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다발 多發


 사고 다발 지역 → 자주 다치는 곳

 사고가 다발하는 곳이니 → 잇달아 다치는 곳이니


  ‘다발(多發)’은 “1. 많이 발생함 2. 발동기의 수가 많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많다·잦다·자주·자꾸·흔하다’나 ‘또·또다시·다시’로 손봅니다. ‘도사리다·뻔질나다·끊임없다’나 ‘잇다·잇달아·이어가다’로 손보고, ‘여러·여럿’으로 손보면 됩니다. ㅍㄹㄴ



날씨가 험해지면 추락사고가 다발하는 위험한 길이거든요

→ 날씨가 궂으면 자주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길이거든요

→ 날씨가 궂으면 자주 미끄러지는 아슬아슬한 길이거든요

《낙원까지 조금만 더 3》(이마 이치코/이은주 옮김, 시공사, 2005) 124쪽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테러에 문학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요

→ 한꺼번에 일어나는 막짓에 글꽃은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요

→ 곳곳에서 일어나는 주먹질에 글은 어떤 말을 해야 하나요

→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끔찍짓에 글은 무슨 말을 하나요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 96쪽


진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길이 다를지 몰라도, 한꺼번에 일어난다

→ 달리 나아갈지 몰라도, 나란히 일어난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김진아, 바다출판사, 2019) 5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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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문학동네 시인선 183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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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7.

노래책시렁 502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김상미

 문학동네

 2022.12.2.



  모든 순이는 숲을 품고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돌이는 들을 품고서 태어났고요. 숲에서 나무하고 나란히 피어나는 순이라면, 들에서 풀하고 어울리며 깨어나는 돌이라고 느낍니다. 먼먼 옛날부터 까마득히 오래도록 숲숲이에 들돌이였는데, 우두머리가 서고 나라를 일으키는 동안 싸울아비가 불거지더니, 어느새 숲을 잊는 순이에 들을 잃는 돌이로 뒹굽니다.


  숲에서 노래하며 놀이를 짓는 순이입니다. 들에서 일하며 들살림을 짓는 돌이입니다. 둘은 노래하고 일로 만나고, 놀이하고 살림으로 어울립니다. 노래 곁에 일이 있고, 놀이 곁에 살림이 있습니다. 왼발과 오른발로 나란히 걷듯, 왼손과 오른손으로 함께 짓고, 왼눈과 오른눈으로 함께 보듯, 왼귀와 오른귀로 같이 듣습니다.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는 얼핏설핏 굴레(남성가부장권력)에 시달린 티가 곳곳에 남지만, 요모조모 다시금 싹터서 숲을 이루려는 마음을 하나둘 일으키려는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다만, 우리는 “숲이 되어가는 순이”나 “들이 되어가는 돌이”이지 않아요. “숲을 알아보는 순이”에 “들을 찾아보는 돌이”로 돌아가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이 되기에 ‘사랑’을 깨닫습니다.


  숲빛으로 흐르는 노래이기에 ‘순이말’입니다. 들빛으로 넘실대는 노래이기에 ‘돌이말’입니다. 이 별은 숲만 있을 수 없고, 들만 너를 수 없습니다. 들숲메바다가 나란할 노릇이요, 숲들메바다가 하나일 노릇이에요. 숲 곁에 들이 있기에 푸른별입니다. 들 곁에 숲이 있어서 파란별입니다. 우리별은 푸르면서 파랗고, 파라면서 푸릅니다. 오늘 새롭게 여밀 글결이라면, 숲말과 들말을 다시 알아차리면서 차근차근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가꿀 길이기를 바라요.


