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나츠 뎀프셔 (전집6:315-316)
Ignaz Anton Aloys Dembscher(1776-1838).
오스트리아 빈의 부호, 예술 후원자,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
쿤데라는 베토벤의 테마 ‘Es muss sein’와 관련된 뎀프셔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쿤데라의 이야기와 다른, 음악사에 전해 오는 좀 더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1826년 3월 21일, 베토벤의 작품 현악4중주(작품번호 130)가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그나츠 뎀프셔는 이 초연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그는 떠벌리고 다녔다. 최상급 연주자들을 모으고,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언제든지 그 작품의 연주회를 자기가 단독으로 개최할 수 있다고. 또 베토벤에게 악보를 빌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노라고.(실제로 베토벤은 이전에도 자신의 악보를 뎀프셔에게 빌려주곤 했다.)
이런 말이 베토벤의 귀에 들어갔고, 베토벤은 뎀프셔의 말에 화가 났다.
얼마 후 뎀프셔는 베토벤에게 문제의 악보를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렇게 쉽게 뎀브셔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베토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또 50굴덴의 대여료를 초연 지휘자 슈판치히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슈판치히의 단원이자 베토벤의 친한 친구인 칼 홀츠가 뎀프셔에게 베토벤의 말을 전하자, 뎀프셔는 한숨을 내쉬며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Wenn es sein muss)”이라고 대답했다.
뎀프셔의 말을 전해 들은 베토벤은, 뎀프셔의 말을 모티브 삼아, “꼭 그래야 해(Es muss sein)”라는 4중창 소품을 작곡해 응수했다.
(베토벤은 편지 대신에 또는 편지에 소품을 써서, 상대방의 말에 재치 있고 장난스럽게 답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때가 1826년 8월 1일이었고, 그 후 같은 해 10월 베토벤은 “꼭 그래야 해(Es muss sein)”라는 이 테마를 현악4중주(작품번호 135) 4악장에 끼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