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잘잘잘 옛이야기 마당 1
이미애 지음, 백대승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는 어떻게 다시 펴내면 좋을까?


- 책이름 :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 글 : 이미애
- 그림 : 백대승
- 펴낸곳 : 미래아이 (2008)
- 책값 : 12000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호랑이(범)’ 이야기 한 가지만 골라서 엮은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라는 책은, 사람이 아닌 짐승을 빌어서 우리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한 자락마다 모두 다른 빛깔로 그림을 담아낸 품새 또한, 흔히 떠돌고 웬만큼 퍼져 있기에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호랑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기도록 이끕니다. 시원시원한 판짜임은,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을 널리 살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느 한편으로 바라본다면, 좀더 수수하게 엮으면서 책값을 낮출 길을 찾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옛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책 말투를 보면 한결같이 판박이로 되어 있습니다.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서정오 님 이야기책’부터 퍼진 ‘입말 투’라 할 텐데, 입말 투는 ‘똑같은 토씨로 끝나는 일이 드뭅’니다. 처음에는 이런 입말 투가 무척 새로우며 놀랍다고 느꼈는데, 똑같은 말투가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더 나아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또 우리 입말 투가 무엇인가를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는 동안, 다른 작가나 서정오 님 스스로도 ‘자연스러운 입말 투’에서 멀어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서정오 님 옛이야기 책이나 다른 분 옛이야기 책이나, 거의 판박이처럼 ‘-했어’, ‘그랬어’, ‘그랬지’ 하고 말끝을 맺습니다. 입말 투라고 하면서 ‘-다’가 아닌 ‘-어’나 ‘-지’로 끝맺는데, 우리들 입말 투는 ‘-다’로 끝맺을 때도 있고 ‘-어’나 ‘-지’로 끝맺을 뿐 아니라, ‘-구나’라든지 ‘-네’라든지 ‘-구만’으로 끝맺기도 합니다. 낮춤말도 아니고 높임말도 아닌 어설픈 입말 투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는, 차라리 높임말을 쓰면서 아이들을 섬기는 매무새를 보여줄 때가 한결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입말 투는 ‘것(거)’을 함부로 자주 붙이지 않습니다. ‘말했던 거야’나 ‘그랬던 거야’나 ‘먹었던 거야’가 아니라 ‘말했지’나 ‘그랬거든’이나 ‘먹었네’처럼 붙여야 올바릅니다.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는 이 어설픈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바람직하지 않은 ‘순화대상 낱말’이 곳곳에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만한 그림이야기책을 싼값으로 조촐하게 꾸민다고 하면, 요새 어머니들은 외려 이 책에 깃든 보물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로서도, 독자로서도, 또 우리 형편으로도 단출한 판짜임과 엮음새보다는, 어딘가 무지개빛이 가득가득 수놓인 엮음새가 보기에 좋다고 느끼고, 큰 판이 더 나은 그림책인 듯 생각하며, 옛이야기도 ‘입말 투로 보이는 말씨’로 되어 있어야 좋은 듯 알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호랑이’라는 말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왜 호랑이한테는 ‘무섭다’는 생각을 심어 줄까요? 더군다나 오늘날 어느 곳에서 ‘호랑이를 본다’고, 호랑이는 무서운 짐승이라는 듯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요? 지난 먼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마음결을,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차근차근 되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책을 펴내고 있을까요? 이제는 “무서운 공무원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나 “무서운 법관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나 “무서운 전투경찰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같은 책을 내어야 알맞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한테는 처음 마주하는 호랑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동물원에서나 겨우 보는 호랑이라는 짐승을 머리로 헤아려 보면서, ‘무서운 짐승한테도 따순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가르침 하나는 얻을 테고요.

