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제야 비로소 이 책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참 오래 걸렸다...) 

 


 이 책 하나 120 ― 백두 살 할머니한테서 읽는 삶
 : 오드리 설킬드,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 책이름 :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 글 : 오드리 설킬드
- 옮긴이 : 허진
- 펴낸곳 : 마티 (2006.5.25.)
- 책값 : 2만 원



 (1) 주부습진에 걸리며 읽는 삶


 아기는 엎드려 자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아기는 한참 자다가 슬슬 몸을 돌리며 엄마아빠하고는 거꾸로 엎드려 있습니다. 자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합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아기를 눕히지 않으면 언제나 이 방 끝 저 방 끝까지 굴러가 있습니다. 저는 떠오르지 않으나, 아마 저도 우리 아기하고 똑같이 어렸을 때에 이렇게 데굴데굴 구르며 잠을 잤으리라 봅니다.

 지난주부터 제 두 손을 제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엄지와 검지 사이 접히는 자리가 쩍쩍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쥘 때마다 따끔하고 물잔이나 병을 손아귀로 쥐기 힘듭니다. 새끼손가락이 다칠 때에도 무슨 물건을 쥐기 어려웠는데, 이 자리가 갈라져도 참 힘듭니다. 그러나 집일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픔을 견디면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엊그제 알아보니 제 손가락 사이사이 갈라지는 일은 주부습진입니다.

 주부습진이라니. 주부습진인가. 주부습진이구나. 무언가 다른 데가 아파서 이러나 하고 걱정했는데, 주부습진이라는 말을 들으며 한숨을 놓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집일은 조금도 줄 턱이 없는데, 이제부터 주부습진이면 어찌 견디면서 살아가나 근심입니다.

 하기는, 날마다 두 시간 남짓 아기 옷가지 빨래를 하는 삶을 열아홉 달째 꾸리고 있으니 주부습진에 안 걸릴 수 있겠습니까. 안 걸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어떠했을까요. 우리 어머니는 주부습진에 안 걸렸을까요. 우리 어머니도 틀림없이 주부습진에 걸렸겠지요. 아니, 우리 어머니는 저보다 훨씬 오래 물을 만지며 더 많은 집일을 했으니 저보다 더 어렸을 때에 주부습진에 걸렸겠지요. 온몸 구석구석 안 쑤신 데가 없었을 테며, 손이며 발이며 온통 주부습진으로 쩍쩍 갈라졌겠지요.

 꾸덕살투성이에 핏기 없이 누리끼리하던 어머니 손을 떠올려 봅니다. 빨래기계를 쓸 수 있던 날부터는 손빨래가 줄었다지만, 오로지 맨손으로 여름이며 겨울이며 이불과 옷가지를 주물러댄 나날이 어머니 손에 오롯이 배어 있었습니다.

 이 꾸덕살투성이에 핏기 없이 누리끼리하던 어머니 손이 어떠한 손이었던가는, 저 스스로 우리 어머니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삶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딱히 빨래기계를 안 쓰려는 마음은 없었으나, 굳이 내 옷가지를 빨래기계를 써 가며 빨아야 할 까닭을 느끼지 못해서, 스물한 살에 혼자 집을 나와서 살아갈 때부터 손빨래를 했습니다. 스물예닐곱 살까지는 겨울에도 찬물로 손빨래를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꾸리는 살림살이에 빨래는 그리 안 많아, 주부습진이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산 뒤에도 두 사람 몫 빨래는 얼마든지 손쉽게 해낼 수 있는 노릇이었으니, 이때에도 주부습진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빨랫거리를 쉴새없이 쏟아내는 아기를 낳아 키우며 비로소 손가락이며 손바닥이며 ‘달라진다’고 느꼈습니다. 아이키우기는 빨래만이 아니니까요. 오줌을 싸거나 똥을 지리면 그때그때 치우고 씻기도 닦습니다. 아기 먹을 죽을 끓이고 먹이고 입 닦고 하면서 하루 내내 잠잘 때를 빼놓고는 손이 마를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키우기를 온통 어머니한테만, 그러니까 여자한테만 맡기고 살고 있으니, 남자들이 주부습진에 걸려서 아파하고 힘겨워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이 나라 글쓰고 사진찍고 그림그리는 사람은 으레 남자요, 예술이나 문화 한다는 여자들 또한 여느 남자와 매한가지로 집일은 돌보지 않거나 집일은 남한테 맡기며 예술하고 문화에만 모든 힘과 품을 바치고 있습니다. 이들한테서도 주부습진 때문에 ‘창작하며 힘들어요’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오늘날 지식인 지성인 문화인 예술인 과학인 체육인 연예인 …… 들은 주부습진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지식인 지성인 문화인 …… 들이 주부습진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거나 노래로 부르거나 춤으로 추거나 영화로 찍는 일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주부습진뿐이겠습니까? 빨래하기를 시로 쓰고 소설로 쓰며 영화로 찍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아이키우기를 동화로 쓰는 사람은 더러 있으나, 동시로 쓰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아기 먹을 죽을 끓인다거나 아기한테 죽을 먹인다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거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지요? 기껏(?) 나온다는 창작품은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입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를 아름답게 그리는 모든 지식인 지성인 문화인 …… 들은 이 ‘아름다운 모습’ 뒤에 가려진 그늘자리를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습니다. 삶으로 받아들일 틈이 없으니까요. 삶으로 받아들이려고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니까요.

 창작을 할 때에 ‘집일 이야기’를 반드시 그려내거나 담아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네 창작밭이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네 창작꾼들 삶과 눈길이 너무 한쪽에만 맞추어져 있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밥을 안 먹고는 못 살고 물을 안 마시고는 못 살며 바람을 들이쉬고 내뱉지 않고는 못 사는데, 사람이라는 목숨이 있을 수 있는 밑바탕을 헤아리면서 그려내거나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키운 삶과 손길을 못 보고, 또 내가 키우는 삶과 손길을 못 봅니다.

 이야기란 바로 우리 삶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곧바로 이야기입니다. 머리로 지어낼 수도 있으나, 굳이 머리로 지어내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보고 느끼고 담아내어 펼치면 되는 이야기입니다.

 멀리 프랑스로 날아가야 배울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이 아닙니다. 멀리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나 폴란드로 날아가야 배울 수 있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터전에서도 우리 동네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얼마든지 ‘우주를 만나’거나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고맙게 얻으면서 누리는 목숨인가를 느낄 수 있으면, 늘 즐겁고 신나게 일하며 놀 수 있습니다.


 (2)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읽기


 1902년에 태어난 독일사람 레니 리펜슈탈은 2003년에 숨을 거둡니다. 백 살에다가 두 살을 더한 삶을 꾸린 이이는 처음에는 춤꾼이 되고자 했으나 다리를 다쳐 춤꾼이 되는 꿈을 접습니다. 그러다가 영화배우라는 새로운 길을 걸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감독이라는 또다른 길을 찾습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자리를 바꾸는 일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영화감독으로 걷던 길은 독일 정치권력을 붙잡은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 소용돌이를 거치며 송두리째 가로막힙니다. 유럽을 불태운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당신이 찍은 영화 필름이며 집이며 사회활동이며 모조리 잃거나 빼앗깁니다. 전쟁통에 여러모로 아끼며 돌봐 주던 사람들이 나치 부역자라는 이름에 얽히지 않겠다며 등을 돌리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 빚과 소송에 시달리면서도 가느다란 삶줄기를 놓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하나만큼 다를 뿐이라 하는데, 날마다 죽고픈 마음이었을 텐데 갑갑하고 슬퍼서라도 죽을 수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한 사람 마음속에는 뜨거움이 늘 솟구치고 있었으니까요.

 영화 촬영기를 붙잡을 수 없는 몸으로 사진기를 쥐어든 레니 리펜슈탈은 ‘촬영기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사진기로 풀어내는 응어리’로 이어갑니다. 그런데 사진기를 쥔 레니 리펜슈탈한테는 지난날과 똑같은 ‘짓궂은 뭇칼질로 범벅된 글 공격’이 끊이지 않습니다. 밑바닥에서도 짓밟히는 레니 리펜슈탈 님한테는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을 터이나, 이러한 ‘죽음보다 못한 삶’에서도 삶자락을 붙잡습니다. 이리하여, “90대가 된 지금(1990년대)도 레니는 다이빙을 즐긴다. 레니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최고령 다이버일 것이다. 무언가에 매혹되는 능력과 더 나은 사진을 향한 노력은 전혀 줄어들 줄을 몰랐다 … 그 엄청난 열정과 추진력, 길고 날씬한 다리를 보면 (아흔을 넘긴) 레니는 아직도 소녀 같다. 레니는 처음 다이빙을 한 이후로 수년간 해저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며 슬퍼했다. 또다시 사라져 가는 존재를 기록할 운명이 주어진 듯했다. 그래서 레니는 열렬한 환경보후주의자이자 자크 쿠스토의 지지자이며 그린피스의 회원이 되었다(530∼531쪽).”고 합니다.

 우리 이웃동네에 여든일곱 나이로 수채그림을 그리는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틈틈이 할머님 댁을 찾아뵈며 인사를 올리고 말씀을 귀담아듣곤 합니다. 할머님은 당신 딸아들한테 보살핌을 받으며 다른 걱정 없이 마지막 삶을 이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할머님으로서는 ‘당신이 손을 놀리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도움 손길을 받을 까닭이 없다면서, 여든일곱 나이로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한테 그림을 가르쳐 주면서, 이 가르침삯으로 살림을 꾸립니다.

 예술쟁이로 한삶을 마감한 레니 리펜슈탈 님과 이웃동네 그림할머님을 나란히 견줄 수는 없습니다. 서로 사뭇 다른 길을 걸었고, 서로 다른 넋으로 예술(영화나 사진하고 그림)을 붙잡기도 했지만, 한 분은 예술길에 어린 날부터 젊음과 늙음을 모두 바쳤다면 다른 한 분은 어머니로서 살림살이 꾸리기를 예순 넘어까지 한 끝에 비로소 느즈막하게 당신 예술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분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꿋꿋하게 당신들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고 지는 이름이 아닌, 당신들 뜻과 길을 애틋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만,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눈길로 돌아본다면, 레니 리펜슈탈 님한테는 당신이 세상살이와 세상흐름을 옳고 바르고 싱그럽고 곱게 보여주거나 이끌 만한 길동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나누거나 쏟거나 바칠 만한 짝꿍은 있었으나, 이 짝꿍들 가운데 레니 리펜슈탈이 한창 뜨거운 젊음을 불사를 때에 슬기롭고 눈밝도록 거든 사람은 없었구나 싶습니다. 따끔하게든 부드럽게든, 히틀러가 움켜쥐던 그무렵 독일 삶터를 바르게 읽고 바르게 도와줄 벗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도와주지 않고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다음 잽싸게 얼굴과 몸짓을 바꾸면서 레니 리펜슈탈한테 손가락질을 하면서 새롭게 살아남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둘레에서 함께 영화를 만들건 일을 하건 했던 사람들이 어떠했는가를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을 읽으며 헤아리면, 다들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 얼굴과 이름에 기댈 뿐, 레니 리펜슈탈 마음속 깊이 파고들면서 우리 삶터를 튼튼하고 씩씩하게 일구는 길로는 접어들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레니 리펜슈탈도 나이 예순을 넘긴 다음 만나 서른 해 넘게 함께 살아간 길동무가 있었기에, 늘그막에는 당신 젊은날 매무새에서 한껏 거듭나며 새로워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끊이지 않는 뭇칼질에도 견디어 내는 힘이나, 끝없는 손가락질을 살며시 흘려보내면서 빙긋 웃을 수 있는 느긋함을 찾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머나먼 나라 사람이요,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기에, 참말로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분이 늘그막에는 느긋하며 한결 즐겁게 마지막 삶을 꾸렸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650쪽이 넘는 두툼한 책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꽃이 아닌 우등불 같은 뜨거움을 늘 가슴속에 담으면서 활활 태운 레니 리펜슈탈이었다고 느낍니다. 이 뜨거움이 있기에 히틀러 나치당 정권에서는 ‘사회와 정치를 읽지 못한 바보’였으면서도 영화예술 새길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을 쓴 오드리 설킬드 님은, 두툼한 책 마무리를 지으며, “외국의 뛰어난 정치가들조차 징후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을 때, 레니 리펜슈탈만이 미래를 예견했어야 하는 걸까(577쪽)?” 하고 묻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님이 세상을 못 읽고 바보짓을 했다고 나무랄 수 있겠으나, 레니 리펜슈탈한테만 바보짓을 했다고 나무랄 수 없는 법입니다. 어쩌면 여느 세상사람들은 레니 리펜슈탈이 스스로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조용히 뉘우치면서 부끄러움을 씻어내는 새길을 걷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저 영화예술 하나에만 온힘을 바친 레니 리펜슈탈이었기에, 당신이 일군 창작은 창작 그대로 바라보면서 받아들이는 한편, 이러한 창작은 훌륭하지만 이러한 창작 뒤켠에는 또다른 삶이 있었음을 이제라도 깨달으시오 하고 일러 줄 수 있는 어르신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돌이켜보면, 이처럼 넓고 푸근하게 껴안으면서 부드러이 일깨워 주는 어르신은 우리 사회에도 몇 사람 없습니다. 처음부터 착하기만 하거나 잘나기만 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우리 터전이 아니라, 처음에는 얄궂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하며 미웁기도 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조금씩 깨닫고 배우면서 우리 터전을 일구어 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넌 잘못했어. 넌 나빠. 그러니까 넌 죽어야 해.’ 하는 말마디로 사람 가슴에 못을 박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 이 일은 이렇게 되었구나. 다음 일은 다르게 해 보자.’ 하면서 부둥켜안으며 기다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재주가 있고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레니 리펜슈탈 님을 감싼다거나, 마음씨는 짓궂고 눈썰미는 형편없으며 친일부역을 했지만 문학은 아름답다며 누군가를 우러르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농사짓는 사람 마음이 되자는 소리입니다. 농약과 비료로 찌든 논밭일 때에, 농사꾼이 이 논밭을 그냥 내버려 둘까요? 그예 내팽개칠까요? 참 농사꾼은 농약과 비료로 찌든 논밭을 기름진 논밭으로 돌려놓으려고 여러 해에 걸쳐 땀을 흘리고 흙을 갈고 풀을 심고 갈아엎기를 되풀이합니다. 짧으면 대여섯 해, 길면 열 몇 해에 걸쳐 바보밭이나 묵정밭을 기름지며 좋은 밭이 되도록 힘씁니다. 우리는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따스한 사랑과 넉넉한 믿음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리 가르고 저리 가르는 금긋기가 아닌, 모두 아름다우며 고운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일깨우며 우리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살아야지 싶습니다.

