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2


“입에 재갈을 물린다”고 한다. 요사이는 이런 옛말을 쓰는 분이 줄었고, ‘입틀막’처럼 새로 여민 말씨를 쓰는 분이 많다. ‘재갈질’ 같은 말씨를 모르더라도, 문득 떠오르거나 느끼는 대로 짓는 말씨에 우리 삶이 흐른다. ‘밥한그릇’을 나누려는 마음이라면 섣불리 ‘입틀막’을 안 하리라. ‘소걸음’으로 둘레를 살필 뿐 아니라 들꽃을 눈여겨보는 눈길이라면, 이제부터 새롭게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길을 일구리라 본다.



밥한그릇

‘밥공기’나 ‘공깃밥’은 매우 어정쩡하다. 그러나 이렁저렁 그냥 쓰는 우리나라이다. 사람들이 널리 쓰면 이대로 받아들일 만하되, 알맞게 쓰거나 새롭게 살리는 길을 함께 짚고서 알릴 수 있으면, 우리 스스로 말빛을 마음빛으로 담으면서 생각을 북돋울 만하다. 이미 ‘그릇’이라는 낱말 하나로 다 가리킨다. 살림살이를 넓히면서 ‘물그릇’이며 ‘꽃그릇’이며 ‘돈그릇’이며 ‘마음그릇’이며 쓰임새가 늘기에 새말을 지을 만하므로, ‘밥그릇’을 따로 쓴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집에서 손수 밥을 짓고 차려서 누렸다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밖에서 손쉽게 사다먹을 수 있는 얼거리에 마을이다. 따로 어떤 밥을 시키기보다는 그날그날 차리는 대로 받아서 한끼를 누린다면, 이때에는 ‘밥그릇’이라는 낱말을 요조모모 헤아려서 ‘밥한그릇’이나 ‘한그릇밥’처럼 쓸 만하다. 단출히 ‘그릇밥’이라 해도 어울린다.


밥한그릇 (밥 + 한 + 그릇) : 한 사람이 먹을 그릇으로 차린 밥. 한끼로 먹을 만큼 차린 밥. 때로는 그릇에 담은 밥을 세는 말씨로도 쓴다. (= 그릇밥·한그릇밥. ← 공기空器, 공깃밥空器-, 백반白飯, 가정식家庭食, 가정식 백반, 가정요리)



입틀막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소리가 조금이라도 새면 안 되기에, 입을 아주 힘주어서 막을 때가 있다. 그런데 누구도 아뭇소리를 못 내도록 가로막거나 틀어막거나 억누르거나 짓누르기도 한다. 그저 숨기는 몸짓이라면 ‘입막음’이요, 마치 재갈을 물리면서 고삐를 채우는 수렁이라고 한다면 “입을 틀어막다”이다. 차갑게 얼어붙는 나라나 마을이나 집이라면 ‘입틀막’이다. 사랑을 잊은 채 힘으로 누르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주먹으로 괴롭히는 굴레가 멈추지 않기에 새말이 하나 또아리를 튼다.


입틀막 (입 + 틀다 + 막다) : 입을 틀어막다.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지 못 하도록 입에 물리는 것. 터져나오는 마음·소리·눈물을 참거나 막으려고 하는 몸짓. 사람들이 마음껏 말을 하지 못 하도록 힘으로 막거나 누르는 자리·나라·힘을 가리키기도 한다. 몇몇 우두머리와 힘꾼이 온통 휘어잡거나 거머쥐거나 짓밟는 차디찬 자리·나라도 가리킨다. (= 입을 틀어막다. ← 마함馬銜, 함륵銜勒, 방성구防聲具, 부자유, 통제, 언론통제, 봉쇄, 비밀, 대외비, 기밀유지, 기밀엄수, 비노출, 속박, 주박じゅばく·呪縛, 억압, 억제, 감옥監獄, 수갑手匣, 수감收監, 옥獄, 옥고獄苦, 옥살이獄-, 징역懲役, 교도소, 유치장留置場, 유배, 유폐, 유형流刑, 적소謫所, 형무소, 노비奴婢, 노예, 동토, 구속, 질곡桎梏, 규제, 구금拘禁, 금고禁錮, 영어囹圄, 종속從屬, 속국屬國, 부자유, 제한, 제약制約, 제재制裁, 식민, 식민지, 강점强占, 혹독, 강압, 계엄戒嚴, 신분제, 계급제, 양반제兩班制, 긴장, 제국주의, 군국주의, 군사주의)