 옛날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어떻게 다시 들려주면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있게 돌아보지 못했지만, 호랑이 그림 하나는 참 잘 그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남습니다. ‘왜 옛날사람이라고 하면서 죄다 조선 후기 사람만 그리고, 더구나 양반들만 그리고 있는지’를 뒷통수 좀 긁적이면서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어떤 신을 신었을지’, ‘산골 깊숙한 마을 집은 어떤 모양일는지’, ‘우리 나라 깊은 산골 나무는 어떤 모양 어떤 크기일는지’도 가만히 되새기면서 창조와 상상력을 북돋운다면 한결 나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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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조막손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 지음, 고향옥 옮김, 노베 아키코 외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다름’을 헤아리는 마음
 [잠깐 읽기 12] 다바타 세이이치, 《마법의 조막손》



- 책이름 : 마법의 조막손
- 그린이 : 다바타 세이이치
- 글 : 선천성 사지장애아 부모회, 노베 아키코, 시자와 사요코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우리교육 (2008.8.4.)
- 책값 : 9500원



 (1) 아이를 키우는 마음


 사회가 조금씩 발돋움을 하고 있는지, 요즈음 들어서 ‘다름’을 말하는 사람들을 부쩍 자주 봅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말하면서 더 널리 껴안는 마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름’은 늘 ‘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빼앗기거나 들볶이는’ 쪽에서 말하지, 누르거나 짓밟거나 빼앗거나 들볶는 쪽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만 해도, 정작 ‘재개발이 되어 떠나야 하는 주민들 생각’을 찬찬히 듣고 묻고 알아 가면서 하는 재개발이란 없습니다. 보증금 100만 원에 달삯 1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수수한 식구들이 깃들어 있는 조그마한 골목집 사람들이, ‘재개발이 끝난 뒤에도 이만한 돈으로 깃들 만한 집을 새로 지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한 평에 1천만 원도 아닌 2천만 원이나 3천만 원이나 하는 아파트만 새로 지으려고 하면서 ‘주택보급’을 이야기합니다. 서민들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비싼 아파트를 지으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외칩니다. 이런 모습도 ‘다름’일까요?


.. 마리가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내가 엄마야!” “아냐, 오늘은 나야. 나도 엄마가 하고 싶단 말이야!” 마리는 얼굴이 새빨개져 씩씩거리며 말했어요. “넌 엄마 못 해! 손가락 없는 엄마가 어딨어!” 옆에 있던 유키랑 나오코도, “맞아!” “말도 안 돼!” 하고 말했어요 ..  (10∼12쪽)


 이제 열흘 동안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 딸아이 기저귀를 갈고 똥오줌을 빨아내어 털어 널면서, 또 아직 덜 마른 기저귀를 부지런히 다림질을 하며 말리는 새벽 두어 시에 홀로 생각합니다. 병원(산부인과)에서는 이 어린 목숨붙이한테 ‘40 + 8 검사’를 해 준다고 하더군요. 나라에서 뒷배하여 1만 원만 내면 해 주는 검사가 여덟 가지이고, 8만 원을 더 내면 병원에서 마흔 가지 검사를 더 해 준다고.

 그래서 병원 간호사한테 물어 봅니다. 나라에서 해 준다는 여덟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또 병원에서 한다는 마흔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저처럼 물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네? 여덟 가지가 황달하고 혈액형하고 또 뭐 해서 여덟 가지예요.” “그러니까 그 여덟 가지 검사가 무언데요?”

 옆에서 다른 간호사가 알파벳으로 휘갈겨진 서류를 한 장 내보이면서, “영어로 적혀서 못 알아보겠지만, 이렇게 여덟 가지 검사예요.” 하고 앵돌아진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알아볼 수 없게 적은 검사 항목’을 보여주어서 어쩌겠다고. 알 수 없는 검사를 왜 받아야 하는데?

 간호사는 이런저런 말로 대충 얼버무린 다음, “아기한테 장애 검사를 하는 ……” 하면서 말을 잇습니다. 한참 듣다가, “저희는 그런 장애 검사는 안 받겠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병원에서 생각하는 ‘장애’란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면 그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고, 장애가 없으면 없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아이 혈액형이 A형이면 어떻고, O형이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혈액형 아니겠습니까. 굳이 벌써부터 알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혈액형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텐데. 아기한테 정작 베풀어 줄 일은 ‘장애가 있는 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버이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보듬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직 이어갈 수 없는 이 가녀린 목숨을 사랑해 주기일 텐데.


