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 나의 인생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유시주 옮김 / 눌와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15 ― 두 아이 키우는 여자 과학자 삶이란
 : 마거릿 D.로우먼, 《나무 위 나의 인생》



- 책이름 : 나무 위 나의 인생
- 글 : 마거릿 D.로우먼
- 옮긴이 : 유시주
- 펴낸곳 : 눌와 (2002.3.11.)
- 책값 : 1만 원



 (1) 남자 세상과 여자 세상


 어제는 옆지기하고 아기와 함께 서울마실을 했습니다. 출판사에 들러 책을 하나 건네주어야 할 볼일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아침에 똥을 누지 않았기에 모르는 노릇이라 바지며 기저귀며 더 챙깁니다. 아기가 아주 갓난쟁이였을 때에는 함께 서울마실을 하러 길을 나설 때에는 기저귀를 열 몇 장을 챙겨도 빠듯했습니다. 어제는 고작 여섯 장을 챙겼으나 꼭 석 장만 썼습니다.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싶습니다. 하루하루 튼튼히 자라나며 일손을 더는 대목이 있는 가운데, 새로운 일손이 찾아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저귀 빨래는 조금 줄어 빨래감이 줄었습니다만, 그만큼 아기가 헤집고 다니는 품새가 늘어 옷가지를 자주 갈아입혀야 하니, 따지고 보면 빨래감이 줄지 않습니다. 나날이 무게가 느니 안고 다닐 때에도 팔이 더 빠지는데, 그래도 때때로 말귀를 알아들으니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끼어들고 싶어 뗑깡을 부리면 고단합니다.

 으레 남자가 바깥 볼일을 도맡고 여자가 집안 살림을 도맡습니다. 우리 나라도 그렇고 다른 여러 나라도 그렇습니다. 남녀평등이 잘 이루어져 있다는 서양나라라고 해서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여자 권리가 높다는 중국이라고 해서 썩 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 하나 세상에 태어난 뒤로는 ‘남자 몫 여자 일’은 아주 또렷하게 금을 긋듯 갈립니다.


.. 그전에 나는 퀸즐랜드의 우림 속에서 포스터사의 맥주깡통으로 장식을 해놓은 (새들이 사는) 구애용 침실들을 본 적이 있었다. 자연이 인간의 습관에 적응한 슬픈 이야기들이다 …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환경을 소홀히 다루고, 오염시키고, 그것이 보내는 악화의 징후를 무시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자, 목축업자, 농부, 경제학자, 삼림관리자, 토지관리자, 정치인, 납세자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잎병의 치유법을 찾아내고, 더 이상 잎병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죽어가는 산과 들을 되살려 놓을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  (82, 99∼100쪽)


 서울마실을 떠나기 앞서 동네 머리방에 들릅니다. 옆지기가 머리를 짧게 친다고 해서 집에서 잘랐는데 아무래도 듬성듬성이 되어 놔서 손질을 할 생각입니다. 숱이 많아 삼십 분 남짓 걸려 머리를 다듬었고, 목덜미께 닿을 만큼 손질하니 시원하고 아기를 업었을 때 손을 뻗어 잡아당기지 못할 듯합니다.

 우리 아이가 크는 동안에는 웬만하면 집에서 머리를 잘라 줄 텐데, 나중에 차츰 크면서 제 머리 모양이나 길이를 어떻게 생각할는지 궁금합니다. 옆지기는 아이가 웬만큼 자라면 머리를 다 밀겠다고 하는데, 아이는 사내아이 머리길이와 계집아이 머리길이를 어떻게 생각하거나 받아들이게 될까요. 제 엄마 아빠가 ‘남자 = 짧게, 여자 = 길게’라고 딱히 못박지 않을 뿐더러, 엄마가 아빠보다 머리가 짧고, 아빠는 머리를 기른다기보다 머리털이며 수염이며 그대로 두고만 있을 뿐인데, 이런 모습을 늘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우리 집에서야 이렇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모든 ‘남자 = 짧은머리, 여자 = 긴머리’인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 훼손되지 않은 생태계 안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이 당면하는 또 하나의 무거운 과제는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섬은 대단히 예민한 생태계이다. 규모가 작고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부의 어떤 요소가 사라지거나 밖에서 어떤 것이 들어오면 그 영향이 극대화된다. 해충 한 마리가 침입한 것이 그 지역의 식물상 전체가 궤멸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버린 온갖 찌꺼기들 또는 임의로 치워 버린 것들도 자연적인 평형 상태, 즉 자연의 균형에 그와 똑같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  (121쪽)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보며 으레 “남자 아이지요?” 하고 묻습니다. 어느 할머니는, “사내대장부답게 잘 커야지.” 하고 말씀하셔서 쓰겁게 웃었습니다. 아이가 계집아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려도 ‘사내대장부’를 말씀하셔서, ‘사내’면 어떻고 ‘계집’이면 어떠한데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었습니다. 사내답게 키우는 길과 계집답게 키우는 길이 따로 있을까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딸아이는 하루하루 크면서 ‘여느 집하고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속속들이 느끼고 받아먹으리라 봅니다. 밥하기며 빨래하기며 집치우기며 웬만한 집안일은 아빠가 다하고, 또 밥벌이 삼는 글쓰기며 바깥일이며 아빠가 도맡다시피 하는 모습이니까요. 언뜻 보면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할 텐데, 애 엄마도 집 안팎에서 하는 일이 많고, 또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으로서 퍽 많은 일을 짐지워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눈길로 우리 옆지기가 ‘일을 얼마 못하거나 안 하는’ 듯 느껴진다 하여도 거리낄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눈높이로 온갖 일을 똑같이 해내야 하지 않으니까요. 이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저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이 세면 그만큼 더 할 노릇이고 힘이 여리면 그만큼 덜 할 노릇입니다. 누군가는 날마다 원고지 100장씩 글을 쓸 수 있다지만, 누군가는 한 주에 원고지 10장 겨우 채울 수 있습니다. 나날이 100장씩 쓰는 사람이 한결 훌륭하다거나 사람답다 말할 수 없고, 한 주에 10장 겨우 채우는 사람은 못났다거나 사람답지 않다 말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5인치밖에 안 되는 어린 나무가 35살이나 먹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우림의 보존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확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다. 나는 어린 것들의 유아기와 성장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새싹과 아이들, 그 둘은 기쁨과 시련을 선사하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 어린 시절, 우리는 나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나무를 기어오르고, 큰 가지 위에 요새를 짓고, 나무 밑 풀밭에 몸을 누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을 쳐다보고, 민첩하게 나무를 타는 원숭이와 새들을 부러워하고, 썩어가는 나무 둥치 속에서 살아가는 조그만 동물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극히 제한된 시야밖에는 가질 수 없는 공간, 즉 땅 위에 서서 경이로운 심정으로 나무를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  (167, 169쪽)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배웁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우고 아버지한테서 배웁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도 배우고, 언니와 오빠와 동생과 형과 누나한테서도 배웁니다. 피붙이와 이웃한테서도 배우고 동무한테서도 배웁니다.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웁니다. 나이가 먹었다고 가르치기만 하지 않으며, 나이가 어리다고 배우기만 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배울 일은 배우고 가르칠 일은 가르칩니다. 나이가 많아도 배워야 할 일은 배워야 하고 가르칠 때에는 가르치기 마련입니다.

