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이미지 2 - 한국전쟁에 휩싸인 사람들
박도 옮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RA) 사진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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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읽기 없이 사진찍기에 갇힌 한국사람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6] 박도 엮음,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



- 책이름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
- 사진 : 한국전쟁 미군 종군기자
- 엮은이 : 박도
- 펴낸곳 : 눈빛 (2006.6.25.)
- 책값 : 35000원



 (1) 사진읽기와 사진찍기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골목길을 사진으로 여러 해 또는 여러 달 담은 다음에 사진잔치를 여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김기찬 님을 빼놓고 ‘골목길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엮어 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담을 만큼 눈에 뜨이거나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이 되는 골목길이라고는 하지만, 책으로 엮었을 때에는 팔기가 썩 힘들어 출판사에서 꺼리기 때문일까요. 김기찬 님 앞으로나 뒤로나 골목길을 찍는 사람은 많으나 김기찬 님이 이른 사진예술에는 가 닿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사진감은 골목길이라고 하나, 정작 골목동네 삶자락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얼마 앞서 인천 송림4동 골목길 한켠에서 사진잔치가 열렸습니다. 이곳 인천 송림4동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은 분이 그곳에 있는 골목집 담벼락에 사진 서른 점쯤을 붙이며 조촐하게 마련한 자리입니다. 빗줄기 꾸준하던 일요일 아침에 화평동부터 걸어 송현1ㆍ2ㆍ3동을 거쳐 송림2동과 6동을 지나 4동에 다다르며 담벼락 사진 몇 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딱히 이 사진잔치를 구경할 마음에 송림4동까지 걷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골목동네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담아서 어떻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번들번들한 종이에 뽑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피식 하는 웃음조차 나지 않습니다. 슥 한 번 둘러보고는 다시 더 들여다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사진이 붙은 담벼락 옆으로 난 골목으로 조용히 들어갑니다. 잠자리채와 어울리고 있는 꽃그릇에는 가을 김장거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빗줄기 떨어지는 골목집 처마와 처마 사이는 좁아 작은 우산임에도 반을 접어서 걸어야 합니다. 골골샅샅 새삼스레 골목을 돕니다. 옆으로 이어진 송림4동 천주교회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성모님한테 꾸벅 절을 하는데, 둘레에 떨어져 있는 가을 나뭇잎 빛깔이 퍽 곱구나 싶어 사진 한 장 담습니다. 제 사진기와 렌즈는 화각이 좁아 울긋불긋 빛깔이 어우러지는 천주교회 안마당과 골목동네 이웃집을 나란히 사진 한 장에 우겨 넣지 못합니다. ‘참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굳이 한 장에 우겨 넣어야 하지는 않잖아?’ 하고 새롭게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 좋으니까요.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왜 나는 저 담벼락에 붙은 사진들이 못마땅하다고 느끼고 있는가를. 골목동네와 골목동네 사람을 찍으려 했다는 저 사진들은, 곰곰이 따지면 골목동네를 찍지 않았습니다. ‘골목동네 느낌이 나도록 하는 풍경’을 하나 찍었고, ‘골목동네 사람들 얼굴 모습’을 하나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골목길 풍경’을 찍은 사진이요,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람들 얼굴’을 찍은 사진인 셈입니다.

 비오는 일요일 한낮을 지날 무렵, 낮은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골목집 안마당에서 남자 어르신 여럿 목소리가 왁자하게 울려퍼집니다. 남자 어르신 여럿은 겨울을 부르는 비를 맞이하면서 술 한잔을 즐기고 있습니다. 담벼락에서 까치발을 하면 어르신들이 어떻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고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그머니 지나칩니다. 저로서는 어르신들 목소리만으로도 술내음을 맡았습니다.

 재능대학교 높은 건물이 우람하게 올려다보이는 달동네 꼭대기에 닿습니다. 나무전봇대랑 사이좋게 어울려 있는 골목집 한 채는 담벼락에 무청을 말리고 있습니다. 사진 석 장 담습니다. 이 삶자락이 고스란히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한 장이나 두 장, 때로는 석 장쯤 사진으로 담습니다. 한 번에 한 장쯤 찍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다시 한두 장 새롭게 담습니다. 그런 뒤 또 찾아와서 새삼스레 한두 장 다시 담고, 이러기를 여러 해 되풀이합니다.

 저는 헌책방을 사진에 담을 때에도 이렇게 해 왔습니다. 한 번 찾아가서 그날 찍은 사진만으로도 그 헌책방 이야기를 낱낱이 보여줄 수 있도록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날 한 번 찾아가는 발걸음만으로 사진을 마무리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헌책방 사진을 찍은 지 벌써 열한 해를 넘기고 있는데, 단골로 다니는 헌책방마다 그 한 곳을 찍은 사진만 모아도 사진책 여러 권 낼 만큼 되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아직 멀었다’입니다. 헌책방이 스스로 담아내고 있는 햇수와 너비와 눈물과 깊이가 어떠한데 고작 열 몇 해 사진을 담고 이야기를 듣고 온몸으로 부대꼈다고 해서 그곳을 ‘알’고 ‘보’았고 ‘느꼈’다고 하면서 섣불리 사진책 하나를 마무리할 수 있겠습니까.

 글을 쓰는 사람은 퍽 바지런히 글을 읽습니다. 내가 쓰는 글과 견주어 다른 사람이 쓰는 글을 아주 많이 읽습니다. 내 글을 한 줄 쓰려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책으로 치면 열 권 넘게 읽습니다. 때로는 백 권쯤 읽습니다. 웬만큼 훌륭하다고 느낄 만한 분들 책이라면, 이분이 이 한 권을 써내기까지 읽은 다른 사람 글책은 자그마치 만 권이나 이만 권쯤은 된다고 느낍니다. 훌륭한 책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을 태어나도록 이끌어 준 또다른 책 만 권을 헤아립니다.

 옛말에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읽기로는 훌륭한 책이지만, 이 책을 쓴 분은 늘 부끄럽다고 여기겠지요. 그래, 글쓴이는 부끄럽다고 여기는 읽는이는 훌륭하다고 받아들인 책 하나는 수많은 다른 책나라로 다리를 이어 주는 노릇을 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한테 조용히 인사를 건네면서 나 스스로 더욱 담금질을 하고 좀더 갈고닦기를 하라고 어깨를 토닥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퍽 게을러 다른 사람 사진을 거의 안 읽습니다. 아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글쓰기에 앞서 글읽기가 있듯이, 그림그리기에 앞서 그림읽기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찍기에 앞서 사진읽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읽기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사진읽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가운데 사진찍기만 무턱대고 나섭니다. 마치, 다른 사람 작품을 들여다보는 일이 내 사진을 더럽히거나 얼룩지게 하기라도 하듯이. 괜히 영향을 받거나 비슷한 틀이 나오도록 하기라도 하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거룩하고 뛰어나고 빼어나고 훌륭했던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눈을 감는 마지막날까지 다른 사람 글과 그림을 들여다보고 읽어내고 삭여내어 받아들이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빚어낸 글과 그림 부피보다 다른 이 글과 그림을 받아들인 부피가 훨씬 큽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 글과 그림을 흉내내지 않으며 당신 글과 그림을 일구었습니다.

 오늘날 사진쟁이들은 다른 사람 작품을 거의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조나 개성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생각힘이 없습니다. 넋이나 얼 또한 없습니다. 외려 죽은 작품만 쏟아집니다. 그리고, 죽은 작품만 숱하게 쏟아내면서 스스로 죽어 있는 작품인지 아닌지 깨닫지 못합니다.

 흔한 말로 한국땅에서 사진기 다룬다는 사람이 천만이 된다고 하는데, 더없이 아름다운 사진책 하나가 천만 권 팔리기를 바랄 수 없다손 치더라도 만 권조차 아닌 천 권마저 팔리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우리 모습이 이렇습니다. 백 권이나마 팔리면 잘 팔린 셈입니다. 한 해 동안.

 모두들 읽기는 하지 않는 주제에 ‘내가 사진을 얼마나 잘 찍었는지 좀 들여다보쇼!’ 하면서 끝없이 당신들 작품을 쏟아내기만 합니다. 알음알음으로 서로서로 사진잔치에 찾아가 주기는 하지만, 서로서로 찾아가 주어도 서로서로 어떤 사진을 어찌어찌 찍었는가를 살피지 멋힙니다. 살폈어도 속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잘못 찍었으면 나무라고 엉뚱하게 찍었으면 꾸짖으며 형편없이 찍었으면 다그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찍기에 앞서 사진읽기가 안 된 요즈음 사진쟁이들은 ‘사진말하기’조차 할 줄 모릅니다. 아니, ‘사진말하기’는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요.

 이리 비틀 저리 뒤틀 하면서 갈팡질팡이요 엉망진창입니다. 새로운 사진쟁이라면서 이름과 얼굴 들이미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하나도 새롭지 못합니다. 사진예술을 한다고 내세우고 있으나 하나도 예술다움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2009년 사진밭이 쑥대밭이라 한다면, 사진찍기에 앞서 사진읽기를 할 줄 알거나 하려고 힘쓰는 사진쟁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데에서 골칫거리가 싹트고 있다고 봅니다.


