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과 다시다


 ‘미원’과 ‘다시다’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조미료가 있습니다. 화학조미료지요. 일본에서 만든 조미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만들고, 상품광고마저도 일본 광고를 고스란히 베껴서 내보내 왔습니다. 1998년에 신문방송학 공부를 하면서 본 일본 조미료 회사 광고와 한국 조미료 회사 광고가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고, 노래며 광고말이며 어느 하나 안 베낀 곳이 없는데, 이와 같은 광고가 한국에서는 ‘광고상’까지 받는 형편이었으니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미원이며 다시다며, 또 맛나며, 또 새로운 이름으로 나오는 숱한 조미료며,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끊임없이 엄청나게 사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국을 끓입니다. 조미료가 있기 앞서까지는 된장과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보았으나, 조미료가 싼값으로 퍼져나가자, 모두들 된장과 소금과 간장을 뒤로 밀쳤습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손맛과 입맛으로 우리 몸을 북돋우던 흐름이 하루아침에 끊겼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나라에서 라면공장 키우는 정책을 펼치며, 사람들 밥상에 라면이 부쩍 자주 오르게 되었고, 이제 라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느끼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라면에는 ‘스프’가 들어가는데, 이 스프는 미원이나 다시다보다 더 자극이 센 조미료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제까지, 찬장에 미원이나 다시다나 맛나나 라면스프가 없는 집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밥과 국을 하는 손길을 찾는 일은 놀이터 모래밭에서 천 원짜리 캐내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동네 이웃집에 놀러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게 될 때면 일찌감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고 비손을 올려야 합니다. 조미료덩이를 배속에 집어넣고 삭여야 할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지만, 싫은 얼굴을 할 수 없습니다. 세탁기 안 돌리고 텔레비전 안 본다는 대목 하나만으로도 ‘미친 놈’ 소리를 듣고 있는데, 조미료 하나 안 쓰고 소금과 된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찌개를 끓여서 먹는다고 하면, ‘이 동네를 떠나 산골구석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눈초리를 받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꼭 물똥을 누거나 속이 뒤집어져서 괴로웠지만, 어디를 가도 하도 커피를 타 주기 때문에 차마 개수대에 흘려보내기만 할 수 없어서 억지로, 어거지로 마시고 했더니 이제는 몸에서 조금 받아 주기는 합니다. 토마토나 딸기 대접을 받을 때, 그냥 꽁다리까지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설탕은 안 묻히고 먹습니다. 그러나 ‘그럼 맛없어!’ 하면서 일부러 설탕을 푹 묻혀서 이쑤시개로 찍어서 제 손에 쥐어 주십니다. 능금이나 배를 먹을 때 껍질을 안 벗기고 속까지 모두 먹고 싶으나, ‘맛없어! 그걸 왜 먹어!’ 하면서 쓰레기통에 얼른 집어넣으십니다.

 눈물이 핑 돌지만, 가슴이 쓰리지만,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옆지기와 저는 배추 날것 그대로 물에 씻어서 먹기를 좋아하나, 싱그러운 열매는 껍질과 씨까지 오독오독 깨물어 먹기를 즐기나, 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라도 능금 껍질을 벗겨서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껍질 안 벗긴 것을 속까지 냠냠짭짭 씹어서 먹지요.

 여러모로 알아보고 생각하고 길찾기를 해 본 끝에, 우리들이라도 도시에서 똥오줌을 거름으로 삭혀서 집에서 푸성귀를 기른다든지, 아니면, 만들어 놓은 거름을 동네 꽃밭에라도 뿌려 줄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동네이웃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신날 텐데, 옆지기가 이웃 아주머니한테 들어야 하는 소리는 장난이 아닙니다. 어느 만큼 어림하고 있었습니다만,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이 아주 남다른 삶도 아닌데, 당신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고작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만 해도 다들 이렇게 사셨는데, 그리고 당신들 아주머니 아저씨를 낳아 기른 아버님 어머님은 모두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모두들 거리낌이 없는 모습과 매무새로 그렇게들 이 땅에서 어울려 왔는데.

 무거운 마음을 풀고자 동네 막걸리집에 갑니다. 동네 막걸리집에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51%인데 어쩌고 ……, 식량위기가 저쩌고 …….”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뭐라고?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51%라고? 뭔 소리여?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25% 밑으로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헛소리를 늘어놓고들 있나? 아니, 헛소리이건 아니건, 그렇게 자기들도 우리 나라가 ‘식량 위기’인 줄 안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크나큰 특집으로 삼아서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깨우치고 몸을 움직여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하지 않나?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도, 아저씨들도 모두모두 집에서 저 텔레비전 소식을 들으실 테지요. 식량 위기가 어쩌고, 자급률이 어쩌고 ……. 그런데 우리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 가운데 몇 분쯤이나마, 이런 이야기를 당신들 살갗으로 받아들이면서, ‘미원’과 ‘다시다’로 물들이고 있는 삶을 털어내도록 움직여 주실 수 있을까요. (4341.5.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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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ms 2010-07-12 10:41   좋아요 0 | URL
다른 이유로 검색하다가, 즉 우연히, 들렀습니다.
저도 멸치는 대가리 내장(?) 다 먹는 편이고
명태도 새우도(?) 대가리까지 먹지만
사과 내장은 그 사과씨의 독특한 맛 때문에 ... 네 사과 뼈는 맛이 괜찮습니다.
또 하나 사과 배꼽(꽃자리)는 맛이 별로 입니다.
맛이 별로인 것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과씨는 근거가 부족하니
사과배꼽도 마찬가지겠네요.
포도씨도 씹자니 삼키자니 ... 포도 껍질도 어느덧 벗기는 게 씹는 것보다 편해졌고 ...
딸기 꼭다리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네요. 딸기는 흔하지도 않아서였는지 ...
요즘은 애들과 애엄마랑 먹을 때 기준이 내가 아니라 더더욱 ... 그렇네요.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23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 소화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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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7 ― 아름다운 지구가 왜 더러워지는지 아십니까
 : 우자와 히로후미,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책이름 :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글 : 우자와 히로후미
- 옮긴이 : 김준호
- 펴낸곳 : 소화(1997.1.6.)



 (1) 날씨와 공무원과 내 몸


 무르익은 봄을 알리는 비가 오는가 싶더니, 봄비가 아닌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렸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걸맞는 따뜻한 봄비가 아니었습니다. 따뜻함을 싹 가시게 하는 찬비였습니다. 그렇게 제법 긴 날이 흐른 뒤 밤새 짙은 안개가 끼더니 날이 살며시 포근해집니다.


.. 이와 같은 기후의 변화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농업, 입업, 어업이다. 농작물이나 수목의 생육은 그 토지 고유의 기상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또한 어패류의 생식도 바다의 온도가 조금만 변화해도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17쪽)


 지난겨울을 생각하면,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이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 번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그 뒤로는 두 달 가까이 날씨가 한 번도 풀리지 않는 꽁꽁겨울이었습니다. 이 겨울이 풀리는가 싶더니 보름 만에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웁기까지 했습니다. 봄이란 없이 곧바로 여름이 다가오느냐 싶다가, 굵은 비 몇 차례 들은 뒤 어느 만큼 알맞는 날씨로 자리잡습니다. 선뜻 여름 들머리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날씨입니다만, 집에서는 거미와 바퀴와 모기가 깨어납니다. 파리도 바깥에서 날아듭니다. 들새는 들새대로 어린 새끼를 치면서 먹이를 찾느라 바쁩니다. 도서관이나 집에 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끼새 가냘픈 소리가 들려옵니다.

 봄꽃은 골목길마다 활짝활짝 피어납니다. 벌써 져 버린 꽃이 있고,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으며, 막 피어나려는 꽃이 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함을 물씬 느끼면서 사는 새날이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즈음인데, 이러다가 들이닥친 차가운 비에다가, 모진 바람에다가, 쿵쾅쿵쾅 울리는 벼락이라니.


