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겠습니다 - 땅과 아이들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과서
요시다 도시미찌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잘 먹겠습니다
- 글 : 요시다 도시미찌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7.5.31.)
- 책값 : 6000원


 이 책 하나 31 ― 밥을 먹습니까, 돈을 먹습니까?
 : 요시다 도시미찌, 《잘 먹겠습니다》



 (1) 내 밥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밥을 먹기 앞서 두 손을 모으거나 고개를 숙이며 비손을 올립니다. 우리 옆지기는 천주교를 믿기에 천주교 틀에 따라 비손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믿기에, 먹을거리를 내어준 흙과 뭇 목숨붙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 부디 옛날 어른들의 먹는 지혜에 귀기울여 주세요. 우엉도 대충 씻어 뿌리 잔털까지 먹었습니다. 우엉은 껍질에 맛이 있습니다 ..  (79쪽)


 조금 앞서 아침을 들었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베풀어 준 흰김치, 양조장집 아주머니가 베풀어 준 무채, 지난주에 성당에서 얻은 빨간무, 이웃 아주머니가 나누어준 달걀을 반쯤 익힌 것, 가게에서 사 온 콩과 누런쌀로 지은 밥, 이렇게 밥상을 차려서 먹었습니다.


.. 모든 먹을거리는 뿌리를 찾아보면 흙에서 나왔습니다. 흙이 변해서 된 우리들은 흙에서 가꾼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 튼튼한 아이를 키우고 활력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먼저 그 바탕이 되는 흙을 건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7∼9쪽)


 술안주 삼아서 가끔 과자부스러기를 먹을 때가 있는데, 과자는 대여섯 봉지를 먹어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여 방귀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집에서 손수 쌀을 일고 씻고 안쳐서 지은 콩밥에다가 한두 가지 푸성귀나 김치로 밥을 먹으면 반 그릇으로도 배가 부르고, 한 그릇을 다 비우면 더는 밥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까지 배가 고프지 않고, 저녁에 밥을 먹을 때에도 반 그릇쯤 먹으면 속이 넉넉합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냄새 살짝 구수하고 푸른빛 슬며시 도는 똥이 시원하게 나오면서 방귀는 거의 안 뀌게 됩니다.


.. 자기들이 흙과 미생물과 연결되어 서로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친근감이 나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체험이 없으면 자연 환경문제를 아무리 가르쳐도 다만 지식의 조각으로 끝나고 말 두려움이 있습니다 ..  (19∼20쪽)


 책상 앞에 앉아서 글쓰는 일을 해야 할 때면 힘이 많이 들어서 때때로 입이 심심합니다. 요즈음은 귤이 나는 철이니 썰렁한 부엌에 귤을 한 바구니 모셔 놓고서 두 알씩만 방으로 가지고 와서 천천히 벗겨서 먹습니다. 불은 잠자는 작은 방만 땝니다. 거의 ‘외출’로 맞추어 놓으니 불을 땐다고 할 수 없고, 잠자는 방바닥에는 이불이 늘 깔려 있습니다. 한참 일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이불로 들어가 옹크리기도 하고 다리를 쭉 뻗어 보기도 합니다. 불을 때지 않아도 이불 속에서는 따뜻해서 손도 녹이고 몸도 풀어 줄 수 있어 좋습니다.


.. 고기, 달걀, 우유는 조금씩 소중하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싼 고기, 달걀, 우유는 값을 낮추기 위하여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동물들을 기릅니다. 그런 동물들은 허약하고 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약품을 써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가축과 연결된 우리들은 어떨까요? ..  (83쪽)


 우리 집으로 놀러오는 분들이 감이나 능금이나 배를 들고 오곤 합니다. 이럴 때 감이나 능금이나 배를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쟁반에 담아서 내옵니다. 우리 식구는 감씨는 못 먹지만 능금씨나 배속까지 오독오독 씹어서 먹습니다. 껍질은 열매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니 마땅히 그냥 먹습니다. 손님한테 내어준다고 해서 껍질을 벗기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곳을 쓰레기로 버릴 수 없으니까요. 가장 맛있는 곳이니 “껍질째 드시면 훨씬 맛있어요. 열매는 껍질 맛으로 먹어요. 씨앗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감이나 능금이나 배가 다시 태어나자면 바로 고 작은 씨앗 때문에 다시 태어나잖아요. 새로운 열매가 될 유전자와 영양분을 담뿍 안고 있는 씨앗이니 오도독 깨물어 먹으면 우리 몸에도 좋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 인간도 닭장의 닭처럼 완전히 격리된 방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22쪽)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껍질이나 씨앗이나 배속을 남기는 분들이 거의 모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고, 쓰고 텁텁해서 입맛에 안 맞아서 그렇기도 하겠지요. 땅콩조차 껍질을 벗겨서들 먹고 있으니까요.





 (2) 선배와 후배와


 지난주 토요일, 개봉역 둘레에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 가운데 ‘로즈빌’이라는 곳 22층에 사는 고등학교 선배네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아파트 이름 ‘로즈빌’이란 무슨 뜻일까 한참 머리를 굴렸지만, 돌머리로는 그 뜻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24층까지 우뚝 솟은 아파트들인데,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가 매우 좁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겠군요. 놀이터는 놀이기구 몇 가지가 있지만 흙 한 줌 없습니다. 참 썰렁하네, 하고 느꼈지만, 다른 아파트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 역시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 넘쳐나는 정보 홍수에 밀려 생명이나 앞날에 관한 귀중한 정보는 여간해서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 사람들은 그것을 싸다고 삽니다. 서로가 자기 돈벌이를 위하여 사는 사회, 청소년 흉악범죄는 그런 사회를 토양으로 자라난 검은 꽃입니다 ..  (29쪽)


 저도 어릴 적에 아파트에서 열세 해 살았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동과 동 사이는 5층 아파트 높이만큼 띄엄띄엄이었습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바닷가 항구 바로 옆에 있던 우리 아파트는, ‘전쟁이 나서 포탄을 맞아서 쓰러져도 옆 동이 닿지 않아야 한다’는 잣대가 있어서 그런 잣대에 따라서 지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놀이터는 두 군데 있었는데, 두 놀이터는 따로따로 아파트 한 동 넓이와 똑같을 만큼 무척 넓었습니다. 그래서 이 놀이터에서는 11:11 공차기 놀이나 9:9 공놀이를 즐길 수 있었어요. 놀이터 바닥은 모두 모래였습니다.


