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문화유산 해설사 따라 사찰 여행
박상용 지음, 호연 그림 / 낮은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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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한테는 좋은 그림책이 함께 있어야
 [그림책이 좋다 75] 박상용(글)+호연(그림),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책이름 :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글 : 박상용
- 그림 : 호연
- 펴낸곳 : 낮은산 (2010.1.15.)
- 책값 : 11000원


 (1) 그림책을 보는 눈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부터 그림책을 즐겼습니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한 까닭도 있으나, 이에 앞서 1999년 봄날 《우리 순이 어디 가니》라는 그림책을 만난 뒤로 그림책에 빠져들었습니다.

 1998년 12월을 끝으로 대학교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휴학계를 냈고(자퇴서를 내면 융자 받아 내던 학비를 한 달 안에 한꺼번에 갚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휴학계를 냈습니다), 오로지 신문배달만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새벽에 일 마치고 그날 돌린 신문과 다른 지국에서 얻은 10대 일간지를 하나하나 넘기다가 ‘세밀화 그림책 봄 이야기’가 나왔다는 자그마한 기사를 보고는 ‘어, 이런 그림책도 있었나? 그림책이란 이런 책이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날 아침에 대학교 앞 구내서점이 문을 열자마자 신문배달 짐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서 책방 누나한테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주문했습니다. 이무렵 신문배달 한 달 일삯으로 32만 원을 받고 있던 터라(220부를 돌린 일삯), 그림책 한 권 값 7500원이란 퍽 만만하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다달이 10만 원을 적금으로 부었고 나머지 22만 원으로 먹고 입고 책 사 읽고 소식지 만드는 돈을 대고 있었거든요.

 이틀 뒤 주문한 책이 책방에 왔고, 책방으로 찾아가 7500원 온돈을 치르고 장만하여 신문사지국으로 돌아와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넘깁니다. 홀로 있는 지국에서 조용히 책장을 한 장 두 장 천천히 넘기는 동안 볼을 타고 눈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그림책이란 이렇구나,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보이는 까닭이 이렇구나,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함께 즐기는 책이구나.’

 그림책을 두 번째 넘긴 다음 덮습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봅니다. 어린 날, 집에서 그림책을 본 일이 있었나 떠올립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였으나 집에서 마땅히 그림책을 본 일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1982∼1987년에 국민학교를 다닌 저로서는 괜찮은 그림책이 얼마 없던 때이니까요. 우리 형이든 저이든, 또 동네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다른 동무들이든 살가운 그림책 하나 보면서 큰 동무는 없습니다. 꽤나 잘사는 아이들이었다면 동화책쯤은 있었겠지요. 그러나 괜찮은 그림책까지 아니더라도 ‘그림책 꼴을 갖춘 책’이란 만나기 참 어려웠습니다.


.. 문화재란 옛사람들이 살아온 자취입니다. 옛사람들이 의식주에 사용했던 것들은 모두 문화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에 실제로 사람이 살았던 집은 남아 있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쓰던 도구 또한 오늘까지 전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믿음을 갖고 만들었던 불상이나 석탑은 잘 닳지 않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잘 남겨져 문화재가 된 것입니다 ..  (17쪽)


 1999년 봄부터는 책방마실을 할 때에 그림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해 여름에 신문배달 일을 접고 어린이책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어린이책 출판사에 들어가 받은 일삯은 62만 원. 신문딸배 적과 견주면 두 곱이 되는 일삯. 얼른 적금 하나를 더 들어 25만 원을 붓는 통장을 하나 마련하면서도 ‘돈이 남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른 출판사 일꾼 얼굴을 하나둘 익히면서 다른 출판사에서 만든 좋은 그림책을 하나둘 선물로 받고, 제 깜냥껏 눈결을 다스리면서 헌책방에서 ‘판 끊어진 예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무렵, 1982년에 ‘백제’라는 출판사에서 ‘현대세계걸작동화’라는 이름을 붙여 스물여섯 권짜리 ‘그림책 전집’을 내놓았음을 처음으로 알아차립니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 일꾼들은 이 그림책을 모르고 있었으나, 헌책방에는 버젓이 이 그림책이 있었거든요. ‘백제’라는 출판사가 ‘돈 까밀로와 빼뽀네’ 책으로 큰돈을 번 다음 내놓은 ‘현대세계걸작동화’였는데, 백제 출판사는 갑작스레 번 큰돈으로 영어교재를 만든다고 하다가 폭삭 무너졌습니다. 이러면서 이 그림책은 통째로 ‘문선사’로 옮겨 1984년부터 1980년대 끝무렵까지 다시 펴냅니다.

 헌책방에서 ‘현대세계걸작동화’ 스물여섯 권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짝을 맞추면서(아직 두 권을 못 찾았습니다) 속이 떨떠름합니다. 왜냐하면 이 멋지고 훌륭한 그림책들을 우리 아버지께서는 1980년대에 당신 아이 둘이 국민학생이었을 때에 한 번도 장만해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이 그림책을 당신이 맡은 국민학교 아이들한테는 장만해서 읽혔는지 모를 일입니다. 학교에서는 훌륭한 교사로 지내셨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스물여섯 권 모두는 어렵다 하여도 다문 한 권이라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이켜봅니다. 《까마귀 소년》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책은 이때에 《까마귀 도령》이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 그림책 《로타와 자전거》는 이때에 처음으로 옮겨진 뒤 아직 다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 절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일주문을 들어설 때부터는 깨끗하고 고귀한 곳에 간다는 생각을 갖고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좋겠습니다 … 단청은 무척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파랑ㆍ하양ㆍ빨강ㆍ검정ㆍ노랑 이렇게 다섯 가지 색깔인 ‘오방색’을 기본으로, 이 색들을 섞었을 때 나오는 몇 가지 중간색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입니다. 오방색은 동서남북 가운데의 다섯 방향과 나무ㆍ쇠ㆍ불ㆍ물ㆍ흙 다섯 원소를 뜻합니다. 이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좋은 기운을 뿜어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  (28, 100쪽)


 제가 어린 날 즐겁게 본 그림책이 하나도 없었나 하고 다시금 머리를 쥐어짜내면 꼭 한 가지 떠오르기는 합니다. 우리 형이 중학교에 들어선 다음 아버지가 사 주어 다달이 숙제를 해내도록 했던 학습지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아모스와 보리스》 하나가 있습니다. 학습지에 딸린 해적판 《아모스와 보리스》는 1994년에 《생쥐와 고래》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 ‘윌리엄 스타이그’ 그림책이었습니다. 비록 해적판이기는 하지만, 얄팍하고 번역 어설픈 학습지 별책부록 《아모스와 보리스》를 천 번 가까이 되읽곤 했습니다. 1999년 가을, 《생쥐와 고래》라는 그림책을 책방 책꽂이에서 만나면서 얼마나 반갑고 서럽고 기쁘고 아팠는지.

 저와 나이가 같은 대학교 적 동무는 국민학교 3학년 때에 《몽실 언니》를 읽었다고 했습니다. 권정생 님 《몽실 언니》는 1984년에 나왔고 이때가 우리한테 국민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저는 《몽실 언니》를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와 집에서 밍기적거리다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던 1998년 1월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열네 해나 지난 끝에 만난 셈이고,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서야 읽었습니다. 이때에도 이 놀랍고 아름다운 책을 왜 나는 국민학생 때에 읽지 못했나 되새기면서 가슴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와 되새기면, 어린 날 여러모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을 만나지 못했기에 오늘에 와서 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을 뒤늦게 알아채어 읽고 삭이고 즐길 수 있다고 할 테지만, 또한 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을 우리 아이한테는 제때에 제대로 읽힐 수 있게끔 하고자 힘쓰지만, 제 가슴속에 아로새겨진 슬픔과 허전함이란 지우기 어렵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 날 제 삶이란 워낙 개구져서 날이면 날마다 동무들하고 밖에서 뒹굴며 뛰놀았으니 책을 쥐어 주었다 하여도 안 읽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슴을 적시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눌려 밖에서 뒹굴며 뛰놀 생각을 잊고 집안에 틀어박혔을는지 모릅니다. 집안에 틀어박힌 채 책을 파고들었다면 좋은 책으로 마음밭이 한결 넉넉했을 터이나, 그만큼 바깥에서 동무들하고 골목놀이를 하며 부대끼지 않았을 테니 ‘뛰놀던 어린 나날’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어린 나날에 좋은 어린이책을 만나야 하고 좋은 그림책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어김없이 어린 나날부터 살가운 그림책을 마주해야 하며 살가운 어린이책으로 어린이 마음에 착하고 곱고 맑고 튼튼하고 씩씩한 넋이 자라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책으로만 키울 수 없는 어린이 마음입니다. 흙밭에서 뛰고 땀내 나도록 달리며 때로는 무릎이 까지고 팔뚝이 벗겨지고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부대끼며 마음과 몸이 나란히 쑥쑥 자라야 할 어린이 삶입니다.


.. 지방 권력자들의 사상적인 협력자가 된 육두품 세력은 절을 지어 머물며 공부를 계속했는데, 터를 정할 때 ‘풍수’를 적용해 명당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속의 좋은 자리에 절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종교적인 기능뿐 아니라 관광 명승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  (30∼32쪽)


 1999년부터 2010년 봄까지 이천 권 남짓 그림책을 장만하여 늘 다시 꺼내어 펼치고 읽고 삭이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저한테 아름다운 그림책이란 제 마음을 아름다이 살찌우는 그림책입니다. 하루하루 알차게 꾸리고픈 제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림책이 저한테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여야 재미있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별나라를 가고 달나라를 가며 해나라를 넘나들어야 신나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집안에서 어머니를 도와 걸레질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심부름을 하며 밥상을 차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하는 갖가지 살림을 익히는 삶자락이 고이 담길 수 있으면서, 한 사람이 고운 목숨을 사랑스레 일구면서 내 몸과 마음을 오롯이 아낄 수 있도록 어깨동무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밑틀을 따스한 눈높이로 넉넉하게 품어 안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나와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모두 빛나는 넋을 가슴에 담고 있음을 조곤조곤 들려줄 수 있으면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지식이란 부질없습니다. 삶이어야 아름답습니다. 정보란 덧없습니다. 땀방울이어야 알찹니다.

