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였다. 아내가 어릴 적부터 다닌 일산 탄현동 성당에서 구역장을 맡고 계신 분이 나를 보더니, “그런데, 성당에 오실 때는 긴바지 입으셔야 돼요.” 하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런가요? 인천에 있는 성당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없던걸요. 일산만 그런가요, 다른 성당도 그런가요?’ 하고 되물으려다가 그만둔다. 인천에 있는 답동성당이며 송림동성당이며 찾아갈 때에, “반바지 입고 오면 안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신부님한테도, 수녀님한테도. 미사를 함께하러 오는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한테도. 어젯저녁에는 구역미사에 갔다. 이 자리에서도 신부님과 수녀님을 비롯하여 동네 어르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내 옷차림을 놓고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한 마디, “젊은 친구니까 많이 먹어야지. 많이 드세요.” 하는 말은 듣다. 저녁 여덟 시부터 이루어진 미사가 한 시간 십 분쯤 걸려 끝났고, 미사가 끝난 뒤 위층으로 올라가서, 동네 신자 아주머니들이 차려 주는 저녁을 다 함께 먹었다. 저녁자리에는 신부님도 수녀님도 모두들 허물없이 어울렸고, 나이 지긋한 수녀님은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하고 손뼉치기 놀이도 하신다. 오늘 새벽, 아내는 답동성당에 새벽 미사를 드리러 나들이를 갔다 왔고, 집으로 온 뒤 곧바로 길을 나서서 일산으로 온다. 용산급행 전철이 신도림역을 지날께, 탄현동 구역장님이 아내한테 손전화 문자를 보낸다. “성당 올 때 긴바지 입어야 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아내가 몸담은 탄현동 성당에 내가 갈 수 있는 때는 한겨울뿐이겠다. (4340.6.28.나무.ㅎㄲㅅㄱ)

 


(2007년 1월, 서울발바리 잔치에 나갔을 때 찍힌 사진.

 나는 이 사진에서 보듯이, 12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긴바지를 입는다. 2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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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코
리영희 지음 / 까치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스핑크스의 코
- 글쓴이 : 리영희
- 펴낸곳 : 개마고원(1998.11.30.)



 우리 나라에는 아직 공안부서 경찰이 있습니다. 아직 있을 뿐 아니라 꽤 많이 있는 듯하며, 요즘 들어 실적 올릴 일이 없어진 탓에 부서 예산이 줄어드는 일과 정리해고 되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동네 헌책방 일꾼을 ‘좌경용공사범’으로 몰아붙이며 들볶습니다.

