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핫... 앞서 올린 묶음글 제목을 고치다 보니까, 애써 써 놓고 안 올려놓은 글이 있었네요.

^^;;; 바보팅이....






 책으로 보는 눈 5 : 책 한 권을 한 해 동안


 아침에 뒷간에서 똥을 누며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다빈치,2001)라는 책을 읽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나온 지 여섯 해가 지난 지금 읽어도 마음에 와닿는 줄거리가 많습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가운데 한 사람인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부족 토박이인 안토니오 할아버지한테 여러 가지 옛이야기와 세상이야기를 듣고는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생각을 붙여서 엮어낸 책입니다.

 어젯밤 잠들기 앞서는 《새만금은 갯벌이다》(한얼미디어,2006)라는 책을 잠깐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기보다는 작은제목을 보며 눈길이 가는 꼭지부터 먼저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구경꾼이 아닌 이웃으로서, 또 바로 자기 자신이 새만금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또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디에 발붙이고 있어도 새만금 사람들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자기 삶터에서 쫓겨나고 있음을 깨달으며 펼쳐 내려가는 이야기책입니다.

 그젯밤 잠들기 앞서는 《우리 청춘의 조선》(사계절,1988)이라는 묵은 책(판이 끊어졌음)을 졸린 눈 비벼가며 읽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에 군복무하러 들어온 일본 젊은이가 한국땅에서 따순 사람들 마음을 느끼고 노동자가 되어 밥벌이를 하는 동안 자연스레 노동운동에 몸담게 된 이야기를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읽으면서 때때로 눈물이 맺힙니다.

 조금 앞서 낮밥을 반 그릇 먹었습니다. 반 그릇으로도 얼추 배가 든든해지며 졸음이 쏟아집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도서관 갈무리를 하고 글쓰고 걸레 빨고 하다 보니 고단합니다. 잠깐 드러누워 허리를 펴 주어야겠네요. 그래도 눈에 힘을 조금 더 주고 책 한 줄이라도 읽을 생각입니다. 음,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김광식의 민주기행, 김광식의 아시아기행》(삶이보이는창,2004)을 읽어 볼까. 《슈베르트》(신구문화사,1977)를 읽어 볼까. 《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2006)를 읽을까. 웬만한 책들은 몇 시간 바짝 숨을 모아서 읽어제끼기보다는, 적어도 한두 달, 으레 서너 달, 거의 대여섯 달에 걸쳐서 조금씩 맛보면서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다 읽어 버리면 ‘읽기는 빨리 읽어도, 잊기도 금세 잊구나’ 싶거든요. ‘읽기는 더디게 읽어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아 제 앞길을 밝혀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겹치기가 되어도 열 쪽이나 스무 쪽, 때로는 대여섯 쪽만 읽은 뒤 책을 덮곤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 하나 진도를 한 해에 걸쳐서 나가듯, 책 한 권 읽을 때에도 거의 한 해라는 시간을 헤아리며 읽어 버릇하고 있습니다. (4340.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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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시민사회신문>에 실으려고 쓴 글입니다.


 그제 뜻하지 않게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요즈음은 오른팔꿈치가 많이 저려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전철과 버스로 움직입니다. 서울로 가는 전철은 몇 번씩 에어컨 고장으로 가다가 멈추며 점검을 합니다. 서울에 닿아 타는 시내버스는 눈물이 말라 눈이 따갑고 목이 컬컬하도록 에어컨을 신나게 틀어 줍니다. 길가에 수없이 함부로 세워진 자가용과 짐차에 막혀 버스는 가다서다를 되풀이하고, 건널목 신호에도 틈틈이 걸려서 멈추기를 자주. 이렇게 멈추어 있는 동안 버스 왼편으로 아슬아슬 바싹 붙는 오토바이가 씽씽 지나갑니다. 안전모자 안 쓴 오토바이꾼이 보이고, 피자를 나르는 고딩으로 보이는 아이가 보입니다. 피자 나르는 아이는 택트 오토바이로 묘기를 부리기까지. 퀵배달 오토바이도 차 사이로 오락가락. 버스 기사는 오토바이 생각만 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까, 자전거 타는 사람도 저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느끼지 않을까, 더욱이 자전거는 오토바이처럼 씽씽 지나가 버리지 못하니 뒤에 바싹 따라붙으며 괴롭히고픈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 않을까…….