소걸음

소는 서둘러 걷지 않는다. 사람이 채찍을 휘두르고 고삐를 잡아끌기에 겅중겅중 달리듯 걷는다. 멀리 가든 가까이 가든 차근차근 내딛는 소를 헤아리면서 ‘소걸음’이라는 낱말이 태어났다. 오늘날에는 소하고 살아가면서 논밭을 일구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소가 어찌 걷는지 볼 일이 사라진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 곁에서 오래오래 한집안을 이루던 소를 떠올릴 사람이 아직 남지 않았을까. 소걸음을 그리고, 즈믄길을 살피고, 느긋이 살림을 짓는 눈빛을 그린다.


소걸음 (소 + 걷다 + -ㄹ -음) : 소처럼 나아가는 걸음. 서두르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길·몸짓·일·마음·걸음. (= 소즈믄길·천천길·천천걸음·천천히·찬찬길·찬찬걸음·찬찬히·즈믄길·느긋길·느긋걸음·느긋이. ← 완행, 완행노선, 완보緩步, 우보牛步, 우보천리牛步千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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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1. 까맣다



  “까맣게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얗게 안다”고도 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얗게 모른다”를 비슷하게 씁니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처럼 쓰니, 이때에는 하나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까맣게 모른다고 할 적에는 온통 까만 빛깔이라 이 빛이나 저 빛을 가릴 수 없는 나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까맣게 모르다 = 이도 저도 가릴 수 없이 밤빛이 되면서 헤아리기 어렵다”는 소리요, “하얗게 모르다 = 몽땅 사라져서 아무것도 없는 나머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기에 “까맣게 모여든다”고 합니다. 참으로 많은 ‘까망’입니다. 밤하늘을 채우는 별인데, 별을 누리는 밤이란, 어둠이란, 고요하게 모두 그득그득 채우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빛깔을 나타내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두운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면서 아늑하게 열 달을 살아낼 테고, 어머니 품을 떠날 적에 눈부신 빛(하양)을 찾아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데이지만, 이 텅 빈 데를 저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빛)를 하나씩 채워서, ‘가득 채운 하얀 누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길을 나서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까만 눈알이란 버찌나 먹머루 같은 눈알입니다. 까만 글씨란 이제까지 새하얗던, 텅 빈 종이에 새롭게 이야기를 그려서 넣는, 우리 생각을 이루고 싶은 꿈을 밝히는, 흰곳을 밝히는 까만글이란, 둘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놀이판이지 싶습니다. 흰종이에 까만글이듯, 까만밤에 흰별입니다.



까맣다


그만 까맣게 탄 빵

뒤꼍 구덩이에 놓으니

새까맣게 모여드는 파리

배불리 잔치한다


저토록 까맣게 높다란 봉우리

언제 다 오르나 하면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

이제 내려놓아 봐


걱정이라면 까맣게 잊자

해보면 모두 해내니까

여태까지 새까맣게 몰랐어도

오늘부터 하얗게 배우지


까만 눈이 되어 기다리기도

새까맣게 질려서 고단하기도

그렇지만

까만 버찌 먹고서 기운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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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ㄴ을 얹는 나 (2025.6.1.)

― 부산 〈책과 아이들〉



  어릴적부터 둘레에서 ‘생활·생계·생존’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말로 ‘삶·살림·남다’라 안 해요?” 하고 여쭈면, 뭔 이런 조무래기가 다 있느냐며, 우리말로는 깊이도 너비도 없어서 나타낼 수 없다고 끊어요. 이윽고 ‘라이프·리빙’처럼 영어가 물결치면서 한자말이 수그러듭니다. 요즈음은 우리말 ‘삶·살림’을 헤아리는 분이 제법 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다’를 눈여겨보는 분은 턱없이 적어요.