ㅍㄹㄴ


모든 꽃은 / 피어날 땐 신을 닮고 / 지려 할 땐 인간을 닮는다 // 그 때문에 / 꽃이 필 땐 황홀하고 /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미스터리/15쪽)


밖에는 비가 내리고 /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 유일한 명분 (밖에는 비가 내리고/16쪽)


깊이깊이 후회해 / 너를 사랑했던 것 /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반성/40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별이 빛나는 밤/57쪽)


오로지 말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다면 누구든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다. (너에게만 말할게/70쪽)


그동안은 어디든 꼭꼭 숨어 있자. / 큰 놈들은 큰 놈들끼리 어울려 언제나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갈 곳 없는 작은 놈들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고…… (페루/84쪽)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시인 앨범 7/94쪽)


+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과거의 풀들을 베어내 무덤을 만드는 사람

→ 지나간 풀을 베어내 무덤을 쓰는 사람

→ 어제 자란 풀을 베어내 무덤을 파는 사람 

12쪽


하루종일 공동묘지 활주로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루내내 한무덤 나래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룻내 두레무덤 날개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12쪽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끝도 없이 만지는 손

→ 끝도 없이 보듬는 손

→ 끝도 없이 비다듬고

→ 끝도 없이 쓰다듬고

16쪽


밤낮으로 태양 대신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

→ 밤낮으로 햇빛 아닌 낮은 불빛에서

20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31쪽


묘하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가장 대신 멋진 댄디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얄궂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기둥 아닌 멋쟁이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재밌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들보 아닌 겉멋이 들어 나를 모른 체했다

38쪽


나는 어제의 사람 어제의 여자 어제의 사랑 모든 내일의 그림들을 끌어모아 어제의 벽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젯사람 어젯가시내 어젯사랑 모든 이튿날 그림을 끌어모아 어젯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란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다음 그림을 끌어모아 어제란 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인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앞그림을 끌어모아 어제인 담에 붙이는 사람

46쪽


계속되는 사분의삼 박자의 그 리듬 속에서

→ 이어가는 셋얹은넷 쿵덕과 가락으로

→ 흘러가는 넷놓은셋 물결과 가락으로

47쪽


급기야는 통째로 그녀를 삼키려 들 때도

→ 더구나 통째로 그사람을 삼키려 들 때도

→ 게다가 통째로 그이를 삼키려 들 때도

52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 종로2길 알라딘 헌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주웠다

→ 종로2길 알라딘 손길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싸다

57쪽


그때의 그 촉감, 그 흡착력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느낌 그 붙힘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살결 그 찰싹힘을 잊을 수가 없다

72쪽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달아나고 달아나다 주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내빼고 내빼다 일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발빼고 발빼다 국자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84쪽


나의 적이 가진 책은 곧 나의 적이다

→ 미운놈이 쥔 책은 나한테도 밉다

→ 싫은놈이 보는 책은 나도 싫다

→ 저놈이 읽는 책은 꼴보기싫다

→ 저 녀석이 쥔 책은 보기싫다

10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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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 삼양출판사 SC컬렉션
아마가쿠레 기도 글.그림, 노미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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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그릇이 작으니 조금씩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

 아마가쿠레 기도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8.7.30.



  저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자란 터라, ‘우리집 밭’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땅뙈기가 없더라도 모든 곳이 밭이더군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는 자리라면 어느 빈터이건 꽃밭으로 바뀌고 풀밭으로 거듭나요. 여러 이웃이 골목과 마을에 아기자기하게 일구는 골목밭을 지켜보면서 마음밭이 있는 줄 느꼈습니다.


  이윽고 글밭이며 책밭이 있는 줄 알아차립니다. 우리가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터전은 살림밭을 지으며 스스로 즐거운 나날이로구나 싶더군요. 일하고 놀고 쉬고 어울리는 모든 곳은 그저 밭일 테니, 하루하루 이야기밭과 노래밭을 헤아려 본다면, 호미를 쥐지 않고도 언제 어디에서나 밭일을 하는 이 하루를 꽃피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달콤 달콤 & 짜릿 짜릿》은 아이어른이 함께 ‘살림꾼’으로 한 발짝씩 떼면서 시나브로 ‘살림꽃’으로 깨어나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이를테면 아주 놀랍도록 훌륭한 ‘성평등 교과서’ 같은 그림꽃입니다. ‘집안일 못한다는 핑계’를 대는 아저씨한테 읽힐 훌륭한 그림꽃이요, 무엇보다도 ‘집’이란 어떤 곳인지 부드럽게 다루는 그림꽃입니다. 짝을 짓는 놀이인 ‘짝짓기(연애)’가 아니라, 살림을 짓는 하루인 ‘사랑’이 무엇인지 참하게 들려주는 그림꽃이고요.