.. 중국, 인도를 비롯해서 발전도상국이 모두 미국과 같은 대량의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고 하면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전도상국에 대해서 화석 연료의 사용을 늘리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선진공업국이 화석 연료의 소비를 대폭으로 줄이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71∼72쪽)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겨울옷을 찾아서 입습니다. 벗었던 속속옷도 다시 입습니다. 옷장에 집어넣었던 두꺼운 겉옷도 꺼내어 입으십니다. 저는 반바지차림 그대로 돌아다닙니다.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집회터에도 반바지차림으로 갑니다. 새벽부터 비바람을 옴팡 뒤집어씁니다. 낮이 되자 골이 띵합니다. 집회터에 더 버티고 서 있기 어렵다고 느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시간 반쯤 누워서 쉽니다. 두 시 오십 분쯤 일어나 동구청으로 갑니다. 동구청에서 인천시 도로건설과 공무원과 종건본부장 들이 찾아와서 주민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토론자리를 마련하면서 시공사한테 ‘공사중단’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주민들은 집회터에 그대로 비바람 맞으면서 있다고 합니다.

 네 시 반쯤 되어서야 금창동사무소로 옮겨서 토론자리를 엽니다. 긴소매 웃옷을 걸치고 동사무소로 찾아갑니다. 시에서 일하는 높은자리 공무원 분들은 말씀을 아낍니다. 주민들이 조목조목 따지는 이야기를 듣고도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스터디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인천시 공무원)는 원칙을 지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주민들이 ‘그 원칙이라는 게 뭔가요?’ 하고 물으니, ‘공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이미 보상비가 들어갔기에 도로부지를 다르게 쓸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이 길을 놓아야 할 까닭(타당성)이 없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왜 정치를 펼쳐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이 묻습니다. 이 말에는 ‘그렇게 되면 인천시 다른 곳하고 형평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연수동은 왕복 12차선이지만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여기에서만 통학에 문제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민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고등학생하고 초등학생이 같습니까.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네 군데나 직접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이 왕복 6차선으로 줄인 길이라고 하시는데, 폭이 50미터가 넘습니다. 이 길을 초등학생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높여 따집니다. 인천시에서 나온 높은자리 공무원은 말이 없습니다.


.. 선진공업국에서는 낭비를 미덕으로 물질적 쾌적함과 풍요를 탐욕스러울 정도로 추구하고 있다. 지구 환경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주며 지구온난화를 비롯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에도 거의 반성다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77쪽)


 저는 옆에서 시 공무원들 말과 주민들 말을 수첩에 받아적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받아적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볼펜대에 눌려서 아픕니다. 골은 더욱 띵하고 다리는 뻑적지근합니다. 혼자서 받아적고 사진 찍고 왔다갔다 하노라니 어서 이 토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세 시간이 다 되어 가는 토론자리는 마무리가 될 낌새가 없습니다. 시에서 오신 분들은 아무런 다짐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지,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느낀 대목이 있으니 다시 검토를 하겠다든지, 무슨 실마리가 될 만한 이야기는 한 가지도 내놓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립니다. “여보시오, 지금 여기 동구에 육십오세 이상 노인이 몇 사람이 사는지 아십니까?”

 속으로 외칩니다. ‘아, 모를 테지요. 아니, 생각을 아예 안 할 테지요. 이 공무원 분들은 길닦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내세울 뿐, 길이 나는 곳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어울리며 사는 사람들인지는 조금도 살피지 않는데요. 도로과 공무원들은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았고, 교통영향평가도 하지 않았어요.’

 ‘길을 내야 한다면서, 정작 길이 지나가는 곳 터전은 어떠하고, 이곳에 깃들이고 있는 사람들 삶은 어떠한지를 살피지 않는 시 공무원들이에요. 흔히들 쇠밥그릇이라고 말을 하지만, 쇠밥그릇이라기보다는 ‘동네 형편을 조금도 모르는 책상물림’이에요.’


..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 때문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적절한 직업을 얻지 못하고 대부분이 집을 떠나 돈벌이를 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은 록카쇼무라의 농민을 말 그대로 지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  (169쪽)


 모든 것을 숫자로만 따지는 공무원입니다. 동네사람 한 달 벌이를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쯤인지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이 사는 집을 돈이라는 숫자로만 따집니다. ‘만족도 조사’라고 있다면, 이 또한 숫자로 금을 죽죽 긋습니다. 숫자 아닌 사람들 목소리를, 손과 발을, 얼굴과 몸뚱이를, 가슴과 마음을, 눈과 머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그 숫자놀이 가운데 ‘소음공해 기준치’를 여러 달에 걸쳐서 따졌을 때, 진작에 훨씬 넘어서며 말썽이 있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이러한 보고서 숫자는 아예 펼치지 않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적을 수 있을까. 이 공무원들한테는 동네 골목길에 심긴 꽃나무와 푸성귀는 ‘몇 푼어치’ 안 되는 것들이라서, 이 꽃과 나물을 싹 밀어내고 얼마쯤 갚아(보상) 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집값 얼마 갚아 주고, 집 옮기는 돈 얼마 보태어 주고, 어여 이곳을 떠나 주기만을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갑니다. 몸살이 납니다. 이튿날 하루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드러눕습니다. 그 다음날 입술이 부르틉니다. 그 다음날 입안이 헐고 붓습니다. 밥을 못 먹고 말도 못 하며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 몸살과 붓기가 가라앉습니다.


 (2) 자동차와 길과 사람과 삶


 돈 뽑으러 은행을 다녀옵니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와서 건너려는데 옆에서 큰 차가 빠르기를 늦추지 않고 싱 달려오더니 사람을 칠 듯합니다. 움찔 놀라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운전사를 바라봅니다. 차가 끼이익 멈춥니다. 틀림없이 푸른불로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건너고 있지만 이 자동차는 그냥 내달렸습니다. 치일까 걱정되면 푸른불이라 해도 비키라는 뜻인가요.

 오늘뿐 아닙니다. 다른 때에도 으레 이렇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대전에서도 꼭같은 일을 겪습니다. 조금 넓은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뒤에서 차소리가 들립니다. 옆지기와 느긋하게 손잡고 걷고 싶으나 손을 놓고 길가 담벼락에 찰싹 붙어야 합니다. 골목에서도 사람은 깨갱이고 자동차는 빠방입니다.


.. 자동차는 이중의 의미에서 지구온난화의 요인이다. 우선 자동차의 생산 공정에서 직접 간접으로 화석 연료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승용차를 1대 생산하는 데 평균 884kg(탄소환산)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한다. 두 번째로 자동차를 사용할 때는 당연히 석유를 필요로 한다. 그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일본의 경우 소형승용차 1대당 1년 간 평균 64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  (76쪽)


 우리 집 둘레로 문방구 도매상이 줄줄 잇닿아 있습니다. 이 도매상 앞에는 늘 차들이 뒤죽박죽입니다. 물건을 싣느라, 또 부리느라 북적북적입니다.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두찻길인데, 차가 한 줄로만 서 있어도 막히고 두 줄로 서 있으면 거의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볼일을 보아야 한다는 짐차들은 시내버스가 빵빵 울려도 비켜 줄 생각을 않습니다. 집안에서 이 빵빵질 소리와 운전기사가 외치는 소리를 낱낱이 듣습니다.

 차댈 곳이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도매상거리를 이루도록 허가를 내준 구청 공무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신지.


.. 자동차가 가져온 가장 커다란 해독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이다 …… 현재 자동차의 교통사고로 일본 전체에서 매년 1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백만 명 가까운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인간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동차에 의한 피해는 한신대진재가 매년 두 번 일어나는 셈이다 …… 또한 자동차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운동 부족에 빠지며 오염된 대기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건강을 해치는 위험도 높아진다 …… 문화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면 이와 같은 관계를 갖는 기회가 적어지고 ..  (86∼88쪽)


 낮 두어 시 무렵, 초등학교 앞은 노란 차들로 가득합니다. 학원마다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법석입니다. 학교 마치고 곧바로 집까지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터이나 무척 많은 아이들은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돌기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쯤 얼마 동안 집과 학교 둘레 골목을 거닐어 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만나는 이웃 어른은 부모와 학원 교사와 학원차 운전기사를 빼고 누가 또 있을까요.


.. 일본의 도로는 원래 보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폭도 좁으며, 구부러진 길이 대부분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은 길에서 놀거나 즐겁게 통학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자동차가 좁은 길에 침입해 왔을 때, 어린이들의 통학은 대단히 위험하게 되어, 길에서 노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린이 공원은 자동차의 보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  (117∼118쪽)


 그제,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시위 대학생 물결을 마주칩니다. 대학생들은 한목소리로 ‘비싼 등록금’과 ‘미친소병 소고기 문제’를 외칩니다. 알록달록 깃발을 들고 종로거리를 걷는 대학생들이 퍽 많았으나, 훨씬 많은 대학생들은 이 시위 물결에 함께하지 않습니다. 서울 아닌 곳에서 배우는 대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시위대가 종로거리를 지나가니 닭장차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닭장차가 움직이니 여느 차와 버스는 꼼짝을 못하고 멎습니다. 교통경찰이 넓은 길 한복판에 나와서 여느 차 움직임을 막고 닭장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틉니다. 어느 시민도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교통방송에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고 있을는지.