 이리하여, 어버이 된 사람은 어버이가 되기 앞서도 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옳게 추슬러야 합니다만,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몸이 될 때에는 한결 무르익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되도록 훨씬 힘써야 합니다. 때때로 길에서 스치는 이웃으로서 이웃 아이와 배우고 가르치는 사이를 넘어, 늘 함께 먹고 자고 부대끼는 식구로서 내 아이와 배우고 가르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요.

 어버이가 아닌 자리에서도 나 스스로 올바르고 아름답고 맑고 빛나야 했던 애틋한 목숨인 우리들이었고, 어버이가 된 자리에서도 나 스스로 꿋꿋하고 야무지게 올바르고 아름답고 맑고 빛나야 할 사랑스러운 목숨인 우리들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내 아이가 배우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아이가 생각하며, 내가 말하는 대로 내 아이가 말합니다.

 어버이 된 사람이 ‘딴 사람 안 보는 자리이니까 허튼 짓을 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라면, 이 마음은 고스란히 내 아이한테도 이어갑니다. 어버이 된 사람이 ‘내가 바빠 죽겠는데 골목에서 저 애들은 왜 뛰놀고 법석이야’ 하면서 빵빵대며 싱싱 내달린다면, 이 매무새는 그예 내 아이한테도 옮아갑니다. 어버이 된 사람이 국회의원 대통령 뽑는 매무새 그대로 아이들이 어른과 정치와 사회를 보는 매무새로 스며듭니다. 어버이 된 사람 하루하루가 당신 아이 하루하루를 엮어 나가고 이루어 나갑니다.


.. 수없이 개미들에게 물리면서 나는 어떤 경외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자기보다 수천 배나 큰 존재를 공격해대는, 그리하여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는, 그 조그마한 생명체의 극성스러움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조용히 걸어다니며 숲을 관찰하던 중, 우리는 나무 위에서 거미원숭이가 재롱을 피우는 모습도 보았고, 타이라 일가족이 나무들 사이로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았다. 야생 동물들은 우리가 숲속에서 조용히 있을 때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인류라는 종족의 한 사람으로서 숲의 거주자들과 함께 숲을 감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226, 292쪽)


 옆지기와 저는 아이를 배고 낳고 키우는 어제오늘 또 모레글피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딸아이를 낳아 기르지만, 딸아이가 아닌 ‘한 사람’을 낳아서 기른다고 생각합니다. 너나와 똑같은 아이요, 어른아이 가르지 않는 목숨이며, 꼭 같은 한 사람 몫임을 느끼면서 함께 살아가는 벗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아름다운 한 사람이 되어 가기를 바라며, 이 삶터에서 아이 스스로 우뚝 서면서 사랑과 믿음을 다른 누구한테보다 나 먼저 참되게 맛보고 깨달으면서 이웃하고 살가이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아이는 아직 돌이 안 되었습니다. 다음달이 돌입니다. 우리는 돌잔치를 따로 할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돌잔치보다는 이웃을 한 집씩 불러 집에서 밥상 하나 차려 함께 나누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돌이라지만 세월은 금세 흐르기에, 우리는 이 아이가 뒷날 학교에 들어가도 될까 안 될까를 곰곰이 생각하기도 합니다.

 꼭 학교에 가야 할 까닭이 없으며, 굳이 학교를 안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 스스로 다니고프면 다닐 노릇인데, 학교에 간다고 동무를 더 사귈 수 있지 않고, 학교에 안 간다고 동무를 못 사귈 수 있지 않습니다. 또래동무를 여럿 두어야 아이가 맑고 밝게 크지 않으며, 또래동무란 학교 울타리 안쪽에만 있지 않습니다.

 저보다 나이든 살가운 동무가 있고, 저보다 나어린 살뜰한 동무가 있습니다. 아이한테는 아이 스스로 좋아하며, 아이를 좋아할 동무가 있으면 넉넉할 뿐입니다.


.. 나는 내가 어머니이고 아내임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 영혼은 그와 더불어 과학을 향한 열정도 지니고 있었다 … (첫) 남편은 내 연구가 가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으므로, 가족용 차를 몰고 대학 도서관으로 가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 1970년대의 호주는 백인 남성에게는 ‘행운의 나라’였을지 몰라도, 미국인 여성 과학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 여자가 숲 우듬지를 연구하기 위해 혈혈단신 1만 마일을 날아 멀리 떨어진 대륙으로 온다는 것은, 내가 만난 호주인 남자들 대부분에겐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일 뿐 아니라 도대체가 미심쩍은 일이었다. 사실, 남자나 여자나 호주 농촌의 많은 사람들에겐, 부엌이나 침실에서 실용적으로 전혀 써먹을 데가 없는 어떤 지적인 생각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아마 1백 마일을 여행하는 것조차도 우스꽝스럽게 보았을 것이다 ..  (14, 25, 44쪽)


 다만, 아이를 학교에 넣지 않으려 한다면, 그만큼 어버이 된 사람한테 주어진 몫이 큽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어버이도 아이를 학교에 안 넣고 죄다 집에서 가르쳤는데, 그만큼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사람이 할 일이 많았고, 챙길 일이 많았으며, 살피고 보듬을 일이 많았습니다. 요즈음은 이런저런 어버이 노릇을 온통 ‘돈’에만 맡기고 있을 뿐입니다.

 제도권학교도 돈이요 대안학교도 돈입니다. 제도권학교라고 돈을 안 내겠습니까. 우리가 낸 세금으로 꾸리는 곳이 제도권학교인걸요. 대안학교를 넣으려 하면 어버이 된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때때로 ‘대안학교에 넣었으면서 아이와 어울릴 틈이 더 없’기까지 합니다. 배움삯 벌려면 그만큼 허리가 휘니까요.