  어릴적에 으레 “어머니를 거들”었지만, 어머니는 으레 말렸습니다.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지,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느라 품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아직 이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씁니다. 어린이는 ‘공부’를 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어버이하고 보금자리를 이루’려고 태어납니다. 어린이는 푸름이로 나아가는 길목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요, 푸름이는 그저 푸름이입니다. 저마다 제 나이에 익히고 배우면서 맞아들일 살림살이를 알아갈 나이입니다.


  혼자서 밥할 줄 모르는 12살이라면 참으로 불쌍합니다. 혼자서 빨래할 줄 모르는 15살이라면 참으로 딱합니다. 혼자서 비질과 걸레질을 할 줄 모르는 18살이라면 그야말로 안타깝습니다. 아기를 어떻게 안거나 얼러야 하는 줄 모르는 20살이라면, 그야말로 여태껏 뭘 하면서 왜 살았을까요?


  아기를 낳아 보아야 아기를 달래는 눈짓과 손짓과 몸짓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동생을 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알아요. ‘우리집 동생’뿐 아니라 ‘이웃집 동생’을 나란히 눈여겨보면서 따스히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갈 노릇이고, ‘아기돌봄’은 어버이뿐 아니라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가 잘할 만한 작은 살림길입니다. 그저 어린이는 그릇이 작으니 조금 먹고 조금 거들 뿐입니다. 푸름이는 그릇이 조금 크니 조금 더 먹고 조금 더 거들 뿐입니다. 어른으로 설 적에는 그릇이 꽤 크게 마련이니 어린이나 푸름이보다 조금 많이 먹으면서 집살림을 도맡을 뿐입니다.


  밥 한 그릇을 달콤하게 나눕니다. 밥 두 그릇을 느긋하게 나눕니다. 밥 석 그릇을 신나게 나눕니다. 좋은 밥이나 맛난 밥이 아닌, 즐거우면서 수다꽃이 피어나는 밥그릇을 나눌 하루입니다.


ㅍㄹㄴ


“성가시네. 좋아하는 애랑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싶은 건데.” (13쪽)


“여자애랑은 안 논다느니, 창피하다느니, 그리고 어린이라서 안 된다느니, 자꾸 그래서 나 폭발할 거 같다구!” (18쪽)


“어른이 되는 건 귀찮지만, 머리를 쓰면 돼!” (24쪽)


“그리고 여러분, 여기에 남자 여자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없어요. 모처럼 같은 반이 됐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런 식으로 나누면 아깝잖아요.” (33쪽)


“아빠.” “응?” “매일 놀지 않아도 친구할 수 있어?” (91쪽)


‘이런 기회를 꼭 다시 만들어 가자. 아이들끼리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102쪽)


“츠무기는 점점 새로운 것을 향해 가고,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게 아빠로서 그릇이 작은 걸까 싶어.” (151쪽)


#甘々と稲妻

#雨隠ギド 


+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아마가쿠레 기도/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8)


슬슬 가정의 맛이 그리운 거구나

→ 슬슬 살림맛이 그립구나

→ 슬슬 포근맛이 그립구나

→ 슬슬 따뜻맛이 그립구나

48쪽


그대로 식히면서 간이 배도록 하면 좋아요

→ 그대로 식히면서 간이 배면 돼요

130쪽


요즘 친구네 집에서 노는 주간이거든

→ 요즘 동무네에서 노는 즈음이거든

→ 요즘 동무 집에서 노는 때이거든

→ 요즘 동무네에서 노는 나날이거든

→ 요즘 동무 집에서 노는 철이거든

15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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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지음, 김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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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외롭지 않아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5.30.