.. “학교에 들어가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생겨?” 삿짱은 엄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엄마는 두 손으로 삿짱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어요. “삿짱, 네 손은 말이야, 학교에 들어가도 지금이랑 똑같아.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삿짱. 너에게는 소중하고 소중한 손이란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딸의 예쁘고 예쁜 손이야…….” 삿짱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어요. “싫어, 싫어, 이딴 손 싫어!”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  (24쪽)


 기저귀를 하루에 마흔 장 남짓 빱니다. 아기가 사흘을 지낸 때에는 스무 장쯤 빨았는데, 나날이 빨랫거리가 늘어납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부터는 쉰 장까지도 빨아야지 싶습니다. 왜 ‘방수천’이나 ‘방수담요’를 쓰는지 알 만합니다. 젊은 어머니들이 왜 ‘1회용 기저귀’를 쓰는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목숨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어버이한테 내맡기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시간이나마 어버이로서 똥기저귀를 빨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노릇, 아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제 몸이 느낍니다. 아이가 살아갈 이 삶터가 1회용 기저귀 때문에 더 더러워지고 있는데, ‘어버이로서 조금 고단하다고’ 하면서 돈 몇 푼으로 1회용 기저귀를 사서 쓰면, 어버이한테도 나쁘고 아이한테는 더 나쁠 일이라고 느낍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아파하면서 나온 목숨인 딸아이인 한편, 저도 옆에서 똑같은 시간을 함께 아파하면서 옆지기를 주무르고 돌보면서 낳은 딸아이입니다. ‘여느 사람 말’은 아니라 할 터이나, 아기가 ‘으’ 하고 외마디소리를 나지막히 내뱉을 때, ‘끄’ 하고 외마디소리를 낮게 내뱉을 때, 지금 ‘내(딸아이)가 오줌을 지렸으니, 아버지는 얼른 기저귀 갈아 주셔요’ 하는 이야기건넴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장모님이나 다른 분들은 이 소리를 못 알아채지만, 저는 마음으로 느낍니다. 설핏 잠이 들어서 쓰러져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에 손을 대 보고는 촉촉함이나 물컹함을 느끼고는 서둘러 갈고 새 기저귀를 깝니다. 가슴에 살며시 제 손을 대고 다시 잠들도록 기다린 뒤, 젖은 기저귀를 들고 뒷간에 가서 신나게 빨아 목초액에 담가 놓습니다. 손이며 몸이며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었는데, 이 냄새가 ‘세상에 찌든’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줍니다.

 비빔질을 하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짝살짝 베어서 다친 손가락이 쓰라립니다. 1센티미터쯤 살짝 찢긴 살점이지만, 물이 닿으면 쓰립니다. 그래도 꾹 참고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를 생각합니다. 기저귀를 갈 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아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딸아이 이름)야, 아버지가 이번에는 기저귀를 좀 늦게 갈아 주었구나. 꿉꿉한데 얼른 갈아 주었어야 했는데. 엉덩이에 묻은 오줌도 닦고 발에 묻은 오줌도 닦고, 조금만 기다려 주셔요.”


.. 불쑥 삿짱이 말했어요. “아빠, 나도 엄마 될 수 있어?” 아빠는 깜짝 놀라, 삿짱을 바라보았어요. “나, 손가락 없어도 엄마 될 수 있어?” ..  (33쪽)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저보고 아기 기저귀를 뭣하러 다리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말없이 웃습니다. 너무도 마땅한 이야기라서, 굳이 대답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냥 웃을 뿐입니다. 어른인 저도, 빨아서 말리기만 한 천기저귀하고, 빨아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한 천기저귀하고 느낌이 사뭇 다른데요. 어른 살갗이 아닌 아기 살갗은 더 날카롭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처럼 어린 아기한테는 잠을 좇으면서 더 뽀송뽀송하고 부드럽게 기저귀를 마련해서 대어 주는 일이, 어버이로서 할 몫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을 못하는 아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아기인데, 이 아기 말을 제대로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어머니로서, 또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제 몫을 못하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손가락이 다쳐서 아프면서도 아픔을 꾹 참고 기저귀를 빠는 새벽나절, 마음으로 딸아이한테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 아버지가 조막손일 수 있는데, 아버지가 조막손이라 해도 벼리한테는 똑같은 아버지일 테지요?’


