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디펠은 네덜란드로 탈출하여 1711라이덴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위트레흐트 인근 마르센에서 의사이자 작가로 살았다.(240)

 

디펠은 네덜란드로 탈출하여 1711레이던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위트레흐트 인근 마르센에서 의사이자 작가로 살았다.

 

독일어 원문: Dippel entwich in die Niederlande, wo er 1711 den medizinischen Doktorgrad in Leiden erwarb und in Maarssen bei Utrecht als Arzt und Schriftsteller lebte.

 

지명을 바로잡았다.

 

Leiden = [ˈlɛidə(n)] = 레이던

 

 

독일식 지명은 해당 언어권 지명으로 보정할 것:

 

Reval = Tallinn =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Åbo = Turku = (핀란드 도시) 투르쿠

 

 

아래, 지명도 레이던으로 수정할 것:

 

해임된 후 라이덴, 막데부르크, 뤼벡에서 공직을 맡은 베르덴하겐은(71)

 

독일어 원문: der nach seiner Entlassung politische Amter in Leiden, Magdeburg und Lübeck bekleidete

 

1658년 여름에 그는 라이덴으로 가서(82)

 

독일어 원문: Er ging im Sommer 1658 nach Leide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1697년부터 디펠은 루터교 정통주의에 반대하는 일련의 논쟁적인 글을 독일어로 연이어 발표했는데, ‘크리스티아누스 데르노크리투스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풍자적인 제목을 달았다.(238)

 

1697년부터 디펠은 루터교 정통주의에 반대하는 일련의 논쟁적인 글을 독일어로 연이어 발표했는데, ‘크리스티아누스 데르노크리투스라는 가명−이 가명을 쓴 사람이 디펠 자신임을 곧 스스로 밝혀던 사용하고 풍자적인 제목을 달았다.

 

독일어 원문: Seit 1697 hat Dippel in schneller Folge eine Reihe polemischer Schriften gegen die lutherische Orthodoxie ausgehen lassen, in deutscher Sprache, häufig mit satirischen Titeln, meist unter dem von ihm selbst bald gelüfteten Pseudonym „Christianus Democritus“.

 

빠진 번역을 보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그와 함께 기센으로 온 아놀드와 그의 친구 요한 안드레아스 쉴링(Johann Andreas Schilling), 요한 크리스티안 랑에(Johann Christian Lange)와의 만남은 디펠이 내적으로 경건주의에 입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238)

 

아놀[]와의 만남 그리고 아놀[트]와 함께 기센으로 온 아놀[]의 친구 요한 안드레아스 쉴링(Johann Andreas Schilling)요한 크리스티안 랑에(Johann Christian Lange)와의 만남은 디펠이 내적으로 경건주의에 입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독일어 원문: Die Begegnung mit Gottfried Arnold und dessen mit ihm nach Gießen gekommenen Freunden Johann Andreas Schilling und Johann Christian Lange brachte die innerlich schon vorbereitete Entscheidung für den Pietismus, [...]

 

번역을 바로잡았다.

 

https://de.wikipedia.org/wiki/Gottfried_Arnold_(Theolog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마침내 디펠은 자신의 삶을 오로지 하나님께만 바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현세적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영적 결단을 내렸다.(238)

 

마침내 디펠은 자신의 삶을 오로지 구세주께만 바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현세적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구세주께 헌신하기 위해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영적 결단을 내렸다.

 

독일어 원문: [...], so daß er endlich „dem Freund seiner Seele das Jawort gab, ihm allein zu sein und keinem Menschen um zeitlichen Nutzens willen mehr zu Gefallen zu leben“.

 

번역을 바로잡았다

 

dem Freund[=Heiland Jesus] seiner Seele das Jawort geben

 

= 자기 영혼의 친구[=구세주 예수]에게 결혼 동의를 하다

 

아래, 자료를 볼 것:

 

Wilhelm Bender, Johann Konrad Dippel: Der Freigeist aus dem Pietismus, Bonn 1882, 31, 45.

 

https://www.digitale-sammlungen.de/de/view/bsb11235597?page=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스트라스부르에서 정통주의 신학자인 요한 요아힘 젠트그라프(Johann Joachim Zentgraf)와 함께 첫 번째 회심 후 다시 옛 신앙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재회심에 관하여”(De Conversione secunda relapsorum) 토론한 디펠은 슈페너의 복음적인 믿음의 칭의(Evangelischer Glaubens-Gerechtigkeit, 1684)를 읽고 자신의 정통주의적 견해를 고수하지 못하게 되었다.(238)

 

스트라스부르에서 정통주의 신학자인 요한 요아힘 첸트그라프(Johann Joachim Zentgraf)의 주재(主宰) 첫 번째 회심 후 다시 옛 신앙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재회심에 관하여”(De Conversione secunda relapsorum) 토론한 디펠은 슈페너의 복음적인 믿음의 칭의(Die evangelische Glaubens-Gerechtigkeit, 1684)를 읽고 자신의 정통주의적 견해를 고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독일어 원문: In Straßburg, wo er unter dem orthodoxen Theologen J.J. Zentgraf „De Conversione secunda relapsorum“ disputierte, wurde er durch die Lektüre von Speners „Evangelischer Glaubens-Gerechtigkeit“ seiner orthodoxen Position unsicher.

 

인명과 번역, 표제어를 바로잡았다.

 

아래, 자료를 볼 것:

 

Karl-Ludwig Voss, Christianus Democritus. Christianus Democritus: Das Menschenbild bei Johann Conrad Dippel, Leiden 1972, 12.

 

https://digital.slub-dresden.de/werkansicht/dlf/61400/5?tx_dlf_navigation%5Bcontroller%5D=Navigation&cHash=2b7eef6229ba85ff2b6ec7ffb9f4c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