 왜 초등 여섯 해, 중고등 여섯 해, 모두 열두 해에 걸쳐 어린이와 푸름이를 가르치겠습니까. 대학교에 보내려고 가르치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한 목숨이 올바르고 싱그러우며 아름다운 한 사람이 되도록 하려고 차근차근 섬돌을 디디듯 가르치고 일깨웁니다. 이 열두 해 동안 한 아이는 엉뚱한 길로 빠지거나 샛길로 접어들기도 할 텐데, 이렇게 흔들리거나 떠돌 때에 우리 어른들은 지긋이 바라보며 포근히 감싸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되 손놓고 기다리지 말고, 손을 맞잡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지켜보며 팔짱낀 채 지켜보지 말며, 어깨동무하며 지켜보아야 합니다.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이라는 책에서 다루는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한 사람 삶이란, 이이를 헐뜯는다든지 추켜세운다든지 깎아내린다든지 섬긴다든지 하자는 삶이 아닙니다. 이이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잘한 일은 잘한 대로 받아들이고 잘못한 일은 잘못한 일대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우리가 저마다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 삶은 어떤 모양 어떤 몸짓인가를 깨닫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어떠한 뜨거움이 어떠한 크기로 어느 때에 있는지를 돌아보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 삶을 우리들부터 있는 그대로 껴안으면서 사랑하자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지나온 발자취뿐 아니라 바로 오늘과 앞으로 다가올 나날을 바라보는 눈썰미가 흐트러지거나 흐리멍덩하지 않도록 다스리며 다독이자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발자국을 찬찬히 짚으며 내 발자국을 찬찬히 되짚는다고 하겠습니다. 한 사람 춤사위를 가만히 바라보며 내 몸짓을 가만히 헤아린다고 하겠습니다. 한 사람 땀방울을 오롯이 살피며 내 땀방울은 어떠한가를 오롯이 살핀다고 하겠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간기를 살피니, 이 책은 1996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 나라에는 2006년에 옮겨졌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님은 2003년에 죽었습니다. 당신이 아흔다섯 살일 때에 나온 책인데, 레니 리펜슈탈 할머님은 당신 삶을 낱낱이 파헤치고 되짚으면서 다룬 이 책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들여다보고 나서, 당신 마지막 일곱 해는 어떤 매무새와 넋으로 일구었는지 궁금합니다. 한 사람을 다루는 평전이라고 한다면, 이 한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써서 함께 읽고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구나 싶습니다.

 스콧 니어링이 백 살을 맞이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 이웃동네 사람들은 스콧 니어링 난날을 기리면서 ‘당신이 살아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는데, 저는 스콧 니어링도 그렇고 레니 리펜슈탈도 그렇고 우리 이웃동네 그림할머님도 그러한데, 모두들 오래오래 살아가면서 숱한 이야기를 보여주어서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당신들 모두가 고마운 이슬떨이요 스승이요 길동무입니다.


 (3) 길디긴 이야기 꾹꾹 눌러담기


 2006년에 읽은 책을 지난해에 다시 한 번 읽고 다섯 해 만에 느낌글을 적바림합니다. 2006년 무렵, 이 책을 펴낸 ‘마티’ 출판사에서 다른 책을 내놓았는데 오탈자가 다섯 군데 나오는 바람에 애써 찍은 책을 모조리 거두어들이고 다시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느낌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을 읽으며 오탈자를 스물다섯 군데 찾았는데, 자그마치 650쪽이 넘는 책을 또다시 거두어들여 새로 찍는다면, 1인 출판을 하는 사장님이 알거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650쪽짜리 책에 오탈자 스물다섯 군데라면 퍽 적게 나온 셈입니다.

 드디어 이 책을 놓고 느낌글을 쓰는구나 하고 지난 다섯 해를 돌아봅니다. 다섯 해 앞서 이 책을 놓고 느낌글을 썼다면 아무래도 ‘다섯 해만큼 덜 배우고 덜 깨닫고 덜 생각한’ 채로 느낌글을 썼으리라 봅니다. 다섯 해가 지난 오늘이라 해서 더 배우고 더 깨닫고 더 생각하며 느낌글을 쓴다고 내세우기 힘들지만, 다섯 해를 곰삭일 수 있는 세월이 고맙습니다. 아마, 앞으로 다섯 해를 더 곰삭인 다음 이 책을 새로 돌아본다면, 그만큼 저 스스로 ‘오늘은 읽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그때에 읽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 맞이할 다섯 해를 생각하면서,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에서 제 가슴으로 살며시 파고든 대목을 하나하나 눌러담아 봅니다. 눌러담고 또 눌러담아도 많디많은 이야기가 깃든 책입니다. 이 책을 마주하고 싶은 분이라면, 다른 책도 마찬가지인데, 며칠 만에 다 읽으려 하든지 한두 달 만에 끝내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천천히 새기고 돌아보면서 1900년대 첫무렵부터 1900년대 끝무렵까지 우리 세상 이야기를 곰곰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은 20세기를 통째로 살아낸 한 사람 발자취이자 20세기 인류문화 발자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43.1.28.나무.ㅎㄲㅅㄱ)


[18∼20, 118, 129쪽] 여기서 리펜슈탈은 중요한 것을 배웠다. 당대 최고의 장비와 최고 실력을 갖춘 기사들이 있다 해도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리펜슈탈은 적절한 사람을 적절한 곳에 배치함으로서 각 촬영기사들이 재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 레니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이 직접 그런 영화를 위한 발라드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더 강해졌다. 무용을 할 때처럼 말이다 … 레니는 마을 여관에 방을 잡고서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머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 이런 계획을 털어놓자 여관 주인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 하지만 레니는 겁먹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 레니는 하루 종일 거리나 산허리에 띄엄띄엄 모여 있는 집들로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했고, 특히 여자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주가 지나자 차가운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고, 레니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돌려가며 보여주자 곧 사람들은 웃으며 사진을 보려고 애썼다.

[32∼35쪽] 리펜슈탈은 그동안 스포츠 고위 관리들 모두와 한 사람씩 모두 돌아가며 싸운 것만 같았다. 어쨌거나 그 때문에 레니는 높이뛰기 경기장에는 구멍이 두 개, 멀리뛰기, 장대높이뛰기, 삼단뛰기 경기장과 100미터 트랙 결승선 끝에는 각 하나씩의 구덩이를 확보했더 … 레니 자신은 운동선수에게든 영화 관객에게든 운동과 영화의 관계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굳게 믿었다. ‘아름다운 모든 것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끌림과 ‘구성에 대한 관심’이 바로 레니의 동력이었다. 물론 리펜슈탈은 개인의 의지로 육체를 완전히 장악한다는 개념도 좋아했지만, 이와 같은 경쟁의 중심에 있는 우정도 좋아했다 … 리펜슈탈은 또 “나는 매우 현실적인 것, 삶을 그대로 잘라낸 부분, 평균적이고 일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 특이한 것, 특별한 것만이 나를 흥분시킨다. 나는 아름다운 것, 강한 것, 건강한 것, 즉 살아 있는 것에 매료된다. 나는 조화를 추구한다. 조화가 이루어지면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고, 적대적인 비평가들은 그녀를 맹렬히 비난했다. 마음만 먹으면 리펜슈탈의 발언에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섬뜩한 울림이나 초월적인 질서에 대한 갈망을 읽어내기란 매우 쉽다. 하지만 제3제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와 같은 의혹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가 삶을 양식화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재판이 연달아 열렸으나 레니는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어이 그녀의 작품 활동을 막았다. 레니는 결코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레니의 다큐멘터리를 부분적으로 인용했지만, 그녀의 영화가 공개적으로 상영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무삭제로 방송된 적은 없었다. 영화사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심지어 여엉의 업적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리펜슈탈은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 리펜슈탈은 거의 전 세계적인 공모에 의해 역사의 각주로 쫓겨났다. 프로파간다와 예술을 구분할 방법이나 구분하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그것은 공평한 일이었을까?

[134∼135, 146, 286∼287, 349∼350쪽] 몽블랑의 방랑자 야보르스키는 리펜슈탈과 함께 영화를 만들던 힘든 나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 단 한 쇼트를 찍기 위해서 장비를 전부 등에 짊어지고 8시간 동안 산을 오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케이블카도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장비를 모두 등에 지고 다녔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려면 ‘이상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사랑해야 하지요.” … 리펜슈탈은 할리우드를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리펜슈탈은 스튜디어가 원하는 이름, 그것도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하는 이름이었다. 그토록 고된 환경에서 영화를 찍으려는, 찍을 능력이 있는 여배우가 어디 있겠는가? 거절하면 할수록 영화사는 점점 더 높은 출연료를 제시했다. 리펜슈탈이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결국 레니는 영화사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지만, 돈 때문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레니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소중한 동료들과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이 될 모험을 할 기회였기 때문이다(1932년 무렵) … 리펜슈탈은 영화에서 전체적인 조화를 끌어내고 단일한 목소리를 내려면 반드시 한 사람이 편집을 해야 한다며,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편집한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 리펜슈탈은 직접 꼼꼼하게 정찰하여 최상의 카메라 위치를 찾아냈고, 또한 정확히 어떤 앵글을 원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으며, 심지어는 어떤 렌즈를 사용할지까지 직접 결정했다. (1936년 올림픽에서) 각기 다른 경기에 차별을 두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추구해야 했다 … 리펜슈탈은 각기 다른 경기를 모두 다르게 다루면서 각 경기에 알맞은 속도와 스타일을 적용했고, 능숙한 편집 솜씨로 이런 각 경기를 근사하게 하나로 엮어 전반적인 리듬감을 완성했다.

[149∼150, 452, 458∼459쪽] 레니는 〈푸른 빛〉 작업에 몰두하느라 정치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제외한다면, 독일 경제가 가라앉고 있으며 실업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니가 별 걱정을 하지 않는 사이, 아버지는 사업 규모를 줄이고 전 직원의 60퍼센트를 해고한 후 어머니와 함께 자그마한 아파트에 세를 얻어 이사해야 했다 … 레니가 전쟁에 활발하게 참여한 기간은 채 3주도 안 됐지만, 이 경험은 몇 십 년 동안이나 레니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 레니는 전쟁 기간 내내 〈저지대〉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통해서 동료 촬영기사들과 조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레니가 야보르스키에게 말했다. “최대한 몸을 사려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요. 살아남는 데만 신경 쓰라고요.” 물론 레니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151∼153, 233, 236, 277쪽] 레니는 히틀러의 주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히틀러라는 존재 자체와 그가 청중을 사로잡는 방법에 매료되었다 … 레니는 강한 인상을 받으면 누구든 어느 때든 그 사람을 직접 만나야 직성이 풀렸다 … 레니는 이렇게 직접 부딪히는 방법을 통해 스스로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나간다고 믿었다 … 민주주의는 죽었다. 리펜슈탈은 베르니나와 베른 알프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가끔만 독일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레니는 5월 10일 베를린 대학 맞은편 보리수 거리에서 ‘반독일적’인 사상을 담았다고 판단되는 저술은 모두 불태웠던 분서 사건도, 최초의 유대인 추방 사건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 리펜슈탈은 수많은 작가와 음악가, 화가뿐 아니라 연극과 영화계의 여러 예술가들이 독일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질렸다 … 괴벨스의 일기에 따르면 두 사람의 협력 관계가 멀어진 것은 레니의 주장보다 훨씬 뒤였다. 또한 괴벨스는 레니 리펜슈탈이 스위스 알프스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말하는 시기에 ‘똑똑한 여자’ 레니 리펜슈탈과 몇 번이나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분서 사건이 있은 지 겨우 1주일 후인 5월 17일에 괴벨스는 리펜슈탈을 만나 영화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고 있다 … 히틀러가 히틀러유겐트 대원들에게 연설을 하는 부분에서 리펜슈탈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찍었다. 연단 주변에 설치해 둔 원형 트랙을 따라 히틀러의 주변을 ㅊ너천히 돌면서 밝은 조명 아래에 선 이 민중 선동가를 낮은 앵글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260, 263, 274∼275, 276쪽] 히틀러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국민계몽선전부는 계약을 최종 호가인해 주지 않았고, 정부 영화 부서에서 일하는 그 누구도 리펜슈탈에게 촬영기사나 필름을 제공할 권한이 없었다. 리펜슈탈이 공식적인 협조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했으니 가장 쉬운 방법은 패배를 자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리펜슈탈의 타고난 집요함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고, 리펜슈탈이 히틀러에게 느끼는 의무감에도 맞지 않았다 … 리펜슈탈의 회고에 따르면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거물들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매우 만족한 듯했지만, 리펜슈탈 자신이 보기에는 제대로 된 플롯도 대본도 없는 미완성작에 지나지 않았다. 리펜슈탈은 “이미지를 조합해서 시각적인 리듬과 다양함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바로 이후의 다큐멘터리에서 그토록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 낸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괜찮은 연습이었던 셈이었다 … 전당대회가 끝난 후에 발행된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책을 보면, 전당대회 준비가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준비와 맞물려서 진행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사진이 실려 있다. 리펜슈탈은 전당대회는 그녀가 참가하든 참가하지 않았든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자신은 이 장대한 행사와 그 준비과정을 단순히 기록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사진과 설명은 그녀의 주장과 달리 리펜슈탈이 실제 전당대회 연출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거로 종종 제시되었다 … 어느 쪽이 진실이든 리펜슈탈은 자신이 역사적인 행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며 기록 대상이 무슨 행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1933년 전당대회를 기록한 〈신념의 승리〉,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의지의 승리〉, 독일군에 대한 좀더 짧은 다큐멘터리 〈자유의 날〉을 만들기 전에도 전당대회를 기록한 뉴스 영화는 존재했다. 리펜슈탈의 영화는 이렇게 예술적으로 연출된 나치당 전당대회에 바쳐진, 혹은 정말로 마침내 집권한 히틀러에게 바쳐진 ‘장편’이었을 뿐이다.

[309, 312, 314∼317쪽] 리펜슈탈의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바로 환상적인 분위기다. 초창기에는 그녀의 연기에서 이런 요소를 엿볼 수 있으며, 나중에 연출을 하게 되면서 특징은 더욱 뚜렷해졌다. 리펜슈탈은 일상적인 관심사나 평범한 메커니즘에 안주하지 않고 양식화된 세상을 만들어 보여준다 … 그녀는 결코 프로파간다를 의도하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녀의 의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 히틀러는 전당대회 다큐멘터리를 왜 하필이면 리펜슈탈에게 맡기겠다고 그토록 고집했을까? … 그녀의 역할을 평가할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역사적 정황을 접어두어야 하지만, 레니 리펜슈탈이 제6회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거절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 것인가? … 리펜슈탈은 그 걸림돌로 인해 자신이 영영 영화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그녀는 별 가망이 없어 보이는 조각 자료들과 그토록 진부한 아이콘을 가지고 걸작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 전후 비평가들은 리펜슈탈이 이 영화로 사람들을 현혹했다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에 리펜슈탈은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독일인의 90퍼센트가 히틀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응수했다. 이 영화에서 나치 정당의 교조는 별로 드러나지 않으며 나치의 악질적인 인종차별적 교조나 정치적 박해를 암시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당대회 자체가 그랬던 것이지 리펜슈탈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리펜슈탈은 최면과 같은 의식을 공들여서 훌륭하게 만들어 보여주었다.