.. 파리는 정화된 세계에 사는 우리들에게 함께 생활할 수 없는 보기 싫은 생물이지만, 지구에게 또 우리들에게 없어서 안 되는 귀중한 생명입니다. 병충해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지구를 청소하는 일꾼입니다 ..  (34쪽)


 승강기를 타고 22층으로 지이잉 올라갑니다. 승강기는 ‘장애인도 바퀴걸상을 밀고 탈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이런 편의시설은 참 좋군요. 그런데, 바퀴걸상을 타고다니는 장애인들이 이 로즈빌 아파트에서 전세라도 얻어서 살 수 있을 만한 살림일는지.


.. 예전에는 사람의 똥오줌을 통에 숙성시키고 농사꾼은 그것이 완전히 정화했는지 손끝으로 찍어 맛보고 나서 거름으로 썼습니다. 그런 거름으로 키운 채소에 병충해는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생충이나 병원균은 덜 숙성된 사람의 똥오줌을 직접 채소 가까이에 뿌렸을 때 크게 생겨났던 것입니다 ..  (45쪽)


 선배와 형수는 큰상 가득 먹을거리를 차려 줍니다. 두 사람 다 바깥일을 다니느라 시간도 없을 텐데, 참말 힘들겠습니다. 상차림도 일이지만, 나중 뒷갈무리도 일이잖아요. 형수님한테 슬쩍 여쭈니, “평소에는 안 쓰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자동세척기 쓰니까 괜찮아요.” 합니다.


.. 초등학생은 아직 괜찮지만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수록 먹을거리는 황폐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먹는 지식을 가르쳐도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으니까 먹을거리도 아무거나 먹게 되는 것이겠지요 ..  (63쪽)


 동기 녀석 부부와 후배 녀석 부부, 혼자 사는 후배 하나, 이렇게 하여 아홉 사람이 큰상에 둘러앉아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합니다. 부지런히 술잔을 부딪힙니다. 예전에는 ㅊ소주만 마시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른 ㅊ소주를 더 마시게 된다며, ‘ㅈ회사 불쌍해서 어쩌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뭐, 둘 다 어마어마하게 팔릴 텐데.

 고기와 회는 밖에서 사 왔지만 다른 찬거리는 집에서 마련하신 듯. 참으로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저와 옆지기를 뺀 다른 사람들은 돈벌이 이야기, 주식 이야기, 자동차 이야기 들을 주고받습니다. 다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선배는 “야, 결혼하고 나서 여지껏 책 한 권도 못 사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선배는 책이 있는 방(서재)도 따로 있잖아요. 요새 그렇게까지 책 있는 방 마련해 놓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고 대꾸해 줍니다.

 작지 않은 차, 큰 텔레비전, 헹굴 때 속이 들여다보이는 세탁기, 단추만 누르면 알아서 씻기는 설거지 기계, 슥 밀기만 하면 쓸고 닦고 해 주는 청소기 ……, 참으로 많은 전자 설비를 쓰는 우리들은, 집안살림이나 바깥일을 보면서도 손쓰거나 시간 들일 일이 참으로 줄었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기 틈 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전자 설비를 쓰면서 아껴진 시간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힘들고 바쁜가 봐요.


.. 먹는다는 것은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입니다 ..  (74쪽)


 넌지시 물어 봅니다. “아이가 크면 나중에 학교 보낼 생각이에요? 학교 보내면 바보 될 텐데.” 선배는, “학교 왜 안 보내? 보내야지.” 하고 말하고, 동기 녀석은 “나는 안 보낼까 봐.” 하고 말합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다가 유치원까지 하면 열두 해는 훨씬 넘고 열대여섯 해쯤 되겠지요. 이만한 세월 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영어? 한문? 상식? 또 뭘 배우지요? 논술? 태권도? 컴퓨터? 그리고 또?

 수능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면 처음부터 수능 시험문제만 가르칠 일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이름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그런 대학교에 가서 좋을 일이 무엇일까요. 나중에 돈 많이 주는 큰회사에 일자리 얻으려고? 그러면 처음부터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시키면 될 노릇이 아닐는지.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아이들을 가르치면 될 텐데. 다들 대학교 나오고 어쩌고 하면서 다른 집 아이들 과외는 잘만 시킨 지식인들인데, 그런 지식으로 자기 아이 하나 못 가르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고, 돈벌이에 너무 푹 빠져서도 그러한지 모르며, 돈벌이보다도 일에 잔뜩 매이면서 자기 삶을 안 찾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아이들을 학교에 ‘버려’ 놓거나 ‘가두어’ 놓으며 햇볕 한 줌 바람 한 줌 못 쬐게 할까요.

 모두 다 똑같은 시멘트집 아파트에 살면서 집과 학교와 학원 사이를 자가용이나 학원버스로 오가며 땅 한 번 아이들 스스로 못 밟게 하는 이런 모습이, 부모가 할 노릇일는지요.


.. 영양사는 숫자를 맞추려 먹을거리 재료를 사방에서 모을 것이 아니라, 지금 지역에 있는, 농약이 적은 제철의 건강한 먹을거리 재료를 조사하여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아이들이 물리지 않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64쪽)


 저녁 열한시 즈음 자리를 접기로 합니다. 우리 식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도 되는데, 인천 사는 후배가 자기 차로 같이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대리운전 부르면 된다고.


.. 왜 아픈 사람은 자꾸 늘고 새로운 병원체가 나타나는지? 왜 집중력이 약한 어린이가 늘고 돌발성 범죄가 느는지? 왜 사람은 툭하면 싸우는지? 앞날이 어두운데 왜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는지? 이 모든 현상의 바탕 원인에 대해 말로 하기 어렵지만, 우리들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어린이들도 지도자도 대부분의 사람이 잊어버렸습니다 ..  (98쪽)


 후배 녀석도 머잖아 색시를 만나 혼인을 하겠지요. 후배 녀석도 예식장에서 혼인을 할 테고, 청첩장 받아서 예식장을 찾아가면 뷔페로 밥 한 끼니 차려놓겠지요. 서양 예복을 입고 사진 촤라락 찍은 뒤, 케익을 자르고 나서, 비싼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을 올린 다음, 다른 동무들이 꾸며준 웨딩카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서 나라밖 어디로 나들이를 한 주쯤 다녀올까요.