  나무는 이곳에 남아서 푸르게 가꿉니다. 아무리 메마른 곳이어도 먼저 티끌만큼 작은 풀씨가 날아앉아서 지렁이랑 풀벌레를 부릅니다. 어느새 애벌레는 나비로 깨어나서 춤추고, 새하고 들숲짐승이 깃듭니다. 사람이 살 만한 데란, 풀꽃씨에 풀벌레에 벌나비에 새가 일군 터전입니다.


  나는 너를 바라봅니다. 나하고 너 사이에 금을 그으며 끊으면 ‘남’이자 ‘놈’입니다. 나하고 너를 아우르려고 하니 ‘우리’이고, 우리는 서로 어울리고 한울(하늘)처럼 파랗게 만나서 ‘하나’이면서 ‘한(큰)’껏 피어나는 꽃입니다.


  나는 너한테 가려서 너머를 그리고, 어느새 서로 날갯짓으로 넘나들어요. 넘나드는 홀가분한 날갯짓 같은 사이라서 ‘너나들이’입니다. 부산 〈책과 아이들〉에서 아침에는 “살림짓기 이야기밭” 첫걸음을 펴고, 낮에는 “말이 태어난 뿌리” 두걸음을 폅니다.


  “나이들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없어요. “나이들면 아프게 마련이라고 마음에 씨앗을 심기 때문에 아픈” 사람만 있어요. 머리카락은 빠지고 새로 납니다. 손발톱은 닳으면서 새로 자랍니다. 이와 잇몸도 쓰는 만큼 닳고, 안 쓰면서 쉬는 사이 새로 나옵니다. 살갗과 피도 끝없이 새로 나오고요. 눈이 잘 안 보일 적에는 눈을 너무 쓴 탓에 쉬어야 하기도 하지만, 둘레에 ‘불(형광등·LED)’이 너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눈을 살리려면 ‘불’이 아닌 ‘풀(풀잎과 나뭇잎)’을 바라보고, ‘물(빗물·이슬·샘물)’과 ‘바람(파란하늘·구름)’을 바라보면 되어요.


  느긋이 나를 돌아보기에, 넉넉히 몸이 나아가고, 나긋나긋 마음이 자라난다고 느껴요. ‘나이’를 “나로서 잇고 일어서고 읽고 익히는” 길로 삼으니 ‘이야기’를 지어요.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니, ‘좋은마음’도 ‘나쁜마음’도 아닌 ‘나로서 나라는 마음’만 바라볼 일입니다. 먹든 굶든 언제나 튼튼몸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ㄴ’이라는 낱말에 ‘나·너’를 얹고서 ‘나무·남다·날다’를 잇고서 ‘나다·낳다·놀다·나눔’을 둡니다. 놓는 낱말에 따라 이 삶이 다릅니다.


ㅍㄹㄴ


《결혼식은 준비하지만, 결혼은 준비하지 않았다》(김수현, 스토리닷, 2025.6.14.)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0.4.14.)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8.1.)

#Rapport fran en skurhink (1970년) #MajaEkelof

《평범한 경음부 1》(쿠와하리 글·이데우치 테츠오 그림/이소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평범한 경음부 2》(쿠와하리 글·이데우치 테츠오 그림/이소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4.30.)

#ふつうの輕音部 #クワハリ #出內テツオ

《밤을 걷는 고양이 2》(후카야 카호루/김완 옮김, 미우, 2017.12.12.)

《밤을 걷는 고양이 3》(후카야 카호루/김완 옮김, 미우, 2017.7.29.)

#夜廻り猫 #深谷かほる

《시노자키 군의 정비 사정 9》(부리오 미치루/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2.28.)

《시노자키 군의 정비 사정 10》(부리오 미치루/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篠崎くんのメンテ事情 #?尾みちる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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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25.