[367, 369, 433∼434, 447쪽] 리펜슈탈은 확보한 필름 약 400킬로미터를 보는 데만도 10주가 걸렸다. 레니처럼 전설적인 질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렸을 것이다 … 레니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마라톤 주자들의 내면적인 감정”이었다고 여러 번 말했다. 지독한 피로나 빨리 경기가 끝나기를 갈망하는 그러한 감정 말이다. 주자의 무거운 다리는 아스팔트에 들러붙는 것 같지만 의지력이 그를 이끌어 간다 … 지금 이 영화를 역사 다큐멘터리로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영화에서 엿보이는 나치당 지도자들의 모습이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카메라에 찍히는지 모른 채 솔직한 반응을 그대로 보여준다 … 레니는 시와 영화가 비슷한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했고 시와 영화는 언제나 ‘교류 전기’처럼 일종의 파동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또한 관객이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압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관객은 시퀸스의 표현력에 의해 절정에 이끌렸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상승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473, 488∼489쪽]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순간부터 슈네베르거 부부(전쟁 때 레니는 슈네베르거 부부를 숱하게 도와서 목숨을 여러 차례 건져 주었다)는 레니 리펜슈탈을 멀리하려 했다. 그들은 그날 밤 칠레르탈 계곡 꼭대기의 작은 호텔에 레니를 버려둔 채 떠났다. 다음날 레니가 두 사람을 쫓아서 마을 위 언덕에 있는 한 가족 임대별장에 갔지만, 기젤라가 차갑게 레니를 쫓아냈다. “도대체 왜 우리가 당신을 도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기젤라가 소리쳤다. “이 나치 계집 같으니라고!” 한스 역시 따뜻한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눈벼룩은 몇 주 전만 해도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또 원하는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레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났지만 리펜슈탈의 자산과 권리, 자유는 모두 강제된 채였다 … 리펜슈탈과 히틀러가 친밀한 관계였다는 증언이나 기록이 없었고, 오히려 그런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총통의 측근들이 증언한 기록은 많았다 … 리펜슈탈은 또한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히틀러식 경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491, 492, 509쪽] 레니는 끝도 보이지 않는 빚과 소송에 시달렸다 … 법정은 레니의 전쟁범죄 혐의를 풀어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의 적의는 1947년 출판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독일 영화 심리분석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와 같은 새로운 해설이나 리펜슈탈의 소송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더욱 부추김을 받았다 … 리펜슈탈은 전쟁이 끝난 후 한 번도 제대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을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밑바닥의 진창’을 뒹구는 기분이었다. 감금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영화도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그랬으며, 심문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인터뷰’의 탈을 썼을 뿐이었다.

[520∼521, 524쪽] 레니는 이들(메사킨 퀴사이르 누바족)의 순진함과 때 묻지 않은 관습을 사랑했다.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 레니 리펜슈탈은 아프리카에 열 달 간 머무르며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여행을 했는데, 대부분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 레니는 차도 텐트도 없이 주로 바깥에서 잠을 잤다(1962년 무렵). 이제 레니는 누바족 마을에서 친구로 완전히 받아들여졌고 뱀에 물려죽은 전사의 장례식에까지 초대받았다. 이곳에서 레니는 어디에든 갈 수 있었고 혼자 있을 때도 두렵지 않았으며 모욕을 당하는 일도 없었다. 레니는 지난 몇 년 간 독일에서 악전고투를 하면서 모욕을 참아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친구들로부터 환영받자 짐심으로 행복했다 … 이번에는 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사랑하는 누바족의 영화를 찍으리라 … 레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바족에게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서 사는 것이 어떨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레니는 누바족 마을에서 벌집 같은 오두막을 지어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526, 569, 571∼573쪽] 이때쯤(1968년) 레니의 사진이 유명해졌다. 아프리카 사진을 모은 첫 사진집 《최후의 누바족》이 뉴욕에서 1974년에 출판되었고, 2년 후에는 《카후 사람들》이 나왔다. 레니가 수단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후 1982년에는 《레니 리펜슈탈의 아르피카》가 출판되었고, 곧이어 《사라지는 아프리카》가 나왔다. 이제 사실상 레니가 알고 레니가 사랑했던 누바족은 사라지고 없었다. 레니의 표현대로 ‘문명의 파괴적인 손’은 누바족에게 누더기옷과 정체성의 위기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돈, 술 그리고 문을 잠글 자물쇠를 가져다주었다. 관광객들이 누바산으로 찾아왔지만 그들이 찾는 이국적인 정서는 사라지고 있었다. 춤과 싸움의 의식은 수많은 렌즈 앞에서 돈을 받고 치러졌다. 레니는 그녀의 사진이 이런 변화에 일부 책임이 있다든지, 그녀는 단지 ‘환상에 사로잡힌 백일’일 뿐이라는 비난에 반박했다. 누바족에 대한 관심이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예의 집착과 숭배를 보여주는 또다른 증거라는 악의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레니는 깊이 절망했다. 레니가 사진을 찍기 전에 다른 사람들도 누바족의 사진을 찍어 발표해 왔다. 단지 그녀는 사라지는 순간의 목격자이자 기록자가 되는 특권을 누렸을 뿐이다. 레니는 부패해 가는 천국을 보았다 … 리펜슈탈의 사진은 가장 완벽한 인간 육체를 아무 부끄러움 없이 찬미한다. 수전 손택은 《우율한 열정》에서 리펜슈탈이 그려내는 “곧 멸종될 누바족은 리펜슈탈이 만든 나치 작품의 연장”이라고 비난했고 몇몇 비평가들 역시 손택을 따랐다. 하지만 수단 정부는 리펜슈탈이 찍은 수단 사람들의 감각적인 초상에 굉장히 기뻐하며 리펜슈탈이 여행 허가를 요청할 때마다 점점 더 친절해졌다. 1975년 니메이리 대통령은 리펜슈탈의 공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수단 시민권을 수여했다. 리펜슈탈은 그런 영광을 누리는 최초의 외국인이었다 … 지적이고 정열적인 탐구로 유명한 손택은 “생각을 자라게” 하는 글로 유명했는데, 리펜슈탈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오히려 많은 독자들의 생각을 고정시켜 버렸고, 거의 30년 전의 크라카우어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리펜슈탈에게 많은 해를 입혔다. 어쩌면 제일 먼저 밝혀야 할 것은 손택의 글이 전혀 다른 두 작품에 대한 평이라는 점이다. 손택은 짓궂게도 ‘매혹적인 파시즘’이라는 제목 하에 레니의 아프리카 사진집을 《SS 제복》이라는 책과 함께 묶어서 평한다 … 손택은 리펜슈탈이 누바족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했지만, 그것은 단지 이런 류의 사진에 대한 손택의 해석일 뿐일지도 모른다. 손택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리펜슈탈에 대한 이미지가 사진을 보는 눈을 흐렸을 수도 있다. 다른 예술가들 또한, 리펜슈탈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슷한 사진을 찍었다. 리펜슈탈에게 영감을 준 조지 로저는 1948년과 1949년에 씨름을 하는 누바족 사진을 찍었다. 로저의 사진은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어떤 식으로든 로저의 사진을 파시스트적이라고 해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손택은) 리펜슈탈의 뛰어난 다큐멘터리 두 편은 “의심의 여지 없이 뛰어나고” 어쩌면 “지금까지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중 가장 위대”할지도 모르지만 “영화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야누스와 같은 관점이다! … 손택은 리펜슈탈에게 언어적인 공격을 퍼붓지만, 그 방식은 프로파간다라는 이론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 레니는 언제나 누바족을 관찰하는 보이지 않는 관찰자였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카메라 앞에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이 파시스트적이란 말인가?

[577, 594쪽] 외국의 뛰어난 정치가들조차 징후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을 때, 레니 리펜슈탈만이 미래를 예견했어야 하는 걸까? … 우리는 리펜슈탈을 비난하지만, 리펜슈탈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사회가 무엇을 잃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 하지만 무엇을 믿든 간에, 사회가 리펜슈탈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의지의 승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나치 현상과 나치 현상의 힘(신비화와 볼거리를 통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묶어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을 지금만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이미 반세기나 지난 상황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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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33 ― ‘서울에 핵발전소를!’ 하고 외치는 마음
 : 히로세 다카시, 《체르노빌의 아이들》



- 책이름 : 체르노빌의 아이들
- 글 : 히로세 다카시
- 옮긴이 : 육후연
- 펴낸곳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06.9.6.)
- 책값 : 8000원



 (1) 어린이책을 안 읽는 어른


 아파트에 살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에서 살 생각이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동네 골목을 다닌다든지 이웃 동네를 다닌다든지 하다 보면, 자그마한 집이 송두리째 내몰리거나 사라진 다음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습을 봅니다. 큰 도시이든 작은 도시이든 온통 아파트밭이고, 깊이깊이 들어가는 시골이 아니고서야 아파트 자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 나라 터전이라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많이 살고 있으며, 새 아파트는 꾸준히 올라섭니다. 아파트마다 이름이 다르고, 새롭고 더 멋스럽다고 하는 이름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환경운동 하는 분들이나 환경정책 내놓는 공무원이나 우리 말보다는 영어를 조금 더 좋아해서 ‘에코’라는 말마디가 나날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 ‘에코’를 어디까지 쓰고 있는가를 헤아려 보려고 누리그물에서 찾아보니 에코하우스, 에코샵, 에코뮤지엄, 에코프랜즈가 줄줄이 나옵니다. 그리고 ‘에코메트로’가 나옵니다. 지하철공사가 ‘지하철’이라는 낱말보다 ‘메트로’를 좋아하고 있기에 철도공사가 무슨 환경정책을 내놓았나 싶어 더 들어가 살펴봅니다.

 저야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 몰랐다 할 테고, 아는 분들은 익히 알고 있었을 텐데, 에코메트로란 아파트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에코메트로라는 아파트에는 ‘에코 영어마을’이 있고 ‘에코파크’가 있으며 ‘에코브릿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세상하고 담을 쌓으며 살아가는 내 하루하루는 아닐 텐데, 세상사람들이 쓰는 말이 너무 어렵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즐기는 말이 더없이 골치아픕니다. 세상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말이 몹시 어지럽습니다. 우리는 수수하게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어떤 물결을 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꾸밈없이 어깨동무하는 삶이란 머나먼 이야기요 까마득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는지요.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를 맞이한 요즈음은 책마을에서 어린이책 목소리가 조금 더 높습니다. 2020년을 맞이하면 어린이책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리라 봅니다. 그런데, 어린이책 목소리가 높아지는 다른 한켠에서 보면 푸름이책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분들이 ‘만들거나 읽히거나 쓰거나 옮기는’ 책은 ‘갓난아기부터 초등학교 6학년’ 사이에서 맴돕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사이에서 읽힐 푸름이책은 몇몇 사람들만 만들거나 읽히거나 쓰거나 옮깁니다. 더욱이, 제도권학교에 깃들지 않는 푸름이를 헤아리는 책은 훨씬 적습니다. 대학생이 되는 아이들한테 맞춘 책은 꽤 있으나, 대학생이 되지 않으며 세상과 부대끼는 젊은이한테 맞춘 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어린이책 갈래를 놓고 동시와 동화, 또 판타지와 생활동화, 또 어린이글과 무엇무엇 들을 자잘하게 가르기도 하며, 이제는 웬만큼 눈높이를 다진 어린이문학 비평을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세상 여느 흐름으로는 ‘어린이문학 비평’은 ‘어른문학 비평’에 견주어 낮은 자리이고, ‘어린이문학 이야기나 창작’은 ‘어른문학 이야기나 창작’과 견주어 눈높이가 낮은 듯 여깁니다.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고 소설책 내는 출판사 편집자나 영업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으나, 어린이책을 즐겨읽지 않으며 어린이책 내는 출판사 편집자와 영업자가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까지 어린이책 하나 차근차근 살피는 어른이 드물고, 아이한테 어린이책을 읽히려고 할 때에도 스스로 먼저 깊이깊이 읽으면서 옳고 바르고 알맞고 즐겁고 따스하고 사랑스레 골라서 읽히는 어른은 더욱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교사 가운데 ‘어린이책을 즐겁게 읽으며 넉넉히 안다’고 할 만한 분이 얼마나 있습니까. 중고등학교 교사 가운데 ‘청소년책을 신나게 읽으며 두루두루 안다’고 할 만한 분이 얼마나 있는지요.

 저부터 어린이일 때에 마땅한 어린이책을 읽지 못하고 컸던 일을 깨달은 나이는 스물세 살 무렵입니다. 어릴 적에 읽지 못한 좋은 어린이책을 읽자고 다짐한 나이는 스물너덧입니다. 아름답게 여민 어린이책을 스물을 훌쩍 넘긴 나이에 비로소 손에 쥐면서 ‘어린이책을 어린이일 때에 읽지 못하면 마음밭이 이렇게 가난할 수밖에 없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책을 읽지 못했다면 어른이 된 다음에라도 읽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었으니 어린이책을 안 읽는다고 하면 ‘어른으로 살면서도 어른다움을 떠올리거나 추스르기 어렵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또한 어린이책은 어린이를 비롯한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누구보다도 ‘어린이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면서 ‘어린이를 널리 아우르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거이 읽을 수 있게끔’ 일구어 낸 문화요 선물입니다.


 (2)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어린이책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었습니다. 2006년 가을에 나온 책을 책상맡에 오래오래 올려놓고 지내면서 야금야금 읽었습니다. 히로세 다카시 님이 ‘아줌마다운 힘’으로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깊이 파헤치면서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안은 어린이문학인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환경사랑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마땅히 가야 하는 바른 길을 마땅히 안 가면서 마땅하게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한테 마땅한 사랑과 믿음이란 무엇이고, 마땅한 삶과 사람이란 어떠한가를 따스하고 넉넉하게 보여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번역이 너무 얄궂고 엉성해서, 이 반갑고 좋은 책을 오래오래 묵혀 두었습니다. 아니, 처음 반 해 동안은 엉성한 번역을 한 줄 한 줄 모조리 고쳐쓰면서 읽었는데, 이렇게 반 해 동안 더디더디 글다듬기를 하며 읽자니 힘들어서 두 손을 들었습니다. 2004년에 우리 말로 나온 《잃어버린 숲》(레이첼 카슨)을 읽을 때에도 너무 어설픈 번역 때문에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어 한 줄 한 줄 글다듬기를 하며 읽은 적이 있습니다.