 (2)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두 번째 이야기


 박도 할아버지는 지난 2006년에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을 내놓았습니다(2004년에 1권, 2007년에 3권을 냈습니다). 당신이 찍은 사진이 아니지만, 당신이 엮은이 이름을 걸었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참말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누가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알기 쉽지 않은 사진들을 알뜰히 그러모아서 사진책을 엮었습니다.

 틀림없이 주한미군이 찍은 사진이었을 테며, 종군 사진기자나 사진작가가 찍기도 했을 사진이라고 봅니다. 이 가운데에는 임응식 님이 찍은 사진이 함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임응식 님은 한국전쟁 때 미군에 사진기자로 들어가서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모든 필름을 미군한테 내어주어야 했다고 했거든요.

 한국땅으로 들어왔던 미국 군부대가 수많은 사진쟁이를 부려서 숱하게 찍고 모으고 한 사진들로 사진책을 엮었는지 그냥 자료로만 간수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들 미국 군부대는 한국전쟁 때 찍은 한국땅 한국사람 모습을 내다 버리지 않았습니다. 알뜰하게 건사해 놓았습니다. 우리한테는 없는 우리 삶자락 이야기가 외려 미국땅 어느 관공서 도서관 한켠에 얌전하게 모셔진 채 오래도록 찾는 이 하나 없이 묻혀 있었습니다.


..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은 투명유리로 된 최신의 6층 건물로, 그 규모도 엄청 컸지만 그곳에 소장한 수백만 파일의 각종 기록물의 방대함을 보고는 탄복하였다. 5층 자료실에서 비밀 해제된 한국 관련 사진(주로 한국전쟁 사진)들을 보자 50여 년이 지난 그때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한국전쟁 당시 나는 여섯 살 난 소년으로 기억들이 가물가물 남았는데 그 사진들을 보자 바로 나와 내 이웃들의 살아 있는 모습처럼 다가왔다. 순간 나는 그 사진들을 모두 우리 나라에다 옮겨 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다 옮겨 오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자료실에서 사진 스캔은 허용되기에 재미동포에게 스캐너를 빌려서 40여 일 동안 수십만 장의 사진 가운데 480여 매를 골라 컴퓨터에 담아 왔다 ..  (엮은이 말/박도)


 우리한테는 어떤 ‘기록’이 있고 ‘자료’가 남았다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기록을 하는 공공기관이 있는지 궁금하며, 기록을 하는 문화예술교육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료를 간수하는 공공기관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며, 자료를 그러모으는 문화예술교육인은 또 얼마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은 ‘기록예술’이라는 이름이 나란히 붙습니다만, 사진을 기록하는 예술로 끌어올리는 사진쟁이는 한국땅에 몇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한국땅에서 사진을 하는 분들은 ‘기록’이나마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예술’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기록도 예술도 아닌 사진을, 그냥저냥 사진이라는 허울만 뒤집어쓴 채 놀음놀이에 빠져 있지는 않을까요?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을 사둔 지 퍽 되었으나 책을 제대로 펼칠 겨를이 없이 지냈습니다. 책상맡에 두기는 했으나 펼치지 못한 채 두 해 가까이 먼지만 먹이고 있었습니다. 세 시간 남짓 비를 맞고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찍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이 사진책이 보여 다른 일을 젖혀 놓고 한참 여러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사진책을 그러께 처음 장만하던 때 보기는 보았겠지만 그때에는 저 스스로 샅샅이 읽어내면서 받아들일 만한 가슴이 못 되었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이태를 흘려보내며 골목동네 사람으로 살아온 다음에 비로소 읽어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에는 ‘인천’ 모습을 담은 사진이 꽤 많이 실려 있습니다. 아마 이 책에 싣지 못한 인천 예전 모습은 훨씬 많으리라 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미군은 인천을 거쳐 서울로 들어섰으며, 인천에는 대단히 큰 미군부대가 있었으니까요. 요사이야 다른 데에도 미군부대가 엄청나게 많지만, 이무렵을 떠올리면 ‘서울로 들어서는 문이요 서울을 지키는 문’인 인천이다 보니, 인천에서 미군이 오락가락하며 담은 사진은 따로 한 권으로 묶어도 될 만큼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인천시 문화부 일을 맡은 공무원은 이 사진책을 알아보지 않습니다. 인천문화재단 공무원 또한 이 사진책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지역학을 한다는 교수님 또한 이 사진책을 껴안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사진을 하고 역사를 하고 무어를 하고 한다는 지식인과 예술인 또한 이 사진책을 보듬지 않습니다.

 사진책에 실려 있는 ‘온통 나무전봇대가 줄을 잇는 저 동네’는 인천 어디메일까를 한참 떠올려 보지만 떠오르지 않습니다. 1950년대 인천은 매우 좁기 때문에 어딘지 어림은 되나 제대로 짚이지 않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2009년까지 인천 옛 도심지에 남아 있는 나무전봇대 가운데에는 이때 1950년대에 일찌감치 박아 놓은 녀석들이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여태껏 살아낸 녀석일 수 있습니다. 뭐, 꽤나 많은 집들은 쉰 해나 예순 해 역사를 아무렇지 않게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 찬찬히 읽은 다음 덮습니다. 이제 책꽂이 잘 보이는 자리에 곱게 꽂아 놓습니다. 박도 할아버지가 이 책이름을 지었는지 출판사 편집자나 사장이 붙였는지 모르나,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립니다. 참말로 지울 수 없는 모습들입니다. 잊을 수 있으나 지울 수 없는 모습들입니다. 모른 척할 수 있으나 지울 수 없는 모습들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오늘 우리 삶자락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적바림해 놓고 있지 않다고 하여도 오늘 우리 모습은 어떻게도 지울 수 없고 감출 수 없고 꾸밀 수 없고 버릴 수 없습니다. 멋진 모습이건 훌륭한 모습이건 더 내세울 수 없으며, 못난 모습이건 모자란 모습이건 뒤에 꿍쳐 놓을 수 없습니다. 모두 우리 모습입니다. 모두 우리 삶입니다. 모두 우리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 사진쟁이가 이 나라 삶자락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여미어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삶은 그예 우리 삶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담아내지 못하고,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두 권에 담긴 모습처럼 ‘딴 나라 사람 손’에 담기는 우리 모습이 될 텐데, 이러하든 저러하든 우리 삶은 우리 삶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앞으로 2059년이 되면, 2009년을 돌아보는 사진자료를 그러모을 때 한국 사진쟁이 손으로 담은 사진은 한 장조차 없이 ‘딴 나라 사람 손’으로 담은 사진만 죽 그러모아서 “2059년판 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나오지 않으랴 싶습니다. 걱정이 아닌 참모습이요, 슬픔을 넘어 헛웃음입니다. (4342.1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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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힘이 세다 - 앙성댁 강분석이 흙에서 일군 삶의 이야기
강분석 지음 / 푸르메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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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22 ― 사랑씨 없는 도시사람이 되어 간다지만
 : 강분석, 《씨앗은 힘이 세다》


- 책이름 : 씨앗은 힘이 세다
- 글 : 강분석 (http://www.angsung.com)
- 펴낸곳 : 푸르메 (2006.5.19.)
- 책값 : 9000원



 (1)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찾는 씨앗


 사람은 누구나 씨앗 하나 품고 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어버이한테서 목숨을 받아 태어날 때부터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날 목숨씨를 아버지와 어머니한테서 함께 받습니다. 어느 한쪽 씨앗만으로는 우리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곡식에는 씨눈이 있습니다. 이 씨눈이 트고 자라며 더 많은 열매를 맺어 우리 밥상에 오릅니다. 쌀과 보리뿐 아니라 콩과 팥 또한 씨앗이며 곡식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고기에도 씨앗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버이한테서 목숨씨를 얻듯 짐승 또한 제 어미한테서 목숨씨를 얻습니다. 그저 우리들 거의 모두 언제나처럼 ‘토막토막 잘게 썰린 채 불에 익히기를 기다리는’ 고깃점만 보거나 밥집에서 다 익혀 놓은 고깃점을 받아들일 뿐이라 살갗으로 못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든 푸나무이든 물뭍짐승이든 씨앗에서 비롯합니다. 씨앗에서 비롯하며 씨앗을 남깁니다. 씨앗에서 비롯하여 씨앗을 남기기까지 고이 삶을 꾸리는 한편, 다른 목숨한테 밥이 됩니다. 사람이든 푸나무이든 물뭍짐승이든, 저마다 목숨을 잇자면 다른 씨앗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목숨을 내 몸에 삭여 새 기운을 얻어야 합니다. 홀로 살 수 없는 사람이요, 홀로 살지 못하는 푸나무요, 홀로 살아가지 못하는 물뭍짐승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지켜야 한다고 외칠 때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이어가도록 하자는 뜻일 텐데, 이 자연 지키기란 다름아닌 ‘먹이사슬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다양성을 건사하는 일’입니다. 사람만 배불리 먹는다든지, 사람 가운데 몇몇 겨레나 나라만 배터지게 먹는다든지 하지 않게끔, 알뜰살뜰 올바르게 추스르자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터는 어떻습니까. 우리 삶터는 서로가 서로를 지키거나 보듬거나 껴안거나 사랑하는 삶터인지요? 우리 삶터는 서로서로 오붓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 만한 넉넉하고 따스한 삶터인지요?

