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 6 - 완결
가와쿠보 카오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해피투게더 (1∼6)
- 글ㆍ그림 : 가와쿠보 카오리
- 옮긴이 : 설은미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5)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살아가며 나이를 생각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 하나 고를 때에도, 다른 이 일손을 거들며 땀을 흘릴 때에도, 밥을 할 때에도,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을 훔칠 때에도.

 나이 스물에도, 스물다섯에도, 서른에도 높다란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신나게 자전거로 넘었습니다. 어느덧 서른셋이 된 이 나이에도, 자전거로 언덕길 넘기는 늘 즐깁니다. 앞으로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지금처럼 살겠지요.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마에서 땀이 방울져 뚝뚝 떨어져도.


.. “얼마 남지 않았어. 시합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실히 느끼게 돼. 지금까지 계속 지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어. 그때마다 내 형편없는 실력과 연습부족에 좌절하면서 그 이상으로 미련이 남는 게 있었어. 만약에 이겼으면, 모두와 또 같이 시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한 것을 채우자. 반드시, 반드시 이기자.” ..  〈6권 136∼138쪽〉


 배구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등학생 1∼2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해피투게더》를 봅니다. 거친 몸싸움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재주와 훈련으로만 부딪혀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인 배구. 어느 쪽이든 반칙을 할 수 없고, 반칙이 나올 수 없는 경기인 배구. 축구나 농구처럼 ‘심판이 안 보이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옷을 잡거나 다리를 걸거나 팔꿈치로 찍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배구. 그만큼 자기다스림과 자기가꿈으로 몸을 만들고 솜씨를 쌓아야 하는 경기인 배구. 배구를 즐기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튼튼해집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펄쩍펄쩍 뛰면서 온갖 생각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합니다. 잠깐도 눈을 뗄 수 없이 경기에 빠져들어야 하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나를 돌아보게 된달까요.

 만화 《해피투게더》에 나오는 여섯 아이는, 저마다 다 다른 집안에서,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저마다 다 다른 꿈을 안고 살아가다가 만납니다. 딱히 ‘배구’에서 만나야 할 까닭은 없었지만, 한삶을 바칠 만한 대상으로 삼은 아이가 있고, 뜻하지 않은 때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기 마음 더 깊은 데를 찾아보고 싶은 아이가 있으며, 세상 편견에 맞서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겉멋에 홀려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우리 삶 깊은 자리를 파헤치는 가운데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동무 따라 강남 가듯 흘러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따로따로 노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배구에서 ‘모이’고, 어떻게 자기 삶에서 ‘저마다 흩어져’ 살아가게 될까요.


― “우리도 할 수 있어.” 〈5권 36쪽〉
― “레이코, 처음으로 슬라이딩하면서 공을 잡았구나. 아주 잘했어.” 〈5권 50쪽〉
― ‘너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줄곧 이곳에서 살아가겠지.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마지막으로 조금은 봤는지도 몰라. 이 도시의 빛깔을.’ 〈5권 99쪽〉


 만화를 보는 내내 ‘일본도 우리하고 크게 다를 바 없구나. 학교를 다니는 이 아이들한테 길잡이가 되거나 길동무가 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구나. 아예 없지는 않지만.’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한테 말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제자도 되었다가 도움이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치는 기둥, 밑바탕이라고 할까요. 다른 동무한테 힘을 내라며 건네는 한 마디는, 다름아닌 자기한테 힘을 내라는 울림입니다. 자기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는 굳센 믿음은, 다름아닌 다른 동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더욱 자기를 믿고 힘내라는 응원이기도 합니다. 자기 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스스로이지만, 그 길에는 자기만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옆이나 뒤에 동무들이 있으며,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야 하지만 그 길 옆이나 뒤에도 언제나 다른 동무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 “그러면 안 되나요? 저처럼 요령이 없고, 아무 재주도 없는 애가, 설령 착각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보시기에는, 제가 언제까지나 형편없는 인간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제 진로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  〈6권 87∼88쪽〉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저 만화 주인공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멀거니 구경하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 하나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며, 제 앞길을 내다보게 합니다. ‘너 지금 얼마나 즐겁니?’ 하고 자꾸자꾸 말을 겁니다. ‘너한테 소중한 일은, 사람은, 사랑은, 놀이는, 세상은 무엇이니?’ 하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저는 요사이 사랑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제 곁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곁에 있겠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며, 좀더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잃었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