  하찮은 책이건 대단한 책이건, 한 벌을 훑고서 ‘읽었다’고 여기는 마음이기에, 오늘날에는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책을 ‘알아보는’ 눈길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온누리에 안 바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마련이라서, 어느 책이건 여러 벌 차근차근 되읽을 틈을 스스로 내지 않을 적에는, 어느 책이건 겉이며 속을 제대로 모르는 채 지나가기만 하겠지요.


  ‘읽기’란 스스로 이곳에 고이 있으면서, 나하고 너(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면서 이으려고 하는 몸짓이라고 봅니다. ‘읽다’란 ‘일다 + 익다’이기에, 마음에 일어나고 마음으로 익히는 ‘읽다’를 이루려면, 더 많은 책을 더 많이 눈으로만 훑을 적에는 ‘훑다’에서 그칠 테지요. 틈이 없이 밭아서 훑는 하루에서 그친다면, 스스로 이곳에 있으면서 물결을 일으키는 읽는 살림에는 못 닿는구나 싶어요.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이나 글바치만 되읽을 적에는 으레 몇 가지 눈길에 고이거나 닫힌다고 느낍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책이나 글바치도 언제나 나란히 되읽으면서 차분히 새길 적에는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는 눈길로 깨어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읽눈(문해력)을 잃고 잊는 까닭이라면, 먼저 어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읽눈을 되찾을 일이라고 봅니다. 모든 책을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볼 적에, 모든 일과 이웃과 들숲메바다를 찬찬히 헤아리고 알아보고 품을 적에, 나부터 읽눈을 틔우고서 아이어른 모두 읽빛을 밝힐 테고요.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은 이제 더 살아갈 값어치가 없다고 느낀 나날에서 막바지 발버둥을 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둘레(사회)에 맞추어 그저 굽신굽신 고분고분 지내던 나날을 멈추고서, “나는 뭘 하려고 이곳에 태어났는가?” 하고 돌아보는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책이름은 ‘거꾸로’ 말하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싸울 값어치가 없는데 여태 싸워 온 줄 느끼고서, 이제부터는 그만 싸우고서 나답게 하루하루 살겠노라 외치는 셈입니다.


  싸우려고 들기에 밉놈을 세워야 합니다. 밉놈을 세워야 하니 마음에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아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무엇을 하는 길인지 어느새 잊어버립니다. 마음을 잊어버리니 살림도 숲도 마을도 죄 안 보이면서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거나 품을 수 없습니다.


  혼자 걸어가면 외롭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사회·정부)입니다. 함께 걸어가도록 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함께걷기’를 하자면 ‘혼자걷기’를 하는 사람이 다 다르게 만나야 할 뿐입니다. 그저 발걸음을 똑같이 맞춘대서 함께걷기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걸을 뿐 아니라, 이리로 걷거나 저리로 걸으면서 홀가분하게 춤출 수 있어야 함께걷기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즐겁기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외로워도 혼자 걸어가지 않아요. 나는 나로서 숨을 쉬고, 나는 나대로 둘레를 보고, 나는 나답게 눈을 뜹니다. 나는 바로 ‘나’라고 하는 ‘하나’부터 알아보아야, ‘너’라고 하는 ‘다른 하나’을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혼자·홀·홑)인 줄 받아들일 적에, 하늘도 물도 바다도 숲도 그저 오롯이 하나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바쁘다고 외치면서 책도 글도 못 읽습니다. 책을 사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책 한 자락을 느긋이 다섯 벌이고 열 벌이고 되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책읽기입니다. 보임꽃(영화)도 한 벌 슥 보고 끝난다면 “아예 안 봤다”고 해야 맞습니다. 책이건 보임꽃이건 다섯 벌이며 열 벌이며 꾸준히 다시 짚으면서 차근차근 짚어 나가야 비로소 ‘읽다’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할 적에 한 마디만 들려주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나요? 때로는 한 마디로 넉넉하겠으나, ‘이야기’란 “끝없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물이 흐르면서 싱그러이 잇듯, 말도 끝없이 흐르면서 맑게 이을 적에 이야기인 터라, 책읽기이건 삶읽기이건 구태여 싸울 까닭이 없이 살림하는 손길로 지을 적에 제대로 깨어납니다.