 삶이란 집살림일 수 있고 마을살림일 수 있으며 나라살림일 수 있습니다. 자연살림이나 겨레살림일 수 있겠지요. 학교살림이나 들살림이나 갯살림이나 멧살림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살림도 되고, 아파트살림도 될 테지요.

 땀방울이란 놀며 흘리는 땀방울일 수 있고 일하며 흘리는 땀방울일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닫는 땀방울이 아닌 서로 나란히 나아가는 땀방울이어야 합니다. 신나게 놀고 기운차게 일하는 땀방울이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아름다운 그림책 하나라 할 때에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즐겁게 쥐어들고 펼치며 가슴에 새길 수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사랑할 수 없다 한다면 아름다운 그림책이 아닙니다.


 (2) 절에 담긴 마음과 그림에 담는 뜻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라는 그림책을 봅니다.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를 ‘그림책 갈래’에 넣을 수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있을 텐데, 절 문화를 사진으로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사진으로만 이루어진 이 같은 짜임새 책일 때에도 ‘그림책 갈래’에 들 수 있습니다. 만화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도 ‘그림책 갈래’에 녹아들 수 있어요.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라는 그림책은 이 땅에서 오래디오랜 나날을 여느 사람을 비롯하여 권력자까지 골고루 마음자리에 스며들어 왔던 ‘불교 문화’가 ‘절집’에서 어떤 발자취를 남기면서 이어왔는가를 부드러운 말씨로 들려주는 책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만화쟁이 호연 님이 산뜻하고 정갈한 그림을 사이사이 넣어 ‘절집 문화’를 한결 포근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끕니다.


.. 그런데 불상이 생기고부터는 탑을 바라보면서 불러일으켜지는 신앙심보다는 위대한 이의 외형을 그대로 본따 만든 불상을 보면서 신앙심을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절의 중심이 점점 더 불상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세워졌을 때, 고려가 멸망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불교의 폐단이 심했던 점이라고들 합니다. 실제로 불교가 귀족화되면서 일반 사람들의 생활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불교 행사만 성대하게 하고, 절에 많은 땅을 주어 일반 농민은 땅고 가지지 못하고 고통을 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  (66, 84쪽)


 저는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를 장만하면서 이 책에 담긴 줄거리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절집 얼거리를 이 책을 읽으면서 좀더 꼼꼼하고 찬찬히 알아챈 다음 절집 나들이를 한다면 한결 재미있거나 뜻있거나 보람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절집 얼거리를 하나도 모르는 채 절집 나들이를 한다면 내 가슴에 올망졸망 스며들 이야기가 얼마 없을 수 있어요. 아직 절집 삶과 문화를 모를 아이들한테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는 더없이 도움이 되고 길잡이가 되리라 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한테도 좋은 길잡이가 될 테지요.

 저로서는 이 그림책에 그림을 넣은 호연 님 그림이 좋아서 장만했습니다.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에 그림을 넣은 호연 님은 《도자기》(애니북스2008)라는 대단한 작품을 내놓았던 분이고, 요즈음은 당신 누리사랑방(blog.naver.com/sakumkun)에 “사금일기”를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겪고 보고 느끼는 이야기를 서너 칸(거의 세 칸짜리로) 그림이야기로 선보이고 있어요. 호연 님이 당신 누리사랑방에 “사금일기”를 올릴 때마다 챙겨 보던 어느 날 당신 그림을 넣은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라는 책 소식이 떴기에 기꺼이 이 그림책을 장만했고, 이 그림책에 담긴 줄거리 또한 참 쉽고 부드러이 잘 풀어냈다고 느끼는 한편, 이와 같은 줄거리를 이만큼 제대로 삭이고 헤아리면서 그림으로 풀어낸 사람이 우리 나라에 몇이나 될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좋아합니다.

 ‘문화유산 해설사 따라 사찰 여행’이라는 이름을 함께 붙여 펴낸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에 이어, 우리 나라에 뿌리내린 역사 깊은 예배당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낮은산 출판사에서 앞으로 새롭게 펴낼 수 있을지 궁금한데, 서양 종교라고 하지만 꼼꼼히 따지고 보면 불교 또한 나라밖에서 들어와 사람들한테 뿌리내린 믿음이었던 만큼, 오늘날 많은 사람들한테 뿌리내리는 서양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 삶과 문화 이야기를 다루는 살갑고 포근한 그림책을 함께 선보일 수 있으면 더욱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은 것은 고구려ㆍ백제ㆍ신라가 있었던 삼국 시대입니다 ..  (13쪽)


 그런데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에서는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첫머리와 몇 군데에서 “고구려ㆍ백제ㆍ신라가 있었던 삼국 시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가야’를 빠뜨렸을까요? 익히 입에 굳은 대로 읊고 만 탓일까요? 학교 역사에서 ‘가야’를 모두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왜 가야 이야기는 빼고 ‘삼국 시대’라고 해 버리고 말까요? 우리 옛 역사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까지 ‘네 나라 시대’라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는지요.

 그렇지만 이 그림책 하나만 탓할 수 없습니다. ‘삼국 시대’라는 말은 이 그림책에서만 쓰지 않습니다. 우리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교과서와 맞물려 우리 생각과 지식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안타깝게도 북녘 또한 ‘세나라시기’라고 말합니다. 북녘 또한 가야 역사를 빠뜨린 채 ‘세 나라’를 이야기합니다.

 여태까지는 ‘삼국사기’이니 ‘삼국유사’이니 하는 이름에 얽매이며 ‘삼국’이나 ‘세 나라’라는 엉뚱한 이름을 썼다 하여도, 이제부터는 ‘사국’이나 ‘네 나라’라는 이름을 알맞고 올바르게 찾아서 우리 삶과 발자국과 터전을 다룰 수 있는 눈높이로 거듭날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그림책에 깃든 자잘한 티끌을 걷어내어 그지없이 알차고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애틋하게 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3.3.26.쇠.ㅎㄲㅅㄱ)
  

















(네이버에서 '사금일기'를 넣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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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2014-06-30 13:31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소식 전해드려요~~
 
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 - 느낌이 있는 국립공원 속살 탐방기
박경화 지음 / 양철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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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고 느끼는 여행’을 꿈꾸겠다면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9] 박경화, 《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



 세상으로 나와서 스무 달째 살아가고 있는 아이는 이제 밤에 두 번이나 세 번, 때로는 한 번만 칭얼거립니다. 깊은 밤에 두세 번씩 깨어나 아이 기저귀를 갈기란 만만하지 않은 노릇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만, 달리 생각하면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에서 조용히 불을 켜고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한창 갓난아기일 때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어김없이 기저귀갈이를 해야 했고 백일 때까지는 한 시간이 아닌 삼십 분마다 깨어나야 했습니다. 그무렵은 잠을 잔다기보다 졸면서 아기를 본다고 해야 맞았고, 밤 사이에 똥기저귀 빨래를 여러 차례 하는 날이 잦았습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스스로 잘 걷고 달리기까지 하는 만큼, 이제는 아이를 품에 안거나 등에 업고 걷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골목을 휘저을 때에는 어김없이 아이를 안아야 하고, 고단해 하거나 힘들어 하면 그때그때 안아야 합니다. 아무리 잘 걷는다 하더라도 아이 몸으로는 한 시간 넘게 걷기란 몹시 어려운 노릇입니다. 집에서는 쉬잖고 뛰논달지라도 밖에서는 삼십 분을 거닐어도 몹시 힘든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바깥바람을 쏘이며 아이를 걸릴 때면, 아이가 마주하거나 바라보는 동네 모습이 아이 눈에 어떻게 비칠까 퍽 걱정스럽습니다. 어른 눈으로 보자면 고즈넉한 골목동네랄 수 있으나, 조금만 걸어나가면 곧장 시내이고 유흥거리가 나옵니다. 몇 분 걷지 않아도 자동차 우글거리는 큰길이 나오고, 큰길에는 시끄러운 노래 흘러나오고 번쩍이는 불빛 가득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서울이 아닌 여느 도시이든 시골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가 어린 나날부터 익히 보고 길들고 젖어드는 삶자락이란 온통 소비주의 물질문명입니다.