 여섯 살 아이를 유치원에 넣는 제 옛동무는 한 해 배움삯이 500만 원을 웃돈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치원에 바쳐야 할 돈이 대학등록금 못지 않다고 푸념입니다. 대학생들 목소리가 어린이들 목소리보다 커서 그렇지, 어린이들이 제 어버이 된 사람들 살림을 걱정하며 ‘유치원 배움삯은 나라가 내라!’ 하고 외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어버이들은 줄줄이 파산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요새는 셋째가 아닌 둘째를 낳아도 구나 시에서 돈(출산장려금)을 준다고도 하는데, 아이를 낳았다고 돈을 얼마 준다고 해서 살림이 필까요? 나라가 아이와 어버이한테 돈을 대어줄 노릇이 아니라, 아이와 어버이가 걱정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칠 터전과 삶터를 일구는 데에 올바로 돈을 써야 할 노릇입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보도블럭 까뒤집기’는 이제는 참말 그만두고서라도. 고속도로 새로 하나 더 늘리는 일은 그만두고서라도.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고속도로 하나 더 늘리지 않는다고 길이 막히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하나 덜 내면서 ‘아이 키우는 품’에 댈 보건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학생이었을 때 나의 지도교수는 모두 남성이었는데, 그분들은 임신한 몸으로 현장 작업을 수행하는 데 대해 어떤 조언도 해 주지 못했으며, 남성 동료들과 정글 속에서 함께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아이디어도 제공해 주지 못했다 … 20세기가 이룩한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지내던 이웃 농장의 여성들은 그들의 삶이 어머니 또는 시어머니의 삶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고민하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 일반적으로 젊은 여성들은 지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에 가장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아이들, 융자금, 갚아야 할 학자금, 연로하신 부모, 일반적으로 가정 밖으로 나가려는 여성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배우자 … 이상하게도, 나는 (첫)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야 오히려 내 인생의 다른 어떤 시기보다 더 폭넓게세상의 이곳저곳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사탕가게에 들어간 아이처럼, 가깝게는 집 근처의 하버드대학, 멀게는 내가 상상하는 한 가장 먼 곳이었던 카메룬의 야운데까지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  (19∼20, 137, 201∼202, 236∼237쪽)


 어쩌면, 아이한테는 국어니 수학이니 영어니 하는 교과목 지식이란 하나도 없어도 됩니다. 이런 지식이 없다 하여 세상 못 살아가지 않을 테니까요. 다만, 아이가 여느 큰회사 사무직 일꾼으로 일하고자 한다면, 또는 은행 일꾼이나 병원 일꾼으로 일하고자 한다면, 이런저런 지식 갈래에서는 ‘대학졸업장’을 바라고 있으며, 대학졸업장을 따려면 갖은 시험지식을 높이높이 따내어야 합니다.

 이와 달리, 아이가 큰회사 사무직 일꾼을 바라지 않는다면, 농사꾼을 바라든 글쟁이를 바라든 시민모임 일꾼을 바라든 헌책방 일꾼을 바라든 한다면, 아이한테는 사뭇 다른 앎과 삶을 깨닫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복 차려입고 구두 신은 채 도심지 한복판에서 자가용 달려 셈틀 앞에 하루 내내 앉아서 일하기를 바란다면, 옆지기와 저로서는 크게 마음쓸 대목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제도권학교에 넣으면 그만이고, 이렇게 학교에 넣으며 두 사람은 훨씬 기나긴 말미를 얻어 두 사람 마음 내키는 대로 먼 나들이도 다니고, 책도 읽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면서 제 마음과 몸을 함께 살찌우는 길찾기를 하려 한다면, 어머니 된 우리 두 사람은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길동무가 되면서 아이한테 새길을 보여주고 우리 스스로도 새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으로서는 아이가 어느 길을 가든 아이 몫이니, 아이한테 여기로 가라느니 저기로 가면 안 된다느니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마음이 없습니다.


.. 아이는 《초록색 알과 햄》을 독파했을 뿐 아니라 오레일리의 우림에 있는 여관에서는 밥 먹을 때마다 메뉴를 주르륵 읽어내렸다. 그때 동행했던 동료들도 그 일을 나처럼 경외감을 갖고 바라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과 과학을 한다는 것, 그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나는 버스 안에서 아들과 함께 책을 읽었던 그 특별한 날을 가능케 해 준 것이 다름아닌 과학이라는 내 일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열대 우림 탐사에 나선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 우듬지는 (아들) 에디와 제임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그걸 보게 된 나에게도 역시 그러했다 … 진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은 원시 그대로의 우림 속에서 우림의 거주자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자신들을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어린이들이 열대의 진흙에 몸을 적셔 보지도, 정글 속의 모험을 즐겨 보지도 못하고 자랄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우림이 계속 파괴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누렸던 그러한 특혜도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  (141, 259, 272, 274∼275쪽)


 우리 아이는 ‘우리 집 아이’이기 앞서 ‘한 사람’입니다. 우리 아이는 두 사람이 배앓이하고 몸앓이하면서 낳고 키우는 ‘재산’이 아닌 ‘홀로선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먼저 우리 삶을 즐기고 넉넉히 채울 일거리를 찾습니다. 우리 아이 또한 제 스스로 제 삶을 즐기며 넉넉히 채울 일거리를 찾으면 될 뿐이라고 느낍니다. 즐거운 삶은 한 가지만이 아니며, 반드시 어느 곳에 있어야만 즐거운 삶이지 않습니다. 어김없이 어떠한 일을 해야만 즐거운 삶이 아니며, 더 많은 돈을 벌든 더 적게 돈을 벌든 훨씬 보람있는 일이라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

 만드는 삶이지 만들어진 대로 흐르는 삶이 아닙니다. 꾸리는 삶이지 틀에 맞추는 삶이 아닙니다. 몇 분 동안 기저귀를 삶고 햇볕에 몇 시간 쬐여 말린 다음 몇 센티미터로 나누어 개야 하는 빨래감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다르며, 그때그때 알맞게 하면 될 뿐입니다. 아침에 아기 먹을 죽을 끓이고 어른 두 사람 먹을 밥을 하면서, 늘 어림으로 쌀을 푸고 콩을 퍼서 하루 동안 불려서 냄비밥을 합니다. 냄비밥을 하면서 시간을 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날그날 냄새를 맡고 김빠짐을 살피고 하면서 밥물을 맞추고 밥을 할 뿐입니다.


 (3) 《나무 위 나의 인생》이라는 책은


 ‘마거릿 D.로우먼’이라는 분이 쓴 책, 《나무 위 나의 인생》을 읽습니다. 식물학자라고 해야 할까, 생물학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과학자인 글쓴이입니다. 그러나 글쓴이는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 가운데 덜컥 혼인을 하면서 호주 시골에서 아이를 둘 낳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엄마가 되면서 과학자였던 당신 삶은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호주에 있는 (옛) 남편이나 시어머니나 마을사람들은 당신이 과학자였든 아니든 ‘이제부터는 시골 농장을 일구며 아이를 돌보는 엄마일 뿐’이라고만 외칩니다.

 이에, 글쓴이는 아이 엄마로서도 훌륭히 살고 싶지만, 아이 엄마이기 앞서 ‘마거릿 D.로우먼’이라는 제 이름에 걸맞는 과학자로 걸어가려던 당신 길 또한 훌륭히 걷고 싶어서 마음앓이를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음앓이를 고이 간직하면서 지내고 길찾기를 하면서, 드디어 ‘20세기, 아니 21세기에도 버젓이 살아남아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더 거세게 휘감고 있다 할 남성가부장권력’을 박차고 나옵니다.