 홍익대 앞 만화가게에서 만화책 세 권 고릅니다. 마포도서관을 지나 헌책방 〈온고당〉에서 사진책 몇 가지와 이야기책 몇 가지를 고릅니다. 걸어온 길을 거슬러 전철역으로 갑니다. 젊음이 넘친다는 대학교 앞 길거리에는 아리땁게 꾸민 아가씨들과 멋들어지게 꾸민 남정네들이 가득합니다. 이들을 부르는 술집과 밥집 불빛은 대낮만큼까지는 아니지만 무척 환합니다. 출출해서 닭집 한 군데에 들어가 튀김닭을 먹습니다. 닭집은 자리가 없을 만큼 북적입니다. 맛은 있었지만 인천보다 2000원 비싼 값. 사진기와 책으로 묵직한 가방을 추스르고 조금 걷다가 전철을 탑니다. 가방에서 책 하나 꺼내어 읽습니다. 조금 앞서 헌책방에서 산 《녹색평론》 1992년 7∼8월호(5호). 잡지 《녹색평론》이 나온 지 어느덧 열다섯 해가 넘었군요. 고등학교 다닐 때 읽은 생각이 어렴풋하지만 다시 들춥니다. 다시 들추니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고 모자란 이야기’가 보이는 한편, ‘그때나 이제나 마음에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잡지는 갓 나올 때보다 몇 달, 또는 몇 해 묵힌 뒤 보면 더 맛깔나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 《녹색평론》은 1/3쯤 읽다가 가방에 넣고, 다른 책을 하나 꺼냅니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달팽이). 일흔 할머니가 꾸려온 삶 이야기가 마치 시 한 편처럼 조곤조곤 다가옵니다. 당신 세월을 흐트러짐 없이 살아오셨고 그 흐트러짐 없는 삶을 꾸밈이나 겉발림 없이 담아내면 ‘시라고 추켜세우는 평론가가 없어도’ 시가 되는군요. 그러나 하루 내내 땡볕을 먹고 맥주 석 잔을 마신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책을 덮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뒷꼭지와 눈 둘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가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몸이 힘들기에 책을 덮고 자리에 눕거나 찬물로 멱감고 쉴 수 있습니다. 눈으로 읽은 줄거리는 머리를 거쳐 마음에서 삭인 뒤 몸으로 받아들이거든요. 눈과 머리와 마음과 몸 모두를 써서. (4340.8.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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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을 밟으면 떠나고 싶다
이재호 지음 / 다해출판사 / 1993년 12월
평점 :
절판


(판이 끊어져서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책이름 : 페달을 밟으면 떠나고 싶다
 - 글쓴이 : 이재호
 - 펴낸곳 : 깊은사랑(1993.12.10.)



 이 책 하나 18 ― ‘자전거 여행’을 왜 하나?
 : 《페달을 밟으면 떠나고 싶다》를 읽고



 가끔 자가용을 얻어타고 어디로 갈 때면, ‘참 빠르네’, ‘참 아늑하네’ 하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 차를 몰 수 없지만, 차를 장만할 돈이나 차를 굴릴 돈도 없습니다. 그런 저조차 ‘이렇게 자가용으로 다니기에 좋은 우리 세상이니까 사람들이 자가용을 장만해서 다니려고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더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젊은 어버이라면, 아이를 안고 업고 하며 온갖 짐을 바리바리 등에 메고 손에 들고 하기보다는 차에 꾸역꾸역 싣고 다니는 편이 한결 낫다고 느낄 테고요. 사랑하는 두 사람도,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으로 나들이 다닐 때가 더 오붓하고 즐거웁다고 느낄 테지요.


.. 상범이네 집은 신림동. 버스로 나가서 지하철을 타야 되는데 돈이 500원밖에 없으니 어쩐다? 이거 오나가나 돈이 문제군. 낯도 말도 모르는 유럽에서도 히치하이크를 했는데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못하랴. 주차장 출구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 삼십 분이 지나도록 빈 차들이 그냥 지나간다. 쟤가 저기서 뭐 하나 하는 눈치다. 그러고 있노라니 비행기 옆 좌석에 앉았던 형님이 탄 차가 미끄러져 와 선다. “여기서 지금 히치하이크하는 거냐?” “예. 그런데 잘 안 서는데요.” “참 나 원, 여기가 유럽인 줄 아나. 하도 세상이 뒤숭숭해서 안 태워 줘. 태워 주었다가 일 당하면 어쩌려고?” ..  〈166쪽〉


