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이시우 사진 / 인간사랑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 글ㆍ사진 : 이시우
 - 펴낸곳 : 인간사랑(1999.1.15.)
 - 책값 : 1만 원



 이 책 하나 17 ― 대한민국은 평화나라가 아니다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을 보고 나서


 

 사진을 찍는 이시우 님이 국가보안법을 어겼다고 해서 붙잡혔습니다. ‘이시우 님 한 사람만이 국가보안법을 어겼는가’ 생각해 본다면, 이 땅에서 안 붙잡힐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시우 님만이 붙잡힙니다.

 이시우 님이 붙잡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헌책방 일꾼도 차례차례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까닭에 발목잡혀서 붙들립니다. 그나마(?) 이시우 님은 중앙에서 알려진(?) 사진작가이기 때문에 몇몇 언론매체에 소식이 나왔습니다만, 헌책방 일꾼은 전국은커녕 지역에서도 모르기 때문인지 소식을 실어 주는 언론매체가 없습니다. 헌책방 일꾼이 아닌 구멍가게 일꾼이었어도, 동네새책방 일꾼이었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느낍니다. 한편, 이시우 님이나 헌책방 일꾼을 잡아간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려 한다면, 누구보다도 노무현, 박근혜, 이회창, 이명박, …… 이런 정치꾼들을 먼저 붙잡아 가두어야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큰힘을 휘두르며 ‘적나라인 북녘에 도움이 되는 몸짓과 말’을 퍼뜨리거든요.


 [53.문산 율곡리]
 : 누가 말했습니다. 싱그런 담쟁이넝쿨이 하루 빨리 자라 철조망을 덮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철조망이 그 안으로 숨어버리면 더 문제입니다. 단절 없는 청산은 낡은 것을 편들기 마련입니다.



 젊은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군대로 끌려가는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이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가 아닙니다. 군대에서 두 해를 썩어야 하는 일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면,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뜻이 참 평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 군대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한편, 계급에 종이 되도록 짓누르고, 이웃이나 동무조차 적인지 아닌지 의심하도록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목숨붙이를 돌볼 줄 알며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믿고 감싸는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할 스물 안팎 풋풋한 나이에 ‘사람 죽이는 훈련’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길들어야 하는 젊음이 애처롭습니다. 아니, 끔찍합니다. 더욱이, 군대로 끌려가 바보에다가, 개에다가, 종에다가, 쓰레기에다가, 살인기계가 된 사내들이 ‘군 가산점’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쏠쏠히 대접을 받습니다. 예비군이 되어 군인옷을 입고 길거리에서 깽판을 쳐도 붙잡아 가지 않습니다. 해병대 나온 사람들은 ‘나 해병대 몇 기야!’ 하면서 술주정을 부리며 길가는 사람한테 윽박지르기도 하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돈과 힘과 이름이 있는 이들은 ‘구멍난 법 틈’으로 빠져나가 군면제를 받습니다. 어쩌다가 연예인이나 정치꾼 한두 사람은 ‘몰래 군대그물 빠져나간 일’이 들통나지만, 이렇게 들통나서 된서리 맞는 돈꾼ㆍ힘꾼ㆍ이름꾼은 아주 드뭅니다.


 [7.철원]
 : 지뢰표지판은 비바람 맞아 하루하루 뜯겨 가지만, 꽃잎은 하루하루 거듭납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던 이를 짓밟고 들볶으며 죽이기까지 하던 국가보안법입니다.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독재정권 탑을 쌓으려고 하던 이승만이 되살려내어 언론통제와 사회통제를 하고자 휘둘렀던 국가보안법입니다.

 해방이 되며 다행스레 국가보안법은 사라졌지만, 이승만이 살려냈습니다. 그나마 열 몇 해에 이르는 독재정권을 젊은 피가 무너뜨렸고(1960년), 젊은 피는 어른이라는 사람들한테 권력을 넘겨주었는데, 이때 권력을 얻은 수구 정치꾼들은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고,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려고 또다시 휘둘렀습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군부쿠테타가 일어나 박정희가 독재정권을 움켜쥡니다. 이리하여 일제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국가보안법이,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평화운동가’와 ‘민주운동가’와 ‘사회운동가’와 ‘노동운동가’와 ‘문화운동가’와 ‘교육운동가’들까지 두루 코를 꿰어 붙들어맵니다.