.. 나의 부모님은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차를 타고 가다가 내가 무언가 건질 만한 것을 발견하면 언제라도 차를 세워 주실 만큼 이해심이 깊으셨다. 어머니는 무척 끔찍해 했지만, 내 침실 작은 장에는 생쥐가 살았다. 생쥐들은 나의 수집품 가운데 하나였던 자연 섬유들을 아주 좋아했는데, 그것으로 북부 뉴욕의 추운 겨울을 나게 해 줄 둥지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이 내려준 소중한 선물로 나의 삶은 은혜로웠고, 나의 수집품은 과학적 호기심의 토대가 되었다 ..  (12쪽)


 《나무 위 나의 인생》은 과학자로서 한길을 걷는 사람 이야기를 하나 선보입니다. 다음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올바르며 곧은 길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며 가누어 본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톺아보았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삶터가 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한 사람으로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를 가슴 깊이 되뇌었던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 숲 우듬지 속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들이 가진 과학적 데이터들을 유권자, 경제학자, 정치가들, 즉 천연자원의 보존과 관련된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쓰는 일상적 언어로 바꾸어 내는 것이다. 나는 미래에도 나의 아이들이 그 속에서 즐거이 뛰놀 수 있는 자연림이 남아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일반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과학자들의 능력이야말로 숲의 보존을 좌우할, 절대적으로 중요한 변수라는 걸 알고 있다 ..  (304쪽)


 저로서는 《나무 위 나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네 가지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다섯째 이야기와 여섯째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옆지기가 이 책을 함께 읽어낸다면, 또 우리 아이가 커서 이 책을 새롭게 읽어낸다면 일곱째와 여덟째 이야기가 나타날 테지요.

 그때그때 읽는 사람에 따라, 《나무 위 나의 인생》은 다 다른 이야기를 우리한테 베풀어 줍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네 가지 아닌 한 가지 이야기만 느껴질 테고, 어떤 이한테는 한 가지조차 느껴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책이란, 읽는 사람 몫이기 때문입니다. 쓰는 사람은 온삶과 온마음을 쏟아낸 책이지만, 읽는 사람 스스로 ‘책을 쓴 사람 삶’과 같은 자리에 서면서 헤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해, 아무것도 빨아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많은 여성들이 길에 놓인 장애물들을 피하느라 먼 길을 돌아왔다. 현장 생물학에서 내가 여성으로서 부닥쳐야 했던 어려움들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나를 단련시켰고, 내게 확고한 신념을 심어 주었다 … 나고, 자라고, 썩고, 다시 재생하는 잎처럼, 나도 개인적인 생활에서나 직업적인 길에서나 그러한 과정을 경험했다 … 불평을 하는 대신 소리 지르는 법을 배우라,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값진 가르침이었다 ..  (305쪽)


 두 아이 키우는 여자 과학자 삶으로, 참 눈물겹고 애틋하며 딱하지만 힘차고 다부지고 당찬 이야기로 《나무 위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어떠한 삶인가를 헤아릴 수 있고, ‘아이 키우는 아빠’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삶인가를 짚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나무를 타고 우듬지를 돌아보면서 당신 삶을 찾았는데, 우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우리 삶을 찾을 수 있을까요. (4342.7.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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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89 : 선생님이 읽는 책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어른을 두고 ‘스승’과 ‘교사’와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가리키는 한자말 ‘부모’ 뒤에 ‘-님’을 붙여 높이듯, 우리를 가르치는 분을 가리키는 한자말 ‘선생’ 뒤에도 ‘-님’을 붙여 높입니다. 가만히 보면, 토박이말 ‘스승’과 ‘어버이’ 뒤에는 ‘-님’을 안 붙입니다. ‘스승님’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으나, 따로 ‘-님’을 붙이지 않아도, 이 낱말 그대로 높이고 받드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지난날 여느 사람을 내리누르던 힘이 대단했던 ‘임금’한테 ‘임금님!’ 하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오늘날 ‘선생님’은 사뭇 다릅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가 높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한편, 어렵고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처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대입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아이들이 스스로 ‘책읽기 모임’을 꾸려 ‘느낌 나누기’를 했던 발자취를 그러모은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2009)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깊은 뜻이나 생각이 없이, ‘대입시험에서 논술 잘 치르자’면서 책읽기 모임을 꾸렸고, 저마다 책을 읽은 느낌을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피면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무리에 듭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니 ‘공부 잘하고 책 좀 읽는 티’를 내겠다며 부러 어려운 말을 골라 쓴 대목이 곧잘 보입니다.

 제가 이 아이들 나이였을 때를 떠올립니다. 저라고 이 아이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저는 많이 모자라고 어줍잖다고 느끼지만, 그때에는 더 모자라고 어줍잖았으며, 제 둘레에 ‘책 좀 읽는’ 동무이든 어른이든 보이지 않았기에 우쭐거리거나 잘난 척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은 ‘낡은’ 말인 듯 생각하면서, 익었으니 고개 빳빳해야 하는 양 꼴값을 떨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 3년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다 안다 … 나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생각하기’의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130, 141쪽)

 논술 준비를 한다지만, 학교 안쪽에서 선생들이 이끌어 배우는 책읽기 모임 느낌 나누기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모임을 꾸리고 저마다 읽을 책을 생각했다는 일은 퍽 놀랄 만합니다. 우리 나라로서는 혁명일 수 있습니다. 비록 접시물에서 이루려는 혁명이지만.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다치고, 선생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생각없는 바보로 자라도 괜찮을까요. 선생님들 스스로 아이들을 바보로 키우고 가르쳐도 되는가요. 아이들 스스로 ‘우린 생각할 까닭 없이 시험만 잘 쳐서 대학 가면 그만이야’ 하도록 내모는 당신들한테 ‘선생님’이라는 거룩한 이름이 알맞습니까. 달삯 잘 나오고 연금 넉넉하고 방학 길고 심심풀이로 손발운동(체벌) 하는 월급쟁이로만 있고자 하는 분들한테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교사’라는 이름이 어울리나요. 교재가 아닌 ‘참다운 좋은 책’을 읽는 스승길을 걷는 분이 있기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가지는 않으며, 모두 다 대학교에 갈 까닭은 없음을 되새기면서, 아이들한테 생각힘을 북돋우고 당신 스스로도 생각날개를 펼치려는 ‘선생님 노릇’을 계급장 떼면서 해 보고자 소매 걷어붙이는 분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2.6.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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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0 : 낡은 책과 낡아가는 책

 1980년대 첫무렵, ‘부림출판사’에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님 책을 손바닥책 열다섯 권으로 펴냅니다. 이곳에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내기 앞서 수많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띄엄띄엄 이분 책을 냈고, 이때 뒤로도 갖가지 출판사에서 드문드문 이분 책을 내놓았습니다. 《길은 있었네》,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살며 생각하며》, 《빙점》 같은 책은 여러 곳에서 다 다른 판으로 옮겨졌는데, 저작권계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던 지난날 《창가의 토토》를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펴낸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창가의 토토》는 2000년에 ‘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새로 펴내며 더욱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은 ‘한물 간 낡은 이야기’라고들 여기며 손사래를 치곤 합니다.