.. 그럼, 곰은 무엇을 먹고 살까? 그 옛날 곰은 육식동물이었다. 그러나 환경에 적응하면서 잡식으로 바뀌었고, 초식으로 변해 가는 단계라고 알려져 있다. 봄에는 부드러운 나뭇잎과 꽃, 나물류를 맛있게 먹는다. 열매가 맺는 여름에는 덜 익은 열매를 먹는데, 달콤한 산딸기와 뽕나무 열매인 오디, 벚나무 열매, 머루, 다래처럼 사람들이 먹는 모든 열매를 좋아한다 … 이 땅에 산양이 산다는 것은 천연기념물 한 종이 살아 있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땅의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다 ..  (16, 43쪽)


 그제 아침 민방위훈련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민방위훈련 통지서는 참 질기게 온다고 느끼면서, 왜 이런 훈련을 받아야 하고 이런 훈련을 시키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를 한동안 곱씹습니다. 누가 무엇을 지키라는 민방위요, 우리가 지킬 만한 아름답거나 빛나는 터전이란 어디일까요. 고향이요 삶터임을 떠나, 내가 깃든 이 도시가, 많은 사람들 복닥이는 이 도시가, 얼마나 지킬 만한 값이 있거나 뜻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끼리도 서로 사랑하기 어려운 이 도시가, 사람 아닌 뭇목숨은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는 이 터전이, 사람이든 뭇목숨이든 개성과 다양성을 건사할 수 없는 이 자리가, 어느 만큼 지킬 값이나 뜻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제 낮 목에 사진기를 걸고 한손으로는 우산을 받고 눈길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빗길이었는데 삼십 분쯤 걷다 보니 눈길로 바뀌었습니다. 한동안은 싸락눈이더니 이내 굵은 눈송이로 바뀌었고, 얼음눈이 우산에 철벅철벅 들러붙어 무겁습니다. 눈과 바람과 얼음길을 걸으면서 온몸이 얼어붙습니다. 눈으로 덮이는 동네를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으며 ‘눈으로 하얗게 덮이는 곳은 도시이든 시골이든 곱고 맑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그러나 도시에 내린 눈은 그때그때 걷어내거나 치우며, 시골에 내린 눈이 아니고는 햇볕에 녹거나 마르기란 어렵습니다. 아주 잠깐 하얗게 덮어 줄 뿐이요, 요사이는 눈이 내리는 동안에도 쌓이지 않도록 바지런히 쓸고 치웁니다.


..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을 제안한 사람은 놀랍게도 일본인이었다. 1933년 일본인 다무라(田村剛)는 금강산을 답사한 뒤 국립공원 지정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 사람들은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까지 하이힐을 신고 간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는 실제로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이나 슬리퍼를 신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산이 낮고 완만해서가 아니다. 향적봉은 1614미터나 되는 높은 산이지만, 곤돌라를 타고 단숨에 봉우리까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  (29, 210쪽)


 국립공원 나들이를 생각하는 이들한테 좋은 길잡이가 될 《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라는 책을 읽는 새벽나절, 시계는 세 시 삼 분을 가리키는데, 우리 윗집에 사는 분이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 무겁게 내며 계단을 딛고 올라갑니다. 윗집 이웃은 무슨 일로 이 깊은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갈까요. 택시를 몰기 때문에 이제야 일이 끝나서? 그러고 보면, 퍽 자주 이 깊은 새벽에 발걸음 소리를 듣습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는 아이가 새벽나절 발걸음 소리에 놀라 깨곤 해서 퍽 애를 먹었습니다. 기찻길 옆 골목집에 살 때에는 새벽 다섯 시부터 울리는 기차소리에도 깨지 않더니.

 “여행이 더 즐거우려면 여행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필요하다(80쪽)”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힘주어 말하는 《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입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떠나는 쓰레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국립공원 둘레 마을’ 사람들 목소리를 빌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 누구나 쓰레기를 손쉽게 만들어 냅니다. 아니, 우리 나라 얼거리는 쓰레기를 끝없이 새로 만들도록 짜여 있습니다. 도시 삶터란 새 물건을 만들어 사고팔면서 일자리를 마련하고 돈을 벌도록 맞추어져 있습니다. 물건 하나를 알뜰히 건사하거나 돌보면서 우리 터전을 맑고 곱게 지키도록 하는 틀로 맞추어 놓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다시쓰기나 되살려쓰기 얼거리를 이루어 놓지 않습니다.

 국립공원을 찾아가든 여느 관광지를 찾아가든, 우리는 우리 삶자리에서 살아가는 모양새대로 찾아가서 지냅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우리 동네를 맑고 곱게 건사하는 매무새를 지키고 있다면, 어느 곳에 간들 그곳 삶자리를 다치게 하거나 흐트려 놓거나 헤살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삶자리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얼개여야 비로소 관광지에서도 관광지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살피고 껴안는 삶얼개를 이을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라는 책에서든 《희망을 여행하라》라는 책에서든 《이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이라는 책에서든,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타령을 제아무리 줄줄줄 늘어놓는다 한들 달라질 낌새가 없습니다. 나아질 구석이 없습니다. 오늘날 뜻있고 생각있다는 진보 지식인마저 1회용품을 버젓이 쓰고 있거든요. 오늘날 뜻있고 생각있다는 보수 우익 인사조차 헌 물건 고쳐쓰기와 재활용품 살리기와 생협 매장 다니기와 텃밭농사 같은 일을 안 하고 있거든요.


.. 여행지에서 여행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지역 경제를 살릴 반가운 손님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쓰레기만 남기고 지역문화를 훼손하는 불청객이라는 것이다 … 최고봉이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산에 올라 보면 유독 정상에만 사람들이 북적댄다. 근처에 있는 너른 공간과 시원한 숲그늘을 마다 하고, 굳이 햇볕이 내리쬐고 강한 바람이 부는 정상에만 몰려 있다. 덕분에 전국에 있는 유명한 산봉우리에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한 채 바위만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다. 사람들이 정상을 향해서만 오르는 바람에 풀과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흙이 쓸려내린 것이다. 그리고 정상을 밟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람들은 정상 표지석을 끌어안고 기념촬영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  (45, 177쪽)


 말이 좋아 ‘여행’이요 ‘탐방’이요 ‘트레킹’입니다. 예부터 써 온 우리 말로 하자면 ‘나들이’이거나 ‘마실’입니다. 나들이나 마실이란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웃 마을로 찾아가는 일”입니다. 국립공원이든 관광지이든 ‘함부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려도 되는’ 곳이 아니라, ‘내 이웃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하든 뭐를 하든 순례를 하든 트레킹을 하든 ‘누군가 살아가는 마을’을 찾아가서 돌아보고 즐기고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에 사람들이 있든 들짐승이나 멧짐승이 있든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과 다름없이 곱고 어여쁘고 알뜰한 마을이나 보금자리나 삶자리’를 찾아가서 마주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우리 살림새를 추스르듯 우리가 찾아가는 곳에서 우리 살림새와 모양새를 번듯하고 야무지고 싱그럽고 따스하고 넉넉하게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서 있는 내 보금자리 동네에서 내 보금자리 동네가 얼마나 곱고 알차고 사랑스러우며 좋은가를 느낄 노릇이요, 내가 찾아가는 이웃사람 보금자리 동네에서는 이웃사람 보금자리 동네가 얼마나 곱고 알차고 사랑스러우며 좋은가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 국립공원은 우리 나라 생태계에서 가장 보전가치가 있는 곳이자 나라에서 특별히 관리할 만큼 소중한 자연자원과 문화유적이 많은 곳이다 ..  (7쪽)


 그 숲에 가는 우리들은 이 숲 또는 이 도시 또는 이 아파트 또는 이 골목동네에서 아름다운 우리들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 섬에 찾아가는 우리들은 이 동네 또는 이 빌라 또는 이 도심지에서 살가운 우리들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를 사랑하듯 내 아이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요, 내 어버이를 아끼듯 내 이웃을 아끼는 한 사람이며, 내 동무를 살피듯 낯선 손님을 살피는 한 사람입니다.

 국립공원이란 나라에서 좀더 마음을 써서 건사하는 자연 터전이라 하는데, 국립공원만 건사해서 되는 나라살림이 아닙니다. 국립공원에 좀더 마음을 써야 한달 뿐이요, 우리 터전 어느 곳이든 마음을 샅샅이 쏟아야 합니다. 국립공원만 깨끗이 지켜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도시이든 시골이든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을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라 할지라도 맛보고 껴안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다스려야 합니다.

 ‘생각하고 느끼는 여행’이 되자면, 무엇보다도 ‘생각하고 느끼는 삶’이어야 합니다. ‘천천히 기다리는 여행’이 되자면, 맨 먼저 ‘천천히 기다리는 삶’을 내 삶으로 곰삭여 놓아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새로운 국립공원을 일구어 내지 못하고 있는 한편, 국립공원 아닌 곳은 손쉽게 허물어뜨리고 있으며, 국립공원마저도 차근차근 잡아먹으며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4343.3.23.불.ㅎㄲㅅㄱ)


 ┌ 《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양철북 펴냄,2010)
 ├ 글ㆍ사진 : 박경화
 └ 책값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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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
제러미 시프먼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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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노래이나, 아름다운 삶은 아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8] 제러미 시프먼,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제가 1980년대에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다달이 한 번쯤 학교에서 밥을 해먹었습니다. 사내아이라 해서 실과 수업을 빠진다든지 덜 해도 되는 법이란 없었습니다. 사내아이이든 계집아이이든 똑같이 실과 수업을 하면서 밥하기와 찌개 끓이기와 바느질하기와 톱질하기 들을 배웠고, 이처럼 배우는 살림일을 몸소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쯤 밥하기를 하니까, 이날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도 됩니다. 따로 학교에서 밥하기를 배우지 않더라도 또래 동무들은 거의 모두 집에서 ‘혼자 밥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계집아이이든 사내아이이든 2∼3학년쯤이면 쌀을 일고 물을 맞추어 솥밥이나 냄비밥을 지을 줄 알았습니다. 웬만큼 집살림을 거드는 아이들은 김치찌개이든 된장찌개이든 제법 끓일 줄 알았습니다. 밥물을 맞출 줄 모른다든지 조리를 쓸 줄 모른다든지 밥불을 놓을 줄 모른다든지 하는 동무는 핀잔을 듣거나 나무람을 듣기 마련이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집살림이 넉넉한 동무는 거의 없었습니다. 동무들은 하나같이 고만고만하게 가난한 집살림이었고, 가난한 집살림에서 동무네 어버이들은 하나같이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고 고된 만큼 동무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많이 거들어야 했습니다. 여자라서 일찌감치 집안일을 배워 거든다거나 남자라서 집안일을 안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 모차르트에게 스승이라고는 오로지 아버지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학교 문전에도 데려가지 않고, 또래와의 우정을 거의 박탈한 채로 키웠다 … 모차르트는 세상을 뜰 때까지 버드, 프레스코발디, 몬테베르디 같은 이름들을 전혀 몰랐을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믿기 어렵지만 그가 바흐나 헨텔의 작품들을 발견한 것도 최전성기를 누리던 1780년대의 일이다 … 마지막 교향곡 세 곡은 놀랍게도 고작 6주 사이에, 그것도 경제적인 궁핍이 극에 달했을 때에 작곡되었다. 모차르트가 그 작품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들이 될 것을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그때 겨우 32살이었고, 그 뒤로 세 해를 더 살았다 ..  (29, 37, 130쪽)