 다만, 이 만화책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영어로 지은 책이름 《해피투게더》를 보고는 정나미가 떨어졌거든요. 니노미야 토모코라는 사람이 그린 《GREEN》이라는 만화책을 볼 때에도 그랬습니다. 책이름을 왜 이렇게 지을까요. 이렇게밖에는 못 지을까요. 《GREEN》은 도시에서만 살던 아가씨가 농사짓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시골 총각한테 시집가서 살아가는 줄거리로 된 만화책입니다. 만화는 퍽 짜임새있고 재미도 있지만, 책이름 ‘그린’만 보아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 일본사람들이 영어 쓰기를 좋아한다지만, 우리 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을 우리 삶과 문화에 걸맞게 풀어내 주면 한결 나았지 싶은데. “함께 웃는다”나 “다 함께 즐겁게”나 “함께 있어서 좋아”처럼. (4340.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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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잠깐 덮습니다. 문득, 요즈음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요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때 책이 없어서 못 팔 만큼 되었지만, 이제는 책을 더 안 찍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보지 못했고, 그다지 볼 마음이 없지만, 책을 더 안 찍기로 했다니 사서 볼 길은 없군요. 헌책방에 나온다면 그때는 사 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제 나름대로 든 몇 가지 생각을 적어 보고 싶습니다.


.. 당시 일반 시민들은 개인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조선인 차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또 특별히 식민지 지배사상의 오염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어느 나라나 편집광이나 맹신자는 있기 때문에 유언비어가 일반 민중 차원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부정할 수는 없다 … 조선인에 대해 “선천적으로 배신자이고 거짓말꾼이며 무능력자이고 사회의 부적격자”라고 부르고, ‘언제나 너희들은 이등국민이다’라며 치안 단속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관헌집단의 존재는 재일 조선인 역사의 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해방 전 재일 조선인으로서 ‘특고내선계 나리’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강덕상-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역사비평사,2005) 91, 104쪽


 ㄱ.사람을 괴롭히는 짓

 
 《요코 이야기》에 담긴 줄거리를 모두 거짓이라고만 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한국땅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그 북새통에서 일본사람들이 겪어야 한 일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요. 그동안 ‘이등국민’으로 깔보고 짓밟던 조선사람들한테 돌을 맞고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몸만 달랑 빠져나와 부리나케 고향나라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입니다. 낫이며 도끼를 들고 일본사람들 때려죽이려고 돌아다니던 조선사람이 없었을까요? 틀림없이 있었겠지요. 저라도 그때 일본놈들 죽이려고 온갖 곳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조선땅에서 ‘고향 일본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들볶던 조선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수십 해 동안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백성들을 들볶고 괴롭히던 잘못은 어떻게 다를까요.

 집과 재산을 모두 놓고 고향나라로 돌아가야 한 일본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조선땅에서 저지른 죄값(?)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고 느끼면서, ‘아, 나도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저렇게 조선사람을 괴롭혔지’ 하고 뉘우쳤을까요. 또는, 자기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일은 까맣게 잊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만 놓고 ‘저 나쁜 조선놈들’ 하고 생각했을까요. 소설 《요코 이야기》에는 어떤 눈길과 생각이 담겼을까요. 궁금합니다.