 헌책방에서 《여인의 사연들》(1984,박기동 옮김)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찾아내어 읽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닙니다. 개신교 모임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비슷하게 보내주는 데에 따라가며 한 해 동안 봉사를 한다는 처제가 성경을 읽는다고 하기에 문득 떠올라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안소니 드 멜로 님 책이랑 채규철 님 책이랑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선사하는데,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저 먼저 찬찬히 훑고 주려고 빼놓습니다.

 “하지만요, A꼬 씨, 당신이 결혼한 상대방은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완전하진 못하다구요. 말하자면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인 거예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인간인 거예요(16쪽).”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쓸쓸한 ‘여인’들이 미우라 아야코 님한테 편지를 꽤나 자주 써서 보낸답니다. 이런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주다가 몹시 많이 쌓이는 편지를 다 삭여내지 못해 잡지에 ‘공개 답장’을 적었답니다. 루이제 린저 님도 ‘마음이 아파 힘들다는’ 줄거리로 편지를 써 보내는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하나하나 답장을 하다가 너무 벅차 ‘공개 답장’을 아예 낱권책으로 여러 차례 펴낸 적 있습니다. 모두들,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에서 겪는 마음앓이를 당신 일처럼 곰삭이며 풀어낸 셈입니다.

 “우리들이 아름답게 되는 길은 화장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내면에서 풍요로움이 풍겨나오는 그 표정에서 느껴요(54쪽).”라는 말처럼 겉삶이 아닌 속삶으로 우리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는 뜻을 나누려 했구나 싶습니다.

 지난주부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매진,2008,이유진 씀)라는 이야기책하고 《엄마의 밥상》(얘기구름,2008,박연 그림)이라는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 인문사회과학책방과 만화전문책방에서 장만했는데, 이와 같은 책이 지난해에 나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김에 언론 소개글이 있었나 뒤적이니 한두 차례 아주 조그맣게 실린 적이 있고, 꼭 한 번씩 소개글을 써 준 사람이 있으나, 널리 읽힐 만한 자리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혜화동 인문예술책방 〈이음아트〉 큰일꾼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책을 갖추어 놓는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작은 책방에든 큰 책방에든 꽂히기 힘들고 우리 눈에 뜨이기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한 해 두 해 더께만 쌓이다 그예 낡아 버리고 말겠구나 싶습니다. (4342.6.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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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1 : 새로운 책과 새로워지는 책

 엊그제 새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타고다닌 자전거는 모두 닳고 망가졌기에 더 손질할 수조차 없었거든요. 자전거를 장만하면서 자전거집 일꾼한테서 ‘자전거 사용설명서’를 여러 권 얻습니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는 사람치고 이러한 설명서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잔뜩 쌓여 있다고 합니다. 설명서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찬찬히 훑으니, 이 설명서만 꼼꼼히 읽고 스스로 해 보아도 ‘웬만한 자전거 손질은 스스로 해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이달에 《자전거 홀릭》이라는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모임을 이끄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쓴 책으로, 자전거를 처음 가까이하거나 이제 막 좋아하려는 사람한테 길잡이가 될 만하구나 싶습니다. 돈으로 사는 자전거가 아닌, 마음으로 껴안는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 길벗인가를 보여줍니다.

 지난달에 《두 발 자전거 배우기》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아이들한테 네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넘어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책인데, ‘자전거를 좋아하며 늘 타는’ 제 눈으로 보기에 자전거를 옳게 못 그리기도 했으며, 자전거가 마치 ‘남보다 빨리 달리려고’ 있다는 듯한 이야기를 슬며시 심어 주기에 반갑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왜 자전거를 사 주고 타도록 하고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은 왜 자전거를 선물받고 타야 하는가요? 책에 담긴 그림은 예쁘장하지만 그예 예쁘다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네발에서 두발로 갈아타는 일이란 ‘홀로서기’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없이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기쁨’을 엉뚱한 쪽에서 받아들이도록 한다면, 청계천에 전기로 수도물 끌어들어 흐르게 하면서 시원하다 말하는 모습하고, 또한 서울과 부산에 물길을 내고 나라안 물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하고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지지난달에는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버려진 자전거, 아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엄마 아빠한테 졸라서 ‘번쩍번쩍’하는  새 자전거를 비싼 값에 장만하고 난 뒤 마구잡이로 싱싱 달리다가 함부로 내던지고 내팽개치고 비오는 날에도 바깥에 두는 바람에 찌그러지고 다치고 구멍나고 빛바래고 슬어 버린 자전거가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저 스스로도 어린 날 겪어 보았지만, 짐자전거이든 세발자전거이든, 한 주에 한 번은 말끔히 닦아 주어야 오래도록 즐겁게 탄 다음 동생한테든 동무한테든 아이들한테든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아이들은 자전거를 닦을 줄 모르고 내처 달릴 뿐입니다. 자전거 사 주는 어버이 또한 자전거 닦기와 손질을 함께할 줄 모르며, 돈으로 값만 치를 뿐입니다.

 나날이 쏟아지는 새 물건이 많으니, 자전거 또한 새롭고 더 나아 보이는 녀석으로 갈아타기만 하면 되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쏟아지니, 겉보기에 그럴싸한 책을 쥐어들며 자꾸자꾸 새책만 찾으면 되는지 모릅니다. 가짓수는 꾸준히 늘고 새 이야기는 늘 넘치는데, 고이 스며들며 가슴으로 묻어나는 책은 어째 가물에 콩 나는 듯합니다. 새로운 책으로 새로워지는 마음결과 삶터는 찾아보기 어렵고, 새로운 책으로 새로운 돈만 벌겠다는 마음보와 세상물결은 어렵지 않게 찾아봅니다. (4342.6.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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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9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차피 모두 타죽이게 할 전쟁이니까
 [그림책이 좋다 67] 레이먼드 브릭스, 《바람이 불 때에》



- 책이름 : 바람이 불 때에
- 글ㆍ그림 : 레이먼드 브릭스
- 옮긴이 : 김경미
- 펴낸곳 : 시공사 (1995.11.7.)
- 책값 : 7000원


 (1) 남녘나라에서 군대라는 곳


 군대에 갔다 온, 또는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어른들은 젊은이한테 이야기합니다.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 된다.”