 (2) 아쉬움 몇 가지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을 읽습니다. 금세 읽고 덮은 다음, 두어 번 다시 읽어 봅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스물세 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한국땅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 옮겨 낼 만한 값과 무게가 있으니 예쁘장하게 꾸며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한국에도 장애를 안고 있는 어린이가 몹시 많을 텐데, 왜 한국땅에서는 ‘한국땅 장애 어린이’ 삶과 생각을 담은 이야기책은 보기가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법의 조막손》(일본책 이름은 ‘삿짱은 조막손’)은 틀림없이 훌륭하게 엮은 책이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대만이나 필리핀에서 옮겨내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이하여 한국사람들은 이만한 이야기책이나 그림책을 한국 삶과 삶터와 사람에 맞추어서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우리 땅에도 장애 때문에 눈물 흘리는 아이가 많고 어버이가 많은데, 왜 우리 스스로는 이런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한국땅에서 ‘그림 작가’라고 내세우는 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글 작가’라고 뽐내는 분이 두셋이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어이된 셈인지 장애 어린이 이야기는 눈 씻고 찾아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렵게 한 권 세상에 나와도 ‘참 안 팔립’니다. 《마법의 조막손》 또한, 훌륭한 이야기와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로 애틋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거의 사랑받지 못하고 몇 해가 지난 뒤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동화작가라는 분들이 눈길을 두면서 쓰는 글감을 보면, 그림책작가라는 분들이 마음을 기울이면서 그리는 그림감을 보면, 어째 우리 나라는 제자리걸음으로 우려먹는 일을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습니다.

 아파하는 사람들 이야기, ‘다르게 사는’ 이야기는 어인 일인지 제대로 다루어지는 일도 없지만, 겉핥기로나마 다뤄지는 일조차 드문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는 ‘집에서 낳기’를 하려다가 뜻을 못 이루고 말았지만, 왜 아이를 ‘병원에서 낳아야’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집에서 아이 낳는’ 일은 미친 짓(?)처럼 바라볼까요.


.. 드디어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요. 삿짱도 아빠 따라 병원에 갔어요. 아기는 요람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어요 ..  (30쪽)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에서도 ‘병원에서 아기 낳기’가 나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면, 일본에서는 아기 엄마 곁에 요람을 놓고 둘이 함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줍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신생아실’이라는 이름으로 아기들을 어머니하고 떨어뜨려 놓고 분유를 먹여서 ‘아기 때부터 엄마젖을 못 먹게’ 만들어 버리는 데다가, 1회용 기저귀로 꽁꽁 싸매어 놓습니다. 더구나 아기 머리 위로 형광등이 바로 따갑게 내리쏘고 있는걸요.