 
 ㄴ.전쟁문학


 《요코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 ‘문학동네’는 인터넷 누리집을 닫고(이제는 인터넷검색조차 안 됩니다) 해명글을 올려놓았습니다. 해명글을 보면, “『요코 이야기』의 출간을 결정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일본민족=가해자, 우리민족=피해자라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논의될 수 없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의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적습니다. 이 해명글에 나오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 문제를 다룬 적이 우리 문학 발자취에서 한 번도 없는지, 또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는지도요.

 전쟁폭력은 ‘여성한테만’ 쏟아졌을까요. 여성한테 좀더 많이 폭력이 저질러졌다고 하겠으나, 이 나라에 살며 친일부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여자니 남자니 어른이니 아이니 할 것 없이 똑같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이런 발자취와 이야기들, 이 가운데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 이야기는 꾸준하게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런 아픔을 달래고 추스르는 움직임도 적잖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책이나 움직임에 제대로 눈길을 두는 사람이 잘 안 보인다뿐입니다. 몇 해 앞서 이승연 씨가 ‘종군위안부 알몸사진’을 찍으며 말썽을 일으킨 일을 떠올려 봅니다. 이승연 씨와 사진 찍은 회사에서는 ‘조금도 상업주의 의도가 없었다’고 몇 차례나 힘주어 말했지만, 상업주의 뜻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님들한테 이런 일을 해서 사람들한테 널리 알리겠다고, 할머님들 아픔을 뼛속 깊이 느끼며 이런 아픔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겠지요. 그러면서 할머님들 눈물 뜻을 속깊이 헤아렸겠지요. 하지만 이승연 씨나 회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나요. 처음부터 상업주의였기 때문에 〈나눔의 집〉 할머님한테 찾아가기는커녕 귀기울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들끓던 여론도 곧 잠자겠거니 하다가, 외려 여론이 나빠지니 뒤늦게 사과를 하고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종군위안부로 몸과 마음을 다친 할머님들 가슴에는 또다른 날선 칼이 들쑤시고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제대로 눈길을 두는 우리들이었을까요? 윤정모 님이 이런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이토 다카시라는 일본 사진작가가 종군위안부 할머님 삶을 사진이야기로 남겨 놓고, 정대협 사람들이 할머님들 증언자료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내는 동안, 우리들 눈길은 얼마나 쏟아졌을까요.

 적어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만큼이라도, 문학책을 낸다는 출판사에서라도 이런 움직임에 따순 손길을 보내 본 적이 있었는지요. 그러면서 고작 펴내는 책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요코 이야기》뿐인지. 이것도 출판 다양성이라면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태껏 여성이 받은 전쟁폭력을 다룬 살뜰한 책이 제대로 없는 판이라면 모르되, 그런 책이 있어도 눈길을 거의 안 두었으면서, 《요코 이야기》 하나만 앞에 내세워도 좋은지 모르겠네요.

 나아가, 《요코 이야기》를 내치는 왼손이 있다면, 일제 식민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살피고 돌아보는 책을 찾아서 손에 쥐는 오른손도 있어야지 싶어요. 아울러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을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책을 찾아볼 수 있는 눈길도 추스르고요. 우리 스스로 일제강점기 때 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적바림할 수 있는 움직임도 있어야겠고, 이런 적바림을 문학으로 빚어내는 움직임도 있어야겠으며, 문학으로 빚어진 열매를 반갑게 맞아들이고 널리 읽고 나누는 움직임까지 있어야지 싶어요.