 서울 광화문에 자리한 한글학회에 일을 나오고 있는 요즈음, 낮밥 때에 맞추어 문방구에 다녀옵니다. 문방구 다녀오는 길에 큰길 안쪽 모퉁이에 큼지막하게 문을 연 ‘ㅎ플러스 슈퍼마켓’이라는 데를 들여다봅니다. 요사이 말 많은 곳 가운데 하나인데, 돈이 많은 큰 회사들이 ‘동네 구멍가게’ 씨를 마르게 한다는 그 ‘슈퍼마켓 아닌 슈퍼마켓’입니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글바글이요, 가게를 드나드는 손님 또한 바글바글입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서울 광화문 같은 데에는 ‘동네 구멍가게’가 들어설 수 있을까?

 지난주에 종로 안쪽 골목을 거닐다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한 병을 살까 하고 값을 여쭈니 640들이도 아닌 500들이 중간병을 2100원 달라고 합디다. 이 구멍가게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편의점에서도 640들이 보리술을 2000원 받고 있는데. 구멍가게 할매는 외국 관광객한테 바가지를 씌우면서 당신 살림을 꾸리거나 가게를 지키는 셈이었을까요? 자리값을 그쯤은 받아야 하는 셈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서울 종로 같은 데에는 골목길이 골목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런 곳 구멍가게 또한 구멍가게라 하기 어려우며, 구멍가게가 들어설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서울 광화문이나 종로거리에는 ‘근대화슈퍼’나 ‘연쇄점’ 같은 구멍가게는 또아리를 틀 수 없고, ‘ㅎ 슈퍼마켓’과 ‘ㄹ 슈퍼마켓’만 들어서야겠다고 느낍니다.

 낮밥 때를 맞추어 길거리에 쏟아져 걷는 사람들 숲을 헤치고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하나같이 잿빛이나 검은빛 양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은 담배나 커피잔을 들고 하하호호 웃고 맑은 얼굴빛입니다. 문득, 속으로 ‘서울 도심지에는 굳이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 따로 없구나.’ 하고 느끼면서, ‘서울뿐 아니라 부산과 대구와 인천과 광주와 대전 같은 큰도시 번화한 거리에도 아무런 철과 날씨가 아랑곳하지 않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철이 바뀌어도 철이 바뀌는 줄 모를 뿐더러, 느낄 까닭이 없는 이곳에서는 사람이든 푸나무이든 짐승들이든 옹근 목숨씨 하나로 자리잡기 힘들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언제나 똑같은 회사일이요 사무직이지, 무슨 씨앗이고 철이고 목숨이고 있겠습니까. 좀더 나은 대접과 연봉과 보고서와 성적이지, 어떤 하늘이고 꽃잎이고 바람이고 깃들겠습니까.

 아침마다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으로 걸어오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경복궁과 인왕산 위로 하늘이 시커멓습니다. 먹구름이 깔려 시커멓지 않고, 서울에 잔뜩 깔린 먼지와 배기가스 때문에 시커멓습니다. 가뜩이나 서울은 우줄우줄 산 때문에 바람이 쉬 빠져나가지 못하는데, 인왕산과 북한산 둘레로 높직높직 아파트가 새로 올라서면서 먼지와 배기가스는 하염없이 늘기만 합니다. 경제위기 소리가 잦아든 지 오래이고, 기름값 걱정 같은 소리는 하기 좋아서 하는 말 뿐이며, 음식쓰레기는 늘기만 할 뿐 줄어들지 않습니다. ‘밥그릇 비우기’를 하는 분이 제법 늘어 몇 만 사람쯤 되는 듯하지만, ‘밥그릇 비우기’를 안 할 뿐 아니라 생각조차 않는 사람은 수천만 사람입니다. 서울땅에서 씨앗을 찾거나 말하거나 나눌 수 있는 길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2) 시골 농사꾼이 되며 깨달은 씨앗


 벌써 열두 해째 농사짓기를 하고 있는 강분석, 유근세 두 사람은 당신들 땀방울을 그러모아 지난 2006년에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을 찾아온 사람들한테 ‘도시에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땅한테도 고맙고 당신들이 지은 곡식을 사 주는 도시사람한테도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처음 시골에 자리잡을 때에는 마땅한 벌이구멍이 없어 번역일을 하며 겨우겨우 메꾸었다고 했는데, 이렇게 메꾸면서도 ‘죽어라 일만 하는 허리 휘는 농사꾼 삶’이 아닌 ‘농사짓는 틈틈이 쉬면서 하늘을 볼 느긋함’을 품을 줄 아는 가슴 따스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시골살이를 몰랐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않던 두 사람인데, 어느덧 쉰다섯 나이 가운데 열두 해를 시골에서 보냈고, 앞으로 시골에서 보낼 햇수는 길어지기만 할 테니, 머잖아 도시살이 햇수 못지않게 시골살이 햇수가 채워질 테고, 차츰차츰 당신들이 도시살이 하던 나날을 떠올리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골에서 땅을 부치고 땅한테서 얻으며 보내는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로운 배움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배움은 앞으로도 꾸준하게 새로워지리라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시골살이 봄여름가을겨울은 2009년과 2008년이 다릅니다. 2008년과 2007년이 다르고, 2006년과 2010년이 같을 수 없습니다. 해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며 날마다 다릅니다. 늘 똑같이 하는 일이란 없고, 늘 똑같이 느낄 모습이란 없습니다.

 산이, 논밭이, 내와 물이, 바다가 언제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 적이 있겠습니까. 늘 다른 자연 터전입니다. 다만, 우리가 늘 다른 자연 터전을 알아차릴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입니다. 늘 다른 자연 터전을 우리가 어느 만큼 새기고 삭이며 받아들일 수 있느냐일 뿐입니다.

 이리하여, 늘 다른 자연 터전을 가슴으로 껴안는 우리들이 될 때에는, 하루하루뿐 아니라 사람사람을 다 다른 목숨으로 돌아보면서 껴안는 우리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요 생각이요 움직임임을 느끼는 우리들이 됩니다. 나를 속깊이 들여다보며 사랑할 뿐 아니라, 내 둘레 사람들 또한 속깊이 톺아보면서 믿고 손잡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는 우리들이 됩니다.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 잘 나거나 너 못난 삶이 아닌, 나 스스로를 못 보고 너 스스로도 못 느끼는 삶을 이제는 멈추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구나 싶습니다. 날마다 새로 배우는 고맙고 넉넉한 삶일 때 가장 알차고 아름답겠습니다만, 이렇게 꿋꿋하고 다부지게 ‘돈-이름-힘’을 훌훌 내던지고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당신들 스스로 먼저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앞으로도 내처 살든, 도시에서 앞으로는 떠나려 하든, 우리 스스로 사람다운 씨앗이 누구한테나 가늘게 떨면서 옹송그리고 있음을 거듭 헤아리자는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3) 거듭 읽는 글월


 2006년에 장만한 뒤에 오래도록 책상맡에 꽂아 두고 틈틈이 넘기던 책을 이제 마감하면서, 그동안 밑줄을 그으며 읽던 대목을 하나하나 손소 옮겨적어 봅니다. 마음에 아로새길 만한 이야기라면 타자로 쳐서 종이로 뽑든 손으로 종이에 옮겨적든 해 보면 한결 깊고 널리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342.11.5.나무.ㅎㄲㅅㄱ)


[머리말] 아직 밥벌이도 안 되고 농사와 사람의 일로 어려움도 있지만, 저는 지금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자연과 농사가 제게 준 것이 그토록 크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가꾼 이 땅에서 언제까지나 농부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8쪽] 시골 와서 두 번째 맞는 겨울, 금융위기로 서울의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돈줄이 막혔는데, 두릅 묘목이며 농자재며 경운기를 사느라 돈이 자꾸 들어갔다. 우연히 신문에 난 공고를 보았는데, 공공근로사업으로 정보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영어와 컴퓨터 지식이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거였다. 게다가 재택근무라니 딱이다 싶어 부랴부랴 서류를 갖추어 면사무소에 제출했더니 전업농가라 안 된다고 했다. 시골에 3백 평 이상의 땅을 가지고 있으면 전업농가로 분류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농업 인력이 다른 근로사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업농가는 지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볼펜으로 짚어 가며 공문을 읽어 주는 면사무소 직원에게 나는 한 마디만 했다. “3백 평 땅에 농사지어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이도 없고 속도 상하고, 그리고 비참했다. 집에 돌아와 애꿎은 막걸리 잔만 비웠던 것조차 씁쓸하게 기억된다.

