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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비[], 지거 쾨더, 성서의 그림들, 유명철·이호훈 옮김, 사자와어린양, 2024(10).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마리아와 요셉이 묵을 방이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유토피아1로서 존재하십니다.(243)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마리아와 요셉이 묵을 방이 없었던 것처럼,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탄생부터 죽음까지 유토피아1로서 존재하십니다.

 

독일어 원문: Wie vor der Geburt Jesu kein Platz in der Herberge war für Maria und Josef, so ist Gott in Menschengestalt vom Anfang bis zum Ende seines irdischen Wirkens »utopisch« (so das griechische Wort in Lk 2,7, das übersetzt wird mit »kein Platz«) in dieser Welt.

 

1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οὐ’(아니다)τπος’(장소)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자 그대로 풀어 쓰면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가리킨다. 누가복음 27절에서 여관으로 번역된 κατλυματι 유토피아의 본래 뜻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

 

1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οὐ’(아니다)τπος’(장소)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자 그대로 풀어 쓰면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가리킨다. 누가복음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에서 있을 곳이 없음 유토피아의 본래 뜻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

 

번역과 각주를 바로잡았다.

 

 

아래, 누가복음 2:7을 볼 것:

 

[...]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 διότι οκ ν ατος τόπος ν τκαταλύματι.


[...] weil in der Herberge kein Platz für si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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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비[], 지거 쾨더, 성서의 그림들, 유명철·이호훈 옮김, 사자와어린양, 2024(10).

 

따듯한 환대와 진심 어린 공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느끼게 합니다.(247)

 

따듯한 환대와 진심 어린 공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독일어 원문: Aufnehmende Zuneigung und herzliche Anteilnahme lassen spürbar werden, was allein aus auswegloser Situation befreien kann und neue Lebensmöglichkeit eröffnet: [...].

 

빠진 단어를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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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비[], 지거 쾨더, 성서의 그림들, 유명철·이호훈 옮김, 사자와어린양, 2024(10).

 

예수님은 남자들의 고발을 그들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려 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이해한 그들은 장로를 시작으로 한 명씩 그 자리를 떠납니다.(287)

 

예수님은 남자들의 고발을 그들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려 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이해한 그들은 나이 많은 사람을 시작으로 한 명씩 그 자리를 떠납니다.

 

독일어 원문: Damit gibt Jesus die Anklage der Männer als Anfrage an ihr eigenes Leben zurück. Das genügt. Sie haben ihn verstanden. Einer nach dem anderen geht fort, zuerst die Ältesten.

 

번역을 바로잡았다.

 

아래, 요한복음 8장을 볼 것:

 

7 그들이 줄기차게 물어 오자, 예수님이 몸을 펴시고 말씀하셨다. “당신들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맨 먼저 그에게 돌을 던지시오.”

8 그러고는 다시 몸을 아래로 구부려 땅에다 쓰셨다.

9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떠나 버렸다. 예수님이 혼자 남게 되셨다. 그리고 그 여자가 한가운데 그대로 있었다.

 

7 Als sie ihn nun beharrlich so fragten, richtete er sich auf und sprach zu ihnen: Wer unter euch ohne Sünde ist, der werfe den ersten Stein auf sie.

8 Und er bückte sich wieder und schrieb auf die Erde.

9 Als sie das hörten, gingen sie hinaus, einer nach dem andern, die Ältesten zuerst; und Jesus blieb allein mit der Frau, die in der Mitte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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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비[], 지거 쾨더, 성서의 그림들, 유명철·이호훈 옮김, 사자와어린양, 2024(10).

 

예수께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와 동일하게 되신 것이 위로가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신 것이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우리를 고통과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오도록 부르십니다.(102)

 

예수께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와 동일하게 되신 것이 위로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신 것도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우리를 고통과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오도록 부르십니다.

 

독일어 원문: Das Tröstliche ist, nicht nur im Leiden und Sterben wurde Jesus uns gleich, sondern er hat uns auch den Weg gewiesen, aus dem Gott ihn und zugleich uns aus Leid und Tod herausruft ins Leben.

 

번역을 바로잡았다.

 

nicht nur A, sondern B = A뿐만 아니라 B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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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비[], 지거 쾨더, 성서의 그림들, 유명철·이호훈 옮김, 사자와어린양, 2024(10).

 

모든 불행은 최후 진술에 부담이 되고, 모든 양심의 힘과 확신은 그의 결백을 위한 마지막 엄숙한 선언이 됩니다.”(프리돌린 스티어)(89)

 

모든 불행은 최후 진술에 힘이 되고, 모든 양심의 힘과 확신은 그의 결백을 위한 마지막 엄숙한 선언이 됩니다.”(프리돌린 슈티어)

 

독일어 원문: »Alles Elend wird zur Wucht einer letzten Anklage, alle Kraft und Klarheit des Gewissens zur letzten, feierlich beschworenen Bekundung seiner Unschuld aufgeboten« (Fridolin Stier).

 

인명과 번역을 바로잡았다.

 

Wucht =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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