 
 ㄷ.언론과 교육

 
 우리한테는 얼마나 언론 자유가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친일부역자 죄값을 달게 물은 적이 있는지, 일제 강점기 때 죽을 고생을 했거나 끝내 죽고 만 사람들 아픔과 슬픔을 달래거나 씻어 주는 언론매체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일부역자들은 언제 한 번 죄값을 달게 받았을까요. 이 땅에서 친일부역자들이 판치는 모습을 막거나 붙잡을 수 있었나요. 아직까지도 친일부역으로 조선총독부한테 물려받은 땅을 ‘찾겠다’는 소송을 거는 친일부역자 후손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움직임을 막거나 꾸짖는 손길이나 움직임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피해자들은 지금 어찌 지내고 있나요. 한국땅에서, 일본땅에서, 중국땅에서, 러시아땅에서, 또 중부아시아땅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꾸리고 있나요. 가만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나라 역사교육도 짚어 보면서.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지요? 시험문제에 나오는 지식으로만 가르치지 않나요. 아이들이 일제강점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도록 가르치는가요. 교과서 달달 외우기와 시험점수 따지기에만 푹 빠진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보고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나요. 이런 흐름을 헤아릴 때, 《요코 이야기》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어른과,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어떤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역사 교육이 엉터리인 한국에서 소설 《요코 이야기》는 얼마나 ‘전쟁이 일으키는 아픔’을 우리들 가슴마다 깊이 새겨 놓을 수 있을까요.

 
 ㄹ.책

 
 문득, 이 나라에서 역사ㆍ문화ㆍ사회를 샅샅이 살피고 파헤친 책이 얼마나 대접받는지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얼마나 언론매체 눈길을 탔을까요. 얼마나 제대로 소개가 되었을까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이 책은 일본사람이 힘겹게 취재해서 나온 책입니다. 그것도 퍽 예전에. 2005년에 한국말로도 나왔습니다)라는 책이 나왔을 때 알아본 언론사 기자는 몇이나 되었을까요. 소개는 몇 줄이나 했을까요. 캄보디아에 살아 있던 ‘훈 할머니’를 찾았다고 호들갑을 떨며 ‘특종 취재’로 법석까지 부리던 언론매체 가운데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2004)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한 줄이라도 소개를 해 준 곳이 몇 군데나 되었지요? 임종국 선생이 《정신대실록》이라는 책을 펴냈을 때, 1990년대 첫머리부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한울)라는 책이 나와서 3권까지 나온 뒤, 출판사를 옮겨 5권까지 나오도록, 또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책이 나왔을 때에도, 이 책을 알아봐 준 언론매체는 어디가 있을까요.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라는 책이 나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책이 나와도, 일본 사진작가가 취재한 《종군위안부》(눈빛)라는 사진책이 나왔어도, 이런 책을 하나라도 사서 읽은 지식인은 얼마나 되며, 이런 책을 기꺼이 소개하고자 나선 출판평론가는 누가 있으며, 여성학자와 여성운동가 가운데 이런 책을 둘레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읽고 공부한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ㅁ.군복 입은 남자들

 
 《요코 이야기》를 낸 출판사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을 말하고,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위한다면『요코 이야기』처럼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거짓없는 좋은 뜻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요. 우리 현실을 안 보고 말로만 좋은 이야기를 읊을 수는 없겠지요.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 뒤로 이때까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을 이룬 적이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부역 노릇을 했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살아남아서 미군정기 때 돈과 이름과 힘을 얻었고, 이들은 이승만 독재정권 때 행정조직과 공무원 구석구석을 차지합니다. 그 뒤 이어진 박정희 독재정권 때는 아주 탄탄히 뿌리를 내렸고, 이어진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에는 이 나라 어느 두메에도 이들 손아귀가 안 뻗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 나라입니다. 우리 사회요 역사요 발자취입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과 평화를 외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붙잡혀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끔찍하게 고문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옳은 소리 했다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입다물고 고개숙이며 사는 게 낫다는 몸가짐을 익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우리 나라이며, 이런 흐름은 아직도 굳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방식은 《요코 이야기》라는 소설인지요.

 글쎄,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같은 책에서는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을 찾을 수 없을까요. 《한국의 히로시마》 같은 책에서는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바라는 길’을 찾을 수 없을까요. 《역사교과서와의 대화》 같은 책에서는 ‘군복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역사’를 찾을 수 없을까요.