《에세이 글쓰기 수업》

 이지니 글, 세나북스, 2024.5.9.



해날을 맞이한 오늘은 집에서 쉬며 국을 끓이고 밥을 짓는다. 작은아이는 멧딸기를 곳곳에서 훑어서 “같이 먹어요.” 하고 내민다. 마당을 함께 치우고 쓸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멧새소리는 누구일는지 어림해 본다. 축축한 어제는 빨래가 덜 말랐지만, 햇볕이 넉넉한 오늘은 다 마른다. 낮에 새로 빨래를 하는데, 저녁에 빨랫감이 또 나온다. 네 사람 살림살이인 만큼 일거리도 꾸준하게 수북수북하다. 이제 감꽃이 피고 콩꽃도 핀다. 앵두알이 빨갛게 익으면서 후박알도 짙푸르게 여문다.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읽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나온다. 가만히 읽어 본다. 우리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뜻이라면, 오직 하나이다. 마음을 나누려고 말과 글을 한다. 마음나눔이라는 하루를 멀리하면서 글꾸미기에 얽매인 줄거리라면 어느 누구한테도 이바지를 못 한다. 글을 쓰고 싶다면 〈The Secret Of Kells〉나 〈메리 포핀스〉 같은 그림빛을 보시라고 여쭙는다. 100벌쯤 보시라고 덧붙인다. 멧숲에 가만히 깃들어 꾀꼬리노래가 아니어도 수수한 멧새노래에 온마음을 맡기라고 여쭙는다. 골짝물이 흐르는 소리에 온몸을 맡기면서 새롭게 피어나 보시라고도 여쭙는다. 우리는 삶을 스스로 사랑하려고 말하거나 글쓴다.


+


미국은 이런 대목에서 대단하구나. 우리나라는 무엇을 할까? 우리나라는 이렇게 아이들을 곁에 두거나 앞에 두면서 나라일을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면서 몸소 겪도록 이끌 수 있을까? 이렇게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물어보고, 어른들이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백악관 자녀 직장 방문의 날(Take Our Sons and Daughters to Work Day)

https://www.youtube.com/watch?v=DY7XBiUYHXs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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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24.


《나사와 검은 물》

 쓰게 요시하루 외/한윤아 옮김, 타이그래스 온 페이퍼, 2022.8.



집에서 포근히 하루를 맞으며 일하다가 저녁나절에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어쩌다 보니 해날을 빼고는 거의 모든 날을 집밖으로 다녀와야 한다. 이럴 때도 있게 마련이라고 여긴다. 곁님이 큰아이를 배고 작은아이를 밸 적에도 날마다 저잣마실을 다녀오면서 수박을 날랐고, 미역을 장만했고, 모든 날을 쉬잖고 보냈다. 작은아이가 열두 살 즈음 이르자 ‘하루 여섯 시간 잠’을 누린다. 일이 많으면 잠을 조금 줄이되, 예전처럼 ‘하루 두어 시간 잠’을 보내지는 않는다. 이만큼으로도 등허리가 가뿐하다. 《나사와 검은 물》을 읽었다. 그림꽃(만화)을 다루는 책이기에 장만했지만, 그림님을 지나치게 추켜세우는구나 싶다. 왜 추켜세워야 할까? 왜 ‘개척자·영웅’으로 모셔야 할까? 그러지 말자. 그저 이야기와 그림과 삶과 붓끝을 바라보자. 목소리만 앞세울 적에는 텅빈 하늘에 맴도는 부릉부릉 쇳소리로 그친다. 우리는 붓 한 자루로 글이건 그림이건 다 담아낼 수 있지만, “다 담는다”는 “아무렇게나 담는다”이지 않다. “다 담는다”란, “마음을 다하여 사랑으로 다가서는 길을 짓는 손길과 눈빛을 담는다”일 노릇 아닐까? “내가 옳다!”고 외치되 “넌 안 옳아!” 하고 자르는 칼끝에는 아무 사랑이 없다. 사랑이 없으면 붓이 아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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