.. 삿짱은 씩씩대며 서 있었어요.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어요. “엄마, 왜 내 손은 다른 애들이랑 달라? 왜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없는 거야? 왜 그래?” ..  (18쪽)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갈 뿐입니다. 다르게 살든 똑같이 살든 모두 소중한 목숨붙이입니다. 대통령 뽑을 때 이명박 씨한테 표를 주었든 권영길 씨한테 표를 주었든, 모든 사람은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건 대학원까지 나왔건, 두 사람은 ‘나뉘어진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뿐 아니라, 인기 연예인과 비인기 연예인이 다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팔 하나가 있든 팔 하나가 없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벌이가 한 달에 오십만 원도 되기 어려운 살림이든, 한 달에 오억 원을 버는 살림이든, 모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 아이가 소중하고, 내 목숨이 사랑스러운 만큼 남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남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닐까 싶어요. 나 스스로를 제대로 알면서 사랑하지 못하니까, 내 둘레에 있는 남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푸대접을 하거나 깔보지 않느냐 싶어요.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은 ‘책에 쪽수가 없는’ 이상한 편집을 하고, 쪽수가 많지 않은 그림책치고 책값이 너무 비싸며, 책이름을 너무 뭉뚱그리셔 붙인 대목이 아쉽습니다(일본에서 처음 나올 때에는 수수하게 “삿짱은 조막손”이라고 했지 ‘마법’ 같은 말은 넣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 이만한 이야기조차 빚어내지 못하니 눈물까지 날 판입니다만, 모자라나마 이 그림책 하나로 우리가 자꾸만 잃거나 내버리고 있는 ‘다름이 아름다운 까닭’과 ‘다름이 사랑스러운 삶’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으니, 이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삿짱’이라는 아이는 조막손이어도 삿짱이고, 조막손이 아니어도 삿짱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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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08-08-29 17:4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말로 볼 때, 처음에 "삿짱"이라고 나와서 뒤에 적힌 히라가나가 "조막손"을 뜻하리라고 넘겨짚고 일어사전을 안 뒤적여 보았는데, 그 한 마디를 더 찾아보았어야 했는데, 도움글 고맙습니다. 일어사전 한 번 덜 찾아본 탓에, 저로서도 이 글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군요 ㅠ.ㅜ

흠... 일부러 쪽수를 안 적는다니... 쪽수란 아무런 뜻이 없을 수 있지만, 또 그렇게 하는 뜻도 있을 텐데, 책을 읽으면서 무척 번거롭게 되어서, 읽으면서 손으로 쪽수를 매겨 가게 됩니다... -_-;;;;

그런 버릇도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모르겠네요. 에궁...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작가로 걷는 길’과 ‘기저귀 빠는 길’과



 - 1 -

 지난 8월 16일 새벽 다섯 시 사십육 분에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낳기는 옆지기가 낳고, 저는 옆지기 진통을 함께 받았습니다. 스물네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옆에서 부축이고 주무르고 양수와 피를 닦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옆지기가 찬 기저귀를 빨고 밥을 떠먹였습니다. 이제 옆지기는 자기 손으로 밥과 국을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되었지만, 아기를 안아 올리기에도 힘이 모자란 형편. 얼추 한 주쯤 지나면서 혼자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볼 수는 있으나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일을 시켜서도 안 되지요. 예부터 세이레라는 말은 괜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낳는 진통과 아이낳기와 아이 돌보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또 제가 손수 거들면서,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을 넉넉한 시간에 걸쳐서 느긋하게 쉬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서 돌보아 주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며 다른 집식구들이 애먹을 수밖에 없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예전에는 머리속에 깃든 지식으로만 알던 이야기를, 이제는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으로 깨닫습니다.

 처음 진통을 하던 8월 15일 새벽부터 오늘 8월 23일 아침까지, 제가 잠든 시간이 얼마나 되나 손꼽아 봅니다. 한 주 동안 다문 열 시간이나마 잠을 잤나 모르겠습니다. 자리에 눕기로는 열 몇 시간은 누워 있은 듯하지만, 제대로 잠든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쯤밖에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낳는 동안 아파하는 옆지기를 돌볼 때에는 돌본다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뒤에는 몸을 쓰지 못하는 옆지기를 돌본다며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이즈음은 옆지기와 아기 시중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옆지기가 기운을 차려서 조금 움직이며 아기 기저귀를 갈아 주는 낮나절 잠깐 눈을 붙일 뿐, 그 앞과 뒤로는 쉴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쉴 겨를이 아니라 잠들 겨를이 없습니다.

 하루에 열둘∼스무 번 똥와 오줌을 지리거나 누는 아기입니다. 좀 자라면 덜할지 모를 텐데, 그때는 덜하더라도 누는 똥과 오줌이 늘 테지요. 지금으로서는, 젖을 먹으면서도 오줌이나 똥을 누고, 젖을 먹고 잠든 다음에도 오줌이나 똥을 누며, 칭얼거려서 가슴에 안아 줄 때에도 오줌과 똥을 지립니다.