 ㅂ.내가 참말 하고 싶은 이야기


 저도 《요코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차분하게 돌아보고 싶습니다. 참말로 이 책에 무슨 줄거리가 담겼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라도 꼭 헌책방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찾아볼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니 힘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몇 가지 다른 책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먼저 《맨발의 겐》(아름드리미디어)이라는 만화책. 일본에서 나온 ‘역사 다룬 만화책’ 가운데 일제식민지와 태평양전쟁을 바탕으로 균형을 어느 만큼 잘 잡고 자신들 잘못과 전쟁문제를 날카롭게 잡아챘다고 해서 널리 칭찬을 받았고, 나라안에도 10권까지 번역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히로시마》(사계절)라는 그림책. 이 그림책은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은 ‘철저히 피해자이기만 한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평화와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 그림책은 《맨발의 겐》과는 달리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만화책 《맨발의 겐》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가 주인공이 되어 나오지만, 이 주인공은 ‘미국놈 미워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권력자와 천황제’를 남김없이 비판합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일본이 왜 원자폭탄을 맞았는가?’ 하는 뉘우침이나 돌아봄이 없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되뇌이는 말은 ‘전쟁은 나빠, 평화를 사랑하자’입니다.

 그림책 《히로시마》를 펴낸 출판사도 《요코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와 거의 비슷한 말로 ‘전쟁문학을 봐야 하는 까닭’을 이야기했습니다.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책으로 왜 《히로시마》나 《요코 이야기》 같은 책을 골라야 했을까요? 그 많은 전쟁문학 가운데 우리 나라에도 번역해서 펴낼 만한 책이 이런 책밖에 없었을까요?

 일본에서는 《혐한류》(2005)라는 만화책이 나와서 꽤나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저도 이 만화책을 헌책방에서 한 권 우연하게 찾아서 샅샅이 읽었습니다. 모두 아홉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혐한류》는 ‘한국이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아무런 근거 없는 헐뜯기라고 둘러대면서 ‘한국이야말로 일본 문화를 베껴먹기로 훔치는 도둑나라이고, 거짓말과 노예근성이 가득한 못된 나라이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혐한류라는 만화책을 보며 우리 사회에 깃든 편향성과 온갖 문제를 비판하고 뉘우치자’는 말을 앞세워 번역할 출판쟁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런 출판쟁이가 없는데, 다양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책도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양성’을 빼면, 이런 책은 무슨 값이, 무슨 뜻이, 무슨 생각이, 무슨 가르침이 남을까요.

 《요코 이야기》 말썽은 시간이 지나면 오래지 않아 잊혀지리라 생각합니다. 생각의나무 출판사 사재기 말썽도, 한젬마 대리창작 말썽도, 정지영 대리번역 말썽도 벌써 잊혀진 옛일이 되었잖아요. 《마시멜로 이야기》는 이제 광고 한 번 안 때리고도 베스트셀로 높은자리를 아무 어려움없이 차지하는 책으로 튼튼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젬마 말썽은 이 일을 세상에 알린 〈한국일보〉를 빼놓고는 아예 기사로 다루지 않습니다.

 숨을 돌리며 생각을 마무리지어 봅니다. “《요코 이야기》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 역사를 돌아보도록 하는 책’을 부지런히 읽어 줄까요. ‘이 나라에서 전쟁피해자로 아파한 사람들 이야기’를 얼마나 따순 눈길로 살펴봐 줄까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전쟁이야기(전쟁피해와 군대와 학살을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 가운데, 《요코 이야기》 때문에 가슴이 아팠거나 씁쓸함을 느꼈거나 화가 잔뜩 치민 분들께서 다음과 같은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봐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얄궂은 책 비판’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살갑고 훌륭한 책 읽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테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1.몽실언니 (권정생)
 2.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츠보이 사카에)
 3.너를 부른다 (이원수)
 4.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윤정모)
 5.노근리 이야기 (박건웅)
 6.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모리카와 미치코)
 7.종군위안부 (이토 다카시)
 8.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5)
 9.맨발의 겐 (나카자와 케이지) (1∼10)
 10.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11.나무소녀 (벤 마이켈슨)
 12.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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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독서가"에서 "수집가"가 되는 것에 관하여..."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면 넉넉합니다. 여기에 책을 아끼는 마음까지 더할 수 있다면 한결 좋고요. "읽는이(독서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모으는이(수집가)"는 책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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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목수일기
- 글쓴이 : 김진송(목수 김씨)
- 펴낸곳 : 웅진닷컴(2001.7.10.)
- 책값 : 8000원