 (3) 작은 책, 《잘 먹겠습니다》


 고작 105쪽에 지나지 않는 작은 책, 《잘 먹겠습니다》를 지지난달에 사서 이달 첫머리에 다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책상맡에 그대로 올려둔 채 틈틈이 집어서 되읽습니다. ‘땅과 아이들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과서’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조그마한 이 책은, 일본에서 ‘농사체험 학습’을 할 때 교과서처럼 쓴다고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하고 마찬가지로, 논밭에서 풀을 뽑으라 하면 잡풀이 아닌 곡식 풀을 땀 뻘뻘 흘리면서 뜯는답니다. 날마다 ‘어머니가 부엌일 하며’ 밥상에 차려 주니 먹기는 먹었겠지만, 벼가 어떤 모양인지, 보리가 어떤 모습인지, 수수가 어떤 생김인지, 감자풀과 고구마풀은 무엇인지 하나도 가려내지 못할 테지요. 고구마케익은 맛있다면서 먹어도 고구마줄기 하나는 못 찾겠지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는 울릉도 호박엿’ 이야기는 흔히 들었겠지만, 그 호박이 얼마만한 크기와 빛깔로 꽃을 피우는지는 모르겠지요. 고기를 구으며 깻잎은 즐겨먹었어도 깻잎이 깨를 심어서 거두는 잎이고, 깨가 얼마나 자잘한 알갱이로 열매를 남기는지 모를 테지요.


.. 우선 알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비행동에 주의하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역기업이 자라납니다. ‘뭐야! 사회를 바꾸는 것은 먼저 자기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그때 왜 거기서 포기했을까, 그때 왜 좀 분명히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야깃거리로 삼아야 합니다. ‘왜 학교의 교육위원회에서는 이런 것을 전해 주지 않을까?’라고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우선 그렇게 생각한 당신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31쪽)


 우리들은 무엇을 ‘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고등학교 졸업장은 우리 아이들한테 ‘너희한테 지식이 얼마만큼 있고, 너희가 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너희들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줄까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혼자힘으로 꿋꿋하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졸업장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사람 쓰레기’일 뿐일까요.


.. 병원균이 세포를 침범한다기보다 건강치 못한 부위에 병원균이 모여들었을 뿐입니다 ..  (37쪽)


 오늘은 12월 25일, 예수님오신날입니다. 예수님오신날에 눈이 오면 ‘하얀 성탄절’, 영어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만,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12월 25일은 따뜻합니다. 2008년은 어찌 될까요. 2009년은? 2010년쯤 뒤부터는 우리 나라도 ‘반소매 옷을 입고 맞이하는 예수님오신날’이 되지 않을는지요. (4340.12.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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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마치다 준 지음, 김은진 옮김 / 삼인 / 200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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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각하!
- 글ㆍ그림 : 마치다 준
- 옮긴이 : 김은진
- 펴낸곳 : 삼인(2007.6.18.)
- 책값 : 8000원



 이명박 새 대통령한테 읽히고픈 만화책
 [살가운 만화 31] 마치다 준, 《각하!》



 (1) 나무젓가락과 헌책


.. 2001년 11월. 우리는 그림자 여단을 결성했다. 단원은 단 둘. 세계에서 유일한 최대의 조직이다. 아무리 큰 그림자라도  실체를 알고 나면 보잘것없는 것이 많다 … 민중은 그림자를 두려워한다. 권력자의 그림자를. 권력자의 그림자는 항상 거대하고 선명한 법이니까 ..  (9∼11쪽)


 모임이나 일터마다 한 해 마무리를 한다면서 조촐하게 잔치마당을 꾸리는 때입니다. 엊저녁 어느 모임 마무리잔치에 나들이를 갔습니다. 이런저런 먹을거리가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공연도 있습니다. 차려진 먹을거리는 찾아온 사람들한테 주는 것들인 만큼, 저와 옆지기도 몇 가지 냠냠짭짭 집어먹습니다.


.. “공원 나무가 전부 잘려 있잖아?” “어쩔 수 없습니다. 요즘 서민들이 밥을 지을 때 땔감으로 나무가 모자라서요.” “아니, 이건! 내 석상도 깨져 있잖아!” “어쩔 수 없습니다. 서민들이 몸을 녹이려고 태우는 것이거든요.” ..  (131쪽)


 그런데 먹을거리 마련된 자리에 놓인 접시와 젓가락과 물잔은 모두 ‘한 번 쓰면 버리는 것’들뿐입니다.

 젓가락이나 물잔을 100개 200개 300개 마련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두고두고 쓸 수 있는 것’으로 마련해 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마무리잔치에 오는 손님들한테 ‘젓가락과 물잔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값싸면서도 튼튼하고 손쉽게 챙길 수 있는 꾸러미로 묶어서 줄 수도 있을 테고요.

 중국집에서 쓰는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갖추어 두는 일도 돈으로나 나중 설거지로나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작은 물잔도 얼마든지 쓸 만하다고 느낍니다.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접시를 사서 쌓아 둔다면 치우기도 수월하다고 하겠지만, 잔치판 뒤끝에 치워 쓰레기봉투에 담으면 우리 눈앞에서만 사라질 뿐이지, 그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 “이 추운 날씨에 저자들은 왜 밖에 모여 있는 거야? 불순분자들 아냐?” “각하, 살 곳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진짜야? 그렇다면 어디 빈 건물을 찾아서 빌려 주지 그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정부 시설이 남아돌잖아.” “여긴 내 집무실이잖아!” “네, 각하, 쓸모없는 곳이라고…….” ..  (87∼88쪽)


 그렇게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것으로만 갖추어 두는 줄 알았다면, 찾아갈 때부터 수저며 쟁반이며 들고 갈 텐데. 아마 다른 마무리잔치에서도 먹을거리를 마련할 때는 이렇게 할 테지요. 출판사들이 하는 출판기념잔치에서도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것’을 놓아 두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뜻을 담은 책이라고 해도, 그 책 하나를 만드는 동안 베어 넘어뜨리는 나무와 쓰여지는 물이며 갖가지 자원을 헤아릴 때면, ‘좋은 책이랍시고 내놓지만 참으로 미안합니다’ 하면서 고개숙일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즐거운 잔치가 그저 먹고 마시고 버리는 모습으로 끝맺기보다는 어떤 남다른 뜻과 느낌까지 선서하거나 함께 나누도록 이끌어 가도록 눈길 한 번 더 둘 수는 없을까요.