..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에서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 이와 같은 육교가 눈에 띄는 곳은 없다 ..  (118쪽)


 종로에서 명륜동까지 걸었습니다. 창경궁을 옆으로 끼는 길을 걸었습니다. 차소리가 아주 큽니다. 차소리가 없다면 고즈넉한 길일 테지만, 이 기나긴 길을 걷는 내내 옆사람하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잠깐 다리쉼을 하고 싶어도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고 배기가스와 차소리로 고달프기 때문에, 어딘가 들어갈 때까지는 쉼없이 걸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띄엄띄엄 한둘만 보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는 바보였나.

 누구라도 걷고픈 마음이 안 생길 테지요. 차가 싱싱 달리는 길가에는, 차소리로 시끄러운 길 둘레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아닌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셔야 하는 거님길에는, 어느 누가 걷고플까요.


.. 보행자는 언제 자동차에 치일지 모르는 길을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허파 가득히 들이쉬면서 걷는 셈이다 …… 주택도 직접 차도에 면한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무 등을 심고, 사람들의 생활이 자동차의 배기가스ㆍ소음ㆍ진동으로부터 보호되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22쪽)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을 잔뜩 사들이니까, 또 사진장비를 이고 지느라 어깨가 고단하니까, 둘레에서 ‘웬만하면 작은 차 하나 사라’는 말을 끊임없이 합니다. ‘운전면허도 없습니다’라 말하면 ‘왜 운전면허가 없어? 면허부터 따야겠네’ 하고 덧붙입니다. ‘차를 왜 몰아야 할까요?’ 하고 되묻거나 ‘차에 넣는 기름은 어찌하나요?’ 하고 되물으면 ‘무거운 짐으로 몸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다’고 대꾸해 주고, ‘더 부지런히 일해서 돈벌면 되잖아’ 하고 대꾸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일을 해야 돈벌이가 되어 차를 굴릴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쭙니다. ‘책 많이 팔면 되잖아?’ ‘어떤 책을 많이 팔아야 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많이 읽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 차 없는 사람은 차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노릇.

 더운 여름날 부채질로 더위를 나고 있으면,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안 놓느냐는 타박을 듣습니다. 추운 겨울날 불때기를 적게 하면서 겨울나기를 하면, 기름 아깝다 하지 말고 보일러 돌리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냉장고 안 돌리며 틈틈이 동네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며 푸성귀를 사먹으면, 김치 어떻게 먹느냐고 마트 가서 쟁여놓고 좀 먹으라는 핀잔을 듣습니다. 텔레비전 안 켜고 연속극 하나 안 보며 살면, 요즘 세상에 원시인 될 일이 있느냐며 눈총을 받습니다.

 대학교도 나와야 하는데, 어차피 나오려면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회사원이 되어야 하는데, 어차피 하려면 연봉 몇 천만 원이나 억대는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굴려야 하는데, 작은 차로는 멋대가리없으니까 되도록 큰 차로 뽑아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연속극뿐 아니라 뉴스며 영화며 스포츠며 뭐며 두루 꿰어야 합니다.


.. 미국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도시의 형태도 도시간의 교통 체제도 모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  (138쪽)


 머리가 어지러워서 두 손을 듭니다. 두 발까지 들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는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될까요. 아니, 중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쳐도, 아니, 제도권 학교는 안 다닌 채로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되는가요. 한 해 삼천만 원도 아닌 천만 원도 아닌, 한 달로 치면 삼사십만 원만 벌면서 살아가서는 안 되는지요.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이 아니라, 알맞는 만큼만 벌어서 알맞는 만큼만 쓰며 살면 안 됩니까.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도 안 듣고 신문도 안 읽으면 세상에 어두운 바보인가요.

 이웃 아주머니가 한 마디 쏩니다. “그러면 산에 가서 살지, 여기서 왜 살아?”

 싱긋 웃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어디 산 같은 산이 남았나요?” 하고 대꾸하고 싶으나 속으로 삭입니다.


 (3)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책


 ‘성장이론가­’로 이름을 날린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가 1996년에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책을 펴냅니다. ‘경제성장’을 파헤치는 교수님이 어인 ‘지구온난화’ 책을 다 내느냐 싶은데,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책끝에 붙이는 말에 “지구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 덕분이다.(181쪽)”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글쓴이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머리로 알고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군요. 날마다 숨쉬지 않으면 안 되는 공기(대기)가 얼마나 사람한테 소중한가를, 또 사람과 이웃한 자연 삶터에 소중한가를 깨닫고 있군요. 숨 안 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숨은 안 쉬어도 경제성장만 해도 되겠습니까. 숨은 덜 쉬면서 돈을 많이 벌면 우리 삶이 넉넉해집니까. 숨은 못 쉬어도 자동차만 굴릴 수 있으면 우리 삶은 기쁨이 넘칩니까. 숨은 막혀도 수십 억짜리 아파트 푹신걸상에 앉아 리모콘 단추를 누를 수 있으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습니까.


.. 지구온난화 문제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다면 하는 꿈을 품고 있었던 차였다 ..  (11쪽)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숨을 쉬어야 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밥과 숨과 물이 있어야 비로소 삽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누구한테라도 가장 좋은 밥이어야 하고, 가장 깨끗한 숨이어야 하며, 가장 맑은 물이어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이 더러운 가운데 어떤 물질문명을 누릴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지저분한 가운데 어떤 과학기술이 꽃피울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형편없는 가운데 어떤 개발을 하고 어떤 돈벌이를 할 수 있습니까.

 재개발(뉴타운)은 밥ㆍ숨ㆍ물이라는 테두리에서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을 엉망으로 무너뜨린다고 한다면, 재개발은 함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는 큰물길로 경제효과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밥ㆍ숨ㆍ물을 망가뜨리게 된다면, 억지로 정치힘을 써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나라밖에서 유전자조작 먹을거리(GMO식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까닭은,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네 밥ㆍ숨ㆍ물을 흐트리기 때문입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구정물을 마실 수 없고, 값이 눅다고 하여 농약으로 씻은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나와 내 이웃 모두 자기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가꿀 수 있는 밥과 숨과 물을 곁에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학문도 문화도 예술도 이곳에서 비롯해야 합니다.


.. 사회적 공통자본의 문제를 더욱 중요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인간적 존엄을 지켜 시민적 자유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정적인 사회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44쪽)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는 책 하나입니다. 나부터 아름답게 거듭나고 내 이웃이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책 하나입니다. 돈을 바라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돈을 바라서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돈이 되니까 읽자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돈에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몸뚱이라면 얼마나 불쌍하고 서글픕니까.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에 들러서 핫도그 하나 사먹다가, 새로 마련하신 듯한 튀김떡볶이가 있어서 여쭈었더니 하나 집어서 먹어 보라고 합니다. 안 되지요, 하면서 500원어치를 시킵니다. (4341.5.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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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친일 작품 1 (2008.4.30.)
 ― ‘친일’작품 나왔으니 무덤에서 파내어 다시 죽이자?



 이원수 선생 친일 작품 이야기가 나온 지는 2002년 3월부터이니까 제법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이원수 선생을 놓고 꺼내는 ‘친일부역’은 그다지 알맞아 보이지 않는다. 이원수 선생이 병을 앓아 드러누운 때가 1970년대 끄트머리요, 병실에 드러누워 입으로만 따님한테 겨우 몇 마디 읊조리면서 이야기하는 삶으로 여러 해 보내다가 1981년에 영영 떠나셨다. 세상을 떠나기 앞서 여러 해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고무호스로 영양소를 위로 집어넣으며 겨우 목숨을 이어나가셨다.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일을 하느라 당신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와 동화 창작뿐 아니라 나라밖 좋은 어린이문학 번역, 그리고 뜻있는 어린이문학가를 키우고 돌보는 일과 어린이문학 단체가 비틀리지 않도록 지키면서 가꾸는 일을 한 이원수 선생이다.