 학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착한 일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착한 일’을 권리로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힘없는 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착한 일은 언제가 가로막힙니다. 재개발을 한다는 마을마다 ‘그곳에 있던 집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으레 있으나, 이런 나무를 사랑하며 돌보고 싶은 착한 마음은 언제나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 버립니다. 큰나무를 파서 옮기자면 500만 원도 넘게 들지만, 새로 사서 심으면 5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하면서.

 힘없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을 돕자는 착한 마음도 언제나 날벼락을 맞습니다. 철거를 맡은 깡패들은 ‘위에서 시킨 일’이라 하고, 위에서는 ‘법으로 떳떳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날이 줄어드는 지구자원을 걱정하면서 자전거로 거리를 오가면, 한결같이 자동차 배기가스 세례를 받고 시끄러운 빵빵거림을 받습니다. 자동차마다 자전거를 길섶으로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곤 합니다. 정작 지구자원을 펑펑 써대는 자동차는 ‘석유든 석탄이든 다른 지하자원이든 바닥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조차 안 합니다. 자전거 타거나 걷는 사람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착한 마음은 언제나 콜록콜록 아찔아찔입니다.


.. 도시계획과 도로개발 과정의 기획안에는 땅값의 배상 이외에는 주거인들에 대한 어떤 것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전유한 공간에서 살 권리가 인정되거나 그것을 배려한 정책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그런 법조항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발에 관한 한 무제한의 독재가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 농촌인 것이다. 따라서 만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수십 년을 가꾸었다고 해도, 어느 날 산을 뚫어버리며 쳐들어오는 도로와 갑자기 만들어지는 댐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  〈273∼274쪽〉


 저는 아직 시골에 몸을 붙이고 있지만, 이곳에 얼마나 오래 몸을 붙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땅임자는 땅을 팔아 전원주택 짓거나 인삼밭을 가꿉니다. 산임자는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고 공장을 들여놓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도시에 깃든들 뾰족한 수가 없고, 시골에 뿌리박는들 다른 수가 없습니다. 땅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떠돌이 신세입니다. 찻길도 놓고 공장도 세우고 짐승우리도 갖춰야 하니 자꾸자꾸 쫓겨납니다. 전세값 높이고 재개발을 하고 뭐를 뭐를 짓는다고 하니 자꾸만 밀려납니다.


.. 땡볕에 군인들 몇 중대가 동원되고 포크레인이며 트럭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일하는 모양새가 영 마뜩찮던 중이었다. 개울물이 도로를 휘돌아서 아스팔트가 다 벗겨지고 콘크리트 밑의 흙도 다 휩쓸려 내려가, 공중에 콘크리트만 덜렁 들려 있는 곳이 그들의 작업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긴급 복구공사지만,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를 무너뜨리고 흙을 다져넣는 게 아니라 동굴처럼 보이는 앞부분만 흙으로 메우고 있었다. 마침 어제는 흙을 가득 실은 복구차량이 그 위를 지나다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려 전복되어 버렸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저 흙더미만 대충 메우는 일품새를 보니, 차라리 수해복군지 뭔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44∼45쪽〉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가르친 ‘착한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데 눈길 두지 말고 시험공부 잘해서 일류대학에 붙은 다음, 자격증 몇 가지와 운전면허증 따서 큰기업에 일자리 얻고, 좋은 신랑신부감 만나 하루빨리 시집장가 가서 애 쑥쑥 낳고 세금 잘 내는 일등시민 되라는 것? ‘어떤 사람을 찍을지는 알 수 없어’도 투표하는 날은 빠짐없이 투표하라는 것? 무엇이 쓰레기로 버려지는지는 따질 것 없이 ‘쓰레기 잘 줍는 일’? 아직까지도 서울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간첩신고 알뜰히 하는 일?