 번역이란 나라밖 말을 잘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우리 나라 번역가들은 나라밖 말은 훌륭히 잘할는지 몰라도 우리 말은 너무도 못합니다. 나라밖 문화와 삶터와 이야기도 깊고 넓게 헤아리는 한편, 우리 문화와 삶터와 이야기를 깊고 넓게 헤아려야 하는데, 슬기롭고 따스하게 어우르면서 번역길을 가는 분은 생각 밖으로 많지 않습니다. 더욱이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어른책이 아닌 어린이책입니다. 《잃어버린 숲》이야 처음부터 어른책으로 나왔기에, 웬만한 어른들은 어설픈 번역을 읽으면서도 글쓴이 마음을 어느 만큼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설픈 번역으로 어린이책을 옮겨내면 아이들은 어찌해야 하지요?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 마음밭을 일그러뜨릴 걱정이 있는 낱말과 말투로 번역을 하면 어찌하지요? 쉽고 깨끗한 말을 골라서 쓴다는 테두리로 되는 번역이 아닙니다. 쉽고 깨끗한 말이란 밑바탕입니다. 알맞고 올바르며 슬기로운 말을 찾아야 합니다. 창작을 하는 분들이 글 한 줄을 적바림하면서 들인 땀과 품과 마음과 사랑을, 번역을 하는 분들 또한 한 줄 두 줄 옮겨내면서 땀과 품과 마음과 사랑을 바쳐야 합니다. 이는 책느낌글을 쓰는 비평가한테도 마찬가지인 대목입니다. 창작하는 사람 마음이 되어 번역을 하고, 창작하는 사람 매무새 그대로 비평을 해야 합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쓴 히로세 다카시 님이 ‘아줌마다운 힘’으로 이 책을 써냈다고 적었습니다만, ‘아줌마다운 힘’이란 ‘아이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보여주는 힘’입니다.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 ‘아줌마’란 말마디는 얄궂거나 나쁜 쪽으로 흔히 쓰이지만, ‘아줌마다운’ 삶이란 더없이 아름답고 싱그러운 삶입니다. ‘어머니다운’ 삶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목숨 하나 보듬으며 지낸 삶에다가 이 목숨 하나를 기나긴 나날에 걸쳐 키워내는 보람이 어머니 삶입니다. 아줌마 삶은 할머니 삶으로 이어지기 앞서 아이 스스로 무럭무럭 크면서 또다른 어른이 되면서 새로 아이를 낳아 키우도록 이끌어 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힘이란 바로 목숨을 아끼는 삶이고, 목숨을 사랑하는 삶이며, 목숨을 지키는 삶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처럼 ‘우리 글 바로쓰기’를 알뜰살뜰 잘 이루어내야만 좋은 문학이나 창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글 바로쓰기’란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한테 밑바탕입니다. 때로는 잘못 쓰거나 아직 잘 몰라서 어설피 쓰는 대목이 있을 수 있을 터이나, 말이 말다웁도록 가다듬고 글이 글다웁도록 보듬는 일이란 창작하거나 번역하는 사람한테는 밑바탕입니다. 이 밑바탕이 되면서 작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밑바탕으로 히로세 다카시라고 하는 아줌마 한 사람이 어떤 넋과 몸가짐으로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이 땅 아이들하고 어른들한테 선물로 베풀어 놓았는가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는 분들은 익히 알 텐데, 원자력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전기를 만들어 내면서 환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전기를 얻어내자면 그만큼 환경을 망가뜨려야 합니다. 책 하나를 만들 때에도 나무를 베어야 하는데, 나무베기로 그치지 않고 물과 기름을 많이 써야 하며, 벤 나무를 실어나르고 종이공장을 돌리고 또 무엇무엇을 하는 데에 드는 자원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하는 공장을 돌리자면 마땅하게도 전기를 써야 합니다. 다 만든 책은 책방에 놓이기까지 짐차에 실려 가는데, 짐차를 만들 때에도 적잖은 자원과 전기를 썼겠지요. 책방에 놓인 다음에도 전깃불을 켜 놓고 우리들을 기다리고요.

 소련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터졌고, 미국 드리마일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숫자로 치면 몇 안 된다 할 텐데, 몇 안 되는 원자력발전소인데 이 몇 가지만으로도 온누리 사람들이 벌벌 떱니다. 화력발전소가 터졌을 때에도 벌벌 떨 테고,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흘러넘쳤어도 소름이 돋지만, 원자력발전소 하나 터지거나 말썽나는 일에 견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체르노빌의 아이들》 맨 끝쪽에 글쓴이가 밝히듯, “도쿄에 핵발전소를!”이거나 “뉴욕에 핵발전소를!”이거나 “서울에 핵발전소를!”이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데가 어디이겠습니까. 바로 서울입니다. 서울에 사는 부자들만 전기를 쓸까요? 서울에 사는 가난뱅이들은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발전소를 지어야 하면 어떠한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지부터, 전기를 쓰며 살아가는 우리 살림살이는 어떻게 가누어야 하는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인 우리 자그마한 동네부터 ‘지금 이대로 꾸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은가?’를 되새기자고 하는 이야기책 《체르노빌의 아이들》입니다. 아무런 주의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넌지시 푸근한 이야기로 이와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체르노빌의 아이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함께 깨닫고 아이들로 살아가는 그 나이부터 우리 삶과 목숨과 사랑을 싱그럽고 곱게 되새기면서 푸른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는 어린이문학 《체르노빌의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우리 아이가 어느 만큼 큰 다음에 읽히고 싶고, 아이한테 읽히고 싶은 마음에서 한 줄 한 줄 글다듬기를 하면서 읽었습니다. 다만, 저도 아직 글다듬기를 훌륭히 해내지는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힘껏 애쓰고 마음을 쏟아서, 아이가 열 살이 될 때쯤에는 빈 공책에 이 책을 손글씨로 하나하나 새로 옮겨서 적어 놓고 싶습니다.


 (3) 아쉬운 대로 되읽는 책


 우리 스스로 좀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 좀더 나은 말과 글을 주고받을 수 있게끔 애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한결 나은 삶을 꿈꾼다면, 우리 스스로 한결 나은 말과 글을 나눌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번역은 여러모로 아쉽지만, 아쉽다고 느끼는 번역이라면 아이들 앞에서 이 책을 ‘어떻게 새로 읽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더 좋은 마음으로 더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서, 밑줄을 그으며 읽은 대목을 하나하나 적어 봅니다. (4343.1.25.달.ㅎㄲㅅㄱ)


[12쪽] 창밖으로 보이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점점 불길이 거세져 일 미터가량 되는 높이의 불꽃이 상공에 커다란 원호를 그리며 계속 세력을 넓혀 가고 있었다. “이게 우리가 믿어 왔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발전소였단 말인가요?”

[22쪽]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건 안드레이는 가속페달을 밟으려다 문득 땅바닥을 훑어보았다. 땅에 떨어진 새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새는 꿈틀거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이반과 이네사가 이 공기 속을 그냥 걸어나온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날아다녔을 새가 죽어 가는 것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35쪽]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본 지가 얼마만인가. 이반이 어렸을 때에는 잠들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곤 했는데, 안드레이는 어리석게도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자식을 끌어안고서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52쪽] “엄마!” 이반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타냐가 모르겠다고 하자, 이반은 말을 이었다. “혼자 죽는 것은 괜찮아요. 하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이네사도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없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다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무서워요. 엄마는요? 어떻게 해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우린 어디로 가는 거죠? 폭발 이후로 내 방에 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아빠도 없고, 학교도 없어요. 전부 사라졌어요. 강해진다는 것,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도 좋은 일이겠죠. 그러나 우습지 않아요? 숨만 붙어 있는 것이 새로운 인생이라니, 그건 사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는 만약 아빠가 …….”

[82, 83쪽] 농민들은 스트레리초프라는 사람을 내세워 군인들에게 격렬히 항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할 말이 많았다. 원자로가 폭발했기 때문에 대피하라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과 소는 어떡하란 말인가? 온 정성을 기울여 키운 이 가축들은 농민들에겐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군인들이 가축들을 모두 버려두고 떠나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그것도 총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밭은 또 어떡하란 말인가? 마음속으로 ‘올해는 제발 알차게 열매 맺기를’ 기도하면서 불알이 얼어붙는 추위를 무릅쓰고 땅을 갈고, 또 해가 뜨기도 전에 들로 나가 종자를 뿌리고 비료를 주곤 했던 그 밭을 어떻게 두고 떠나란 말인가? 농민들에게 소와 양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밭작물도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스트레리초프와 농민들에게는 생명이자 삶 자체였던 것이다 … 군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의도대로 군중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군인들에게는 최고 능력이자 군인된 보람이었던 것이다.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몇몇 사람들이 비난하기 시작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농민들의 저항은 무산되었고, 별 수 없이 군인들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114∼115쪽] 사실상, 의사나 간호사보다 아이들의 공포심이 백 배는 더 컸다. 이 병원으로 오기 전에 어떤 아이는 동물의 시체를 밟았고, 어떤 아이는 눈앞에서 부모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농민들이 강제로 피난하는 모습도 보았고, 검문소에서는 잔인하게도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한꺼번에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된 아이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감옥 같은 병원 안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17쪽] 이네사의 입에서 쥐어짜는 듯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와 병실 안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이네사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감독관은 탈진 상태로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이네사를 보고 있으면서도 상태가 어떤지 가까이 다가와 살펴보지 않았다. 병실 안에는 이네사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는 아이들만이 누워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기도했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자신의 몸 위에 드리웠음을 느끼고 있었다.

[154, 157쪽] “저도 각오는 돼 있어요.”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마라.” 마르쿠츠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몸이 좀 이상해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제게 아무것도 감출 필요 없어요, 선생님. 이젠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요? 손도 발도 전혀 말을 듣지 않고, 몸이 제 몸 같지 않아요. 괜찮아요, 이렇게 약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한 번 똑똑히 봐두고 싶었어요. 인간이 죽을 때는 이렇게 되는군요. 이젠 각오가 돼 있어요. 아파서 괴로워할 때는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고 느꼈었는데 …….” … 이반의 시체는 거센 바람만이 불고 있는 황야에 매장되었다. 그곳에는 꽃다발도, 눈물을 흘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160쪽] 타냐 역시 아무것도 몰랐다. 남편 안드레이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했다. 타냐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얼마나 무서운 직업이었단 말인가. 자신은 왜 좀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이렇게 끝날 줄 미리 알았어야 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반과 아네사를 지금과 같은 불행한 상황으로 이끈 것이 자신들이라는 생각까지 이르자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글쓴이 말/165∼168쪽] 그제서야 나는 ‘내 생각이 틀림없다’ 확신하고, 팸플릿을 만들어 번화가에서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팸플릿을 받아든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스리마일섬에서 그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원자력 발전소를 염려하지 않았다. 때문에 ‘양식 있는 인간이 일본에는 이다지도 없는가’ 낙심하면서 돌아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 이 책은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될지도 모를 현지에서는 관심과 함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대도시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 물론 하루하루 일상에 쫓기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장의 생계활동과 큰 상관없어 보이는 핵의 위험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는 건 쉬운 일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엔 에너지 문제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대도시 문제인데, 정작 대도시 사람들이 그런 것에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도쿄에 핵발전소를!》이라는 책이다. 제아무리 대안 부재를 내세우며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을 논하더라도, 그런 핵발전소를 도쿄에 세울 수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될 것이다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것도 알고 보면 원자ㆍ수소폭탄 산업을 경제적으로 성립시키려는 상당히 무리한 방법일 뿐이다 … 나는 현재의 어른들이 정말로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 … 절망적인 상황을 모르고는 참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어른들이 주는 허무감은 퇴폐를 향해 간다. “어른들을 본받지 마라”는 것은 그러한 무의미한 허무와 냉소를 거절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새 희망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 원자력 발전소의 물질적 피해 등은 수치로 나타내면 그뿐이지만, 죽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 하나뿐인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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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
노나리 지음 / 에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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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땅에 있는 ‘푸른누리(그린란드)’를 찾자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0] 노나리,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



 엊저녁 서울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부터 아기하고 씨름하던 옆지기는 축 처졌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 볼일을 봐야 하는데 몹시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다음달 첫머리까지 해야 하니 어쩌는 수 없습니다. 이 어쩌는 수 없다는 굴레가 참 고단합니다. 아픈 사람을 놓고 집을 나서야 하는 일이란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서도 몸과 마음이 나란히 고단하고 괴로운 노릇인데, 어디 하소연할 데란, 아니 어디 도움을 바랄 데란 없습니다. 우리 삶터는 ‘장애’라고 하면 팔이나 다리가 똑 부러졌다거나 한쪽 팔다리가 짧다거나 하는 ‘정상인이라 하는 사람하고 견줄 때에 눈에 보이도록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든지 말을 못한다든지 눈이 멀었다든지 하지 않으면 ‘그깟 장애야 뭐 대순가?’ 하는 세상 흐름입니다.

 새벽부터 바지런히 글 몇 자락 써 놓고 신나게 빨래를 한 다음 밥이나 죽을 끓여 놓습니다. 허둥지둥 길을 나서야 하니, 어제 해 놓은 빨래를 갤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락을 싸들고 헐레벌떡 길을 나서며 전철역까지 달음박질을 칩니다. 겨우겨우 전철을 잡아 타고 떠나도 늘 서울 일터에 늦습니다. 늘 늦어도 무어라 한소리를 안 하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이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해 주어야 참으로 고맙다고 느낄 텐데, 이런 뜻을 내비치면 손을 떼지 말라고 붙잡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일자리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나 스스로 바라는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저쪽에서 바라면서 일을 맡긴다고 한다면 얼씨구나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들여야지, 저처럼 어서 그만둘 수 있으면 하고 바란다는 일은 배부른 소리로 여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참말 집에서 집식구를 돌보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이제 열아홉 달에 접어든 아이하고 어울릴 또래 동무를 찾아보고 싶으며, 아이가 또래 동무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조용하면서 바람과 물이 맑은 동네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아이는 아이대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랄 테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아픈 몸과 마음을 차근차근 추스를 수 있을 테니까요.