ㅍㄹㄴ


“전 남친 때려눕히고 돈 돌려받아서 돌아온 날 바로 이사하고 싶어졌거든.” (9쪽)


‘하지만 이렇게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그게 재밌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배우들의 손때 묻은 연기, 더는 내 것이 아닌 대사.” (60쪽)


“부모님이 널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동그랗고 예쁜 그릇이 된 거지. 자기 스스로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 봐. 힘은 경험으로 보충할 수 있어. 하지만 그릇은 부모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고.” (117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내 인생에 가치가 있었는지 알려면 매사의 표면만을 더듬어서는 안 돼.” (175쪽)


“내 의지를 관철하는 일은 곧 고독을 마주보는 일이구나.” (194쪽)


#この世は戰う價値がある

#こだまはつみ


+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코다마 하츠미/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그 누구도 돕지 않으며 헤프게 처음 지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누구도 안 살피고서 부질없이 지냈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아무도 안 보면서 헛되게 놀아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인간의 방정식을 모으는 중이지

→ 사람이란 실타래를 모으지

→ 사람이란 수수께끼를 모으지

64쪽


성인군자라는 요란한 말도 왠지 진실감이 느껴져

→ 꽃어른이라고 떠드는데 왠지 참말 같아

→ 온꽃이라고 하는데 왠지 거짓없다고 느껴

141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이 다시 깨우쳐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로 다시 깨달았어

175쪽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 꾸준히 되짚어 나간다면 아마 이런 일이 여럿 생겨

→ 그대로 되살펴 나간다면 또 이런 일이 여럿 생길 테야

175쪽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사람은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누구나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17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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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6. 시골에서 시골로



  시골에서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건너가는 길이 멀다. 그저 멀다. 오늘날 눈길로 보면 대수롭잖을 테지만, 두다리로 걸어다니던 지난날에는 그냥 먼길이다. 마을끼리 만나거나 어울리는 길은 마냥 멀었고, 이 삶은 고스란하다. 이러다 보니 ‘울마을’과 ‘놈마을’은 남남이자 위아래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마을이 크면 조금이라도 마을이 작은 데를 ‘시골놈(촌놈)’으로 친다. 서울에서 보면 인천과 부산은 시골것(촌것)이다. 인천과 부산에서 보면 부천과 창원은 시골것이다. 또한 부천과 창원에서 보면 …… 끝이 없다.


  모든 사람은 그저 사람이다. 높낮이가 없다. 모든 사랑은 그저 사랑이다. 모든 사랑은 그대로 사랑이다. 모든 책은 그저 책이요, 모든 글은 그대로 글이다. 모든 별은 그저 별이고 모든 들숲메는 그대로 들숲메이다.


  무엇을 보는 어떤 눈인가. 어디에 서는 어떤 몸인가. 누구하고 이웃하는 어떤 마음인가.


  쓰고 읽는다. 읽고 쓴다. 함께놀기 함께살림 함께누리 함께사랑 함께마을 함께마음 함께하늘 …… 문득 하나하나 그려 본다. 함께걷기를 하기에 발맞추면서 노래가 흐른다. 이쪽 시골에서 저쪽 시골로 가서 이웃 시골아이를 만나고서, 저쪽 시골에서 이쪽 시골로 돌아오려고 읍내를 거쳐서 먼먼 길을 한참 돌고돌았다. 사람마을과 사람마을 사이는 멀다지만, 구름까지 솟구치며 노래하는 새는 두 마을과 두 고을과 두 나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오가면서 싱그럽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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