 어젯밤, 옆지기와 밤마실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밤마실은 손 잡고 두 다리로 걸으며 동네 골목길을 둘러보기. 천천히 동네 골목집을 구경하고 밤바람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새로 연 가게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얼마 앞서 문을 닫은 가게가 쇠문에 붙여놓은 쪽지를 읽으며, ‘그래, 장사가 참 안 된다더니’ 하며 혀를 끌끌 찹니다. 술 마시고 큰소리로 떠들며 걷는 젊은 무리를 보다가, 술에 체한 아저씨 두 분이 손 잡고 걷는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러다가 어느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한 잔 더 걸치러 가시나?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불을 반짝반짝거리며 같은 골목길을 왔다갔다 하는 젊은이 둘. 동네 순찰을 하는 경찰차. 경찰차는 왜 차 지붕에 ‘경찰’이란 큰 글자판을 붙였을까. 저렇게 안 붙여도 경찰인 줄 다 알 텐데. 둘이 짝이 되어 걸어다니며 순찰을 돌던 경찰(의경인 듯)들은 동네 손바닥공원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는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눕니다. 늦은때인데도 여태까지 일을 하셨나 봐요.

 어느덧 밤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갈 즈음, 오른발목이 퍽 저립니다. 옆지기 말, “아스팔트를 밟는데 무슨 나들이냐”고, 흙을 밟으며 다닐 수 없고 아스팔트를, 또는 시멘트를 밟아야 하는데, 무슨 나들이가 되겠느냐고.

 그러고 보니,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닦은 길은 ‘바퀴 달린 탈거리’가 다니기에 좋은 길일 뿐, 사람이나 짐승이 두 다리나 네 다리로 걷기에는 몹시 나쁜 길입니다. 제 오른발목이 저린 까닭도, 딱딱한 아스팔트만을 밟아야 하니 무게가 고스란히 눌리며 아프게 되었을 듯.


.. 배낭 무전여행이야말로 우정이 시험받는 최적의 기회일 거야 ..  〈156쪽〉


 미국과 일본은 지구에서 찻길을 가장 많이 닦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나라가 일본이나 미국을 앞지를 만큼, 또는 엇비슷할 만큼 길을 많이많이 늘렸지 싶어요. 충주에 살 때, 자전거로 전국 여기저기를 다니는데, 길 없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할 만했습니다. 차들 뜸한 넓고 시원한 새길이 있는데, 그 옆으로 시원한 새길과 같은 크기로 다른 새길을 또 닦고 있는 모습을 참 자주 보았습니다. 이 새길은 모두 자동차가 다니기 좋으라고 닦는 길입니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걸어서 이웃 마을로 갈 만한 길이 없고, 한 마을에서도 자동차에 시달리느라 안전하게 걷기 나쁩니다(경상도 어느 시골에는 ‘노인 보호구역’ 푯말이 서 있어서, 자동차들이 제발 천천히 달려 달라고,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마음써 달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새길 닦기’는 ‘사람이 다리나 무릎이나 발목이 시큰거리지 않도록 즐겁게 걸을 수 있는 흙길이나 숲길’이 아닌 ‘바퀴 달린 탈거리만 아늑하게 달릴 수 있는 길’, 바퀴 달린 탈거리 가운데에도 기름을 먹어야만 굴러갈 수 있는 쇳덩어리만 달릴 수 있는 길로 닦지 싶어요.


.. 달력의 그림에서도 가장 멋있게 그려져 있던 나라 스위스. 바젤에서 시내 구경을 하고 역 앞에서 한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좋은 길과 약간은 힘들지만 풍경이 멋진 길이 있다고 가르쳐 준다. 힘이 들더라도 멋있는 길로 가야 되겠지? … 스위스에 들어서니 역시 산악 지방은 산악 지방이다. 고갯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엔 좋았는데 자전거를 타는 나에겐 죽을맛이었다 ..  〈142, 146쪽〉


 어릴 적이 참 좋았다고, 옛날이 참 좋았다고 말씀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당신들 어릴 적에는 논에서 새우도 잡고 붕어도 잡고 미꾸리도 잡으며 놀았다고, 냇가에서 가재도 잡고 재첩도 주워서 국 끓여먹으며 놀았다고, 나무 빽빽한 산에서 길을 잃고 들짐승 소리를 들으며 벌벌 떨기도 했다고, 너른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낚시를 즐길 수 있었다고, …… 들들들 이야기를 합지요. 그래, 그 지난날, 당신들 어릴 적이 참말 좋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좋은 당신들 지난날처럼, 지금 아이들이 살아가는 오늘날도 ‘지금 아이들과 당신 어른들 모두 좋을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지키고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 어른들은 ‘그 좋은 자연과 놀잇감’을 당신들 어릴 적에만 즐기고 다 무너뜨리거나 없애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참말로 당신 아이들을 걱정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 많이 버는 회사에 다니라는 뜻’에서 논밭을 쓸어내고 재벌들 높은 건물을 세우도록 마음을 쓰십니까? 참말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산과 들을 밀어내고 높은 아파트를 세워 이곳에 보금자리를 트십니까?