[73, 195쪽] 처음 방문한 곳은 사과 농장이었다. 방충시설과 환풍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농장을 둘러보고 나서도 어딘지 모르게 묵직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누군들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싶지 않으랴. 가진 돈이 없으니 아무리 좋은 시설도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 한 달에 50만 원이면 빠듯하게나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6백만 원. 설마 그 돈을 못 벌랴 했는데, 서울에서 내외가 한 달이면 벌던 그 돈은 초보 농군이 넘보기에는 너무나 큰 거금이었다. 하루아침에 얼마가 올랐다는 서울 아파트 값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꼭 남의 나라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 도시에서 사는 자식들이야 돈도 몇 푼 안 되는데 그만두시라고 쉽게 말한다지만, 농협빚 고지서에 농약청구서를 생각하면, 또 여름방학 때 당신 찾아 내려올 손주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106, 142쪽]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영수 할아버지의 직사각형 논 위에 커다란 삿갓 모양의 짚가리 여섯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다. 꼭 조형미술 작품 같다. 봄부터 겨울까지 영수 할아버지의 논은 거대한 종합 예술관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야외 예술관 … “매화 꽃망울이 조금씩 커지면서 분홍이 되었다가 다시 하얀 꽃으로 피는 것은 매년 보아도 똑같이 감동스러울 거예요.” 경주에서 매실 농사를 짓는 마로 어머니는 그 말씀을 하실 때 소녀처럼 해맑은 얼굴이 되었다.

[175, 227, 238쪽] 며칠 전, 맨발로 우리 논에 들어섰던 아이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겠지. 어른이 된 어느 날, 도시의 빌딩숲을 정신없이 걷다가 문득 어린 날 빨간색 반바지를 입고 산골짜기 논에 들어섰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 … 내 손으로 논에 모를 심고 잡초를 뽑고 벼를 거두고 나서야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상품이 될 수 있는 게 아님”을 몸과 마음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 만약 내가 지금도 도시에 있다면, 일 년 내내 푸른 잎을 자랑하는 화분의 나무를 바라보며 내 삶도 그렇게 늘 푸르러야만 한다고 떼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곳에서야 나는 느티나무가 늘 푸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푸른 느티나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요.

[199, 231쪽] 소비자들이 때깔이나 크기로만 농산물을 선택한다면 이 땅의 농부들은 농약을 안 칠 수 없을 것입니다 …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은 어록에 기록되어 저 아득한 후대에까지 전해지겠지만, “농부 못해먹겠다”는 말에 누가 콧방귀나 뀔까요?

[218쪽]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이 험악했지만 남겨 놓은 두 골이 영 눈에 밟혔다. 다솜이네서 팥을 얻어 다시 밭에 올랐다. 남은 두 골에 팥을 넣는 동안 비가 계속 내렸다. 온몸을 두들기는 장대비를 우산으로 가리는데 아람이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농사는 그렇게 지어야 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내려오는 길, 마음은 뿌듯했다.

[223, 226쪽] 10년이 넘게 농부가 되겠노라고 노래를 불렀으면서도 변변한 준비와 공부가 없었던 것이 우리의 귀농에서 가장 큰 잘못이라고 하겠다. 그 땅에 대궐 같은 집을 짓는 것으로 우리의 실수는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예상외로 많이 들어갔던 자금도 그랬지만, 더욱 치명적인 것은 집 때문에 발목이 묶인 것이었다 … 그러나 농사지어 먹고사는 일도 만만치도 않거니와, 시골에도 이웃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오래고 단단한 문화와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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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을 신은 자전거 - 스타일리시한 라이딩을 위한 자전거 에세이
장치선 지음 / 뮤진트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여자가 타는 자전거와 남자가 타는 자전거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1] 장치선,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



 애 아빠는 아직 제 몸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나, 아기는 눈썹 위가 크게 찢어져 병원에 안겨 가서 꿰매었습니다. 애 아빠가 조금씩 몸이 나아질 무렵 이제는 아기가 몸이 뜨거워지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칭얼대기만 합니다. 아파도 아프다 말을 못하는 아기로서는 울고 칭얼댈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칭얼거리니 꿰맨 자리에 자꾸 피가 배깁니다. 저녁과 밤과 새벽에 반창고를 갈아 붙입니다. 관장을 하며 배속에 있는 똥을 내보내도록 해 줍니다. 옆지기는 아기를 내내 안고 어르고 달래고 젖물리면서 긴긴 밤을 더디더디 보냅니다. 아기하고 씨름하면서 보내고 나니 어느덧 아침이 밝아 옵니다. 묵은 똥을 모두 내보낸 아기는 뜨거움이 많이 가라앉으면서 조용해지고, 엄마 품에서 조금 더 옹알거리다가 비로소 새근새근 잠듭니다. 애 아빠는 아직 성하지 않은 몸으로 이불 한 채를 빱니다. 간밤에 아기가 똥을 퍼질러 놓은 이불입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코앞에 닥쳐, 이제부터는 빨아서 개 놓을 이불은 얼른 빨아서 개 놓아야 하니 이불 빨래를 미룰 수 없습니다. 후들거리는 손발로 꾹꾹 누르고 밟고 하면서 이불을 빱니다. 이불 빠느라 손발이 후들거리지만, 내친 김에 기저귀 빨래를 함께 합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일하러 서울로 가야 하지만, 집일을 내버려 두고 홀로 나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밀린 일도 일이지만, 집식구를 함께 건사하지 못하고 바깥일만 챙겨서 좋을 구석은 없다고 느낍니다. 내 이웃한테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손 치더라도 내 식구한테 함께 보탬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사진쟁이 가운데 저처럼 후들거릴 때까지 손발을 놀리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렇게 후들거리는 손으로는 사진기를 쥘 수 없으니까요.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며 쉬어 준다면 후들거림이 잦아들 테지만, 집일이며 바깥일이며 잔뜩 있는데, 이 모두를 남한테 떠넘길 수 없습니다. 비빔질을 하면서 걱정이요, 비빔질을 마치고도 근심입니다.

 아침에 이불을 빨며 곰곰이 헤아려 보는데, 흔히는 ‘자질구레한’ 집일이라고 여기면서 애 엄마한테 이 모두를 맡기고 애 아빠는 슬그머니 몸을 빠져나와 회사로 가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기 관장을 하려면 한 사람이 아기를 붙잡고 한 사람이 줄에다 약을 탄 물을 넣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엄마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죽 하랴 밥 하랴 뭐 하랴, 거기다 빨래하랴 치우랴 뭣뭣 하랴, 아기가 아프지 않아도 엄마들은 혼자서 하루해가 몹시 짧지만, 아기가 아프면 더더욱 하루해가 짧을 뿐더러 잠을 못 이루고 고단함이 가득 쌓입니다.


.. 사람들이 종종 묻습니다. ‘너는 자전거로 멋부리느냐’고. 이런 질문이라면 대답보다는 반대로 물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멋진 물건으로 멋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고 …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니벨로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바퀴가 저렇게 작아서 어디 굴러나 가겠어!” 이는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자전거의 속도는 바퀴의 크기보다는 앞뒤 기어의 비율인 ‘기어비’거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미니벨로는 기어비가 큰 편이어서, 작은 바퀴로도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 미니벨로는 도시에서 타기 좋은 자전거인 것이다 ..  (여는 말, 67)


 오늘보다 더 무겁고 아픈 몸이던 어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서울로 일을 하러 가서 몇 시간 자리를 채우고 돌아왔습니다. 서울로 가는 전철길에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라는 책을 펼쳤습니다.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이 쓴 책이요, 더욱이 ‘자전거를 즐겨타는 여자’가 쓴 책입니다. 이제까지 나라안에 나온 자전거책을 돌아보면 거의 모두 ‘남자만 썼’습니다. 자전거 즐김이가 남자만이 아닐 텐데, 자전거책은 하나같이 남자들만 쓸 수 있는 듯 나왔고, 이 책들은 하나같이 ‘남자가 읽기에 좋도록만’ 엮었습니다. 얼마 앞서 나온 《자전거 홀릭》이라는 책에서는 ‘지름신’을 이야기하며 “가족을 위해 하나를 양보하면 두 개 세 개의 양보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배려와 이해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게 되고, 다음번에는 기꺼이 남편과 아빠를 위해 그들의 시간을 양보해 줄 것이다(86∼87쪽)”라는 대목이 엿보이기까지 하는데, 자전거 즐겨타기를 오로지 ‘남자 일’로만 여기는 눈길에 갇혀 있는 모습입니다. 더 비싸고 더 고급스럽고 더 겉멋을 부릴 수 있는 자전거 부품을 ‘질러대면서도 아내와 아이 눈치를 안 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다’는 ‘요령(?)’을 다룬 대목이라 이 책을 읽다가 그만 질렸는데요,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남자들끼리 자전거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말로 이렇게 ‘여자로서 자전거를 즐기는 일’을 얕잡거나 모른 척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남자끼리만 타기에 더 좋은 부품을 질러대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부부가 함께 타기에 좋은 자전거를 장만하는’ 데에는 돈을 못 쓰는지 궁금합니다. ‘부부와 아이 모두, 그러니까 식구들 모두 즐겁게 자전거 마실을 하기에 좋은 자전거를 마련하는’ 데에는 돈과 마음 모두 못 쓰는지 궁금한 노릇입니다.