 어릴 적부터 익히 들은 이 말마디는 어린 제 생각과 삶을 온통 뒤흔들었고, 군대에 끌려갈 날을 앞둔 젊은이가 된 제 생각과 삶 또한 온통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무렵, 저 같은 아이들 또는 젊은이들한테 이런 말마디를 읊은 어른들이 ‘모두 군대에 갔다 왔는지’는 여쭙지 못했고, 여쭐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어른들이 군대에 갔다 오신 다음에 “사람이 되셨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며, 내가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목에 걸거나 돈이 아주 많거나 나라밖으로 떠나거나 하지 않으면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 “다녀왔소.” “다녀오셨어요? 오늘 아침은 좋았어요?” “응, 좋았어. 별 일은 없었지. 사는 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 “퇴직했으니까 그렇죠, 제임스. 당신 좀 우울해 보이는데?” “응, 아침 내내 공립도서관에서 신문만 봐서 그렇지.” “흥, 그까짓 쓰레기 같은 것들! 난 절대로 신문은 안 봐요. 〈스타〉지만 빼고요.” “여보, 당신도 국제 정세를 좀 알아야 해. 결국엔 우리도 강대국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을걸.” “신문엔 정치니 스포츠니 하는 것들만 잔뜩 실려 있잖아요.” ..  (1쪽)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도 어른들은 말합니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 오지 않으면 사람이 안 된다.”

 군대에 갔다 온 저는 어른들한테 여쭙니다. “네, 저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그래? 어디 있었는데?”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 있었습니다.” “…….” 때때로 해병대 나온 분들이 있어 좀더 꼬치꼬치 물으실 때에는, “강원도 양구 도솔산에 있었습니다. 도솔산부대 들머리에 ‘해병대 전적비’ 있는 줄 아시지요? 해병대 나오셨으면 ‘도솔산의 노래’라는 노래 아시지요?” “…….”

 우리 아버지는 당신 아들한테 “너는 군대에 가서 사회를 알아야 해.” 하고 틈틈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들은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아버지도 강원도 양구에 있었다고 합니다. 딱 한 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천에서 양구까지 면회를 왔습니다. 일고여덟 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부대 밑자락 검문소에 닿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대 들머리까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무렵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어떠한 차도 우리 부대 앞까지 올라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안마을(펀치볼)로 넘어가는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도솔부대는 한 해에 꼭 닷새쯤 해를 볼 수 있는 기막힌(?) 곳이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군인들이 행군을 해서 한 시간 반 남짓 걸어내려와야 하는 산 밑자락에서 아들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눈밭을 헤치고 겨우겨우 걸어내려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니 아버지는, “에이,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어? 어떻게 이런 데에서 사람이 살아?” 아버지 말씀마따나 그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마을 분들은 군부대 옆에 깃들며 살림을 꾸리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대가 모시는 대대에는 해마다 10월 끝무렵이면 장갑차 한 대가 떨어져서, 눈이 오는 날이면 장갑차가 슥슥 밀어 주고, 다음으로는 제철차가 슥슥 민 다음, 우리들 땅개가 줄줄이 늘어서서 싸리비와 눈삽으로 눈을 치워내곤 했습니다. 눈이 오면 으레 m 단위로 왔으니까요.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면회를 오신 다음부터 아버지 입에서 “너는 군대에 갔다 와야 해.” 하는 말은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 “여보,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소. 그래, 곧 전쟁이 터질 거라네.” “글쎄요, 그래도 당신은 징집되지 않을 거예요, 제임스. 당신은 너무 늙었잖아요.” “고맙구려. 그래도 난 당신보다 두 살이나 적어.” “어쨌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승리의 그날까지 다시 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리띠를 동여매고 철모를 써야겠죠.” “이번엔 그럴 것 같지 않고. 이번 전쟁은 빅뱅이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 그건 모드 똑똑한 과학자들이 생각해 낸 거요.” ..  (1∼2쪽)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올 무렵, 행보관은 전역하는 우리를 앞에 두고 “너희들 주제에 사회에 나간다고 뾰족한 벌이도 없을 테니 공사판에 나갈 텐데, 공사판에 나갈 때면 우리 부대 야상을 꼭 입고 가라. 그러면 오천 원은 더 준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거짓말이 아닌 소리였는데(1998년도), 우리들이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 있는 동안 배운 일이라면 삽질과 곡괭이질과 마대질과 산타기 따위였습니다. 이른바 막일은 실컷 배운 셈이었습니다. 아니, 한 달 일삯 8000∼1만 얼마에 실컷 막일을 해 온 셈이었습니다. 그무렵 사회에서는 막일을 하면 하루에 3만 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군인이기 때문에 군대 막일을 하루 일삯 300원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해 온 셈이더군요.

 이리하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배운다는 군부대에서, 우리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배운 것 없는 사람이 먹고사는 재주’만 신나게 배운 셈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동네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 부대를 나오면서 제 앞가림은 막일터에 나가면서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 “이번엔 방공호도 없다니 왠지 이상해요. 그땐 우리 집 정원에 앤더슨 방공호가 있었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우린 방공호 주위에 한련을 잔뜩 심고 입구를 초록색으로 칠했어요. 정말 예뻤는데, 옆집에서는 방공호 위에다가 양배추를 심었죠.” “맞아. 우리 집에선 모리슨 방공호를 설치했어. 난 그 안에서 잤어. 그 안에다 여자들 사진을 잔뜩 붙였지. 베티 그래블, 앤 셸턴, 패트리샤 록. 잠자리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천장을 까맣게 그을렸지.” “그래요. 2차대전 때에는 정말 좋았어요. 방공호, 등화 관제, 경보 해제 사이렌, 홍차, 공습 경보대, 피난민들. 런던의 아이들은 그때에 처음으로 소를 보았고, 라디오에선 처칠의 목소리. 아홉 시 뉴스, 베라 린의 노래, 노동자 큰잔치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옥수수밭 너머 푸른 하늘에선 스피트파이어와 허리케인이 몰려왔고, 도버 해협의 하얀 절벽으론 독일군이 밤바다 쳐들어왔죠. 그땐 좋았어요.” ..  (7쪽) 






 스무 살 젊은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 스물셋을 앞두고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한창 펄펄 끓는 나이에 군대에 있는 동안, 제 얼굴과 몸과 말결과 마음밭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군대에 가기 앞서 책을 즐겨읽기는 했어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스물여섯 달 있으면서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신문 한 장 읽은 적이 없습니다. 사회에 나오고 보니, 2005년 가을부터 2007년 겨울까지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아, 부대에 딱 두 가지 신문이 들어왔는데, 하나는 ‘스포츠○○’이었고, 하나는 ‘ㅈ일보’였습니다. 이 신문은 소대장과 중대장이 보았는데, 어쩌다가 슬쩍슬쩍 넘겨본다든지 철지난 신문을 차곡차곡 모아 태워 위장크림으로 만든다고 할 때에 살펴보기는 했으나, 이런 신문으로는 세상을 하나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는 고참이, 옆에서는 동기가, 아래에서는 후임이 읊조리는 온갖 상소리와 욕지꺼리를 듣고 따라하고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제 말투는 ‘못난 건달깡패나 외는 말투’로 받아들여졌고, 여러 해 동안 반 벙어리처럼 되어 사람들 앞에서 말문을 열기 어려웠습니다. 툭하면 욕이 튀어나와 “너 왜 그렇게 바뀌었니?”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덧 예비군이 끝나고 민방위가 되었으나 군대 적 말투와 몸짓을 모두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짧은 스물여섯 달, 아니 짧지 않은 스물여섯 달에 걸쳐 젊은 넋한테 아로새겨진 숱한 삶자락은 제가 눈을 감는 날까지 길디길게 이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한창 푸르고 젊고 싱싱하던 때에 겪고 부대낀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또아리를 틀 테니까요.


