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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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글쓴이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5.1.)
- 책값 : 1만 원


.. 한쪽은 막강한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본가들이고, 다른 한쪽은 맨몸뚱어리밖에 없는 노동자들인데, 그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17쪽〉


 우리 세상은 얼마나 평등할까요. 돈-이름-힘을 가진 사람과 돈-이름-힘을 못 가진 사람이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둘은 같은 자리에 서서 힘껏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요. 50미터 앞에서 달리는 이가 있고, 50미터 뒤에서 달려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배우는 기회, 배운 것을 펼치는 자리, 펼치려는 것을 실을 매체, 매체에 실은 뒤 받는 대접들은 누구한테나 고르게 주어져 있을까요. 어렵게 살림을 꾸리며 공부도 부지런히 해서 뜻을 이루었다는 소년소녀 가장을 칭찬하는 사람들만큼, 어려운 살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찔해 하는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따순 손길 내미는 이웃은 얼마나 될까요. 이들을 보듬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 있을까요. 이런 사회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일은 무엇을 뜻할까요.


.. 남들이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자격증을 세 개씩이나 갖고 있으면서도 그 장애인 노동자는 아직까지 번듯한 직업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썩을 놈의’ 우리 사회다 ..  〈39쪽〉


 양복 착 빼입은 사람한테는 굽실거리지만, 일할 때 입던 옷차림인 사람한테는 눈을 부라리며 가는 길을 막는 우리 사회입니다. 시커멓고 큰 차를 몰면 검문을 안 하지만 값싸고 작은 차나 짐차를 몰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열 해 앞서, 스무 해 앞서, 서른 해 앞서도 똑같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도 마찬가지가 되리라 봅니다.

 길에서 신체장애인을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몽골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떠올려 보셔요. 얼굴 하얀 서양사람이 길을 물을 때와 파키스탄 이주노동자가 길을 물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요.


.. 법대로 모든 안전설비를 하는 데에는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에는 기껏해야 1억 남짓의 비용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산재보험에서 지불됩니다. 우리 사회와 같은 기업 경영 풍토 속에서 유능한 경영자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  〈229쪽〉


 법이 있어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사람한테는 ‘법이란 있느나 마나’ 아닐까요. 어떤 이는 불법을 저질렀어도 변호사를 잘 써서 불구속이 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어떤 이는 멋모르고 저지른 잘못 하나로 바로 구속이 되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자기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사회 부조리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전투경찰 쇠몽둥이 찜질과 닭장차에 몸뚱이가 들린 채 처박히는 창피를 겪어야 합니다.

 법조항을 따진다면, 지금 틀거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 다니는 ‘거님길(인도)’로도, 자동차 다니는 ‘찻길’로도 다닐 수 없습니다. 법조항으로 따진다면. 그렇다면 자전거를 파는 가게도 불법이고,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도 불법 아닐까요. 툭툭 끊어지는 자전거길을 놓는 행정 당국자도 불법이요, 자전거길을 제대로 놓지 않는 정책입안자와 공무원 모두도 불법 아닐까요. 자전거를 만들어서 팔게 해 놓고 다닐 수 없게 했으니까요.

 한편, 도시나 시골 길가에 불법무단 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가 딱지를 끊는 일이란 거의 보기 드뭅니다. 몇 군데에서 함정 단속을 할 뿐, 그 많은 경찰들은 숱한 불법무단 주정차 자동차를 못 본 척합니다.


..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에는 당연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도한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 도산한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부실 경영의 원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적정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입니다 ..  〈75쪽〉