 그렇다. 해방 뒤, 어린이문학 단체 이끄는 일을 맡아 해 오면서, 독재정권에 빌붙는 허수아비와 끄나풀한테 얼마나 시달리던 이원수 선생이었던가. 독재정권 허수아비와 끄나풀은 얼마나 이원수 선생을 쓰러뜨려서 이 나라를 움켜쥐고 뒤흔들려고 했던가.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독재정권에 빌붙는 허수아비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얼마나 공격을 받고 힘들게 살아야 했던가. 외로운 기둥이 되어 갖은 바람과 모진 말밥을 견디면서 얼마나 아이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하셨던가.

 지난 50∼70년대, 독재정권 허수아비와 끄나풀에 맞서서 이 땅 아이들을 지키려고, 또 이 땅 아이들을 사랑하는 힘여린 동료 어린이문학가를 보듬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리고 ‘간첩’으로 몰리고 형사가 뒤를 밟고, 쓰는 글마다 검열에 시달리면서 차가운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이원수 선생은 피땀을 흘리며 고달프고 외로웠어도, 또 모두들 독재자한테 입다물고 있었어도 붓을 들어 이승만을 비판하고 박정희를 비판하는 동시와 동화를 남겼다. 모두들 조용히 입닥치고 있을 때, 꿋꿋하게 붓을 들어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동화를 쓰면서 그 어둡던 세월에 아이들한테 힘과 희망을 실어 주려고 했다. 아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몸으로 병자리에 누워 있는 1980년 그때에도 광주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당신이 광주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못 써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만 하셨다. 곧은 한길에서 비껴나지 않으려고 꼿꼿하게 살아가셨는데, 당신이 살아오던 그동안에 당신이 할 수 있던 가장 걸맞는 ‘죄 씻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왜 당신 양심은 못 지키면서 당신 후배들과 이 나라 아이들만 지키려 했는가.

 명단 4776명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친일부역을 한 숫자가 이만큼밖에 안 된다고?

 친일인명사전에는 딱 한 사람만 들어가도 괜찮다. 한 사람만 넣든 백 사람을 넣든 만 사람을 넣든, 친일부역 작품 넣기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넘어야 한다. 친일작품을 남겼던 사람들이 보여준 그네들 삶을 함께 말해야 한다. 이들이 해방 뒤 꾸려온 삶을 함께 말해야 한다. 일제식민지 때, 친일을 하지 않고도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은 친일작품이 없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친일작품은 없으나 독재부역에 온마음 바친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람들 성격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사는 이가 있고, 털털하게 털어내는 사람이 있으며, 어려움을 맞불 놓듯이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흐름과 사람 성품에서 이원수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죄는 묻고, 잘잘못은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원수 선생 기리는 사업을 모두 접으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뭐하자는 소리인가? 이원수 선생 같은 분은 마땅히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한다. 이원수 선생이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낸 훌륭한 발자취는 이 발자취대로 우리들이 이어받고 물려받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원수 선생이 안타까이 남긴 발자취도 안타까운 발자취대로 곱새기고 되새기고 아로새겨야 하지 않을까. 티끌 한 점도 없을 줄 알았던 이원수 선생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던 아픈 티끌을 간직한 채 온삶을 보내었던 이원수 선생이었음을 헤아리면서, 배울 대목은 배우고 비판할 대목은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너, 예전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적 있으니까, 넌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전과자야!’ 하고 도장을 찍으면서 ‘죽은 주검을 파내어 사형을 시키겠다’는 소리인가.

 2002년 3월에 경남대 박태일 교수가 이원수 선생 친일시 문제를 꺼냈을 때, 이오덕 선생은 “선생의 빛나는 모든 작품뿐 아니라 일제 마지막에 썼다는 그 친일 동시까지도 있는 그대로 죄다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더 큰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도 저승에서, 생전에 스스로 깨끗이 보여 주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하여 준 일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을 읽게 되는 우리 아이들까지도, 세상의 어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더 깊게 더 넓게 생각하게 되고, 더 참되게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완전무결한 성인군자처럼 살아간 위인에게서보다도 결함이 있었던 사람, 자기와 비슷한 점이 있었던 사람한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듯이, 나도 한때 잘못했지만 그것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면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도 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훌륭하게 남긴 작품은 훌륭한 모습이고, 안타까이 남긴 자취는 안타까운 자취다. 어느 하나는 씻어내거나 없는 듯 꾸밀 수 없고, 어느 하나만 돋보이도록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야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되지 않겠나.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뜻도 이런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한 사람 삶과 발자취를 깊이 더듬거나 헤아리는 가운데 ‘이런 잘못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은 우리 역사를 바로잡아 가르치고자 함’이라 한다면, ‘때려잡기’가 아닌 ‘살아숨쉬는 가르침’이 되도록 슬기로운 길을 함께 찾아야 하리라 본다. 친일인명사전은 인기투표 하는 사전이 아니다. 이름을 깎아내리거나 땅속에 파묻어 버리자는 사전도 아니다. 우리가 참답고 아름다이 살자고 하는 사전이다.

 한 점 티끌이 없을 줄 알았던 사람한테서도 티끌이 있었음을 느끼고 실망하거나 내동댕이치자는 친일인명사전인가? 한 점 티끌을 감싸안으면서 이와 같은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고 되뇌이자고 하는 친일인명사전인가? 《얘들아 내 얘기를》(웅진출판사,1984)이라는 이원수 선생 수필에 나오는 글을 몇 대목 옮겨 본다.


.. 도둑의 이야기가 났으니 하나만 더 하기로 하자. 어느 겨울의 일이다. 내 집에도 인기척을 듣고 나가 보니, 키가 큰 사나이가 대문을 나가고 있었다. 좀 무서웠다. 그러나 나갔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딸아이가 하는 말이, “아버지, 내 새로 산 장갑 여기 뒀었는데 가져갔어요?” 했다. 식구들이 사방을 두루 살펴보아도 없어진 건 따로 없었다. 그럼 도둑은 기껏 내 딸의 장갑만 집어간 것이다. 큰마음먹고 남의 집에 들어온 도둑으로서는 참으로 보람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은 내가 부자의 생활을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추운 겨울이다. 이런 때, 장갑은 역시 필요한 물건이다.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장갑만 들고 도망친 그 도둑은 그 장갑을 어떻게 했을까? 그까짓 것 어디 갖다 팔아도 돈이 될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도둑은 어쩌면 제 딸아이나, 제 누이동생에게 그 장갑을 주었을 때, 딸이 어쩌면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이거 샀어?” 그러나 그 장갑은 새것이기는 하지만 몇 번 낀 것이니까 아주 새것은 아니다. 그 딸도 그런 것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딸아이가 만일 내가 보는 자리에 그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면, ‘얘, 그 장갑 어디서 났니? 그건 우리 거야, 이리 내!’ 하고 말할 생각은 아예 없다. 나는 그 아이의 장갑 낀 손을 덥석 잡고, ‘아가, 너 장갑 좋구나! 엄마가 사 줬니?’ 하고 어루만져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연히 참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잘못하면 그 애의 손을 잡고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  (이원수-잃어버린 장갑)


.. 나막신 장수는 비가 와야 좋아하고 미투리 장수는 날이 개어야 좋아하는 것같이, 지루한 비라도 다들 싫어할 때도 우산을 파는 아이들은 좋아 날뛰는 광경도 자주 본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8ㆍ15 해방이 되어 모두가 다 좋아했는데 그 중에는 은근히 싫어한 사람도 있었고, 남북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가 바라는 것이지만 은근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  (이원수-태풍 ‘빌리’ 호와 포플러숲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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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조국, 한국 범우 세계 문예 신서 6
다카노 마사오 지음, 범우사 편집부 옮김 / 범우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48 ― ‘한국’은 누구한테 고향나라인가
 : 다카노 마사오, 《마음의 조국, 한국》



- 책이름 : 마음의 조국, 한국
- 글 : 다카노 마사오
- 옮긴이 : 편집부
- 펴낸곳 : 범우사(2002.7.15.)
- 책값 : 9000원


 (1) 골목을 걸으면서


 아침에 보건소로 찾아갑니다. 보건소에서 ‘아기 밴 어머니’한테 철분제를 준다고 해서 옆지기가 보건소로 전화해서 여쭈어 본 뒤 찾아갑니다. 전화를 마친 옆지기는 ‘지난겨울에 보건소에 찾아갔을 때에는 병원에서 임신증명서를 떼어 오라’고 하더니 이번에 전화하니 보건소 직원이 예전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뗀다며 성을 냅니다.