 아기 낳기 앞서, 동네 할머님과 옆지기 집에서 천기저귀를 얻어서 갖추어 놓았습니다. 아기 사타구니에 차는 하나와 등에 받쳐서 싸는 하나, 이렇게 두 장을 날마다 열두 번에서 스무 번을 써야 하니까, 날마다 빨아야 하는 기저귀는 스물 넉 장에서 마흔 장입니다. 그리고 옆지기는 앞으로 한 달 남짓 아랫도리에서 피를 흘릴 터이니, 옆지기 기저귀도 날마다 두어 장씩 빱니다.

 기저귀만 빨면 그래도 낫지만, 아기가 드러눕는 바닥 담요와 포대기도 빨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죄다 빨다가 너무 힘들고 빨래감이 많아서, 포대기는 하루에 한 번만 빨기로 하고 똥오줌 지린 데만 물로 헹구고 살짝 빨아서 다림질로 말린 뒤 다시 씁니다. 담요는 한 주쯤 쓴 다음 빨아야지요. 담요도 젖는 틈틈이 다림질을 해서 말립니다.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해서 먹여야 하니 밥을 합니다. 밥을 하는 사이 “여보, 아기가 오줌 쌌어요.” 하고 부르면, “네.” 하고 쪼르르 달려가서 기저귀를 갈고 아기 엉덩이 닦고 바닥 포대기 살짝 빨아서 다림질을 합니다. 그러고 다시 밥을 해서 쟁반에 받쳐서 대접을 하고, 그런 다음 뒷간 빨래통에 담가 놓은 기저귀를 빱니다. 빨아도 빨아도 끝이 없기는 하지만, 어제는 비가 내내 그치지 않아 집안에 널어 놓은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았습니다. 안 마르는 빨래에 부채질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또 “여보, 아기가 똥 쌌어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며 포르르 달려가서 기저귀 갈고 엉덩이 닦고 포대기 또 빨아서 다림질을 하고 내려놓는데, 이십 분 뒤에 또 오줌을 지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로 갈아 준 기저귀를 사타구니에 받치고 누운 지 이십 분 뒤 또 오줌을 지렸습니다. 옆지기가 웃으면서, “벼리야, 아빠 이제 막 자리에 누웠는데 또 일으켜서 기저귀 갈아야 한다. 아빠 보고 한 번 웃어 줘라.” 하고 말합니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기를 째려보다가는 코로 볼을 한 번 눌러 준 뒤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를 빨아서 다림질을 한 다음 눕힙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며칠 아기 돌보기를 도와주었을 때에도 일감은 많았는데, 옆지기 어머님도 당신 댁을 돌봐야 해서 돌아간 뒤에는 일감이 훨씬 많아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왜 이리 짧으냐 싶습니다. 일은 고되게 하면서도 밥맛이 돌지 않아 밥을 못 먹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밥때를 챙기지 못합니다. 밥때를 챙기지 못하니 어느새 배고픔이 가라앉고, 나중에는 힘이 빠져 먹을 마음을 잃습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날 잠을 못 자면서 빨래하고 뭐 하고 하느라 몸 균형이 깨진 듯합니다. 여느 때 71∼72킬로그램 하던 몸무게가 오늘아침에는 65.5킬로그램까지 줄었습니다.