 우리들은 누구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한자말로 옮기면 ‘노동자’입니다. 논밭을 부치는 사람이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동사무소나 행정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이든, 누구나 ‘일하는 사람 = 일꾼 =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는 일하는 사람이야. 일하는 사람이니 일꾼이지. 일꾼이란 노동자를 가리키지.’ 하고 생각할까요. 내 이웃도 똑같은 ‘일꾼이며 노동자’라는 생각을 몇 사람이나 할까요. 노동자한테 주어진 노동3권이 무엇인지, 노동자가 받을 권리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 나라 노동현실이 어떠한지,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이 어떠한 곳인지, 노조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회사 간부와 언론재벌 생각은 어떠한지, 노동운동이란 무엇을 하자는 일인지, 노동운동이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웬만한 직장인들은 대학교를 나오는 오늘날, 머리속에 수많은 지식을 가득 채우고 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은 누구이며 어떠한 ‘일꾼’이고, 어떤 대접과 권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내 이웃이자 또래이자 손위나 손아래 사람인 다른 ‘일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무덤덤하지는 않나 모르겠어요. 내 이웃이 시달림을 받고 푸대접을 받을 때, 나 또한 시달림과 푸대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못 느끼지 싶어요. 그래도 노동운동에 희망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란 불씨 하나 꺼지지 않도록 살리면서 보듬을 수 있을까요. (4340.4.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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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마리 휴지를 새로 꺼냅니다. 여태껏 쓰던 두루마리 휴지 하나는, 다른 사람이 쓰던 것을 얻었으니 온것 그대로 쓴 셈은 아니었지만, 이태 만에 새 두루마리 휴지를 꺼냅니다. 지난해 1월인가 2월에 스물네 개들이 두루마리 휴지 묶음을 사고 오늘 처음 뜯었습니다. 똥누고 뒤 닦을 때 빼고는 휴지 쓸 일이 없고(뒤 닦을 때는 두 칸씩 둘을 뜯어서 씁니다), 코를 풀 때에는 한 번 푼 휴지를 잘 펴서 고이 말린 뒤 다시 쓰곤 하다 보니까 이렇습니다. 무엇을 닦을 때에는 걸레를 쓰거나 손을 씁니다. 굳이 휴지를 뜯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두루마리 휴지 묶음에 스물세 개가 남았으니, 이 휴지는 앞으로 쉰 해 안팎 쓸 수 있을까요? 죽는 날까지 이 두루마리 휴지를 다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4340.4.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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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해서 살다가 헤어지기로 한 뒤, 서울에서 살던 집을 아내한테 넘겨주면서 이 전세집을 얻느라 다른 사람한테 꾼 돈은 갚아야 하니, 그 빚만 갚게 해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헤어진 아내는 그러마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전세집 소유권을 넘긴 다음에는 말을 바꾸어 빚갚이 할 때 들어가야 할 돈을 안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빚갚이 할 돈은 받지 못했고, 앞으로 그만한 돈을 다시 벌 수 없도록 살아가는 저인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손을 벌리며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가 도서관을 열 준비를 하는 요즈음, 돈 나갈 일이 없도록 몸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짐차를 부르는 일부터 해서 새로 들여야 할 책꽂이와 책걸상, 이밖에 자질구레하게 들어갈 여러 곳에 쓰일 돈을 생각하면, 아내와 헤어질 때 받기로 했던 그 빚갚이 돈이 새삼 떠오릅니다. 사람이 없이 살다 보니, 자꾸 어느 한쪽에 아쉬움이 남겠지요. 하지만, 빚갚이를 못하고 둘레사람들한테도 손 벌리지 못하는 형편이 되노라니, 주는 고마움과 받는 고마움을 새삼스레 돌이켜보게 됩니다. 또한 제 삶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랬듯이 제 두 주먹으로 헤쳐 나가야지, 어설피 옛생각에 매여 살아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빚갚이를 했다면 어깨짐은 가벼워졌겠지만, 좀더 다부지게 세상과 맞설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로 새로운 일감을 찾으려 하지 못했을 테지요. 무언가 가지고 있다면, 그처럼 가지고 있는 재산(또는 물건 또는 힘)으로 그동안 생각했던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두 손에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다면, 모든 것을 새로 찾아야 하고 새로 생각하고 새로 몸을 놀려야 하고 새로 부대끼고 뛰어야 합니다. 저라고 하는 사람이 낡은 자리에 머물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움직이되,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이 되라는 뜻에서 빚갚이를 못하게 운명이 지어졌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4340.4.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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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05 10:14   좋아요 0 | URL
빚이라는 게 한번 사람 덜미를 잡기 시작하면, 어디가서 뭘해도 주눅이 들어서
사람 사는 모양새가 영 안나오더군요. 저도 한때 큰돈이라면 큰돈일수 있는 금액의 빚으로 한참을 고생했는데, 지나고 보니 어찌살았나 싶습니다.;;
지금 고생스러우신거 십분 이해한다면 오버가 되겠지만, 적으신 글가운데는 저와는 전혀다른 희망을 갖고 계신 분인듯 합니다. 모쪼록 조만간에 염려없이, 그 빚들이 잘 해결되길 소망해 봅니다. 좋은 봄날 맞으시길요.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체셔고양2 드림.