.. 마구잡이 개발 우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게 한국 환경문제의 현주소다. 자칫 그린란드가 한국과 비슷한 노선을 밟게 될까 봐, 그래서 그린란드 환경파괴가 자립이라는 명목 아래에 정당화될까 두렵다 … 그린란드 북동부 도시 우페르나박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 떠 있던 거대한 쓰레기섬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휴지조각에서부터 폐차까지 한데 얽혀 덩어리진 그 섬을 보는 순간, 그린란드에 머물렀던 50여 일 동안 단 한 번도 분리수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  (29쪽)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하루도 옆지기는 무겁고 힘든 몸으로 집안에서 아이하고 홀로 놀며 어울리며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그지없이 무겁습니다. 흔히 일컫는 작은식구(핵가족)일 때에는 아이가 없이 둘만 지낸다면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할는지 모르나, 아이를 키우는 삶일 때에는 큰식구가 아니면 서로서로 버거움을 몸으로 깨닫습니다. 꼭 아이키우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살아가며 배우고 받아들이고 헤아리는 눈썰미와 슬기를 주고받을 수 있자면, 작은식구가 아닌 큰식구로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또는 살붙이들이 서로 가까이 담장을 맞대고 지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공동체마을이든 공동육아이든 달리 대단한 뜻이나 거룩한 얼이 모인 모둠살이가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큰식구로 올망졸망 복닥이며 아이나 어른이나 어리든 늙든 숱한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살을 섞으면서 사람살이를 배우는 터전을 스스로 잃은 오늘날 도시에서, 우리 스스로 이러한 사람살이를 되찾으려는 조그마한 몸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살붙이가 아니면 이웃사촌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이 고루 어우러져 있던 우리 터전을 우리 스스로 버린 다음, 좀더 많은 돈을 나 홀로 벌겠다는 마음이 하루이틀 불거지면서, 이렇게 우리 스스로 어린이집을 찾고 보육원을 찾으며 따로 누리모임(인터넷 동호회)을 뒤적이고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다른 자리’를 찾아나서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바라면서 우리 삶을 이렇게 바꾸기만 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스스로 바라기도 했겠지만, 어릴 적부터 받은 제도권 교육이 이러한 길로 이끌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도권 교육에 길들거나 익숙한 어버이들이 아이들한테 삶굴레를 고스란히 물려주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밝고 맑은 쪽으로 나아지도록 하겠다는 진보나 개혁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 놓치거나 잃거나 잊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사랑’을 참다이 나누려고 하는 몸부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찾을 아름다움이란, 또 사랑이란, 어느 별나라나 달나라 이야기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일구고 우리 식구 삶을 사랑스레 보듬으며 이웃하고 동무들과 살가이 어울리는 터전을 갈고닦고 보듬는 일이 바로 진보요 개혁이 되어야겠지요.


.. 일 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식량도 다 떨어져 간다. 일각고래가 나타날 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캠프를 옮겨 봐도 별 소득이 없다. 여정 초반, 사흘 안에 일각고래를 잡겠다며 큰소리 쳤던 닐스와 일랑우악은 미안한 표정으로 그만 철수하잔다 … 한국에서 소가 그러하듯, 그린란드인들에게 일각고래는 어디 한 구석 버릴 부위 없는 동물이었다. 옛 이뉴이트들은 껍질과 고기 내장은 모두 먹고, 뼈는 집을 지을 때 골조로 쓰거나 개썰매의 날을 만드는 데 썼으며, 수염은 엮어서 바구니를, 폐의 세포막으로는 북을 만들고, 기름은 불을 밝힐 때 썼다 ..  (85, 88쪽)


 오늘 하루 집을 나선 다음 해야 할 일과 집으로 돌아와서 붙잡아야 할 일을 곱씹으면서 능금 한 알을 우걱우걱 씹어 먹습니다. 아침 일곱 시 이십 분을 지나는데, 아이는 깨어나지 않습니다. 여느 때라면 새벽 여섯 시가 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납니다. 지난밤, 아이는 젖을 안 주는 엄마한테 젖 달라고 낑낑대면서 몇 시간이고 울고불고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엄마 머리맡에 드러누워 두 손에 인형 하나씩 쥐고 쉴새없이 종알종알 옹알옹알대었습니다. 이른새벽이 될 때까지 그리 낑낑대고 놀았으니 아침에 못 일어나겠지요. 간밤에 그리 치대었기에 아침에 안 일어나는 아이한테 고맙다고 여겨야 할까요? 애 아빠는 이 아침나절을 홀로 바쁘게 보낼 수 있으니까 반갑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침에 씹어먹는 능금은 엊저녁 신포시장 분식집 아주머니한테서 얻었습니다. 날이 풀려 모처럼 아이를 안고 시장 나들이를 갔더니, 아이가 귀엽다며 분식집 아주머니가 아이 손에 능금 한 알을 덥석 쥐어 주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몇 번 물어뜯고는 능금을 던져 버렸고, 엄마하고 아빠가 ‘아이가 물어뜯으며 놀다가 버린’ 능금을 나누어 먹습니다.

 오늘은 능금을 씹어먹으면서 반으로 갈라 먹지 않고 통으로 먹습니다. 저는 반으로 갈라야 씨앗 한 톨까지 씹어서 먹고, 반으로 가르지 못하면 깡지를 못 먹어 버릇했는데, 오늘은 용케 통으로 먹으면서도 씨앗 한 톨 한 톨에다가 깡지까지 모두 우걱우걱 씹어서 먹습니다. 요즈음 아주머니들은 능금을 이렇게 먹지 않겠지만, 옆지기가 가끔 저한테 들려주는 말마따나 ‘아줌마가 된’ 셈인가 싶어, 꼭다리 하나만 남긴 채 다 먹고 나서 가만히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서울 볼일 보러 길 나서는 제 옷차림을 보고 ‘아줌마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헌옷 싸게 파는 데에서 1500원 주고 산 청바지 차림새가 아줌마 차림새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뭐, 애 키우는 아빠는 아줌마하고 똑같지.” 하고 대꾸를 하는데, 그야말로 저는 아줌마 같은 아저씨가 되어 살아가는가 봅니다. 이 집에서는 아빠요 옆지기로서, 제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았을 때에는 제가 갓난아기요 어린이였을 때에 저를 돌보고 키운 어머니로서, 이제 이 같은 길을 걷는구나 싶습니다.

 책으로 익힌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인 삶입니다. 책에서 배운 이야기가 아니라, 손바닥이 온통 갈라지고 꾸덕살 판이 되면서 느끼는 삶입니다. 뜨거운 밥그릇을 맨손으로 쥐어도 뜨겁다고 안 느끼는데, 어제 낮 서울 일터 사람들하고 낮밥을 함께 먹을 때에 펄펄 끓는 냄비 손잡이를 맨손으로 쥐어 보는데, 참말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 밥그릇으로 먹는 나이가 아닌, 이렇게 온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녹아나는 삶을 어느 결엔가 옴팡 짊어지고 나서부터는 그예 아줌마 삶이구나. 이 나라 아줌마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 아줌마가 되어서 배우며 지내는구나.’ 하고 속으로 되뇝니다.


.. 이뉴이트들의 정신을 은근히 말살하는 것이 기독교의 역할이었다면, 이뉴이트들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은 ‘신문물’의 몫이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에 ‘왕립 그린란드 무역청’을 세웠고, 이뉴이트들은 곧 무역청에서 구할 수 있는 술, 커피, 담배, 설탕 등의 사치품에 빠져들었다. 이는 이뉴이트들로 하여금 교역소 근처에서 반영구적으로 정착하여 살게끔 부추겨, 사냥하고 유목하는 그들의 전통적 생활방식의 구심점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그린란드 자치정부가 수립되고 독립까지 추진중인 오늘날마저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제2의 탐사 광풍의 조짐이 보인다 할 만큼 북유럽을 비롯해 세계 강대국들로부터 과학자, 개발자 군단들이 이 섬에 벌떼처럼 몰려들어 그린란드 지하자원 개발 이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직접적으로 수탈하는 수준에서 간신히 벗어났을 뿐 제국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 … 유일한 (군사기지요 미군기지인) 툴레 기지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1953년 덴마크는 기지 증설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당시 그 근방에 살던 이뉴이트들을 더 북쪽 지방인 까낙으로 강제 이주시켜 버렸다 … 이 갈등 상황은 1968년 1월 21일, 4개의 원자폭탄과 핵폭발 장치를 실은 미 공군 폭격기 B-52가 툴레 기지 부근에서 추락해 대량의 플루토늄이 주변 얼음 위로 무방비로 방출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극에 달한다 ..  (161, 180, 193쪽)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쓴 노나리 님이 머리말에 적었듯 ‘그린란드 이야기’를 다루는 나라안 책은 거의 없습니다. 노나리 님 머리말마따나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는 ‘그린란드 이야기를 다루는 대한민국 첫 책’으로 손꼽아도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린란드라는 땅을 헤아리는 사람이 드물 뿐더러, 텔레비전에서도 거의 마주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만 보더라도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는 책시렁 한켠에 다소곳하게 꽂아 놓아도 괜찮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서 한 쪽 두 쪽 읽어 나가는 동안, ‘소재와 주제는 남다르다’ 할 만하지만, ‘책이라 한다면 대학생들이 학점을 받으려고 내는 보고서뭉치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그치지 않습니다. 글쓴이는 이 자료 저 자료를 바지런히 그러모으고 잘 갈무리해 놓았습니다. 글쓴이 스스로 다큐방송을 찍으면서 몸소 겪은 그린란드 삶자락을 알뜰살뜰 풀어 놓았습니다. 쉽사리 만나기 어려운 사진을 책 사이사이 알맞게 넣었고, 여느 사람들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잘못 알고 있기까지 한 ‘서툰 상식’을 뒤집거나 바로잡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한테는 ‘책’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저 ‘보고서’에 머뭅니다. ‘누리마실(웹서핑) 자료’를 맵돕니다.

 글쓴이가 그린란드에서 보낸 나날이 짧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한국땅을 밟아 본 적 없이 오로지 ‘일본에 옮겨진 한국 역사책’만 읽으면서도 남북녘 역사를 알차게 써낸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있듯이(이분은 《朝鮮史》(講談社,1977)라는 책을 내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노나리 님 또한 그린란드를 밟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알차고 훌륭하게 그린란드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나리 님은 자료 모으기는 알뜰히 해냈을지라도, 이렇게 모은 자료로 무엇을 누구한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 어긋났습니다. 아직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노나리 님 스스로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길이란 어떠한 모습이요 흐름인가를 단단하고 씩씩하게 붙잡으며 지내고 있지 못한 탓이 아니랴 싶습니다. 남을 바라보기 앞서 나를 바라볼 일이고, 남을 말하기 앞서 나를 말할 노릇입니다. 나 스스로를 송두리째 내보이면서 차분하게 살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내 이웃과 동무를 곰곰이 들여다보고 바라보면서 치우침없이 말하는 들머리에 설 수 있습니다.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면서 다른 사람 삶이 아름답다거나 못났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내 손이 일하는 손인지 아닌지 모르면서 다른 사람 손을 보며 일하는 손이니 아니니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자연과 생태와 환경, 지구온난화와 기후협약과 탄소줄이기, 도시와 문명과 기계설비, 공장과 가공식품과 커다란 할인매장, 두 다리와 자전거와 자동차, 기름과 물과 바람, 꽃과 곡식과 나무, 들짐승과 길고양이와 물고기, 남자와 여자와 사람, 아이와 어른과 하느님, 땅과 하늘과 바다, 흙과 시멘트와 아스팔트, 아파트와 골목집과 지하상가 …… 우리를 둘러싼 이음고리를 먼저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린란드는 한국에도 있고, 한국은 그린란드에도 있습니다. 그린란드에서 한국을 읽을 수 있고, 한국에서 그린란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 어느 한 자락에는 내가 몹시 싫어하면서 나무라고 있는 어떤 정치꾼 모습이 드리워져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삶을 비추면서 내 삶 어느 한 구석에는 내가 아주 사랑하면서 우러르는 스승님 자취가 아로새겨져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 현지인들도 그렇게 먹고산다니 우리도 똑같이 따라 먹는 수밖에. 결국 그린란드 체류 50일 내내, 방부제와 첨가제로 범벅된 데다 눈 돌아가게 비싸기까지 한 이 쓰레기들을 위장 속에 꾹꾹 눌러담으며 한숨만 푹푹 내쉰다 … 쓰레기 식단이 혀를 죽여 버린다. 혀는 늘 접하는 음식에 길들여지기 마련이고, 인스턴트식품과 냉동식품에 익숙해진 혀는 저도 모르는 새 언젠가부터 공장에서 조미한 맛을 정답이라 여기며 ‘공장의 맛’을 추구하게 된다. 인스턴트식품과 냉동식품은 또한 ‘요리’하는 과정을 철저히 생략해 버린다. 좋은 재료를 골라 정성껏 다듬고, 향료와 양념의 조화를 추구하며, 마침내 인간 몸의 균형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예술활동 일체가 단번에 부정된다. 미각의 획일화는 음식의 맛과 멋에 대한 상상력을 고갈시키고, 요리의 부재는 요리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창의성과 새로운 도전의 여지마저 없애 버린다 ..  (210∼211쪽)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는 그린란드를 말하는 지식모둠인가요? 아니면, 그린란드를 찾아가서 느끼고 배운 ‘내 삶’을 보여주려는 책인가요? 좀더 깊숙하게 그린란드를 파헤쳐서 사람들한테 그린란드 참모습을 알리려 하는가요? 그린란드를 바라보면서 우리 삶터를 찬찬히 되짚으며 올바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인지요?

 이야깃거리로 삼기 좋은 그린란드 삶자락이라고 해서 다 이야깃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지구 삶터를 돌아보는 길잡이가 되는 그린란드 터전이라고 해서 다 책으로 여밀 만하지 않습니다. 그린란드는 이 지구에서 중심이면서 변두리입니다. 우리 나라 한국은 이 지구에서 변두리이면서 중심입니다. 글쓴이 노나리 님은 수천만 한국사람 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나, 한국사람을 대표하는 하나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굴리는 지식이 아닌, 몸으로 삭이는 앎이 되면 좋겠습니다. 손가락을 놀려 짧은 나날에 수없이 많은 지식보따리를 등에 짊어지는 삶이 아닌,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서 알맞게 긴 나날에 걸쳐 살갗으로 받아들이며 즐겁게 걸어가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삶이 묻어나오지 않을 때에는 한낱 종이뭉치입니다. 삶이 묻어나올 때에는 글솜씨가 좀 어줍잖거나 어설퍼도 싱그럽고 알찬 책이 됩니다. 책은 글재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책은 시나브로 제 얼굴과 몸매를 갖춥니다. (4343.1.20.물.ㅎㄲㅅㄱ)


 ┌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을 걷다》(글항아리 펴냄,2009)
 ├ 글ㆍ사진 : 노나리
 └ 책값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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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
안미선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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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31 ― 처녀 총각일 때에 ‘애 엄마 삶’을 읽어야
 : 안미선,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 책이름 :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 글 : 안미선
- 그림 : 장차현실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09.3.14.)
- 책값 : 12000원



 (1) 여자와 남자 모두 살림꾼이 되어야


 방과 마루를 뻔질나게 오가면서 온 서랍을 다 뒤지고 갖은 물건을 모조리 뒤집어엎으며 쏟아놓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덥석 안습니다. 아기는 까르르 웃고 눈을 빛냅니다. 왜 이제까지 나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두었느냐는 눈빛입니다. 아기를 왼팔과 오른팔로 번갈아 안으며 이리 어르고 저리 어르니 또다시 까르르 웃습니다. 엄마가 뒷간에 가도 울고불고 하는 아기는 엄마이든 아빠이든 저하고 하루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고 보챕니다. 아니, 아기로서 살아남자면 마땅한 몸부림이라 할 테고, 아기로서는 이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혼자놀기’를 잘한다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동무나 이웃이 없으면 입에 거미줄을 칩니다. 입에 거미줄을 치면 입에서 차츰 구린 냄새가 납니다. 가끔이나마 입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어야 거미줄이 걷히고 냄새가 사라집니다. 사람이기에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사람 내음을 가꾸고 사람다움을 일굽니다. 그러니까, 어른들도 혼자서는 심심하고 힘든 삶입니다. 아이들이라면 혼자서 훨씬 심심할 테며 더욱 힘들 테지요. 그러니까, 어버이 된 몸으로서 아이들을 홀로 집에 둘 수 없으며, 아기라 한다면 더더욱 함께 지내야 합니다.