 “옛날이 좋았지” 타령을 하는 만화며 동화며 문학이며 다큐멘터리며 그림이며 …… 쏟아내는 당신 어른들은, 당신들한테만 즐거웠고 요즘 아이들한테는 하나도 알 수 없는 세상 이야기를, 요즘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연 이야기를, 이제는 자연 삶터가 옴팡지게 무너져서 씨가 다 말라버린 이 땅에서, 어깨 우쭐거리면서 ‘자연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들!’ 하고 콧방귀를 뀌며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 난 왠지 모르게 독일사람들에게선 무뚝뚝한 인상을 받았고 프랑스사람들에게선 한없이 친절한 인상을 받았다. 그 친절함과 자유로움이 좋았다 ..  〈137쪽〉


 아이들이 컴퓨터게임을 즐길 수밖에 없는 사회 터전으로 바꿔 놓은 우리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이 빈터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소꿉놀이며 숨바꼭질이며 말타기며 공차기며 자치기며 제기차기며 말뚝박기며 딱지치기며 두꺼비집이며 닭싸움이며 씨름이며 …… 들을 할 수 없게 빈터를 죄 없애고 자동차 세워 놓는 자리, 이른바 주차장으로 바꿔 놓은 우리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골목길에서는 자가용이 씽씽씽 달리며 아이들한테 경적을 된통으로 먹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야, 이놈들아, 위험하게 길에서 놀면 어떡해!”

 이런 제기랄, 아이들이 길 아니고 어디서 놀라고요? 길 아니고 놀 곳이 있습니까? 아파트에서는 주차장 말고 놀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나라 80∼90%가 산다고 할 수 있는 도시에서, 아이들이 놀 곳은 길과 주차장 말고 어디가 있습니까? 동네에 공원이 얼마나 있고, 공원이 있어도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만한 넉넉한 빈터가 있는지요? 제가 사는 인천 중ㆍ동구 쪽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찧고 까불고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신나게 뛰어놀 빈터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찧고 까불며 놀 빈터가 없다는 소리는, 어른들 또한 마음놓고 두런두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쉴 만한 자리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모여서 오붓하게 나들이도 하고 몸도 쉴 만한 자리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 그러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지금의 내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리라. 자신이 직접 페달을 구르지 않으면 한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 그 마을에 처음 들어간 동양인 또는 한국인으로서 받는 칙사 대우 등은 기차 여행으로는 경험하기 힘들 것이다 ..  〈111∼112쪽〉


 엊그제 빗길에서 자전거를 탈 때입니다. 제 옆을 스치고 가는 여러 버스들은 ‘빗길에 자전거를 달리니 얼마나 힘겨울까?’ 하고 걱정해 주었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멀찍이 돌아서 조용히 지나가 주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어느 마을버스는 제 뒤에 바싹 붙어서 신나게 경적을 먹여댑니다. 그러다가 위험하게 자전거 앞으로 확 끼어들면서 모르 비틀어 버스정류장에 서더군요. 이리하여 자전거도 버스 옆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한편, 버스 뒤를 따르던 다른 차들도 옴짝달짝 할 수 없었습니다.


..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힘 주어 페달을 굴려야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그러나 그 평범한 진리가 나에겐 가장 힘든 고역이었다. 도중에 배낭을 메고 도보여행을 하는 어떤 아버지와 아들을 만났다. 한 달 예정의 여행이란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프랑스를 남에서 북으로 횡단할 계획이라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사고의 발상과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단지 물질의 풍요 때문일까? 이 의문은 여간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 유명한 콩비앵 궁전을 둘러보았는데 궁전 자체보다는 주위에 조성해 놓은 공원이 더 멋있었다. 이름모를 꽃들과 뛰노는 다람쥐와 토끼들 ..  〈73∼75쪽〉


 서울에서 살던 때, 가끔 한강 자전거길을 지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말이 ‘자전거길’이지, 걷는 사람과 개 끌고 나온 사람과 인라인 타는 사람과 아이하고 배드민턴 하는 사람과 자전거 타는 사람이 한데 섞여서 참 어수선하고 아슬아슬했습니다.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흔들흔들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옆길로 팩 꺾어서 큰 사고가 일어날 뻔한 모습이라든지, 그예 사고가 나고 마는 모습을 흔히 보았습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끼리도 무슨 ‘빠르기 겨룸’을 그리도 해대시는지…….