.. “정말 감동적인 그림이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의 죽음인가. 이봐, 가까이 가서 이 그림의 제목을 읽어 보게.” “알겠습니다. 저……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씌어 있는데요.” ..  (43쪽)


 나무젓가락 담긴 껍데기는 비닐이기도 하고 종이이기도 합니다. 종이껍데기에 싸인 나무젓가락을 보면 겉에는 으레 ‘고급위생젓가락’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급위생’ 젓가락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고급위생’이라 한다면, 이런 ‘좋은’ 젓가락은 잘 씻고 말려서 다시 써도 좋은 젓가락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나무젓가락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으레 가방에 챙겨 놓고 집으로 가져와서 씻어서 말린 뒤 잘 싸서 가방에 다시 넣고, 다음에 젓가락 써야 할 자리에 이 녀석을 쓰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새 나무젓가락을 톡톡 끊어서 쓰고, 저는 옆에서 ‘예전에 썼던’ 젓가락을 꺼내어 씁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젓가락 다시 쓰면 위생에 안 좋은데.” 하면서 말리거나 빼앗으려고 합니다. “나무젓가락이 더러우면 얼마나 더럽다고요. 햇볕에 잘 말려서 쓰면 되잖아요. 우리가 먹고 마시는 밥이나 물은 얼마나 깨끗한데요. 우리 사는 이곳은 얼마나 깨끗한데요.” 말도 안 되는 대꾸일 수 있지만,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물건을 볼 때마다 손가락 하나가 잘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 “이봐.” “네, 각하.” “그런데 이건 뭔가?” “네, 고슴도치입니다, 각하.” “음.” “순조롭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이는 거지?” “글쎄요, 그 건에 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각하.” ..  (28쪽)


 한쪽에서는 새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새 물건을 더 많이 사서 쓰고 꾸준하게 버려 주어야 경제성장률이 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만들고 쓰고 버려야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질까요. 이렇게 해서 나아지는 살림살이는 우리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어 줄까요. 우리들은 얼마나 즐거울 수 있나요.


.. “각하, 아호리카가 또 지하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흠, 비겁하게 숨어서 하긴. 기왕에 하는 거 떠들썩하게 해야지. 어차피 전 세계에 알려질 거잖아. 좋아, 우리도 이에 대항해야지. 그래, 우리는 거리 중앙 광장에서 하자구! 세계 각국의 수뇌부를 초대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큰 놈으로 한 방 쏴 주는 거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즉시 준비해!” ..  (57쪽)


 날이 갈수록,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읽는 책들은 ‘한 번 읽고 그만’인 책들로 몰립니다. 한 번 읽고 책꽂이에 꽂아 두면 그럴싸해 보이는 책들로 쏠립니다. 두 번이나 세 번쯤 읽을 책들은, 네 번이나 다섯 번쯤 읽을 책들은, 열 번이나 백 번쯤 돌아볼 만한 책들은 자꾸 우리 손에서 멀어집니다. 책도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되어 버렸을까요. 연속극도 한 번 보면 버리면 되고, 인터넷소식과 이야기도 한 번 보고 잊으면 되고, 사람도 한 번 만나서 같이 일한 다음 헤어지면 되고 …….


.. “각하, 보시는 바와 같이 형무소는 어딜 가나 만원입니다.” “그만큼 반란분자가 많다는 건가. 그런데 묘하게도 즐거워 보이는군…….” “길거리엔 아무도 없는 거야?” “네, 각하. 거의 다 체포되었으니까요.” “거리에 사람들이 없으니 쓸쓸하군……. 우리도 형무소 들어가서 지낼까?” “아, 네…… 각하…….” ..  (91∼93쪽)


 책이 소중하지 않은 때가 되어서 그럴까요. 적은 돈으로도 손쉽게 책 하나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그럴까요. 책을 소중하게 아끼던 때에는, 책 하나를 자기 몸뚱이처럼 아끼면서 다루었고, 이렇게 아끼던 책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빌려 주는 일을 즐겨 했습니다. 나한테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면 남한테도 도움이 되리라 믿고, 나한테는 속 줄거리를 읽어서 가지는 책이지 물건으로 책꽂이에 쟁여 두어 가지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책은 ‘물건이나 재산으로 가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책은 ‘읽어 주는 사람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자기 삶을 가꿀 때’ 비로소 뜻이 있기 때문이지요.


.. “각하,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나라의 농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식량 위기에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좋아! 그럼 즉시 식량을 확보해!” ..  (29∼30쪽)


 도서관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읽고 또 읽습니다. 수많은 사람 손을 거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손길을 거치는 책들은 다치고 찢기고 뜯어지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도서관 책을 놓고 ‘헌책’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헌책방 책은 누군가 한 번 사서 읽은 뒤 흘러나와서 꽂힌 뒤, 새로운 책손이 찾아들면서 만지고 또 만집니다. 수많은 사람 손길을 탑니다. 하지만 헌책방 헌책은 많은 사람 손길을 거쳐도 다치지 않고 찢기지 않고 뜯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돈을 치르고 사야 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껍데기가 비록 헐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 책이 아닌 만큼은 함부로 다룰 수 없어서’ 그럴는지 모르겠습니다. 새책방 새책도 그렇겠지요. 내가 사기로 마음먹고 서서 읽는 책과 그냥 구경할 마음으로 서서 읽는 책을 다루는 매무새는 같을 수 없습니다.




 (2) 만화책 《각하!》


 12월 19일,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이명박 씨는 48.6% 지지율로 다른 후보를 제치고 1등으로 뽑혔습니다. 거의 모든 신문에서는 ‘압승’을 했다고 말하지만, 한국 사회 절반이 지지하는 한편, 절반은 지지하지 않은 1등입니다. 한 표 권리를 쓰지 않은 37%나 되는 사람들 숫자를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 1/3만 지지해 준 1등입니다.


