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마지막으로 랑에는 계몽주의에 대항하는 할레 경건주의의 투쟁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라이프치히에서 경건주의와의 동맹을 깨뜨려버린 토마지우스에게 대항했고, 나중에는 그와 같은 시기에 할레에 임명되어 국가를 위협하는 운명론과 결정론을 고발하면서 독일 형이상학(Deutsche Metaphysik, 1720)을 쓴 볼프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189)

 

마지막으로 랑에는 계몽주의에 대항하는 할레 경건주의의 투쟁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라이프치히에서 경건주의와의 동맹을 깨뜨려버린 토마지우스에게 대항했고, 나중에는 그와 같은 시기에 할레로 초빙된 볼프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랑에는 볼프가 쓴 독일 형이상학(Deutsche Metaphysik, 1720)을 국가를 위협하는 운명론과 결정론이라고 고발했다.

 

독일어 원문: Schließlich führte Lange auch den Kampf des hallischen Pietismus gegen die Aufklärung, zunächst gegen Christian Thomasius, dessen in Leipzig geschlossenes Bündnis mit dem Pietismus bald zerbrach, später vor allem gegen den gleichzeitig mit ihm nach Halle berufenen Christian Wolff, dessen Deutsche Metaphysik (1720) er eines staatsgefährdenden Fatalismus und Determinismus bezichtigte.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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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할레 교수진을 대표하여 랑에는 뢰셔의 완전한 디모데우스 베리누스(Vollständigen Timotheus verinus, 1718)에 맞서 소위 완전한 디모데우스 베리누스의 강제적인 완전 항복(Abgenöthigten völligen Abfertigung des sog. vollständigen Timotheus verinus, 1719)으로 대응했다.(188)

 

할레 교수진을 대표하여 랑에는 뢰셔의 완전한 디모데우스 베리누스(Vollständiger Timotheus verinus, 1718)에 맞서 소위 완전한 디모데우스 베리누스의 강제적인 완전 항복(Abgenöthigte völlige Abfertigung des sog. vollständigen Timotheus verinus, 1719)으로 대응했다.

 

독일어 원문: Gegen Loeschers „Vollständigen Timotheus verinus“ (1718) antwortete Lange im Namen der hallischen Fakultät mit seiner „Abgenöthigten völligen Abfertigung des sog. vollständigen Timotheus verinus“ (1719).

 

 

표제어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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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나중에는 믿음의 일꾼들을 동방으로 파송하는 준비도 담당하게 되었다.(188)

 

나중에는 선교사들을 동방으로 파송하는 준비도 담당하게 되었다.

 

독일어 원문: das wohl auch die Aussendung von Glaubensboten in den Orient vorbereiten sollte.

 

번역을 바로잡았다.

 

Glaubensbote = 사도, 선교사

 

https://www.dwds.de/wb/Glaubensb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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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프랑케가 1699 신학부로 옮겨간 뒤 철학부의 동양어 교수로 초빙된 요한 하인리히 미하엘리스(Johann Heinrich Michaelis, 1668-1738)1709년에 신학부에 임용되어 할레에서 구약성서를 연구했다.[히브리어 성서(Biblia Hebraica, 1720)](187)

 

프랑케가 신학부로 옮겨간 뒤 1699 철학부의 근동어 교수로 초빙된 요한 하인리히 미하엘리스(Johann Heinrich Michaelis, 1668-1738)1709년에 신학부에 임용되어 할레에서 구약성서를 연구했다.[히브리어 성서(Biblia Hebraica, 1720)]

 

독일어 원문: Der nach Franckes Übergang in die theologische Fakultät 1699 zum Professor für orientalische Sprachen berufene Johann Heinrich Michaelis (1668-1738), 1709 in die theologische Fakultät aufgenommen, hat in Halle das Studium des Alten Testaments befördert (Biblia Hebraica von 1720), [...].

 

번역을 바로잡았다.

 

1699= 미하엘리스의 할레대학교 철학부 초빙

 

https://de.wikipedia.org/wiki/Johann_Heinrich_Michaelis

 

 

1698= 프랑케의 신학부 이동

 

184쪽의 번역을 볼 것:

 

프랑케는 [...] 1698년 비로소 신학부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독일어 원문: eine theologische Professur, die er[=Francke] erst 1698 erhi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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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그는 먼저 문헌학적 주석을 통해 성서의 문법적 의미인 문자적 의미’(sensus litteralis), 곧 성서의 껍데기(Scale)에 주의를 기울였다.(186)

 

그는 먼저 문헌학적 주석을 통해 성서의 문법적 의미인 문자적 의미’(sensus litterae), 곧 성서의 껍데기(Schale)에 주의를 기울였다.

 

독일어 원문: In ihnen lehrte er sorgsame Beachtung des sensus litterae, des mit den Mitteln der philologischen Exgese zu eruierenden grammatischen Schriftsinnes als der Schale der heiligen Schrift, [...].

 

독일어 단어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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