 가만히 보면, 한강을 따라 닦은 찻길 옆으로 자전거 달리는 길을 두 줄로 마련했을 뿐, 정작 그 길을 자전거로 즐겁게 오가면서 회사를 다니라고, 학교를 다니라고, 저잣거리 들러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닦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한강 자전거길로 들어서는 푯말 찾기 참 어렵고, 들어서는 길목도 아슬아슬하거나 힘겨운 한편, 빠져나가는 구멍도 몇 군데 없어요.


.. 여유가 없었지만 중고 자전거를 한 대 구했다. 어차피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라는 것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가다가 돈 떨어지면 포도밭에서 일 좀 해 주고 벌어서 가자고 생각했다 ..  〈66쪽〉


 자동차를 왜 타십니까? 자동차를 타는 까닭이 있으십니까? 자동차를 몰고 어디를 오가십니까? 자동차를 타고다니며 무슨 일을 하십니까?

 자동차를 몰고 나와 자동차를 만나지는 않겠지요.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일을 하고자 자동차로 어딘가 움직이겠지요. 자기가 가려는 어느 곳으로 자동차를 몰고 간 다음에는 차에서 내릴 테지요. 아무리 못해도 한 걸음쯤은 걸으시겠지요.


..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영화 〈캔디〉에서 캔디의 꿈속의 연인이 늘 파이프를 불던 곳이 바로 이곳 스코틀랜드라는 것이 실감났다. 이렇게 산 좋고 물이 좋으니 스카치 위스키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 싶었다 ..  〈60쪽〉


 이 세상을 왜 사십니까?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까닭이 있으십니까? 돈을 왜 버십니까? 부지런히 일해서 번 돈을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쓰십니까? 어릴 적부터 집이며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 했는데, 이 나라 온갖 곳에 수없이 들어찬 예배당과 절집에서는 ‘내 재산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 하는데, 참말로 ‘우리 님들이 번 돈을 님들 가난한 이웃한테 나누는 일’을 즐기고 계신지요? 아직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 이웃과 나누기 버겁다고 느끼시는가요? 얼마쯤 벌어야 넉넉한 살림이고, 얼마쯤 버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일까요?

 아이들한테는 무엇을 물려주렵니까? 당신들이 온삶을 바쳐서 부지런히 일하고 얻은 돈을? 아파트를? 자동차를?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면 좋겠습니까?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며 지내면 좋겠습니까?


.. 철도여행을 자전거여행으로 바꾸게 된 것은, 내 힘으로 유럽을 가는 데까지 가 보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유럽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냐 하는 마음으로 ..  〈50쪽〉


 저는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 하나 조그맣게 열어서 꾸리고 있습니다. 뭐, 이곳을 찾아오는 책손은 뜸합니다. 앞으로 차츰 늘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저도 나중에 아이를 낳아 이곳 도서관에서 아이를 가르치면서 함께 놀며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문득문득 헤아리곤 합니다. 저는 뒷날 제 아이가 될 사람한테 무엇을 물려주겠느냐고. 무엇을 가르쳐 주겠느냐고. 무엇을 보고 느끼도록 이끌겠느냐고. 어디를 함께 다니고 어떤 사람과 만나고 어울리며, 무슨 밥을 먹이고 무슨 옷을 입히고 어떠한 살림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겠느냐고.

 ‘우리 아이한테 도서관 책들을 물려주면 좋을까?’ 하고 혼잣말로 묻다가는 도리질을 칩니다. 아니라고, 우리 아이한테는 도서관 책이 아니라, 어버이 될 사람이 도서관을 꾸리는 동안 하나둘 그러모으게 된 책들, 하나둘 읽으면서 차곡차곡 늘어난 책들에 담긴 뜻을, 이 수많은 책을 애써 펴낸 지은이들 마음을,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새긴 것을 세상에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하는 움직임이나 몸부림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 나에겐 모두가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아무것도 모르는 유학생을 유혹해서 학비를 사기치는 사람도 있고, 영국의 실정이나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임금도 상습적으로 체불하는, 같은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악덕 업주들도 있고, 서로 헐뜯고 시비 끝에 서로를 고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  〈38쪽〉