.. 9ㆍ11테러 이후, 우리들은 매우 언짢고 관용이 없는 사회에 살게 됐다. 나날이 연출되는 테러의 위협, 위정자의 망언을 맹목적으로 믿어 버리는 사람들, 개인의 작은 이익을 지키려고 강대국의 국제법 위반과 그 희생자를 보고도 못 본 체하는 사람들……. 세계를 이렇게 참담하게 만든 것은, 미국 대통령과 그 충실한 연합국의 애완견들일까? ..  (한국 번역판에 붙이는 머리말)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뽑힌 뒤, 신문마다 어슷비슷한 기사가 실립니다. “이 당선자는 ‘고졸’ 출신 두 대통령과 달리 고등학교 졸업 직후 서울로 상경, 막노동을 해 번 돈으로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으로 공부해 1961년 고려대 상대(현 경영대)에 입학했다”(문화일보), “돈이 없어 중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대학에 도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해럴드경제)

 이명박 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연설을 할 때면,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야간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칠 때까지 모두 선생님, 헌책방 주인, 시장상인 도움을 받아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웃이 도와줬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국가가 해야 합니다.”(이명박 네이버블로그 자료) 하고 말했습니다. 청계천 헌책방 사장님들이 책을 거저로 주기도 했다는 말도 연설문 곳곳에 실려 있습니다.


.. 지금, 이 나라(일본)는 빛을 잃고 있다. 소년들은 노숙자를 덮치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회사가 도산해도 정치가는 “개혁을 위한 통증”이라는 한마디뿐. 강국 아호리카에 아첨하고, 그 아호리카는 최빈국을 폭격하며 헤스라헬에 최신 병기를 착착 공급한다. 그 헤스라헬은 게토의 역사를 팔레스타인에 재현한다. 결국 세계가 퇴색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문학이나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니, 하나 있다. 근시안적인 세상의 흐름에서 한 발 떨어져 세계의 움직임을 비판하는 쪽에 몸을 싣는 것 ..  (마치는 말)


 청계천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모여들던 사람들은 있는 돈과 없는 돈을 푼푼이 모아서 길거리 장사를 했고, 이런 장사꾼이 하나둘 늘면서 저절로 저잣거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저잣거리에다가 살림집이 다닥다닥 붙어 선 이곳은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장보기를 하고 물건 구경도 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청계천은 뚜껑이 덮이고 고가도로가 놓이고 삼일아파트가 올라섰습니다. 그렇게 된 뒤 서른 해쯤 뒤, 청계천 뚜껑은 다시 걷히고 고가도로는 치워집니다. 이러는 동안 청계천을 따라서 길거리 저잣판을 벌였던 사람들 살림은 어찌 되었을까요.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에 어느 날부터인가 노점상이 싹 사라졌습니다.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름 하나로 아주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붕어빵이나 어묵꼬치 하나도 상가에 가게를 들여서 판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고, 붕어빵이나 어묵꼬치 또는 떡볶이와 순대 들은 도시사람들이 먹을 만하지 않은 ‘미관을 해치고 위생에 나쁜’ 것이라고 느껴서 이렇게 조치를 했는지 모릅니다.


.. 시대는 여지없이 과거를 버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도 이라크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이 투입되어 지구 자체가 상품 패키지화된 지금, 사람들은 작디작은 일상에서 서로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  (머리말)


 청계천 사람들은 그저 그 모습 그대로 그 사람들 깜냥에 맞게 스스로 집을 짓고 가게를 열고 판을 벌여 장사를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쉰 해 백 해가 되어 가며 저절로 문화와 사회와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문화와 사회와 마을은, 집권자들 명령 하나로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가, 또 한 번 크게 물갈이가 되듯 바뀌었습니다.

 권력을 움켜쥔 이들 명령은 아주 쉽게 내려질 수 있고, 그야말로 짧은 동안에 후다닥 바뀌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파트 한 채가 새로 서기까지도 한두 해쯤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만, ‘재래’ 소리를 듣는 오래된 저잣거리는 참으로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 피땀과 발자국과 손품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새로 대통령으로 뽑힌 이명박 씨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시렵니까? ‘이명박 각하!’로? 당신이 대통령 후보였을 때 우리들한테 밝혔듯, “옛날에는 이웃이 도와줬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국가가 해야 합니다” 하는 말처럼, 보통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보통사람인 우리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는지요. 무엇을 어떻게 돕는다고 할 때 ‘누구’ 목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들한테 일을 맡겨서 ‘어디’에서 ‘언제’ 하실는지요. (4340.12.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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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셋 + 셋 + 여섯 해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남겨 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얻으며 보낼까요. 아이들은 어떤 즐거움을 나누거나 함께하고 있나요. 초ㆍ중ㆍ고등학교로는 모자라기 때문에, 이만큼 가르치고 배워서는 한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없기 때문에, 제도권 교육과정에서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면서 다부지게 살아가도록 이끌기 어렵기 때문에, 이동안 가르치고 배운 여러 가지로는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갈 깜냥과 슬기가 보잘것없어서 고단하기 때문에, 대학교 네 해가 더 주어져야 할까요.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을 동네 분식집에서 만납니다. “와, 아주머니, 아저씨다!” 하고 반기다가 내처 묻습니다. “이번에 누구 찍을 거예요? 이명박 찍으실 거죠?” “이명박을 왜 찍어야 하는데?” “멋있잖아요.” “무엇이 멋있는 모습인가요?” “…….”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을 고를 때에는 그 사람이 무슨 정책을 내놓고 우리 삶터와 사회를 어떻게 가꾸려 하는가를 꼼꼼히 살펴야 해요.”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뽑힙니다. 이명박을 찍겠다던 제 둘레 사람들은 “이명박을 찍어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살지. 지금 서민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고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책방 나들이를 합니다. 몇 가지 책을 주섬주섬 살펴봅니다. 만화책 《각하!》(삼인,2007)를 들춰봅니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던 때부터 그린 만화입니다.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사,2007)를 집어듭니다. 자동차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슬그머니 털어놓는 이야기부터 해서 삶이 고스란히 말로 되어 나옴을 보여줍니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2000)를 골라듭니다. 일본이 엄청난 번역나라가 된 까닭은, 서양나라 쳐들어옴을 겪고 나서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유학생을 서양나라로 보내면서라 합니다. 자기들을 쳐부순 나라한테 배워야 한다고. 《박정희》(살림,2007)라는 작은 책을 집습니다. 지겨워도, 지겹겨만 여겨서는 우리 삶터를 새롭게 추스를 수 없음을 느낍니다.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녹색평론사,2007)를 챙겨듭니다. 대안 에너지를 마련하여 지구자원 줄어듦을 이겨낼 수 있어도 우리 스스로 헤픈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면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음을 들려줍니다.