 성을 낼 만합니다. 그때 우리는 동네에 있는 보건소 두 군데에 찾아갔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중구 보건소에 먼저 찾아갔더니 주소지가 동구로 되어 있으니 동구 보건소로 가라고 해서, 동구 왼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보건소까지 퍽 먼거리를 걸어서 갔습니다(집부터 동구 보건소까지는 중구 보건소까지 가는 거리 세 곱). 그러니 동구 보건소 직원은 ‘보건소에서 해 주는 기초검사는 병원에서 먼저 진단을 받고 임신증명서를 떼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중구 보건소 직원은, 우리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 한다고 하니, 그러십니까 하고는 검사를 해 주려다가 주소지 때문에 그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크지도 않은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보건소까지 가라는 대목에서는 씁쓸했지만, 공무원들 일이 이렇구나 하고 느낄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 가다가 쓰러져 죽은 시체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 구두 등속을 털어가는 사람들. 나도, 그 무리 속에서 또 남은 찌꺼기를 털며 살아왔다. 불타버린 벌판의 패전국이 되어버린 일본. 규슈 하카다의 암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꽁초를 피우고 필로폰을 맞고 나이프칼을 휘두르며 들개처럼 굶주림을 면해 온 슬프고 쓰라린, 그러나 죽고 싶다거나,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이름은?” “다카노 마사오.” “써 봐.” “쓸 줄 몰라.” “장난치지 마!” 느닷없이 걷어차며 마구 때린다 ..  (19쪽)


 철분제를 받은 옆지기가 보건소를 나오면서, 보건소 직원이 준 책을 넘깁니다. 무언가를 골똘히 찾습니다. 펼친 자리를 가만히 읽습니다. 뭘 그리 읽나, 집에 가서 읽지 했는데, 안에서 그 직원한테 ‘아이 밴 달수에 견주어 배가 더 나온 듯한데 왜 그러한가?’ 하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을 못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준 책(보건소에서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책)에는 이 물음에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 비자연장과 외국인등록증 수속, 재학증명서, 은행잔고 증명서, 신원보증서, 사진 2장, 수수료 합계 6만 원. 축산대학의 교환유학생인 요시노 씨의 수속은 3분 정도로 끝났는데 나에게는 “부모는? 직업은? 목적은?” 하며 집요하게 묻는다. 그것도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구 만주에서 돌아온 전쟁고아로서 재일조선인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할아버지의 모국어를 배우고 싶은 염원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그런 나이로 이제 와 공부해서 뭘 하려고? 그런데 부모는 무엇을 하고 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끝이 없으니 나는 화가 칠밀어 …… 공무원의 거만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 들어갈 때, 수강증을 보여주어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일본인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일본어로 말하니까 겨우 통과시켜 주었다. 학교 정문에서도 경비원의 제지를 받는다. 차림새로 판단하지 말라! 교수님들에게는 꼬박꼬박 인사하면서! ..  (38∼39,41쪽)


 여러 날 찌뿌둥하고 바람 또한 세게 불며 쌀쌀해졌던 날씨와는 달리 오늘 하루는 따뜻합니다. 따사로운 햇볕을 느끼며 천천히 걷습니다. 만석동을 지나 화수동을 걷습니다. 다섯 층이 안 되는 네 층짜리 화수아파트가 보입니다. 아까 보건소로 오던 길에 옆지기는 “꼭 하니가 살던 아파트 같다.”고 했습니다. 으잉? 뭔 소리여? 했더니, 만화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가 살던 옥탑방 같은 느낌이랍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봅니다. 음, 어쩌면. 어쩌면 그럴는지도. 그러고 보면, 이제 만화영화 ‘하니’가 살던 옥탑방 같은 집은 거의 다 사라지지 않았는가? 전국에 그와 비슷한 집이 얼마나 남았을까? 돈도 절도 집도 피붙이도 없이 외로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겨우 깃들일 만한 값싸고 조그마한 집은, 그러면서도 마당이 조촐하니 있는 집은 어디에 있을까? 나중에 〈달려라 하니〉를 영화로 만든다고 할 때에는 옥탑방 있는 집이 죄 없어진 다음이 될 텐데, 그때 옥탑방 집을 억지로 새로 만든다고 큰돈 들이고 법석이지 않을까? 그런데 옥탑방을 새로 지을 만한 자료는 어디에서 얻을까?


.. 대학제 준비가 여기저기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지난 세월 반권력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서울대학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당시의 학생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확인하고 싶다 ..  (76쪽)





 부동산 앞을 지나갑니다. 세거리 골목길을 나누는 모서리에 자리한 부동산. 이름은 부동산인데, 가게 앞과 안쪽까지 꽃그릇이 가득합니다. 간판이 없다면 이곳은 꽃집으로 알지 부동산집으로는 안 알겠구나 싶습니다. 화평동 냉면거리 들머리에 섭니다.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손님 끌어들이기’에 바쁜 목소리에 시달리기 싫어서 고단합니다. 그렇다고 이 길을 안 지나가며 빙 돌아가기도 싫고.

 맛있으면 스스로 찾아가서 먹지 않겠나,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찾아가면 그만 아닌가 싶지만, 우리 나라 어느 관광지를 가도 손님 잡아당기는 목소리 그득합니다. 지난겨울에 자전거 타고 소래와 오이도에 갔다가 아주 질려서 다시는 가기 싫어졌습니다.


.. 최근, 야간중학생이라는 것, 졸업생이라는 것을 감추는 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따고 들었다. 배운다는 것을 왜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가. 글자와 말을 빼앗긴 우리들의 서러움과 고통과 분노와 분함. 그리고 배운다는 것. 산다는 것의 진실한 의미와 감동을 필사적으로 되찾은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  (82∼83쪽)





 다른 길로 가자고 생각하다가 마침 화수시장이 보여서,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장만하기로 합니다. 들머리가 조그마한 화수시장으로 들어섭니다. 안쪽이 많이 어둡습니다. 장사하지 않는 자리가 제법 많습니다. 오늘은 쉬는 날인지 모릅니다. 한 바퀴 빙 둘러보다가 ‘고무신 집’이 한 곳 보입니다. 오, 고무신 집? 참말 고무신 파는 집인가? 가게 앞에서 두리번두리번하니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 “뭐 찾아요?” “네, 고무신 까만 녀석 있어요?” “네, 몇 문이에요?” “이백칠십이요.”

 흰고무신과 보라고무신은 어느 저잣거리에서도 팔지만 검정고무신은 파는 곳이 몹시 드뭅니다. 도시에서 고무신 신고 다니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고무신 장사를 안 할 테지요. 신는 사람만 있다면 무슨 신이든 안 팔겠습니까. 시골 신집이나 오일장을 찾아가야 할 텐데 하며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되었습니다. 지금 신고 있는 고무신이 거의 닳아 바닥에 구멍이 날 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곳 화수시장에 고무신 가게가 예전 간판 그대로 걸어놓고 있다 함은, 요 둘레 동네에서는 검정고무신을 찾는 사람이 쏠쏠히 있다는 소리일까요.

 문제는 값. 설마 도시라고 한 켤레에 만 원을 부르지는 않겠지? 뒷주머니에 넣고 있던 오천 원짜리를 꺼내어 내밉니다. 거스름돈을 안 주십니다. 헛. 오천 원이라고?

 “아저씨, 검정고무신은 삼천 원이잖아요, 털신하고 보라고무신이 오천 원이고요.” 하고 대꾸를 할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시골까지 검정고무신 사러 가자면 찻삯에다가 시간에다가 품에다가 만만치 않게 드니까, 그 값을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저잣거리 한켠에 고무신 집 간판을 그대로 살려놓고 있는 보람을 이천 원으로 값해 드려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 예배가 끝난 후에 두 사람과 헤어져 여성들의 희망에 따라 젊음의 거리인 이화대학 거리에서 쇼핑하는 데 동행했다. 하라주쿠를 연상시키는 골목길에 넘쳐나는 젊은이들과 거리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선 패션가게들. 이상하게도 구두점이 많은 것은 왜일까?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위협해 와 다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저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한국의 재생은 가능할 것인가? ..  (107쪽)


 화수시장을 나옵니다. 튀김닭집이 세 군데 잇닿아 있는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차가 들어오지 않는 호젓한 골목길입니다.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집을 허물고 난 빈자리에 남은 흙을 일구어서 마련한 텃밭이 있습니다. 빼곡하게 심어 놓은 푸성귀 텃밭이 있는 골목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춥니다. 배추흰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닙니다. 골목집 아저씨 한 분이 당신 집 앞 길가에 한 줄로 이어놓은 푸성귀 그릇을 손질합니다. 이 건너편으로도 옛 집터에 가꾼 텃밭이 있습니다. 텃밭은 아주 야무지게 손질되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곳 화평동 골목집 할매와 할배 손길을 탔으리라 봅니다.