 두어 달 앞서부터 제 몸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먼저 오른무릎이 무너졌습니다. 한 달 남짓 자전거를 쉬니 좀 나아집니다. 그런데 오른무릎이 나을 즈음 되어 오른팔꿈치가 무너집디다. 보름 남짓 자전거를 또 쉽니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네요. 제 먹고사는 방편이 글쓰기인데(그렇다고 글써서 글삯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지만. 한 달에 글삯 5만 원 벌기도 벅찹니다), 글을 써서 돈이 되든 안 되든 어찌 되었든 꾸준히 써내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오른팔꿈치는 하루도, 아니 잠깐도 쉴 틈이 없군요. 도서관 책을 갈무리하고 걸레질을 하노라니 이 또한 쉴 겨를이 없네요. 어쩌면 오른팔꿈치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싶고, 아프면 아픈 대로, 저리면 저린 대로, 쑤시면 쑤신 대로 참아야지 싶습니다. 저보다 힘겹게 사는 분이 많고, 저보다 아프게 사는 분이 많은데, 참말 푸념만 늘어놓고 마는군요. (4340.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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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게 개인 듯 싶더니 오지게 쏟아붓는 장대비가 뒤죽박죽 되풀이되는 요즈음. 어제도 마찬가지로 지붕을 뚫을 듯 퍼붓다가 확 개더니, 다시 이슬비가 뿌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찌뿌둥했는데, 아홉 시를 넘기고 열 시가 되니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뭉게구름과 새털구름까지 보입니다. 오늘은 괜찮을까? 걱정스럽지만 오래도록 이불과 담요를 말리지 못했기에 하나씩 꺼내어 탁탁 턴 뒤 담장에 걸쳐서 말립니다.

 저녁이 되어 하루일을 마치고 잠들 무렵이면 방온도는 28도에서 더 떨어지지 않아 땀이 흐르거나 끈적끈적. 지금이 여름이라 그렇다지만, 무더운 여름도 바람이 시원한 여름도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창문을 깰 듯 휘몰아치는 돌개바람이고, 개고 흐리기가 되풀이되는, 어쩌면 벌써 인천땅까지 아열대 날씨로 바뀌어 버린지도.

 날씨를 보는 우리들은 참 이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예부터 이어온 날씨가 아니라 도시 문명을 듬뿍듬뿍 쓰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바꾸고 만 날씨입니다. 계급사회가 수백 수천 해 이어오면서 일자리와 차림새와 돈과 신분에 따라 푸대접이 깊이 뿌리내리고 말아 뽑아내기 어렵게 되었듯이, 일제강점기 서른여섯 해를 거치며 우리 사회와 삶 구석구석 얄궂은 찌꺼기가 속속들이 배었듯이, 독재정권이 쉰 해 가까이 나라를 옥죄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과 몸가짐이 병들거나 뒤틀려 버렸듯이, 지금 우리는 또다른 모습으로 우리 삶터와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흔들면서 흔드는 줄 모르고, 흔들리는 땅덩이를 우리 살갗으로 안 느끼거나 못 느낍니다.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네, 저는 저한테 좋은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요?” “제 마음에 드는 책이 좋은 책이지요. 제가 읽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요.” “자신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제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제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살필 수 있게 해 주는 일입니다.”

 새책방 나들이를 하노라면, 잔뜩 쌓아 놓은 베스트셀러와 ‘신간코너’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구나 싶고, 갈래에 따라 나눈 칸 책은 손길을 거의 못 타지 싶어요. ‘많이 읽히는 책’이냐 아니냐가 책을 고르는 잣대처럼 되었다고 느낍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에도, 사람들이 흔히 찾는 책은 ‘좀더 알려진 책’이거나 ‘새책으로 사자니 돈이 아쉬운 책’이기 일쑤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자기 손이나 옷에 책먼지가 묻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책더미를 하나하나 살피고 책시렁을 헤집는 사람이 드뭅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사는 동네에 헌책방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지 않으며(새책방도 마찬가지), 어쩌다가 알아보았다고 하더라도 ‘헌책방(또는 작은 동네책방)에 무슨 볼 만한 책이 있어?’ 하면서, 들어가 구경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책을 찾기에 그럴까요. 우리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좋기에 그럴까요. 지난주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를 사서 읽고 있습니다. (4340.8.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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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있는 어느 자전거모임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자동차 모는 사람은 자전거 타는 사람을 아예 안 봐요. 자전거꾼이 헬멧을 썼건 말았건, 자전거옷을 입었건 말았건, 자전거를 잘 타건 못 타건…… 그저, 자기 차 앞에 자전거가 있으면 짜증을 내는 사람이 하나 있고, 자전거가 있는 줄 모르고 거의 칠락말락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며, 자전거가 있기에 일부러 장난질하듯 갖고 노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로 자전거꾼한테 마음쓰는 운전자라면, 헬멧이 없고 크기도 작은 자전거를 평상복으로 입고 타는 사람이 안전할 수 있도록 헤아려야지 싶어요.