 골라든 책을 집으로 들고 와서 하나씩 읽습니다. 50쪽, 100쪽, 150쪽 쭉쭉 읽다가 덮고 다른 책 읽다가 덮습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고 골목길 마실을 나옵니다. 인천시에서 ‘남북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서, 동네 골목집 한복판을 꿰뚫으며 놓으려는 산업도로 터 앞에 섭니다. 벌써 800억이 들어간 공사라 그만둘 수 없다며 밀어붙입니다. 다문 1억만 ‘좋은 책 장만’ 하는 데 들여서, 동사무소나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너른 터에 꽂아 놓으면 저절로 동네 문화가 살고 사람들 생각과 마음씀씀이를 북돋워 줄 텐데. 그예, 앞으로 수천 억 더 들여 우격다짐으로 새 찻길을 닦아세우려는지. (4340.12.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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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 글ㆍ사진 : 호시노 미치오
- 옮긴이 : 이규원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5.7.23.)
- 책값 : 12800원


 이 책 하나 29 ― 사랑하는 자연 품에 안긴 사진여행꾼
 :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1) 그림 그리는 동네 젊은이와


 “오랫동안 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을 찾아온 동네 젊은 친구가 한 마디 합니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스무 해 뒤에도 이 자리에서 꼿꼿하게 도서관을 지키고 있으면 더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는 아직 젊어서 많이 모르지만, 좋은 뜻을 품고 일하는 사람들이 잠깐으로 그치지 말고 오래도록 목숨을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소 폭과 깊이를 띠게 된다 ..  (261쪽)


 앞으로 스무 해면 2027년. 스무 해 뒤 저는 쉰이 넘는 나이. 쉰 살이라. 제 나이 쉰 살에 무슨 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를 한 번도 내다본 적은 없습니다. 아니, 내다볼 겨를이 없이 언제나 이 자리에서 이 한동안을 잘 보내자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괜찮게 보낸 하루였어’ 하는 마음으로 보낼 수 있으면,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될 테고, 그 한 해 두 해가 모여서 열 해가 되겠지요.


..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사 자연인 것이다 …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  (244∼246쪽)


 어쩌면, 나도 저 젊은 친구 나이였을 때 나보다 앞서서 사회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던 손윗사람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금 일을 이어가시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거나 “스무 해 뒤에도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좋은 일이니까, 훌륭한 일이니까, 이런 일을 하는 보람을 듬뿍 느끼면서 힘을 잃지 말고 우리 같은 어린 싹들한테 앞날을 헤아리는 믿음을 선사해 주고 앞선 사람들이 다부지게 걸어가면서 제 꿈을 펼 수 있음을 널리 보여주기를 바라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다치지 말라고, 지치지 말라고, 어깨 떨구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앞으로 내가 당신들 나이가 될 때 나 같은 사람들이 외로이 헤매지 않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때때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거라면, 112년을 살아온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  (212쪽)


 동네 젊은이는 벽그림 그리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주말에는 부모님이 꾸리는 밥집에서 오토바이로 밥 나르기를 한답니다. 오늘도 “작업하다가 와서 옷이 좀 그래요.” 하고 씨익 웃습니다. 젊은 친구가 입은 옷은 군인옷. 해병대 다니며 입던 야상. 야상에는 벗겨지지 않을 만큼 페인트가 묻어 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미술책도 있나요?” 하고 묻기에, 속으로, ‘허허, 원 참, 자기가 서 있는 왼쪽에 있는데, 안 보이나?’ 하고 생각하며 웃습니다. “음, 어떤 미술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아이들 그림책부터 해서 죽 있어요.” 하고 손으로 가리킵니다. 그리고, “요새는 아무나 붓질 할 줄 알면 아이들 그림책을 그린다고 하는데, 진짜 제대로 그리는 아이들 그림책을 보면, 밑바탕부터 아주 잘 되어 있는 분들이 그리기 때문에, 줄 하나에도 깊이가 느껴져요.” 하고 덧붙이면서, 키츠 그림책과 벵상 그림책과 스캐리 그림책을 하나씩 들추면서 보여줍니다. 스캐리 그림책은 일본에서 펴낸 열 권짜리 전집도 있기 때문에, “이분은 처음에는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빛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만화 그림처럼 되어 가고, 나중에는 모두그림으로 하나로 모아서 재미난 이야기를 엮어내는 책을 만들었어요.” 하고 말하며 작품을 여럿 보여줍니다.

 1940년대에 나온, 의사가 그린 남녀 성기 해부학 그림책도 보여주고, 독일 조각가가 사람몸을 찰흙으로 빚는데 뼈와 힘살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빚어서 붙인 뒤 마무리를 짓는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아서 보여주는 책도 보여줍니다. “선생님은 과정을 중시하나 봐요?” “글쎄, 예술은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보통은 마무리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하지만요.”


.. 밥은 왜 41년 간이나 이 땅을 떠나지 않았을까. 가문비나무 이야기가 그 물음에 힌트를 주는 것 같다. 밥에게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자연조차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 그리고 마침내는 죽어갈 이곳 쉬솔릭이 흥미로운 것이다 ..  (26쪽)


 “혹시, 김환기라고 하는 분 책도 있나요?” “김환기, 김환기, 음, 어디엔가 있는데. 이건 이쾌대 님 책이고, 이쾌대 님은 일제강점기 때 그림을 그린 분이에요. 우리들한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 있는데 잘 안 보이네요. 저도 꽂아만 놓고 머리에만 기대기 때문에 잘 못 찾기도 해요.” “따로 입력해서 정리하지는 않으시나 봐요?” “네, 일부러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정리해 두면 저부터도 찾기 좋겠지만, 사실 책을 본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목록이 주어지면, 다들 ‘보는 책’만 또 보게 되잖아요. 하지만 목록을 따로 마련해 놓지 않으면 자기가 바라는 책을 찾으면서 다른 여러 가지 책도 함께 보게 되어요. 책을 본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둘레 책들까지 해서 두루 보도록 하는 일이 좋다고 생각해요.”


 (2) 아침신문을 보고


 일터인 도서관이 있는 인천 배다리 둘레에 ‘너비 50미터 길이 2.41킬로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인천시 종합건설본부는, 머지않아 ‘지금 멈춰진 공사를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이야기를 신문사 기자한테 말한 듯합니다. 우리들 동네사람(주민)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그저께 아침,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을 보니, “수 차례 민원인들과 타협을 시도했지만 진척이 없어 (공사 재개) 통보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신문기자한테 들려준 인천시 종합건설본부 쪽에서는 언제 한 번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샛길도 아닌, 산업자재 그득 싣고 수출입 화물을 수십 톤씩 싣고 다니는 큰 짐차가 들락거릴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에 놓는다면, 이 동네 문화며 삶터는 그예 무너져내릴 테지만, 이런 엄청난 밀어붙이기 막공사를 거두어들이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동네사람들 ‘민원 때문에 공사진행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야기를 신문사 기자들한테 흘리고 있습니다.