 입시지옥에 매인 중학교 1학년부터는 텔레비전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텔레비전하고 가까이 붙어 지낸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보던 텔레비전 영화 가운데 무술 영화를 떠올리면 예전 무술 영화에서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은 으레 ‘스승이 사는 집으로 찾아가서 여러 해 동안 밥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같은 집안일을 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제자 되는 사람은 여러 해 동안 ‘무술은 하나도 안 가르쳐 주고 집안일만 시키며 부려먹는다’며 골을 부립니다. 스승은 빙그레 웃으면서 ‘넌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집안일을 더 시키’는데, 제자 된 사람은 ‘무술을 하는 솜씨’를 아직 몸에 익히지 않았으나 ‘무술을 할 때에 함께 해야 하는 몸 만들기’는 어느새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재주꾼이 되기’ 앞서 ‘옹글고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몸 만들기’를 ‘집안일하기’로 시켜 주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집안일을 하는 사람치고 뚱뚱하거나 군살 많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몸이 나빠서 붓는다든지 아이를 낳고 몸풀이를 제대로 못해서 뼈가 어긋나며 퉁퉁 부은 아줌마들이 있습니다만, 집안일을 하노라면 그야말로 온몸에서 군살이 붙을 겨를이 없습니다. 내 옷가지만이 아닌 집식구 옷가지를 모조리 손빨래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몸소 한 달쯤 집식구 옷가지를 손빨래를 해 보셔요. 헬스클럽 몇 달 다닐 때보다 한결 억센 팔뚝이 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불을 빨고 바느질을 해 보셔요. 팔굽혀펴기나 턱걸이를 할 때 못지 않게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도록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아기를 업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여 먹을거리를 장만한 다음 밥하기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해 보셔요. 다리통과 등허리가 얼마나 야물딱지게 단단해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오늘날은 집살림을 덜어 준다는 갖가지 기계가 잘 나와 있습니다. 빨래나 청소나 설거지나 밥하기에서 우리 손이 덜 가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손을 덜 써도 되며, 택배라고 하는 제도는 굳이 마실을 나가서 낑낑거리며 들고 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냉장고라고 하는 녀석은 먹을거리가 썩지 않도록 건사해 주는 곳간 노릇을 합니다. 여러 날 먹을거리를 한 번에 장만해 놓아도 됩니다.


.. 그는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어떤 불안감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는 연주든 작곡이든 뭔가 이루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주입시켜 놓았음이 분명하다 … 이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아무리 음악의 천재로 살아왔다지만 그는 또래 아이들처럼 자신의 두 날개를 활짝 펴야 할 10대 후반의 소년이었다 … 많은 신동들이 그러하듯이 모차르트도 어린 시절을 거의 도둑맞고 살았던 것이다 … 1777년에 21살이 된 모차르트는 그때까지 자신이 작곡한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  (56, 79쪽)


 우리 삶자락에서 우리 손길을 타는 자리가 많이 줄었습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 둘레에는 우리 손길을 타는 자리란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눈길을 받고 우리 손길을 타며 우리 마음길이 녹아들 만한 자리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손과 손이 만나는 자리는 잊혀지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자리는 밀려나며, 마음과 마음이 어울리는 자리는 스러집니다. 사람이 깃들 자리란 얼마 없습니다. 사람이 머물 자리란 몇 군데 없습니다. 사람이 쉴 자리란 자꾸자꾸 밀려납니다. 사람이 부리는 기계이지만 사람이 부리는 기계한테 사람이 쫓겨납니다. 서로서로 살을 부비며 아끼고 사랑하며 돕던 삶결을 어린 날부터 곱게 받아들이면서 맑고 싱그러운 한 사람으로 오롯이 서는 일이란 드뭅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믿으며 따숩게 얼크러지는 삶자락을 젊은 날에도 고이 이어가면서 튼튼하고 넉넉한 한 사람으로 당차게 서는 일이란 좀처럼 없습니다. 나란히 손을 맞잡으면서 씩씩하고 슬기롭게 빛나는 삶무늬를 늙은 날에도 어여삐 뿌리내리면서 아름답고 멋스러운 한 사람으로 우뚝 서는 일이란 꿈 같은 노릇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맑은 어린이로 살아가며 풋풋한 젊은이로 꿈을 키우고 슬기로운 늙은이로 삶을 마무리하는 삶고리를 알뜰살뜰 꾸릴 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 모차르트는 어떤 면에서는 과장을 극도로 혐오했다. 더 나아가, 극도로 단순하고 명징한 모차르트 피아노 음악의 짜임새는 연주자에게 숨을 구석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다 … 모차르트는 헨델 이래로 후원자라는 족쇄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첫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함께 해방시켜 그들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게 만든 첫 작곡가로 불려 마땅하다 … 모차르트는 협주곡을 변모시켰다 … 무엇보다도 그는 정복자도 정복당한 자도 없는 유토피아적인 세계, ‘평등 공화국’을 구현해 냈다 … 이후 몇 해에 걸쳐 모차르트가 내놓은 걸작은, 그 수만으로도 경이롭다. 게다가 가르치고 연주하는 의무적 일과, 남편 노릇과 아버지 노릇, 활발한 사교 생활이 기본이고, 작곡은 가욋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작업량은 거의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가 17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의 음악은 그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크게 성격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연주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져서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사기를 꺾었다. 음악의 성격은 음울하고 강력해졌으며 화성적으로는 새로운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 그들(청중)은 슬픔을 맛보려고 콘서트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  (91, 134, 140∼141, 170쪽)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고작 서른다섯 해를 살다가 떠난 모차르트라는 사람이 남긴 노래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짚어 보는 이야기책입니다. ‘노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아주 어린 나이에 가락을 쓰고 악기를 타던 모차르트가 어떠한 사람과 부대끼며 어떠한 삶을 꾸렸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모차르트 삶을 옆지기한테 들려줍니다. 옆지기는 지아비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더니, 모차르트한테 피아노 치기가 재미있었을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모차르트는 노래를 짓고 악기를 타는 데에만 너무 바쁘고 매여서 정작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고 할 줄 모르며 할 겨를이 없지 않느냐고 이야기합니다.

 모차르트는 고급스러운 옷을 사들여 입고, 집안을 온통 고급 물건으로 꾸미는 데에 빠져 있었다는데(이 때문에 죽은 뒤에도 빚이 무척 많이 남았답니다), 정작 스스로 바느질을 하여 옷을 지어 입을 줄을 모릅니다. 알아보지 않아도 뻔할 터인데, 모차르트는 손수 밥을 해서 먹은 적이 없겠지요. 언제나 ‘돈을 주고 일을 부리는’ 일꾼들이 밥을 차려 주고 치워 주고 했겠지요. 노래를 지어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삶을 꾸리던 천재요 신동인 모차르트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숱한 운동선수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운동경기 한 가지를 기계처럼 더 꼼꼼하고 뛰어나게 해내는 데에만 눈길을 맞추기 때문에 운동선수한테는 ‘내 삶’이란 없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운동경기 솜씨를 갈고닦는 데에 바쳐야 합니다. 하루라도 운동을 빠지거나 거르면 ‘다른 선수한테 뒤처지기’ 때문에, 운동경기 아닌 일은 생각하지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아마 연예인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예쁘장하고 멋스레 보일는지 모르는데, 예쁘장함이란 무엇이고 멋스러움이란 무엇일까요. ‘화면발이 좋으’면 예쁘장한 삶일까요. 연속극이나 영화에 ‘뭔가 있어 보이도록’ 나오면 멋스러운 삶일는지요.

 어쩌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서는 공부는 잘하여 시험성적은 좋습니다. 그런데 시험성적 잘 나오는 일이 참말 ‘공부 잘하는’ 일이 될까요? 공부란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하는 일일까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점수는 잘 받을 줄 알지만, 걸레 빨기 하나 못하고 걸레질 하나 할 줄 모른다면, 이 아이한테는 무슨 삶이 있다고 할까요.

 커다랗고 까만 자가용을 굴리는 삶이 아름답거나 훌륭한 삶일까 궁금합니다. 커다랗고 비싸며 서울 강아랫마을에 있는 아파트에서 꾸리는 삶이 좋거나 신나는 삶일까 궁금합니다. ㅅㄱㅇ이라는 대학교 졸업장을 따거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에서 받은 학위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삶이 거룩하거나 알찬 삶일까 궁금합니다.