.. “지금 페인트칠을 하려는 건 아니죠, 제임스?” “유리창을 하얗게 칠해야 해.” “왜요?” “방사능 때문인 것 같아. 햇빛을 막으려고 온실을 하얗게 칠하는 것처럼 말이지. 지침서에 나와 있어.” “정말 그렇게 더울까요?” “글쎄, 잘 모르겠지만 히로시마에서는 해가 천 개나 떠 있는 것처럼 더웠대. 그러니 꽤 더울 거야. 게다가 지금 강대국들은 훨씬 더 성능이 좋은 걸 만들고 있어.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으니까.” “페인트가 커튼에 묻지 않게 조심해요! 먼저 커튼부터 떼냈어야죠. 정말 생각이 없군요.” ..  (8∼9쪽)


 대한민국에서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셈이라는 이야기를 곧잘 듣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치고 ‘땅개로 밑바닥에서 굴렀던 분’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하사관이든 장교이든 간부로 있던 분들, 또는 여느 보병이었으나 후방에 있던 분들, 또는 전방에 있었어도 행정병으로 있던 분들이 으레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느 땅개로 군대에서 젊은 나날을 보내야 했던 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말할 힘’이 거의 없는 밑바닥 일터에서 조용히 일만 하고 있는 개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거나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거나 할 뿐, 신문이든 잡지이든 방송이든 책이든 인터넷이든, 이런저런 데에 당신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낼 만한 자리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고 느낍니다.

 수십 킬로그램에 이르는 완전군장을 메고 소총을 메고 탄약상자를 들고, 또는 박격포를 셋으로 나누어 지고, 또는 무반동총을 홀로 낑낑거리며 군장 위에 얹고, 또는 부대 깃발과 무전기를 목아지에 얹고 하루 동안 쉼없이 걸어야 했던, 이러는 가운데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 물통까지 덤으로 군장에 끼워들고 걸어야 했던 땅개 가운데에서는 “대한민국 남자는 군대에 가서 나라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섣불리 안 한다고 느낍니다. 고엽제 상자를 둘이 나누어 들고 군사분계선으로 날라 ‘시계청소’를 한다며 헬멧으로 퍼서 뿌리던 땅개들은, 진지구축을 한다며 시멘트와 돌과 모래와 물을 한 짐씩 이고는 네 시간 남짓 산길을 타고 올라 내려놓고 낮밥을 먹은 뒤 다시 네 시간 남짓을 걸어내려오며 하루 일을 마치던 땅개들은, 겨울철 보급로 눈길을 치울 싸리비를 만들어야 한다며 밤을 새워 몇날 며칠 수천 개에 이르는 싸리비를 만드느라 잠 못 자고 눈이 퉁퉁 붓던 땅개들은, 장마철에 보급로 무너지면 안 된다며 밤새워 삽자루 들고 온몸이 비에 흥건히 젖은 채 물골작업을 하던 땅개들은, 어설피 “남자인데 군대에 안 가?” 하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제가 상병일 때 병장이던 고참이 “종규야, 우리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하자!” 하면서 웃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삼백 삽쯤 뜨고 허리를 펴려고 하니, “어, 아직 천 삽 되려면 멀었는데?” 하면서 삽자루로 후려패려고 높이 쳐들고 웃음 띠던 얼굴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2) 대포동미사일이 걱정된다면


 북녘에서는 대포동미사일을 만든다고 합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미사일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수천 킬로미터뿐 아니라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갈 만한 미사일을 갖추고 있습니다. 러시아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과 독일도 갖추고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일본에는 이런 미사일이 없겠지만, 미사일보다 무시무시한 이지스함이 있고, 남녘나라이든 북녘나라이든 꿈꿀 수 없는 엄청난 군무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남녘땅에 있던 핵미사일을 미국이 도로 가져갔는지 모릅니다만, 미국이 남녘땅 핵미사일을 미국땅으로 가져갔거나 일본 류우큐우(오키나와)로 가져갔든, 이 핵미사일은 언제든지 북녘땅쯤 송두리째 날릴 수 있습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 “화장실은요?” “요강 같은 걸 들여놔야지.” “제임스 블록스 씨, 미리 말해 두지만, 난 품위 있게 위층으로 갈 거예요.” “하지만 여보, 돌아다녀선 안 돼. 국가적 비상 사태 열나흘 동안은 안 된다고.” “그럼, 좋아요! 요강은 어떻게 비울 거죠?” “저, 그냥 화장실에 버려야 할 것 같은데.” “방금 화장실에 가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요!” ..  (9쪽)


 일본은 한국과 대만과 중국과 태평양 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고, 유럽은 지구에 그려진 모든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으며, 미국은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가운데 쿠바와 중남미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베트남을 프랑스에 이어 식민지로 삼으려다가 쓴맛을 보았고, 쿠바라는 물좋은 식민지는 카스트로와 체게바라 일당(?)한테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쿠바를 빼앗긴 좋은(?) 쓴맛을 발판 삼아 칠레 아옌데 정부가 들어설 때 숱한 미사일과 헬리콥터와 탱크로 대통령궁을 박살내고 민주인사 목아지를 베어 죽이면서 식민지 넓히기를 힘차게 이어나갔습니다.


.. “세상에! 그럼 이젠 누가 지휘를 하지?” “꼼푸터겠죠.” “‘국민연금증서와 의료보험카드와 출생증명서를 상자에 보관할 것.’” “여기 쓸 만한 게 있어요, 여보. 속을 비울게요.” “고맙소. 상자는 안전한 곳에 둬야겠소. 그런데, 안전한 곳이 어디지?” ..  (13쪽)


 우리 나라는 우리보다 힘여린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돈없는 나라에 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우리보다 돈적은 나라에서 싼 물건을 사들여 나라안 일꾼과 가게가 무너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싼 물건을 사서 쓰는 우리들은, 제값 받고 팔아야 할 물건을 만드는 우리 이웃이 굶어죽도록 내몹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기 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이 만든 ‘옳은 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지 않으면서, 이웃나라에서 ‘싸게 내다 파는 달콤한 맛’에 홀려 머저리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총칼 들고 밀어닥친 군부대 식민지는 아니지만, 뒤에서 돈다발 들고 킥킥거리는 부자들 놀음놀이 식민지라고 느낍니다.