 동네 헌책방을 들볶는 일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을 테며, 자기들로서는 언제나 들이밀기 좋은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동네 헌책방은 아주 만만합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사고팔아서 말썽이 된다’고 공안부서 경찰이 말하는 ‘불온 이념도서’는 ‘교보문고 같은 새책방에서 팔린 뒤, 이 책을 사서 본 이가 내놓아서 헌책방에 들어온 책’입니다. 공안 경찰은 헌책방 일꾼을 붙잡아서, “이 책을 어디서 사 왔느냐? 누구한테 팔았느냐?” 하고 심문합니다. 하지만 헌책방 일꾼이 누구한테 언제 샀는지 하나하나 떠올릴 수 없는 노릇. 고물상에서 뭉텅이로 주워 온 책들을 어찌 낱낱이 떠올릴 테며, 이 책들이 누구한테 팔렸는지 어찌 하나하나 되새길 수 있을까요. 공안 경찰들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책’인가 알고 싶다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알라딘과 예스24와 인터파크와 …… 이런 새책방 ‘판매명단’을 압수하면 될 일입니다. 교보나 영풍 같은 곳 ‘마일리지 카드’를 압수해도 손쉽게 쭉 뽑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말썽이 되어야 한다면, 맨 처음 새책방에서 이 책을 사서 읽은 사람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런 책을 펴내어 시중에 내놓은 출판사가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이런 책을 써낸 사람(지은이)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좋은 책 나왔으니 사서 읽으시오’ 하고 소개글을 썼던 기자와 교수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시중 새책방에 깔려 있는 《스핑크스의 코》 같은 책은 ‘빨갱이 리영희’가 썼다고 해서 ‘불온 이념도서’라고 도장을 찍습니다. 제법 널리 읽혀서 웬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 집에는 다 꽂혀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안 꽂아 둔 도서관이 없고, 리영희 교수 만나보기를 안 해 본 언론매체도 없으나, 공안 경찰은 오로지 하나, ‘한 놈만 팬다’는 법칙(?)을 따라서, 가장 힘없고 이름없고 돈없는 동네 헌책방만 겨냥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아직 국가보안법이 있었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네’ 하며 혀를 차거나 ‘그깟 헌책방에서 일어난 일인데, 뭐’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빨갱이’ 리영희 교수가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 소비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의 유행 창조자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드러내보임으로써 ‘풍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성이 배꼽을 드러내거나 반나체가 되는 새 유행의 옷을 남보다 먼저 걸치는 것을 ‘여성 해방’의 ‘실천적 행위’로 미화하는 소비주의 경제와 그 광고산업의 돈줄을 장악하고 잇는 것은, 압도적으로 남성들이다.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의 육체에 수백만 원짜리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거나, 여성들의 손에 다이아몬드를 끼웠다 빼었다 하는 유행을 ‘현대화’니 ‘풍요’로 미화할 때, 그런 유행 속에서 현대화와 풍요를 찾으려는 여성은 남성의 지배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 오히려 더욱 깊이 예속 상태에 빠지게 된다 ..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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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 찻길을 달리더라도, 길가에 함부로 대놓은 차와 부대낄 수밖에 없다)

 

4/26 - 서울에서 인천으로 46번 국도


- 어제 홍제동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길바닥 두 군데가 길쭉하게 꺼져서 쿵 하고 두 번 찧었다. 불빛 없는 어두운 데라서 깜짝 놀랐는데 넘어지지는 않았다. 뭘 하기에 길을 저렇게 파 놓았을까 싶었다. 낮에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서며 비로소 무엇인가 알다. 여기 비탈길 접어들기 바로 앞서 너른 자리에 홍제3동 사무소를 새로 지었는데, 동사무소 앞 아스팔트를 새로 깔면서, 헌 아스팔트를 파내려고 미리 파 놓았던 것.

 개새끼들! 욕이 절로 나온다. 동사무소 건물 짓는다며 떠들썩거리기 앞서까지는 길이 엉망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아니, 동사무소가 새로 들어선다고 해도 아스팔트를 굳이 새로 깔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 편인데. 패인 곳 한두 군데만 때우면 되는데. 오늘은 새 아스팔트 깐다고 길을 다 막아서고 난리법석. 돌아가는 길도 없는 외통수인데 하염없이 길을 막고 있다. 허 참. 그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나가라고? 지나갈 길 하나 마련하지 않고, 거기다가 알림판 하나 세워 놓지 않고, 더구나 이런 공사를 한다고 미리 알리지도 않고. 이 공무원 년놈들 나라밥 처먹고 한다는 짓거리가 이 따위인가.

- 아스팔트 까는 길을 아슬아슬 지나오는 동안 까만 찌끄러기 돌이 바퀴에 잔뜩 달라붙다. 바퀴 안 녹나 모르겠네.

- 찻길을 달리며 내 뒤나 앞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자기 줄로 가지런히 안 달리는 자동차가 으레 있다. 이웃 줄과 자기 줄에 엉성하게 걸쳐서 두 줄을 차지하며 달린달까. 이렇게 달리는 자동차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다른 자동차한테 짜증스러운 경적 울리기를 하곤 한다. 자기들 달리는 모양새는 생각도 않고.

- 무어 그리 갈 길이 바빠서 들쑥날쑥 줄을 바꾸어 가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무어 그리 빨리 가야 해서 그렇게 경적질을 하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문득, 자동차 경적은 자전거한테만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끼리도 참 많이 한다고 느끼다.