 노자키 후미코 님이 그린 만화 《신이 주신 선물》(서울문화사) 7권(2001)을 보면, “걔네한테 친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겠지? 걔네들한텐 아빠가 꼭 필요해. 피가 섞이고 안 섞이곤 중요하지 않아. 부부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애들은 문제 없어. 부자 간에 사소한 싸움이 있더라도 말야(17∼18쪽).”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옵니다. 엄마 홀로 키우던 아이들을 보고 하는 말인데, 이 아이들한테 아빠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거꾸로 놓고 보아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빠 홀로 키우는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 혼자서 낳거나 아빠 홀로 낳을 수 없으니까요. 아이는 엄마 혼자서 돌보거나 아빠 홀로 돌볼 수 없으니까요. 함께 돌보는 아이입니다. 서로 힘을 모아 키우는 아이입니다. 엄마가 도맡는다든지, 엄마가 더 오래 돌봐야 한다든지 한다면 서로서로 고단합니다. 아이한테도 좋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 사랑과 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터전을 돌아볼 때에, 오늘날 우리 아이들 가운데 엄마 사랑과 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는 아이들을 만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으레 아빠 된 쪽이 회사로 일하러 나가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흔히 엄마 된 쪽이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 아이하고 씨름하면서 갖은 집안일을 합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집안일과 집살림과 아이키우기하고 동떨어집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이웃과 사회와 마을 이야기를 비롯한 바깥일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한편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고, 엄마는 엄마대로 한쪽만 들여다보는 바보가 됩니다. 엄마와 아빠가 다 함께 집안일과 집밖일을 하면서 아이키우기를 손잡고 하지 않는다면, 두 어버이는 모두 외곬 눈길로 치닫는 바보로 머물고야 맙니다.

 제 둘레 남자 동무들은 하나같이 집밖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아이는 저녁이나 밤, 또는 주말에나 얼굴을 겨우 본다고 할 만합니다. 제 둘레 여자 동무들은 한결같이 집안에서 아이하고 복닦이면서 세상일은 거의 젬병으로 지낸다 할 만합니다. 때때로 보육원에 아기를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놓으며 바깥일을 한다지만, 남자들이 바깥일을 하는 모습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경자 님이 쓴 소설을 모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작가정신,1992)를 읽으면 첫 작품부터 사람들 뒷통수를 퍽 하고 후려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날 남편은 밖에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느닷없이, 남성은 인류의 절반이다, 그러니까 하늘의 절반도 남성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너무도 뚱딴지 같은 소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했더니, 우리 아이에 대한 친권행사를 동등하게 하자는 겁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씨를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의 합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순간, 저는 불같이 화가 뻗쳤습니다. 아니 그래, 그까짓 정자 한 개와 난자, 자궁, 진통, 수유 등등을 어떻게 견줄 수 있다는 겁니까(17쪽)!” 〈옛날 옛날 한옛날에〉라는 이름이 붙은 짧은소설 한 토막입니다. 오늘 우리 삶터와 견주면 아주 거꾸로라 할 이야기인데, 참말로 오늘 우리 삶터에서 남자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놓고 읽힐 글이라 하겠습니다. 1990년대 첫무렵에만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우리 터전이 아니라, 2010년이 되고 2020년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우리 터전이라 하겠습니다.

 옆지기 부모님 댁에 찾아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서 장모님이 즐기는 연속극을 함께 보고 있자면,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돈까지 많은 여성’들이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며느리로 들어가 한다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르고 밥하기입니다. 아이 낳아 하루 내내 애보기입니다. 부잣집 며느리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집을 도맡기면 되련만, 부잣집 며느리 가운데 집일을 도맡기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속극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은 하나같이 바깥일만 하지 집일은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일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니, 젊은 남자나 여자는 한결같이 집일을 모르며 알려 하지 않고 배우지 않을 뿐더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은 나이든 여자뿐입니다. 나이든 남자는 ‘아주 마땅하다는 듯이’ ‘나이를 먹었으니 집일을 굳이 더 안 배우’고, ‘나이를 먹었기에 아내가 집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1990년대 연속극이든 2000년대 연속극이든 2010년대 연속극이든 배우와 소재만 살짝 다르지 줄거리와 짜임새와 이야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우오토 오사무 님이 그린 만화 《현미 선생의 도시락》(대원씨아이) 2권(2010)을 보면, “요즘 학생들은 양상추와 양배추도 구분 못하고, 토막난 상태가 아니면 무슨 생선인지도 몰라요. 무서워서 두부를 손바닥 위에 놓고 썰지도 못하죠! 거의 다 그래요! 애들은 학원 가느라 시간 없고, 부모는 부모대로 야근이니 뭐니 해서 늘 바쁘죠. 그러다 보니 애들한테 요리를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가 많아요. 애들도 자연히 요리에 대해서 배우지 못하고요.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히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학생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대학생들은 피해자니까요(179쪽).”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굳이 만화책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오늘날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 누구 하나를 붙잡고 물어 보아도 ‘밥하기’와 ‘반찬하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칼질하기를 옳게 할 줄 안다든지 설거지를 바르게 할 줄 안다든지 빨래를 알맞게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어른을 놓고 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기계가 도맡아 주지 않느냐고 할는지 모르는데, 따지고 보면 집밖일도 매한가지입니다. 갖가지 셈틀과 기계가 바깥일을 도맡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셈틀이 있고 기계가 있어도 이러한 셈틀과 기계를 다루는 ‘사람을 써야’ 합니다. 집에서도 그래요. 온갖 집안 살림기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 기계를 다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집안살림이든 집밖살림이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매무새를 익히는 사람 일을 제대로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못 가르칩니다. 제대로 안 배울 뿐 아니라 못 배웁니다. 지식인은 많아도 살림꾼은 없습니다. 아니, 지식인은 세상에 떵떵거리면서 펜데를 굴려 일을 하여도 살림꾼 목소리는 어디에도 실릴 자리가 없습니다. 신문과 잡지와 책과 인터넷에서는 오로지 ‘살림을 안 하거나 살림을 모르는 사람이 살림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만 다룹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사랑놀이를 즐기며 아이를 배고 낳을 때에, 아이키우기가 어떠한 일인가를 옳게 가르쳐 주는 적이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아이키우기를 일러 주지 않습니다. 여자한테든 남자한테든 똑같이 가르칠 아이키우기이지만, 이를 살갗으로 올바로 깨달으면서 아이들한테 가르칠 어른이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학교에서도 알뜰히 못하지만 집에서도 알뜰살뜰 못합니다.


 (2)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라는 책 하나


 “회사 일이라는 게 돈으로 환산될 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67쪽).”고 말하는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를 쓴 안미선 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자기가 정말 겪은 일과 느낌을 솔직히 쓴다면 엄청나게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 말이다. 서로 사는 모습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모른다(6쪽).”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 책마을에서 일을 했고,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학교와 쉼터에서 성교육을 하기도 했던 안미선 님인데, 안미선 님 스스로 ‘직장여성’일 때하고 ‘애 엄마’일 때하고는 사뭇 달랐겠지요. 직장여성일 때에는 생각하지 못한 애 엄마 삶이었겠지요.

 저는 직장남성이라는 길을 걷기는 했지만,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몸이 된 뒤부터는 거의 집에서 식구들 돌보는 길을 걷습니다. 밥벌이와 옆지기 돌보기와 아이키우기를 한꺼번에 해야 하면서 지칠 뿐 아니라 고되기까지 하지만, 밥벌이 때문에 집밖으로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거나 바깥사람을 만나거나 홀로 책방마실을 하거나 사진찍기를 할 때에는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는 삶이란 이렇게 홀가분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혼자 이 좋은 삶을 다 누리니 참 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옆지기 혼자서 아기하고 씨름하며 복닥일 모습을 그리면서 ‘더없이 힘들겠지’ 하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몇 가지 책을 넘기면서 ‘애 엄마 삶’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책에 담긴 지식으로 읽을 뿐, 애 엄마 삶이란 어디 머나먼 곳에 있는 엄마들 삶이 아닌 바로 ‘나를 낳아 키운 어머니 삶’이기도 함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 스스로 애 아빠 삶을, 아니 어버이 삶을 걸으면서 ‘애 엄마 삶’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립니다. ‘아이키우기를 하는 삶’이란 어떠한가를 곰곰이 곱씹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어머니 삶을 돌아보고 옆지기 어머님 삶을 함께 톺아봅니다.

 안미선 님은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 끄트머리에서 당신과 마찬가지로 ‘한국땅에서 직장여성으로 살거나 애 엄마로 살거나 직장여성이면서 애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짤막짤막 옮겨적습니다. 대학교에서 청소용역을 한다는 아주머니는 “이 학교가 부자라고 하더라구요. 건물도 계속 짓고. 그런데 직영으로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싸게 부릴 생각만 해요. 우리도 사람인데. 선생들은 고생을 안 해 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25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미선 님은 청소 아줌마 목소리를 빌어 이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만, 안미선 님이 강단에 서서 강사가 되고 조교수가 되고 부교수가 되고 정교수가 되고 했다면, 이 청소 아줌마 말마따나 ‘고생을 안 해 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는 또 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제 안미선 님은 ‘고생을 해 보’고 ‘청소를 어떻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더없이 마땅하게도 ‘고생을 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는 한편,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들 목소리’를 펼쳐 보입니다. 이 목소리를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 줄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 남자와 여자가 스스로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는 자리에서 얼마나 이 목소리를 귀담아들을는지 모르지만.


 (3) 한 줄 한 줄 되씹기


 책을 덮습니다. 옆지기가 이 책을 넌지시 들추면서 한 마디를 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스스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각을 달리 하고 있지만, 이분 스스로 이제까지 이 책에 쓴 아쉬움과 한숨과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배운 적이 없었다고.

 틀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숱한 사람들은 저처럼, 또 안미선 님처럼, 아니 모두들 다르게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을 슬기롭게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나중에 잔뜩 짊어져야 하는 굴레를 깊이 돌아볼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 느껴도 스스로 달라지면서 내 둘레 터전이 달라지도록 힘을 쓰지 못합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 고꾸라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고, 울타리가 너무 높고 단단하기 때문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여자들은 애써 이런 책을 써내고 돌려읽기도 하지만, 정작 남자들은 이런 책을 찾아 읽지 않고 다루지 않으며 가슴으로 새기지 못합니다. 하다 못해 책으로라도 이 같은 지식을 받아먹으려 하지 못합니다.

 책은 못 읽어도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책조차 못 읽는 우리들 삶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쁠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쁘도록 하나요. 무엇이 쫓겨 이다지도 바쁜 채 허덕이나요.

 누구보다 저부터 바빠맞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 줄 두 줄 되씹어 봅니다. 나부터 우리 아이와 옆지기한테 좀더 마음을 쓰고 따숩게 얼싸안는 삶이 되도록 하면서 방긋방긋 웃자고 다짐하면서 석 줄 넉 줄 되읽어 봅니다. 세상 남자들이, 아니 한국 남자들이 ‘남자 날개옷’만 멋스럽게 붙잡지 말고 ‘여자 날개옷’을 나란히 챙기면서 ‘사람 날개옷’을 곱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면서 다섯 줄 여섯 줄 천천히 거듭 읽습니다. (4343.1.18.달.ㅎㄲㅅㄱ)


[17, 58쪽] 외국에서 아기를 낳은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임신해서 한 번만 초음파를 찍고 그 이상은 불필요하다고 의사가 말린다던데, 아기 낳는 모양새도 그 나라 습성을 따르는 게다. 조산소에서 가족과 함께 낳으면 가장 좋다는 말도 들었지만 수혈 문제 때문에 종합병원에서 낳게 되었다. 임신 내내 지금까지 줄곧 ‘위험할 수 있어요, 위험해요’ 하고 협박만 들은 것 같다 … 애가 아플 거라는 소리가 협박처럼 들렸다. 우는 애를 안고 일어서자 의사가 “문제는, 돈이야!” 하고 외친다. 뒤돌아서는데 속에서 뜨거운 게 치민다. 개새끼. 지가 의사면 의사지, 뭘 안다고 능글능글 반말로 씨부렁거리냐. 지가 젖 먹여 애 길러 봤어? 지가 애 땜에 뜬눈으로 간호해 봤어?

[27, 32, 37∼38쪽] 나도 할 말이 있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뛰어가고 엎어지고 엎지르고 박아대는 아기와 씨름하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 먹고논다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 정말 내가 안 움직이면 우리 집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린다. ‘집은 쉼이다’면서 남자가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있는 광고도 있지만, 주부에게 그것은 그림의 개떡 같은 소리다. 집은 일터다. 집 밖에 나가야 한숨 돌릴까. 집은 곳곳을 치워 달라고 손봐 달라고 소리 없이 외쳐댄다 … “회사에서 아프면 사장한테 요구하지. 아니, 사장한테 도장 맞고 공단에 요구하지. 그런데 아기 보고 살림하다 아프면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 집에 있는 여자들과, 집안일을 더해 밖에서도 일해야 하는 많은 여자들이 아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플 거라고 여기지 않고 일한다고 여기지 않고 그것이 사회에서 보장해 주어야 할 몫이라고는 더더군다나 생각하지 않는다.

[34, 158쪽] 나도 애를 봐주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 종일 업고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할머니를 보니 힘든 건 다 똑같은데 같은 여자한테 떠넘기지 말아야겠다 싶기도 하다 … 남편이 주말에 쉰다는 것이 어떤 아내들에게는 부러울 뿐이다.

[42, 83∼84, 198∼198쪽] 결혼한 친구들은 각각 자기 집에 틀어박혀 혼자서 가족감당을 하느라 여념이 없고, 결혼 안 한 친구들은 여행이며 연애를 꿈꾸는데 이건 나와 딴판의 이야기였다 … 어른들이 도시의 갇힌 공간에서 쇼핑으로 술자리로 기분전환하듯, 아이들은 한 시간에 얼마 하는 인위적인 실내 놀이 공간에서 좋다고 뛰논다 … 사고 쓰고 버리는 것이 어른들의 생활이듯, 아이들의 시간도 놀이도 그렇다 … ‘살림이며 육아를 알아서 할 사람이 있겠지’ 하며 나 몰라라 하는 그이의 직장, 남편이 잠잘 시간만 빼고 그의 노동력을 오롯이 써먹는 직장에 대해서 화가 난다. 아이를 같이 낳고 기르는 것은 남편과 나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직장에 다니니 평등가족이 될 수 없다고 남편은 먼저 푸념했다.