파란놀 2007-04-06 13:36   좋아요 0 | URL
빚을 지며 고달파 본 사람들은, 서로를 더 잘 헤아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
오버라니요~
채셔고양2님도 좋은 희망으로 즐겁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과 자연
김준호 지음 / 따님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사람과 자연
- 글쓴이 : 김준호
- 펴낸곳 : 따님(2001.5.20.)
- 책값 : 6800원


 익산에 사는 할머님 한 분이 보내준 된장과 간장으로 밥을 해먹습니다. 요 된장을 풀어서 끓이면 어떤 찌개든 맛깔스럽다고 느낍니다. 다른 간은 안 합니다. 된장만 반 숟가락 풀어서 국수를 삶거나 버섯찌개를 합니다. 김치나 감자나 빨간무나 호박 들을 두루 넣어 섞어찌개를 할 때도 있고요. 익산 할머님이 보내준 된장은 당신이 콩씨까지 하나하나 가려서 심고 풀약이나 비료를 하나도 안 쓰고 길러서 거둔 뒤, 손수 삶은 다음 메주를 띄워서 빚어내었습니다. 손수 띄워서 빚은 된장을 나날이 먹는 밥으로 먹어 보기는 스무 해 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열서너 살 나이 때까지는 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을 담그셨거든요. 문득, 그때는 그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만으로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우리는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자연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국토 면적이 좁을수록, 또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더 자연보존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자연마저 개발한다면 장차 이 땅에는 손바닥 만하게 보존된 자연마저도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자연보호와 자연보존을 혼동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연보호만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개발만 하려는 생각이 판을 치게 되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145쪽〉


 오랜 술동무 하나가 힘겹게 몸앓이한 끝에 아들아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저저번달에 돌잔치를 했고, 저번달에 그네가 사는 동네로 찾아가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집에서 손님 대접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그네 식구가 자주 찾는다는 오리고기집에 갔는데, 오리고기집은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논 한복판에 있습니다. 오리고기를 얻어먹으며, ‘어떻게 논 한복판에 오리고기집을 차릴 생각을 다했을까?’ 싶었습니다. 김포공항 둘레에는 아직 논밭이 조금 남아 있는데, 이 논밭은 머지않아 모두 갈아엎고 높은 아파트를 올린다고 합니다.

 농사짓는 분들로서는 곡식 거두어 보았자 돈이 안 되고 빚만 되니까, 그 땅이나마 좋은(?) 값에 팔아 딴 데로 떠나거나 고기집 장사를 하는 편이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요. 재개발업자는 공사 한 건 얻을 테니 돈방석에 앉을 테고, 시나 구에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으니 공사업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힘껏 재개발에 나설 테지요. 논밭 둘레 높직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네 아파트 옆에 논밭보다 높직한 아파트가 나란히 서 있어야 집값이 올라 돈을 번다고 생각하겠지요.