.. 들판에서 곰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체험일까. 저기 한 마리 곰이 있을 뿐인데도 광대한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게 된다. 며칠 뒤 툰드라 저쪽에서 검은 이리가 나타났다. 백야의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이리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인데도 이리는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섬광처럼 달려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  (56쪽)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산업도로 밀어붙이기를 동네사람들 힘으로 가까스로 ‘공사 잠정 중단’까지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사 잠정 중단’을 하고 나서 ‘아무런 타협안’도 우리들한테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길을 내 버리면 사람들 삶은 와장창 깨지는데, 여기에서 무슨 타협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또, 어떤 타협안을 우리들한테 이야기했다고 신문사 기자는 종합건설본부 공무원들 말을 거리낌없이 실을 수 있었을까요. 어차피 공사터를 닦아 놓았으니 ‘길은 그냥 내되 산업도로 구실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여기에 길이 놓이면,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통학로가 끊어져서 위험해질 뿐 아니라, 소음과 먼지에 무던히도 시달려야 하는데, 어차피 길을 내도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문제이지, 공사를 밀어붙이는 공무원들은 이 동네에 안 살기 때문에 상관이 없는 일일까요.


.. 지난 1백 년 동안 알래스카 북극권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새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하나는 선교사, 상인, 광산업자, 생물학자, 교육자 따위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이 전에 살던 지방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이 땅에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왔다. 또 한 부류는 이 땅에 벌써부터 존재하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이어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겉으로 쉬 드러나는 데 반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알려지는 일이 없다 ..  (35쪽)


 아침에 한 번, 낮에 한 번 우체국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천 종합건설본부 사람들한테 이 길은 왜 있어야 할까요. 동네사람들은 그런 길 없어도 된다고, 아니 그런 길이 나면 동네가 옴팡 무너지고 망가진다고 하는데, 인천시장을 비롯해서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과 구의원들은 왜 이런 동네사람들 목소리는 안 들으려고 할까요. 이들 행정을 맡고 정치를 맡은 이들은 어떤 목소리를 들었기에 여기에, 동네 한복판에 산업도로를 놓아서 ‘지역균형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룩하겠다는 소리를 읊을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소리는 어찌하여 지역신문 기사로 꾸준히 실릴 수 있을까요.


.. 아직 습기로 눅눅한 강가 둔덕 위에 벌렁 눕는다. 이른봄의 향기로운 흙냄새. 연보랏빛 야생 크로커스가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다.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멍하니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 뛰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린다. “어이― 시간아, 어릴 적의 너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 외쳐 보고 싶지 않은가 ..  (103쪽)


 산업도로 예정터는 우체국에서 십오 미터쯤 옆. 이곳에 4층짜리 건물이 있었는데, 얼마 앞서 그 4층짜리 건물 4/5를 허물었습니다. 참말 길을 뚫으려고 저 건물도 허는가 하고 가슴이 쿵쾅쿵쾅. 그러고 두 주 뒤인 오늘 아침, 큰 기중기차 한 대가 와서 철근놓기를 합니다. ‘어, 뭐 하나?’ 하고 가만히 바라보니까, 길을 낸다는 것 때문에 그 건물 4/5는 잘려나갔지만, 비스듬하게 건물 붙이기를 해서 잘린 곳 가운데 1.5/5쯤을 새로 올리려고 하는 듯합니다.


.. 이 마을의 교회는 십자가만 없다면 다른 민가와 구분이 가지 않는 통나무 오두막이다. 다른 마을에서 온 신부님은 한참 젊은 사람이었다. 까만 가운 밑으로 하얀 운동화와 청바지가 비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  (149쪽)


 사람 사는 곳에 길이 안 날 수 없고, 사람이 사니까 길을 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에서 새로 놓는 길은 얼마나 사람이 다니도록 마음을 쓰면서 놓는 길일까요. 지금 우리 나라에서 자꾸만 놓으려고 하는 길은 얼마나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즐거울 만한 길일까요.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서 모은 돈으로 사람들이 장비를 움직여서 길을 닦고 사람들이 모는 자동차가 오가는 길이지만, 정작 사람 냄새는 하나 없는 길, 사람 느낌은 깃들 수 없는 길은 아닌지요.


 (3) 그림쟁이


 벽그림 그리는 젊은 친구는 도서관 책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림쟁이 김환기 님이 자기한테 작은할아버지라고 하기에 김환기 님이 쓴 《그림에 부치는 시》라는 책 하나를 빌려줍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우리 친척이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는데, 사진을 보니까 할아버지하고 진짜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이 책에 있는 표지 그림하고도 진짜 똑같네요.”


.. 자연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고 한다. 이리의 습격을 받는 카리부 무리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약한 놈을 희생시켜서 무리 전체의 강인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지만, 자연은 정말 그렇게 교과서대로 움직일까? 의외로 우연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은 약한 자까지도 포용해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204쪽)


 젊은 친구한테 김환기 님 도록 하나를 찾아서 보여주었습니다. 젊은 친구는, “아, 그런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합니다. “저도 그 도록을 갖춰 놓기는 했지만, 저도 그 그림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요. 무슨 모더니즘이라고 하던가, 그런 그림인데.”


.. 비록 어린아이들이지만, 한 생명을 끝장내고 손으로 직접 살점을 만지면서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 고기를 입안에 넣음으로써 그 카리부의 생명을 자기가 잇게 된다는 것 ..  (42∼43쪽)


 “김환기 이분이 글도 쓰셨어요?” “네, 글도 쓰셨지요. 그리고 글을 잘 쓰셨지요. 책을 보면 사이사이 그림도 끼워넣었어요. 참 좋아요.” “이 책 빌려 주셔도 돼요?” “음, 친구가 나중에 돌려주기만 하면 되지요.” “와, 고맙습니다.”


.. 알래스카의 새로운 토지 분할로, 그들의 집은 어느새 국립공원 경계선 안에 들어가 있다. 알래스카가 아직 미개척지였던 시절, 자유를 찾아 이 땅에 들어와 들판에 정착한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불쑥 불법침입 통고장이 날아든다 ..  (62쪽)


 “가만히 보면, 우리 도서관에는 그림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다른 갈래 책도 그렇지만. 그냥 제가 좋아해서 하나하나 사서 읽은 책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좀 좁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런 책들은 다른 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많기도 하니까, 재미있게 봐 주세요.”