- 네거리 신호가 바뀔 듯하면, 페달질을 더 빨리 밟지 않는다. 멀찍이 200∼300미터쯤 앞에서 신호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헤어 본다. 넉넉히 건널 만하지 않다면, 아슬아슬하므로 빠르기를 조금 늦춘다. 이렇게 하면 목적지에 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할 수 있지만, 시내에서는 어차피 신호에 자주 걸리는 터. 이렇게 해도 달리는 시간은 그다지 안 벌어지지 싶다.

- 양화다리로 가는 길. 합정동 버스정류장 앞에 버젓이 서 있는 자가용 한 대와 짐차 한 대. 여기에다가 새로 멈추어 서는 작은 자가용 한 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들한테 한 마디 할 생각은 없는가. 이런 차는 사진으로 찍어서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들은 정류장을 턱 막고 서 있는 자동차한테 빵빵거리지 않는다. 그냥 그 옆에 대충 버스를 세우고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타고내리도록 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한테는 빵빵거린다. 괘씸한 것들. ‘동업자’ 정신인가?

- 양화다리 건너고 대림동 지날 무렵부터 자동차가 줄다. 한숨을 놓다.

- 송내까지 다른 탈 없이 차분하게 달리다. 몇몇 버스하고는 사이좋게 달리다. 네거리 신호가 바뀔 때 자전거를 옆으로 빼서 버스가 먼저 지나가도록 하니,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 자전거 지나갈 틈을 조금 넓게 마련해 준다. 서로서로 이렇게 해 주면 더 홀가분하고 즐겁게 자전거나 자동차를 몰 수 있겠지.

 그런데, 송내에서 거침없이 막 달리는 아저씨 한 분 보다. 네거리 신호가 막 바뀌어 건너가는데 불쑥 내 왼쪽으로 튀어나와 앞지르려는 아저씨. 아마 뒤에서 줄곧 달려오신 듯. 내 자전거가 슬슬 탄력을 받아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즈음, 뒤에서 버스가 큰소리로 울리는 빠앙 빵. 깜짝 놀라다. 저 버스는 몇 초만 기다려 주면 될 터인데, 또는 옆으로 살짝 비껴 가면 될 텐데.

 거침없는 아저씨 자전거는 네거리 신호가 빨간불이건 푸른불이건 따지지 않고 그냥 건넌다. 너비 이십 미터가 넘어 보이는 넓은 네거리도 그냥 달린다. 아저씨는 목숨을 내놓고 달리시는가. 그래, 아저씨 한 분이 그렇게 목숨 내놓으시는 건 당신 뜻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먼길을 오가는 사람이 똑같이 욕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 오류동부터였을까. 거의 부평에 다다를 때까지 88번 버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다. 나는 버스한테, 버스는 나한테 마음을 쓰면서 달리다. 내가 버스정류장 앞을 지날 때면 외려 버스가 빠르기를 늦추며 나보고 얼른 지나가라고 해 준다. 그 다음에는 내가 길섶에 바싹 붙어 자전거를 세우며 버스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따로 손을 흔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또 저 버스기사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마음좋은 사람을 만났다. 혼자 달리는 이 길이 88번 버스 한 대로 외롭지 않았다.

- 달리다가 페달질이 좀 이상하다 싶어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피니, 체인에 무언가 끼었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운다. 체인을 살살 돌려 본다. 누군가 길에 버린 휴지가 체인에 감겼군.

- 간석오거리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빠졌는데, 엉뚱한 데로 길이 이어진다. 그대로 가야 했군. 백운역을 고가도로 위로 지나갔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골똘히 생각하다. 인천 시내 달려 본 일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길이 아직 잘 안 잡힌다. 자칫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다. 표지판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자. 음. 아무래도 동암역을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할 듯.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낯익은 길. 석바위 쪽 알림판과 동암역 알림판으로 나뉘어지다. 석바위 쪽으로 가다. 주안역 알리는 알림판 나오다. 조금 달리다 보니 고가도로 하나. 아차차. 이걸 타야 했나? 알쏭달쏭. 길을 거슬러 고가도로를 넘다. 넘으면서 보니 고가도로 밑 오른쪽 길은 ‘인천대학교’ 가는 길이란다. 어, 저쪽으로 그냥 갔어도 되었나?