 어제와 그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데,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찻길에서 유사산악자전거나 짐자전거로 참 느리게 달리십니다. 느리게 달리니 더 안전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분들은 손에 힘이 빠질 수 있기에 더 위험하다고 느껴요. 거의 모두 언덕길에서는 조금 오르다가 내려서 끌고 가시는데, 이렇게 달리다가 멈출 때가 퍽 아슬아슬하거든요(뒤에서 보면). 헬멧을 써야 하는 문제라면, 누구보다도 이 어르신들한테 헬멧을 구나 시나 읍면에서 장만해서 선물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예전, 자전거로 신문배달하며 먹고살 때부터, 지금처럼 자전거로 모든 곳을 두루 다니게 된 지금까지, 제 경험을 가만히 돌이켜보건데, 자전거 사고가 나는 까닭은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1) 길이 나쁘다
  : 패인 곳 많고 /
    턱 많고 /
    미끄러운 곳 많고 /
    오르내리막 많아서


 (2) 자전거꾼이 빠르기를 즐긴다
  : 자전거로도 제법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빠르기에만 매달리는 나머지,
    자전거를 타는 좋음과 즐거움과 보람을 잊거나 잃는 분이 많아요.
    자전거로 알맞게 달리는 빠르기를 놓아 버렸을 때는 크고작은 사고가 생깁니다.


 (3) 자동차 모는 이들 못된 성질
  :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아예 보지 않고 다니며 사고를 냅니다 /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깔보며 장난질하다가 사고를 냅니다

 ..

 〈오마이뉴스〉에 자전거 기사를 쓰는 김대홍 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는데, 아무리 좋은 안전장구를 갖추고 자전거를 타도, 빠르기가 25km를 넘게 달리면 다칠 수밖에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헬멧도 쓰고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를 찼어도, 빠르기 25km를 넘게 달리면 머리 깨지고 무르팍 깨지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30km를 넘어가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거나 하는 일에서는 똑같고요.

 그런데, 이것은 헬멧 문제만이 아닙니다. 빠르기가 25km를 넘어서면,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동네 꼬마아이들하고 그대로 들이박고 맙니다. 아직 자전거 타면서 제동 걸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분들이라면 빠르기 20km에서도 급제동을 안전하게 하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자전거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손아귀 힘과 머리 감각으로 제대로 자전거를 멈출 만한 빠르기는 15~17km쯤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제 나름대로 해 보는 생각은, 안전장구는 자기가 아직 “자전거 타기에 서툴거나 몸이 굼뜬다고 할 때 차는 편이 좋다”입니다. bmx를 타는 분이라면 헬멧은 반드시 차야 할 것이며, 이때에는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도 차야지요. 산타는자전거를 타고 “진짜로 산을 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할 때는 이 두 가지 때. 그리고 아직 길 앞뒤옆 형편을 헤아리기 어려운 아이들, 쉽게 넘어지며 다치는 아이들한테는 부모가 헬멧을 씌워 주어야지 싶어요.

 찻길을 달릴 때는 다르게 봅니다. 찻길에서 중요한 사항은 헬멧보다는 뒷거울이라고 느낍니다. 뒷거울을 보면서 뒤따르는 자동차를 살필 수 있는 눈길, 여기에다가, 평균빠르기 20km를 넘기지 않게 알맞게 달리면서 언제라도 급제동을 했을 때 자전거가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추스를 수 있는 매무새, 여기에, 다문 몇 초 동안이라도 제자리에 설 수 있거나 아주 느리게 달릴 수 있을 만큼 자전거를 자기 몸에 붙이는 일이요.

 ..

 저는 한동안 빨리 달리기에 어느 만큼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자질구레한 사고가 많았어요. 앞브레이크 잘못 잡아서 한 바퀴 돈 것 하나는 제가 잘못한 사고였으나, 다른 모든 사고는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가 친 사고, 갑자기 자전거 앞으로 끼어든 자동차와 부딪히거나 부딪힐 뻔한 사고, 찻길을 맞모금으로 가로지른 철길에 앞바퀴가 끼며 넘어진 사고, 얼어붙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한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진 사고, …… 사고가 날 때마다 느꼈는데, 자전거로 알맞는 빠르기인 20km를 넘어간 채 달리고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쓸모가 없겠더군요. 언제나 자전거꾼 스스로 자기 목숨을 자기가 지키고 추스른다는 마음이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모자라나마, 〈작은자전거〉 모임에서는 “모임을 할 때에는 빨리 안 달리고, 가장 느리게 달리는 사람한테 자전거 달리는 빠르기를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저 개인한테 많은 일이 밀어닥치면서 모임에 제대로 못 나가서, 이런 말없는 원칙을 어느 분이 지켜 주고 계신지는 모르겠는데, 내리막을 달리든 평지를 달리든, 자전거로 무리지어 달릴 때 가장 못 달리는 사람한테 맞추어 달리면, 아무런 탈이 없다고 느낍니다.