.. (잠시 방송을 중단하겠습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겠습니다. 적의 미사일이 우리 나라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3분 뒤에 폭발합니다.) “맙소사! 여보! 3분밖에 안 남았어!” “어머, 얼른 세탁물 좀 들여놓을게요.” “이리 돌아와, 이 바보야, 대피소로 들어가!” (대피하십시오!) “어떻게 나한테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어요!” “입닥치고 들어가란 말이야!” “전시라고 해서 품위까지 팽개쳐야 하나요?” (집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입닥쳐! 방송을 듣고 있잖아!” (집 안에 계십시오!) “이날 이때껏 그런 소린 못 들어 봤어요.”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제발 입 좀 닥쳐!” (엎드리세요!) “아, 여보! 오븐을 켜 놨어요.”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라니까!” ..  (17쪽)


 그나저나 북녘은 대포동미사일을 뭐하러 만들까요. 핵무기를 뭐하러 만들려고 할까요. 남이든 북이든 먼저 치고 들어가면 먼저 맞은편을 쑥대밭이 되도록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서로서로 먼저 쳐들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쳐들어간다면 누가 땅개가 되어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고, 누가 지도자나 사령관이 되어 가슴팍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게 될까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끝난 자리에는 무엇이 새로 들어서게 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서로서로 무엇을 더 얻어려고 벌이는 주먹다짐 칼부림 총질이 될까요.
 





 (3) 그림책 《바람이 불 때에》가 말하는 이야기


 그림책 《바람이 불 때에》는 힘센 나라들이 서로 악다구니처럼 싸움을 벌인 끝에 서로서로 핵무기를 쏘아대면서 모든 사람들이 가루가 되어 죽어 버린 일을 그림이야기로 담아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늙은 가시버시는 옛날 생각(제2차세계대전 때)을 하면서 ‘이번에도 어찌어찌 견디면 전쟁이란 바람은 지나가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이번 바람은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목숨을 죽음으로 실어나르는 바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늙은 가시버시는 핵무기가 퍼뜨리는 병에 걸려서, 또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물과 밥이 다 떨어져 굶어죽었을 테지만, 조그마한 집 조그마한 대피소에 나란히 누워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970년에 영국 그림쟁이가 담아낸 《바람이 불 때에》인데, 1970년 그무렵에도 ‘핵전쟁’을 걱정해야 할 만큼 사람들은, 아니 숱한 나라 정부들은, 아니 유럽과 미국에다가 러시아 정부들은 서로 누구 힘이 더 센가를 겨루면서 제 밥그릇을 좀더 크게 차지하려는 데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자, 그러면, 1970년부터 마흔 해 가까이 지난 2009년 오늘날 우리 세상은 어떠할까요. 유럽 나라는, 미국은, 러시아는, 일본은, 또 중국은 어떠하지요? 힘있는 뭇나라들은 힘여린 뭇나라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요. 티벳은 왜 중국한테 짓밟히면서 죽어나야 하는가요. 태평양 섬나라는 어이하여 다국적기업 관광지로 개발되어야 하는가요.


.. “너무 조용하지, 안 그래?” “그래요, 이상하네요. 기차도 안 지나가네. 자동차도 없어요.” “폭발 때문에 모두들 파업했나 봐요.” “탄내가 아주 지독해요.” “맞아. 하긴, 당연한 일이지.” “고기 굽는 냄새 같아요.” “그래, 고기파티를 하나 봐. 사람들이 이번 주엔 일요일이 되기도 전에 만찬을 하나 보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럴 거야.” “길이 아주 이상해졌어요. 좀 녹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우유배달부가 늦나 보군. 길바닥 어디에 붙어 버렸나 봐. 전쟁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걸까? 누가 이기고 있을까?” “걱정 말아요, 여보. 신문에 다 나올 거예요.” “생각해 보니까, 신문도 늦는 것 같아.” “어제도 우리 집은 빠뜨리고 갔어요.” ..  (30∼31쪽)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라고 그린다고 하지만, 《바람이 불 때에》는 아이들이 보기에 썩 알맞지 않은 그림책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끔찍해서? 아닙니다. 이야기는 끔찍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서? 아닙니다. 이야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아이들 삶하고 동떨어져서? 아닙니다. 이야기는 아이들 삶하고 가까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왜?

 아무래도 《바람이 불 때에》는 철이 없는 어른이 먼저 보도록 그려내지 않았느냐 싶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겪어 보았다고 하거나 전쟁을 안다고 하거나 나라사랑을 하자고 하거나 남북녘이 서로 맞서고 있다고 하거나 세계평화를 걱정한다고 하는 어른들이 바로 이 그림책을 찬찬히 받아들이거나 새기지 않는다면, 이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제대로 읽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먼 앞날 세상을 바꿀 테지만, 어른들은 바로 아이들이 자라나는 오늘날 이 세상을 흔들고 있거든요. 오늘날 이 세상을 흔드는 어른들이 우리 삶터를 어떻게 다스리거나 이끄느냐에 따라 아이들 삶과 삶터가 뒤바뀔밖에 없거든요.


.. ‘그럴 필요도 없지. 어차피 케이크는 모두 탈 테니까.’ ..  (17쪽)


 모두를 타죽이게 하는 싸움입니다. 핵무기를 앞세운 싸움이든, 재래식 무기를 앞세운 싸움이든, 모두를 타죽이게 하는 싸움입니다. 어린이도 타죽이고 어른도 타죽입니다. 푸름이도 타죽이고 늙은이도 타죽입니다. 고양이도 타죽이고 강아지도 타죽이며, 염소와 송아지와 돼지와 닭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달래와 개나리와 장미와 튤립을 따지지 않으며, 소나무와 잣나무와 방울나무와 감나루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싸움이라고 하는 바람’이 한 번 불 때에는 이제 모두들 끝이라고 해야 합니다. 큰 싸움이든 작은 싸움이든, 모든 사람을 타죽이게 하는 불바람입니다. 이리하여, 그림책 《바람이 불 때에》는 아이들한테 읽히기 앞서 어른들이 먼저 찬찬히 읽고 새기고 받아들이며 어른들 삶을 스스로 고쳐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이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쥐어 주어야 아이들 또한 속속들이 살뜰히 받아먹습니다.

 그저 지식이나 정보로만 이 책을 쥐어 준다면, 그예 ‘세계 명작 그림책이니 아이들 인성발달에 좋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쥐어 준다면, 우리 어른들은 또다른 뜻에서 ‘싸움에 한발 담그는 셈’입니다. 아이들한테 ‘싸움 솜씨’만을 물려주는 셈입니다. 우리 집 아이와 이웃집 아이한테 싸움을 붙이는 꼴입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밟고 올라서도록 내모는 짓이 되고 맙니다. (4342.7.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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