 코에 걸고 싶으면 코에 걸고, 귀에 걸고 싶으면 귀에 거는 국가보안법입니다. 참말로 나라를 말아먹는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평화를 좀먹는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이웃을 괴롭히며 시커먼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자연 삶터를 무너뜨리며 물과 바람을 더럽히는 사람들한테는 ‘국가보안법 죄목’을 씌우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 나라가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요. 휴전선 너머 북쪽에 있는 나라가 ‘인민이 민주주의로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휴전선 남쪽에 있는 나라 또한 ‘한겨레가 크게 하나되어 독립되거나 자유롭거나 평화롭거나 민주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2.양구 을지전망대]
 : 군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초소에 햇살이 가득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머리속에 담아 놓고 있을 지식이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사회는 학교에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몸으로 껴안고 받아들여서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어울리면 좋은가를 보여주고 이끌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군대가 있어야 한다면, 이 군대에서는 군인이 된 사람 마음을 먼저 가다듬고 추슬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남을 눌러 제 잇속을 챙길 때 쓰는 힘이 아니라, 힘이 여린 사람을 보듬고 지켜 줄 수 있도록 방패가 되어 주는 매무새를 기르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결을 갈고닦는 곳이 군대가 될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비무장지대가 있어야 한다면, 지금처럼 남북녘이 백만에 이르는 군인을 촘촘히 박아 놓고 ‘무장지대’를 만드는 거짓말놀이를 벌여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모든 쇠붙이를 거두어들이고 모든 총부리는 땅에 박아 놓으면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치지 않고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자유터, 평화터, 살림터가 될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누군가 쏜 총알에 맞지 않게, 누군가 심은 지뢰를 밟지 않게. (4340.8.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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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팔꿈치가 몹시 저립니다. 저린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올 사월에 짐을 실어 옮기면서도 저렸지만, 지난해에 자전거 타며 돌아다닐 때에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타고다녀서 그러지 않느냐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책짐을 혼자서 다 꾸리고 나르느라 그러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몸을 쓰면서 제대로 쉬어 준 적이 없이 글쓰기를 하느라 도지고 덧나서 이렇게 되었지 싶고요.

 어제 낮, 낡은 책꽂이를 손질하며 쫄대못을 박울 때입니다. 망치질할 때에도 쩌릿쩌릿하기에, 망치를 왼손으로 들고 못을 박아 봅니다. 처음에는 퍽 서툴어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왼손 망치질도 할 만합니다. 빨래는 진작 왼손빨래를 연습해 오고 있었기에, 이제는 제법 익숙합니다. 젓가락질과 숟가락질도 수월하고요. 다만, 공을 던지거나 글씨를 쓰기는 쉽지 않아요. 앞으로는 틈틈이 왼손 글쓰기를 익혀 두려고 합니다. 오른손이 그동안 참 애 많이 썼어요. (4340.8.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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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07-08-08 07:40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참말로, 병원에라도 가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의료보험카드가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돈을 많이 내야 하지만,
아는 의사한테 이야기를 해서 어떻게든 진료를 받아야지 싶던데 ^^;;;;
양의사가 아니더라도 한의사 하는 분이라도 만나 보아야겠어요.
에구구구 ^^;;
 


.. 시창작에 있어서, 아니 삶의 창조에 있어서 저항이 어떠한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그는 여기서 암시하고 있다 ..  《조태일-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전예원,1980) 130쪽

 삶을 자기 스스로 가꾸면서 알알이 빚어낼 때, 비로소 글 하나 세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제 스스로 제 삶을 알알이 빚어낼 수 있도록 가꾸거나 힘쓸 때, 비로소 제 마음에 드는 글 하나 살포시 건넬 수 있습니다. 제 삶을 스스로 가꾸지도 않고 추스르지도 않으면서 자꾸자꾸 무언가 뽑아내려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거나 볼펜을 붙잡고 종이를 마주할 때에는, 머리가 하얘지기만 할 뿐, 또는 헛말만 지루하게 늘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삶이 없이 글이 나올 수 없는 한편으로, 남들 삶을 그저 따라만 갈 때에도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내 삶을 꾸려야지, 내 길을 걸어야지, 내 일을 해야지, 내 놀이를 즐겨야지, 내 말을 하고, 내 사람을 만나고, 내 눈으로 바라보아야지, 내 귀로 들어야지, 내 마음으로 헤아려야지, 내 살갗으로 느껴야지, 내 몸으로 껴안아야지, 내 발로 디뎌야지, 내 손으로 만져야지, 내 몸뚱이를 움직여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야지, 내 머리로 알아챈 책을 책시렁에서 스스로 뽑아내어 내 주머니에 있는 돈, 그러니까 내 땀방울을 흘려서 번 돈을 써서 사들이고 내 품과 시간을 들여서 읽어내어 내 나름대로 곰삭이고 받아들여야지, 비로소 글 하나가 태어납니다. 글은 태어납니다. (4340.8.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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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책으로 보는 눈 14 : 노래방에 없는 노래