.. “제가 이제까지 아버지께 눈곱만큼의 애정도 보여준 일이 없었으니 이제야말로 애정을 보여줄 순간이라고 주장하시다니, 어처구니없군요. 이게 진짜 아버지 본모습입니까? 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제 쾌락을 희생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구요? 제가 여기에서 어떤 쾌락을 누린다는 말씀이세요? 진정 제가 쾌락과 재미에 빠져 흥청망청 지낸다고 믿으시나요? … 제가 뭣 때문에? 돈 때문에요? 저는 부자 아내도 결코 원하지 않고요. (아무튼 베버 씨 가정은 결코 부자도 아닙니다) 설령 결혼을 통해 한 재산을 챙길 수 있다 해도 저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 마음은 다른 문제로 꽉 차 있으니까요. 하느님이 제게 재능을 주셨는데 마누라에 매여 이 황금과 같은 세월을 게으르게 낭비하라고요? 저는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참이라고요! ..  (149∼150쪽)


 모차르트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차르트한테는 뜻이 맞는 동무가 없었다고 합니다. 꼭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일이 아니요, 반드시 뜻맞는 또래 동무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차르트한테는 ‘천재’요 ‘신동’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준 대단한 솜씨를 부려 노래를 짓는 데에만 온삶을 바치도록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모로 보았을 때 모차르트라고 하는 분은 서른다섯 짧은 해에 걸쳐 어마어마한 노래를 무척 많이 지었습니다. 서른다섯 해로 삶을 마감했으나 코흘리개일 때부터 노래를 지었으니 얼추 서른 해를 ‘노래꾼 삶’으로 보낸 셈입니다.

 역사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워 할 수 있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만, 모차르트가 코흘리개일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쓰고 하지 않으면서 좋은 동무를 사귀고 좋은 자연을 숨쉬면서 살아갔으면 나중에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코흘리개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서른 해 ‘노래꾼 삶’으로 보낸 모차르트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좋은 동무들과 아름다운 너른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고 부대끼고 어울리다가, ‘서른 살부터 예순 살까지’ 서른 해를 노래꾼 삶으로 보냈다면 어떤 노래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하늘이 모차르트한테 내려준 선물이란 ‘노래짓기’ 하나뿐이었을까요. 모차르트한테 뜻있고 좋은 일거리와 놀잇감이란 오로지 ‘노래짓기’ 하나만이었을까요. 아름다운 노래를 아름다운 삶을 꾸리면서 아름다운 넋으로 일굴 수 있었다면, 모차르트 서른 해 노래꾼 삶이란 어떤 모양새로 뿌리내렸을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천재성이 담긴 노래와 아름다움이 깃든 노래는 우리 삶을 어떻게 보듬거나 어루만져 줄는지를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우리 아이한테 무슨무슨 천재성이 엿보인다 할지라도 우리 아이한테는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살림 꾸리는 매무새를 익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조금 더 힘을 쏟을 수 있다면 스스로 먹을 밥은 스스로 농사지어 먹는 삶을 다문 며칠이라도 함께 꾸리고 싶습니다. (4343.3.21.해.ㅎㄲㅅㄱ)


 ┌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토넷 펴냄,2010)
 ├ 글 : 제러미 시프먼
 ├ 옮긴이 : 임선근
 └ 책값 : 2만 원 (노래 시디 두 장 함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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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바닷마을 다이어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살가운 만화 54] 요시다 아키미, ‘바닷마을 다이어리’ 1ㆍ2



- 책이름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바닷마을 다이어리 2 - 한낮에 뜬 달
- 글ㆍ그림 : 요시다 아키미
- 옮긴이 : 조은하(1권), 이정원(2권)
- 펴낸곳 : 애니북스 (2009.5.13./2009.12.23.)
- 책값 : 8000원씩



 (1) 엄마다움, 아빠다움, 아이다움


 지난 2008년 8월 15일 밤, 한여름이었음에도 한밤에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온도가 뚝 떨어졌습니다. 이튿날 8월 16일 새벽 다섯 시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한여름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더위로 애먹을까 걱정을 했지 날이 추워 오들오들 떨며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몸이 안 좋던 옆지기는 아이를 낳으면서 몸이 더 나빠졌고,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되어도 몸이 나아질 낌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제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꾸려 영등포역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갔습니다. 온 동네가 재개발로 들쑤석거리는 인천에서는 도무지 깃들일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버거워 멀리멀리 시골마을을 알아보려고 경주로 가는 길에 대구에서 한 번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을 나선 날부터 갑작스레 눈이 오고 추위가 닥칩니다. 아이한테 아주 젖을 끊고 밥만 먹이고 있는 지 얼추 보름이 되자 옆지기는 엊그제부터 달거리를 다시 합니다. 사람들은 젖을 뗀 아이가 애를 먹겠다고 근심을 하지만, 처음부터 몸이 아픈 채로 아이를 낳은 옆지기 또한 애를 먹으면서 힘들 줄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겨우 짬을 내어 시골마을을 돌아다녀 보고자 했지만, 다시금 몸이 몹시 나빠진 옆지기와 함께 움직일 수 없기에 어제 아침에 부랴부랴 다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옆지기는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이 들지 못하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는 저녁 아홉 시 무렵 고맙게 일찍 잠들어 주었으나 새벽 네 시 이십 분부터 깨어 도무지 다시 잠들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 칭얼 저리 낑낑 요리 버둥 조리 꿍얼 하면서 뒤척이고 울고 투정을 부립니다. 힘들 때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주면 더없이 좋을 텐데, 새근새근 잠들고 나면 고단함이 조금은 가실 텐데, 아무래도 힘든 사람보고 푹 자라고 하는 말은 입발린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사람은 잠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면서 더 힘든 나날이 팍팍하게 이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눈곱만큼도 슬프지 않다니 당황스럽다. 부모님은 내가 일곱 살 때 이혼했다. 할머니 얘기로는 아버지 빚과 여자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했다. 이혼하고 2년 뒤엔 엄마가 재혼한다며 집을 나가 버렸다. 그날 이후 언니와 나, 내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부모님과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젠 할머니마저도 돌아가셨고, 낡은 집엔 우리 세 자매만 남았다.’ … “작은언니.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누워 있어.” ‘눈물이 안 나와요, 아버지.’ ..  (1권 14∼15, 35쪽)


 다가오는 토요일은 처남이 태어난 날입니다. 옆지기한테는 동생인 처남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옆지기는 저한테 당신 동생 태어난 날 이야기를 하면서 동생 보러 찾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산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그곳에 어찌저찌 찾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있는 모텔에서 자야겠지?” 하고 말을 잇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만만치 않은 살림을 고단하게 꾸린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옆지기 부모님 살림을 돌아본다면 우리와 견줄 수 없이 고단하고 벅찹니다. 그래도 우리 세 식구 지내는 집은 겨울에 춥지 않았고 물을 마음껏 쓰며 코앞에 저잣거리와 생협이 있습니다. 때때로 잊어서 그렇지, 우리 조그마한 살림집은 퍽 좋은 보금자리입니다. 그만큼 달삯이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옆지기 식구들은 물이 안 나오는 컨테이너집에서 어떻게 지내실까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덩그러니 커다란 전원주택에서 무엇을 하면서 하루하루 지내시고 있을까요. 집이 없다고 걱정만 한가득이지는 않을 터이고, 집이 크다고 시름 하나 없다고 할 수 없을 터입니다만, 값싼 집도 비싼 집도 없이 누구한테나 살가운 보금자리가 있을 수 있는 우리 삶터가 되기는 왜 이리 어려운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우리네 살림집이 좋은 보금자리로서가 아니라 돈값으로 얼마짜리 부동산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식구들이 오순도순 지내는 사랑을 꽃피우는 둥지이면서, 이웃과 동무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와 밥 한 그릇 나누고 잠자리 며칠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사랑방이기도 한 살림집은 언제부터 자취를 감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참 그렇지. 스즈가 하면 어때요? 친딸이잖아요.” “그러면 되겠구나. 발인할 때는 인사만 해도 되니까.” “그건 안 됩니다. ” “그래도 스즈가 참 야무진 애라서.” “그래요. 스즈는 영리한 애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건 어른들이 할 일입니다. 이건 부인 되시는 분이 해야 할 몫이에요. 요코 씨. 어른이 해야 할 일을 아이한테 떠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어린애가 아이답지 않은 것만큼 슬픈 게 또 어디 있겠어요.” ..  (1권 50∼51쪽)


 새벽 여섯 시 반, 아이는 드디어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두 시간 남짓 칭얼 낑낑 응애 끅끅 하면서 보냈습니다. 이제 한두 시간쯤 달게 잠이 들었다가는 다시금 벌떡 깨어나 놀겠지요. 아빠는 그때까지 이 일 저 일 부지런히 해야 하고, 이렇게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아이를 부대끼고 아침에 아이한테 밥을 해 먹이고 어제 하루 쌓인 빨래를 어그적어그적 하면서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하다 보면 낮나절에는 그예 온몸 구석구석 쑤시고 결리지 않은 데가 없으면서 방바닥에 자빠질 겝니다. 아니, 나흘째 집 청소를 못했으나 오늘은 집 청소까지 말끔하게 하고 나서 자빠져야겠습니다. 아직 끌르지 못한 여행가방 보따리를 풀고, 다 마른 빨래를 개며, 아픈 옆지기를 토닥이다 보면 어느 결에 낮 두어 시쯤 될 터이고, 이무렵이면 아이는 낮잠을 잘 무렵이라 벌게진 눈으로 또 칭얼대고 낑낑댈 테군요.


..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이네.” ‘토모아키가 한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당연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  (1권 135쪽)


 겨우 잠이 든 두 사람을 머리맡에서 바라봅니다. 아프고 힘든 두 사람이 덜 아프고 덜 힘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으나, 아프면 아픈 대로 살고 힘들면 힘든 대로 지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어떤 마음과 느낌이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형이나 나는 얼마나 찡얼거리거나 낑낑대었을까 궁금합니다. 어머니한테 여쭈어 보면 “그 옛날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 하면서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알까요? 아이돌보기는 오로지 어머니 혼자 하셨는데, 아버지는 찡얼거리거나 낑낑대는 당신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가뜩이나 새벽 일찍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러 달려나가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는 하루하루인 아버지한테는 당신 아이가 당신 삶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내 아버지가 당신 아이를 바라보거나 헤아렸던 느낌을 곱씹으며,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헤아리는지를 돌아봅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짜증을 부리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짜증이 모두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지 않았나 떠올리며 섬찟합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사랑스러운 매무새로 어르고 달래며 안고 놀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랑스러운 매무새란 우리 어버이가 저한테 베푼 세상이 고이 이어진 셈인가 싶어 놀랍습니다.

