게 모두 그득그득 채우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빛깔을 나타내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두운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면서 아늑하게 열 달을 살아낼 테고, 어머니 품을 떠날 적에 눈부신 빛(하양)을 찾아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데이지만, 이 텅 빈 데를 저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빛)를 하나씩 채워서, ‘가득 채운 하얀 누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길을 나서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까만 눈알이란 버찌나 먹머루 같은 눈알입니다. 까만 글씨란 이제까지 새하얗던, 텅 빈 종이에 새롭게 이야기를 그려서 넣는, 우리 생각을 이루고 싶은 꿈을 밝히는, 흰곳을 밝히는 까만글이란, 둘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놀이판이지 싶습니다. 흰종이에 까만글이듯, 까만밤에 흰별입니다.



까맣다


그만 까맣게 탄 빵

뒤꼍 구덩이에 놓으니

새까맣게 모여드는 파리

배불리 잔치한다


저토록 까맣게 높다란 봉우리

언제 다 오르나 하면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

이제 내려놓아 봐


걱정이라면 까맣게 잊자

해보면 모두 해내니까

여태까지 새까맣게 몰랐어도

오늘부터 하얗게 배우지


까만 눈이 되어 기다리기도

새까맣게 질려서 고단하기도

그렇지만

까만 버찌 먹고서 기운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