..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  (216쪽)


 “우리, 박정희 할머님 댁에 들렀다 가요.” 옆지기가 이야기합니다. 그러마, 하고 대꾸하며 골목길 바깥으로 나옵니다. 저쪽 골목길로 극작가 함세덕 선생 옛집이 바라다보입니다. ‘함세덕’이라는 분이 어떤 극을 썼고 어떤 일을 했는지는 뚜렷이 모릅니다. 다만, 한국전쟁 때 인민군 편에 있다가 죽었다는 마지막 이야기만 얼핏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때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안 살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녘에서도 모르고, 북녘에서는 알까 모를 일입니다. 그저, 함세덕 선생이 살았던 옛집이 바로 이곳, 인천 동구 화평동, 이른바 ‘냉면골목’이라는 새이름이 붙은 자리 안쪽에 조용히 깃들어 있음은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분 옛집은 ‘생가 복원’ 계획도 없이 묻혀져 있는 한편,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입니다. 전국을 휩쓰는 재개발(뉴타운) 바람과 맞물려, 이 동네도 재개발로 싹 쓸어버리면, 그나마 터라도 남아 있고 옛 기와집 자취가 고스란히 있는 함세덕 선생 옛집을 비롯한 모든 근현대 유적지와 서민 살림집 원형은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게 될 뿐입니다.


 (2) 그림할머니와 만나고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일터인 〈평안수채화의 집〉 앞에 섭니다. 수채화집 유리문에 종이 한 장 붙어 있습니다. 종이에는 박정희 할머님 연락처가 손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안 계신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문에 적힌 또다른 손글씨인 ‘미세요’대로 문을 밉니다. 열립니다. 안쪽에 있는 덧문에는 ‘돌려서 미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을 따르며 돌려서 밉니다. 열립니다. 문에 걸린 딸랑이가 딸랑딸랑 울립니다. 조금 뒤 안쪽에서 “누구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 하고 길게 대꾸하면서 안쪽 방으로 들어갑니다.

 안쪽 방에는 그림을 배우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들 해서 모두 다섯 분이 앉아 있습니다. 네 분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박정희 할머님은 그림 그리는 분들 사이에 앉아 계십니다. 얕은 찻상을 팔걸이로 삼고 앉아 계십니다.





..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은 도태된다. 참으로 필연과의 투쟁이다. 왜 나는 서울에 와 있는가? 왜 한국어를 배우는가? 글을 안다는 것(배운다는 것),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것 등의 차원이 아니다. 유학생활에 익숙해진 젊은 여성들은 유창한 영어로 서슴없이 질문하므로 필요 이상으로 분통이 터지고 주눅이 든다. 영어를 배울 거면 뉴욕에 가야지, 영어 같은 건 쓰지 말라. 다 한국어로 하라고 외치고 싶지만 말이 안 나오는 이중의 안타까움! ..  (31쪽)


 옆지기는 ‘여기서 그림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여쭙니다. 할머님은, “내가, 그림 그린다면서 여기 와서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한테 달마다 5만 원씩 받고 살아.” 하고 말씀합니다. “월요일에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그리는데, 도시락까지 싸 와서 맛있게 먹어.” 하고 덧붙입니다.

 올해로 여든여섯이 된 박정희 할머님은, 우리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줄줄줄 늘어놓으십니다. ‘서방님(옆에 앉아서 그림 그리는 분들이 ‘서방’이 아닌 ‘영감’이라며 말을 고쳐 줍니다)’하고 예순두 해를 같이 살았는데 먼저 떠나버리니 가슴이 허전한데도 당신은 아이들을 이끌고 수채화 그린다면서 돌아다니고 있더라고. 젊어서는 살림하느라고 집 바깥에를 못 나가고, 이제는 늙어서 몸이 성하지 않으니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그제는 어느 분이 강화에 같이 가자고 하면서 차로 데려다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도 기쁘고 좋아서 밤새 잠이 안 오셨다고, 그래서 새벽 세 시부터 잠을 못 자고 기다렸다고, 그렇게 하고 차를 얻어타고 강화에 가서 하루 내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에 돌아왔는데, 집 앞에서 내리고 보니 몸이 아주 녹초가 되어서 걷지도 못하고 네 발로 기어서 엉금엉금 집에 겨우 들어와서 누웠다고. 이제는 누가 집 앞으로 자동차를 끌고 와서 태워서 나들이를 시켜 주지 않으면 다니지 못한다고. 옆지기한테 아이가 있느냐고 묻다가, 배속에 아기가 있다고 하니, “철이 다 난 다음에 애를 낳는 것도 기뻐요.” 하면서 손뼉까지 치며 기뻐해 줍니다. 할머님이 딸만 줄줄 낳은 이야기를 하니, 옆에 있던 할머니가, 딸은 가게 갈 때 같이 가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아들이나 며느리하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면서, 딸이 참 좋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 내가 배우고 있는 한국어 교과서도 한국어와 영어의 설명만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시험에도 영어의 설명이 있다 ..  (73쪽)


 얘기를 들으면서 벽에 차곡차곡 붙여놓거나 그림틀에 담아 놓은 그림 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할머님이 낸 책 두 권에 실려 있는 그림으로 볼 때와, 이렇게 두 눈으로 볼 때하고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할머님은 벽에다가 흰테이프로 그림을 착착 붙여놓기도 합니다. 누가 보면, ‘작품에다가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아요?’ 할 성 싶기도 하지만, 더없이 할머님다운 그림걸이가 아니랴 싶습니다.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을 빨래집게로 집어서 빨랫줄에 착착 걸어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누런테이프로 해서 벽이나 문에 붙여놓곤 했습니다. 떠올려보니, 예전 우리 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이 ‘작품에다가 테이프를 그렇게 붙여놓으면 어떡해요?’ 하고 물었구나 싶습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작품으로 여기면 작품이지만, 작품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 스스로 즐기고 싶고, 내 이웃하고 더욱 가까이 즐기고 싶어서 이렇게 붙여놓습니다.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즐기고, 언제라도 떼어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이나 사진이 나오면 다음 그림이나 사진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나 사진은 누구한테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습니다. 어디 돈을 바라는 사회단체가 있다면 잘 여미어서 그림틀이나 사진틀에 담아서 알맞는 값을 받고 팔아서, 그림이나 사진 판 값을 모두 바치기도 합니다.


.. 암기할 수밖에 없다, 라고 선생님과 동급생들이 입을 모아 말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써 오지 않았었다. 암기는 하지 말라, 아무리 하더라도 사전에는 이기지 못한다. 만물박사는 되지 말라, 너희들이 만물박사가 된다 하더라도 백과사전에는 이기지 못한다. 너희는 왜 야간중학에 왔는가? 왜라는 의문에 매달릴 때 그것이 너희들에게는 진짜 공부이다 ..  (81쪽)





 박정희 할머님이 그리는 수채그림을 ‘미술사’라는 테두리로 보면 어떤 대접을 받을까 하는 데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글쎄요, 우리 나라 미술 역사에서 수채그림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는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떤 사람들 어떤 그림이 들어가 있을는지.

 역사에 담는 그림은 무엇이며 역사로 다루는 그림은 무엇일는지. 미술평론가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보면서 글을 쓰고 논문을 쓰고 책을 쓰는지. 신문이나 방송에서 알리는 그림잔치 소식은, 어떤 그림을 그린 사람들 소식을 알리는지.