 제 삶자락은 제 나름대로 꾸리는 삶자락이지만 이 구석 저 구석에는 내 어버이 삶자락이 켜켜이 쌓여 있을 테지요. 제 삶결은 제 깜냥껏 가꾸며 일군다지만 이 모습 저 모습에는 내 어버이와 내 살붙이와 내 이웃한테서 받은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고이 스며 있을 테지요.


.. ‘타다는 우리가 선물한 미끄럼 방지용 고무가 붙은 장갑을 끼고 병원 현관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하면서 “사실은 다리를 자르고 나서 몇 번이고 죽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아사노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도 그래?”라고 묻자, 타다는 “이젠 그런 생각 안 해”라며 웃었다.’ ..  (1권 187쪽)


 저는 누군가한테 아이였으며 누군가한테 어버이이고, 우리 아이 또한 누군가한테 아이이지만 앞으로 누군가한테 어버이가 될 고운 목숨입니다.








 (2) 만화책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야기


 만화책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과 《한낮에 뜬 달》을 읽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큰이름으로 묶이는 만화책으로, 이 두 권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3권 4권으로 죽 이어질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 카마쿠라 작은 바닷마을에서 세 자매와 어린 ‘배다른 동생’이 함께 복닥이는 조그마한 삶자락을 그려낸 만화입니다. 우리로 치면 안면쯤 될까요. 아니면 옥구나 돌산이나 감포쯤 될까요. 작다고 하지만 병원이 있으니 강릉이나 울진이나 목포쯤이라고 해야 할까요. 바다와 함께 숲이 있고 논밭이 있으며 마을 크기처럼 작은 도심지가 있으며 어린이 축구단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가득 채우는 연속극처럼 크고 굵직하며 으리으리한 이야기란 하나 없는 자그마한 마을 자그마한 사람 이야기를 살포시 담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고 《한낮에 뜬 달》입니다. 그런데 크고 굵직하며 으리으리한 이야기이든, 자그맣고 자그마한 이야기이든,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사람과 사람이 복닥이는 이야기입니다.


.. “난 그 집에서 무서운 걸 수도 없이 봤어. 아빠랑 엄마가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 할머니 장례식 날,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화장하는 모습, 그리고 이와사키와 엄마가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 병원에서 깨어나 처음 본 것도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이었어. 내가 한 짓은 결국 아빠의 외박과 정원에 놓인 화분 수만 늘렸지.” ..  (2권 46∼47쪽)


 큰도시에서도 사람 사이에 사랑이 꽃핍니다. 작은마을에서도 사람 사이에 생채기가 생깁니다. 어디에든 믿음이 있고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습니다. 어느 곳에든 아픔이 있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나란히 있습니다. 넉넉한 살림에 걱정없어 보이는 느긋한 사람들이 있고, 쪼들리는 살림에 걱정 많아 보이는 고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넉넉한 살림이라지만 마음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며, 괴로운 살림이라지만 마음은 괴롭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화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하고 《한낮에 뜬 달》에 나오는 세 자매와 어린 동생 넷이 꾸리고 있는 집에서 세 자매는 모두 ‘어른’이지만 어릴 때부터 어린이다움을 잃고 자라 어른이 된 아직 ‘어린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세 자매와 함께 살아가는 배다른 동생은 ‘어린이’이지만 세 자매와 마찬가지로 어린 날부터 어린이다움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생채기를 받았으나 생채기를 받을 무렵 이 생채기가 생채기임을 깨닫기 어려운 나이였다고 할까요. 아니, 너무도 큰 생채기였기 때문에 차마 생채기라고는 여기기 힘들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린이다운 어린 나날을 보내지 못한 네 사람을 낳아서 길렀다고 하는 어버이들 또한 당신들이 어린이였을 무렵에는 당신들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서 저질렀던 잘못과 마찬가지로 당신들 어버이가 당신들한테 생채기를 남겼을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을 나눌 줄 모르는 법이지는 않습니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러운 손길과 품을 느껴 보지 못했다고 내 아이한테까지 사랑스러운 손길과 품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을 낳아 키운(만화 줄거리로 따지고 보면 ‘키우’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버지 하나와 세 어머니 되는 분은 늘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어버이 되는 당신들한테만 즐거운 삶을 찾아서 아이들을 버렸고, 아이들이 어찌저찌 지내는가에는 눈길이든 마음길이든 쏟지 않습니다. 아니, 당신들 마음으로는 생각하고 그리워 했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당신들이 낳았던 아이들이 살갗으로 느끼거나 목소리로 듣거나 눈으로 보거나 곁에서 부대끼도록 해 주는 사랑은 아무것이 없었습니다.


.. ‘유야는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구! 대체 뭘 노력하라는 거야. 너희들한테 그런 말 듣고 있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계속 노력하고 있다구! 나쁜 뜻은 없다고? 그래서? 나쁜 뜻만 없으면 그렇게 막 떠들어도 돼?’ … “쉽게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진짜 짜증 나!” “그렇지? 어쩐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 자기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로 그거야!” ‘유야랑 스즈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소중한 걸 잃어 본 두 사람만이 아는 무언가가, 두 사람이라면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바로 알 수 있는 무언가가.’ ..  (2권 113, 128∼129쪽)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고 우리 어머니를 헤아려 봅니다. 갓 대학교에 들어간 해에는 학교에서만 노느라 집에서 부모님 얼굴을 본 횟수도 적었으나 얼굴을 보았어도 이야기 몇 마디 나누어 본 일이 드뭅니다. 이듬해에는 군대에 갔고 곧바로 대학교를 때려치운 다음 부모님 집을 떠나 혼자서 살았기에 명절에나 얼굴을 뵙고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밤 열 시까지 붙잡히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시달려야 했기에 중고등학생 때에 아버지 어머니하고 어울리던 겨를이란 여섯 해 동안 며칠 안 된다고 할 만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하고 어울리던 나날이라면 국민학생일 때하고 아주 꼬맹이였을 때인데, 이때에 아버지는 인천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도권 국민학교 교사로 일할 무렵이라 하루 내내 어머니하고 어울리던 일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담배와 신문 사 오라는 심부름하고, 형과 제가 다투었을 때(늘 제가 형한테 얻어맞았지만) 몽둥이를 들고 두들겨패던 일 아니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아버지 다리와 등허리 주무르도록 한 일하고.

 어머니하고는 하루 내내 함께 지냈으나 어머니는 말수가 몹시 적었고, 집 안팎에서 부업을 하느라 바빠 거의 언제나 어머니 곁에서 부업을 도왔습니다. 신문배달은 어머니가 집 바깥에서 하던 부업이라 어머니 일을 거들며 저절로 익혔고, 뒷날 제금나서 서울에서 혼자 살 때에 신문사지국으로 들어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바느질을 하든 우산을 꿰매든 옆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일감을 받아 오고 다 마친 일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걸레질하기나 빨래하기나 밥하기를 따로 가르쳐 주신 적은 없지만, 하루 내내 집에서 들여다보고 쳐다보고 곁에 앉아 있으면서 어깨너머로 바라본 대로 제 몸에 차근차근 배어들고 스며들었습니다. 뭐랄까, 늘 바쁜 어머니 곁에서 자잘한 집일을 함께 배우고 거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쉴 겨를이 없던 어머니 손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손을 덥석 잡으며 “어머니 손은 쉬지 않나요?” 하고 여쭈던 일이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의외로 순식간이거든요. 애들은 순식간에 커 버리잖아요.” ‘보호자로서 당연한 거겠지. 그런 건 생각도 안 해 봤어. 나 보호자였구나.’ … “그래도, 야마가타에 있을 때가 훨씬 쓸쓸했어요. 지금은 전혀 쓸쓸하지 않아요. 여학생 기숙사에 막내로 들어온 기분이에요.” ..  (2권 149, 168쪽)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을 보면, 세 자매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 동생(중학생)이 다시 축구부원이 되어 또래 동무와 어울리면서 “아니. 우린 아빠는 같은데 엄마가 달라. 그래서 그동안 따로따로 살았어. 이번 여름에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난 엄마도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언니들이 같이 살자고 했어(157쪽).” 하는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없이 여느 낯빛으로 들려줍니다. 마음앓이를 숱하게 겪은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다움을 잃었으나 그만큼 씩씩하고 다부지며 튼튼한 한 사람으로 여물어 갑니다. 《한낮에 뜬 달》을 보면, 세 자매에서 맏언니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세 자매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아주 오랜만에 불쑥 찾아왔을 때에 함께 할머니 성묘를 하고 나서 기차역에서 배웅을 하며 홀로 ‘내가 엄마를 찾아가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엄마가 다시 카마쿠라를 찾아오는 것도 먼 훗날의 일이겠지 …… 그래, 뭐 이젠 됐어 …… 서로 건강하게 지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다움을 진작 잃고 홀로 씩씩하고 튼튼해야 했던 맏언니는 어느새 곧고 다부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만, 당신 마음을 너무 바짝 죄느라 이제껏 놓치고 있던 너그러움을 조용히 되찾으면서 한 사람이 고운 목숨으로 살아고자 할 때에 함께 건사해야 할 마음밭이란 무엇인가를 살며시 느낍니다.

 고단하고 힘에 겨우며 쓸쓸한 삶을 꾸려야 했던 사람들은 고단함을 느끼며 깊은생각을 기울이고 깊은생각을 돌보며 깊은생각을 간직합니다. 그러나 고단하고 힘에 겨우며 쓸쓸한 사람만 깊은생각을 보듬지 않습니다. 홀가분하고 기쁘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사람도 얼마든지 깊은생각을 보듬을 수 있어요.