 오늘 새벽 네 시 오 분에 기저귀를 갈고 나서 다섯 시 십구 분까지 빨래를 하고, 다섯 시 사십오 분까지 다림질을 하다가 아기 기저귀를 또 한 번 갈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지 않는다.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으나, 이 말은 옳지 않다. 사람은 겪은 만큼 볼 뿐이다. 겪지 못했으니까 지식으로 머리속에 있어도 살갗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느낌(감동)이 없다. 때때로, 겪어 보지 않고도 (사물 속살을 꿰뚫어) 보는 이가 있는데, 자기 스스로 바로 그 일을 겪지는 않았으나, 자기가 겪은 다른 일을 미루어 살갗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는 사람은 지식으로 보는 사람이다. 겪은 만큼 보는 사람은 삶으로 세상을 보고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는 사람이다. 우리(나와 옆지기)가 천기저귀를 마련해서 손빨래를 하고 아기한테 어머니젖을 먹이는 까닭은, 돈을 아끼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생각하기 때문이요, 우리 삶을 가꾸고 싶기 때문이다. 천기저귀와 어머니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1회용 기저귀와 가루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몸이며 마음이며 같은가. 하루를 온통 바쳐도 모자랄 만큼 갖은 일에 허덕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나날은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견주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얼마 안 되는 나날을 아이와 우리 자신을 더 헤아리면서 이처럼 보낼 수 있다면, 서로한테 더욱 힘이 되고 즐거웁지 않겠는가.’

 아기 기저귀를 또 갈고 다시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니 여섯 시 삼십이 분. 이제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까 했으나, 옆지기가 “여보, 나 배고파요, 밥 줘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고 대꾸하며 미역국을 뎁힙니다. 잠자는 방에서 날뛰는 모기를 잡고 이렁저렁 있는 사이 아기는 다시 똥을 지리고, 저는 다시 기저귀 빨래를 하니 여덟 시 사십사 분. 히유, 하고 한숨 돌리며 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지만, 또다시 밀려드는 ‘기저귀 갈기와 빨기와 다림질’.

 아기와 함께 산 지 오늘로 엿새째인데, 이제 아기가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기분이 좋은지 꼬리한지, 또는 오줌을 지렸는지 똥을 누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아기는 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윽’ ‘끙’ ‘끄’ 외마디를 아주 나즈막하고 짧게 내뱉습니다. 마루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이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와서 이불 밑으로 손을 넣으면 촉촉하거나 물컹합니다. 기저귀 안 젖은 쪽으로 손을 닦고 다른 쪽으로 엉덩이를 살살 닦으면서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생각해 보면, 또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저런 돌봄이 노릇은 고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 아닌 제가 겪는 일을 돌아보아도 참으로 고단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이 고단하고 힘든 일을 누구한테 맡길 마음은 없습니다. 빨아 놓은 기저귀는 안 마르고 아기는 또다시 오줌과 똥을 지리면 그지없이 까마득해서 부리나케 덜 마른 기저귀를 부랴부랴 다림질을 해서 대어 주는데, 꼭 ‘아버지가 되는 느낌’이어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삶이구나, 사람 삶이구나, 우리 삶이구나, 하는 느낌이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지난주에는 옆지기 양수 냄새가 제 몸에 듬뿍 배어 있었고, 이주부터는 아기 똥오줌 냄새가 제 몸에 잔뜩 배어 있습니다.




 - 2 -

 아기가 아버지한테 잠깐이나마 ‘평화’를 선물해 주는 아침 열 시 반무렵. 조용히 옆방으로 와서 셈틀을 켭니다. 잠을 자고 싶지만, 지금 잠을 자면 아예 셈틀을 켤 수 없기 때문에 눈 둘레를 주물러 주고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뒷간에 갈 때를 빼놓고는 책장 한 번 펼치기 힘든 요즈음, 셈틀을 켜고 글 한 줄 쓸 틈은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걸려오는 전화 받기는 귀찮을 뿐더러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한창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전화가 오면 짜증부터 덜컥 납니다. 맞은편에서는 제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길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얼른 끊고 싶으나, 자기 볼일을 마쳐야 전화를 끊어 주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전화 받기 몹시 힘들어요.” 하고 말해도 ‘얼마나 힘든 줄’을 거의 못 느끼지 싶습니다.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우리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언제나 일하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집에만 계신 어머니이지만, 어머니가 해야 할 몫은 늘 끝이 없었지 싶습니다. 제가 철이 든 뒤에도 그러했으니, 제가 막 태어난 아기였을 때에는 일감이 훨씬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육아책’을 못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볼 겨를도 없지만, 볼 꿈도 못 꾸었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볼 마음을 품어 본 적이 있으셨을까요, 없으셨을까요. 있으셨어도 하루하루 바쁘고 고단해서 연필 들어 일기장 적을 힘이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연필을 들 힘이 있으면 빨래 한 점을 더 하거나 걸레질 한 번을 더 한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고, 몸져누운 할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수발해야 했기에, 어머니 당신한테 ‘작가가 되는 꿈’이 있었다고 해도,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이웃 동네에 사는 할머니 시인인 정송희 님 말을 들으면,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아이가 혼인하기까지 ‘시인이라는 이름은 젊은 날 걸치고 있었으나 시를 쓸 틈과 힘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서른 해 남짓 접어놓은’ 채 사셨더군요.