.. 선생님께서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텔레비전, 돈, 연인, 꽃이라는 등의 대답이었지만, 나는 “꿈을 주세요”라고 큰소리로 대답하자, 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놀라 숨을 들이켰다 ..  (91쪽)


 할머님은 옆지기보고 “그러면, 지금 한 장 그리고 가지?” 하고 묻습니다.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다른 아주머니들도, “그래요, 지금 그리고 가요?” 하고 묻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아침밥도 안 먹은 몸. 그리고 제 몸은 몹시 안 좋습니다. 지난주부터 앓는 몸살이 아직 다 안 떨어졌습니다. 입술과 코가 부르트고 입안이 다 헐고 부어서 말하기도 힘들고 숨쉬기도 벅찹니다.

 다음주부터 와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몇 번 거듭 말씀을 드리며 자리를 물러나옵니다. 옆지기는 나보고도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그리고픈 마음도 있으나, 그러자면 십만 원인데. 요즘 우리 형편에 오만 원까지는 더 치를 수 있다지만 십만 원이라면.

 그러나 여든여섯 그림할머님한테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나날도 앞으로 얼마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칩니다. 때는 기다리지 않는 법이라고, 언제 찾아오는지 알 수 없는 법이라고, 왔는지 모르고 지나치다가는 그예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법이라고, 나중에 돈이 조금 넉넉해져서 그림을 그릴 틈이 주어진다고 할 때에는 그림할머니가 이 세상 분이 아닐 수 있어요. 그때 가서 아이고, 저번에 그림 배우자고 할 때 배울걸, 하고 땅을 친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 1일 1과, 소화해 가는 수업은 선생님도 허탈하겠지만 우리 쪽은 더욱 허탈하고 비참하다. 배운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원점을 확신하기 위해서 바다를 건너왔는데, 이 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  (93쪽)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송림초등학교 앞에서 이삼학년 쯤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계집아이 것으로 보이는 신발 한 짝을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가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가 발로 찼다가 하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아이 옆으로는 윤선생영어교실 사람들이 어깨띠를 두른 채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구스르는 일’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 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파란 조끼를 입은 공공근로 아저씨 두 분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도 아이가 신발 한 켤레를 패대기치고 던지고 밟고 차고 하는 짓을 말리지 않습니다. 슬쩍 한 번 보았다가 지나갑니다. 우리 둘이 아이 바로 뒤까지 걸어갑니다. “어이?” 하고 아이를 부릅니다. “네?” 하고 뒤돌아보는 아이한테, “네 신발은 아닌 듯한데 이렇게 던지고 차고 하니?”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너희 반 여자아이 것은 아니고?” “아니오, 떨어져 있던 거 주웠어요.”

 아이를 타일러서 보냅니다. 옆지기와 함께 초등학교 앞으로 돌아와서 문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습니다. 아까는 아이 하는 짓을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그제야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습니다. 웃는 낯으로 이러쿵저러쿵 대꾸해 주었지만.






.. 김혜미자 씨의 안내로 국립도서관에 갔다. 이 건물은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일본에 조사원을 보내어 그것을 참고로 건축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넓은 부지에 8층 건물의 초근대적인 도서관으로, 인터넷실, 컴퓨터실, VTR, CD, 신문열람실, 별관의 식당 등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의 사람일 듯 싶다. 09:00시부터 17:00까지가 개관시간이고, 오늘도 학생 중심의 젊은이들밖에 없었다. 특히 지방 사람들에게는 전혀 인연이 없는 시설이다 ..  (147쪽)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를 뒤적거립니다. 영화잡지를 오려서 겉에 붙여놓은 상자 하나를 꺼냅니다. 끈이 옥매듭으로 되어 있어 가위로 끊습니다. 안을 열어 유치원 때 받은 상패와 사진을 꺼내고, 거의 서른 해가 묵은 주판을 꺼냅니다. 어릴 적 형하고 놀던 탁구채와 탁구그물을 꺼냅니다. 탬버린을 꺼냅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쓰던 스케치북을 꺼냅니다. 형이 고등학생 때 쓰던 학교 허리띠를 꺼냅니다. 42인치짜리라 그런지 참 깁니다. 고등학교 교련옷 바지가 한 벌 나옵니다. 우표 담은 상자가 하나 있고, 수류탄 모형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1991) 동인천 대동화방에서 퍽 비싼 값을 치르고 샀던 그림물감이 하나 나오고, 국민학생 때 형한테 물려받아서 쓰던 벼루도 하나 나옵니다. 붓도 한 묶음 있으나 털이 다 빠져서 못 씁니다. 파레트도 있습니다만, 파레트를 마지막으로 쓰고 난 뒤 씻어 놓지 않아서 녹이 다 슬고 못 쓰겠군요. 그렇지만 그림물감 하나는 아직도 쓸 만합니다. 열일곱 해를 묵은 그림물감이란 말이지? 후후.





 (3) 한국말 배우는 일본 할아버지와 《마음의 조국, 한국》


 《마음의 조국, 한국》을 세 번째 읽고 덮습니다. 이제는 책꽂이에 고이 모셔 놓으려 합니다. 다카노 마사오 할아버지. 1939년에 만주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만주땅에서 아버지를 잃고(전쟁으로 죽음), 어머니하고는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헤어져서 끝내 못 만납니다. 어린 나이부터 홀몸이 되어 길거리에서 양아치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길에서 굶은 데다가 꽁꽁 얼어붙어 죽을 뻔했는데, 넝마주이로 있던 재일조선인 한 분이 마사오 씨를 거두어들여서 살려냅니다. 이때 스무 살짜리 철부지 양아치 마사오는 처음으로 ‘세상에도 빛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자기 이름은 있어도 자기 이름을 한 글자도 쓸 줄 모르던 어두움에서 깨어납니다. 스무 살에 야간중학교에 들어가 스물네 살에 마치면서, 일본땅에서도 ‘글 한 줄 모르며 살아가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할머니’가 몹시 많음을 처음 알게 됩니다.


.. 스무 살에 도쿄의 아라카와 구중 야간학급에 가입학. 일본인이 되기 위해 호적을 만들고 야간중학생이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 책상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별없는 사회를 알았다. 일본에 헌법이 있다는 것을, 아동헌장이, 교육기본법이, 학교교육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살 권리’와 ‘배울 권리’를 빼앗아 가는 놈들은 누구 하나 지탄받지 않고, 빼앗긴 우리가 왜 권리를 박탈당해야 하는가. 한 장의 종이쪼가리로 ..  (20∼21쪽)


 철부지 양아치한테 빛을 베풀어 준 넝마주이 할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싸늘한 주검이 됩니다. 공무원들은 넝마주이 할아버지 주검을 쓰레기 치우듯 갖다 버립니다. 젊은 마사오가 할 수 있던 일은 오로지 주먹을 부르르 떨고 이를 덜덜 갈기. 그렇지만 이때 일을 잊지 않습니다. 마음에 새깁니다.

 어느새 자신을 거두어 준 넝마주이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된 마사오 씨. 자기 앞으로 남은 삶을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으로 보내야 하는가를 놓고 몹시 머리앓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가기로 합니다. 한국으로 가서 한국말을 배우기로 합니다.


.. “일본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어디입니까?”라고 흔히 질문을 받는다. 다른 나라 학생은 바로 자기 나라의 명소를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야간중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로 나타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도쿄의 ‘긴자’라고 말하는 자기 자신이 서글펐다 ..  (86쪽)


 1998년에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와 봉천동 어머니학교에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거의 해마다 틈을 내어 한국에 찾아옵니다. 지난 2007년 5월에도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마사오 할아버지는 한국에 와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가서 할머님들을 뵙습니다. 인사동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마련해서 ‘인간선언’ 네 글자를 새긴 옷을 입고 글을 대자보 비슷하게 써붙이면서 당신이 쓴 책을 손수 팝니다. 책을 팔면서 한국사람들하고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젊은 사람한테는 젊은 넋이 무엇인가를 귀기울여 들으려고 하고, 나이든 사람한테는 나이든 사람 얼이 무엇인가를 귀담아서 들으려고 합니다.