 젊은 친구는 제가 추천해 주는 책들을 걸상에 앉아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넘깁니다. 어쩌면 처음 보는 새로운 그림들이라서 마음을 쏟아서 보는지 모르고,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는 이 그림들이 우리 젊은 친구한테 새로운 눈을 틔워 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작은할아버지한테 흐르던 피가 자기한테도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그림밭으로 나아가려는 피끓음을 하는지 몰라요.


.. 카리부를 다 옮겼을 때 나는 케니스에게 물었다. “케니스,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카리부를 훈제실까지 옮겨요?” 케니스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쉬차, 조금씩 끌고 가면 돼. 끌다 보면 어느새 둑 위에 와 있어.” ..  (196쪽)


 “오늘 구경 잘하고 갑니다. 책도 잘 읽을게요.” 젊은 친구는 부모님 집에서 따로 나와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다닌다고 하는데, “오토바이 타면 서울에도 가고 부천에도 가고 좋아요. 일하다가도 페인트 떨어지면 바로 타고 가서 사 올 수 있고요.”

 제가 젊은 친구 나이였을 때는 두 다리로 달리면서 다녔습니다. 저 젊은 친구가 지금 제 나이를 넘어서며 자기 손아랫사람을 만날 때에는, 저 친구한테 손아랫사람 되는 이는 어떻게 세상을 부대끼며 만날까요.


 (4) 《바람 같은 이야기》라는 책


 한 해 남짓 읽어 온 《바람 같은 이야기》를 덮습니다. 이제 제 책상맡에서 떠나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이 책을 쓰고 사진을 찍은 ‘호시노 미치오’ 님은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사라진 삶을 보냈다고 느낍니다. 더운 곳에서는 시원한 바람으로, 추운 곳에서는 따스한 바람으로.


.. 편리한 문명생활과 등을 돌리고, 불편한 한 팔로 카리부를 한 걸음 한 걸음 둑 위로 끌고 올라가는 케니스.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언젠가 케니스가 나이 더 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죽어 가겠지.” ..  (198쪽)


 사진이 좋아 사진을 찍고, 어느 날 보게 된 알래스카 사람들 삶터 사진에 흠뻑 빠져서 바지런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알래스카로 떠났다는 호시오 미치오 님. 흘러흘러 떠도는 것만이 바람이 아니며, 고여고여 한 자리에만 맴도는 것만이 바람이 아님을 온몸으로 말하면서, 글 몇 자락과 사진 몇 장으로 우리들하고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나누고자 스스로 바람이 되어 버린 이 사람. 다음에 또 봐요. (4340.12.14.쇠.ㅎㄲㅅㄱ)


 《노던라이츠》(청어람미디어,2007)
 《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
 《숲으로》(진선출판사,2005)
 《곰아》(진선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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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 인천 배다리에서 지역공동체예술 운동을 하는 분들과 조금 늦게까지 막걸리를 마십니다. 술자리 이야기는 영화 이야기로도 번지고, 옆지기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분이 엮어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가 참 좋다는 말을 또박또박 합니다. 저는 마를렌 고리스라는 분이 엮어낸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영화가 참 좋다고 느껴져서 네 차례 보았다는 말을 두런두런 합니다.

 아침에 택배가 옵니다. ㅂ이라는 책잡지에서 다달이 “이달 좋은 어린이책 추천”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보내주는 다섯 가지 책을 받고서 이 가운데 한 권을 추려서 소개글을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느덧 한 해를 훌쩍 넘기고 있는데, 다달이 책 다섯 가지를 받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추려서 추천할 만한 책은 하나같이 안 보일까 싶어서 눈을 비비게 됩니다.

 지난주, 주안에 있는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인천인권영화잔치가 열렸고, 토요일에 〈탐보그란데〉라는 페루 영화도 한 편 걸렸습니다. “망고, 살인, 광산” 이 세 가지가 뒤엉킨 채 마을사람들 삶터를 몇 푼 보상금으로 쫓아내려는 개발업자와 정치꾼 움직임에 낮은자리 사람들은 “돈이 아닌 농사짓기가 더 좋다”고 말하면서 맞섭니다.

 얼마 앞서 서울로 책방 나들이를 갔다가 《미나타마병》(한울,2006)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올해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2007)라는 책이 나왔고, 어린이책 가운데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우리교육,1995)가 있으며, 사진책 《미나마따의 아픔》(을지서적,1990)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미나마타는 일본에 있는 조그마한 바닷가마을. 오랜 세월 고기잡이를 하며 오순도순 조용히 살던 사람들이지만, 바닷가에 들어선 공장에서 내뿜은 쓰레기물, 이 가운데에서도 수은 때문에 더는 고기잡이를 못하고 사람들도 병에 걸려 거의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수은만 물고기와 들짐승과 사람몸에 나쁠까요.

 영화 〈디 워〉는 자그마치 800만이 넘는 사람이 보았다고 하는데, 저도 이 숫자에 들어갑니다. 〈디 워〉를 보며 참 심형래 감독답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임순례다운 영화, 정재은다운 영화, 황윤다운 영화도 널리널리 사랑받으며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도록 대접받거나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어제 낮, 고등학교 적 동무한테 집전화 한 통 걸려옵니다. “야, 나 ○○야, 너 핸드폰도 없애고 그러면 어떻게 연락을 하냐?” “그래도 집전화가 있잖아.” “요즘 세상에 누가 집전화로 연락하냐. 아무튼, 이번 토요일에 보자. 나와라.” “몇 시에?” “저녁 여섯 시 반쯤, 부평역 대한극장 앞으로 나와. …… 그런데, 야, 이제 베스트셀러 하나 내서 수십억 벌어야 하는 것 아니냐?” “마, 그렇게 벌면 니가 전화했을 때, 실례지만 누구신데요, 하고 말할걸?”

 이제 며칠 있으면 토요일, 이때 제가 혼자서 만드는 잡지를 하나 들고 가서 나누어 줄까 하는데, 동무들은 이 잡지를 보며 무어라 말할는지. “내용이 좋아도 팔려야 해.” 하고? 아니면 “안 팔려도 내용이 좋으면 돼.” 하고? (4340.12.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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