 - 3 -

 여기까지 쓰는데 아기가 울어서 안아서 어르고, 조용해지면 밀린 기저귀를 빨고 다림질을 하고, 모처럼 해가 나서 빨래를 앞마당에 옮겨 널고, 옆지기 수박 잘라 주고, 똥 눈 아기 엉덩이 씻기고 하니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아버지도 밥을 먹어야 하건만 밥때를 챙길 겨를이 없고, 밥을 챙겨 줄 손이 모자랍니다. 이제 막 옆지기가 아기 젖을 물렸으니 이십 분이나 삼십 분은 숨통을 틀 듯합니다. 후다닥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와서 제 먹을거리를 챙기고, 남은 기저귀를 빨고 다려야겠습니다.

 새삼스레 ‘아줌마 작가’가 드물고 ‘아이 키우기와는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는 남성 작가’만 많은 우리네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1.8.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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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그림책


 한국땅에 옮겨지는 나라밖 그림책이 80%가 넘는다느니 90%가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아무런 뜻이 없다. 70%라고 해도 너무나 많으며, 50%도 아니고 40%라고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라밖 어린이책’이 우리 줏대가 하나도 담기지 않은 채 돈만 바라보면서 나오는 셈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이들이 보라고 엮는다는 그림책 한 권 값이 무척 비싸다. 고작 열여섯 쪽 하는 그림책은 8000원쯤 하고, 서른두 쪽쯤 되면 1만 원 안팎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책값은 책값이라고 치고, 오늘날 한국땅에 옮겨져 나오는 나라밖 그림책은 참말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옮겨서 펴낼 만한 뜻이나 값이 있을까?

 돈 적은 집에서는 사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도서관도 아주 적어서, 도서관에서는 사 주지도 않지만, 어쩌다가 도서관에서 사 준다고 해도, 이 책을 보려고 도서관 나들이를 하자면 몹시 힘든 우리 형편을 살펴본다. 우리 나라 도서관 가운데 어느 곳이, 느즈막하게 일을 마치는 여느 노동자들이 책 보러 갈 틈을 돌아본 적이 있던가.

 부자집은 부자집대로 한국 사회와 삶을 있는 그대로 살피지 못하도록 어릴 적부터, 나라밖 그림책, 알고 보면 서양 그림책에 길들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은 가난한 집대로 한국 사회와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그림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애써서 한두 권 그림책을 사 준다 한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림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가난한 어버이들을 헤아리는 일이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는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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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권이라는 책

 
 문단에 어떤 힘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렇게까지 큰힘을 낸다고 할 수 없는 어떤 분이 여태까지 51권에 이르는 책을 냈고, 앞으로 한 해 사이에 열 권을 더 낼 준비가 되었고, 오래지 않아 101권까지 책을 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분을 훌륭하다고 보면 훌륭할 터이나, 나로서는 이분 책을 여러 권 읽고 살피는 동안, 그다지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 뜻밖이라고 여겼는데, 쉰한 권이라는 숫자도 숫자이지만, 앞으로 백한 권을 넘어설 그분 책 숫자를 헤아리면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지난 뒤, 이분 책이 몇 권이나 살아남아서 우리들한테 읽힐 수 있을까를 곱씹으면서 슬펐다. 눈물이 났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아니 자라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나무가 베어지면서 이분 책에 들어갈 종이로 쓰여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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