 ‘더 빨리’나 ‘더 멀리’나 ‘더 짜릿하게’ 달리기로 치달릴수록, 자전거 사고는 일어나는구나 싶어요.

 ..

 마지막으로 아쉬운 대목을 하나 적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참말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값싼 헬멧이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차라리 야구 헬멧이 낫다고, 럭비하는 분들이 쓰는 헬멧이 낫다고 느껴요. 오토바이 헬멧이라면 그야말로 안전하겠지만, 너무 무거워서 고개를 돌릴 수 없겠지요. 가벼우면서 튼튼한 헬멧, 그러면서 누구나 걱정없이 장만할 수 있는 헬멧을, 왜 삼천리자전거 같은 회사에서는 안 만들고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헬멧뿐 아니라 앞등과 뒷등과 뒷거울을 너무 후줄근하게 만들어서 거님길 턱을 내려오며 쿵 찧어도 뒷등이 떨어져 나가는 수가 잦습니다.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벽에 콩 박아도 앞등이 깨지는 수가 잦아요. 뒷거울은 더 그렇고요. 그러면서 상표 있는 앞등-뒷등-뒷거울은 값이 오지게 비쌉니다. 자전거 즐기는 사람들이 헬멧하고 멀어지게 하는 크나큰 까닭 가운데 하나는, ‘걱정없는 싼값으로 장만해서 쓰는 헬멧부터 쓰는 느낌이 좋고 안전하며 무겁지 않고 바람이 잘 드나드는 제품’을 만들어 주지 않는 자전거회사 장삿속도 한몫을 하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기가방도 더 튼튼하게 만들지 않아서, 으레 반짇고리를 갖고 다니며 틈틈이 바느질을 해 주어야 합니다. 등산베낭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 꿈이 있다면,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이 찻길에서든 거님길에서든 사고 걱정이 없도록 다닐 수 있도록 ‘찻길 문화-거님길 문화-교통 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빗길에 자전거를 달리는데, 마을버스 한 대가 뒤에서 자지러지게 경적을 울려대더군요. 다른 차들은 아무 말 없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말입지요. 다른 버스도 아무 말 없이 제 옆을 많이 돌아서 가 주었고요. 그 마을버스는 정류장에서 모로 비틀어서 섭니다. 그렇게 비틀어 서는 일은 ‘버스 서는 원칙’에서 벗어난 짓이지만, 오로지 자전거를 못살게 굴 생각으로 그렇게 했어요. 덕분(?)에 두 개 찻길을 잡아먹은 버스라서, 뒤따르던 다른 자동차들은 왼깜빡이를 넣고 세 번째 찻길로 접어들며 잠깐 동안 병목막힘이 일어났습니다. 병목막힘이 일어났을 때, 저는 버스 왼쪽으로 살살 몰며 지나갔어요. 그렇게 지나간 뒤로 이 마을버스가 더 경적을 울려대지 않았습니다만, 비오는 날, 비맞으며 달리는 자전거라 한다면, 자동차를 모는 분들께서 더 조심해 주고 더 마음을 써서 자전거를 지켜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운전기사는, 알고 보면 ‘살인 미수’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어요.

 자전거가 자동차를 위협할 일이란 없으나,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는 일은 너무나 뻔질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헬멧쓰기는,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서 우리 목숨을 지키자는 안간힘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헬멧을 쓰건 말건 자동차 모는 이들은 ‘자전거란 녀석을 아예 안 보거나 괴롭히기 일쑤’인 한편, 헬멧을 쓴 우리들 자전거꾼은 ‘자, 이제 안전장구를 갖췄으니 신나게 달려 볼까?’ 하면서, 안전하게 달리기와 멀리멀리 떨어져 버리는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안전장구를 갖추었어도 ‘알맞는 빠르기를 지키며 앞뒤옆 길형편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매무새’가 있어야 합니다. (4340.8.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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