.. 거리에서 익히는 말은 살아 있어 빛이 난다 ..  (209쪽)


 어쩌면 올해 5월에도 다시 한국을 찾아올는지 모릅니다. 벌써 4월에 한국을 찾아와서 길거리에서 한국을 느끼고 한국사람을 만나셨는지 모릅니다. 마사오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익히는 말은 살아 있어 빛이 난다”고 했는데, 올 2008년 한국사람들 말도 살아 있다고 느끼실까요. 당신한테 ‘마음 조국’인 한국은, 당신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베풀어 주고 있는가요. (4341.4.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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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낱말도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  《김우창-궁핍한 시대의 詩人》(민음사,1977) 379쪽

 ‘단어(單語)’가 아닌 ‘낱말’이라고 적으니 반갑지만, “그 자체(自體)로서”와 “고정(固定)된 의미(意味)”라고 적은 대목에서는 서글픕니다. “그 낱말로서”와 “굳어진 뜻”으로 고쳐 줍니다. “갖고 있지는 않다”는 “담고 있지는 않다”로 손보거나 앞말과 이어 “뜻이 굳어져 있지 않다”로 손봅니다.

 ┌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
 │→ 하나로 붙박힌 뜻을
 │→ 하나로 굳어버린 뜻을
 │→ 한 가지 뜻만을
 │→ 한 가지 뜻으로 굳어져
 └ …


 세상 모든 분들이 훌륭한 이론과 논리만 펼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훌륭한 이론과 논리를 펼치는 분들이 모두 자기가 펼치는 이론과 논리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말만 하지는 말아 주셔요. 훌륭해 보이는 말만 들려주지는 말아 주셔요. 말하는 분부터 손쉽게 몸으로 옮겨내지 못할 말은 섣불리 펼치지 말아 주셔요. 말하는 분께서 가슴속 깊이 곰삭여서 받아들인 이야기까지 아니라면 되도록 삼가 주셔요.

 세상 모든 말은 움직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말은 없습니다. 따로 보기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만, ‘computer’가 언제부터 우리가 익히 쓰는 ‘컴퓨터’ 뜻이었을까요. ‘car’가 언제부터 우리가 즐겨쓰는 ‘자동차’ 뜻이었을까요.

 요즈음은 ‘다리’라는 말도 거의 안 쓰입니다. 한강에 수두룩히 놓인 저 다리뿐 아니라 부산에 놓인 다리, 또 인천시에서 빚까지 뒤집어쓰면서 지으려고 하는 어마어마한 다리도 ‘다리’인데, 이 다리가 짧으면 ‘橋梁’이라고 적고, 길면 ‘大橋’라고 적더군요. 우리 말 ‘다리’가 쓰이는 자리는 ‘돌다리’나 ‘출렁다리’쯤입니다. 그나마 ‘출렁다리’조차 쓰기 싫다며 ‘懸垂橋’를 쓰는 우리 나라 공무원입니다.

 우리는 왜 ‘긴다리’와 ‘짧은다리’라는 말을 빚어내지 않을까요. 우리는 왜 ‘큰다리’와 ‘작은다리’라는 말을 지어내지 못할까요. 우리 말로 가리키면 어설픈가요. 우리 말로 나타내면 모자란가요. 우리 말로 이름을 붙이면 알맞지 않은가요. 우리 말로 이야기하면 ‘form’이 안 나는지요.

 책을 이야기하는 신문자리에 ‘북’도 아닌 ‘book’을 쓰는 일, 나라살림이나 집살림을 이야기하는 신문자리에 ‘경제’나 ‘이코노미’도 아닌 ‘money’를 쓰는 일은 워낙 오래된 일입니다. 아예 이대로 굳어버린 듯합니다. 운동경기 핸드볼에서는 퍽 옛날부터 ‘도움주기’라고 써 왔으나, 농구나 축구에서 ‘도움주기’라고 쓰면 마치 ‘북녘사람들처럼 말하는 셈’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핸드볼 경기를 하는 사람은 뭐지요.

 배구 경기가 ‘프로’가 아닌 ‘아마’였을 때는, 경기를 알려주는 방송 사회자나 경기 소식을 담는 신문기자 모두 ‘가로막기’만을 말했으나, 이제는 ‘블로킹(blocking)’이라고만 말합니다. 또한, ‘아마’배구였을 때에는 없던 기록이 새로 생기면서, 지난날에는 ‘건져올렸습니다’ 하던 말을 ‘디그(dig)’라는 말로만 가리키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가로막기’를 살려놓지 못하고 ‘블로킹’만 북돋우는가요. 왜 우리는 ‘건져올림’은 내팽개치고 ‘디그’만 끌어당길까요.

 ┌ 어떠한 낱말도 한 가지 말뜻으로만 붙박히지 않는다
 ├ 어떠한 낱말도 한 가지 뜻에만 매여 있지 않는다
 └ 어떠한 낱말도 한 가지 뜻으로만 쓰일 수 없다


 거짓말 같아요. 아니, 우리 말만 울타리 밖인 듯해요. 우리 말만 쏙 빼야 하는가 봐요. (지식인들이 입이 닳도록 외치고 있는 말로 하자면) ‘한글처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글’ 한 가지만큼은 “한 가지 낱말이 한 가지 뜻으로만 매인 채 다른 뜻으로는 쓰일 수 없다”는 ‘이론’이나 ‘논리’로는 살피면 안 되는가 봐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잣대’라는 말을 키우지 않고 ‘무게’라는 말을 북돋우지 않고 ‘생각’이라는 말을 살찌우지 않으며 ‘믿음’이라는 말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사랑’이라는 말조차 다독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라는 말쓰임새를 넓히지 않습니다. 그저 ‘담론(談論)’뿐이에요. ‘대화’요 ‘토론’이요 ‘토의’요 ‘논의’뿐이에요. ‘담론’ 한 가지로도 모자란지 ‘거대 담론’이라는 말까지 꺼내요. 우리 동네, 그러니까 인천시 공무원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분께서는 우리한테 ‘디스커션’을 하자고 말씀을 하더군요. 잠깐 벙쪘으나,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문화잔치를 한다고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 혼자만 ‘잔치’를 이야기하고, 다른 모두는 ‘축제(祝祭)’와 ‘축전(祝典)’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나마, ‘비엔날레(이biennale)’라고 하지 않으니 나은 편인가요. ‘생일파티’를 한다는 자리에서 “‘생일잔치’를 하는가 보지요?” 하고 넌지시 한 마디 건네니 조용해집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예 주둥아리 꾹 다물고 살아야 하는가요.

 저는 동네에서 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어서 꾸리고 있습니다. 그냥 ‘도서관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거나 ‘도서관지기’라고 말하는데, ‘관’에서 나오신 분들은 한결같이 ‘도서관장’이라고 말해서 듣기에 거북합니다. 기자 분들도 ‘도서관장’이라는 말을 꺼내니 떨떠름합니다. 왜 ‘지기’는 안 쓰고 ‘長’이라는 말만 써야 할까요.

 해마다 달력을 보내주는 분한테, ‘새해 달력을 만드실 때에는 부디 요일을 한글로라도 적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여쭙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일월화수……’는 한 글자도 안 들어가고 ‘s m t w ……’만 들어간 달력을 받습니다. 게다가 ‘1월 2월 3월 ……’도 없어요. 알파벳으로 쏼라쏼라 새겨져 있습니다. 나라밖 사람한테 선물할 달력이 아니라 나라안 사람, 그러니까 우리들 한국말을 하며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이 볼 달력인데, 정작 ‘한국’ 달력에는 명절 이름조차 한자로 적기 일쑤입니다. 한글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달력입니다. 달력을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한자 공부를 하라는 소리인가요.

 ┌ 어떠한 낱말도 새로운 뜻이 담기는 법이다
 ├ 어떠한 낱말도 새롭게 쓰이기 마련이다
 └ 어떠한 낱말도 새로운 뜻으로 쓰이게 된다


 모르겠습니다. 아니 믿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국어사전을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 지식인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신문과 잡지를 모르겠고, 책과 논문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어디로 걸어가려고 하는 걸음인지, 어디로 나아가려고 하는 움직임인지, 무엇을 하려는 매무새인지, 누구와 함께 살고픈 어깨동무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가난한 이와 살고 싶다고요? 가난한 이를 돕고 싶다고요? 어려운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겠다고요? 어려운 겨레한테 사랑을 나누겠다고요?

 참말 가난이 무엇이고 어려움이 무엇인지 머리로만 아는 테두리를 넘어서 몸으로 부대껴 보고서야 하시는 말씀인지요. 참말 가난한 삶이 무엇이고 가난이라는 굴레가 왜 되풀이되고 가난이라는 틀거리가 어떻게 짜여지는가를 뿌리깊이 파헤쳐서 알아내면서 거드는 손길인지요. 모르기에 여쭙습니다. 믿지 못하겠기에 믿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4341.4.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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