 고가도로 내려오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주안역. 아, 내가 가려던 길은 이 길이다. 제대로 왔네. 하지만 다음에는 고가도로 밑으로 이어지는 주안역 뒷길로 가도 되겠구나. 그 길이 한결 낫지.

- 어린이집 노란 봉고차, 내 옆을 바싹 스치며 달리면서 빵빵거린다. 어린이집 봉고차가 저렇게 거칠게 달려도 좋은가. 저 봉고차를 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 주안역 앞. 빨간 자동차 한 대가 깜빡이 안 켜고 갑자기 내 앞으로 확 끼어들며 주안역 안쪽으로 들어섬. 살짝 급브레이크 밟으며 차와 안 부딪힘. 심장이 벌렁벌렁. 그 차를 좇아가 따끔하게 쏘아 줄까……. 아니다, 말자, 저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자, 그냥 가자.

- 제물포를 지나고 도원역에 이를 즈음. 기찻길 오른쪽 골목으로 갈까 하다가 그만둠. 기찻길 오른쪽 동네길은 다음에 지나가기로.

-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이고. 이제 다 왔군. 계단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가방을 3층에 올려놓고 디지털사진기 들고 내려와 자전거 사진 한 장.

 자전거님, 애 많이 쓰셨어요. 이제부터 인천과 서울을 오갈 짐바리가 될 터이니, 살뜰히 아끼고 사랑하고 고이 보듬어 드릴게요. 오늘 하루는 푹 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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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 이야기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름 : 다섯 손가락 이야기
- 글 : 카미유 로랑스, 장 드베르나르, 미카엘 글뤽, 로랑 고데, 엠마뉘엘 다를레
- 그림 : 마르탱 자리
- 옮긴이 : 백선희
- 펴낸곳 : 산하(2007.5.5.)
- 책값 : 8500원


― 다섯 사람한테는 다섯 빛깔이
 : 《다섯 손가락 이야기》를 읽으며



 다섯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발걸음 너비며 팔 젓는 매무새며 얼굴빛이며 다섯 모습입니다. 열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열 가지 모습이고, 백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사람 눈에는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나, 참새 다섯 마리가 모이를 쪼면 다섯 모습이고, 열 마리가 모이를 쪼면 열 가지 모습이며, 백 마리가 모이를 쪼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적잖은 그림쟁이나 만화쟁이들은 천 마리도 아니고 백 마리도 아닌 열 마리나 스무 마리 개미나 잠자리를 그릴 때 틀에 박힌 똑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들에 핀 꽃들이 같은 갈래라 해도 백 가지 꽃이 피었으면 꽃잎 크기부터 모양새까지 하여 똑같은 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이 다름을 느끼고 있을까요.

 초등학교 적부터 제도권 입시교육으로 치달으며 우리 생각과 마음을 좀먹는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줏대를 지키거나 가꾸지 않으니까 자꾸만 다 다름(다양성)을 잃고 어슷비슷 뻔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을까요. 자기 줏대를 가꾸지 못하니 유행에 휩쓸리게 되면서,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을 알맞게 사서 쓰거나 손수 마련해서 쓰지 못하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따라쟁이가 되지는 않나요.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에 가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연고대나 이화여대에 안 가면 사람 구실을 못할까요. 서울대에 갈 수 있는 학생은 몇 천도 안 되는데, 팔십만∼백만에 이르는 수험생들은 서울대에 못 들어갔다는 까닭 하나로 사람 대접을 못 받아도 될는지요.