.. “자전거 태워 줄게요.” 이건 나의 로망 〈아멜리에〉의 한 장면이 될 수 없는 시추에이션이었다. 나는 저 자전거를 타는 순간 ‘영심이 인증’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탔다. 키다리 아저씨의 자전거도 아니었고, 고가의 근사한 자전거도 아니었고, 내가 꿈꾸는 핑크색 튜닝 자전거도 아니었지만, 나는 탔다. 그리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 나는 작고 아담한 핑크색 자전거를 꿈꾸었지만, 그는 튼튼하고 뒷자리가 넓은 자전거를 꿈꾸었다 ..  (32쪽)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는 오로지(까지는 아니나, 거의 오로지) ‘여자로서 자전거를 마음껏 즐기자’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자로서 자전거를 처음 만나고 장만하고 남자친구하고 자전거를 즐기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찬찬히 나옵니다. 글쓴이처럼 ‘자전거 타는 기본’을 모르고 예쁜 자전거부터 덜컥 장만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끌고 길거리로 나오기 앞서 알아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맞게 적어 넣습니다. 먼저 겪어 본 사람으로서, 자전거를 타는 기본 예의와 교통법규 들을 곰곰이 되새기자는 이야기가 돋보입니다. ‘오랜 동무(여자들)’하고 함께 자전거를 끌고 마실을 다니기에 좋은(서울 시내에서) 곳이 어디인가를 넌지시 알려주는 대목 또한 볼 만합니다.

 다만, 이런 ‘자전거 타는 기본’ 이야기를 이 책에서 글쓴이가 굳이 왜 적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자전거 타는 기본’은, 새 자전거를 살 때 자전거와 함께 곁들여 오는 ‘자전거 설명서’에 훨씬 꼼꼼하면서 알기 좋도록 그림까지 그려서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쓴이가 제법 긴 쪽수를 마련해서 적바림하는 일은 나쁘지 않지만, ‘자전거 타는 기본과 예의’ 이야기는 딱 한 줄로, ‘자전거를 살 때에 설명서를 반드시 챙겨서 꼼꼼하게 읽읍시다!’ 하고 적어 주면 넉넉해요. 헌 자전거를 산다 할지라도, 동네 자전거집에 들러서 ‘자전거 설명서 한 부 얻을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면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은 거저로 줍니다. 우리 나라 자전거꾼치고 자전거 설명서를 꼬박꼬박 챙기고 읽는 사람이 거의 없어, 자전거집마다 설명서가 잔뜩 쌓여 있거든요.


.. 오지랖이 넓은 탓일까?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아니, 어쩌면 늘어나는 중국집 스티커만큼이나 내 머리속도 그 무언가로 채워졌기 때문일까? 환경 비용을 줄이는 일, 그리고 환경운동가가 되는 일은 대부분 이처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나 플라스틱 포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자장면 배발도 자전거를 이용하면 된다 … 자전거도로가 충분하고 제대로 정비되어 있다면 정장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지 못할 이규가 있을까.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되었다면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꺼릴 이유가 있을까 ..  (46, 100쪽)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옆지기가 묻습니다. 아침에 들고 간 그 자전거책을 읽으니 어떠하느냐고. 머뭇거립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다가, 재미없었다고 대꾸합니다. 값비싼 자전거가 아니라 ‘좋은’ 자전거라고 느끼기 때문에(누구한테나 도움이 되고 지구환경에 보탬이 되며, 잘생기고 쓸모 많은 자전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좋은 자전거로 한껏 멋을 내면서 살고 싶다는 분이 엮은 자전거 이야기라서, 남달리 눈여겨볼 이야기가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무슨 멋을 부리는지는 몇 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 자전거길 현실 몇 쪽에다가 남자친구 자전거 얘기 몇 쪽에다가 아버지와 짐자전거가 얽힌 ‘로망’을 몇 쪽쯤 이야기하다가 책 1/4을 ‘자전거 설명서’에 뻔히 나오는 이야기를 길게 적바림하는 바람에 지루했거든요.

 여느 ‘남자 자전거꾼’이 여느 ‘자전거 타는 삶을 이야기한 책’하고 짜임새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끼니 몹시 뻔했습니다. 그래도 여느 남자 자전거꾼처럼 ‘어떤 스펙’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 반갑다고 느꼈습니다. 이거를 갖추고 저거를 갖추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 하는 듯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라서 괜찮았습니다. 산을 타는 재미니 강을 달리는 즐거움이니 하면서 휴일에 놀러다니는 이야기에만 치우치지 않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전거 하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다루고 있어서 새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왜 글쓴이 이야기를, 글쓴이 자전거 이야기를, 글쓴이가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쏘다니던 산뜻함과 기쁨과 고단함과 슬픔을 좀더 낱낱이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을까요. 왜 어설픈 가르침이나 길잡이에 빠져들고 말았을까요. 왜 몸소 부대끼거나 겪으면서 받아들인 ‘서울 시내에서 일하고 살면서 자전거를 타는 여자로서 내 삶은 이러했고 이러하며 이러하리라 본다’는 고갱이를 붙잡지 못했을까요.

 우리 자전거 문화가 아직은 밑바닥이기에, 자전거를 말하는 책 눈높이조차 밑바닥에서 허덕여야만 하는지요? 우리 자전거 정책이 아직 씨앗이 뿌려졌다고 하기도 어렵기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 목소리 담은 책 또한 이렇게 제 줏대를 잃고 시류나 유행에 끄달려야 하는가요?


.. 자동차는 불편하게! 자전거와 보행자는 편하게! 이것이 암스테르담을 암스테르담답게 만드는 기본이다 … 남자친구의 허리둘레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핸들 하나가 더 생긴 것도 자동차와 혼연일체로 생활했던 탓은 아닐까 …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청담동에서는 자전거를 주차하기가 왠지 조심스럽다. 자동차 주차 공간을 조금만 할애해 자전거족을 위한 주차 공간을 만들어 주면 고급스러운 청담동 분위기에 어울리는 자전거족이 되어 줄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  (54, 58, 122∼123쪽)


 자전거는 틀림없이 굽높은구두도 신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고무신도 신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짐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짧은치마도 입을 수 있어야 하고, 청바지나 반바지나 양복 또한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빨리 달리는 자전거와 함께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가 골고루 길을 누빌 수 있어야 합니다. 아기를 태운 자전거와 함께 사랑하는 짝꿍이 나란히 앉은 자전거가 어깨동무하며 거리를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 빵빵 소리에 세발자전거와 네발자전거가 놀라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골목길에서든 아파트 주차장에서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달리는 어린이들 자전거보다 빨리 내달리는 자동차가 사라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경주하는 자전거는 경륜장에 가거나 곧게 쭉 뻗은 길로 가야 합니다.

 평화가 되는 자전거이며, 사랑이 되는 자전거에다, 어깨동무가 되는 자전거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라 한다면, 끌신을 신은 자전거한테도 살짝 눈짓 한 번 보낼 수 있겠지요. 이야기책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는 살그머니 눈짓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예 콧대를 높이며 흥 하고 돌아섭니다. (4342.11.4.물.ㅎㄲㅅㄱ)


 ┌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뮤진트리 펴냄,2009)
 ├ 글 : 장치선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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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2
김현아 지음, 박영숙 사진 / 호미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25 ― 딸아, 내가 아픈 만큼 내 이웃도 아프단다
 : 김현아,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 책이름 :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 글 : 김현아
- 사진 : 박영숙
- 펴낸곳 : 호미 (2009.7.27.)
- 책값 : 14000원



 (1) 한식구가 아플 때


 새로 퍼지는 감기에 알맞춤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영어와 한자를 섞어 ‘신종플루’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내거나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서울로 일하러 다니고 싶지도 않으나, 요 몇 달 동안 서울로 일을 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에서 어마어마한 사람하고 부대끼고 서울에서도 엄청난 사람숲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야 어찌어찌하다 보니 요 몇 달 이렇게 일하면서 산다지만, 인천에서 살고 있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수십만이 넘는 직장인과 학생)은 한두 달이 아닌 열 해나 스무 해, 또는 서른 해 남짓을 이처럼 전철(또는 버스)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복닥이고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고 싶으면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지만, 지옥철은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사람 미어터지는 곳이라 그야말로 아슬아슬하며 무시무시한 곳이라 할 수조차 있습니다. 서울 시내 학교에서는 휴교를 생각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서울 시내 학교에 앞서 ‘인천-서울 전철’과 ‘수원-서울 전철’ 같은 끔찍한 지옥철이야말로 ‘운행 금지’를 깊이 헤아릴 노릇이 아닌가 싶고, 서울 지하철역에서도 신도림역이나 서울역이나 시청역이나 강남역 같은 데는 아예 ‘영업 정지’를 곰곰이 따질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좀더 앞선 몇 달 동안은 이런 생각을 따로 해 보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끔찍하게 몸살을 앓는데다가 이 몸살 기운이 월요일을 맞이한 오늘까지 거의 가시지 않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어쩌면 나도 이 새로운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랴 싶기도 하고, 새로운 감기가 아닐지라도 ‘지옥철에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지옥철에 시달리’면서 몸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서른다섯 해를 돌아보건대, 몸살이 나서 길게 이틀까지 몸져누운 적은 있으나 사흘을 넘긴 적은 없습니다. 좋게 본다면 저도 나이가 한 해 두 해 쌓이며 몸에 힘이 많이 줄었기에 몸살이 걸려도 나흘 닷새 엿새 이레까지 간다 여길 수 있습니다. 나쁘게 본다면 요새 걱정된다 하는 그 고뿔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밥술을 못 뜨고 말도 못하던 나날은 넘기고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조금은 좋아졌지만, 며칠을 더 두고보아야겠지요. 걷는다고 하나 십 분 넘게 걸으면 온몸이 욱씬거립니다.