 우리가 사회살이를 하며 할 수 있는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나라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 행정관청에서 하라는 일은 두말 없이 받아들이기? 나이 많이 잡수신 어르신 말씀 고개숙여 잘 듣기? 신문과 방송에서 수없이 흘려보내는 소식을 비판없이 그대로 새겨듣기?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 월급 주고 일 시키는 회사가 얼마나 고마웁냐고, 이런 회사에 반기를 들며 교통정체 일으키는 데모하지 말고 야근이나 잘하기?


.. 도무지 엄나무를 제대로 자라게 놔두는 법이 없다. 몸에 좋다고 껍질을 벗겨 약으로 쓰거나, 엄나무닭 백숙이라고 하여 닭국에 넣어 삶아먹는지라 남아나는 게 없다. 큰 엄나무가 방골내미 뒷산에도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도 한 해 전에 누군가가 뎅겅 잘라가 버렸다 ..  〈78∼79쪽〉


 목수 김씨(김진송)가 쓴 《목수일기》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쟁이 이야기만 쓰는 줄 알고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었으나, 가만가만 읽노라니 나무질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만난 나무 이야기, 자기가 만난 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있으며 괴롭게 살아가는지 하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또한 자기가 나무를 만지며 살아가는 터전이 얼마나 팍팍해지고 있는지, 자기 또한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는 시골땅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숨김없이 털어놓습니다. 반갑군요. 이렇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간직하고 있으니. 하지만 슬프군요. 나무며 사람이며 우리 삶터며 된통 뒤죽박죽이 된 채 어둡고 슬프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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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만화를 볼 때마다 놀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림결이 깔끔하고 그린이마다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한편, 사람이든 사물이든 참 훌륭하게 그려냅니다. 만화 그림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정물은 아니지만, 정물을 빈틈없이 그릴 수 있는 그림 솜씨를 바탕으로 자기 눈길과 생각과 그림감에 따라서 아주 단출한 금 몇 가지로 모든 것을 담아내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일본 만화는 바로 이런 예술에 아주 알뜰합니다. 한편, 줄거리로 담아내는 그림감도 테두리가 넓습니다. 테두리가 넓으면 깊이가 모자라기 쉬운데, 넓게 여러 가지 그림감을 다루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는 그리는이 혼자서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둘레에 많기 때문이겠지만, 그리는이 스스로 자기가 그림으로 담아내어 줄거리로 살을 입히는 만화에 온마음을 쏟아붓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자전거 한 대를 그려도 그냥 떠오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야구공 하나를 그려도, 공을 차는 다리 모양을 그려도, 이삿짐차와 책을 실은 짐차와 얼린 물고기를 실은 짐차를 그려도, 대충대충 그리지 않아요.

 여기까지만 되더라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만화를 보자면, 이만큼이라도 된 만화를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뭐, 몇 사람쯤, 혼자서 바득바득 애쓰는 분들 만화에서는 엿볼 수 있는데, 초중고등학교 아이들까지 두루 즐겨보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한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요. 너무 대충 그립니다. 아무래도, 도움이(배경이나 말풍선이나 칸을 그리며 도와주는 일꾼)를 쓰기 쉽지 않은 형편도 한몫 할 테지요.