 그제, 아내와 노래방에 가서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정작 부르고픈 노래는 목록에 없더군요. 이를테면 김현식 님 노래 가운데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이나 〈어화둥둥 내 사랑〉이나 〈할렐루야〉는 없습니다. 정태춘 님 노래에서 〈아, 대한민국〉이나 〈우리들의 죽음〉이나 〈버섯구름의 노래〉 같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중가요처럼 되어 버린 노래마을 〈나이 서른에 우린〉 같은 노래도 노래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안치환 님 노래 가운데 〈수풀을 헤치며〉나 〈당당하게〉, 또는 〈저 창살에 햇살이〉는 있어도, 〈고향집에서〉나 〈시인과 소년〉이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없습니다. 이지연 님 노래에서 〈바람아 멈추어 다오〉쯤은 있어도 〈내일이 밝아올 텐데〉나 〈차가운 미소만이〉는 없어요. 언니네이발관 노래는 제법 많이 올라와 있으나 〈동경〉이나 〈쥐는 너야〉나 〈로랜드 고릴라〉라든지 〈미움의 계절〉 같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래꾼 이름에 따라 찾아보기를 하다가 그만두게 됩니다. 아주 많이 사랑받던 노래꾼이 아니고서는 그이 ‘인기노래’ 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정숙 님은 〈그 사람이 울고 있어요〉 하나를, 장덕 님은 〈님 떠난 후〉와 두어 가지를, 우순실 님은 〈잃어버린 우산〉에 두 가지가 더 올라와 있을 뿐이네요.

 그러고 보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을 수 있는 대중노래는 사람들 귀에 익숙한 노래나 널리 불리던 노래로구나 싶습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가 이 나라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시 작품이 되고, 교과서에 작품을 싣는 시인쯤 되어야 비로소 팔릴 만한 시인 대접을 받습니다. 고등학교 문학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아이들이, 신경림 시인 이름쯤은 알아도 신경림 시인 시집 하나 사서 읽을 틈이 있을까요. 조태일이나 정희성, 고정희나 최승자, 김해화나 백무산, 조혜영이나 권태응을 알 수 있을는지. 신동엽 하면 〈껍데기는 가라〉는 알 테지만 〈산문시 1〉을 알 수 있을까요. 김수영이나 김남주는 얼마나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노래방에는 대중노래와 트로트, 어린이노래와 서양노래에다가 일본노래까지 있으나 민중노래나 노동노래란 없습니다. 민중노래나 노동노래가 라디오며 텔레비전에 두루 소개될 수 없다고 해도, 노래방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중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민중노래도 노래방에서 즐길 수 있어야지 싶은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새책방에서 ‘베스트셀러 목록’과 ‘스테디셀러 목록’을 내걸며,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책을 좀더 보기좋고 널찍한 자리에 수백 수천 권씩 쌓아 놓고 판다고 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수많은 출판사마다 다 다른 뜻과 마음으로 펴낸 갖가지 책들이 ‘적어도 한 권씩’ 꽂힐 자리를 얻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일중독 벗어나기》,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 《‘위안부’ 리포트》, 《진보의 미래》,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심이의 엄마 생각》, 《오모니》 같은 책도 책손하고 가까워질 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4340.8.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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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 : 식민지 이야기책은 일본사람이 쓴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한울,1986)이라는 조그마한 책 하나를 샀습니다. 77쪽짜리 책입니다. 글쓴이는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이분 책은 1985년에 《한국사입문》(백산서당)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朝鮮史》(講談社)라는 이름으로 1977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글쓴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은 《朝鮮史》를 써낼 때까지 ‘한국땅을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북녘에서 펴낸 거의 모든 역사책을 꼼꼼히 읽었고,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한국사를 연구한 책이나 논문’을 빠짐없이 살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朝鮮史》를 보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는가가 뒤에 붙었고(그 작은 책에), ‘그때(1977년까지) 남녘이나 북녘에서 나왔던 거의 모든 역사책’이 일본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는 한국을 와 보지 않고도 한국사람들 안방 구석구석을 훤히 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을 살 때 함께 보인 책은 《식민지》. 이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쓴 글을 단출하게 추려내어 엮은 작은 책. 문득 생각이 나서, 인터넷새책방을 들어가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식민지’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그럭저럭 보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은 적네요. 게다가, 중고등학생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또 대학생이나 여느 사람들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전문 학자가 읽을 만한 책 또한 드물구나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읽을거리나 볼거리나 알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텔레비전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풀그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풀그림은 무엇을 바탕으로 엮어내지요?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는 무엇을 바탕으로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칠까요.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수업 시간 가운데 얼마쯤을 ‘일제강점기 역사는 이렇다’ 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인터넷새책방에서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했을 때, 그나마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 몇 가지는 거의 ‘일본사람이 지은 책’이었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은 얼마 없습니다. 남녘에서 백제 역사를 다루는 학자 숫자가 열이 안 된다고 하고, 고구려 역사를 다루는 학자 또한 열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백제나 고구려 역사를 다루면, 더욱이 가야 역사를 다루면, 이런 전문지식이 쓰일 만한 곳이 없다고 하겠지만,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교과서에서도 ‘전쟁 이야기’만 풀어놓지, 그때 사람들 삶과 문화와 발자취는 톺아보지 않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는, 거칠고 팍팍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지식으로서는 쓸모가 없는가요. 일제강점기 역사는 어떻습니까. 일제강점기 역사 가운데 성노예와 강제징용, 우키시마호, 관동큰지진, 우토로, 만주와 사할린 이야기는 어떤가요. (4340.7.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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