 그런데 이런 판에 아기가 크게 다칩니다. 아픈 아빠를 보살피느라 고달픈 엄마가 꾸벅꾸벅 조는 사이 아기는 조금도 지치지 않고 마루에서 뛰어놀다가 제풀에 넘어집니다. 넘어지며 밥상 모서리에 눈썹 위쪽을 쾅 하고 박습니다. 예전에도 이렇게 박은 적이 여럿 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1센티미터 남짓 찢어집니다. 철철 흐르는 피를 어느 만큼 달래고 아기가 크게 놀라 하지 않을 무렵 겉옷을 도톰히 싸입히고 눕힌 채 가까운 병원으로 갑니다. 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삶이었으나 집 둘레에 병원이 있어 좋은 보람을 한 번 누립니다. 그래도 일요일 저녁에 찾아가서 아기 눈썹 위쪽을 꿰매는 값은 제법 비쌉니다. 아기는 꿰매는 내내 끔찍하게 울어젖힙니다. 어른 또한 마취 않고 꿰매자면 아픈 판에 아기는 얼마나 더 아플까요. 십 분 남짓 꿰맨 끝에 다 끝나고 엄마 품에 안기니 울음을 뚝 그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 품에만 안깁니다. 하기는, 아빠는 걸을 힘조차 없어 아기를 안기 벅찹니다. 집에 닿아 바닥에 내려놓으니 언제 그렇게 울어댔느냐는 듯이 온 집안을 휘저으며 뛰어놉니다. 조금 앞서까지 울부짖던 그 아기가 맞느냐 싶습니다.

 아기 아빠는 집에 와서 다시금 잠자리에 쓰러지고 아무런 일을 못합니다. 아기 엄마는 여러 날 홀로 온갖 집안일을 도맡습니다. 아기 먹을 밥과 아빠 먹을 밥에 당신 먹을 풀물 짜기까지. 아기 기저귀 빨래와 당신 옷과 아빠 옷 빨래까지. 집안 치우기와 쓸고 닦기까지.

 우리 식구는 여느 때에 아빠가 집안일을 많이 했기에 엄마한테 미안하며 고맙다고 느끼지만, 다른 식구는 아빠가 몸져누울 때, 또는 엄마가 몸져누울 때 어찌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 부모님 댁에서 아버지가 몸져눕는다면 어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버지를 돌볼 텐데, 어머니가 몸져누우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고 집살림을 꾸리고 밥이며 청소며 빨래며 갖가지 일치레를 얼마나 꾸릴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남녀평등이나 여성주권이나 가부장제나 뭐나를 떠나, 한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에 우리들 살림살이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요.


 (2) 한겨레가 아플 때


 우리 겨레가 많이 아픕니다. 못된 법으로도 아프고 나쁜 법으로도 아프며 짓궂은 법으로도 아픕니다. 쓸개빠진 정책으로도 아프고 못난 권력자 때문에도 아프며 어이없는 일로도 아픕니다. 그런데 갖가지 아픈 일이 수그러들거나 잦아들기 앞서 새로운 아픈 일이 터집니다. 새로운 아픈 일이 터지며 지난 아픈 일은 여론에서 묻히거나 사라지고, 여론에서 묻히거나 사라진다 하여 안 아프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새로운 아픔이 거듭거듭 자꾸 쌓이기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새로 터지는 아픔이 많기 때문에 지난날 아픔만 오래도록 붙잡고 있기란 힘들다 할 수 있습니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이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는 할머니들이 겪은 아픔을 놓고 수요일마다 꼬박꼬박 기사를 써 주는 언론은 이제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나마 수요시위는 천 회가 넘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 ‘때 되면(?)’ 한 번쯤 굵직굵직하게 다루어 준다지만, 이 사슬을 뿌리뽑고자 ‘뿌리뽑히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어깨동무하며 싸워 줄 기자벗이나 지식인벗’은 없다 할 만합니다. 그래도(?) 서울 용산 철거민들 삶과 아픔과 눈물은 틈틈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퍽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람들 가슴을 저미고 있는데, 서울 용산 못지않거나 서울 용산보다 큰 생채기를 남기는 전국 곳곳 재개발 철거민과 골목동네 가난한 사람들 삶과 아픔과 눈물은 거의 어떠한 신문이나 방송을 못 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에서 드물게 다루어 준다 하여도 지자체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습니다. 케이티엑스 승무원 문제는 어떠하며, 이랜드 노동자 문제는 어떠한가요. 아마, 요 열 해 사이에 일어난 갖가지 아픔과 눈물과 생채기로 얼룩진 이야기를 ‘이름만 갖다 붙여’도 일간신문 하루치를 통째로 채울 만큼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국가보안법 탓에 아파하는 사람과 군의문사 탓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이름만 줄줄이 적어 놓아도 무척 길디길지 않을까 싶어요.

 있는 사람은 더 누리지 못해 아프다고 하는 우리 겨레라고 느낍니다. 없는 사람은 밑바닥에서 허덕이느라 아프다고 하는 우리 겨레라고 느낍니다. 너나없이 아파하는 우리 겨레라고 느낍니다. 이런 판에 책 하나 끄집어 내어 읽는 사람은 더없이 느긋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런 세상에서 책 하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지없이 한갓진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파할밖에 없는 우리 겨레요 우리 나라요 우리 삶터이기 때문에, 아픔을 곱새기고자 책 하나를 더 붙잡으려 합니다. 몸져누워 끙끙 앓는 가운데에도 다문 한 줄이나마 읽고 잠자리에 들려고 합니다. 내가 아픈 만큼 내 둘레에 아픈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고단한 만큼 내 언저리에 고단한 사람이 울고 있음을 모르쇠로 넘기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한숨지으며 몸이 낫기를 비는 만큼 내 곁에 한숨지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있음을 지나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야기책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은 이런 대목을 살짝살짝 긁어 줍니다. 북북 긁는 책이 아니라 살살 긁는 책입니다. 우리가 안 느끼려 하는 아픔이 무엇이고, 우리가 못 느끼고 있는 생채기가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우리 온몸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살며시 긁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김현아 님은 지난 2008년에는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호미)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한 해 지난 2009년에 둘째 책을 내놓으며 우리가 자꾸자꾸 놓칠 뿐 아니라, 어느 한편으로 보면 내팽개치고 있다 할 만한 빈자리를 한결같이 붙잡고 있습니다.

 그저 몇몇 사람 생채기가 아님을 밝힙니다. 그예 어느 갈래 사람들 뒷이야기가 아님을 들려줍니다. 한낱 철지난 삶이라든지 떠벌이기 좋은 말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함께 껴안고, 같이 부둥켜안으며, 서로 감싸안을 우리 삶임을 글줄 몇에 살포시 담아내 줍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글을 쓰도록 살아낸 사람이 있고, 또 이만한 글이 나오도록 도와준 사람이 있기에, 겨레와 나라가 통째로 아파하고 있으면서도 그럭저럭 하루하루 버티듯이 서로를 기대면서 삶자리를 다스릴 수 있구나 싶습니다.


 (3) 글월 하나씩 아프게 씹어 읽기


 믿을 만한 책이라 한다면 두 번쯤은 차분히 되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할 만한 책이라 한다면 해마다 한 번씩 곰곰이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름답다 할 만한 책이라 하면 내 아이한테 물려주어 내 아이가 내 나이가 될 무렵 즐겁게 읽도록 오래도록 간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딸아이한테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을 물려주고자 합니다. 딸아이한테 이 책을 물려주기 앞서,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가슴에 꾹꾹 눌러담은 말마디가 무엇이었는가를 하나하나 되읽으면서 천천히 옮겨적어 봅니다.


[17, 19∼21쪽] 사람이 꽃처럼 뛰어내리기에 절벽은 너무 험하고 거칠다. 떨어지는 도중에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머리가 깨지거나 눈알이 튀어나오는 끔찍한 풍경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몇 천 명이 줄줄이 뛰어내렸다면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으리라. 곷이 지듯 애잔하고 슬프게 그녀들이 죽었다는 건 누구의 상상일까. 오히려 이 벼랑을 ‘피바위’ 같은 살별한 이름으로 명명되는 게 더 현실적이다 … 삼천과 궁녀라는 말이 조합되어 사용된 것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들에서다. 낙화삼천, 꿈꾸는 백마강, 추억의 백마강, 백마강 등의 노래에는 낙화암과 삼천궁녀가 자연스레 짝을 지어 등장하고 이 대중가요들은 낙화암에서 삼천 명의 궁녀가 뛰어내렸다는 이미지를 완성한다.