.. 큰 도시가 생기고 생활환경이 열악해짐에 따라 식물은 일방적으로 수난을 당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은 자꾸 황폐해지고 있다. 무엇이 사람과 식물을 이간질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가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숲이 바로 안식처였고 생활 터전이었다. 사람은 메마른 마음을 살찌우려고 정원을 만들고 공원을 꾸민다. 정원은 각 민족의 오랜 정서를 모은 자연의 축소판이다 ..  〈67쪽〉


 도시개발 하는 모습을 보면, 여태까지 고이 이어오던 산을 깎고 들을 뒤집어엎어 시멘트로 바른 뒤 아파트를 세웁니다. 그리고 나서 흙을 퍼 오고 나무를 사 오고 꽃을 심고 하며 ‘근린공원(‘근린공원’이란 “가까이 있는 공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아파트 재개발을 한 곳에 가까이 마련한 공원이란 소리입지요)’을 조그맣게 만듭니다. 처음부터 재개발을 할 때 숲과 산과 들판을 고이 지키면서 ‘사람 살 집’만 알맞춤하게 지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 때려부수거나 갈아엎은 뒤 돈으로 바릅니다. 그리하여, 뒷날 ‘이번에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낡았다고 여겨지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뒤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아파트 옆에 있던 근린공원마저도 똑같이 허물고 부수고 새 아파트를 올린 뒤 새 근린공원을 만듭니다.

 있는 것을 지키거나 가꾸기보다, 있는 것을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돈이 된다고 하는 요즘 세상이라서 이렇게 돌아갈까요. 그러면 그 돈이란 어디에서 나오고, 이 돈은 어디에 쓰일까요. 이 돈은 밑도 끝도 없이 샘솟기만 할까요. 돈은 샘솟아도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곳,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아늑하게 깃들 수 있는 곳이 다 파헤쳐지거나 무너진 뒤에는 어찌 될까요. 오늘은 4월 5일, 박정희 독재자가 세운 ‘나무심는날’입니다. (4340.4.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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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미터 산업도로와 재개발을 반대하며
 - 인천 배다리와 금곡동과 송림동을 지키고자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꾸린 뒤 자전거를 탑니다. 때때로 자전거를 놓고 전철을 탑니다. 자전거를 탈 때면 홀가분하게 차가운 새벽 바람을 느끼며 등판을 흥건히 적시는 땀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놓고 걸어서 전철역까지 갈 때에는 제가 디디는 땅을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느끼며 좀더 더디게 제 둘레 삶터와 사람들을 살피게 됩니다.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동안 책 한 권 펼칩니다. 아직 제가 모르거나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이웃들 이야기와 생각을 책을 읽으며 느낍니다.

 일곱 시에서 일곱 시 반 사이에 인천 동구 금곡동에 자리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닿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까지 이곳 헌책방거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조그마한 자리를 하나 얻어 ‘개인 도서관(중심 주제는 사진책)’을 열 생각이라서, 헌책방거리 일꾼과 함께 책꽂이를 짜고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에도 도서관이 제법 여러 곳 있기는 하나, 이곳들은 중고등학교 아이들 입시공부를 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인천에서 살아가는 적잖은 젊은 넋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과 수험서에 매여, 정작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이 걸을 길을 찬찬히 생각하거나 찾아볼 ‘책’ 하나 만나는 즐거움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지난 열 몇 해에 걸쳐서 모아 놓은 갖가지 책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나,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책 하나를 느긋한 마음으로 살피면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책이 있구나’, ‘이렇게 온갖 책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여태껏 무엇을 보아 왔나’ 하고 찬찬히 곱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 헌책방거리에 문을 열 도서관이 얼마나 오래 살림을 이을 수 있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 세 해쯤은 버티겠지만, 그 뒤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배다리 헌책방거리와 이웃한, 또는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인 ‘쇠뿔거리(우각로)’라는 길을 가로지르는 50미터짜리 산업도로가 놓일 판이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고 1998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습니다. 길 닦을 자리는 길그림을 보며 ‘곧은 금’을 그었고, 그 곧은 금에 놓인 사람들 집터와 가게터는 ‘한 평에 얼마씩 보상해 주겠다’고 말에 한 집 두 집 쫓겨났습니다. 새길이 닦인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찌하겠느냐’며 돈 몇 푼 받고 살림을 옮겼습니다. 자기들 삶터에 왜 길이 놓여야 하나 묻지도 못한 채, 아니 처음부터 물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참말로 왜 새길이 놓여야 하고, 새길은 왜 가난한 사람들 집터나 가게터를 싸그리 밀어내며 뚫려야 할까요. 인천은 서울보다 자동차가 적고 대구나 부산보다도 적지만, 길은 제법 많이 뚫려 있습니다.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앞서부터 ‘항구를 억지로 열’면서, 인천을 거쳐서 조선땅 수많은 자원이 배에 실려 일본으로 빼앗겨야 했으며, 일본 문물이 인천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온갖 길을 놓아야 했고, 이때에도 지붕 낮은 집에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터는 남김없이 밀려나고 무너졌습니다. 이 역사가 2007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셈이랄까요.