 키가 큰 동무는 키가 큰 대로 반갑고, 키가 작은 동무는 키가 작은 대로 좋습니다. 오른손잡이 세상이지만 앞으로도 왼손잡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고, 나라살림이 한껏 부풀어올라 세계 몇 손가락에 들 만큼 부자나라가 되더라도 가난한 사람과 거지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잘산다고 다른 모든 나라가 잘살 수 있을까요. 우리들 모두는, 자기 깜냥대로 자기 발걸음대로 자기 몸피와 마음밭대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야기책 《다섯 손가락 이야기》는 사람마다 두 손에 걸쳐 열씩 있는 손가락이 모두들 어떤 노릇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엄지는 엄지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새끼는 새끼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검지는 검지이기 때문에 훌륭하고 가운데는 가운데이기 때문에 멋지다고 이야기해요.


..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건, 연극은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연극을 해 보면, 손잡고 함께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거든요. 어른이 되더라도 말예요 ..  〈68쪽 / 미카엘 글뤽〉


 미국이 참말로 평화를 사랑하며 우리 나라하고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면, 한국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끔찍한 피울음을 울게 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억지로 맺으려고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태여 한국땅에 수만 미국 군대를 앉힐 까닭이 없는 한편, 미국에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공장을 ‘생필품 공장’으로 고칠 테고요. 뭐, 미국만입니까. 러시아도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일본과 북조선과 남한 모두 마찬가지예요. 중국과 대만과 인도와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4340.6.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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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5일 자정을 넘길 무렵, 서울 중곡동 〈가자헌책방〉 아저씨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 오늘 조금 전까지 수사를 받고 나오는데, 벌써 네 번째, 아니 다섯 번째예요. …… 강남 가는 버스 기다리는데, 너무 기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술 한잔 했습니다.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눈물이 나오는데요. …… 지문도 찍고,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 용공사범으로 등록이 되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사회 상황을 만들어 가는 이 사회가 참 미쳐 버리겠다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최종규 씨, 참말, 내가 전화 안 하고 싶은데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 하다가 전화를 끊으십니다. 그리고 십 분 뒤 전화가 한 통 더 왔고, 이십 분쯤 지나서 다시 한 통 옵니다.


 이번에는, “지금 메모하실 수 있어요? 적어 주세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심판》,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철학사》. 이제 끝났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문 받다가. 아주 승질이 나게, 아주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오늘은 아침 아홉 시부터. 그리고 《이성과 혁명》이라고 마르쿠제 있잖아요. …… 검찰 측에서, 공안부에서 하는 게……, 내가 오늘 어디까지 간 줄 알아요? 증말 미쳐버리고 싶다는 게, 경기지방검찰청 과학수사대, 과학수사대에서 지금, 좀전에, 지문검색을 하고 범법자로, 국가비밀누설, 좌경용공사범으로 올라가 버렸어요. 선동화, 선동 있잖아요……. 고무 찬양으로. 지금 완전히 국가사범으로, 김종웅, 죄명, 국가사범, 딱 이렇게 되어 버렸어. 예, 사람 완전히 미쳐버리겠어요. 안 미치겠어요? 나 아까 전에 나오면서 소주 두 병 혼자 까 버렸어요.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하고 덧붙입니다. 이 다섯 가지 책에다가 《김현-문학사회사》, 《이병주-지리산》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듯.


 그리고 삼십 분 뒤, 네 번째 전화가 옵니다. “지금 거리에 주저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가기는 가야겠는데, 어떻게 할까 해서 전화도 하고 골몰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애타며 기다리고 있고, 나는 택시를 못 타요. 내가 왜 택시를 타요? 택시비도 만 원 이상 나오고. 나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입장이고, 내가 …… 증말, 딱 한 마디, 죽을 지경입니다. 지금 현재. 앞으로도 딱 그 하나만. 차소리 들리죠? 엄청난 소음과 공해와 사회에 대해 찌들은 우리 삶이 얼마나 핍박받고 있는 걸 누가 알까요? 이 새벽에, 이 새벽에, 이 새벽 공기를 마시는 사람만이 알고 있지요? 이 새벽 공기, 새벽이라는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 어떻게든 집에 가야겠지요. 걸어가든 어떻게든 암담하네요. 난 지금 너무 어려워요.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렵고, 너무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4340.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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