 요즘 틈틈이 보는 일본 만화 가운데 《교도관 나오키》(고다 마모라 그림,학산문화사,2006)가 있습니다. 어느덧 3권까지 우리 말로 나왔는데, 이 만화는 제가 즐기는 다른 일본 만화와 마찬가지로 깊은 생각이 담겼습니다. 제가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로 한다면 ‘철학’이 담긴 만화라 하겠어요. 사형제도를 꼭지점으로 놓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 끔찍한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 범죄자를 가두어야 하는 사람, 범죄자한테 교수형 집행을 손수 치러 주어야 하는 교도관, 벌을 내리는 판사와 변호하는 사람,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 이런 사형제도를 꾸려 나가는 정부…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객관이라든가 냉철로 줄거리를 다루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인데,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한편, 우리들 모두가 ‘사람’이라는 대목을 놓치지 않습니다.


.. 반성한 사람을 이렇게 공포에 질리게 한 다음 죽여 버리다니…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은 귀신이에요, 악마예요? 이건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에요! ..  〈3권 147쪽〉

.. 아오야마는 처음부터 자기 죽음으로 속죄할 각오를 하고 있었어. 그래서 오오키의 위증을 알고도 사형을 감수했다고 나는 생각해. 나는 그런 아오야마의 고결함에 감복하고, 복구규정을 어기면서 특별대우를 해 주는 거야. 이해해 줘, 나오키 ..  〈3권 198쪽〉


 제대로 그렸다는 생각이 드는 일본 만화를 보면서, ‘야, 이래서 요즘은 영화가 책보다 더 사랑을 받는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편, 만화에 나오는 대사만 쏙 뽑아서 소설을 쓴다고 해도 거의 똑같이 마음이 꿈틀거렸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나라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책을 살펴보았을 때, 마음이 꿈틀거리게 하는 책이 드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얼마 없어요. 어느 만큼 ‘참, 좋네’ 하는 생각으로 이끄는 책이 있기는 하지만, 눈물이 똑똑 떨어질 만큼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이야기를 건네지는 못한다고 할까요? 더 깊이 곰삭이며 자기 목소리를 낮출 줄 알고, 누구나 다 함께 귀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기로, 깊은 밤에도 불을 밝히며 읽을 만한 이야기로, 바쁘고 고되게 일하는 가운데에도 틈을 짜내어 헤아리고 살필 만한 이야기로 빚어내는 책이 뜻밖에도 적구나 싶어요.

 훌륭하다는 생각까지도 드는 일본 만화를 보다가, 잠깐 덮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은 만화 하나를 훌륭하게 그렸는데, 만화가 아닌 소설을 썼어도, 시를 썼어도, 수필을 썼어도, 이와 거의 같은 즐거움과 뭉클함을 선사했으리라고요. 다만, 만화라는 매체이기 때문에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제대로 눈길을 안 둘 뿐이며, 찬찬히 살피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만화 하나가 나오자면, 글책 하나가 나오는 시간 못지않게 힘과 땀을 들여야 하고, 살가운 사진책 하나 엮어내는 시간 못지않게 오랜 세월 붓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생각을 담은 책을 좋아합니다. 생각을 담은 만화를 좋아합니다. 생각을 담은 그림책, 생각을 담은 사진책, 생각을 담은 경제-경영-과학-종교-예술-교육-문학-인문학-어린이책 들을 좋아합니다. 생각을 담지 않은 책은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 해도, 가장 이름난 글쟁이가 쓴 책이라 해도, 100만 부나 200만 부가 팔려나갈 만큼 인기가 높은 책이라 해도, 대통령이 칭찬하고 신문과 방송마다 크게 칭찬하는 책이라 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누가 거저로 안겨 줘도 읽지 않습니다. 그냥 헌책방에 가져다줍니다.

 생각을 담은 만화, 생각을 담은 소설, 생각을 담은 교육학, 생각을 담은 사진, 생각을 담은 동화 하나 그립습니다. (4339.6.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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