 다만, 스스로는 깊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나중이 되어 돌아보면 깊다고 여겼던 생각이 얼마나 얕거나 어설펐는가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아니, 얕고 어설픈 생각이었음을 못 느끼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힘에 겨운 삶이기 때문에 깊은생각을 아예 접어 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고 기쁘며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에 내 사랑과 믿음을 한껏 널리 나누고 싶어서 깊은생각을 다스리는 사람이 있어요.
 







 (3) 좋은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이 아이는 이 여름에 여기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을까.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감당해 왔을 것이다.’ … ‘하지만 난 안 된다는 거잖아. 저 친구가 떠안고 있는 무거운 짐은 내가 들어 줄 수 없나 보다.’ ..  (1권 64, 128∼129쪽)


 같은 깊은생각일지라도 곱고 맑은 깊은생각이 있습니다. 같은 깊은생각이지만 어둡고 케케묵은 깊은생각이 있습니다. 같은 목숨일지라도 곱고 맑은 목숨이 있고, 같은 목숨인데 어둡고 케케묵은 목숨이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내려받고 선물받은 우리 한삶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우리는 한 번 누리고 조용히 떠나 보낼 우리 한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눈물로 보내는 한삶일는지요. 웃음이 넘치는 한삶일는지요. 주름살 가득한 한삶일는지요. 꾸덕살로 지새우는 한삶일는지요. 사랑과 평화로 둘러싸인 한삶일는지요. 미움과 시샘이 흘러넘치는 한삶일는지요. 눈물이라면 나 혼자 흘리는 눈물일는지요 어깨동무하며 흘리는 눈물일는지요. 웃음이라면 나 혼자 키득거리는 웃음일는지요 서로서로 두 손 맞잡으며 활짝 펼치는 웃음일는지요.

 바닷마을 작은 사람들 삶무늬를 수수하게 보여주는 만화책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랑 《한낮에 뜬 달》에서는 어디에든 어떻게든 서려 있는 눈물과 웃음이 어떻게 얽히면서 피어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눈물이 어떠한 눈물꽃으로 피어나고 웃음이 어떤 모습 웃음꽃으로 피어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제아무리 큰 아픔일지라도 눈물꽃이란 아름다운 눈물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제아무리 해맑은 기쁨일지라도 허전하거나 속없는 웃음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감싸안거나 붙잡고 있는 눈물꽃과 웃음꽃이란 어떤 무늬요 어떤 결이요 어떤 모양인가요.


.. ‘어쩐지 말도 안 되는 변명처럼 들렸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어느새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 ‘우리 엄마지만, 그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딸이었어.’ ..  (2권 180, 188쪽)


 아픔을 먹고 자랐기에 한결 씩씩하며 사랑스러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픔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결 어둡고 아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쁨을 먹고 자라면서 한결 따숩고 넉넉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쁨을 먹고 자랐으나 한결 답답하고 멍청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삶이란 모르는 법입니다. 삶이란 모르면서 새롭게 꾸리는 법입니다. 삶이란 누구나 다르면서 다 다른 빛깔로 여물어 가는 법입니다. 작은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대로 제길을 걸으면서 제 빛깔을 찾아갑니다. 누구 뒤를 좇는 법이 없고, 누구 시늉을 내는 법이 없으며, 누구 콧김에 휘둘리는 법이 없습니다. 작니 크니 하는 삶이 아닌, 작니 크니 하는 사람이 아닌, 오롯하며 옹근 한 사람이요 오롯하며 옹근 한 갈래 삶입니다. 좋은 사랑이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엄마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어도 어느새 새롭고 싱그러운 엄마다움이 내 마음속에 움트곤 합니다. 아빠다움을 물려받지 못하고 컸어도 어느 결에 우람하고 산뜻한 아빠다움이 내 마음밭에 자라곤 합니다. 아이다움을 빛내지 못하고 지냈어도 어느 무렵부터 착하고 거룩한 아이다움이 내 마음바탕을 이루곤 합니다. 만화책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며 《한낮에 뜬 달》이며는, 삶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자리를 조촐하게 건드립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3권이며 4권이며, 또는 3권으로 끝나든 10권까지 이어지든, 어떠한 실타래를 솔솔 풀어나갈는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4343.3.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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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출판 - 북페뎀 09
강주헌 외 21명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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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번역문화가 엉터리이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7] 북페뎀 9호, 《번역출판》


 우리 말로 옮겨진 책을 읽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마음속으로 ‘줄거리만 읽으’려고 합니다. 문학책을 읽든 인문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매한가지입니다. 옮겨진 말로 ‘글쓴이 생각’을 읽기보다, 옮겨진 말에 감춰지거나 못 다 실린 느낌과 넋을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한자 지식이 아닌 한문을 처음 배우던 중학교 1학년 때에는 한문 번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부터 영어 동화책과 손쉬운 한문책을 함께 읽으면서 제 깜냥껏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그무렵에는 바깥말 솜씨를 키우려는 마음이었지, ‘번역이 믿을 수 없어’ 이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무언가 알쏭달쏭하거나 잘 알 수 없던 이야기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번역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라면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부대끼거나 살피면서 말로 나타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렴풋한 생각이었지만, 한문책을 읽을 때에는 한문에 적힌 말마디를 한글로 옮겨 놓는 일은 번역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영어책을 읽을 때에는 영어 낱말을 한글로 옮겨 놓으면 번역일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일본책이 아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영어권 책이 대단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옆지기가 바느질에 푹 빠져 헌책방에서 갖가지 바느질 책을 사서 보고 있는데, 어제 찾아간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읽던 옆지기가 갑자기 웃으면서 저를 부르더니 ‘속스’를 좀 보라고 하더군요.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양말’을 ‘속스’라 적어 놓았더군요. 바느질이나 뜨개질 다루는 책은 지난날 일본책을 많이 베꼈고, 통째로 도둑질하기까지 했습니다. ㄱ출판사처럼 이름난 곳에서 펴낸 ‘아동백과사전(또는 과학백과사전)’은 아예 백과사전을 송두리째 도둑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책 도둑질’이란 꽤 예전부터 이루어져 왔는데, 저로서는 헌책방을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2000년대에 헌책방을 다니며 ‘어린이책 자료를 찾던 때’에 처음으로 알아차렸습니다. 헌책방에 있는 좋은 일본책을 사서 보는데 어딘가 참 낯익다 싶었더니, 다름아닌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학교 도서실에서 보던 책들이더군요. 그래, ‘속스’란 무엇인가 하면, 일본사람은 제 나라 말로 이야기를 하기보다 영어 쓰기를 대단히 즐겨 하고 있는데, ‘양말’이라는 말조차 영어로 ‘socks’를 그대로 쓰고 있던 셈이며, 이렇게 ‘속스’로 적힌 일본책을 몰래 도둑질하던 한국 책마을 일꾼은 ‘속스’가 마치 어떤 남다른 옷뜨기인 줄 알고 그대로 적바림해 놓은 셈이었습니다.

 1950년대에 나온 세익스피어 번역책 가운데에는 ‘하-므렛’이라고 적은 책이 있습니다. ‘하-므렛’이 무엇이냐 하면 ‘햄릿’입니다. 일본은 ‘Hamlet’을 소리값대로 말하기 어려워 ‘하-므렛’처럼 말하는데, 1950년대 어느 번역책은 아예 ‘-’ 부호까지 넣으면서 일본책을 베꼈음을 보여준 셈이라 하겠습니다.


.. 진짜 문제는 부실 번역이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한정해 보면 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따위로 된 고전적인 저작들이 부실하게 번역되면, 그건 한 사회의 지적 역량을 갉아먹는 일이 된다. 번역서로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국내에 나와 있는 인문사회 고전들이 얼마나 엉망으로 번역돼 있는지 절감할 것이다(72쪽/고명섭) … 인문서 시장에는 고만고만한 입문서가 거의 포화 상태를 이루고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바로 이를 말한다. 반면 전문서들은 전문서라는 고상한 이유를 들어 대중을 외면한다. 수준의 양극화는 독자들에게서 선택의 다양성을 빼았는다(82쪽/김정민) ..


 지난날 우리 나라에는 갖가지 해적판 책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나라도에도 저작권법이 있고 세계저작권협정을 맺은 나라입니다만, 1999년 12월 31일까지 해적판 책은 그야말로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문화예술 책을 많이 낸다고 하는 ㅇ출판사 또한 1999년 12월 31일까지 ‘해적판 책 재고 떨이’를 하면서 책을 팔아치울 뿐이었고, 옳게 계약을 맺으며 책을 내지 않기 일쑤였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인문책을 내는 다섯손가락에 드는 ㅊ출판사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라밖 책을 제대로 인세 계약을 맺지 않으면서 드는 핑계는 이와 같이 계약을 맺어 책을 내면 출판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소리 하나에, 외화 낭비라는 소리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핑계를 들던 우리 나라 책마을에서는 중국에서 한국책을 몰래 펴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크게 분통을 터뜨리곤 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책을 해적판 책으로 내는 모양새는 1999년까지 이 나라에서 일본책이든 서양책이든 인세를 안 치르고 해적판으로 냈던 모양새하고 똑같은데 말이지요.

 2010년대로 넘어선 오늘날 우리 나라는 나라밖 책을 인세 계약할 때에 계약금으로 몇 억에 이르는 돈을 척척 내곤 합니다. 지난날에는 ‘그런 인세 계약을 하면 출판사 문을 닫아야 한다’며 벌벌 떨던 그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몇 억씩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잘 팔리는 책에만 몇 억씩 척척 갖다 바치는 계약금을 치를 뿐, 우리 인문밭이나 문화예술밭을 넓힐 숱한 책에는 그리 눈길을 두고 있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상업성을 가장 앞에 내놓고 있습니다.