 돌이켜보면, 쇠뿔거리(우각로)는 이 나라 얼과 넋이 짓밟히고 무너지면서 이 나라가 일본한테 식민지로 살며 괴롭힘에다가 시달림으로 골머리를 앓게 한 ‘첫 번째 길’입니다. 나라님께서는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쇠뿔거리는 ‘싹뚝 잘라내어’ 산업도로를 뚫고 나라살림을 북돋워야 인천 살림이 살고 나라한테도 좋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어요. 더욱이, 산업도로를 다 뚫은 뒤에는 길 둘레에 자리잡고 있는 송림동과 금곡동을 세 해 안에 모두 철거하고 ‘문화와 쇼핑과 패션이 넘치는 복합상가와 산업단지’를 유치해서 사람들한테 돈벌이를 시켜 주겠다고 내세웁니다. 그런 뒤, 헌책방거리와 공예거리를 쫓아내어 아파트를 올리고, ‘지붕 낮은 집’들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외국사람들한테 볼꼴사나우니까(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보기 좋은 새 시멘트 집’들을 높이높이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송림동과 금곡동에서 살아가며 조용히 살림을 꾸리던 분들이 모인 오래된 저잣거리까지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겠지요.

 한 평에 사백만 원이라던가, 집있는 사람들한테 내어준다는 보상금이. 이 마을 분들 집은 열 평이 채 못 되곤 하니까, 열 평이라 치면 사천만 원. 서른 해, 쉰 해, 일흔 해 동안 허리가 구부정하도록 살아온 이들이 어렵사리 장만하고 알콩달콩 가꾸어 온 살가운 마을살림과 집터 보상금이 사천만 원. 웬만한 대졸 취업자 연봉만큼도 안 되는 돈. 이 돈을 받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기들 살림을 다시 마련할 수 있을까요. 전세집이나마 얻을 수 있을까요. 집을 옮겨야 한다면, 그동안 해 온 일은 어떻게 다시 이을 수 있을까요. 생판 낯선 곳에서 무슨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손바닥 만한 집에 살며 손바닥 만한 텃밭을 돌보는 재미를 누렸고,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이라지만, 그 적은 돈으로도 한삶을 조촐하게 꾸리며 모자랄 것도 넘칠 것도 없는 알맞춤한 삶을 꾸렸습니다. 남한테 해코지할 일도 없으나, 해코지할 까닭 또한 없이 오순도순 낮은 지붕이 다닥다닥 달라붙고 이어붙으며 언제나 웃음꽃과 눈물바람을 함께 나누며 살았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분한테는 우리들 삶과 삶터는 ‘문화가 아니’며 ‘한낱 가난뱅이 구질구질’일 뿐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분들은 ‘자가용 하나도 몰지 못하는 주제에 얼른 집과 가게 빼고 떠나 주길’ 바라겠지요. 하지만 우리들 집터와 가게터는 ‘인천 개항 역사와 발맞추어 함께 해 온 문화’요, ‘인천 개항 앞서부터 조용하면서 살뜰하게 이어오던 삶’입니다. 우리들 지역문화와 어깨동무 삶은 돈 몇 푼으로 보상받을 수 없지만, 이런 보상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닦은 반듯하고 널찍한 수많은 길로도 넉넉한 인천이며, 자동차 세상보다는 사람들이 아늑하고 포근하게 살아갈 삶터가 인천이라는 곳을 한결 아름다이 보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으로 빚는 문화나 삶터가 아니라, 사람들 따순 마음으로 가꾸는 문화나 삶터를 고이 지키고 즐기며, 앞으로도 웃고 울며 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4340.3.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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