[48, 101, 108, 121, 136쪽] 남자에게 콘돔을 쓰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이다 … 그때 나는 우리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자리에서 희롱을 당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책이 나온 날짜를 물끄러미 본다. 이 책이 나올 무렵 나는 깁스를 하고 빈방에 종일 앉아 있었다. 판권에는 사장 이름만 나와 있어, 만든 이들을 잊어버린 책이다 … 우리 시대의 고통바든 남편은 요컨대 자신도 집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 바도 배운 바도 없거니와, 돈을 벌러 회사에서 갖은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는 피해의식과 ‘가장’이라는 한줌 자부심으로 모든 집안일에서 면제받길 바란다 … (쉼터에 있는) 이 아이들은 특별히 문제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피임을 배우지 못하고, 남자 애들이 사랑해 주면 좋긴 한데 제 몸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이 나라 여자 아이들은 누구나 이 자리에 올 수 있다.

[90, 92, 96쪽] 나는 애가 공부 잘한다고 싱글벙글인 부모에게 아이의 지치고 고단한 얼굴을 보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공부하는 건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두려워해서가 아닐까 혼자 생각도 해 보았다 … 뒤늦게 안 것이다. 십대의 행복은 십대에만 있을 뿐이다. 그때 읽고 싶은 책은 그때에 읽어야 즐겁고, 그때 하고 싶은 일은 그때에만 깔깔거리며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정말 나의 행복을 바란 것이었을까 …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일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학교나 입시교육 안에서가 아닌 것이다.

[91, 94쪽] 모두들 서울에 오고 싶어했다. 서울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돈도 잘 벌고, 행복해질 거라고 여겼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다 … 공부 못하면 여기에서 못 떠난다고 협박당하던 그 친구들이 고향에 남아 든든한 이웃이 되어 거기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또 농사를 짓고 일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스럼없이 사투리를 쓰며 덩굴 뻗어 살아간다.

[141∼142, 187쪽] 남자 아이들에게 성은 자위를 몇 번 하니, 포르노에서 여자가 어떻게 나오니 정보를 공유하며 과시하는 놀이가 되지만, 여자 아이들은 월경과 함께 임신할 수 있는 몸, 성폭력을 당할지 모르는 몸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부터 세상에 대한 공포를 잠재화하게 된다 … 문제는, 이렇게 딴판으로 성에 대해 생각하는 이성들이, 상대가 바라는 걸 알지도 배워 보지도 혹은 믿지도 못하는 이성들이 만날 때 일어나는 문제다 … 여성에게 위험한 것은 밤길뿐만이 아니다.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낯선 사람, 낯선 장소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여성이 조신하지 않아서 섹시해서 무례해서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3, 209, 214쪽] 행복하고 깔끔한 가정과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종일 노동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가족 안에 고립되어 재산권이나 노동권, 재교육이나 사회적 지지 소통망 같은 자원에서 배제된 채 가족의 재생산과 보살핌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일해야 한다. 이러한 낮은 지위와 처우는 가족주의와 성별분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 속에서 구조화되어 있다. 교육을 받건 받지 않건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 성노동이 노동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일 자체가 성별화되고 불안하기 때문에 자주 노동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매매의 시장으로 간다 … 문학이나 대중문화가 근대의 산물인 것처럼, 작가도 초연한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특정한 성으로 태어나 그에 따르는 시선을 학습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자에게 불평등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작가는 성찰하지 않는 한 그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현실에서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터무니없거나 폭력에 가까운 묘사도 향수나 그리움, 애틋한 사랑의 이름으로 그려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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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 2010년 올해에 "헌책방 이야기" 세 번째 낱권책을 써내려 하는데, 시간이 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벌써 여섯 해가 지난 2004년에 내놓은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놓고, 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는가를 밝혔던 글을 크게 손질해서 걸쳐 놓는다. 2004년이면 아직 '글과 말을 한창 가다듬으며 고치던 무렵'이라서 내가 쓴 내 글임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2010년 오늘 쓰는 글 또한 앞으로 2020년이 되어서 돌아본다면 다시금 못마땅할 테지. 2030년이나 2040년을 맞이한 때에도 나 스스로 내 글에 별을 다섯 꾹꾹 눌러 채워서 줄 수 있게끔 더 갈고닦으며 애써야겠다고 느낀다 .. 










 1. 모든 책은 헌책이다 (그물코 펴냄,2004)
 : 헌책방 사라질까 걱정되어 쓴 책



 (1) 왜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냈는가?


.. 그저 인터넷과 헌책방 소식지로만 조용히 헌책방 이야기를 하고팠지만, 이러다가는 헌책방이 다 사라질지도 모르고, 헌책방을 소중한 책 문화와 책 쉼터로 느끼지 않거나 못하는 아쉬운 우리 현실과 눈높이를 가다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  (머리말)


 저는 ‘울타리 허물기’를 좋아합니다. 일부러 울타리를 허물지는 않으나,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울타리’가 참으로 많다고 느낍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서 모두들 쉬쉬하거나, 뒷꽁무니에서 몰래 울타리를 넘나들며 제 뱃속을 채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런 울타리 없이’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2004년 여름과 가을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우리 말 강의를 했습니다. 이때 국립국어원에서는 저보고 양복에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오라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하더군요. 첫날은 그렇게 차려입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혼인잔치에서도 양복 차려입기를 힘들어 하는 저로서는 양복 옷감에는 두드러기가 납니다. 출판사에서 영업일을 할 때에도 우리 옷을 갖춰 입은 저로서는 참 죽을 맛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강의를 앞으로도 해야 하나 생각한 끝에, 저는 제 길대로 살며 제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니, 다음 강의부터는 양복을 벗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자전거를 몰고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건물 지킴이가 ‘웬 미친놈이 다 들어오나?’ 하면서 부리나케 달려와서 제 앞을 가로막더니, 제가 국립국어원에서 ‘강사로 모신 분’임을 안 다음부터는 꼬박꼬박 거수경례를 붙이더군요. 강사가 꼭 양복 차림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머리에 지식을 가득 넣은 분들을 비롯하여, 건물을 지키는 분들까지도 옷차림으로 사람을 재고 따지는 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아니, 난 분이든 든 분이든 찬 분이든 빈 분이든 하나같이 양복차림입니다. 가벼운 옷이나 시원한 옷을 입고 잘 가르치는 일이 우리한테 더 좋지 않을까요? 값싸고 겉치레하지 않는 옷으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이 우리한테 더 즐겁지 않을까요?

 헌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헌책방 문화밭에도 ‘높직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어느 헌책방에서든 그곳 이야기만 해야지, ‘그곳 아닌 다른 헌책방 이야기’나 ‘다른 헌책방을 알려주는 일은 하지 말’도록 말없이 서로서로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꾸리는 헌책방에서 다루지 않거나 없는 책이 있을 때에도, 웬만한 헌책방 임자들은 “다른 헌책방에 가도 없는 책이다” 하고 딱 잘라 말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헌책방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헌책방이 있고, 제가 알기로는 당신 헌책방이 아닌 다른 헌책방에 바로 그 책이 틀림없이 있는데에도 그리들 말했습니다. 제가 ‘헌책방 길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이 한 동네 곳곳에 깃들어 있는 헌책방을 두루두루 다닐 수 있도록 길잡이를 삼고자 나누어 주면, 헌책방 일꾼들은 이 길그림을 썩 못마땅해 했습니다. 당신 가게로 찾아오는 책손이 다른 가게로 빠져나갈까 걱정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더 나은 헌책방도 더 나쁜 헌책방도 없는데, 책을 500원이나 1000원 더 싸게 파는 곳이 훨씬 좋은 헌책방이 아닌데, 우리 나라에는 헌책방 조합이 없기도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 서로서로 돕는 마음바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책손도 다르지 않습니다. 헌책방 헌책은 ‘세상에 딱 한 권’일 때가 잦다 보니, 헌책방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정보는 아주 ‘고급’ 정보였고, 이 같은 정보를 다른 이(경쟁자)한테 눈꼽만큼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서울 시내에 있는 250군데쯤 되는(2004년 요즘 잣대로) 헌책방을 그분들이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웬만한 분들은 그럭저럭 이 많은 곳들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저 일부러 아는 척을 안 할 뿐이요, 당신들이 바라는 ‘좋은 책이 나오는 텃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제가 그리는 헌책방 길그림 때문에 고급 정보가 새어나갈까 봐 몹시 안절부절해 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도 싫고 저 모습도 싫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웅크리며 살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왜 내가 더 가지려 하는가요. 좋은 책을 다루는 마음밭이라면 좋은 넋을 키워야지요. 좋은 책을 읽는 마음그릇이라면 좋은 얼을 가꾸어야지요.

 나날이 헌책방이 사라지고 죽어 가는데, 이러한 헌책방 정보와 소식을 널리 나눠서, 헌책방을 즐겨 찾는 이와 헌책방을 그럭저럭 가는 이와 헌책방을 아직 잘 몰라서 안 거나 못 가는 이 누구한테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94년부터 헌책방 나들이 이야기를 글로 썼어요. 박상준 님이라고, sf책을 즐겨 찾는 분이 쓴 ‘헌책방 순례기’가 열두 꼭지 있는데, 이 열두 꼭지에서 미처 다루지 않은 헌책방을 바탕으로 사람들한테 널리 알려지지 못한 헌책방을 찾아내어 이야기해 주고 길그림을 그리며 소식지를 펴내어 좀더 많이 즐겁게 헌책방을 드나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1998년 1월 6일에는 〈헌책방 사랑 누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식으로 헌책방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2000년 9월 14일부터 헌책방 이야기를 올리며 더욱 널리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해에 걸쳐 차곡차곡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돈있고 이름있는 출판사 세 곳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으나 모두 손사래를 치고, 나라안에서 내로라할 이름도 돈도 힘도 없는 작디작은 생태환경책 출판사인 ‘그물코’에서 인세를 안 받기로 하면서, 드디어 2004년 5월에 그동안 쓴 글을 갈무리하여 책 한 권으로 엮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숱한 헌책방에서 고마움을 듬뿍 받았고 수많은 헌책에서 사랑을 널리 얻었으니 이름난 출판사에서 큰돈 받고 책을 내는 일은 꺼림칙했습니다. 조용히 한길을 다부지게 가는 출판사에서 아무 돈 안 받고 책을 내어 헌책방마다 돌며 제 책을 선물해 드리는 길이 제가 그동안 받은 따스함을 갚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2) 책에는 무얼 담았나요?


.. 헌책방에는 고운 옷차림으로 오지 마세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쌓인 책을 고개 숙여서 볼 마음가짐으로 오세요. 두어 시간 동안 먼지 구덩이 속에 파묻혀서 옷과 얼굴과 손에 시커먼 책 먼지를 묻힐 마음가짐으로 오세요. 그러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이 반갑고 즐거운 ‘내가 모르는 좋은 책’을 헌책방에 한 번 갈 적마다 한 권씩 꾸준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  (24쪽)


 먼저,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싸구려 책, 교과서와 문제집, 아이들 책 전집 …… 으레, 헌책방 헌책은 이러한 줄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기 앞서나 이 책을 내놓고 나서나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내놓은 다음 신문잡지방송 기자들이 헌책방을 엉뚱하게 바라보며 엉터리로 다루는 기사를 바로잡으시라고 퍽 긴 편지를 써서 보내는 한편 제가 낸 책을 읽어 보시라고 했지만, 한 번도 ‘잘못된 기사가 바로잡힌’ 일이 없습니다.

 참말로 헌책방에서는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요?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헌책방에서 어떤 책을 만나고 있을까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헌책방을 취재하면서 늘 하는 말이 ‘가장 오래된 책’은 무엇이고, ‘가장 귀한 책’은 어떠하느냐는 타령입니다. 틀림없이 무척 오래된 책이 있는 헌책방이요 퍽 드물며 애틋한 책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은 이렇게 ‘값비싼 옛책(고서)’만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늘 살아 움직이는 책을 다루는 곳이요, 세월이 백 해가 흐르건 이백 해가 흐르건 우리들이 즐겁게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있는 곳입니다. 언제 보아도 새로우면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책을 만나는 곳이 바로 헌책방입니다.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 하여 수십 수백 권을 갖추어 팔 수 없는 헌책방입니다. 거의 한두 사람한테만 팔 수 있는 책을 갖가지로 갖추는 헌책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들어와서 그때그때 팔리기에 바지런히 다리품을 파는 사람과 곰곰이 헤아리는 눈썰미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기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새책방은 새로 나온 책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어느 주제 하나와 얽힌 책을 널리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헌책방은 갓 나온 책부터 나온 지 아주 오래된 책에다가, 도서관에서 ‘폐기 대상 도서’라는 이름을 붙이며 버리는 책하고, 학교에서는 ‘맞춤법이 옛날 얼개로 된 책’이라 하며 버리는 책과 함께, 사람들이 살림집을 옮기며 ‘짐덩이가 되기에 내놓는 책’까지 두루 받아들여 나누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버리는’ 책이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둘도 없는 보배’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책과 좋아하는 책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이와 같은 ‘다름’을 아주 온몸으로 느끼는 곳이 헌책방입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팔리지 않겠다’ 싶어서 버리는 책이지만, 이렇게 버려지거나 책시렁에서 사라지는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 문화사와 언론사와 생활사를 밝히는 소중한 자료가 많습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박정희 씨가 1961년 5월 30일에 뿌린 《지도자도》라는 책자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물러난다”는 조항을 넣은 팜플렛인데, 박정희 씨가 삼선개헌을 하면서 죄다 거두어들여 불태워 없애려던 책자입니다. 이런 책자는 새책방이나 도서관에 없어요. 어쩌다가 헌책방으로 흘러나오면, 또 고물상에 들어갔는데, 그 고물상을 찾아온 샛장수(중간상인)가 찾아내어 헌책방에 내다 팔면, 이제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2010년 1월에 드디어 2심 판결이 나온 ‘유재순-전여옥 판결’이 있습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는 2004년부터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정 다툼에서 말이 많은 책 《하품의 일본인》(청맥,1994)이 어떠한 책인가를 알아볼 길이 있겠습니까? 이 나라 도서관에 유재순 님이 쓴 《하품의 일본인》이 번듯하게 자리잡고 있을까요? 그러나, 이 책은 헌책방에는 있습니다. 다만, 늘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 헌책방에는 이 책이 들어옵니다. 저도 이 책 《하품의 일본인》을 헌책방에서 세 번 만났습니다. 〈월간조선〉 기자 조갑제와 정호승이 함께 지은 《김현희의 하느님》(고시계,199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쓰는 정호승 님이 〈월간조선〉 차장으로서 조갑제 씨한테서 배웠음을 아는 분은 생각 밖으로 퍽 드뭅니다만, 이 두 사람이 《김현희의 하느님》 같은 책을 함께 쓴 줄을 아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다른 때도 아닌 전두환-노태우 두 군사독재자가 정권을 움켜쥐고 있을 때에 〈월간조선〉 기자로 일하며 낸 이 책 또한 도서관에서 찾아볼 길이란 없습니다. 아주 마땅하게도 헌책방을 뒤지고 훑으며 찾아냅니다. 《백두산의 옛 전설》 같은 북녘책이나, 《조선족백년사화》 같은 연변책 또한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갖추지 않습니다. 정치나 사상하고는 아무런 이음줄이 가 닿지 않는 이 같은 책들이라면 이 나라 새책방과 도서관에서도 갖추어 주면 좋으련만, 이런 책마저 남녘땅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 눈밝히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 서울에서 파는 헌책과 제주에서 파는 헌책과 대구에서 파는 헌책과 청주에서 파는 헌책이 다릅니다 … 헌책방 헌책은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또각또각 단추를 누르며 주문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 헌책은 책으로서도 값어치가 있고 책에 담은 줄거리로도 우리에게 즐거움과 일깨움을 줍니다. 나아가 옛 느낌을 지금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다른 이가 읽은 낡거나 오래된 책’만을 헌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  (56∼58쪽)