.. 평소에도 워낙 헌책방을 자주 돌아다니기 대문에 나로선 이외의 수확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헌책방이라고 하면 보통은 남이 보다 버린 책이 있는 곳으로 아는데, 의외로 생소한 저자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대학교재로 쓰는 고전들이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미처 우리 나라에서 소개되지 않은 외국책들이라든지, 때로는 외국서점에서도 고가로 팔리는 희귀한 책이 우리 나라의 헌책방에 버젓이 나와 있는 경우도 있다. 헌책방에서 책을, 즉 어떤 기획거리를 고를 때의 장점은 남들이 미처 모르는 책 또는 잊힌 책까지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점은 자료 구입비가 무척이나 싸다는 것이다. 새책으로는 1만 원이 넘는 페이퍼백도 헌책으로는 겨우 2000∼3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의외로 헌책방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는 풍조가 없지 않은 것 같다 … 물론 나야 일본어를 모르니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해서 평소 친분이 있는 한 출판사에 구입을 권유했는데, 의외로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와서 상당히 실망했다. 만약 책을 사라는 요청이 아니라 술이나 밥을 (나한테) 사라는 요청이었다고 해도 출판사에서 그렇게 시큰둥한 답변을 내놓았을까? ..  (122∼123쪽/박중서)


 마땅한 노릇이라 할 텐데, 돈이 있는 출판사는 돈이 있기 때문에 상업성을 좇고, 돈이 적은 출판사는 돈이 적기 때문에 상업성을 노릴 수밖에 없는 얼거리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나라 삶터에 걸맞는 창작책을 펴내는 데에는 돈있는 출판사나 돈없는 출판사나 돈을 들이기 어려운 얼거리가 탄탄히 굳어집니다. 잘 팔리는 책에 몇 억을 들여 계약금을 치르고 척척 펴내면 몇 곱절에 이르는 벌이가 되는 구구단은 할 줄 알지만, 착하게 책을 기획하고 착하게 책을 만들어 착하게 나누려고 하는 마음밭 일구기하고는 자꾸자꾸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나라안에서는 창작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좋은 책 하나를 이루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일구어서는 먹고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출판사는 살림을 꾸리고, 새로운 책은 꾸준하게 쏟아집니다. 창작책보다 번역책에 더 높은 무게를 두고 있다 보니 번역을 할 사람은 아주 많아야 하는데, 번역 일감이 많고 외국말을 다루는 사람(거의 일본말과 영어) 또한 고학력 실업자가 늘면서 제몫을 제대로 받기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 번역을 했다 하여도, 번역한 글이 우리 말과 말법과 말투와 말결에 걸맞는지를 돌아볼 만한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영어 좀 알거나 일본말 좀 아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우리 말과 글을 어느 만큼 깊이 헤아리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번역 수요는 많을 뿐 아니라 넘치고, 번역책은 많을 뿐 아니라 넘쳐나고 있으나, 번역을 옳게 할 만한 사회 밑틀이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번역 공부를 하고 번역 밑일을 배우면서 번역 솜씨를 키울 배움터라든지 제도라든지 책이라든지 알차게 서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인데, 번역책만큼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개인적으론 베스트셀러의 몸집이 좀 줄고 좀더 다양하고 고른 책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김밥이 잘 나간다고 뷔페식당의 90퍼센트를 김밥으로만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좀 골고루 먹고살았으면 좋겠다. 하긴 베스트셀러만 먹기도 빠듯한 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  (132∼133쪽/김선희)


 ‘북페뎀’ 9호로 나온 《번역출판》을 읽습니다. 우리 나라 번역 문화를 놓고 스물한 사람이 스물한 가지 목소리를 펼쳐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를 둘러보고 저기를 돌아보아도 번역책투성이인 우리 나라에서 번역을 놓고 오가는 이야기가 대단히 적기 때문에, 《번역출판》이란 몹시 반가운 책일 뿐 아니라, 너무 늦게 나온 책입니다. 앞으로 번역출판을 놓고는 더 많은 이야기와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가야 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 책문화를 비롯하여 ‘번역출판’뿐 아니라 ‘번역영화’와 ‘번역문화’를 두루 짚거나 다루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본말과 영어에만 얽매인 번역이 아닌, 세계 여러 나라 번역을 골고루 다룰 줄 아는 우리 나라가 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 훌륭한 책과 문화를 우리 말글로 알차고 알뜰히 즐길 수 있는 터전을 이룩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지만, 워낙 우리 나라에는 번역이나 번역출판을 놓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아주 드뭅니다. 이리하여 《번역출판》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가벼운 문제제기’나 ‘번역 실무자 잡담’ 눈높이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지난 2005년에 《번역과 번역가들》(열린책들)이라는 책이 옮겨진 적 있는데, 일본사람 쓰지 유미 님이 엮은 《번역과 번역가들》을 떠올리면 《번역출판》은 거의 아무런 이야기조차 짚어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습니다. 번역이란 무엇이고 번역출판이란 무엇인지, 번역문화는 어떠하고 번역 밑틀은 어떻게 짜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한 《번역출판》입니다. 스물한 사람이 스물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틀은 반갑습니다만, 스물한 가지를 하나로 어우르는 굵직한 벼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북페뎀’이라는 기획잡지를 엮어낼 때에는 뜻있을 뿐 아니라 오래도록 깊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책마을 문화를 다루려고 했을 텐데, 북페뎀 9호인 《번역출판》은 이래저래 아쉬움 한 가득입니다.


..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본인이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자신이 전공하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188쪽/양억관) … 번역가들은 자신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일 독서를 한다. 고전을 읽고 그것을 해석해 주는 관련서적을 읽고 새로운 논평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려고 힘쓰는 것이다. 나 또한 시내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번역에 유익한 책들을 열심히 구입하고 있다(200쪽/이종인) ..


 제가 거쳐 온 길을 돌아보자면, 저는 통역과 번역을 꿈꾸면서 네덜란드말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며 ㅎ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들어가 첫 수업을 받은 날부터 모든 꿈과 빛이 무너졌습니다. 아니, 첫 수업을 받기 앞서 새내기 배움터에 갔을 때부터 꿈이건 빛이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네덜란드말을 놓고 통역과 번역을 할 생각이 없었으며, 이런 일로는 굶어죽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1994년이니 한참 옛날 일이요, 2002년 월드컵을 앞뒤로 했다면 달라졌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축구단 감독을 맡은 히딩크 님은 네덜란드말이 아닌 영어를 썼습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 통역을 붙이려 했다지만 통역자가 너무 어리숙해서 그냥 영어 통역자를 붙이기로 했다더군요. 우리 나라에는 아시아에 딱 하나 있는 네덜란드말 학과가 어엿이 있습니다만, 국가대표 축구 감독 통역자로 네덜란드말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붙이지 못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지는 네덜란드 문학이 적잖이 있으나, 모두들 ‘네덜란드 책을 독일말로 옮긴 판’을 다시 옮기는 책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안네의 일기》마저 네덜란드 학과 ㄱ교수님이 딱 한 번 ‘네덜란드말에서 한국말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만, 이 책은 거의 안 팔린 채 판이 끊겼고, 우리가 읽는 모든 《안네의 일기》는 ‘네덜란드말로 된 책을 독일말이나 영어로 옮긴 책’에서 다시 옮긴 판입니다. 네덜란드 그림쟁이 반 고흐 님이 동생하고 주고받은 편지 또한 모두 네덜란드말로 적혀 있습니다만, 이 또한 우리 나라에 옮겨진 반 고흐 님 편지 책은 ‘영어로 옮겨진 책’에서 옮기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독일말로 옮겨진 책’에서 옮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반 고흐 님 편지를 묶은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이름이나 땅이름을 엉터리로 옮겨 적은 대목을 자주 봅니다. ‘네덜란드 말법과 영어 말법’이 다른데, 옮긴이는 네덜란드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책마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작품을 ‘스웨덴 책을 곧바로 한국말로 옮기는’ 일이란 없습니다. 1982년에 종로서적에서 《말괄량이 삐삐》를 펴낼 때에 꼭 한 번 스웨덴말을 한국말로 옮겼습니다만, 오늘날 모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작품은 ‘스웨덴 책을 독일말로 옮긴 판’에서 한국말로 옮깁니다. 하기는, 아이작 바이셰스 싱어 님 책을 ‘이디쉬말에서 한국말로 옮길 사람’이 우리 나라에 어디 있겠습니까.

 번역책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지만, 정작 번역문화란 찾아볼 길이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번역문화가 없는데 번역책 문화를 말할 수 없고, 번역책 문화를 말할 수 없는데 자그마한 《번역출판》 한 권에서 번역 이야기를 옹글고 깊게 다룰 수 있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다만, 아쉽고 모자라나마 우리네 번역쟁이 삶자락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요, 번역쟁이들이 스스럼없이 펼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땅에서 번역을 꿈꾸는 젊은이한테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는 책입니다. 모든 길을 보여주지는 못하나, 길자락 하나를 살며시 보여주면서 ‘번역문화뿐 아니라 다른 문화도 메마르고 팍팍한 한국’에서 대기업 회사원이 아닌 번역쟁이를 바라는 삶이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가를 보여주는 가운데,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에 재미있고 보람있는 번역쟁이 삶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4343.3.15.달.ㅎㄲㅅㄱ)


 ┌ 《북페뎀 9호 : 번역출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9)
 ├ 글 : 강주헌, 고명섭, 권남희, 김선희, 김정민, 김진준, 박정선, 박중서,
 │      백원근, 안진환, 양억관, 오철우, 이규원, 이재형, 이종인, 임희근,
 │      정창, 조영학, 최경옥, 황보석, 쓰노 가이타로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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