[80∼81, 103∼104쪽] 본래 아랑 전설에는 원혼의 억울함과 해한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이야기의 둥치였다. 아랑 전설 속에서 아랑각이 세워지고 아랑이 사당에 모셔진 건 억울하게 죽은 혼을 달래고자 한 것이지, 그녀가 정절을 지켜서가 아니었다 … 초기 아랑 제사는 밀양의 권번에서 어린 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해방 후 기생 제도가 폐지되면서부터는 대한부인회가 주최가 되어 지내다가 그 뒤로는 아랑제집준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 맡아 여태껏 진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랑제집전위원회는 모든 회원이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 논개가 왜군의 장수와 함께 장렬히 죽은 것이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조정에서는 처음에는 논개에게 어떠한 포상도 내리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왜병 한 명의 목만 베어도 공을 인정해 벼슬까지 내리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왜장을 끌어안고 자살 투신한 논개의 공은 혁혁하다. 그러나 논개는 ‘관기’였다. ‘여성’이면서 ‘기생’. 당시의 신분 체제상 논개는 가장 하위에 배치된 ‘오염’된 존재였다. 사실, 기생은 사농공상 네 개의 계급으로 구성된 조선의 신분 체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122, 129, 131쪽] (여느) 제사의 과정에서 여자들은 늘 음식을 준비하거나 바쁘게 움직일 뿐 정작 그 의식에서 몸을 감추던 것이 비해, 모든 것이 여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의암별제는 독특하고 낯설다. 이어지는 연희도 모두 여성들이 진행한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독창적인 형식의 행사인 것이다. 춤과 음악이 끝나면 음복연이 이어지는데 일종의 제사 뒤풀이 격인 이 음복연은 의암별제에서 매우 중요한 순서디. 의암별제가 단순히 논개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그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는 걸 기억한다면 이해되는 바이다 … 백오십 년의 세월 동안 논개를 기리기 위한 작업을 해 온 진주 사람들의 정성으로 봐서, 만일 당시 논개한테 친인척이 있었다면 당연히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후손도 없고 친인척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논개에게 성을 부여하고 누군가의 딸이 되게 하는 건 어쩌면 논개가 끌어안고 갔던 신분과 계급의 억압을 다시 논개에게 덧씌우는 일이 아닐까 … 이렇게 논개는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애인으로 끊임없이 남성과의 관계 속에 자리매김된다. 논개를 민족정신의 수호자로 기억하려 할 때 논개는 끊임없이 남성과 연관되어 설명될 수밖에 없다. 민족이나 국가는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여성을 명명하기 때문이다.

[144, 156, 163, 225쪽] 그나마 이화중선이 살던 남원의 집도 지난해에 헐리고 빈터만 남았다. 이제 그 집은 해마다 한 번씩 유적지들을 돌며 찍어 둔 김용근의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있는 것들을 보존하는 일에 우리는 왜 그토록 인색할까.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절반만 있는 것들을 보존하는 데 들인다면 시간과 시간이 겹쳐지면서 만나는 생의 본질을 슬쩍 들여다볼 수도 있으련만 … 이화중선의 무덤은 오랫동안 오수에 있었다. 그러나 도로 공사를 하면서 이화중선의 무덤은 자취를 감춘다. 후손을 두지 않았던 이화중선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지금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사실, 생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 인간의 정서와 예술적 미감을 만드는 건 고향이다 …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 중 생가는 그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대문에 그런 작품을 남겼구나 하는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 아픈 기억을 바라보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를 지우는 건 더 위험한 일이다. 역사의 현장을 남겨 두는 건 그곳에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236∼237쪽] 십오 년 동안 한결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 대사관 앞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상설 퍼포먼스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간에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어쩌면 모두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결된 것 아무것도 없지만 이슈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 언론도 더는 이 문제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독도 분쟁이나 일본의 교과서 왜곡 같은 문제가 터졌을 때 기자들은 이곳으로 달려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에는 ‘절규하는 위안부 할머니’따위의 제목과 함께 그녀들의 사진이 실린다. 그러나 막상 수요시위에서 절규하는 위안부 여성들은 별로 없다. 실제로 그녀들의 표정은 말갛고 차분하다.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기에 그녀들은 너무 나이 들었다. 스티로폼을 깔지만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한 시간 넘는 시위를 견뎌내는 건 칠팔십대의 노인들에게 보통 일이 아니다.

[258, 267쪽] 언젠가 일본 시민단체 사람들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각사각 기록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꼼꼼히 박물관을 둘러보고 방명록을 적는 그들, 한편에선 끊임없이 왜곡하고 부인하고 은폐하고, 한편에선 끊임없이 돌아보고 들추어내고 눈물 흘리는 것.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여성의 몸을 성적 도구로 사용했던 이들은 여전히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부정하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과거를 성찰하는 이들을 협박한다 … 때로 일부 언론에서는 피해 생존자들을 ‘불쌍한 희생자’ 혹은 ‘동정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로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불쌍한 여성이 아니다. 그녀들은 군사주의와 폭력 앞에서도 목숨을 지켜내 마침내 그 실상을 폭로한 용감한 여성들이다.

[299쪽] 문학관을 나서서 최명희 생가 터가 있는 곳까지가 최명희길이다. 비록 짧은 길이지만 최명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 을지로, 충무로, 도산로……. 온통 남자들의 이름으로 불리던 이 땅에도 이제 여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길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그 길의 첫머리에 그녀의 이름이 있다.

[363쪽] 과수와 채소에 비료 농약을 쓰지 않는 일, 쓰레기차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지 않는 일, 이 두 가지는 박경리가 원주에 온 뒤로 실천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작가가 원주에서 한 일은 《토지》를 완성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토지》를 완성한 일은 박경리가 원주에서 한 수많은 일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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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고은우 외 지음,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기획 / 양철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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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을 부추기고, 폭력에 젖어 있는 나라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7]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지난주 토요일 낮, 대안교육 이야기책을 펴내는 민들레 출판사에서 강의를 하나 맡아 하기로 해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혼자 갈까 하다가 옆지기하고 아기도 함께 갑니다. 인천 맨 끄트머리 전철역에서 타니, 처음 길을 나설 때만큼은 조금은 수월합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자리에 앉을 수 있으니까요. 잠깐조차 쉬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서며 앉으며 노는 아기를 달래며 복닥이고 있는데, 조금 늙은 아저씨 한 사람이 옆지기보고 ‘비키’라면서 당신 아주머니를 앉히려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멀거니 쳐다보다가 “앉으시려면 이쪽에 앉으셔요.” 하고 제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때 바로 옆에 다른 자리가 납니다. 아주머니는 그리 앉습니다. 그지없이 어처구니없는 노릇인데, 드물게 이런 일을 겪습니다. 옆지기한테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그 자리를 당신한테 달라’는 어르신이 있기도 합니다만, 이날은 ‘머리를 짧게 깎은 옆지기’를 어린 학생쯤으로 보며 얕잡았기 때문입니다. 옆지기는 올해로 나이가 서른이지만 얼굴로는 퍽 어리게 보이는지(제가 보기엔 나이 서른이면 생기는 주름이 퍽 많다고 느끼는데) 애 엄마한테 막 구는 어르신이 때때로 있습니다. 옆지기가 아이하고 경주에 있는 생채식수련원에 들어갔다가 돌아올 때 기차에서 겪었다는데, 어느 할머니가 옆지기를 보며 ‘고등학생이 사고 치고(?) 애 끌어안고 다니는 줄’ 엉뚱하게 생각했다더군요.

 그런데, 옆지기가 서른이 아닌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라 하더라도, 버젓이 앉아 있는 사람한테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장애인노약자영유아보호자 자리’라는 데가 아니었으니까요.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다리가 아프면 앉을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어르신이라 하더라도 자리에 앉고 싶다 할 때에는 ‘고운 말’로 “여보게, 내가 많이 힘드니 자리를 내어줄 수 있나?” 하고 물어야 합니다. 다짜고짜 비키라고 하는 일은 폭력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젊은 애 엄마라 할지라도, 애 엄마한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자리를 비키라는 일은 어르신으로서 할 노릇이 아닙니다. 아이는 ‘작은 짐가방’이 아닙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똑같은 목숨입니다. 아이들이 몸피가 작다 하여도 어른하고 마찬가지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몸피가 작기에 아이 둘이 어른 한 사람 앉는 자리에 나란히 앉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 자리에 몸피가 큰 어른이 찡겨 들어오면 모두한테 고달픕니다. 아직 무릎이며 뼈며 관절이며 단단히 여물지 않은 아이보고 서라 하고 어른이 앉으려 하는 일 또한 올바르지 않기도 합니다. 힘이 여린 아이한테 힘이 있는 어른이 참으라고 윽박지르는 일이란 더할 나위 없는 폭력입니다.


.. 작년 동균이 담임은 동균이가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모르고 이기적으로 변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 역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같이 놀려고 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는데 동균이가 친구 사귀는 방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25쪽)


 어쩌는 수 없이 요사이 한 주에 닷새는 꼬박꼬박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을 탑니다. 이렇게 지옥철을 타면서 숱한 ‘서민’을 부대낍니다. 이들 서민은 지하철에서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결이 퍽 옅습니다.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결이 따스한 분이 틀림없이 있지만, ‘아무리 홍보를 하고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전철 걸상에서 다리 쩍 벌리는 남자 젊은이와 어르신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들 남자 젊은이와 어르신은 당신들 매무새를 고칠 생각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대로 어릴 적부터 남자를 섬기고 높이는 터전에서 살아오면서 익숙합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오늘날에도 남자를 드높이고 모시는 터전에서 지내 왔기에 자연스럽습니다.