 다음으로는 ‘헌책’이 무언지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을 찾아가 보면 서로 엇비슷해서 어디를 가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 비슷합니다. 이 책방에 가면 이 갈래 책이 더 있다거나, 저 도서관에 가면 저 갈래 책을 남달리 갖추었다고 하는 빛깔이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 도서관은 공부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네 새책방은 잘 팔리는 책으로 장사하는 돛데기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은 새책방이요 도서관입니다.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든, 서울 시내 어디를 가든 다 다른 헌책방입니다. 동네헌책방이든 큼직한 헌책방이든 모양새와 매무새가 다릅니다. 갖춘 책이 다르고, 사고파는 책값이 다릅니다. 어느 곳에서는 어린이책이 값싸고, 어느 곳에서는 인문사회과학책이 값쌉니다. 대전에는 대전과 충청도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헌책이 있고, 광주에는 광주와 전라도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잇는 헌책이 있어요.

 우리가 다리품을 팔면서 찾아가 둘러보고 헤아리며 사들이는 헌책 하나는, 오래된 종이를 만지는 느낌뿐 아니라, 책을 처음 만들었을 때 느낌과 때로는 지은이가 누군가한테 선사한 자국을 보면서 받는 느낌까지 풋풋하게 내 마음속로 삭이거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줄거리만 살피지 않습니다. 책 한 권과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째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책 문화가 더없이 낮습니다. 우리는 ‘경제 선진국’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돈벌이에만 목매달고 있는 탓입니다. 앞선 나라가 되자면, 돈만 잘 버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 누구나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경제 선진국이란 그지없이 못난 이름이요, 참다운 앞선 나라라 한다면, ‘문화 선진국’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이리하여,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건물임자가 멋대로 뻥튀기하듯 올리는 가게세 때문에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헌책방이 건물 한켠에 들어오면 다시 옮기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쓰고 도와줄 수도 있는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헌책방만이 아닙니다. 자그마한 새책방 하나가 깃들어도 오래오래 자리잡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 헌책방은 ‘책방 장사’가 아닌 ‘고물 장사’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아직까지도 적잖은 이들은 ‘헌책방 = 고물 장사’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새책 장사이든 헌책 장사이든 똑같은 책장사인 줄을 깨닫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헌책방 장사를 아주 낮보고 깔보는 셈입니다. 우리네 헌책방은 언제 한 번 제대로 책 문화로 꽃피우지 못하는 찬밥 대접이었고, 낡아빠진 책이나 팔아먹는 ‘떨거지’쯤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생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3) 나는 계약서를 이렇게 썼다


 1.저작권법 제3장 출판권의 조항을 따른다.
 2.인세는 책에 매긴 값으로 따져 10퍼센트로 하되, 팔린 부수로 셈한다.
  (팔린 부수가 10만 권 단위로 넘을 때에는 1퍼센트씩 올린다.)
 3.출판권자가 책이름을 짓고 책값을 매긴다.
 4.지은이한테 첫 판은 10권, 새로 찍을 때에는 3권을 보낸다.
 5.지은이가 책을 살 때에는 책에 매긴 값으로 따져 70%로 판다.


 지난 2003년부터 올 2004년에 걸쳐 저작권법 공부를 아주 부지런히 했습니다. 저작권법이란 ‘저작물을 만드는 사람(책이나 노래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공연이나)’한테 권리를 지켜 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작권법이 나쁘게 쓰이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출판사에서 지은이한테 내미는 ‘출판권 설정 계약서’를 보면, ‘대한민국 저작권법’을 거꾸로 풀이해서 저작권자한테 있는 권리를 빼앗아 마치 출판사한테 그러한 권리가 있는 듯 쓰는 일이 흔합니다. 제가 몸담았던 출판사도 그러했고, 제가 아는 분들 출판사도 그러합니다. 저작권협회에서 만든 틀과는 사뭇 다릅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우리한테는 우리 얼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책을 내려는 저작권자나 책을 펴내는 출판사나 저작권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계약서를 쓰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더군요. 따지고 보면, 책이름이나 책값을 출판사 마음대로 붙일 수 없습니다. 저작권법을 보면 책이름이나 책값은 저작권자(글쓴이)하고 뜻을 모아서 붙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는 겉그림과 판크기와 종이까지도 저작권자와 ‘협의’하라고 밝혀 놓습니다. 교정과 교열도 저작권자가 할 몫으로 되어 있으며, 다만 출판사에서 ‘도와줄 수 있다’는 보탬말이 있습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인데, 저작권자는 책에 얽힌 모든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출판사는 출판권자로서 책을 만든 다음에 ‘파는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출판사가 ‘책을 제대로 팔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저작권자는 언제라도 이 책을 판매중지를 시킬 수 있도록 저작권법에 똑똑히 나와 있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까지 물릴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약서’에 낱낱이 밝히는 출판사는 아직까지 못 보았습니다.

 그래, 그물코 출판사하고 계약서를 쓸 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계약서는 제가 준비할게요.” 하고요. 그러면서 조항을 딱 다섯 가지로 줄여서 계약서를 마련했습니다. 요즈음은 계약서를 쓸 때에 다른 조항은 하나도 안 넣고 오로지 하나, 1번만 넣습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일부개정 2003.5.27 법률 제06881호)을 따른다”고만 적어 넣습니다. 이런저런 군말이란 부질없고, 그저 우리 법률에 나와 있는 대로만 하면 잘못되거나 어긋날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책을 낸 출판사에서는 계약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4) 책을 엮은 사람한테 듣다


 제 책을 내기 앞서, 제 책을 내주겠다고 한 출판사 일꾼한테 몇 가지를 여쭈었습니다. 먼저,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낼 까닭이 있었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없어져 가는 것들, 꼭 있어야 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을 조용히 한 사람이 오래 찾은 것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 헌책방을 가면 더 많이 찾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궁금해서라도 한 번 가 보면 자기 나름대로 헌책방의 매력을 찾게 될 거 같아요. 찾고 싶던 책을 찾게 되는 그런 것들 … 그래서 저와 사장님도 이 책을 낸 뒤 헌책방을 자주 가게 되었어요. (절판되어 찾기 어려운) 만나고 싶던 책도 만나게 되었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책을 내며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요?” 하고 여쭈었고, 출판사 일꾼은, “가장 빨리 눈에 띈 건 틀린 글씨 많은 거, 표지. (표지를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낱말모음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찾아가는 길그림이 다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자 마자 이사하고 없어진 헌책방이 있고. (버스길도 다 적었는데, 이명박 시장이 7월 1일부터 버스길을 다 바꾸는 바람에 쓸모없이 되어 버리기도 했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물코 출판사는 환경책을 전문으로 내는 곳인데,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과 환경은 어떻게 이어진다고 보시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쓰고 버리지 않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중간 장치, 중간 기능이랄까요, 책에서 ‘하수구 기능을 하는’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다시 읽을 수 있고, 읽을 만하고, 읽으면 좋은 책인데, 그걸 버리지 않고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 굳이 새 거 사지 않고 헌책 찾아 읽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5) 헌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꾸기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 실은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꼭지를 보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헌책방에서 만난 신문자료를 다룹니다. 언젠가는 1940년에 나온 〈조선일보〉 호외 한 장을 헌책방에서 찾았는데, 그 호외는 일본 내각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알렸습니다. 호외는 잠깐 뿌리고 사라지기에 쉽게 만나기 어렵지만, 신문이 흘러온 역사를 밝혀 주는 소중한 언론사 자료예요. 이런 자료를 하나하나 만나다 보면 잊혀지고 감춰졌던 우리 역사를 차근차근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이나 자료가 뭐 대단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지만, 그런 물음에는 늘 “참으로 대단하답니다” 하고 대꾸하곤 합니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교수,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서울대 신용하 교수를 비롯해 숱한 교수와 기자와 지식인들이 헌책방에서 소중한 자료를 캐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갈래와 얽힌 자료를 찾아내고자 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분들 누구나 헌책방에서 만나는 자료를 놓고 한낱 ‘종이뭉치’라 하거나 ‘싸구려 헌책’이라 하지 않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애틋한 책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헌책방이라는 곳은 소중하거나 애틋한 역사 자료라든지 생활문화 자료를 캐내는 곳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이삿짐 뭉치와 함께 이러저러한 자료가 함께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평론가 정진국 씨는 《잃어버린 앨범》(눈빛)이라는 책에서 ‘사진관에서 찍는 가족 단체 사진’이 우리네 옛 생활문화 역사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헌책방을 다니다 보면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떠나는 집에서 내놓은 ‘사진첩’을 가끔가끔 구경하곤 합니다. 이 낡은 사진첩은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이 어떤 옷차림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가를 살펴보도록 돕는 자료가 됩니다. 말 그대로 ‘생활문화 역사’를 보여줍니다.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그렇습니다. 서울 불광동 〈작은우리〉 꼭지에서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때, 베트남에서 보낸 ‘군사우편’ 봉투와 얽힌 여러 이야기를 다룹니다. “새마을 웃음을 짓는 국군장병”, “색출하자 붉은 마수” 그림이 들어간 끔찍한 엽서 …… 이 모두가 제도권 안쪽에는 거의 드러나지 못한 채 파묻히고 있는 우리 삶 발자취입니다.

 시간을 죽인다거나 심심풀이로, 가벼운 소설 한 권 찾을 마음으로도 헌책방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가는 분이 많습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러도 헌책방에 갑니다. 좀 값싸게 책을 사고픈 마음에 가는 분이 많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고 다른 이야기이니, 다 다른 까닭으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이런 책을 찾는 사람한테는 이런 책이 있고, 저런 책을 찾는 사람한테는 저런 책이 있습니다. 하이틴로맨스소설이 한켠에 꽂히고, 세계문학전집이 한켠에 꽂힙니다. 둘은 나란히 꽂히는 책이요 똑같이 사랑받는 책입니다. 높이와 낮이가 따로 없습니다. 깊이와 얕이 또한 따로 없습니다. 모든 책은 고르게 다룹니다. 모든 책은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서울 인사동 〈통문관〉 이겸노 님한테 ‘풀꽃상’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만, 〈통문관〉 큰일꾼한테뿐 아니라 여느 동네헌책방 일꾼한테도 똑같이 풀꽃상을 줄 노릇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그렇다고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 훈장을 받거나 공로패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고갱이는 ‘헌책방 장사’를 한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하나 쥐어주려고 애썼던 일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는 거지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아도 뒤에서 힘이 되도록 밑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밑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들은 헌책방 주인이기도 하고, 구멍가게 주인일 수도 있으며, 여관 주인일 수도 있고, 하숙집 주인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네들이 뭐 보상받겠다고 나서겠습니까 ..  (308∼309쪽)


 세상을 바꾸는 힘은 보통사람들 손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보통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바꾸고, 여론을 모아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뜯어고치고, 집회나 시위를 벌이기도 하면서 우리 나라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모든 일은 ‘보상이나 훈장이나 공로패’를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 함께 즐거웁고자 하는 일입니다.

 헌책방에서는 반가운 책 하나를 값싸게 만나기도 하지만 소중한 자료 또한 만납니다. 사람들 살아가고 부대끼는 모습을 느끼고, 우리한테 그지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싱그러운 자리가 어디이며 어떠한 모습인가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책과 사람이 하나하나 모이고 뭉치면서 바야흐로 우리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올망졸망 북돋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을 고이 품에 안으면서, 이 믿음에 살포시 힘을 실으면서, 우리들 보통사람 힘을 하나로 엮어낼 바탕을 배우는 ‘헌책 하나를 즐기자’는 뜻에서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 하나 어줍잖게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4337.9.6.달.처음 씀/4343.1.16.흙.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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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 좋아하세요? - 대전 동구청 앞 헌책방이 모여있는 거리
    from 생활미감,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행복 2010-04-15 11:08 
    헌책 좋아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에서 나는 향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그 향들이 좋아하죠. 그래서 가끔은 책이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헌책방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전에서도 그 향을 즐길 수 있는 운치있는 헌책방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위치는 대전 동구청 앞. 행정구역 상으로는 동구 원동(중앙시장길 100번지 일대). 서점의 수는 약 20여개가 모여있으며, 헌책 뿐만 아니라 고서적,..
 
 
카스피 2010-01-18 11:48   좋아요 0 | URL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예전에 본 책이네요.저도 헌책방을 자주 드나드는데 예전 최종규님과 같이 헌책방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올리신 헌책방지도가 많은 도움이 도었지요.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강원도,경상남북도(대구,부산은 제외)만 못가보고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것 같군요.심지어 제주도 한밭서점까지 다녀왔네요^^
그나저나 헌책방은 계속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새책도 워낙 안팔려서 헌책방으로 오는 책들이 많이 줄어서라고 오복서점 쥔장께서 말씀하시더군요.참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파란놀 2010-01-18 16:38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책을 '골고루 읽고 사랑하며' 내 삶을 따스히 보듬으면서, 헌책방뿐 아니라 동네 작은 새책방도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카스피 2010-01-25 22:18   좋아요 0 | URL
맨위의 사진은 지금은 증산동에 있는 예전 모아북 내부 사진같군요.두번째는 홍제 대양1서점 사장님같고,세번쨰는 뿌리서점 사장님 사진같고,마지막은 서울역부근에 있는 헌책방(갑자기 이름이 기억안나네요)사진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