 제아무리 값비싸구려 양복을 차려입고 있어도 마음씨가 착하거나 다소곳하지 못한 사람이 퍽 많습니다. 이런 전철, 아니 지옥철을 날마다 타고다니려니 제 마음이 나날이 거칠어지고 메말라 갑니다. 제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제가 모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지옥철에서 시달리는 동안 착한 마음을 이어나가기란 꿈 같은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리하여, 서로서로 먼저 타고 먼저 내리고 먼저 쑤시고 들어가며 자리를 차지하면 더 널찍하게 즐기려고 어깨를 펴고 다리를 벌리고 신문을 쫙 펼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 같다고 느낍니다. 따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어도, 따로 집에서 일러 주지 않았어도, 모두들 저절로 시나브로 배우고 깨닫습니다. 알게 모르게 서로한테 또다른 폭력을 휘두르는 ‘얼굴과 이름 없는 깡패’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 준혁이도 어린 아이일 뿐이다. 아무리 거칠고 못되게 굴어도 아이는 아이인 것이다 … 할 일이 차고 넘치는 교사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 따돌림의 뿌리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다. 갑갑하고 불행한 일이다. 갈수록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아니, 점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내 아픔을 느끼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될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  (54, 137쪽)


 어제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일기》라는 그림일기 책을 아침길에 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란 꾸밈말이 좀 낯간지럽지 않느냐 싶고,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까지는 아니라는 느낌이지만, 꽤 사랑스럽고 살가운 자연일기를 담고 있습니다. 넘겨읽기에는 좋은 판짜임이 아니라 눈과 목이 좀 아픈데, 그래도 아침길을 즐겁게 열어 준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제와 오늘 아침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서 이런 자연일기를 읽는 뜻이 있을까?’ ‘모시나비이고 네발나비이고 긴꼬리나비이고 호랑나비이고 노랑나비이고 흰나비이고 하나 찾아볼 길이 없는 서울로 일하러 오가는 주제에 이런 책을 읽어서 내 마음이 얼마나 살찔 수 있을까?’ ‘내 오른쪽에 선 아가씨가 읽는 처세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내 왼쪽에 선 젊은 사내가 읽는 영어책을 보아야 하지 않나?’ ‘부질없는 지식조각만 잔뜩 집어넣는 꼴사나운 책읽기가 아닌가?’ ‘그예 겉치레 겉발림에 지나지 않으며 겉맛만 부리는 짓이 아닌가?’

 광화문 세종로이든 새문안길이든 볼거리가 하나도 없다고 느끼며 걷습니다. 앞사람들 담배연기를 쐬기 싫어 더 빨리 걷습니다. 잰걸음을 놀리며 담배연기 풀풀 피우는 양복쟁이는 때려잡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놀러온 손님이 어느 비싸구려 밥집으로 줄지어 들어갑니다. 저 일본 손님은 저 밥집에서 먹은 밥으로 ‘한국 밥은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물결치는 자동차가 끊이지 않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펼칩니다. 책을 읽으면서 걷기로 합니다. 저로서는 서울에서 눈둘 데가 없어 아무것도 보지 말고, 땅이며 건물이며 사람이며 차며 보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그저 책에다 눈을 처박자고 생각합니다.

 몇 분 걸어 한글회관에 닿고, 5층까지 계단을 타고 오르며 책을 내처 읽습니다.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셈틀을 켭니다. 오늘치 할 일을 돌아보며 숱한 공공기관 누리집을 드나듭니다. 중앙부처이든 지자체이든 옳고 바르게 말글을 다루며 누리집을 건사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들 공무원은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고 공공기관 누리집을 마련하고 있을 텐데, 더욱이 이들 공무원은 하나같이 ‘좋다는 대학교’를 제법 높은 성적을 거두며 나왔을 텐데, 스스로 말글을 알맞고 싱그럽게 간수할 줄을 모릅니다.


.. “어떻게요? 저 못할 것 같아요. 휴…….” “아니야. 해야 해. 개새끼라고 해. 다른 욕도 필요없어. 아이들은 쉴 틈 없이 욕을 하면서 더 센 척을 하잖아. 그런데 이 선생이 아무리 큰 소리로 혼낸다고 해서 먹히겠어?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을 거야. 그러면 그럴수록 우습게 보이겠지.” … 개새끼 소동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준혁이가 몰라보게 순한 양이 되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교실에는 평화가 찾아들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조용히 집중했다. 이 년 만에 평범한 일삼을 맛보고 있었다 … 세화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힘과 권위로 아이들을 제압해서 얻은 평화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우리 반은 진정으로 폭력으로부터 벗어났던 것일까? ..  (66, 72, 78쪽)


 지지난달에 다 읽은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책이름에도 나오는 ‘이 선생’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서로 주먹다짐을 할 뿐 아니라 따돌림을 아주 밥먹듯이 하고 있다면서 골머리를 앓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어느 ‘이 선생’들이든 이 같은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골머리를 앓지 않고 선생들 스스로 주먹다짐과 따돌림을 스스로 나서서 펼쳐 보이고 있는지 모르고요.

 학교에서 수많은 ‘이 선생’들은 교과서에 적힌 대로, 또는 스스로 아는 대로 아이들한테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믿고 돕고 어깨동무하면서 지내라고 가르치리라 봅니다. 몸소 사랑과 믿음을 보여주기도 하리라 봅니다. 집에서는 어버이들이 서로 착하게 놀라고 이야기할 테며, 마을에서 어르신들은 아이들한테 서로서로 잘 지내라고 이야기할 테지요.

 그런데 이 나라 이 삶터 이 학교 이 회사 이곳저곳에서 주먹다짐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따돌림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든 저런 모습으로든 끝없이 불거집니다. 온갖 모습 온갖 크기로 주먹다짐과 따돌림이 판을 칩니다. 밥그릇 지키기와 밥그릇 빼앗기가 춤을 추고, 헐뜯기와 비아냥거리기가 넘실거립니다. 하느님을 믿든 부처님을 섬기든 예배당에서만 노래하고 눈물짓는 사랑으로 그치고, 예배당 바깥에서는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다스릴 수 있을까요? 학교폭력은 다스려야만 할까요? 학교폭력은 왜 터져나올까요? 학교폭력은 어떻게 털어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들기 앞서도 폭력에 물들어 있지는 않나요? 아이들한테 폭력 기운이 없어도 학교 바깥에서는 언제나 폭력에 둘러싸여 있지 않나요? 아이들이 잘 배워서 학교에서 폭력을 씻어냈다 할지라도 학교 밖으로 나오거나 사회로 나오면 또다시 폭력에 젖어들어야 하지는 않는지요?


.. “짐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중간고사에서 우리 반이 1등을 했다.” “와!” “깜지 덕인 줄이나 알아.” “우…….” 강 선생은 3월부터 깜지를 시키더니 끈질기게 밀고 나갔다. 아이들과 강 선생 중 누가 더 센가 내기하는 것 같다. 고래 심줄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강 선생은 목표를 정하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강 선생의 채찍질 때문인지 아이들 모두 중간고사는 그럭저럭 봤다 ..  (198쪽)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는 학교에서 몸소 학교폭력을 부대껴야 하는 선생님들 눈길과 눈높이에 맞추어 이런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이 모습을 가다듬으려는 몸짓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참 괜찮구나 하고 느끼며 책장을 처음 넘겼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글머리가 어영부영 흐트러집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쓴 탓이라 하겠으나, 아무래도 학교폭력이란 똑부러지게 말하거나 잡아채어 뜯어고칠 수 없는 탓이겠지요. 학교에서 주먹다짐과 따돌림이 사라지게 한대서 폭력이 사라질 일이란 없을 테고요. 우리 마음에 폭력이 남아 있고 따돌림이 남아 있는데 학교폭력이 자취를 감출까요? 우리 스스로 ‘더 높은 대학교에 우리 아이만큼은 들어가야 해!’ 같은 생각이 깃들어 있는데 학교폭력을 뿌리뽑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는 일은 ‘남들은 몰라도 나 혼자 정규직이면 되고, 내가 비정규직이더라도 이주노동자 아픈 일까지 마음쓸 겨를이 없단 말이야!’ 같은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데 따돌림을 없앨 수 있을까요?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한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국가보안법 폐해를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장 문제를 풀지 않을 뿐더러 더 많은 전기를 더 펑펑 쓰고 있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망가진 이 나라 삶터와 자연을 남김없이 물려줍니다. 아이들한테 아파트와 자가용만 물려주려는 어버이는 아이들끼리 서로 치고박고 괴롭히고 들볶는 배움터 골칫거리를 언제까지나 이어가게 합니다.

 세상은 평화가 아닌데 학교만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온통 폭력과 따돌림이 판치는데 학교만 조용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돈타령이요 무시무시한 싸움터인데 학교만 얌전하고 다소곳하며 사이좋은 어깨동무가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늘 되풀이됩니다. (4342.10.29.나무.ㅎㄲㅅㄱ)


 ┌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양철북 펴냄,2009)
 ├ 고은우, 김경욱, 윤수연, 이소운 씀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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